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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23 호
단기 4341. 1. 5 (음력 11. 27)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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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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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조선일보는 1억원 고료를 내걸고 ‘2008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大賞)’을 제정, 전 국민을 대상으로 원고를 공모합니다. 본지가 지난 3월부터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함께 펼쳐온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에서 한 단계 도약, 새해에는 ‘전 국민 책 1권 쓰기 운동’을 펼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메모수첩과 일기장에 기록된 삶의 흔적들이 곧 논픽션입니다. 형식은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분량: 200자 원고지 900장 안팎(원고지 20장 안팎 요약문 첨부)
▲고료: 당선작 1편 고료 1억원
▲마감: 2008년 4월 30일(마감일자 소인 유효)
▲발표: 2008년 5월 말 조선일보
▲접수: 100-756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1 조선일보사 편집국 문화부 (02)724-5364, 5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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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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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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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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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1.사물을 바로 보는 눈
선물과 성의
선물을 받고나선 선물에 대한 투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이 생각하고 준 선물이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그만이다. 선물이 비싸니, 싸니, 좋으니, 나쁘니 하면 선물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줄어들고 오히려 결점만 눈에 들어오는 결과를 낳는다.
가난한 자가 밝힌 등불 하나
석가모니가 사위국의 어느 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난타란 여자는 의지할 곳이 없고 가난했기 때문에 거지 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그녀는 석가모니를 공양하기 위해 하루종일 쉬지 않고 걸어다니며 자비를 받아 겨우 10원을 얻어냈다. 10원을 가지고 기름을 사려고 하다가 기름집 주인은 10원으로는 기름을 살 수 없다고 말하면서 무엇에 쓰려 하느냐고 물었다. 난타는 가슴속의 이야기를 했다. 주인은 그녀를 불쌍히 여겨 충분한 기름을 주었다. 난타는 등에 불을 붙여 정사의 석가모니에게 바쳤다. 난타의 성심으로 바친 등불 하나는 한밤중까지 계속 빛나고 다른 등불이다 꺼진 뒤에도 계속 빛났다.
과부의 동전 두 닢
예수 역시 부자의 큰 돈 헌금보다 과부의 동전 두 닢을 더 크게 보았다. 예수는 부자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있던 중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작은 동전 두 닢을 넣는 것을 보고는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헌금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가운데 일부를 헌금하였지만 이 과부는 가난 속에서도 가진 것 모두를 바쳤다.“고 하였다. 가난한 사람에게 받은 선물의 경우 금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예와 비례를 따지면 안 된다고 기록하고 있는 예기처럼, 주는 사람의 진심을 보아야지 성심으로 주는 선물에 대하여 값을 따져서는 안된다. 선물보다는 주는 사람의 성의를 중요시하라.
(Never look a gift horse in the mouth.) 말은 이빨의 상태에 따라 나이와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선물로 받은 말의 입 안을 살펴보는 것은 선물의 값어치를 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교회에서도 현금의 액수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심을 저울질한다고 한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다 깨끗한 것 같아 보여도, 마음을 살피는 하느님의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은 현금 액수를 보지 않고 헌금한 사람의 마음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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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 / 지혜 / 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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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김재은
제8장 - 내면적인 고독
사색의 실마리(II)
3. 기억력이 왜 나쁜가?
"나는 왜 이렇게 기억력이 나쁠까요?"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을 주위에서 자주 듣는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왜 나는 한가지 일에 집중이 안 될까?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이 변덕스럽다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있다. 그들은 의식을 어떤 대상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면-그것을 '의식'한순간에-집중을 방해하는 것 같은 이미지가 차례차례로 솟아 나와서 뭐든지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그래서 결국에 가서는 이 사람들은 '고통'보다는 '경박'함을 택하고 만다. 그러나 기억력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불치의 병은 아닌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실례를 잘 알고 있다. 강의의 내용이 흥미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품을 하는 학생은 반대로 따분하고 흥미 없는 강의를 할 때는 생기가 되살아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알고 보면 그러한 학생들은 흥미 있는 강의 시간에 열중할 수 있는 동료들을 무의식적으로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처럼 집중할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쑥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쓸모 없고 싫증나는 따분한 강의 때에는 정신이 집중이 안 되어서 고민하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상관하지 않고 그들은 그 시간에 마음껏 공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뭔가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4. 집중을 방해하는 것과 극복하는 방법
"집중하는 요령을 어떻게 하면 배우지요?"라는 말을 바꿔 말하면 "집중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된다. 우리들은 기억력이 나빠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의 실례에서 신경과민증이야말로 정신을 집중시키는 데 매우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보통 '과민증'에 걸린 사람은
#1 친구나 다른 사람이 외관이라든가 지능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인다. #2 다른 사람이 농담이라든가 제 자랑이 유난히도 불쾌하게 생각되어진다. #3 따라서 친구들 앞에서는 어쩐지 마음이 흐트러져서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 라는 식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신경'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주 얼빠진 사람으로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과민증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너무 자책을 해서는 안된다. 만일 당신이 과민증에 걸려 있는 듯하다고 한다면 나는 솔직히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즉 당신의 기분을 흩으러 놓는 친구와는 당분간 만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골드스미드(1728-1774, 영국의 작가)는 왜 "웨이크피일드의 목사"를 썼으며, 더욱이 미완성인 채로 붓을 꺾고 말았을까? 그는 신경질을 참지 못하고 '뭔가를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쓴것이다. 동시에 동료 작가들이 칭찬하는 말을 듣기가 거북해서 작품을 중단하고 만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골드스미드는 친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자칫하면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할만큼 '훌륭한 친구'와의 교제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 좋다. 그 대신,
#1 친절하고 단순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2 만일 당신의 '집중'을 방해할 것 같은 친구와 만났을 때에는 기죽지 말고 침묵을 지킨다. #3 침묵은 반드시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처음에는 기분이 언짢겠지만 곧 침묵의 도움으로 결코 꿀리지 않게 될 것이다.
5. 흥미는 집중의 어머니
우리들은 집중의 방해가 되는 과민증에서 해방되는 실마리를 얻었다. '친절하고 단순한' 친구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이것은 무엇에든지 잘 '집중할 수 있는'사람들이면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방법이다. 결론부터 말해 본다면 대체로 흥미라고 하는 것은-가령 그것이 어떤 종류의 흥미이든 간에-저절로 집중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싫증나는 수업 시간에 한해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학생들의 태도에 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이런 조그만 수수께끼도 흥미라고 하는 열쇠를 발견함으로써 금방 해결되어 버리고 만다. 그들은 자기네 마음속에 상상력을 자유로이 나래 치게 하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친구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인 것이다. '주의산만'이라는 딱지가 붙은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열등감을 부추기는 적이 잠잠해진 시간인 것이다. '기분 좋은 상태'로 오로지 자신의 흥미의 대상과 씨름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가 있다는 것만큼 강한 힘은 없다. 글짓기는 싫어서 죽을 지경인데 뜰의 잔디 깎기 같은 것은 좋다, 글짓기 시간에 도망친 학생이 라디오의 조립이라고 하면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하루 종일 골방에 틀어박혀 있다-이런 광경은 우리가 자주 목격하는 광경이다. 가벼운 소설밖에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떤 때에는 보기에도 싫증나는 유명 인사의 회고록 따위에 열중해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큰길에서 백 보쯤 떨어진 곳을 걸어가야만 한다'라고 권고한 사람이 있는데 우리들은 그런 금언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흥미가 솟는 대로 백 걸음쯤 떨어져서 역사를 읽고, 과학 하는 마음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의 효용은 실제로 따지기 어려우리만큼 놀라운 데가있다. 집중에 있어서 가장 장애가 되는 '열등감'도 이 흥미에 의해서 극복할 수가 있다. '흥미 본위'라는 비난도 열중하기만 하면 되었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흥미의 강도는 의식적인 노력이란 것 가지고는 도저히 다다를 수가 없는 정신적인 높이에까지 우리들을 끌어올려 준다. 흥미를 통해서만 우리들은 관심을 높이고 나아가서는 좋은 의미로의 '우월감'까지도 가질 수가 있다. 그렇다. '생각의 기술'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올바른 해결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 아닌가. 될 수 있는 대로 번거로운 길은 피하고 힘 덜 들이고 우리들의 지성을 보다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하고 질문을 할 것이다.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당신이 흥미를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첫째이다. 그렇게 하면서 보다 높은 곳으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확실하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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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딴지같다
본뜻 : 뚱딴지는 본래 돼지감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생김새나 성품이 돼지감자처럼 '완고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을 비웃어서 가리키는 말이다.
바뀐 뜻 : 오늘날에는 본뜻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거의 없어지고, 상황이나 이치에 맞지 않게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보기글" -그 사람 가끔 가다가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지, 안 그래? -너, 분위기를 바꾼다고 그렇게 뚱딴지같은 행동을 하나 본데 그런 행동이 오히려 분위기를 깨뜨린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
마가 끼다
본뜻 : 마는 불교 용어인 'Mara'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마라는 '장애물' '훼방놓는 것'이란 뜻의 산스크리스트어이다. 원래는 마음을 산란케 하여 수도를 방해하고 해를 끼치는 귀신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바뀐 뜻 : 일이 안 되도록 훼방을 놓는 요사스러운 방해물을 마라고 하며, 때로는 마귀나 귀신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가 낀다'는 말은 일의 진행 중에 나쁜 운이나 훼방꺼리가끼어 들어서 일이 안되는 쪽으로 상황이 기우는 것을 말한다.
"보기글" -일이 다 될 듯 하다가 안 되니, 이거 무슨 마가 끼었나? -좋은 일에는 마가 끼기 쉬운 법이니 잔치가 끝날 때까지 매사에 조심하거라
제맛
‘제’는 ‘저’에 격조사 ‘이·의’가 축약된 낱말이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에서처럼 ‘자기를 낮춰 가리키는 일인칭’으로 쓰이거나, ‘뭐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에서처럼 ‘이미 말한 이를 도로 가리키는 삼인칭’으로 쓰인 ‘제’는 ‘저’에 격조사 ‘이’가 달라붙은 것이고, ‘제 책입니다’에서 ‘저의 책’으로 분석되는 것은 ‘저’에 격조사 ‘의’가 달라붙은 것이다. ‘제’와 비슷한 특징을 보이는 낱말로는 ‘내’, ‘네’ 등이 있다.
한편, ‘삼인칭 대명사’로 쓰이는 ‘제’는 합성어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로는 ‘제각각·제값·제격·제고장·제구실·제대로·제때·제멋·제물·제바람·제빛·제살이·제소리·제자리·제집·제짝·제힘’ 들이 있다. 합성어가 되었을 때의 ‘제’는 본디 뜻에서 번져 ‘그 자체의’,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스스로의’, ‘본래의’ 등의 뜻을 나타낸다. ‘제’가 결합된 합성어이면서 큰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로 ‘제맛’이 있다.
“과일도 익어야 ‘제맛’이 나고 곡식도 알이 차야 먹을 것이 있는 법이야.”(박경리 〈토지〉) “심신이 가벼워서 그런지 이제는 담배도 ‘제맛’이 돌았다.”(이문구 〈산너머 남촌〉) “사내 품도 추운 한겨울이 ‘제맛’이라더만 나야 어디 팔자에 그 재미는 없는 사람이고 ….”(한수산 〈유민〉)
여기서 ‘제맛’은 ‘고유한 맛’, 또는 ‘본성을 띤 좋은 상태’란 뜻으로 쓰였다. 최근 나온 일부 사전에는‘제맛’이 보이기도 한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할말과 못할말
‘할말’과 ‘못할말’도 제대로 말대접을 못 받는다. 그러나 ‘참말’과 ‘거짓말’이 국어사전에 오른 것처럼 ‘할말’과 ‘못할말’도 사전에 올라야 마땅한 낱말이다. ‘할말’과 ‘못할말’이라는 말을 우리 겨레는 오래 그리고 두루 쓰며 살았기 때문이다.
‘할말’과 ‘못할말’이 가려지는 잣대는 무엇일까?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이 잣대다.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에 맞으면 할말이고,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에 어긋나면 못할말이다.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동아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얽히고 설켜서 겨루고 다투고 싸우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마음이 맞으면 모여서 어우러지고 마음이 어긋나면 갈라서 흩어진다. 이럴 때 사람의 한 마디 말이 멀쩡하던 사이를 갈라놓기도 하고 갈라진 사이를 다시 어울러놓기도 한다. 사이를 갈라놓는 말이 ‘못할말’이고, 사이를 어울러놓는 말이 ‘할말’이다.
삶의 동아리에서 사람들이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는 것보다 값진 노릇은 없기에 할말과 못할말을 가리는 말살이보다 무겁고 어려운 것은 없다. 거짓말이나 그른말도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을 북돋우면 할말이 되고, 참말이나 옳은말도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을 깨뜨리면 못할말이 된다. 그래서 할말과 못할말을 제대로 가려 마땅히 쓰는 사람은 동아리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우러름을 받고, 할말과 못할말을 가리지 못하고 함부로 쓰는 사람은 동아리에서 말썽쟁이로 업신여김을 받는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호박고지
햇볕이 따사로운 철이면 어머니의 손길이 바빠진다. 겨울에 먹을 마른 음식과 밑반찬 준비 때문이다. 겨우내 먹을 밑반찬으로 고추도 말려야 하고, 깻잎도 절여야 하고, 또 호박과 가지와 무를 얇게 썰어 햇볕에 말려두어야 한다. 무와 가지를 말린 것을 표준어로는 ‘무말랭이’, ‘가지말랭이’라고 하고, 호박을 말린 것은 ‘호박고지, 호박오가리’라고 한다.
‘오가리’는 ‘오글다, 오그라지다’와 관련된 낱말로, 고장에 따라 ‘우거리, 우가리, 와가리, 왁다리’로 발음한다. ‘고지’는 ‘고지, 꼬지’로 많이 쓰고, ‘고지’에 접미사 ‘-아기, -앙이’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고재기, 꼬쟁이’의 형태도 보인다. ‘오가리’와 ‘고지’가 뜻이 비슷한 까닭에 두 말이 섞이면서 ‘우거지, 고자리’의 형태로도 쓰인다. 제주도에서는 ‘말랭이’를 많이 쓴다. 지역에 따라서 ‘꼬시래기, 속씨래기, 쪼가리’로 쓰는 경우도 있다.
무말랭이는 양념을 해서 반찬을 만들면 졸깃한 느낌 덕분에 마치 고기를 씹는 듯하다. 가지말랭이나 호박고지는 겨울철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나물을 무치거나 탕을 하면 그 맛이 일품이다. 특히 이렇게 말려 놓은 무말랭이나 호박고지 등은 정월 보름날에 나물로 많이 쓴다. 가을철, 따사로운 햇볕을 그냥 보내기 아깝다. 애호박을 얇게 썰고 가지를 길게 썰어, 채반에 널어서 말리는 풍경이 그립다.
이태영/전북대 교수·국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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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속에 숨어 있는 역사의 비밀(근, 현대편) - 박영수
1.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디로 수학여행을 갔나
누드 결혼식
1700년대 영국과 미국 일부 지방에서는 신부가 속옷이나 누드 차림으로 결혼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주로 재혼하는 신부들 사이에 이런 유행이 있었는데, 신부가 결혼하면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을 경우 빚쟁이들이 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관습에 근거한 것이었다. 어떤 신부들은 이러한 관습에 극단적으로 충실하여 벌거벗은 채 결혼식을 올린 경우도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묘한 불문율 때문에 비롯된 유행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결혼 전 아내가 진 빚에 대해서 남편이 책임질 의무가 없다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었다. 결혼은 새로운 탄생에 버금가는 신성한 일이므로 결혼을 계기로 이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해석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빚을 많이 진 여성이라 하더라도 맨몸으로 시집을 가게 되면 그 날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어 채권자들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다. 특히 남편에게 채권을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입장에서 정작 본인이 속옷 하나만 달랑 입고 시집갈 정도로 가진 게 없다고 버틸 때, 대다수 빚쟁이들은 입맛만 다시며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당시 빚쟁이들은 채무자가 결혼하게 되는 것을 가장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식장에 나타나 빚을 진 신부가 실제 '속옷 결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기도 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채권자인 빚쟁이나 채무자인 신부에게는 똑같이 그 상황이 끔찍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빚진 신부들은 채무 해결을 위하여 용감하게 속옷 바람으로 결혼식장에 등장했다. 하지만 일부 빚쟁이들은 만만치 않게 대응했다. 최후의 순간 방심한 틈을 노리고 있다가, 신랑이 신부에게 사랑의 언약으로 끼워 주는 결혼 반지를 즉석에서 탈취해 가기도 했던 것이다. 없이 사는 티를 있는 대로 내야 했던 당시 신부들의 '웨딩 드레스'도 천태만상이었다. 속옷 몇 개만 걸친 신부에서부터 침대 시트를 둘둘 말고 나온 신부,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과감히 누드 결혼을 감행하는 용감한 신부 등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신대륙의 경제적 형편이 좋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므로 발가벗고 등장한 신부도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남편들은 결혼 당일 첫 선물로 아내의 옷가지들을 마련해야 했으며 나중에 이것이 예식 풍습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결혼식장에 결혼 당사자와 아무 관계도 없는 남자들이 구경 삼아 난리를 치고 모여드는 것이 유행이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속옷 결혼은 '슈미즈'라는 말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 희한한 결혼 풍속을 '스목 결혼'이라 불렀는데, '스목'이란 '머리 구멍 뚫린 의복'을 의미하는 말로 허름한 옷차림에 대한 비아냥이 섞인 조롱이었다. 즉 신부가 걸치고 나오는 속옷을 의미했던 스목이 슈미즈라는 말로 변화하면서 여자의 양장 속옷을 의미했던 스목이 슈미즈라는 말로 변화하면서 여자의 양장 속옷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단 결혼식이 끝나면, 신부는 화려하게 꾸민 결혼 예복을 입고 당당히 교회 문을 나서며 변제 능력이 있는 여인으로 바뀌었으니, 그저 빚쟁이만 서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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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라 - 이영진
제3부 활성산소의 피해를 막아주는 항산화제의 비밀
건강정보 바로알기
어떤 사람이 무슨무슨 약이나 식품, 약초 등을 몇 달 먹고나서 암이 싹 없어졌다든가 고질적인 병이 없어졌다고 한다면 정말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걸까? 남이 그렇게 좋다고 하니 내게도 그런 효과가 나타날까? 무엇무엇을 먹어라, 무엇무엇을 하라. 그러면 건강이 찾아오고, 병이 나으며, 노화가 예방된다. 이런 식으로 씌어 있는 수많은 건강-장수 관련 책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면 정말 그대로 될까? 건강은 기본적으로 과학이요 상식이며 안전성이 중요한데도, 이를 파격적으로 무시하고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야 잘 팔리는 건강서적이 되고... 현대의학의 한계를 부정적인 측면인 양 단정짓고 강조하면서 몇몇 체험의 예를 들어 자기 주장을 펴는 건강 강좌, 건강 서적들이 주는 폐해를 이대로 방치하여야만 하는가?
물론 필자가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라고 해서 현대의학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나를 찾아온 환자에게 안전하고 경제적이면서 과학적인 처방을 해 주어야 하는 책임을 가진 입장에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이다. 의사들이 민속요법, 전통의학, 대체의학 등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그건 오해이다. 지금도 나는 객관적인 체험 사례 보고서가 있는 요법이면서 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종종 환자들에게 추천하고 또 처방도 한다. 문제는 현대의학 울타리 밖의 많은 건강법들이 아직은 객관적인 연구 결과가 없다는 말이다. 현대의학이 현재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비집고 들어와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이는 수많은 건강법, 질병 치료법들... 이들이 해야 할 것은 대중을 혹하게 하는 자기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인 연구 결과의 제시이다.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 시중의 많은 건강 서적들이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공통적인 방법론이 현대의학의 한계를 매우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대의학의 한계가 계속 해결되지 못하고 영원한 한계로 남아 있을까? 그렇지 않다. 독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수한 건강법에 빠져 경제적, 신체적 손해를 보는 이 순간에도 현대의학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멀지 않다 곧 지금의 한계를 극복해 갈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신문 보도나 각종 책에 씌어 있는 방법이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대로 따라서 해 볼 가치가 있는 내용인지를 가려내는 방법을 얘기하겠다. 만일 지금부터 설명하는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바로 실천에 옮기지 말고 신중을 기하도록 하기 바란다. 절대 과신하지 말고 좀더 이리저리 알아 본 후에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첫째, 근거 연구 논문과 통계치가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건강이나 질병, 노화 등에 관련된 원인이나 예방법, 치료법이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일정한 틀에 따라 실행된 연구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항산화제가 노화나 질병과 관련이 있다고 하려면, 노화가 많이 된 사람이나 병이 심한 사람 그룹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룹간에 항산화제가 확연히 차이가 있음을 통계 수치로 증병해야 한다. 또 항산화제가 노화 속도를 늦추고 면역력을 높인다고 말하려면, 항산화제를 복용한 그룹에서는 그런 효과를 보이던 것이 복용 안한 그룹에서는 효과가 없었음을 역시 통계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이런 비교 그룹이 없이 단일집단에서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 내용은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A라는 씨앗을 먹으면 위암이 좋아진다라는 결과가 인정되려면 기존에 이미 위암 치료로 검증이 된 방법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인지가 통계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비교없이 그냥 ??여명되는 위암환자에게 A를 투여한 임상실험 결과 암이 좋아지더라는 내용이 신문에 나면 사람들은 기존에 검증된 치료법을 때려치우고 그 씨앗을 구해 먹으려고 난리가 나니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그래도 이건 근거 자료나마 있으니 좀 나은 편에 속한다. 무작정 위암일 때 무엇을 먹으면 좋다라는 식의 내용이나 광고가 좀 많은가?
둘째, 임상실험 대상 수가 많아야 하며 주장하는 효과가 단기간 조사된 것보다는 장기가 조사된 것이 더 믿을만하다. 연구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험 대상자 수와 비교 대상자 수가 각각 적어도 수십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물론 연구 기간도 수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 노화나 만성병, 암에 관한 임상 연구 중에는 수백에서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십수년씩 걸려서 이루어진 연구가 매우 많다. 이렇게 힘들여 나온 결과도 수도 없는 갑론을박의 검증을 거쳐야 인정이 되는데, 기껏 10--20명을 대상으로 몇 달간 투여한 결과가 문제점이나 제한점에 대한 부연 설명없이 유력 신문의 건강난에 '획기적인...' 식의 주요 머리기사로 보도되어서야 되겠는가? 또 개인 경험이나 질병을 고친 사례 몇 가지를 곁들인 무슨무슨 비결, 무슨무슨 장수법, 혹은 암을 고치는 방법같은 이름의 건강서적들이 베스트셀러로 팔려서 건강 상식화되고 있으니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책쓰는 저자들이야 나름대로 문제점과 제한점도 같이 부연해서 쓰지만, 어디 독자가 그런 게 눈에 들어오는가? 그저 어디에는 뭐가 좋다. 그렇게 하면 낫는다라는 문구만 눈에 들어오는 게 독자들 아닌가? 저자나 독자들, 매스컴도 신중을 기하여야겠지만, 국민 건강에 책임있는 의사나 학자, 교수들도 이에 대해 계속 경종을 울려 줘야 한다. 연구실이나 진료실에 앉아서 엉터리다. 큰일이다하면 뭐하는가?
셋째, 부작용이나 안전성에 대한 부연 설명이 같이 곁들여 있으면 믿을만한 내용이다. 사실 의학적 치료제의 초점은 효과보다는 부작용이나 안전성이 있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효과가 좋은 방법이라도 부작용이 있거나 안전하지 않으면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시중에 널리 퍼져 있는 각종 건강 비법들은 이런 부작용이나 안전성을 도외시한 채 효과 면만을 부각시켜서 상품화한 것이 공통점이다.
넷째, 효과가 없다는 다른 주장도 같이 실려 있다면, 이 저자는 양심적으로 편협되지 않으려고 신중을 기한 것이므로 믿을 만하다. 혹시 신문 건강난에 A가 B라는 병에 효과가 없다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가? 아마 기억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매스컴의 특성상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효과가 없다는 것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방법들은 찬반양론 반반, 혹은 찬성이나 반대 우세 등의 정도 차이지 대부분이 효과가 없더라는 연구들도 반드시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다가 결국 효과가 있다던가 효과가 없다쪽으로 잠정 결론이 나는 것이다. 특히 연구기간이 짧았던 경우에는 몇 달이나 1, 2년 동안은 신문에서 즐겨 쓰는 것처럼 획기적인 효과가 있다가 수년 이상 더 두고 보니 결국 반짝 효과임이 판명된 방법들이 무수히 많다.
다섯째, 제1형 연구(질병이나 노화예방과 관련이 깊다)인지, 아니면 제2형 연구(투여하고나니 실제 효과가 관찰이 되었다)인지를 구별하여야 한다. 또 한가지 알아둘 것은 질병의 치료 효과를 볼 때에는 2형 연구가 중요하지만, 질병의 예방 효과를 볼 때에는 1형, 2형 연구 둘 다 중요하다. 임상 연구의 2가지 대표적인 틀은 A와 B의 관련성을 보는 게 있고, A와 B의 인과 관계를 보는 게 있다. 물론 치료효과를 보려면 인과관계의 틀을 가진 연구이어야 한다. 그런데, 관련성을 보는 연구 결과가 마치 원인-결과인 것처럼 둔갑이 되어서 매스컴에 보도되는 일이 허다하다. 예를 들어 홍당무나 양배추 섭취량은 폐암 발생 정도와 관련이 깊다라는 결과는 단지 홍당무나 양배추를 많이 먹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적다. 물론 홍당무나 양배추를 많이 먹어도 폐암에 걸릴 수 있으며, 홍당무나 양배추를 안 먹으면 폐암에 잘 걸린다라는 원인-인과 관계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연구가 신문에는 어떻게 보도되는가? 마치 홍당무나 양배추를 안 먹는 것이 폐암의 원인인 것처럼, 혹은 홍당무나 양배추를 많이 먹으면 폐암에 안 걸리는 것처럼 보도된다.
여섯째, 이건 설명 안해도 다 아는 거지만 저자가 실제 관련분야의 전문가일수록, 그 내용이 신뢰성이 높다. 건강서적을 살 때에는 제목만 보고 고르지 말고 반드시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도록 하라. 약력 중에 전직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경력도 매우 중요하다. 공신력이 있는 해당분야 전문기관에서의 경력자이면 그 내용이 신뢰할 만 하다. 내 경우는 이것말고도 아는 사람을 통해 저자에 대해 알아보기도 한다. 물론 일반 독자들이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명확한 경력이 없이 두리뭉실하게 불분명한 단체의 전직 경력이 나열되어 있으면 아무래도 신뢰도가 떨어진다. 어떤 경우는 아예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독학으로 공부하고 개인의 경험을 곁들인 책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내용이 편협되기 쉽고 어법이 파격적이다. 국내 암관련 건강서적 40여권 주엥 저자가 암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무려 70% 정도인데, 이들 책을 보면 역시 혹하게 하는 과장된 문구가 많다. 하지만 한 분야에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가가 글을 쓸 때에는 치료가 잘된 경우는 진짜 그 약 효과 때문에 그런건지, 또 치료가 안된 경우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등등을 다 검증한 후에 글을 쓰므로 절대 그 내용이 파격적이거나 단정적일 수가 없다. 참고로 외국건강 서적 번역물 중에는 혹하는 제목에 애매모호한 경력의 저자가 쓴 책들이 많으니 책 구입시 참고하기 바란다. 끝으로, 혹시 동물실험 결과를 위주로 주장하는 게 아닌지 살펴보기 바란다. 현재로서는 난치병으로 알려져 있는 질환일수록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보다는 동물 대상의 결과인 수가 많다. 예를 들어 신문 머릿기사에 간암 치료에 획기적인 A물질 발견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본문까지 잘 읽어보면 쥐나 원숭이 실험인 경우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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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개탄한 이해
이해(1496-1550)의 본관은 진보이고, 자는 경명, 호는 온계이다. 중종 20년(1525)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3년 뒤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글씨를 잘 썼다. 대사헌이 되어서는 이기를 탄핵하여 파직시켰다. 젊어서는 김안로와 이웃에 살았고 또 인척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김안로가 권력을 잡고 있으면서 여러 차례 그를 도와주는 뜻에서 등용하려 하였지만 이해는 끝까지 그 농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구수담과는 같은 해 과거에 급제하기는 하였으나 서로오간 적이 없었는데 구수담이 대사간이 되어 이해를 탄핵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그 해 여름에 대신이 임금의 명령을 받아 구수담을 논박하여 죽게 하였다.
이무강이 이해와 같이 사국(예문관, 춘추관의 별칭)에 근무했는데 지나는 길에 자기 집에 들러 달라고 요청했으나 여러 차례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들어가지 않았다. 이무강이 이해를 중상하여 이기에게는 환심을 사고 자신의 분함을 풀려고 그가 구수담과 한 패거리가 되었다고 무고하여 옥사가 더욱 급박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허위로 자백하면 모면할 수 있다고 이해를 꾀었다.
"허위로 자백하여 구차하게 사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하다" 이해가 탄식하며 스스로 상소문을 초하여 올리려고 하니 취조관이 이기를 두려워하여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장형을 받고 갑산에 유배되었는데 유배 도중 양주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 55세였다. 퇴계 이황이 그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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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항산 무항심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변함없는 지조가 있을 수 없다는 맹자의 가르침이다.
등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나라의 군주 문공이 맹자를 정치고문으로 초빙해다가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맹자의 진술이 유명한 정전설인 바 그 요체는 다음과 같다. "국정은 먼저 백성의 경제 생활의 안정에서 비롯되옵니다. 항산이 있는 자는 항심이 있으며, 항산이 없는 자는 항심이 없는 법이올시다. 항심이 없으면 어떤 나쁜 짓이라도 하지요. 백성이 죄를 저지른 다음에 벌을 준대서야 법의 그물을 씌우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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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 김영웅
3. 비로자나부처님의 외출
노스님과 낡은 의자
행자(속인으로서 절에 들어가 불도를 닦는 사람)로 대구 팔공산 파계사에 있을 때다. 고송 큰스님이 기거하시던 염화실의 거처는 나무를 때던 방이었다. 불사관계로 오대산 상원사에 가셨다가 연탄 보일러 공사를 하던 때였다. 그때 낡은 의자 하나가 있었는데 근 이십여 년은 족히 된 것이었다.
"우와, 시주하신 분들 보람 느끼겠네예."
다리 하나가 건덩건덩하는 의자는 결국 창고로 들어갔다가 절 밑의 구멍가게로 넘겨졌는데 노스님이 암자에 돌아오시고부터 난리가 난 것이다. 스님을 위해 안락의자를 준비해 두었건만 스님은 고급 안락의자는 눈에 두지 않고 '치워라'하시며 그 낡은 의자를 찾으시는 거였다. 절 안은 노스님의 호통으로 어수선했다. 결국 나는 산을 내려가 그 구멍가게에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의자를 되찾아와야만 했다.
"스님, 그 좋은 안락 흔들의자를 마다하시고 왜 저를 이렇게 괴롭히시는 거...예요?"
의자를 메고 절로 오르며 나는 혼자말로 구시렁거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길을 올라갔다. 잠시 후 '시자야' 하는 소리에 법당을 청소하다 노스님의 처소로 쪼르르 달려가 합장을 하고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가서, 칠하고 붓 좀 구해와."
나는 총무님께 이야기하고 또다시 산을 내려왔다. 그러나 나는 잠시 칠가게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참말, 노장님도 행자살이 되게 고달프게 시키네."
난 나도 모르게 하심하지 못하고 그만 투정을 부리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금세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를 주워 삼켰다. 노스님은 내게 두 번이나 속가의 모습들을 보게 하셨던 것이다.
"어떤 색깔이요?"
칠가게 주인은 재차 물으며 나를 멍청하게 올려다보았다. 나는 또 어느 색으로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밤색을 달라고 했다. 깡통 하나와 붓 하나를 들고 다시 산으로 올라와, 나무의자의 다리를 수선하고 페이퍼 질을 하고 칠을 하자, 노장이 슬그머니 다가와 내가 칠하는 걸 보고 입을 여셨다.
"새 것 좋아하는 것들, 정신차려야 돼. 헌 것 없이 새 것이 있는 줄 알아? 새 것이 다 새 것이 아닌 게야. 이 의잔 너 해라." "네?"
내가 고개를 들어 노사(늙을 노, 스승 사)를 올려다보자, 노사는 '언제나 의자 같은 스님이 되어야 해'하시는 거였다.
문득 나는 그 옛날 학창시절에 암송했던 조병화 시인의 시구절을 떠올리고, 멀어져 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보고 붓을 손에 든 채 합장을 했다.
의자(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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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을 죽였는가 - 이덕일
누가 왕을 죽였는가 - 이덕일
1장 제12대 인종
문정왕후를 다시 보겠구나
이처럼 문정왕후 섭정 기간은 옥사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문정왕후는 성리한 갓회 조선에서 보우라는 승려를 중용하고 불교를 중흥시키는 등 사대부들과는 정치적으로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첨예하게 대립했다. 문정왕후는 앙재역에 붙은 벽서의 내용처럼 '여왕' 노릇을 한 조선의 유일한 여인이었으나, 사망한 후 두고두고 조선 사대부들의 표적이 되었다. 훗날 숙조의 모후 명성왕후가 국정에 관여해 논란이 되었을 때 윤휴가 "문정왕후를 다시 보겠구나"라고 비난한 것은, 문정왕후에 대한 사대부들의 감정을 잘 표현한 것이었다. 문정왕후는 이렇듯 유림들에게는 극도의 저주를 받았으나 불자들에게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았다. 김영해는 <한국불교사>하에서 이렇게 썼다.
"성종,연산,중종때 불교는 다시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다가 명종이 즉위한 후 그 모후 문정왕후가 섭정을 하면서부터 다시 부흥의 기운을 보게 되었다. 문정왕후는 중흥불사의 대임을 맡을수 있는 고승을 물색하여 설악산 백담사의 보우를 맞아들었다. 이처럼 문정왕후가 보우와 같이 불교를 중흥시키려고 함에, 조금이라도 불승을 우대하는 기색이 보이기만 하면 들고일어나는 조정 대신들과 유생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이처럼 문정왕후가 사림파의 이념인 성리학이 아니라 불교를 중흥시키려 하자 사대부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게다가 그녀는 집권후 동생 윤원형으로 하여금 사림파를 탄압하게 했다. 당시의 시대적 과제는 세조의 집권이래 계속되어온 훈구파의 비정을 청산하는 것이었는데, 문정왕후의 섭정은 오히려 훈구파의 집권 연장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뜻 있는 식자들의 비판거리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문정왕후의 섭정 기간은 사림파들에게는 암흑의 나날 이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세월 동안 "인종이 독살당했다"는 은밀한 소문은 계속 횡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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