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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7호 - 2024.10.17. 목요일(음력 : 9.15.)
angelo@nownforever.co.kr / 風文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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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참좋은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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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해서 속이지 않을 수 없던 그런 사람을 우리는 미워한다. - 빅토르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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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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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리꼴레리
어린아이들이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대요’ 혹은 ‘누구는 오줌싸개래요’라고 또래 아이를 놀릴 때 ‘얼레리꼴레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얼레리꼴레리’는 무슨 뜻이고, 어디에서 유래한 말일까?
‘얼레리꼴레리’는 ‘알나리깔나리’의 변이형(變異形)으로 쓰이는 말인데, ‘얼레리꼴레리’ 대신 ‘알나리깔나리’가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다. ‘알나리깔나리’는 어리고 키가 작은 사람이 벼슬한 경우를 놀림조로 이르던 말인 ‘알나리’에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깔나리’를 덧붙여 만든 말이다. ‘알나리’는 접두사 ‘알-’과 명사 ‘나리’가 결합된 말인데, 접두사 ‘알-’은 ‘작은’의 뜻을 더한다. 그래서 ‘작은 바가지’를 ‘알바가지’라고 하고, ‘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을 ‘알요강’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알나리깔나리’와 같이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후렴처럼 다른 말을 덧붙여 쓰는 말들이 많이 있다.
미주알고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미주알’에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고주알’을 덧붙인 말이고 ‘휘뚜루마뚜루’는 ‘닥치는 대로 대충대충’이라는 뜻의 ‘휘뚜루’에 역시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마뚜루’를 덧붙인 말이다.
‘어중이떠중이’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쓸모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어중이’에 ‘떠중이’가 덧붙어 이루어진 말이고, ‘주저리주저리’ 역시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주저리’를 겹쳐 쓴 말이다. ‘주저리’는 볏짚을 엮어서 김칫독에 씌울 때 쓰는 물건인데, 볏짚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모습에서 유래해 ‘주저리주저리’가 ‘너저분하게 이것저것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의존명사의 띄어쓰기 (1)
‘것이 많다.’라고 하면 ‘것’이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먹을 것이 많다.’처럼 앞에 꾸며 주는 말과 함께 쓰면 비로소 ‘것’의 의미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반드시 꾸며 주는 말과 함께 쓰여야만 오롯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명사를 가리켜 ‘의존명사’라 한다. 의존명사는 말 그대로 의존적인 데다가 대개 한두 글자로 되어 있어 조사나 어미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결국 띄어쓰기에서도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게 된다. 조사나 어미는 붙여 써야 하지만 의존명사는 띄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름, 나위, 노릇, 등(等), 등등(等等), 따름, 따위, 때문, 무렵, 즈음, 터’ 등은 조사처럼 여겨서 붙여 쓰는 경우가 많은 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반드시 수식어가 있어야 하고, ‘으로, 과, 에’와 같은 조사가 붙을 수 있다. 모두 의존명사인 것이다. 따라서 꼭 띄어 써야 한다. (형은 형 나름으로 동생을 도와주려 했다/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앞잡이 노릇을 하다/ 울산, 구미, 창원 등과 같은 공업 도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상추, 호박, 고추 따위를 심다/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다섯 시 무렵부터 내리는 비/ 시장할 텐데(터인데) 어서 먹어’)
‘뿐, 대로, 만큼’ 등은 조사로도 쓰이고 의존명사로도 쓰이므로, 그 쓰이는 환경에 따라 띄어쓰기를 달리해야 한다. 명사 뒤에 쓰일 때는 조사로 보아 붙여 쓰고, 동사나 형용사 뒤에 쓰일 때는 의존명사로 보아 띄어 쓰면 대개 틀리지 않는다. (‘내 사랑은 너뿐이야/ 나는 너만 사랑할 뿐이야’, ‘법대로 해라/법에 정해진 대로 해라’, ‘하늘만큼 높은 사랑/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사랑’)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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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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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지도 -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날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든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나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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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靈(사령) - 김수영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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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새 - 이해인
땅에 어느 곳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수 없어
바다로 온 거야
너무 많은 것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예까지 온 거야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온 거야
아아, 어떻게 설명할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이 작은 가슴의 불길
물 위에 앉아
조용히 삭이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미역처럼 싱싱한 슬픔
파도에 씻으며 살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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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봄꽃들의 축제 - 이해인
6
단순히 재미로 숨은 그림을 찾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듯 삶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데는 더욱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겨울에 숨어 있는 봄. 여름에 숨어 있는 가을. 슬픔 속에 숨어 있는 기쁨. 농담 속에 숨어 있는 진담 그리고 또... 숨은 것을 볼 줄 알면 삶이 지루하지 않다.
7
사랑하는 이가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운하게 할 때는 말을 접어 두고 하늘의 별을 보라. 별들도 가끔은 서로 어긋나겠지. 서운하다고 즉시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별들도 안다.
8
배추잎 속에 숨은 배추벌레처럼 우린 저마다 보호색을 만들기에 능한지도 몰라. 이웃을 위해 만들어 가는 사랑의 보호색은 아름답고 때뜻해 보이지만 자신의 유익만을 위한 이기적인 보호색은 차디차고 섬칫하다. 가끔 그럴듯한 모습으로 교묘하게 보호색을 만들어 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내가 보기 싫고 흉해서 얼굴을 돌린다.
9
남을 향한 비난의 화살은 성급히 쏘아 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의 나를 향한 비난의 화살은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각오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되도록 보류할수록 좋고, 다른 이를 챙겨 주고 위해 주는 일은 미루지 않고 빨리 할수록 좋다. 진정 이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함부로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어떤 일을 좀더 깊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너무 지나치게 속단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단체 안에서 가끔은 `천사` 라고 소문난 사람보다 고약한 성격으로 악명 높다는 사람에게서 오히려 더 솔직함과 진지함을 발견할 수 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0
이 밤에 하느님도 들으실까. 신음하듯 계속되는 내 옆방 노수녀의 고단한 잠꼬대를 - `사랑하는 이를 여의고 깊은 슬픔에 잠긴 벗을 위로하고 싶어 밤새 써지지 않는 시를 생각하다가 더욱 늘어가는 나의 한숨소리를` - 창 밖엔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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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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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에서 - 이탄
바람 속에서
어머니의 음성을 듣는다.
바람 속에서
풀잎의 향기를 맏는다.
바람 속에서
옛 친구도 만나고
바람 속에서
슬픈 이야기도 만난다.
바람 속에서 만난
참 많은 것들 중에서
영 지워지지 않는 6월
1950년 6월의 따갑던 총 소리와
가슴 졸이던 대포 소리
그리고 목숨이 앓던 아픈 냄새
특히 6월의 바람 속에서
나는 낸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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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풍경 - 김철민
맑고 고운
코스모스
여린 손짓 살며시
오가며
길가 가득
꽃잔치 이뤄
들녘에 나와
스케치하는
어여쁜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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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외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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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失樂園) - 밀턴
인간이 태초에 하느님을 거역하고 금단의 나무 열매 맛보아
그 치명적인 맛 때문에 죽음과 온갖 재앙이 세상에 들어와
에덴을 잃었더니, 한층 위대한 한 분이
우리를 구원하여 낙원을 회복하게 되었나니,
노래하라 이것을, 천상의 뮤즈여. 오렙의
또는 시나이의 호젓한 산정(山頂)에서,
저 목자에게 영감(靈感) 주어 혼돈에서 태초에 천지가
어떻게 솟아났는가를 처음 선민(選民)에게
가르치게 하신 그대, 혹시 시온의 산과
신전(神殿) 가까이 흐르는 실로아의 시냇가
더욱 즐거우시거든, 게서 내 청하노니
나의 모험스런 노래를 도우시라.
아오니아 산 위로 가장 높이
산문에서나 시에서나 일찍이 시도되지 않은 것을
좇아 날아오르려는 내 노래를.
더욱이 그대, 아, 영(靈)이여, 어떤 성당보다도
바르고 깨끗한 마음을 좋아하시는 그대여,
나를 가르치시라, 그대 아시니. 그대는
맨 처음부터 계셨고, 힘센 날개 펼쳐
비둘기처럼 대심연(大深淵)을 품고 앉아
이를 잉태케 하셨어라. 내 속의 어둠을
빛내시고, 낮은 것을 높이고 떠받드시라.
이 크나큰 시제(詩題)가 뜻하는 높이까지
영원의 섭리를 내가 증명하여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길이 옳음을 밝힐 수 있도록,
말하시라 먼저, 하늘도, 지옥의 깊은 땅도
그대의 눈에 숨기는 것 없으니, 말하시라 먼저,
무슨 까닭에 우리 조상은 마음이 움직여 그 행복하고
하늘의 은총 깊은 자리에서 창조주를 버리고,
단 한 가지 금제(禁制)한다 해서 신의(神意)를 범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군주였을 것을.
처음에 그 악의 배반으로 꾄 것은 누군가?
지옥의 뱀이다. 그놈이 교만하여
그의 모든 반역 천사 무리들과 함께
하늘에서 쫓겨났을 때,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
인류의 어머니를 속인 것이다.
그는 그 천사들의 도움으로
반역하기만 하면, 동료 이상의 영광을 얻고,
지고(至高)하신 분과 동등해지리라.
믿고, 야망을 품고
하느님의 보좌와 주권에 대하여
불경스런 전쟁, 교만한 싸움을 하늘에서
헛되이 일으켰어라. 그러나 전능하신 하느님은
감히 당신께 싸움을 걸어 온
그를 불붙여 무서운 타락과 파멸을
가하여 청화천(淸火天)으로부터 바닥 없는
지옥으로 거꾸로 내던지셨다. 거기에서
금강(金剛)의 쇠사슬과 겁화(劫火) 속에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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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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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감성사전
과대광고
소비자는 왕이다 - 라는 식의 광고
조간신문
아침마다 담너머로 던져주는 우리들의 생활기록부다. 하루가 시작되는 문설주에서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우리들의 일상사다. 비바람에 펄럭거리는 세상도 보이고 눈사태에 휩쓸려 가는 세월도 보인다. 자유의 새순이 돋기도 하고 독재의 사슬이 번뜩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간신문이라고 해서 항상 아침에만 배달되지는 않는다. 산간벽지에서는 석간구문으로 둔갑해서 이틀쯤 늦게 배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정기구독자들은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산간벽지에서는 세월도 이틀쯤 쉬었다 가기 때문이다.
일회용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용품이다. 자연적인 용품과 인위적인 용품이 있다. 탄생도 일회용이고 죽음도 일회용이다. 처녀도 일회용이고 동정도 일회용이다. 일회용 종이컵도 있고 일회용 라이터도 있다. 일회용 주사기도 있고 일회용 반창고도 있다. 전자는 자연적인 용품이고 후자는 인위적인 용품이다. 그러나 물질이 인간을 우선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이 일회용 되고 만다.
주인공
작중인물 중에서 가장 목숨이 끈질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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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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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자유업의 문제점에 관하여
자유업이라 하면 도심에서는 무슨 화려한 직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다 큰 사내가 대낮부터 빈둥빈둥 놀고 있어도 괴상하다는 눈총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나처럼 도심을 떠나 - 실은 도심지의 집 값이 하도 비싸 밀려난 것이다 - 교외의 중소 도시를 전전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제법 신경이 많이 쓰이는 직종이다. 우선 첫째로 '자유업'이란 직업의 개념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싫은 것은 보너스 시즌 중의 은행이다. 뭐가 싫으니 어쩌니 해도, 그것처럼 싫은게 없다. 의자에 앉아 창구에서의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반드시 은행 직원이 곁으로 다가와 '보너스는 어떻게 하실 건지 정하셨습니까?'하고 묻는다. 그런 걸 정했을 턱이 없으니 '정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러시면 우선 이런 정기 구좌에 들어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시작해대기가 일쑤다. 그래서 '아, 저는 보너스를 안 탑니다'하고 말하면, 상대는 어김없이 '엣?'하며 공허한 눈으로 나를 본다. 비유적 언어를 사용하자면, 길가에서 그야말로 지금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듯 비에 썩어 문드러진 폐옥이라도 바라보는 듯한 눈길이다. 그 시점에서 '아, 예 실례했습니다'하고 물러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 정도는 물러나지 않는다. 내가 은행으로 가는 시간은 대개가 아침 아홉 시나 열시쯤의 비교적 업무가 한가한 시간대라, 상대편도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 다음은 거의가 '그럼 저 죄송하지만,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데요?'하고 묻는다. '자유업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은행 직원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목수이십니까?'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기야 조깅 팬츠에다 고무 슬리퍼를 신고 선글라스 차림으로 은행에 오는 쪽에도 좀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유업 -> 목수라는 극단적인 발상을 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그리고 당최 목수란 자유업인가? 그래서 할 수 없이 '음, 문필업인데요'라고 말하면, '아, 그러십니까. 토지를 분필하는 일을 하고 계시군요'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이해가 잘 안 간다. 과연 은행원의 발상으로서는 앞뒤가 착착 맞는 것 같지만, '분필업'이란 직종이 세상에 있답니까? 직업별 전화 번호부를 뒤져 조사해 보았지만, 그런 직업은 어디에도 없었다. '분비업'도 없고, '문궤업'도 없다. 문필업이라고 하면 필연적으로 '문필업'이다.(문필업이나 분비업, 문궤업은 일본어로 하면 동음이다.) 하지만 귀찮아서 '저술업입니다'하고 고쳐 말하면, 상대방도 그때쯤엔 대충 알아 먹는다. '나오키상(정식명칭은 나오키 산쥬고상. 아쿠다가와상이 류노스케상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아쿠다가와상이 순 문학에 수여되는 반면, 나오키상은 주로 대중 작가의 통속 소설에 수여된다.)이라도 받으시면 상금은 우리 은행에다 왕창 예금해 주시죠. 하하하'라며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신경의 소유자일까? 아마 친절하게도 격려해 주려는 것이리라고는 생각하지만 나로서는 누가 저금 따위 한답디까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그나마 양호한 편으로, 심하면 '저술업입니다'라고 해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아 그러십니까. 저술업입니까'하길래, 그럭저럭 이걸로 얘기가 통했나 보군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자 그럼 졸업을 하시고 보너스를 받는 달에는 꼭 저희 은행으로'라는 등의 말을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서른여섯 살이나 먹은 사내를 붙잡고서는 졸업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잖은가 하고 생각이야 하지만, 뭐 은행에는 은행 나름의 가치관이 있고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도 있겠으나, 난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보너스 시즌에는 가능한 한 은행 가까이에 접근하지 않도록 유념하고 있다. 신통한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같은 은행에 이, 삼 년이고 다니다 보면 그런 대로 얼굴을 기억해 주어, 보너스 시즌이 되어도 '저 사람은 별볼일 없으니까'하고 아무도 다가오지 않게 된다. 참고 견디면 복이 온다더니, 거듭 반복되는 세월이란 귀중한 것이다.
내가 작년까지 삼 년 동안이나 다니던 쿄와은행 기타 나라시노지점(1981년 부터 1984년에 이르는 치바현 나라시노 시절.)의 어떤 은행원 같은 경우는 내가 쓴 소설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써, 은행 내의 콩쿨에서 상을 받았다고도 한다. 한마디로 은행이라 해도 그 안에는 분명 다양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사 매니어니까, 이사를 할 때마다 각지의 은행에서 '저 죄송하지만 직업은?'하는 질문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들어야 한다. 정말 피곤하다. 교외에 있는 주택 도시는 정직하게 말해 샐러리맨의 소굴 같은 곳이다. 아침 아홉 시가 지나면 성인 남자의 모습은 집배원 아저씨나 채서 가게 아저씨 정도를 제외하면 전혀 볼 수가 없다. 뒤에는 아줌마들과 어린아이들밖에 안 남는다. 그런 데를 어슬렁어슬렁 한가하게 산책하며, 오락 센터에 들어가기도 하고, 냄비 들고 두부를 사러 가기도 하는 형편이니, 주위 사람들도 심상찮은 눈길로 보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 슈퍼마켓에 가 물건을 사면 계산대에서 바겐세일용 생리용품을 대형 박스로 한꺼번에 사들인 부인네들 사이에 끼여 '뭐야, 기분 나쁘게 대낮부터 이런 데 남자가 오다니'하고 눈총을 받는 게 고작이다. 자유업이란 것도 여러 가지로 괴로운 일이 많은 직업이다. 그래도 자유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역시 동경의 미나토구 주변 같은 도시 한복판에 사는 편이 무난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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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사회/문화/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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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로베르토 리돌피
마카아벨리 평전 - 제22장 결말 1/2
제23장 결말
육십 세 가량의 나이에, 머리는 기울어졌고 얼굴은 심적, 정신적 고뇌로 찌들린, 지치고 불행해 보이는 한 가엾은 남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라고 알려져 있는 피렌체 소재 채색 테라코타 흉상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니다. 지치고 고뇌에 찬 얼굴 아래로 예리하면서도 재기 어린 조소를 날리는 그 애수에 찬 표정은 바로 그의 특징 그대로이다. 만약 이 초상이 그의 것이라면, 어떠한 작가의 글도 마키아벨리의 비극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설사 그의 모습이 아니라 해도, 그것은 그의 생애와 나의 책이 이르른 바로 이 시점에서 내가 상상한 그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그의 서간집을 읽을 때, 특히 그가 마지막 순간에 쓴 편지들을 읽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마음속으로 이 고통스런 모습을, 삶의 활력과 드넓은 포부로 가득한 그를 보여주는 다른 모습과 함께 떠올리게 된다. 감옥에 갇혀서 팔다리는 고문으로 뒤틀린 채 그래도 농담과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인물. 바로 그러한 미소로 생애 내내 자신을 모른체한 군주들의 부당한 행동과 동료들의 무관시을 감내했던 인물. 그가 같자기 웃을을 잃고 스스로를 내팽겨쳤다. 심지어는 바르베라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이 없었다. 그의 (참회 권유)는 밀라노의 군 막사에서 돌아온 뒤인 바로 이 시기쯤에 씌어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그의 편지에서나 얼굴에서나 마찬가지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그 글 말미의 다음과 같은 페트라르카 풍 시구에 담긴 고원한 깨달음이 아닐지.
이제 분명히 알겠네.
세상을 즐겁게 하는 모든 것이 한바탕 잛은 꿈일 뿐이라는 것을.
한편, 당시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그 끔찍한 전쟁이었다. 적군은 계속 다가오고 있었고, 동맹군 역시 그러하였다. 총가독관에 의해 등을 떠밀린 그들은 이미 피렌체의 방어를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먼저 귀도 랑고니 백작의 군대가 왔고, 그 뒤를 이어 조반니 데 메디치 휘하에 있었던 보병들과 카이아초 백작의 보병 및 기병대가 차례로 도착하였다. 마지막으로 그 느려빠진 우르비노 공조차도 피렌체인들이 산 레오를 탈환한 데 자극받아 행국 속도를 높여 이동을 개시하였다. 18일 마키아벨리는 귀차르디니와 살루초 후작의 프랑스 군을 따라 브리시겔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베토리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의 어린 귀도가 17일에 포를리에서 보낸 짤막한 편지를 받았던 것도 바로 그곳에서였음이 틀림없다. 여기서 귀도는 아버지가 돌아올 때면 오비디우스의 (변신 Metamorphoseos) 첫 권을 암송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약속하면서, 공부에 진전이 있음을 자랑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편지들만으로도 (그중 많은 수가 kan런 흔적도 없이 유실되어 버린 상태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니콜로가 그 불안의 와중에 가족에게 이례적일 만큼 자주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귀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르나르도 앞으로 된 두 통의 편지를 언급하고 있는 외에도, 귀도의 17일자 편지 속에는 그가 마리에타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 대한 언급과 함께, 그것에 대한 답의 일부가 들어 있다. 군대가 가까이 다가오면 올수록, 커다란 시련의 시간도 가까워졌다. 애정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가족과 재산과 수확물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에 대한 오만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골 농장들과 무방비 상태의 마을들은 언제나 군대의 첫 번째 희생물이었고, 더군다나 알베르가초는 큰길 가에 있었다. 따라서 수확물을 일부라도 도시 안으로 옮겨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혹시 도시가 포위되더라도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정무위원회에서 무슨 포고령이라도 내리게 되면 그것을 세금 조로 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가재도구도 좋은 것들은 도시 안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모두 근처의 성벽 도시 산 카쉬아노에 갖다놓아야만 했다. 니콜로는 마치 자상한 가장처럼 편지를 통해 때로는 부탁하고 때로는 지시하기도 하면서, 시시콜콜 이러저러한 주의를 주었다. 가족들의 이수선하던 마음도 이제는 안정되었고, 그리하여 어린 귀도는 (우린 더 이상 란치 군에 대해 생각 않기로 했어요.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여기 게시기로 약속하셨으니까요)라고 썼다. 사실 그는 22일, 귀차르디니보다 하루 먼저 피렌체에 가 있었다.
그가 보기에, 도시의 분위기는 매우 뒤숭숭했고 폭동의 기미까지 보일 정도였다. 메디치 가에 대한 반감이 전반적으로 커져 가고 있었고, 친정부파들조차 불만을 표시하는 상태였다. 벼릴 없이 평온한 시기에도 정국을 겨우 지탱해 나갈 정도로 무능한 데다 운조차 나쁜 코르토나 추기경의 정부가, 전쟁 비용으로 멀쩡하게 눈 뜨고 껍질가지 벗겨질 판에 사람들로부터 용인될 턱이 없었다. 귀차르디니는 곧 이렇게 예측하였다. (설사 도시가 지켜진다 해도, 정부는 스스로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 이렇게 덧붙였다. (이 자만심에 들뜬 코르토나는, (...)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하려들면서도 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입니다.) 최근 클레멘테는 그를 보좌케 하려고 피렌체 대주교인 리돌피 추기경을 보낸 바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친분상으로나 인척 관계로나 현정부에 적대적인 유력 시민들과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그가 옴으로서 그 결과는 교황의 의도와는 오히려 상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치보 추기경까지 파견되어 왔지만, 그는 원래 외국인이라 아무런 권위도 시민들과의 교감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메디치 가로서는 상황이 더 악화된 셈이었다. 불길한 조짐이 처음으로 감지된 때는 마키아벨리가 돌아오고 4일 후였다. 도시 근교에 병사들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물론 아군이었지만, 적군보다 더 고약한 것이, 절도와 방화와 부녀자 강간을 일삼고 있었다. 피렌체 사람들은 그러한 수비군을 도시 안으로 들이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기백 있는 청년들은 군대를 요구하고 있었다. 코르토나는 그들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대면 어쩌나 두려워서 주저했지만, 리돌피와 다른 유력 시민들이 주장에 따라 마침내 4월 26일 군대의 시내 배치를 명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정무궁 광장에는 성급한 청년들로 득시글거렸고, 일부 병사들의 고압적인 자세 때문에 약간의 소요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코르토나, 리돌피, 치보 추기경들과 아직은 어린 이폴리토가 우르비노 공을 맞기 위해 말을 타고 나오자, 당장 메디치 가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다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즉각적으로 사방에서 청년들이 몰려들었고, 일순간 정무궁은 그들로 꽉 메워졌다. 원로 명사들과 메디치파 사람들까지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현정부이지 평시민들의 정부가 아니었다. 심지어는 곤팔로니에레로서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의 형인 뤼지까지도 문 앞으로 나와 일부 유력 인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안으로 들임으로써, 자신이 그들이 편이며 평시민들이 원하는 바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뜻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안에서는 이제 통제 불능 상태가 된 청년들이 정무위원들에게 위협과 구타를 가하며 메디치 가를 반역자로 선포하여 추방하고 소데리니 시대와 같이 평시민 정부로 복귀할 것과,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대중을 울릴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무궁에서 이러한 일들로 격론을 벌이고 있는 사이, 그 소식을 들은 추기경들은 황급히 피렌체로 방향을 돌려 관장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동맹국 소속 장군들과 많은 수의 병사들도 함께 들어왔다. 궁 안의 사람들은 돌로 자신들을 지키려 하고 있었고, 궁 밖의 사람들은 대포를 가지고 있었다. 만일 정무궁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한다면, 상당수의 피렌체 시민들이 살해당할 것이고, 나아가 도시가지도 약탈될 가능성이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나라의 안위를 염려한 리돌피 추기경과 메쎄르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는 페데리고 다 보촐로로 하여금 정무궁으로 들어가 협상해 보라고 간청하였다. 첫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총감독관과 함께 다시 들어가 관련자 전원의 사면을 약속하고 협상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 협정에는 추기경들과 우르비노 공이 서명하였다.
피렌체의 역사가들이 (금요일의 봉기 il tumulto del venerdi라고 부르는 이 잛은 혁명기 동안 마키아벨 리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가 이 마지막 시기에 총감독관 및 교황 군 진영에서 수행했던 역할과 친분이라는 이중적 측면에서 귀차르디니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은 알려져 있다. 귀차르디니는 추기경들에 앞서 그 날 아침 일찍 우리비노 공을 맞으러 갔었고, 마키아벨리 역시 같이 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럴 경우, 귀차르디니와 함께 피렌체로 되돌아왔을 그는 공격하는 쪽에 끼어 광장에 있었겠지만, 정작 마음은 정무궁 안의 방어하는 쪽에 가 있었을 법하다. 그 안에는 프란체스코 베토리와 바르톨로메오 카발칸티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있었고, 또한 자유 피렌체 공화국이 있었다.
한편, 부르봉은 아르노 계곡을 내려와 도시 가까이로 들어왔다. 하지만 피렌체가 성벽과 군대의 측면에서 아주 잘 방비된 상태여서, 과일의 핵처럼 깨뜨리기가 힘든 곳임을 알아차린 그는, 더 신속한 행군을 위해 경포병대까지도 뒤에 암겨놓고는, 몬테바르키에서 갑자기 로마 쪽 길로 방향을 꺾었다.
느림보 우리비노 공은 약간 뒤처져 그를 쫒아 나섰고, 교황 군은 그보다 하루 앞서 있었다.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는 그들과 합류하기 위해 5월 2일 피렌체를 떠났고, 마키아벨리는 그들을 위한 숙영지를 준비하기 위해 이미 길을 떠난 상태였다. 사실 그는 4월 27일 혹은 28일 필리네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2,3일 간격으로 동맹군을 앞서가고 있던 교황 군을 바짝 붙어 따라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누군가 기다릴 만한 사람을 구하러 가는 중인 병사들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질서와 속도를 유지하면서) 행군해 나갔다. 당시 부르봉의 군대는 훌륭한 장군도 규율도 없는 데다 포병까지도 뒤에 남겨놓은 오합지졸들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겨우 2,3일의 시간 동안 로마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오직 랑고니 백작만이 (오천의 보병과 일천의 경기병을 이끌고 급히 로마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부르봉은 필사적으로 말을 달려 5월 4일 저녁 그보다 먼저 로마에 닿았다. 그는 도시가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군대를 규합한 그는 6일 아침 보르고와 산토 스피리토의 성문들 사이를 공격하였다. 부르봉은 그 첫 공격에서 벤베누토 첼리니가 자신이 쏘았다고 주장하는 화승총 한 발을 맞고 죽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막 승리하려는 순간 스스로의 배반에 대한 대가를 치른 셈이 되었다. 이후 그 광란의 무리는 오직 강탈과 강간의 탐욕에 사로잡혀 두 시간동안 매우 거칠게 싸웠다. 그들은 공성용 포대도 없이 거의 맨손으로 취약한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결국엔 그곳에 모여 있던 소수의 수비군들을 제압하였다. 교황은 황급히 카스텔로 안으로 피신하였고, 그 사이 더 이상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카톨릭교도인 에스파냐 군과 루터파인 란치 군은 서로 앞을 다투어 그 도시를 짓밟아버렸다. 과거 황제들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지금은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그곳을 말이다. 당시 행해졌던 인명 살상과 성물 파괴, 잔인함과 모욕과 강탈과 강간 행위들을 여기서 새삼 되새기는 것은 오직 마키아벨리가 일찍이 예언했던바, 그 묵시록적 종말을 미완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일 분이다. 몇 달 사이에 두 번째로 (당신의 대리인 안에서 그리스도는 포로가 되었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불경함이 더욱 길고 더욱 잔인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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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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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6. 지혜의 샘
회개
베드로는 미련하였고 거기다 비겁하기까지 하였다. 석가의 수제자인 가섭에 비하여 그 영리함이나 용감함을 따라가지 못 할 사람이었지만 ‘바로 오늘 저녁 닭이 울기 전 네가 세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것이다‘는 예수의 말이 실현되는 순간 그에게 커다란 깨달음이 왔고, 밖으로 나가 가슴을 치면서 한 없이 울므로서 회개의 순간을 맞았다. 이렇게 비겁하고 아둔한 베드로였지만 그는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 총과 칼로서도 정복하지 못 할 로마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정복했다. 기독교의 경우 누구나 성령 안에서 거듭 태어나면 ‘옛날의 나’와 ‘거듭 태어난 나’는 다른 사람이다. 여기에 바로 그리스도교의 위대성이 있다고 본다. 필자의 영어 이름이 베드로이다. 물론 ‘깨어나기 전’의 아둔하고 비겁한 베드로를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한마디 말이면 알게 된다.(A word to the wise is enough.) 현명한 사람은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오직 사리에 맞게 행동하기 때문에 조그만 힌트만 주어도 상대방의 말의 뜻을 잘 알아듣는다. 그래서 세상일에 통달한 사람은 보는 바가 모두 한가지라고 하였다. 이 말은 라틴어인 ‘Verbum sat sapienti'에서 기원하였고 이를 줄여 ’Verb sep'이라고 한다. 누가 설명을 길게 하면 ‘Verb sap.'이라고 말하라. ’그 뜻을 알아 들었다.‘는 말이 된다.
7. 고전으로 되새기는 우리 인생관
지난 것에 미련을 두지 마라
맹자는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 돌아간다”고 하였다. 자신이 뿌린 씨에 따라 그 열매를 수확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행하여 얻어지는 것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걱정 근심 ‘고양이는 아홉개의 생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고양이는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는 서양의 속신이다. 구사일생이란 말과 비슷하다.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이스라엘과 극적으로 평화조약에 서명하여 팔레스타인 자치국을 세운 아라파트는‘아홉개의 생명을 가진 고양이’로 불려지고 있다. 반대 세력의 몇 번에 걸친 암살 기도와 비행기 사고 가운데에서도 불사조와 같이 거뜬히 살아났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에 비해 위험 상황을 잘 피하고 민첩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이렇게 아홉개의 생명을 가진 고양이도 걱정과 근심을 하면 죽는다고 한다. 걱정 근심은 그럴 정도로 무서운 독성을 갖고 있다.
일조지환
맹자는 ‘성인은 언제나 자기자신의 수양 부족을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을 어떻게 갈고 닦을 것인가 하는 평생 동안의 걱정은 있어도, 생활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에 따른 한 때의 작은 걱정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평생동안 갈고 닦아야 할 종신지우는 할지언정. 여간해서 죽지 않는 고양이도 죽일 수 있는 정도의 독성을 가진 일조지환. 즉, 생활 속의 작은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였다. ‘군자는 마음이 안정되어 너그럽고 소인은 항상 걱정 근심이 많아 마음이 초조하다’는 말이나 ‘군자는 근심도 하지 않고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말은 논어에 나오는 여러 가르침의 배경을 이루는 사고방식이다. 시성 이태백은 <추포가>에서 ‘흰 머리칼이 삼천 길이니 근심 때문에 얻은 것이다’라고 읊조렸다. 천재가 생각하는 근심의 깊이를 필자 같은 범인이 어찌 알 수 있으랴마는, 한국 40대 남성의 사망률이 세계 최고를 기록한다는 보도를 보면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일이 많아 일 때문에 과로로 죽는것이 아니고 걱정 때문에 죽는다‘고 볼 수 있다. 일조지환의 걱정과 근심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가 그 주범이다.‘원수’같은 스트레스가 아홉개의 생명을 가진 고양이도 죽이는데, 하나밖에 없고 우주보다 더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야 손바닥 뒤집는 것같이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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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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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Paradise Lost:1655-1667) 1/2
해설
밀턴이 59세에 발표한 서사시 "실낙원"은 영국 문학 사상 최대의 대작일 뿐 아니라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기독교 문학의 두 기둥을 이루는 중요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열 권이었으나 후에 열 두 권으로 개편되어 1667년에 출판되었다. 밀턴은 일찍부터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와 같은 대작을 쓰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밀턴은 이 "실낙원"에서 구약의 창세기에 기술된 인류 창조를 바탕으로 인류의 시조 아담과 이브의 타락을 중심사건으로 서술하면서 신과 인간과의 기본 관계를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통찰하였다. 장님이 된 밀턴이 구술로써 이 서사시를 완성한 것은 1655-1665년 경이라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 학문에 대하여 "조용한 시절에 너를 다시 만나겠다. 이 시끄러운 때가 아니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낙원"은 배경이 지상의 어느 한 지점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지옥에 이르는 광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취급하였다. 실낙원 의 주제는 높은 시상과 정열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적인 제재의 하나이며 오늘날까지 영원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빛과 어둠과의 싸움'과 '선과 악의 투쟁'이다. 그러나 곤란한 점은 이 작품에서 우리에게 흥미를 일으킬 두 인물이 순진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햄릿" 등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극적인 정열과 갈등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천진 난만함을 파괴시킨 사탄의 타락은 이 시에서 일관되고 있는 작품의 취지의 하나이다. 밀턴이 다루고 있는 문제는 자비롭고 전능한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무질서의 씨가 어떻게 하여 침투해 들어왔는가 하는 것이다.
"실낙원"은 그 광대한 구상과 높고도 먼 이상에 경탄할 정도이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그것을 예술적으로 처리한 그의 기교이다. 일찍이 아놀드(M. Arnold)는 그의 저서에서 "밀턴의 완전한 문체는 셰익스피어보다도 뛰어난 것이다. 밀턴은 그 사조와 운율에 있어서 영국이 낳은 최고의 예술가이다"라고 격찬하였다
작가 약전
밀턴은 1608년 런던에서 출생했으며 6형제 중 3남이었다. 르네상스 최후를 장식한 휴머니스트인 밀턴의 문학적 생애는 18세 때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수려한 용모와 섬세하고 고상한 취미 단정한 생활로 '학급의 귀부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재학 시절부터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1629년 22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최초의 걸작 "그리스도의 탄생의 아침"을 썼다. 1632년에 허튼에 이주하여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정독하고 수학과 음악을 즐기면서6년을 보냈다. 시작은 꾸준히 하고 있었다. "쾌활한 사람", "사색에 잠긴 사람"과"아케이즈"는 1633년에 집필되고 초기의 최고 걸작인 가면극 "코모스"가 1634년에 상연되는 등 계속해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638년에는 파리를 거쳐 이탈리아에 가게 되어 과학자 갈릴레이와 사귀었다. 나폴리에서 조국의 내란의 비보를 듣고 귀국을 결심했다. 그 때 그는 "동포가 고국에서 자유를 위하여 싸우고 있을 때 마음 편히 유람을 다니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밀턴은 1652년(46세)에 실명하였으나 1655년부터 "실락원"을 쓰기 시작하여 1665년 말에 완성했으며 1667년에 출판했다.
줄거리
태고 시대 해와 달이 아직 형성되기 이전의 일이다. 신의 나라와 악마의 나라 두 세계가 있었으며 그 사이에는 무수한 혼돈이 있을 뿐 지구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때였다. 우주의 대법칙에 따라 만물을 다스리는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성자(예수)를 후계자로 정하여 모든 신의 위에 있도록 하셨다. 천사들의 환희가 넘치는 하늘에서 재주와 용맹이 빛나는 사탄은 하느님의 총애를 받아 왔으며 천사장으로서 하느님의 다음가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보좌와 주권에 대한 반역을 일으켜 다른 재앙을 가져오는 신들을 모아 싸움을 일으켰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의 교만과 불경을 벌하여 바닥 없는 지옥으로 던지셨다. 그 때부터 천국에서는 그를 사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옥은 어두운 곳이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불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타락한 사탄은 휴식도 평화도 없는 불꽃의 바다에서 아홉 날 동안 고통을 받으며 혼수 속에 빠져 있다가 겨우 뜨고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일찍이 천국에서 하늘의 영광을 받으며 무상의 광휘에 싸여 찬란한 별들을 무색케 했던 내가 이렇게 파멸과 비참 속에 던져지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비록 그 무시무시한 힘에 패하였지만 굳은 결심과 자존심 모멸감은 변치 않았다. 저주와 복수심으로 우리의 대적에게 영원한 싸움을 걸 작정이다"
그리고 바알세불에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불구대천의 성부 앞에 굴복하여 자비를 비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무슨 일에나 선을 쫓아내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악을 행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선이라는 탈을 쓰고 악의 수단을 부리는 것이 우리들의 비운을 만회하는 길이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합해야 한다"고 말하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거대한 체구를 일으켜 두 손으로 불길을 헤치며 큰 날개를 펴서 육지에 올랐다.
"이게 나의 영토인가? 천국의 광명에 비하면 어둡기만 하구나!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자유다. 천국에서 봉사하는 것보다 지옥에서 지배자가 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 동료들을 망각의 불바다에서 헤매게 해서야 될 말인가?"
악마의 대왕 사탄은 악의 천사들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 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다
"전에는 천국의 아름다운 천사였던 너희들의 지금의 그 추태는 무엇인가? 깨어 일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한다"
이 부르짖음에 수많은 악의 천사들은 궐기하였다. 마치 애급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나올 때에 메뚜기 떼가 일어나 나일 강 유역을 어둡게 한 것처럼 악의 천사들은 화염을 어둡게 하며 지옥의 허공을 날고 있었다. 사탄은 그들을 총지휘하였다. 그들은 후세의 여러 민족에 의하여 숭배를 받은 악마들로 '몰록', '그모스','아스타롯토', '아스토레드', '림몬' 등이었다. 타락한 천사들이 모두 모였다. 천만의 기치를 휘날리며 무수한 갑옷과 방패 숲과 같은 칼 종소리 북소리에 섞인 마군의 함성은 지옥의 밑바닥을 잡아 찢는 듯하였다. 사탄은 정연한 군대를 검열한 후 오만에 차 있다가 자신 때문에 자신을 따르던 수백만의 추종자들도 곤경을 겪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만군 앞에서 세 번의 울음 소리를 내며 탄식하였다.
"너희들 천국의 영체를 이런 지옥에 떨어뜨렸으니 이제 평화는 없다. 누가 굴욕을 당하고 있겠느냐? 앞으로 전쟁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수도에 모여 대회의를 열기로 하였다. 전부터 건축의 신 맘몬이 인솔하는 군대가 지옥의 언덕에서 금속을 파내어 건축에 착수하니 금빛 찬란한 악마들의 전당이 대지 가운데에 교향악과 함께 솟았다. 운집한 악마들은 대회의의 개회를 선언하였다. 그들이 하늘의 천사로 있었던 시절의 권리와 영광을 공공연한 전쟁으로 얻을 것인지 비밀의 간계로써 얻을 것인지를 의논하는 것이었다. 홀을 쥔 왕 몰록은 거센소리로 단연 전쟁을 주장하였다. 여신과 같은 벨리알은 승산이 없으니 이 지옥을 천국과 같이 금은 보화로 꾸며 행복이 깃든 보금자리로 개척하자고 황금 만능설을 내세웠다. 모두가 당당한 웅변이었다. 모든 악마들을 꾸짖으며 사탄의 계획을 지지하였다. 위험한 원정으로 하늘을 침범해도 전능자를 이길 수 없으므로 보다 쉬운 계책을 찾자는 것이다. 그 계책을 세울 한 곳이 있는데 하늘에서의 오랜 예언대로라면 지금쯤 인간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존재들이 창조되었을 것이니 신의 은총을 받은 그들을 악의 자식들로 만들어 창조주 스스로가 그들을 멸망시키도록 하자는 의견이었다. 사탄은 자기가 최고라고 자처하면서 악마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하여 몸소 탐험자가 될 것을 자청하였다.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는 사탄의 희생적인 정신을 찬양하는 소리는 뇌성이 울리는 것 같았다. 사탄의 지옥의 큰 문으로 향하였다. 문은 3중의 철 문 3중의 금강석 문 등 아홉겹으로 굳게 닫혀 있었으며 불꽃에 둘러싸여 있었다. 문 앞에는 두 마리의 괴물이 앉아 있었다. 하나는 허리까지는 아름다운 여인인데 하반신은 뱀이었고 다른 하나는 형체를 구별할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시커먼 것이 지옥처럼 무섭게 서서 사탄이 가는 길을 막았으므로 사탄과 일대 격투가 벌어졌다. 지옥이 흔들리 만큼 요란하였다. 뱀의 모습을 한 여인은
"여보 당신이..."
하고 부르며 둘의 사이를 뚫고 들어가 싸움을 말리며 부자지간에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즉 이 마녀는 일찍이 사탄이 말리며 음모를 꾀할 때 등장했던 '죄'라고 부르는 미인이었으며 사탄과 불미스러운 사랑을 맺은 후 임신을 했는데 사탄이 하늘의 대전쟁에 패배하자 사탄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죄'의 배에서 나온 것이 무서운 창을 휘두르며 사탄과 싸우고 있는 '죽음'이며 모자는 함께 지옥의 문지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옥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던 '죄'는 남편인 사탄의 모험적 계획을 듣고 나서 그 계획이 성공하면 자기도 축복의 신세계에 들어가 죄의 환락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인류에게는 모든 비극의 씨가 된 그 열쇠로 다시는 닫을 길이 없는 지옥의 큰 문을 당겨 열었다. 지옥은 이 때 열려진 이래로 영원히 인간을 불러들일 수 있게 되었다. 외부에 전개된 암담한 혼돈의 심연은 밑도 끝도 없었고 거기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으며 암흑과 혼돈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냉, 열, 습, 건의 4용사가 혼돈의 심판에 의하여 서로 권위를 다투고 있었다. 모든 것은 우연히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다도 육지도 불도 아닌 일체를 포함한 대자연의 묘지로서 심연이며 지옥이었다. 사탄은 지옥의 가장자리에서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았다. 광막한 진공에 부딪혀 떨어지면서 방향도 모르고 헤매 다녔다.
사탄은 겨우 혼돈의 왕 카오스와 암흑의 왕 나이트의 원조를 얻어 희망의 피안에 이르는 지름길을 알게 되었다. 사탄이 개척한 그 발자취는 인간이 타락하기 쉬운 길이 되었다. '죄'와 '죽음'과 사탄이 지옥과 인간계와의 사이에 하나의 큰 다리를 놓은 것이다(이것은 하느님의 계획이었다)지옥의 마귀들은 낮이나 밤이나 다리 위를 방황하며 인간계의 선한 사람을 유혹하고 악을 조장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구원을 받은 선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의 죄를 지은 인간이 가게 되는 지옥의 길이 이 때에 열린 것이다. 사탄은 하늘의 문 가까이 갔다. 문에는 황금의 쇠사슬이 달려 있었으며 별처럼 빛나는 신세계의 공이 아래로 내려져 있었다. 이 때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지구에게 인간의 시조 아담과 이브의 두 사람이 행복에 넘쳐서 환락과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불노 불사의 열매만을 먹고 지내는 것을 보고 계셨다. 다른 한 편에는 이제 갓 창조된 세계를 향하여 사탄이 날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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