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찾는 가장 쉬운 길은, 지금 당장 그 바보상자 (TV)를 끄는것. / J.H.S.
창작도움 , 글터 → 국어
개구리밥
풀꽃이름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을 한 달 남짓 넘어서니 이제 날씨가 덥다. 개구리밥도 물 위로 떠오른다. ‘개구리밥’은 물에서 자라는 아주 작은 풀이다. 개구리가 먹는다고 개구리밥이 아니라, 개구리가 사는 논이나 연못에 자라 개구리가 물속에서 머리를 내밀었을 때 머리에 풀이 붙은 모습이 개구리가 먹는 것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다. 개구리는 주로 파리나 지렁이 등 곤충을 먹지 채식을 하지 않는다.
영어로는 ‘덕위드’(Duckweed)라는데, 연못이라면 떠오르는 것이 우리는 개구리이고 영어권 화자는 오리인가 보다. 개구리밥이 있는 물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운치 있게 그려졌다. 그러나 요즘은 수족관을 꾸민답시고 인터넷에서 한 컵에 만원을 주고 사는 개구리밥일 만큼 현대인은 자연도 사고팔 수 있다.
개구리밥은 바람 따라 떠다녀 ‘부평초’(浮萍草)라고도 하는데, 이는 덧없이 떠도는 삶에 대한 대표적인 비유다. 너무 무성해지면 벼나 다른 물풀이 자라지 못한다. 지역 일꾼을 뽑는다는 선거에서 정치적 손익 계산에 따라 갑자기 이사를 하고, 호텔 사우나 대신 동네 목욕탕을 가는 후보자를 보는 일에도 익숙해져 버렸다. 물 위를 떠도는 개구리밥 같은 분들이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시거리와 시내
땅이름
땅이름 연구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일석 이희승은 ‘시내’의 어원이 ‘골짜기’를 뜻하는 ‘실’과 ‘내’가 합쳐진 말임을 밝혀낸 바 있다. ‘밤실’이 ‘율곡’으로, ‘돌실’이 ‘석곡’으로 맞옮김되는 것을 고려하면 땅이름에서 ‘실’의 존재는 뚜렷하다. 뿐만아니라 물가나 냇가에서 잘 자라는 수양버들을 ‘실버들’이라 하는 까닭도 ‘시내’와 마찬가지로 ‘골짜기’와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골짜기의 뜻을 갖는 ‘실’은 차츰 마을 이름으로 쓰인다. 특히 경상도나 충청 지역에서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삼국시대 ‘신라’의 어원도 이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부나 북부 지역에서는 이 말이 마을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처럼 땅이름에 쓰이는 말이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고대 국어가 형성될 당시 이질적인 언어가 합쳐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은 삼국시대 땅이름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삼국의 언어가 달랐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었다.
강화도 교동에는 ‘시거리’와 ‘오래시’라는 땅이름이 쓰이고 있다. 이 말은 모두 ‘실’이 변한 말로 볼 수 있다. 이들 땅이름에서 ‘실’은 다른 말의 앞과 뒤에 모두 올 수 있음을 나타낸다. 땅이름에 쓰이는 말이 지역에 따라 달리 분포할 수 있는 이유는 말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이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가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땅이름의 차이도 살아가는 터와 관련을 맺게 될 것이다.
허재영/단국대 인재개발원 교수
~하므로 ~함으로
'-하므로'와 '-함으로'는 그 의미가 서로 다르므로 확실히 구분해 써야 한다. '-하므로'는 '-하기 때문에'라는 뜻으로 까닭·이유를 나타낸다. '-함으로'는 '-하는 것으로'라는 뜻으로 수단과 방법을 나타낸다. '-함으로'에는 '써'가 붙을 수 있으며 '써'를 붙임으로써 그 뜻을 더욱 명확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므로'에는 '써'를 붙일 수 없다. 다음 용례를 보자 .
(1) -므로 ·철수는 지금 글라이더를 만들므로 같이 놀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므로 이에 표창장을 줍니다. ·외국어로 된 제품 설명서를 번역해야 하므로 응시자는 외국어 능력을 꼭 갖춰야 한다. (2) -ㅁ으로써 · 그는 의술을 베풂으로써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 나는 노래를 실컷 부름으로써 외로움을 달랬다. ·불순물을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마음놓고 마시게 됐다.
(1)에서 고딕부분은 '만들기/되기/하기 때문에'를 의미하며, (2)에서는 '베푸는/부르는/제거하는 것으로써'의 뜻을 나타낸다.
근본적으로 우리 말과 글을 잘 하고 잘 쓰는 사람이 다른 외국어도 잘 한다는 것은 대부분 식자(識者)가 하는 말이다. 늘 사전과 가까이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글터 → 이글저글
평양의 황고집
평양 외성에 황순승이라는 진사가 한 분 있었다. 연대도 과히 오래지 않은 분이다. 성정이 고지식하고 곧아 남이 고집이라고 별명 지으니, 또 그리 싫어하지 않고 집암이라고 스스로 호하였다.
한 번은 나귀를 타고 지나는데 도둑의 떼가 나타나 물건을 뺏는다. 선선하게 내려서서 고삐를 내어 주고 채찍마저 내어주며 하는 말이 "하 쇠약해서 때리질 않으면 가질 않습니다" 도둑놈 대장이 한참 보더니 "댁이 외성 황고집 황진사 아니요?"하고 도로 주고 갔다 한다. 도둑들도 그런 분의 물건 뺏기에는 마음이 꺼렸던 모양이다.
한 번은 서울을 왔다가 평양에 벼슬 살러 왔던 친한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행들이 같이 조상 가자고 하니까 "그 사람하고 나 사이에 볼 일 보러 왔던 끝에 조상 한 대서야 말이 되느냐?" 고 그 길로 평양 5백 5십리 길을 부지런히 내려가 다시 되짚어 올라와서 조문을 하였다 한다.
어떻게 와전되었는지 '황꼽재기'라고 인색한 사람의대명사처럼 전하는 이가 있으나 근엄하고 규모가 있었을 뿐 그에게는 가당치 않은 얘기다.
시터 → 우리나라
슬픔의 돌 - 작자 미상(『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슬픔은 주머니 속 깊이 넣어 둔 뾰족한 돌멩이와 같다.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당신은 이따금 그것을 꺼내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자신이 원치 않을 때라도.
때로 그것이 너무 무거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힘들 때는 가까운 친구에게 잠시 맡기기도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머니에서 그 돌멩이를 꺼내는 것이 더 쉬워지리라. 전처럼 무겁지도 않으리라.
이제 당신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까지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은 돌멩이를 꺼내 보고 놀라게 되리라. 그것이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의 손길과 눈물로 그 모서리가 둥글어졌을 테니까.
장악하기 힘든 감정들이 있다. 질투·분노·절망·증오·무력감…, 이 폭발적인 감정들은 상처를 남긴다. 이 시에 상처를 치유하는 지혜가 있다. 상처를 직시하라. 그리고 상처와 친해져라. 가끔 가까운 사람의 주머니를 살펴볼 일이다. ‘슬픔의 돌’이 튀어나와 있다면, 그 돌을 며칠 쯤 맡아줄 일이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