닭알
북녘말
축산 농가의 시름이 깊다. 조류독감이 잦아들지 않았고, 미국 쇠고기가 무제한으로 수입된다는 소식도 있다. 먹잇값은 오르고 고깃값은 내려가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다행인 것은 닭·오리고기 소비 감소가 예전보다 덜하다는 점이다. 조류독감 미세균(바이러스)이 섭씨 75도 이상에서 죽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까닭일 터이다. 달걀도 잘 안 먹는다는데, 감염된 닭은 3일 이내에 죽고 달걀을 낳지 못하므로 달걀은 안전하다고 한다.
달걀을 북녘에서는 ‘닭알’로 쓴다. 발음은 [달갈]이다. 달걀과 닭알은 남북 두루 쓰던 말인데, 각각 다른 말을 쓰게 됐다. 두 낱말은 같은 뜻이지만, 구조가 다르다. 닭알은 ‘닭’과 ‘알’이 합쳤지만, 달걀은 ‘닭의 알’이다. ‘ 앓’이 ‘ 앓’을 거쳐 ‘달걀’이 되었다. ‘ ’은 닭이고, ‘ ’는 조사 ‘의’이고, ‘앓’은 ‘알’이다. 남녘 지역어 ‘달개알, 달구알’은 ‘ 앓’에서 비롯된 것이다.
‘닭의어리’를 북녘에서는 ‘닭어리·닭의가리’로 쓴다. ‘어리’는 고유어로, 닭과 같은 새를 넣어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을 가리킨다. ‘닭의어리’는 ‘휴대용 닭장’이다.
이와 반대로 북녘에서 조사 ‘의’가 결합된 말을 쓰는 것도 있다. ‘닭살’을 북녘에서는 ‘닭의살’로 쓴다. 발음이 [달기살]인데, 남녘의 조사 ‘의’ 발음과 비교된다. ‘닭의똥’의 발음은 [달긔똥] 혹은 [달게똥]이다. 한편, ‘닭의홰’와 ‘닭똥’은 남북 두루 쓰지만, ‘닭의똥’은 남녘에서만 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딜위·그믐딘이
사람이름
세종 12년(1430년), 보덕이란 여인이 永珍衣(영진의)와 싸우다 발길에 뺨을 차여 이레 만에 애가 떨어지고, 사흘 뒤 숨졌다. 사람을 때려죽이면 마땅히 목을 졸라 죽여야(교형) 하나 다친 곳도 없는데 때려죽인 죄로 보기는 어려웠다. 이에 임금은 한 등급 내려 벌을 주라 일렀다.
珍의 소릿값은 중세에 ‘딘’이었고 땅이름에서는 ‘돌’을 적을 때도 썼다. 중세 때 ‘술위’는 수레인데 이름에서 車衣(차의)로 적었다. 衣(의)는 ‘의/위/이’를 적는다. 珍衣는 ‘딘의/딘위/딘이’에 가까운 ‘딜위’를 적은 것으로 보인다. 딜위는 요즘의 찔레다. 딜위가 든 사내이름에 딜위·딜위대·늦딜위 따위가 있다. 永珍衣는 ‘영딜위/길딜위’였을 것이다. 1207년의 <대승선종 조계산 수선사 중창기>에는 딜위금(珍衣琴)이란 여인이 후원했다고 나온다. 세종 때까지만 보이는 ‘딜위’를 ‘珍衣’로 적은 표기는 고려의 내림으로 보인다.
珍(진)이 이름접미사로 쓰일 때 사내이름에 귀딘·그믐딘·금딘·똥딘·말딘·을딘이, 계집이름에 곰딘이 있다. 그믐진·똥진이란 이름도 있다. ‘-진’(進/眞)이 든 사내이름에 감진·귿진·문진·복진·손진·솔진·앙진·이진이, 계집이름에 논진·막진·망진·벽진·옥진이 등이 있다. ‘-딘/진이’는 ‘디다/지다’(넘어지다, 짐을 지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요즘말 ‘값지다·빚지다’는 중세 말에선 ‘귀하다·천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치속(?)
최근 중국에서 김치가 사스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한국 음식점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을 뿐 아니라 백화점 등에서 김치를 사재기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김치 속에는 마늘·고추·생강·파 등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이같이 맛을 내기 위해 김치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를 무엇이라 할까. '김치 속'이 아니라 '김치 소'가 맞다.
통김치나 오이소박이 등의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고명)를 '소'라 한다. 순 우리말이다. 송편이나 만두 등을 만들 때 맛을 내기 위해 익히기 전에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도 마찬가지다. 송편 속에 들어가는 팥·콩·대추·밤 등은 '송편 소'이고, 만두 속에 들어가는 고기·두부·야채 등은 '만두 소'다.
중국과 홍콩 등 동남아 지역과의 교류가 많은 한국에서 사스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은 까닭이 김치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늘이 항균·항암 작용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생강은 우리 민간요법으로 감기에 걸렸을 때 달여 마시던 것이다. 마늘·고추·생강·파 등 '김치 소'가 배추와 버무려져 발효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켜 면역력을 높여 주는 건 아닐까. 어쨌거나 우리의 전통식품인 김치가 해외에서 인기가 있다니 기분 좋은 일이고, 식생활 변화로 김치 소비가 줄었던 우리에게도 김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배상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