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 에세이선
방황과 고뇌의 언덕
중화 -<중용> 본디는 <예기> 제31장
이 책은 중용의 서라고 한다. 보통 The Doctrine of the Mean 혹은 The Golden Mean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본장은 '사서'의 제2권이고, 다음 장(제4장)이 '사서'의 제1권이다. 공자철학의 중요성은 이 책의 내용에서 쉽게 간취될 것이다. 내가 공자의 모든 논문 필두에 이 논문을 가져온 것은, 이것이 공자철학의 가장 가까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중용이란 말 자체 속에는 공자철학을 위한 정당하고도 완전한 기초가 형성되어 있다. 옛날의 권위자들의 말에 의하면 본서는, 공자의 손자요, 증자의 제자이며, 맹자의 스승인 자사가 기록한 것이라고 하며, 자사는 이 중용 외에도 <예기>의 제30장, 제32장, 제33장을 기록했다고 한다. 맹자와 이 논문, 특히 제1절, 제7절, 제8절 사이에는 틀림없이 그 문체나 근본사상의 동일성이 있다. 더우기 제7절의 어떤 부분은 사실 <맹자> 가운데 다시 실려 있다. 만일 자사가 이 책의 집필을 담당했다고 하면 그는 맹자의 존경할 만한 스승이 되었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맹자>에서 비상한 웅변으로 완성되고 성숙된 어떤 초기의 사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깊은 연구자들은 본장과 맹자철학(제11장과의 사이에 깊은 관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직접 번역을 하지 않고 고홍명의 번역을 사용하는 것은 이 장뿐이다. 그의 번역은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것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변명이 필요하지 않다. 흥미있는 일은, 그는 인을 '도덕감'으로 번역하고, 의를 '정의감'으로 번역했으며, 예를 어떤 곳에서는 '도덕적 및 종교적 제도'라고, 다른 곳에서는 '사회생활의 규율'과 '습관'이라고 번역하였다. 도를 '도덕률', 군자를 '도덕인', 소인을 '속인', 중용을 어떤 곳에는 '보편적 도덕적 질서', 다른 데에는 '우리들을 우주의 질서에 통합하는 도덕적 본체에의 중심적 실마리를 찾아내는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번역들은 본질적으로 바르며, 게다가 어떤 말은 훌륭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삭제했거나 다시 썼거나 한 구절이나 행을 좀 더 원문에 가깝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다른 장과 통일시키기 위해서 중국어 명사가 다소 달라진 것은 물론이다.
고는 절의 순서를 다시 정리했으나, 나는 거기에 따르지 않았다. 각 절 즉 중국어로 불리는 각 장이 본래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정리되어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용되어 있는 바이다. 가장 현저한 경우는 제6, 제14 및 제16장(원서 중의 번호이며, 아래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음)이다. 제28장은 대단히 나쁜 장이며 분명히 후에 삽입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삭제하고 그 나머지 부분을 본장의 제9절 속에서 제2장과 함께 기재했다. 여기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려고 하면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하고, 또한 내용에 깊이 들어가서 증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중국어의 원서를 읽으려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서 나는 다음에 중국문책 '장'의 번호와 여기에서 각 절로 정리된 그 현재의 순서를 기록해 둔다.
제1절 제1장 제2절 제2, 3, 4, 5, 6, 7, 8, 9, 11장 제3절 제12, 16장 제4절 제13, 14, 15장 제5절 제6, 17, 18, 19장 제6절 마지막 부분을 제한 제20장의 대부분 제7절 제20장의 마지막 부분, 제21장 제8절 제22, 23, 24, 25, 26장 제9절 제27, 28장(일부분을 삭제, 일부분은 제29장과 합쳤음.) 제29, 30, 31, 32장 제10절 제33장
(1) 중화
"우리들은, 하늘로부터 부여된 것을 인성이라 하고, 인성의 규율을 충족시키는 것을 도덕률이라 하며, 도덕률을 닦는 것을 수양이라고 한다. 도덕률이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상 잠시도 그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규율이다. 도피할 수 있는 규율은 도덕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인(또한 위인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열심히 밝히려 하며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두려워 경외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처럼 명확한 것은 없으며, 감관에 의하여 감수할 수 없는 것처럼 명료한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인은 그의 마음속의 사상을 열심히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천명지위성, 률(수,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도야자 불가수리야. 가리비도야. 시고군자계신호기소부도, 공호기소불문. 막견호은, 막현호미. 고군자신기독야.
"희로애락이 발현되지 않는 때를 '중' 나 즉 도덕적 본체라 한다. 이 모든 감정이 발현되어 그 하나하나 및 전부가 적당한 정도에 달하면 그것이 '조화' 또는 도덕적 질서[화]이다. 우리들의 '중' 즉 도덕적 본체는 존재의 대본이요, '화' 즉 도덕적 질서는 천하의 보편적 법칙인 것이다. 만약 우리들의 참 중아와 조화가 실현될 때에는 천지가 자리잡히고 만물이 화육 발전될 것이다."
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2) 중용
공자는 말했다. "도덕인의 생활은 보편적, 도덕적 질서의 예시이다(중용). 속인의 생활은 그와 반대로 보편적 질서를 위반하는 예시이다."
중이란 '중심'이라는 의미이다. 용이란 '언제든지 변함이 없다'라는 의미이다. '중' '용' 전체의 의미는 규범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제2, 3, 4, 5, 6절은 원래는 다른 책으로 되어 있었는데 후에 제1, 7, 8, 9, 10절들과 합친 것같다. 이 두 부분의 문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제1 절에는 '중화'라고 했던 것이 제2절에서 갑자기 '중용'이라고 변했다.
"도덕인의 생활이 보편적으로 도덕적 질서의 예시가 되는 것은 그가 끊임없이 진정한 자기, 또는 도덕적 본체를 연마하고 있는 도덕가이기 때문이다. 속인의 생활이 보편적으로 도덕적 질서를 위반하는 예시가 되는 것은 그가 도덕률에 대해서 중심으로 존경 또는 두려움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중니왈, 군자중용. 소인반중용. 군자지중용야, 군자이시중. 소인반중용, 소인이부기탄야.
공자는 말했다. "우리들을 우주의 질서에 통합시키는 도덕적 본체에 이끌려 중심적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은 실제로 인간의 최고 소득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미 오랫동안 그것을 찾는 일이 드물었다."
자왈, 중용기지의호. 민선능구의.
공자는 말했다. "도덕적인 생활이 왜 실행되지 못하는가 하는 원인을 나는 지금에야 깨달았다. 현명한 사람은 도덕률을 이해하지 못하여 지나치게 높게 생각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실제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도덕률이 왜 이해되지 못하는가에 대하여 지금에야 깨달았다. 고상한 성품의 사람은 지나치게 높아 도덕상의 자기보다도 지나치게 높은 생활을 하기 원하고, 어리석은 성품의 사람은 능히 높은 생활에 미치지 못한다. 결국은 현명한 사람은 지나치고, 어리석은 사람은 미치지 못한다. 사람이 먹고 마시지 않는 이가 한 사람도 없지만 진정한 맛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왈, 도지불행야, 아지지의. 지자과지, 우자불급야. 도지불명야, 아지지의. 현자과지, 불소자불급야. 인막불음식야. 선능지미야.
공자는 말했다. "지금 세상에는 도덕적,사회적 질서가 실제로 조금도 행하여지지 않고 있다."
자왈, 도기불행의부.
공자는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를 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몰리게 되어 그물이나 덫이나 함정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하면 거기에서 풀려나올 수 있을 것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기는 현명하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참 중심적 실마리와 도덕적인 본체(즉 정상의, 보통의, 진실의 자기)의 균형 등을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한 달 동안도 유지하지 못한다."
자왈, 인개왈여지. 구이납제고화함정지중, 이막지지피(벽)야. 인개왈여지. 택호중용, 이불능기 월수야.
공자는 애제자인 안회에 대해서 말했다. "안회는 전생애 동안 자기의 도덕적 본체의 중심적 실마리를 탐구한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의 선을 체득하면 그것을 힘껏 포착하여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다."
자왈, 회지위인야, 택호중용, 득일선, 즉(칙)권권복응, 이불실지의.
* 고홍명이 붙인 주: 순임금이 지적성격의 사람이라면, 안회는 도덕적, 정서적, 종교적 성격의 사람이다. 마슈 아놀드가 주장하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구별에 비추어보면 순임금은 헬레니즘의 대표자이고, 안회는 헤브라이즘의 대표자이다.
공자는 말했다. "사람은 한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을 것이다. 명예나 봉록을 사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흰 칼날 위를 밟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이 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자기의 도덕적 본체의 중심적 단서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자왈, 천하국가가균야. 작록가사야. 백인가답야. 중용불가능야.
자로가 "용기란 어떤 것입니까?"하고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네가 말하는 용기는 남국 사람의 용기인가, 그렇지 않으면 북국 사람의 용기인가, 혹은 너같은 형의 사람의 용기를 말하는 것인가? 참을성이 있고 온순하며, 남을 가르쳐 주어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 이런 것이 남국인의 용기이다. 그것은 도덕인을 위한 이상적 상태이다. 언제나 무장을 갖추어 죽음이 닥쳐와도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 것이 북국 사람의 용기인 것이다. 그것은 너와 같은 형의 용자가 그것을 이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참 용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온순하고 단호하다. 그런 사람의 용기는 확고부동하다. 그 나라에 도덕적 질서가 안정되어 있을 때 그가 공동생활을 하게 되면 그는 자신이 은퇴되어 있은 때와 조금도 그 태도가 변함이 없다. 또한 그 나라에 도덕적으로 사회적 질서가 안정되어 있지 않을 때라도 그가 죽음을 당한다 해도 태연할 것이다. 그의 용기는 참으로 확고부동하다고 하겠다."
자로문강. 자왈, 남방지강여, 북방지강여. 억이강여. 관유이교, 불보무도, 남방지강야, 군자거지. 임금혁, 사이불염(엽, 암), 북방지강야. 이강자거지. 고군자화이불류, 강재교. 중립이불기. 강재교. 국유도불변한언, 강재교. 국무도지사불변, 강재교.
공자는 말했다. "후세에 명예를 남기기 위하여 매우 심원하거나 신기한 것을 구한다든지 사람들과 다른 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결단코 그런 생활을 하려고 생각지도 않는다. 또한 도덕률을 따라 생활하려고 하지만 도중에 중단하여 버리는 사람이 있으나 나는 그것을 도중에 중단해 버릴 수는 없다. 최후로, 무의식중에 보편적, 도덕적 질서와 완전히 조화시키면서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 생애를 보내는 참다운 도덕인이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만 신과 같은 성품의 사람뿐이다."
자왈, 소은행괴, 후세유술언. 오불위지의. 군자준도이행, 반도이폐. 오불능기의. 군자의호중용, 돈세불견지이불회. 유성자능지.
* 중용의 보다 자세하고 보다 명료한 설명은, 제5장의 제6절, 7절, 8절, 특히 제8절(공자가 미워한 인간형)을 참조하라. 제3절
"도덕률의 편재" "도덕률은 어디서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디서든지 그 지배를 받으나 표면에 드러나 있지 않고 은밀한 것이다."
군자지도, 비이은.
"보통 남녀의 단순한 지능으로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도덕률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극치에 대하여는 현인성자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보통 남녀의 무지한 성품으로서도 다소 도덕률을 실행할 수 있으나 그 극치까지는 현인성자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부부지우, 가이여지언. 급기지야, 수성인역유소부지언. 부부지불소, 가이능행언. 급기지야, 수 성인역유소불능언.
우주는 광대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그것으로 만족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도덕인의 마음이 어떤 위대한 뜻을 품었을 경우, 세상의 어떤 것이든지 그것을 포용할 수 없다. 그것은 그만큼 위대하기 때문인 것이다. 도덕인의 마음이 그 어떤 적은 것을 품었을 경우,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다. 그만큼 그것은 세미하기 때문이다.
<시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솔개는 하늘에 날고 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이것은 필경 아무리 깊은 물속에도 도덕률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도덕인에게 있어서는 도덕률은 남녀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주의 가장 광대한 범위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시운, 연비려천, 어악간연. 언기상하찰야. 군자지도, 조단호부부. 급기지야, 찰호천지.
공자는 말했다. "우주를 움직이는 도덕의 위세가 그 성대함이며 그 힘은 어디서든지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눈에는 안보이며 귀에는 안들려 감각으로 느낄 수 없지만 모든 만물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도덕률의 지배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자왈, 귀신지위덕, 기성의호. 시지이불견, 청지이이불문, 체물이불가유.
모든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심신을 삼가며 정결히 하고 예복을 입고 제사를 드리는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양양한 물의 불어오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를 느낀다. 때로는 우리의 머리 위에, 때로는 우리의 주변에.
<시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의 나타남. 그것을 헤아려 볼 수 없으니 어찌 그것을 무시할 수 있으랴."
여기에 인간이 지닌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적 고귀한 성질이 있다는 확증이 있다.
"사천하지인, 제명성복 이승제사 양양호, 여재기상 여재기좌우. 시왈, 신지격사, 불가도사, 신가사사. 부미지현, 성지불가암(엄), 여차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