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8호 - 2023.11.14 화요일(음력 :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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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동에 대해 나에게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면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일. ― 표드르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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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마르고 닳도록 입고 다니던 청바지가 버스에 앉는데 찍 하고 찢어졌다. 천을 덧대어 오버로크해서 버텼으나, 오래 못 가 뒷무릎까지 찢어졌다. 아깝더라도 버릴 수밖에.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김수영)지만, 언젠가는 버려야 할 때가 온다. 한글 자음 이름도 그렇다. 한글 창제 후 백년쯤 지나 최세진은 어린이용 한자학습서 ‘훈몽자회’를 쓴다. ‘天’이란 한자에 ‘하늘 천’이라고 적어두면 자습하기 편하겠다 싶었다. 명민한 최세진은 이름만 배워도 그것이 첫소리와 끝소리에서 어떻게 발음이 되는지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리을, 비읍’처럼 ‘이으’의 앞뒤에 ㄹ, ㅂ을 붙이면 첫소리와 끝소리를 연습할 수 있겠다. 그래서 ‘ㄹ’ 이름을 梨乙(리을), ‘ㅂ’ 이름을 非邑(비읍)이라고 지었다. 기발하고 참신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였다. ‘ㄱ’도 기윽이라 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윽’이라는 한자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발음이 비슷한 役(역)을 써서 其役(기역)이라 했다. 이런 식으로 이름 붙인 게 ㄱ, ㄷ, ㅅ 3개다. ‘ㄷ’도 디읃으로 하고 싶지만, ‘읃’이란 한자가 있을 리 없지. 末(말)이란 한자에 동그라미를 치고 이건 뜻으로 읽으라고 해 놓았다. 옛 발음으로 ‘귿 말’이니, ‘디귿’ 되겠다. ‘ㅅ’도 時衣(시의)라 쓰고, 衣(의)에 동그라미를 쳤다. ‘옷 의’이니 시옷.
궁여지책이었다. 왜 ‘기역, 디귿, 시옷’인지 설명해 주는 선생도 드물었다. 외국인에게 가르칠 때도 이름은 슬쩍 넘어간다(그거 알려주다간 날 샌다). 남북이 함께 만드는 ‘겨레말큰사전’에는 ‘기윽, 디읃, 시읏’으로 통일했다. 어린이나 외국인에게 가르치기도 편하다. 바꿀 땐 바꿔야 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본정통(本町通)
광복하고 70년이지만 일제의 잔재가 지명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방송 뉴스를 며칠 전 접했다. 서울의 현재 지명인 ‘낙원동’과 ‘계동’이 그것으로, 본래 ‘탑동’과 ‘계생동’으로 불리던 것이 일제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1980년대 중반 내가 3년간 살았던 청주의 ‘본정통’도 그런 지명 가운데 하나이다.
‘본정통(本町通ㆍ혼마치도리)’은 일본 사람들이 일반적인 도로 명칭으로 널리 쓰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본정(本町)’은 ‘한 도시의 중심이 되는 거리’를, ‘통(通)’은 ‘길’을 뜻한다. 즉 ‘본정통’은 ‘도시 중심가의 길’을 가리킨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도시 중심가의 길’을 가리켜 ‘본정통’이라 한다. 오사카, 교토 등의 도시에서 ‘본정통’이라는 지명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서울, 부산, 청주, 군산 등의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를 가리켜 ‘본정통’이라 했다. 청주의 ‘본정통’은 본래 ‘성안길’이었는데, 일제에 의해 ‘본정통’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지역 언론과 시민 단체의 노력으로 본래의 지명인 ‘성안길’로 복원되었다.
그럼에도 나와 같은 4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성안길’보다는 ‘본정통’이 더 자연스럽다. 어릴 적부터 줄곧 ‘본정통’으로 불러 왔고, 그곳에서 보낸 젊은 시절의 추억이 그 이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지명 하나 바꾸어 쓰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제 잔재가 우리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광복절을 맞아 우리의 아픈 과거가 반복되지 않기를, 그로 인해 우리의 언어생활이 또다시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 본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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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이 길어요 - 한용운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로는 여름밤이 길어요.
책력의 내용이 그릇되었다 하였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벌레가 웁니다.
긴 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긴 밤은 근심 바다의 첫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아득한 사막이 되더니 필경 절벽의 성 너머로 가서
악마의 웃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 밤을 베어서 일천 토막을 내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로는 여름밤이 길어요.
∼∼∼∼∼∼∼∼∼∼∼∼∼∼∼∼∼∼∼∼∼∼∼∼∼∼∼∼∼∼∼∼∼∼
지는 해 - 정지용
우리 옵바 가신 곳은
해님 지는 서해 건너
멀리 멀리 가셨다네.
웬일인가 저 하늘이
피ㅅ빛 보담 무섭구나!
난리 났나. 불이 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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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감불원(殷鑑不遠)
殷:은나라 은. 鑑:거울 감. 不:아니 불. 遠:멀 원.
[원말]~재하후지세(在夏后之世). [동의어] 상감불원(商鑑不遠).
[유사어] 복차지계(覆車之戒), 복철(覆轍). [참조] 주지육림(酒池肉林), 맥수지탄(麥秀之嘆). [출전]《詩經》〈大雅篇〉
은(殷)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멸망의 선례는 먼데 있지 않다는 뜻으로, 남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말.
고대 중국 하(夏),은(殷),주(周)의 3왕조 중 은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 음주(淫主)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 온 달기라는 희대의 요녀 독부였다. 주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막대한 국고를 기울여 시설한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음주음락(飮酒淫樂)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는 가렴주구와, 충간자(忠諫者)를 처형하기 위한 포락지형을 일삼는 악왕(惡王)의 으뜸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그간 주왕의 포학을 간하다가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 구후(九侯)와 악후(鄂侯)는 처형당하고 서백[西伯:훗날 주문왕(周文王)이 됨]은 유폐되었다. 서백은 그때 ‘600여 년 전에 은왕조의 시조인 탕왕(湯王:주왕의 28대 선조)에게 주벌당한 하왕조의 걸왕(桀王:주왕과 대동 소이한 폭군음주)을 거울 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간하다가 화를 당했는데 그 간언(諫言)이《시경(詩經)》〈대아편(大雅篇)〉‘탕시(湯詩)’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 걸왕 때에 있네.
[殷鑑不遠 在夏侯之世(은감불원 재하후지세)]
삼공에 이어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미자(微子:주왕의 친형, 망명),기자(箕子:왕족, 망명),비간(比干:왕자, 처형당함) 등 세 충신도 간했으나 주색에 빠져 이성을 잃은 주왕은 걸왕의 비극적인 말로를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원성이 하늘에 닿은 백성과 제후들로부터 이반당한 주왕은 서백의 아들 발[發:주왕조의 시조 무왕(武王)]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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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7장 아르고 호 선원
[ 메데아 에블린 드 모르간 작. ]
메데이아
메데이아(Madea)는 콜키스와 왕 아이에테스(헬리오스의 아들)와 이듀이아(오케아노스의 딸로 아이에테스의 둘째부인) 사이의 딸이다. 메데이아나 이듀이아라는 말은 모두 '간교한' 또는 '빈틈없는'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메데이아는 숙모 키르케(오듀세이아 서사시에서 오듀세우스와 1년간 같이 산 요정)와 마찬가지로 마술에 능하고 헤카테를 숭배하였다. 아르고 호 선원의 대장 이아손과 사랑에 빠져 황금양모의 탈취에 협조하고 같이 콜키스를 탈출하였다. 아비 아이에테스는 아르고 호 선원을 토벌하기 위해 메데이아의 이복동생 압슈르토스를 지휘자로 추격함선을 보냈으나 메데이아가 황금모피를 돌려주겠다고 꾀어 동생을 죽이고 추격을 모면하였다. 그 후 아르고 호 와 그 일행은 그녀의 비상한 꾀에 도움을 받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무사히 그리스로 돌아왔다. 아르고 호 대원들과 같이 이올코스에 귀착한 다음 메데이아는 빈사상태에 빠진 이아손의 아비 아이손을 마술로 살려내고, 솥에 약초를 다려 아이손에게 주입하여 혹은 그 솥에 넣어 젊음을 되찾아 주었다.
메데이아는 왕위를 찬탈한 이아손의 숙부 펠리아스에게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제의하였는데, 우선 늙은 양으로 시범을 보인 후 펠리아스의 딸들에게 아비를 솥에 넣기 위해 마취시켜 토막을 내라고 하였다. 주저하던 딸들이 마침내 그녀의 말에 속아 아비를 죽였다. 이 범죄로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헤라여신의 버림을 받아 이올코스를 떠나 코린트로 향하였다. 그런데 메데이아와의 사이에 이미 많은 아들까지 둔 이아손은 코린트의 왕 크레온에게 잘 보여 공주 글라우케와 혼인을 하게 되어 메데이아에게 이혼을 요구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메데이아는 독을 바른 값진 의상을 신부에게 보냈고, 이것을 입은 신부는 그대로 타 죽고 말았다. 복수를 감행한 것이다. 왕 크레온이 급히 공주를 구하려 와서 딸의 옷을 잡았지만, 오히려 같이 불에 휘말려 죽게 되고, 메데이아는 조부 헬리오스의 날개달린 용이 끄는 이륜마차로 도망쳐 코린트를 빠져 나왔다. 메데이아는 아테네로 와서 후사가 없는 왕 아이게우스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장담하여 혼인을 하고 그 왕비가 되어 메도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수년이 지나 아테네에 나타난 테세우스를 보고 단번에 아이게우스의 아들임을 눈치챘다. 메데이아는 왕을 설득하여 테세우스를 마라톤 평야를 황폐케 하는 사나운 미노스의 수소와 겨루도록 하였다. 테세우스가 무난히 이 황소를 퇴치하자 이번에는 왕위를 찬탈할 위험인물이라고 왕에게 귀띔하여 연회석상에서 독배를 주어 죽이려 하였다. 이 때 테세우스의 대검을 본 아이게우스가 자기 아들임을 알아차리고 술잔을 쳐서 떨어뜨렸다. 자신의 음모가 들통나자 메데이아는 도망 혹은 추방되어 아들 메도스와 함께 콜키스로 귀향하기로 하고 먼저 아들을 콜키스로 보냈다. 그런데 메데이아의 아비 아이에테스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페르세이스(아이에테스의 이복형제)가 메도스를 감옥에 감금하고, 메도스가 자신을 코린트 크레온의 아들 히포테스라고 이름을 댔는데도 없애려 하였다. 그러자 이미 선왕의 시살로 민심이 뒤숭숭했던 콜키스는 한발이 닥쳐 농작물의 불황이 겹쳤다. 아르테미스의 여사제로 변장하고 콜키스로 온 메데이아는 페르세이스에게 희생공양 의례를 자신에게 맡기면 한발을 끝내게 할 수 있다고 진언하였다. 메데이아는 소년을 보기 전까지는 희생제물이 크레온의 아들이라 한 페르세이스의 말만 믿고 소년을 제물로 바치려 하였다. 크레온의 가족에 대한 원한이 가슴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성을 다하여 엄숙한 희생제의를 계획하고 의식을 진행하려던 차에 메데이아는 희생제물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 메도스라는 것을 알게되자 곧 아들에게 칼을 넘겨주었다. 메도스는 뒤돌아서 지체없이 페르세이스를 찔러 죽여 조부 아이에테스의 복수를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메도스는 주변나라를 정복하여 콜키스를 대국으로 만들고 어미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메디아라 하였다. 메데이아의 마지막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에우페모스
에우페모스(Euphemus)는 티튜오스의 딸 에우로파와 포세이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아르고 호 대원으로 모험에 참가하였다. 뛰어난 준족으로 발을 적시지 않고도 물 위를 걸었다고 한다. 고향은 펠로폰네소스 최남단 타이나룸 곶으로, 거기에는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전설로 남아 있는 것은 없으나 에우페모스는 아르고 호 탐험에서 민첩한 발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아르고 호가 충돌하는 바위섬에 접근했을 때는 그 곳을 빠져 나갈 때를 알기 위해 비둘기를 날렸고 자신도 가보고 돌아와 동료들에게 더 빨리 노를 젓도록 재촉하였다. 아마 배를 앞질러 뛰어갔거나 또는 바위와 배 사이를 왕래하며 배를 끌었을 가능성도 있다. 마치 네레이데스와 테티스가 남편 펠레우스를 태운 아르고 호가 떠 있는 바위에 도달했을 때 그랬듯이! 에우페모스는 북아프리카 큐레네 항구도시를 건설한 그리스인들의 선조신으로 존숭되는데 내려오는 전승은 다음과 같다 리비아 해안에서 큰 폭풍을 만난 아르고 호는 내륙 멀리까지 밀려 올라갔고 대원들은 12일 동안이나 배를 메고 끌며 겨우 트리토니스 호수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바다로 나가는 수로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데 그때 해신 트리톤이 큐레네의 젊은 왕 에우류퓰로스로 변신해서 나타나 바다로 나가는 수로를 알려주고 환영의 뜻으로 흙덩이를 주었다. 이것을 에우페모스가 받아서 보관하였는데 꿈에 흙덩이가 여아로 변하여 자기 젖을 빨게 하였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데리고 동침하였다.
자신의 행위에 가책을 느끼는 에우페모스에게 그녀는 자신이 해신 트리톤의 딸이며 아나페 섬(크레타 바다 풍랑 속에서 갑자기 솟아난 초승달 섬을 발견한 대원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근방의 바다에 집을 지어 주면 후에 바다에서 다시 나와 자신을 돌보아 준 것과 마찬가지로 에우페모스의 후손을 돌보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에우페모스가 이아손에게 이 꿈이야기를 해주니 이아손은 그 흙덩이를 바다에 던지면 섬이 생겨날 것이라고 해몽하였다. 몇 해가 지나자 이아손이 해몽한 바와 같이 그 흙덩이가 가라앉은 곳에서 칼리스테 섬이 생겨났다. 핀다로스에 의하면 아르고 호에서 바다에 던진 흙덩이는 칼리스테 해변으로 쓸려갔으며, 만일 에우페모스가 타이나룸의 하데스 나라 입구인 고향바다로 가져갔다면 그리스인은 아프리카 전역을 지배하였을 것이라고 윤식하였다. 이 전설의 원천에 관한 언급은 없느나 이야기를 전한 큐레네(칼리스테)인들의 구미에 맞추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섬을 커졌으며 에우페모스 자손들은 아르고 호가 기항하였던 렘노스 섬(에우페모스 처의 출생지)에서 번성하였다. 그 후 튜레니아인들에게 쫓겨나자 그들은 스파르타로 갔다. 에우페모스 사후 여러 대가 지나 후손 테라스는 칼리스테 섬으로 가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테라(현 산토리니)라고 이름붙였다. 더 후대에 와서 테라 섬의 그리스인은 에우페모스 후손인 바토스를 따라 리비아로 가서 새로운 도시 큐레네를 건설하였는데 이 곳은 바로 에우페모스가 흙덩이를 받은 고장이었다.
제 8장 인간의 탄생 및 기타
1. 인간의 탄생
오래 전부터 인간의 탄생을 둘러싸고는 예컨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어 냈다든가 혹은 용의 이빨에서 사람이 튀어 나왔다는 등의 여러 설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신화 내지 전설을 아예 전혀 부정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그레이브스의 인간시대를 참조하여 인간의 탄생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첫 인간은 아티카의 흙에서 대지여신의 최고 결실로 자연 발생한 알랄코메네우스로, 달의 여신보다도 먼저 아티카 보이오티아에 있는 코파이스(현 림니) 호반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우스를 보좌하고 아테나의 교육을 맏았으며, 제우스의 여성행각에 마음이 상한 헤라 여신의 하소연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즉 헤라에게 그녀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어 혼인예식을 올리라고 권하였던 것이다. 이에 헤라가 다이달로스에게 떡갈나무로 여신조각상을 만들게 하고 꽃다운 신부의상을 입혀 수레에 안치한 후 수행원을 딸려 엄숙히 거리를 행진하니 과연 제우스는 그 미모에 매료되어 다시 애정을 찾게 되었다. 그 후 매년 이에 연유한 신성 결혼의 상징으로 다이달로스 축제가 개최되었다. 알랄코메네우스는 신도시 알랄코메네스(아테네 시의 옛 이름)를 창건한 상징적 인물로서 보이오티아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 이 시대는 전적으로 부계 사회였으므로 여자는 여신일지라도 남자의 지시에 따라야 했고 남성 없이는 여신은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달의 여신은 더 시대가 내려온 제우스 후기에 생겨났다. 이 시대를 인간의 황금기라 하며 크로노스 차하에 노역이나 근심없이 상수리 열매, 야생과일, 나무에서 흘러 떨어지는 꿀을 먹고 산양의 젖을 마시며 살았다. 노쇠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부르며 늘 웃고 살았던 이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잠자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인간들은 사라지게 되지만 그들의 영혼과 심성은 음악을 통해 천부적 예능으로 전승되고 정의와 행운의 수호자들의 성품으로 계승되었다. 이 황금기는 농경시대 이전의 미개한 인간시대지만 양봉여신을 모시고 마치 꿀벌과 같이 협조하며 살아간 이상적인 심성을 지닌 사람들의 시대였다.
다음은 은시대 인간인데 이전의 인간과 같이 거룩하게 발행하였다. 빵을 주식으로 하고 전적으로 어미에 존속되어 100년 이상 살았지만 어미의 의사에 감히 거역하는 일이 없었다. 무지하고 말다툼을 벌이며 신을 공양할 줄 몰랐지만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 시대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킨 것은 제우스였다. 은시대에는 모계사회를 형성하였으며, 이 습관은 고대에 무서운 문신을 한 픽트족, 흑해 연안의 모이슈노이키안스, 또는 발레아레스, 그 외에 갈리키아와 시르테(현 시드라) 만에 정착한 부족에게 전래되었고 성행위를 경멸하였다. 농경을 시작한 족속이다. 세 번째는 청동기시대 인간이다. 이들은 물푸레나무에서 마치 익은 과일이 떨어지는 것처럼 탄생하여 청동으로 무장하였다. 빵과 생고기를 먹고 호전적이면서 거만하고 무자비한 인종으로, 흑사병이 돌아 모두 멸망하였다. 초기 그리스에 침입한 부족이며 물푸레나무 여신과 그 아들 포세이돈을 숭배한 청동기의 유목민이다. 네 번째 인간족도 청동으로 무장한 부족이만 더 고상하고 원만하며 신과 인간의 어미 사이에서 탄생한 굳세고 위엄 있는 신의 아들과 손자들이다. 테베가 포위 공격 당했을 때 이를 물리쳤고, 아르고나우테스로서 콜키스 나라로 원정을 갔으며, 또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활약하고 빛나는 성과를 올렸다. 이들 족속은 미케네 시대의 무사들이며 패왕으로 이름을 날린 영웅들이고, 지하세계에서는 축복받은 낙원에서 살았다.
다섯 번째는 철기시대 인종으로 위의 부족 중 가장 하잘 것 없는 후예들이다. 타락하고 잔인하며 불의를 저지르고 악의에 찬 호색한들로 효도를 모르는 믿을 수 없는 족속이었다. 기원전 12세기에 그리스에 침입한 도리스족이 그들로 철제무기로 미케네 문명을 덮쳐 파괴하였다. 그 후 유사시대로 들어와 인간들은 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더욱 잔혹해지고 살육을 자행하였으며 도시왕국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이 외에도 인간의 시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예컨대 청동기시대에 인간들이 사악해지자 제우스는 큰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킨 일이 있다. 이 때 오직 의로운 한 부부만이 살아남았는데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과 그 아내 퓨라(에피메데우스와 판도라의 딸)였다. 대홍수 때 프로메테우스는 데우칼리온에게 방주를 만들어 물 위에 띄우라고 일러주었다. 9일 밤낮으로 홍수가 계속되는 동안 이들 부부는 배에서 지내다가 테살리아의 산악지대에 닿았는데 물이 바진 후 지상으로 나가니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제우스의 사자 헤르메스를 만난 데우칼리온은 제우스에게 같이 살 사람들이 있기를 청원하였다. 제우스는 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어깨 너머로 모친의 뼈를 던지라고 지시하였다. 이는 불경한 행동이라 두려워하였으나, 모친의 뼈가 바로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의 뼈 즉 돌임을 깨닫고 돌을 집어던졌다. 이에 남편이 던진 곳에서는 남자가, 아내가 던진 곳에서는 여자가 나타났고 둘 사이에서 아들이 생기니 큰 아들을 헬렌이라 이름지었다. 이 헬렌의 후손이 번성하여 그리스인의 조상이 되었고, 현재 그리스는 이 헬렌이라는 이름에 연유하여 헬레네스라 칭하게 되었다. 그 외의 아들로 도로스, 크수토스, 및 아이올로스를 두었는데, 도로스는 도리스인, 아이올로스는 아이올리아인의 조상이되고, 크수토스의 아들들은 아카이오스 및 이온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
그리스의 인류 탄생에 관한 신화는 지역의 인종 또는 부족의 창조신화로 전해진다. 그 이전의 다른 인간 혹은 다른 종족의 존재도 상정하고는 있으나 그에 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아르고스인의 선조는 이나코스 강의 신과 물푸레나무의 요정 멜리아스의 아들 포로네오스이고, 메세니아인의 조상은 메세네오스, 테살리아의 피티오티스 나라 조상은 피티오스이다. 특기할 부족은 기원전 대략 1883년경에 하이모니아를 넘어와서 펠로폰네소스의 아르골리스에 처음 정주한 사람들로, 이들은 펠라스기아(왕은 펠라스고스)라 하며 점차 에피로스, 크레타, 이탈리아, 레스보스 등지로 이동하여 정착하였다. 그리스 선주민족을 총칭 펠라스기안스, 그리스 나라를 펠라스기아라고 부르기도 하나 주로 테살리아와 에피로스, 펠로폰네소스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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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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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행복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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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고 행복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것, 이것이 당신에게 필요한 일이다. 집착만큼 우리의 삶을 오랫동안 아프게 파고 들어가는 병은 없다. 집착은 우리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든다.
42
우리는 삶의 목적을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해야 한다. 고통과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행복이라는 환상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불행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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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욕망은 고뇌의 씨앗이다. 이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고뇌하지 않는 것아 더욱 중요하다. 이 세상 어디에도 당신이 꿈꾸는 낙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한 낙원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과 쾌락에 대한 온갖 헛된 욕망과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운명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불행의 촘촘한 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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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맛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행복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약 행복한 순간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우연일 뿐이다. 늙은 떡갈나무는 사나운 폭풍에 부러지기 쉽고 높은 곳에 있는 허술한 성채는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쉬우며 산봉우리에는 벼락이 떨어진다. 그러나 연약한 갈대는 부러지지 않으며 견고한 집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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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놀라운, 환상적인 행복을 언제인가는 반드시 손에 넣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 믿음을 깨어라. 행복은 그대의 주위에서 서성대고 있지만 그대의 손안에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대가 눈을 들어서 바라보는 세상 어느 곳이든지 불행의 씨앗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질병, 천재지변, 상처를 주는 한 마디의 말, 갈등과 증오 … . 이런 불행은 너무나 쉽게 찾아오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그대에게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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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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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천
꽃밭 - 천상병
손바닥 펴
꽃밭 아래 놓으니
꽃밭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밭 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여자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 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들이나 된 아내와
육십 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무능력자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오월 사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이
"시끄럽다, 잠좀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초자는 어쩌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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