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7호 - 2023.11.11 토요일(음력 : 09. 28)
|
|
글나눔 → 참좋은한줄
|
|
|
마치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것이 칭찬인 경우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의 생활 속에
편안하고 신뢰감을 주는 요소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조이스 브라더스(美 여류심리학자 1927년생)
|
|
글나눔 → 말글
|
|
|
피동형을 즐기라
연구위원·경희대 교수‘원고가 마무리되셨는지요?’
오늘도 어떤 분에게 원고를 독촉하면서 피동형 문장을 썼다. ‘마무리하셨나요?’라 하면 지나치게 채근하는 듯하여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나도 매번 독촉 문자를 받는데 열이면 열 ‘언제쯤 원고가 완성될까요?’ 식이다. ‘원고 완성했어요?’라 하면 속이 상할 듯. 비겁한 피동 풍년일세.
한국어 문장에 대한 가장 강력하면서도 근거 없는 신화가 ‘피동형을 피하라’라는 것.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얘기를 한번쯤 들었을 것이다. ‘능동형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피동형은 우리말을 오염시킨다’, ‘우리말은 피동형보다 능동형 문장이 자연스럽다’, ‘피동형은 영어식 또는 일본어식 표현의 영향이다’.
‘능동형이 자연스럽다’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철수가 유리창을 깼다’처럼 행위 주체가 주어 자리에 오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 점에서 능동형이 자연스럽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한국어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에서 틀렸다. 모든 언어가 능동형이 피동형보다 자연스럽다.
문제는 말글살이라는 게 복잡하고 섬세한 사람살이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점이다. 행위 주체를 명확히 밝히는 일이 무례해 보일 수도 있고 괜한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행위 주체를 모를 경우도 있다. 독자에게 익숙한 정보가 주체보다는 대상인 경우도 있고, 당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고 싶을 때도 있다. ‘해양생태계가 파괴되었다’고 하는 게 ‘일본 정부가 해양생태계를 파괴했다’보다 더 슬플 수 있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진실을 감추기 위해 피동형을 쓰는 것까지 감싸고 싶지는 않다. 행위의 주체와 책임을 똑똑히 밝혀야 할 땐 결기 있게 능동형을 써야 한다. 한국어는 능동형도 피동형도 자연스럽다. 피동형을 즐기라. -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귀 잡수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릴 만큼 예절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태도가 언어에도 반영돼 우리말에는 높임법이 매우 발달해 있다. 문장의 주체를 높이기 위해 ‘시’를 넣어 말하거나, 말을 듣는 상대에 따라 ‘했니?’, ‘했습니까?’처럼 어미를 다르게 선택해서 말한다. ‘진지, 생신, 잡수시다, 주무시다’처럼 윗사람에게만 쓰는 높임 어휘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높임말을 잘못 사용해서 곤란을 겪기도 한다. 흔히 틀리는 게 ‘귀 잡수시다’인데, 이게 잘못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에도 “우리 할아버지는 귀가 잡수셔서 말을 잘 못 알아들으세요”라고 말하는 청년을 보았다. ‘귀가 먹으셨다’라고 해야 할 것을 어른에게 ‘먹었다’고 하기가 어려워서 ‘귀가 잡수셨다’고 한 것이다.
‘귀먹다’의 ‘먹다’는 ‘밥을 먹다’의 ‘먹다’와는 다른 말이다. 이때의 ‘먹다’는 ‘막히다’의 뜻을 지닌 옛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귀나 코가 막혀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다’는 뜻이다. 이 ‘먹다’는 코가 막힌 경우에도 쓸 수 있는데, 감기에 걸려 코맹맹이 소리를 낼 때 ‘코 먹은 소리’라고 하는 게 그런 예이다. 갑자기 귀가 막힌 것처럼 소리가 잘 안 들리거나 체한 것같이 가슴이 답답할 때 쓰는 ‘먹먹하다’나, 앞뒤가 꽉 막혀 답답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먹통’ 이 모두 이 ‘먹다’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귀 잡수셨다’는 말은 동물의 귀를 음식으로 섭취했다는 뜻이 되므로 ‘귀먹다’의 높임말이 될 수 없다. 어른에 대해서 쓸 때에는 ‘귀가 먹으셨다’고 하면 된다. 그래도 어른께 ‘먹으셨다’고 말하기가 영 찜찜하다면 ‘귀가 어두우시다’나 ‘귀가 잘 안 들리신다’로 표현하면 될 것이다. -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
|
시나눔 → 우리시
|
|
|
요술 - 한용운
가을 홍수가 작은 시내의 쌓인 낙엽을 휩쓸어 가듯이,
당신은 나의 환락의 마음을 빼앗아 갔습니다.
나에게 남은 마음은 고통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가기 전에는 나의 고통의 마음을 빼앗아 간 까닭입니다.
만일 당신이 환락의 마음과 고통의 마음을 동시에 빼앗아 간다 하면,
나에게는 아무 마음도 없겠습니다.
나는 하늘의 별이 되어서 구름의 면사로 낯을 가리고 숨어 있겠습니다.
나는 바다의 진주가 되었다가, 당신의 구두에 단추가 되겠습니다.
당신이 만일 별과 진주를 따서 게다가 마음을 넣어
다시 당신의 님을 만든다면, 그때에는 환락의 마음을 넣어 주셔요.
부득이 고통의 마음을 넣어야 하겠거든,
당신의 고통을 빼어다가 넣어 주셔요
그리고 마음을 빼앗아 가는 요술은 나에게는 가르쳐 주지 마셔요.
그러면 지금의 이별이 사랑의 최후는 아닙니다.
∼∼∼∼∼∼∼∼∼∼∼∼∼∼∼∼∼∼∼∼∼∼∼∼∼∼∼∼∼∼∼∼∼∼
해바라기 씨 - 정지용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실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시약시 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 지르고 간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월하빙인(月下氷人)
月:달 월. 下:아래 하. 氷:얼음 빙. 人:사람 인.
[동의어] 월하로(月下老), 빙상인(氷上人), 빙인(氷人).
[유사어] 적승(赤繩). [출전]《續幽怪錄》,《晉書》〈索耽篇〉
월하로(月下老)와 빙상인(氷上人)이 합쳐진 것으로, 결혼 중매인을 일컫는 말.
① 당나라 2대 황제인 태종(太宗)때의 이야기이다. 위고(韋固)라는 젊은이가 여행 중에 송성(宋城:하남성 내)에 갔을 때 ‘달빛 아래 한 노인[月下老]’이 손에 빨간 끈을 든 채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위고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묻지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세상에 혼사에 관한 책인데, 여기 적혀 있는 남녀를 이 빨간 끈으로 한 번 매어 놓으면 어떤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네.”
“그럼, 지금 제 아내 감은 어디에 있습니까?”
“음, 이 송성에 있구먼, 성 북쪽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진(陳)이란 여인네 어린아이야.”
위고는 약간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뒤 상주(相州:하남성 내)에서 벼슬길에 나아간 위고는 그곳 태수(太守)의 딸과 결혼했다. 아내는 17세로 미인이었다. 어느 날 밤 위고가 아내에게 신상(身上)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실은 태수님의 양녀입니다. 친아버지는 송성에서 벼슬을 다니시다 돌아가셨지요. 그 때 저는 젖먹이였는데, 마음씨 착한 유모가 성 북쪽 거리에서 채소 장사를 하면서 저를 길러 주었답니다.”
② 진(晉)나라에 색탐(索耽)이라는 점쟁이가 있었다. 어느 날 영고책(令孤策)이라는 사람이 몽점(夢占)을 치러 왔다.
“꿈속에서 나는 얼음 위에 서서 얼음 밑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색탐은 이렇게 해몽했다.
“얼음 위는 곧 양(陽)이요, 얼음 밑은 음(陰)이니 양과 음이 이야기했다는 것은 ‘얼음 위에 선 사람[氷上人]’인 그대가 결혼 중매를 서게 될 조짐이오. 성사(成事)시기는 얼음이 녹는 봄철이고…‥.”
그 후 얼마 안 되어 과연 영고책은 태수의 부탁을 받고 그의 아들과 장(張)씨의 딸을 중매 서서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
|
글나눔 → 추천글
|
|
|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7장 아르고 호 선원
아르고호는 전설적인 배만드는 장인 아르고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선원들은 헤라여신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 배는 아테나 여신이 설계하고 제작되었고 이 배의 이물은 도도나 숲의 성스러운 목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아손과 그의 일행이 성공적으로 항해를 마친 이후에 이 아르고호는 코린토스 지협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헌정되었다고 한다. 이 배의 형태에 대하여는 전통적인 그리스 전함으로 갤리선으로 추측하며 이 배는 그리스 최초의 배라는 설과, 오십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선박으로는 최초라는 설이 있다. - wiki
1. 아폴로니오스 로디우스
아폴로니오스 로디우스(Apollonius Rhodius : 기원전 295~215년경)는 헬레니즘기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시인이며 후에는 로도스에 가서 살았기 때문에 아폴로니오스 로디우스라 하였다. 젊을 때 칼리마코스와 파나이티우스에 사사하였고 장년이 되어서는 왕자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왕자가 왕위에 오른 후에는 이름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 세 번째 높은 사서관 직위에, 아레토스테네스(당대의 으뜸가는 학자) 후임으로 올랐다. 그를 달갑지 않게 여긴 스승 칼리마코스가 감정적인 시문을 써서 그를 따오기 같다고 비꼬았는데, 따오기는 딴 사람이 먹다 남긴 썩은 고기를 먹는 날짐승을 말한다. 또한 아폴로니오스가 대표적인 서사시 '아르고나우티카'를 발표하자 칼리마코스는 크게 힐난하며 분량만 많은 엉터리 시문이라고 비난하였다. 두 사람의 이 격렬한 갈등은 칼리마코스의 승리로 끝난 것 같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아폴로니오스는 로도스로 은퇴하였다. 그러나 이 서사시는 옛적에는 물론이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이전 단 하나의 서사시로 찬양받고 있으며 서구 중세의 문집에도 드물게 남아 있는 헬레니즘 작품이다. '아르고나우티카'는 네 권으로 엮은 긴 서사시로 황금양모를 찾아 탐험에 나선 해적 성향의 원정대 아르고 호 선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프로폰티스해와 흑해를 넘어 콜키스 나라에 가서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황금양모를 약탈하고 다누베, 포 및 로네 강과 지중해, 북아프리카를 거쳐 테살리아의 이올코스로 귀한한다는 것이 대략의 줄거리다. 청중들도 토막토막의 이야기는 이야기꾼으로부터 자주 들었기 때문에 이야기의 시작과 끝맺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사랑장면도 아폴로니오스 이전에 아이스큘로스, 소포클레스 및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시에 주요 소재로 빈번히 상연되었다. 이 중에서 대본으로는 에우리피데스 시만 현존한다. 아폴로니오스의 시문 및 오비디우스의 '헤로이데스'나 '변신 이야기' 에서는 일층 낭만적으로 각색되었다. 로마의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아이네아스와 디도의 연대담은 아폴로니오스의 메데이아에 큰 폭으로 의존한 소재이다. 아폴로니오스보다 훨씬 오랜 옛날부터 '아르고나우티카'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다른 구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으며 특히 끝맺음 이야기는 자주 등장하는 시문의 좋은 소재였다. 호메로스의 '오듀세이아'에도 이아손과 아르고 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가 낭독회에서 관중의 폭풍적 갈채를 받고 왕립도서관의 고위직에 제수된 것이 칼리마코스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 같고, 이는 결국 아폴로니오스로 하여금 로도스로 추방 혹은 자의망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은거지에서 작품의 퇴고를 거듭하며 생애를 보냈으나 이것저것 이야기의 군더더기만 보태져 더 좋아지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2. 아르고나오테스
아르고 호의 선원이라는 의미의 아르고나우테스(Argonauts)의 이야기는 트로이가 함락되기 대략 80년 전에 있었던 일로, 모험을 좋아하고 패기에 넘친 젊은이들의 해적 성향을 띤 원정대의 이야기이다. 테살리아 왕 아타마스는 왕비에게 싫증이 나자, 후처 이노를 얻었다. 이노는 테베의 이름난 왕 카드모스의 딸로 그녀를 제외한 자매 세 사람은 흠잡을 데 없는 삶을 보냈다. 그런데 이노가 후처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본부인 네펠레에게 아들과 딸이 있었기 때문에 계모 이노의 학대를 염려하였는데 과연 그 걱정이 맞아 떨어졌다. 이노는 네펠레에게서 태어난 왕자 프릭소스를 없애기로 마음먹고 농부에게 나누어 줄 씨앗을 살짝 볶아 놓았다. 이듬해 파종을 하니 싹이 나지 않고 수확도 없었다. 이에 왕이 사람을 보내 이 참사에 대한 신탁을 받아오게 하였는데 이노에게 매수된 사신은 왕자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허위신탁을 받아왔다. 기아의 위협에 마주친 군중은 왕자를 희생공양하라고 아우성쳤다. 마침내 왕자가 제단에 섰는데 이 때 갑자기 황금털을 가진 큰 양이 나타나 왕자 프릭소스의 여동생 헬라를 태우고 달아나 버렸다. 이 양은 어미 네펠레의 간절한 기원으로 헤르메스가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헬라는 양을 타고 유럽-아시아 간의 해협을 지나다가 그만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고, 이후 이 바다를 헬라의 해협, 즉 헤레스폰트라 부르게 되었다. 결국 왕자 프릭소스 혼자만 흑해를 넘어 콜키스 나라에 도착하였다. 콜키스 나라 사람들은 성깔이 매우 사나웠으나, 왕인 아이에테스는 프릭소스를 후대하고 성인이 되자 자기 딸 칼키오페와 결혼시켰다. 그를 태우고 온 양은 잡아 제우스에게 바치고 황금양모는 왕 아이에테스에게 주니 왕은 이것을 아레스 신전의 나무에 걸어두고 뱀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프릭소스에게는 이올코스의 왕인 아이손이라는 삼촌이 하나 있었는데, 그만 이복동생인 펠리아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펠리아스는 살모네우스의 딸 튜로가 낳은 쌍둥이 아들 중 한 명이다. 튜로는 한밤중에 변장을 하고 나타난 포세이돈을 연인 에니페오스로 잘못 알고 관계하여 넬레우스와 펠리아스라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불륜을 감추기 위해 튜로는 갓난 아이를 산에다 내다 버렸는데, 마침 지나가던 망아지에게 펠리아스가 발로 차이는 바람에 얼굴에 멍이 들어 회색반점으로 남게 되었다. '회색'이라는 뜻의 펠리아스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어쨌든 산에 버려진 이 쌍둥이는 얼마 후 말을 몰던 목동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구하였다. 장성한 펠리아스는 수많은 왕족을 죽인 후 스스로 왕권을 장악하고 아이손까지 없애고자 하였으나 모친의 만류로 감옥에 가두었다.
당시 아이손에게는 왕국의 정통을 이어받을 어린 왕자 이아손이 있었다. 왕비 알키메데는 어린 아들 이아손을 멀리 켄타우로스 나라의 케이론에게로 도피시켜 키우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 늠름한 젊은이가 된 이아손은 용감하게 펠리아스를 찾아 떠났는데 마침 에우에노스(혹은 에니페오스)강의 범람으로 여행이 지체되었다. 이아손은 여기에서 한 노파가 강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다가 급류 때문에 한쪽 신을 잃게 되는데 노파는 바로 헤라 여신이었다. 참주자 펠리아스는 일찍이 친척의 손에 죽을 것이며 특히 한쪽 발에만 신발을 신은 사람을 각별히 주의하라는 신탁을 받은 바 있었다. 마침 한 나그네가 나타났는데 한쪽만 신을 신고, 다른 쪽은 맨발인 채였다. 그러나 그 밖에는 나무랄 데가 없는 젊은이였다. 거침없이 시내로 들어선 이아손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들인 펠리아스만은 한쪽만 신을 신고 있는 것을 보며 겁을 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나그네에게 고향이 어디이며, 왜 왔느냐고 물었다. 이아손은 집안의 영예를 되찾고 제우스 신이 부친에게 맡긴 이 나라의 통치를 바로잡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당신의 조카이며, 무력이 아닌 정의의 법으로 통치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그는 펠리아스에게 재산과 가축은 모두 소유해도 상관없고 그저 통치권과 왕관만 내 놓으면 아귀다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펠리아스는 꾀를 내어 고인이 된 프릭소스가 황금양모를 찾아와 나라의 상징으로 삼으라 하였으며 또한 신탁도 있고 하니 한참 젊은 그대가 이 일을 완수하면 왕국을 곧 넘기겠다는 조건을 내놓았다. 그 탐색길에 오른 사람은 아무도 살아온 예가 없음을 알고 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이아손은 곧 승낙하고 차비를 서둘렀다. 이 소식을 듣고 그리스의 명문 집안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니 장사 헤라클레스, 악장 오르페우스, 예언자 몹소스, 에키온, 텔라몬과 펠레우스, 휼라스, 나우플리오스, 폴룩스와 카스토르, 의사 아스클레피오스, 그 외 남장 처녀 아탈란테 등을 합쳐 50명이나 되었다. 헤라 여신은 이아손을 충동질하고 후원하였다. 이아손은 황금잔에 포도주를 따라 제우스 신의 이름으로 원정을 맹서하고, 바다에 헌주하고 죽음도 불사한 모험을 다짐하며 아르고 호로 대망의 모험길에 올랐다.
출항 후 처음으로 닻을 내린 곳은 렘노스 섬으로 여자만 사는 기이한 나라인데 사유인즉 아프로디테 숭배를 태만히 한 죄로 몸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하자 남자들이 그 곳 여자들을 기피하고 트라키아 노예여인들과 사랑에 빠지니 이에 격분한 여자들이 남자를 모조리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명 늙은 왕만은 우두머리로서 이 곳의 통치자인 공주 흄시퓰레의 도움으로 큰 궤에 들어가 바다에 띄워 보내져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여성들은 남성이 아쉬웠던 터라 아르고 호 대원들을 환대하였으며 출범할 때는 식량, 포도주와 의복까지 공급해 주었다. 다시 출범한 아르고 호는 사모트라케에서 오르페우스 비의를 지내고 헬레스폰트를 지나 한 섬에 닿아 그곳 왕 큐지코스에게 환대를 받았다. 그런데 이 섬을 떠난 후 바람이 강해지고 방향이 바뀌어서 다시 그 나라의 돌리오네스 지역으로 돌아와 잠시 대피하였다. 바로 그 날 밤 큐지코스 왕은 괴선 침입의 급보를 받고 대피해 있던 아르고 호 대원을 공격하였다가 원정대원에게 전멸당하고 왕 또한 살해되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살육으로 은혜를 피로 갚은 셈이 되었다. 이아손 일행은 크게 슬퍼하며 장례를 치르느라고 12일을 보냈다. 당시 큐지코스의 젊은 왕비 클레테는 남편의 죽음을 너무나 비통해한 나머지 목을 매었다. 이에 요정들이 애통해하고 슬퍼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니 마침내 이것이 샘으로 솟구쳤다. 사람들은 이 샘을 클레테 샘이라고 불렀다.
한편 몹소스는 물총새의 징조를 보고 제우스의 모친 레아 신에게 공양할 것을 권하고 일행은 큐벨레 혹은 레아 신의 영산이 딘듀모스에 제사를 지냈다. 이 때 산의 유일한 샘에서 맑은 물이 뿜어나오는 징험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를 이아손 샘이라고 불렀다. 이후 순풍이 불자 출범을 하였는데, 얼마 후 일행 중에서 헤라클레스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사정은 이러하였다. 같은 일행 중에 휼라스라는 젊은이가 샘에 물을 뜨러갔다가 샘물이 흐르는 못에서 그에게 반한 샘의 요정에 목이 감겨 물 속으로 끌려가 버렸다. 마침 부러진 노를 새로 만들기 위하여 참나무를 고르러 숲으로 들어간 헤라클레스는 영문도 모른 채 이 젊은이의 이름을 부르며 숲속 깊이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출범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일행은 헤라클레스가 빠진 채 다음 섬으로 갔다. 이 섬에는 괴력을 갖고 악취를 남겨 놓는 하르피아이라는 날짐승과 한 노인이 외롭게 살고 있었다. 이 노인은 아폴론에게서 예언술을 전수받은 노인인데, 신들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한다고 소경으로 만들어 이 곳으로 유배당한 것이었다. 하르피아이는 바로 '제우스의 사냥개'라 불리며, 음식물마다 와락 덤벼들어 먹어 치우고는 악취만을 남겼으므로 이 곳에는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노인을 발견한 일행은 가죽만 남은 가엾은 노인을 위하여 하르피아이를 퇴치하려 하였으나 이리스가 내려와 신의 사냥개를 죽이지 말라 하므로 하르피아이를 혼만 내주고 멀리 쫓아버렸다. 노인은 젊은 장사들과 같이 만찬을 들면서 원정대에게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피하는 지혜를 알려주었다. 즉 슘플레그라데스(충돌하는 섬)는 물에 떠 있어 서로 부딪치게 되어 있으니 비둘기가 바위사이로 날아가는 시각을 측정해서 그 시간 안에 재빨리 빠져 나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노인과 헤어져 떠 있는 바위에 다다랐을 때 일행은 비둘기를 바위 사이로 날아가게 하였다. 섬이 무서운 힘으로 움직여서 부딪쳤으나 비둘기는 꼬리 깃털만 걸렸을 뿐 무사히 빠져 나갔다. 이 요령으로 힘껏 노를 저어 빠져 나오니 배의 뒷장식만 떨어져 나갔을 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 후 이 섬은 아테나 여신의 힘으로 뿌리를 내려 고정되고 다시는 뱃사람을 괴롭히지 않았다.
항해는 계속되었다. 약자를 못살게 구는 아뮤코스라는 왕을 죽이고, 마리안듀니 섬에 가니 그간 아뮤코스에게 괴롭힘을 당한 왕 류코스가 크게 환대를 해 주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한 대원이 수퇘지에게 죽임을 당하고, 또한 가장 우수한 키잡이 티퓨스가 병사하였다. 다시 길을 떠난 일행은 아레스 섬에 닿아 전쟁의 신인 아레스의 새를 쫓고 상륙하였다. 이 때 막 지나간 태풍에 난파당한 4명을 구해 식량과 의복을 주고 배에 동승시켰다. 이 일행은 바로 프릭소스의 아들이자 콜키스 왕의 외손자들이었다. 근처에는 여전사의 나라 아마존족이 살고 있었는데 아레스신을 닮아 매우 호전적이라 일전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있었느나 풍향이 좋아 충돌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또한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찍히며 매여 있는 카우카소스 산정이 멀리 바라다 보였으나 별 도리가 없어 그냥 지나치고 마침내 황금양모의 나라 콜키스에 도착하였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용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올림포스의 헤라 여신이 아프로디테에게 이들 일행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다. 사랑의 여신은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은 헤라의 청에 놀랐지만 응낙하여 에로스를 시켜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가 사랑에 빠지게 하였다. 마술사라는 뜻을 가진 메데이아는 기막힌 요술을 부릴 줄 알아 선원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행은 왕궁으로 들어가 환대를 받았다. 호기심으로 문에서 엿보던 메데이아가 대장 이이손을 쳐다보는 순간 에로스는 그녀의 가슴 깊이 사랑의 금화살을 쏘았고 이에 메데이아는 달콤한 사랑의 고통으로 안절부절 못하였다. 만찬이 끝날 때, 왕 아이에테스는 그들의 일행이 누구이며 이 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아손은 자기들은 신의 아들 또는 손자로 그리스에서 출범하였으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황금양모를 찾아가려고 한다고 대답하였다. 이말을 듣고 분노에 찬 왕은 이들을 국외로 내쫓아 버릴까 하다가 혼내주기로 작정하고 젊은이들에게, 적의는 없으니 용감성이 입증되면 황금양모를 양도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왕은 그들에게 불을 뿜는 2마리의 놋쇠발 황소에 쟁기를 매어 밭을 갈고 카드모스 왕이 퇴치한 용의 이빨을 뿌려 주는 일을 하도록 제의하였다. 이 이빨은 뿌리면 거기에서 무사들이 솟아나와 뿌린 자에게 무기를 들고 돌진하는 신기한 이빨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이아손은 그 조건을 승낙하였다.
온밤을 늠름하고 우아한 이아손에게 마음을 빼앗겨 조이던 메데이아는 아비의 의도와 궁지에 물린 이아손을 도울 방도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배로 돌아간 일행이 오랫동안 회의를 계속하는데, 이 때 전에 폭풍우에서 구해준 왕의 외손자가 나타나 메데이아의 마술을 귀띔해 주고 메데이아가 마음만 먹으면 이아손을 승리하도록 해 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결국 다른 도리가 없었던 차라 그 방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메데이아는 사련으로 부친을 배반하고 이방인을 도와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휩싸여 죽음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전에 없이 생의 환희에 매혹을 느낀 메데이아는 자신의 능력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기로 하였다. 마침내 메데이아는 조카를 통하여 이아손을 숲 속에서 만나 서로 사랑에 빠져 아무말도 나누지 못했다. 한참 있다가 메데이아는 몸에 바르면 하룻동안 절대 패하지 않는 신통력을 가진 고약을 이아손에게 건네주고 이아손은 그녀와 결혼을 굳게 약속하였다.
날이 밝자 숲을 낀 산허리는 왕과 구경차 모여든 군중들로 가득하였다. 놋쇠발의 황소가 콧구멍으로 불을 뿜으며 달려오자 일행은 경악하였다. 그러나 이아손은 두려움 없이 두 마리 황소 앞을 가로막고 목을 어루만지다 멍에를 매어 쟁기를 끌도록 하니 모여든 군중은 하나같이 그 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다음으로 용의 이빨을 밭고랑에 뿌리고 흙을 덮자 거기에서 무기를 든 무사들이 솟아나와 이아손에게 덤벼들었다. 이 때 메데이아가 일러준 대로 큰 돌을 무리 속에 던지자 무사들은 자기들끼리 창을 휘두르며 싸우니 밭고랑을 피바다로 만들며 모두 죽어 버렸다. 마침내 이아손이 승리를 거두었으나 왕 아이에테스는 약속한 황금양모를 건네주지 않았다. 이 양모는 아레스 신전이 있는 숲에 걸어 놓고, 거대한 뱀이 지키고 있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함께 숲으로 가서 마법의 약으로 공룡같은 이 뱀을 잠재우고 황금양모를 걷어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배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전력으로 노를 저어 바다로 빠져 나갔다. 뒤늦게 이를 안 왕이 왕자 압슈르토스(메데이아의 이복동생)에게 추격을 명하니 일행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되나 다시 메데이아의 계략으로 양모를 돌려준다고 속인 후 왕자를 죽여버렸다. 왕자가 죽자 추격군은 흩어지고 일행은 무사히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다.
괴물 세이렌의 유혹을 물리치고, 험악한 스큘라족과 무서운 카퓨브디스 소용돌이도 무사히 통과한 일행은 이오니아해를 지나 드레파네(코르푸) 섬에 닿았다. 이 섬에서 왕 알키누스의 환대를 받고 있는데, 콜키스 군이 밀려와서 메데이아를 내놓지 않으면 섬을 파멸시키겠다고 위협하였다. 이 섬의 왕은 평화를 바랐고 왕비 아레테 또한 메데이아가 이아손의 배우자가 아니면 돌려보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왕비는 몰래 이아손을 만나 빨리 결혼을 하도록 일러주어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잔치는 이올코스에서 하기로 하였다. 콜키스인은 메데이아가 이아손의 처임을 인정하고 이해를 하였으나 이제는 자기네도 이 나라에 남겠다고 말하였다. 메데이아 없이 귀국하면 처형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원만히 해결된 후 알키누스 왕과 작별을 고하고 방향을 크레타로 잡아 항해를 하는데 갑자기 폭풍이 불어닥쳐 일행은 리비아 해변의 거대한 모래구릉 슈르테스까지 떠밀려 오게 되었다. 대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무거운 배를 어깨에 메고 트리토니스 호로 가서 배를 호수에 띄우고 바다로 향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모연하여 수로를 찾지 못해 난감해 하던 차에 마침 호수의 신 트리톤의 은총으로 수로를 찾아 바다로 나오는 데 성공하였다.
일행은 다시 항해를 계속하여 크레타에 상륙할 차비를 하였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이 곳에 옛 청동족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탈로스가 살고 있으며 이 괴물은 한 쪽 발목 이외에는 완전히 청동으로 되어 있다고 일러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괴물이 나타나 배를 부수려 하니 메데이아는 하데스의 사냥개를 불러 청동인은 파멸시켜 주기를 기원하였다. 이 기원은 영험을 발휘하여 청동인은 큰 바위를 아르고 호르 던질 찰나 괴물은 발목에서 피를 쏟으면서 가라앉아 죽고 말았다. 드디어 그리스로 돌아온 젊은이들은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아손은 항금양모를 펠리아스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 동안 경악할 일이 일어나 있었으니, 펠리아스가 이아손의 부친을 자살하게 만들고 모친 또한 그 비통함으로 인해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이아손은 이 사악한 펠리아스의 행위에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고 메데이아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메데이아가 펠리아스의 딸들을 불러 아버지의 젊을 되찾게 할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늙은 양을 토막내어 약초를 잠은 끓는 물에 놓고 주문을 외워 그 물 속에서 어린 양이 튀어나와 껑충껑충 뛰어가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마침내 펠리아스에게 독한 수면제를 주어 재우고, 딸들을 불러 아버지를 토막내라고 하니 오랜 주저 끝에 딸들은 아버지를 토막내어 솥에 넣고 메데이아의 기적적인 주문을 기다렸다. 그 사이 메데이아는 궁을 빠져 나와 그 도시를 떠나버렸다. 결국 이아손은 펠리아스의 딸들을 통해 원수를 갚은 것이다. 일설에는 이아손의 부친을 소생시켜 젊음을 다시 찾게 하였다고도 한다. 어떻든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위하여 악마 같은 일과 선량한 일을 성심껏 하였으나 끝내 이아손은 그녀를 배반해 버렸다. 즉 펠리아스가 죽은 후 메데이아와 함께 코린트로 가서 두 아들까지 낳고 잘 살던 이아손은 신의를 저버리고 코린트 공주와 결혼하기로 한 것이다.
코린트 왕은 메데이아가 불원간 자기의 딸을 해칠 것으로 짐작, 메데이아와 그 두 아들을 곧 국외로 추방시켜려 하였다. 이아손이 주는 황금도 마다하고 비통한 심정에 죽음까지 생각한 메데이아는 마침내 신부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옷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꺼내 죽음의 독을 바른 뒤 상자에 넣어 아들을 시켜 신부에게 보냈다. 신부는 희색만면하여 이 옷을 받아들고 걸쳐 보았는데, 과연 바로 전신에 극도의 열기가 뻗치면서 쓰러지더니 시신까지 녹아 없어져 버렸다. 메데이아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귀여운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을 것임을 직감하였다. 과연 새 신부의 죽음을 안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먼저 두 아이들을 죽였다. 그러자 메데이아는 용이 끄는 2륜차를 타고 지붕을 넘어 날아서 그 곳을 떠나 버렸다. 이아손의 생애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자기의 과오를 깨닫고 자책감으로 우울증에 빠져 새상을 헤매다 지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기도 하고, 아르고 호의 그늘 아래서 쉬고 있을 때 그를 영웅적인 삶으로 인도했던 바로 그 배의 들보가 떨어져 이에 맞아 죽었다고도 한다.
|
|
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
|
|
희망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행복의 비밀
36
행복은 도처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참다운 행복은 어떻게 끝을 맺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37
수많은 재물을 소유한 사람이라도 그 영혼은 공허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쾌락과 방탕은 정신의 궁핍에서 비롯되는 권태의 일종이다. 이런 사람들은 외관상으로는 부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몹시 가난한 부류에 속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외부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치와 향락에 젖어 있다. 그러나 사치와 향락은 행복의 척도가 아니다. 행복하다는 느낌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검소하고 절제된 삶을 사는 사람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 것이다. 이런 행복에 대한 느낌은 욕심을 버릴 때 더욱 가까이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마라.
38
고독한 생활에 수반되는 약간의 손실은 사전에 충분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거나 양해를 구한다면 혼자만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만과 사기, 유혹이 넘치는 사교적인 생활은 언제나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줄뿐이다.
39
어떤 사람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얼마만큼의 걱정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 보아라. 만약 그 사람이 걱정하는 문제가 사소한 것이라면 그 사람이 누리는 행복은 큰 것이다. 사소한 일로 걱정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큰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은 사소한 걱정이나 근심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의 정도가 크기 때문이다. 만약 고통이 전혀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된다면 그대는 권태로 인해 죽음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40
인생은 즐기기 위한 곳이며 행복을 얻기 위한 장소이다. 행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노력과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생에 대해 경솔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행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행복에 대한 집착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안겨 주며 이러한 불행은 고뇌와 질병, 손실, 번민, 가난, 굴욕 등의 여러 가지 재앙의 근원이 된다. 나중에 허망한 꿈에서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이미 때는 늦었다.
|
|
독서실 → 철학
|
|
|
인간과 욕망 - 마르틴 콜랭
제 3 부
무의식적 욕망
의식과 의식의 합리적인 논리에만 비정상적으로 우위를 부여해 왔던 철학은 무의식의 분석이 반박하는 욕망에다 높은 효율성을 배당하였다. 이러한 철학들은 주체가 욕망에 의해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을 모르는 채 최선의 것과 최악의 것이 모두 욕망의 대상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 이 대상은 우리가 육체의 노예가 되던지 혹은 진리를 향해 승화되는지를 결정짓는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규정된 욕망은 무의식적인 욕망이 아니라 (무의식적 욕망의 가정은 개념의 영역 속에서 말로 표현될 수 없다) 무시된 절차의 결과인 의식적인 욕망이다. 스피노자의 주장대로 욕망과 욕망의 원인을 혼동하여 인식한 철학은 이와 다른 합리성을 찾아내거나 문화와 언어에 의해 구조화되어서만 존재하는 인간본성을 인식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다양한 형태에 따라 욕망을 몰아세워 이를 억제하려고 했던 철학은 실제로는 욕망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며 욕망의 말도 알아듣지 못한다. 끊임없이 질서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은 그렇다면 욕망의 강함을 나타내는 기호가 아닐까?
"만약 존재가 현재 있는 그대로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해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존재란 바로 이러한 결핍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이다. 존재가 존재에 대해서 자기의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욕망을 체험하면서 이러한 결핍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존재가 사물의 세계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 자아의식의 감정으로 귀착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내세의 추구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존재는 그 앞에 서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알지 못하는 존재들의 동행자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의식하는 존재는 명백하며 고전주의 이론은 이를 인간 경험의 중앙에다 위치시켰다. 이러한 자아의식체는 그러한 관점에서 대상들의 세계 속에 결핍이 아니면 자신이 어떠한지를 나타내지 못하는 욕망의 존재를 위치시키는 방법으로 나타난다. 이런 존재의 결핍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존재가 결핍되었으며, 존재는 존재할 줄 모르는 모든 사물들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하나의 대상으로까지 상상한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 차이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아의식체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 유감스럽게도 비록 그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하더라도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존재들에게 결핍된 것이다. 결국 존재가 부재를 바탕으로 한 현존으로 세워지도록 하는 근본적인 고뇌를 일으키는 능력과 우리가 보통 의식의 능력, 의식의 상태라고 부르며 모든 가능한 환상의 총체의 중립적이고, 추상적이며 몽상적이기까지 한 형태에 불과한 것과는 혼동이 된다. 인간 존재들과의 관계는 의식의 범주를 넘어서 형성된다. 인간세계의 1차적 구조는 무의식으로의 욕망에 의해 완성되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프로이트의 방법을 취해야 한다. 프로이트적 경험의 결정적인 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진다. 의식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도록 하자. 현대의 경험은 의식의 고유성에 의해 오랜 매혹으로부터 잠을 깨었다. 그리고는 인간의 존재를 그의 독특한 구조 속에서 고려한다. 이 구조는 바로 욕망의 구조이다. 이것이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출발점이다. 여기서 칭하는 인간은 무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말을 구사하는 인간을 가리키며, 언어는 세계 속에 현실 전체의 무게와 맞먹는 어떤 것을 끌어 들인다"
라깡, "세미나"
논문의 주제 분석
욕망이나 정념에 대한 테마의 논문 주제에 대한 문제가 근 몇 년간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시험) 지원자들에게 많이 출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테마는 또한 그것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다른 많은 문제들도 다루게 해준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 의지력, 이성의 힘, 자유, 환각, 상상, 인간의 실천, 철학 등이 우리가 이 책에서 다루었던 문제 제기의 이론적 조립이 보여준 것처럼, 욕망의 분석에 관계한 문제들을 구성한다. 이러한 주제에 관련된 언술들은 욕망에 대해 심사숙고해 봄으로써 유익하게 접근되고 때로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욕망과 현실
세계의 질서를 바꾸는 것보다 자신의 욕망을 바꾸는 것이 더 좋은가?
이 질문은 분명히 데카르트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도전적인 방법으로 불러일으키는 보수주의파의 성급한 비난을 받지 않도록 문제를 그의 문맥 안에서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힘의 개념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세계를 바꾸는 것보다 자신의 욕망을 바꾸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은 하나는 가능하고 다른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조건에서 그러할까? 그래서 이러한 욕망과 힘의 구성 얼개를 인식하는 것은 이성에 의해 이끌어지는 의지를 발휘하게 한다. 자기의 욕망을 바꾸는 것은 그러므로 만족하기 위해 욕망을 성취시키려는 우리의 힘으로 그 욕망의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판적인 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주체의 이러한 흥미를 토론하기 위해 정신분석의 지식에 근거를 두어야 할 것이다.
욕망과 현실
이 언술은 재구성되고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쾌락의 원리와 현실의 원리에 대한 프로이트적 구분 역시 환기되어져야 한다. 지면의 부족으로 3장에서 소개되지 못한 이 개념들은 중요하다. 이것에 대해서는 "정신분석의 열쇠"에서 명쾌하고도 정확히 설명을 하였으며 좀더 자세한 분석은 "정신분석 용어집"을 참조하라.
욕망, 의지, 책임
진정한 힘은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하는 데에 있다.
쾌락을 주는 것과 원하는 것의 구분은 욕망과 의지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위의 문제는 실천의 테마에 관계되며 인류학적 목적 또한 가진다. - 이러한 대립은 적절한 것인가? 이 대립은 불합리와 더불어 무절제의 장소인 욕망의 난잡함을 의지의 억제력에 대립시키는 몇몇 전통에서 비롯된다. 도덕지상주의가 거기서부터 파생되어 수고와 인내, 자제력, 금욕주의의 가치를 증가시켰다. 우리는 스피노자의 문제 제기를 이용하여 욕망-의지의 혼동을 피하면서 이러한 대립을 비판할 수 있다. -의지에다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매우 자주 욕망의 힘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 우리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반대 견해를 이용하여 스피노자가 말하는 진정한 힘이 어떻게 욕망의 운동과 인식에 관련되는가를 제시할 수 있다.
당신은 사르트르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 동의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지만 우리의 됨됨이에는 책임이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됨됨이에 대한 사르트르의 이론에서 독창적이고도 "존재와 무"에서 읽혀질 분석에 따라 전개될 테마를 구성한다. 왜냐하면 욕망하고자 하는 의식은 세상에 대한 그의 존재 방식으로서 욕망을 체험하는 의식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의지의 개념에 대한 비판은 자유와 책임의 개념을 위하여 사용된다.
"우리는 단지 의지가 자유보다 우월한 표현이 아닌 독특한 구조를 가진 정신적 사실이며 다른 것과 동일한 측면에서 구성되고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본원적이고 존재론적인 자유에 의해 지지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사르트르, "존재와 무"
그러므로 의지는 계획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들을 기술적으로 정립시키는 이론적인 계산으로 축소된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사람은 곱절로 비참하거나 무능력한 사람이다. 당신은 스피노자의 이런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서는 다소 병적인 후회, 양심의 가책, 회한의 영역이 환기되며, 이 영역은 무기력하고 오도된 의지에 의해 인간 실천 속에 새겨진 실패의 결과로 구축된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표현하는 의지 개념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만 스피노자가 단지 상상세계의 허구와 착란만을 발견했던 이 보잘것없는 의식의 범위를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 나베르는 "윤리학의 요소"에서 오류, 실패, 고독의 의식에 관해 기술하고 분석해 놓았다. 의지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은 의식이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오히려 시달림을 받고 행동하는 대신 고통스럽게 느끼는 이러한 영역을 배제하기 위한 근거를 형성하며 극복해야만 하는 무능력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증거한다.
욕망과 자유
무의식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모호한 힘의 노리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우리는 여기서 모든 자유를 부인하는 결정론의 전형적인 테마를 다시 보게 된다. 제기된 주제는 우선 사용된 용어에 의해 비난을 받는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기:자아란 무엇인가? 의식이 있고 의지를 갖는 자아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힘을 포기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오히려 우리 자신과 우리의 본성을 결정지어 주는 것을 더 잘 알도록 해주는 게 아닌가? -모호한 힘:이 용어는 무의식을 마치 우리 자신의 외부에 있는 은밀하고 위협적인 능력을 구성하는 악마적이거나 신비로운 것인 양 표현한다. 무의식을 학문화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체계들을 연결짓는 역동적 과정을 고려하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것을 대조시켜 보아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정신적인 원인이 우리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생각을 비판하고 불가피성의 개념에 따라 자유의 개념을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와 동일한 전재가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자주 언술되는 주제에 대해서도 관계한다.-자유로워진다는 것, 이는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인가? - 이런 경우에 의지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특히 그의 감정에 대해 가지는 절대적인 힘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점에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문제 제기에 대해 반론을 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동시에 자유스러우면서 반이성적일 수 있는가?
도덕성과 자유를 연관시켜 주는 이 언술은 자족감과 지혜가 동등하게 나타나지만 둘 다 인식 행위에 밀접하게 관련되는 에피쿠로스 철학 안에서 반향을 갖는다. 더 나아가서 자신을 지배하는 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언술은 앞에서 다루었던 주제와도 연관성을 갖는다.
욕망과 인식
인간은 본래부터 인식에 대한 욕망을 갖는가?
여기서는 욕망에 대한 플라톤적 개념이 중요한 지시대상물을 구성한다. 또한 충동의 승화에 대한 프로이트의 논문과 르클레르가 표본적 인식의 욕망인 욕망의 비밀을 강제로 드러내려고 하는 욕망을 다룬 프로이트의 꿈 이론에 대해 분석한 것을 참조할 수도 있다.
|
|
첫쪽 → 배경화면
|
|
|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