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지말 당두둑
땅이름
경기도 동부나 강원 영서지방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둔지말’은 ‘언덕’과 관련이 있는 땅이름이다. 사전에는 ‘둔지’가 올라 있지 않은데, 이와 비슷한 말로 ‘둔덕’이 있다. ‘둔덕’은 ‘두두룩하게 언덕진 곳’이라고 풀이되어 있으며, ‘두두룩하다’는 ‘가운데가 솟아서 불룩하다’는 뜻이다.
<훈몽자회>의 지리 조항에는 언덕을 뜻하는 한자가 여덟 가지나 있다. 그 가운데 ‘두던’으로 풀이한 한자는 구(丘), 원(原:너른 들), 고(皐:물언덕), 부(阜:큰 뭍)이며, ‘두듥’으로 풀이한 한자는 파(坡), 판(阪:둑이나 산비탈), 릉(陵:큰 언덕), 륙(陸:높고 평평한 땅)이다. 이처럼 같은 언덕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두던’과 ‘두듥’은 토박이말이나 한자말에서 차이가 있었다.
‘두듥’은 경기지역의 땅이름에 많이 남아 있다. 남양주 수동면의 ‘당-두둑’은 ‘두듥’의 잔재를 뚜렷이 간직하고 있으며, 성남시 수내동 쪽 옛이름에도 ‘벌말’이나 ‘평-두들기’가 나타난다. ‘당두둑’은 ‘당두평’으로 맞옮김되며, ‘평두들기’는 ‘평촌’으로 바뀐다. 비록 ‘두던’이 ‘둔덕’으로 변하는 과정은 쉽게 설명되지 않지만, 대체로 ‘둔덕진 땅’을 ‘둔지’라고 부르는 것을 고려한다면, 두 낱말은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언덕진 곳의 평평한 땅’을 ‘둔지’라 부르며, 그곳에 작은 저수지가 있을 경우에는 ‘언둔지’라 일컫는다.
사라질 듯한 ‘두듥’이나 ‘두두룩하다’는 형용사의 쓰임을 땅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허재영/단국대 인재개발원 교수
걱정과 유감
언어예절
일하는 태도나 형편, 일이 되어가는 꼴을 두고 하는 말이 있다. 사람 사이란 상대적이고 복잡하여 바람 잘 날이 없고, 잠잠할 때라도 무슨 사달이 도사리기 마련이다.
걱정·우려·유감·한탄·개탄·규탄·항변·항의 … 차례에서 뒤로 갈수록 말의 세기가 더한다. 낱낱 사람이나 공인, 집단을 가리지 않고 사물을 논평하거나 견해를 밝힐 때 하는 말도 비슷하다. 나라 사이에서 주고받는 말이라고 별스레 딴말이 쓰이지는 않는다. 말무늬는 달라도 어느 족속이나 마음은 비슷하여 이 정도를 그 나라말로 뒤치면 두루 통하는 까닭이다.
여기에 “-스럽다”를 붙여 쓰면 형용사가 되는데, 보고 느끼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꼭 집어 말할 때는 동사를 써야 힘이 난다. “걱정이다, 우려한다, 의문이다, 안타깝다, 유감이다, 실망이다, 개탄한다, 고치라, 바로잡으라, 시정하라, 배상하라, 복구하라, 책임지라 …”
좀 점잖게 경고하는 말이 “걱정스럽다·우려한다·의문이다” 정도다. 어려움·실망이 겹치면 “유감이다·유감스럽게 생각한다”를, 앞뒤 잴 것이 없다면 “개탄·규탄한다”를, ‘항의’ 단계로 가면 즉각 바로잡고 손해·손실 배상·보상 요구를 아우른다. 최후통첩 다음엔 실력 대결이다.
이런 단계가 대충 공식화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뛰어넘기도 하고, 저마다 생생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파격 없는 판박이는 말싸움만 부를 뿐 재미도 발전도 없다. 적절한 말을 골라 써야 말값이 오르지만, 상대·대상의 형편을 제대로 살피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고도 망발·헛소리가 될 때도 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한자성어 (3)
좋았던 시절 귤은 몇 그루만 있으면 자식 대학 공부를 시킬 수 있다 하여 '대학 나무'로 불렸다. 하지만 이젠 수입 과일에 밀려 가격이 폭락하면서 출하를 포기하고 나무까지 베어내는 일이 흔해졌다. 형편이 어려운 것은 귤 재배 농가만이 아니다. 우리의 농어촌이 거의 비슷하다. 벼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낙농업자, 양식업자 가릴 것 없이 일손 부족과 과중한 빚에 허덕이고 있다. 통계로는 지난해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농가빚이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1960년대도 아닌데 밤중에 보따리를 싸서 남 몰래 고향을 뜨는 사람들의 사연이 여전히 전파를 타고 있다. 그것이 남의 얘기 같지 않은 농어촌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밤을 틈타 몰래 도망하는 것을 한자어로 '야반도주'라고 한다. 흔히 '야밤도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야반도주(夜半逃走)가 맞는 말이다. 야반(夜半)이란 밤을 반으로 자른 한가운데, 즉 한밤중을 의미한다. 위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는 것을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한다. 동병상린이라고 잘못 쓰는 사람이 많지만 이 말은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서로 불쌍하게 여긴다는 뜻이므로 동병상련이 바르다. 동병상린이라고 잘못 쓰는 것은 '불쌍히 여길 련(憐)'을 '이웃 린(隣)'으로 착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인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