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9호 2023.6.28 수요일 (음 5.11)
|
|
글나눔 → 참좋은한줄
|
|
|
나는 자기의 스케줄에서 나를 위해 시간을 찾아 주는 친구를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자기의 스케줄을 보지도 않고 나를 위해 시간을 내 주는 친구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
|
|
글나눔 → 말글
|
|
|
존맛
얼마 전 내가 가르치는 한 학생의 문자 메시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존맛’이란 말을 접하고 당혹스러웠다. 요즘 학생들이 욕설이나 비속어를 마구 쓴다는 말을 듣긴 했으나, 평소 순하디 순한 줄로만 알았던 그 학생이 ‘존맛’이란 비속어를 스스럼없이 쓰고 있는 것에 크게 놀란 것이다. 학생들 가운데 몇몇은 선생인 내가 옆이나 앞에 있는데도 자기들끼리 거리낌 없이 욕설과 비속어를 주고받는다. 얼굴 화끈거리는 경험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2000년을 전후로 학생들 사이에서 ‘아주’ 또는 ‘매우’라는 뜻으로 ‘존나’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존나’는 ‘좆이 나게’를 줄여 쓴 말인데, 요즘 학생들 대부분은 어원에 대한 고려 없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존나’는 ‘졸라’로 바뀌어 쓰이기도 한다.
이것이 ‘멘탈 붕괴’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등을 각각 ‘멘붕’ ‘금사빠’ 등의 줄인 말로 즐겨 쓰는 학생들의 언어 습관과 맞물려 ‘존못’ ‘존예’ ‘졸귀’ ‘졸잼’ 등의 줄인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들은 각각 ‘존나 못생기다’ ‘존나 예쁘다’ ‘졸라 귀엽다’ ‘졸라 재미있다’를 줄인 말이다. ‘존맛’도 이의 연장선 상에서 ‘존나 맛있다’를 줄인 말이다.
말뜻은 변한다. 따라서 ‘존나’ ‘존맛’도 어원과 상관없이 그 저속한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실제로 학생들 대부분은 이 말이 품위 없는 비속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여전히 이 말에 낯을 붉힌다. ‘좆’은 금기어로, ‘존나’ ‘존맛’ 등은 비속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
|
시나눔 → 우리시
|
|
|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려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와각지쟁(蝸角之爭)
蝸:달팽이 와. 角:뿔 각. 之:갈 지(…의). 爭:다툴 쟁.
[원말]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동의어] 와우각상(蝸牛角上), 와각상쟁(蝸角相爭), 와우지쟁(蝸牛之爭).
[유사어] 만촉지쟁(蠻觸之爭). [출전]《莊子》〈則陽篇〉
달팽이 촉각 위에서의 싸움이란 뜻. 곧
① 대국(大局)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작은(쓸데없는) 다툼의 비유.
② 하찮은 일로 승강이하는 짓의 비유.
③ 인간 세계의 비소(卑小:보잘 것 없이 작음)함의 비유.
전국시대, 양(梁:魏)나라 혜왕(惠王)은 중신들과 맹약을 깬 제(齊)나라 위왕(威王)에 대한 응징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혜왕은 재상 혜자(惠子)가 데려온 대진인(戴晉人)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진인은 현인(賢人)으로 이름난 도가자류(道家者流:도교를 믿고 닦는 사람)답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달팽이라는 미물(微物)이 있사온데 그것을 아시나이까?”
“물론, 알고 있소.”
“그 달팽이의 왼쪽 촉각 위에는 촉씨(觸氏)라는 자가, 오른쪽 촉각 위에는 만씨(蠻氏)라는 자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있었나이다. 어느 날 그들은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시작했는데 죽은 자가 수만명에 이르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한 지 15일 만에 전쟁을 멈추었다하옵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가 어디 있소?”
“하오면, 이 이야기를 사실에 비유해 보겠나이다. 전하, 이 우주의 사방 상하(四方上下)에 제한(際限)이 있다고 생각하시옵니까?”
“아니, 끝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하오면, 마음을 그 무궁한 세계에 노닐게 하는 자에게는 사람이 왕래하는 지상의 나라 따위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하찮은 것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으음, 과연.”
“그 나라들 가운데 위라는 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大梁:개봉(開封)]이라는 도읍이 있사오며, 그 도읍의 궁궐 안에 전하가 계시옵니다. 이렇듯 우주의 무궁에 비한다면, 지금 제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시려는 전하와 달팽이 촉각(觸角) 위의 촉씨/만씨가 싸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아옵니까?”
“과연,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소.”
대진인이 물러가자 제나라와 싸울 마음이 싹 가신 혜왕은 혜자에게 힘없이 말했다.
“그 사람은 성인(聖人)도 미치지 못할 대단한 인물이오.”
|
|
글나눔 → 추천글
|
|
|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 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4.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Artemis,Diana)는 그리스 세계에서 널리 모시던 여신이며 유사 전 미노아에서 숭배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아르테미스라는 말이 어원상 도살자라는 뜻이고 선문자 B서판에 노예의 주인 이름으로 나와 있다. 때로 헤카테 여신이나 셀레네 여신과 혼동되기도 한다. 짐승이 많은 미개간 들판이나 산림, 고원지대에서 활동하며, 항상 젊음을 유지하는 처녀상과 야생미를 풍기는 사냥의 수호신이지만 후에는 우아한 초상화로 그려져 부녀자의 수호신이 되었다. 초기에는 연약하고 엉뚱한 역할을 하여 여신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으나 제우스의 딸, 아폴론의 자매, 수렵과 야생의 공주, 산욕기 여자에게 갑자기 동통 없는 죽음을 주는 여신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복수심이 강한 여신이기도 하여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 고통을 당한 예가 많이 나온다. 먼저 어머니인 레토를 모욕한 니오베에 복수를 하기 위해 그녀는 아폴론과 함께 니오베의 아이들을 죽였는데 아폴론이 키타이론 산에서 사냥하는 아들 여섯을 죽이고 아르테미스는 집에 있던 딸 여섯을 죽였다. 레토를 괴롭힌 거인족 티튜오스도 죽였다고 한다. 또한 트로이 원정에 나선 아가멤논이 아울리스에서 해풍을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사슴사냥을 하다 말 한 마디 잘못하여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샀다. 즉 그는 "아르테미스 여신일지라도 사슴을 이처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큰소리를 쳐 여신을 멸시한 것이다. 이에 아르테미스는 출범에 꼭 필요한 바람을 잠재워 원정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가멤논이 점쟁이 티레시아스에 문의하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왕의 미혼 공주인 이피게네이아를 여신에게 희생 공양하는 길밖에 없다고 대답하였다. 결국 그는 비통 속에서 자신의 딸을 바쳤고 아르테미스는 최후의 순간에 생희생을 암사슴과 바꾸어 공주를 데리고 멀리 타우리스(현 크리미아)로 가서 자신의 신앙을 받드는 여사제로 삼았다. 한편 아르테미스 숭배는 아시아의 태고 여신과 통합되어 출산의 여신 또는 남자와 동물에게 다산과 출생한 소산의 건강을 가져오는 여신으로 여겨졌다. 신화상 아폴론과 쌍둥이로 태어나지만 그녀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태어나자마자 곧 동생의 출산을 도왔다하여 산용의 여신(Locheia)이라는 호칭이 있고 에링레이뉴이아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아르테미스의 신화는 독자적인 것이 적고 아폴론과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와 관련된 신화로 유명한 것으로는 여신에게 매료당한 오리온이라는 거인족 미남 사냥인의 이야기가 있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을 덮치려 한 오리온을 전갈을 보내 찔려 죽게 만들고, 그 공으로 전갈은 별자리인 전갈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에 따르면 오리온은 지상에서 플레이아데스 모녀들을 5년간 뒤쫓아 다녀 하늘의 별자리에서도 계속 뒤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에서 큰 동물의 공양은 매우 드물고 흔히 양을 희생물로 바친다. 매년 파트라이에서 열리는 아르테미스 라프리아 축제에는 야생동물을 통째로 구워(홀로코스트)공양을 하였다. 이 때 여사제는 아르테미스로 분장하고 수사슴이 끄는 이륜마차를 타고 축제를 집행하였다. 포카이아에서는 사람을 희생공양하였다고도 하나 확실치 않다. 타우리스에서는 야만적인 숭배 의식을 수용하여 이반인을 희생물로 바쳤다고 하며, 아르테미스를 모시던 이피게네이아와 그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아르테미스를 여신상을 스파르타 할라이로 가져와 브라우론에 모셔 놓았다고 한다. 한편 아르테미스 여신은 그 성격으로 보아 아마존족의 수호신이 되기도 하였다.
아르테미스는 곰과 관계가 깊다. 칼리스토는 여신의 시녀인데 제우스와 관계한 것이 발각되어 여신의 대노를 사고 헤라는 질투로 그녀를 암곰으로 화신시켜 버렸다. 아티카의 브라우론에서 열리는 여신축제에는 어린 처녀를 암컷곰으로 분장하여 춤을 추게 하였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세계에서 빈번히 비슷한 여신과 동일시되었다. 특히 에베소 항구에 찬란한 사원을 가진 위대한 대지 여신과도 동일시되어 다수의 유방을 가진 다산의 아르테미스상이 세워졌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숭배는 포카이아인에 의해 마실리아이로 전파되었고 여기에서 로마로 들어가 아벤티네에 있는 이아나 사원에 에베소 형식의 조각상이 세워졌다. 초기 아르테미스 조각상은 긴 의상이나 동물 털가죽을 두르고 후기에는 튜닉을 걸치고 있다. 단독 혹은 아폴론이나 레토와 같이 있는 모습이 조각되고 거인족의 격전과 비밀회의 조각상에는 여러 신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크레타의 여신 브리토마르티스(매력있는 낭자)도 아르테미스와 동일시하는데 큐도니아(현 카니아)에 신전이 있다. 브리토마르티스는 그녀를 사랑하는 미노스 왕에게 쫓겨 9개월간이나 도망다니던 끝에 발각되자 해안절벽으로 피했다가 마지막으로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어부의 그물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이에 연유하여 그물이라는 뜻을 가진 별칭 딕튠나로도 부른다) 아이기나로 떠나 다시 아르테미스 숲으로 도피하였다. 그 곳에서 그녀는 아파이아(은둔한 여신)로 숭상되고 신전도 세워졌다. 현재는 폐허화되고 다만 신전 지붕 아래 삼각벽 박공의 부조가 남아 있으며 아르테미스와 동일신(성)으로 되어 있다.
《아르테미스와 칼리스토》, 티티안 작품.
칼리스토
아티카의 브라우론에서 아르테미스 의식에 두 처녀를 암곰으로 분장케 하였는데 여기에 연유하여 칼리스토(Callisto) 신화가 생겼다고 한다. 칼리스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신화에서는 아르테미스의 시녀로 되어 있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아들 아르카스를 낳았으나 순결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여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샀으며 헤라의 질투로 말미암아 암곰으로 화신되었다. 아들 아르카스는 커서 사냥을 즐겼으며 아르카디아인의 선조가 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아르카스가 암곰과 마주쳐 곰을 잡으려는 순간 제우스가 나타나 화신한 어미를 죽이지 못하도록 둘을 별자리로 변화시켜 칼리스트는 큰곰자리, 아르카스는 작은곰자리가 되었다. 헤라는 칼리스토에게 영예를 주었다고 화가 나서 오케아노스에게 부탁하여 큰곰자리가 바다 저쪽으로 지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칼리토스는 잠시도 쉴새없이 영원히 북극성 주위를 돌게 되었다. 더 오랜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아르테미스를 유혹하자 아르테미스 자신이 곰으로 화신하고 얼굴을 흙으로 더럽혀 유혹으로부터 벗어났으나 원래 그녀가 다스리던 별의 영주권을 제우스에 빼앗겼다고도 한다. 천문학에서는 목성의 제4위성을 칼리스토라 부른다.
니오베
니오베(Niobe)는 탄탈로스의 딸이며 펠롭스의 여동생이다. 왕 암피온과 결혼하여 7남 7녀를 두었는데 어느 날 두 아이밖에 없는 레토를 멸시하며 자식복이 많은 것을 자랑하였다가 후에 레토의 쌍둥이 자식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아들딸 둘만 제외하고 모두 사살당하였다. 비통에 빠진 니오베는 시퓰로스산에 있는 아버지 탄탈로스 곁으로 피신한 후에는 계속 슬퍼하였으므로 제우스 그녀를 바위로 화신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하며 현재도 이 바위에서는 샘물이 흐르고 있다. 시퓰로스 산에 가서 니오베상을 본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가까이에는 바위절벽일 뿐 전혀 여신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멀리 떨어져서 보면 눈물에 젖어 비탄하는 여인상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살루스트 정원에서 발견된 부상당한 니오베 ca 440 BCE, 그리스]
|
|
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
|
|
희망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61
사랑은 명예를 대신하여 인생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명예와 의무와 충성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유혹과 죽음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었던 사람도 사랑 앞에서는 무릎을 끊는다. 사랑의 힘이 작용하게 되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좀처럼 믿을 수 없게 된다. 정직하고 의지력이 강한 사람도 강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멸시해도 시경쓰지 않는다.
62
여자는 판단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사물에 의해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은 사자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코끼리에게 이빨을, 황소에게 뿔을 주었듯이 여자에게는 자기 방어를 위한 위장술을 주었다. 자연은 남자에게 체력과 이성이라는 형태로 힘을 부여했으며 여자에게는 현실에 대한 적응력과 미적 감각을 주었다.
63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랑은 죽음과 삶을 초월하며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랑은 마치 태풍과 같아서 그것이 지나가고 나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그 사랑을 주가 거절할 수 있는가? 사랑은 당신 자신이 선택할 수 있고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랑은 때때로 우리가 선택하거나 준비하고 있지 않았을 때,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64
여자는 인생에 대한 빚을 행동이 아닌 고통으로 갚는다. 해산의 고통, 육아, 남편에 대한 헌신으로 여자는 일생은 보낸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인내로 그와 즐거운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아내의 고통은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보다 현실에 더욱 충실한 경우가 많다.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여자가 남자보다 강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65
어쩌면 사랑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인의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깊이가 너무나 깊어서 아무도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것을 이 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뜻을 이루지 못하면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무수한 연애시의 주제가 되고 지상의 경험을 넘어선 초월적인 비유의 경지로 승화되는 것이다.
|
|
독서실 → 한국소설
|
|
|
격동 30년 - 이영신
제 1 부 쿠데타의 새벽 (1)
1. H아워에 출동하라!
2. 박 장군,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울 다동(茶洞) 입구에 있던 삼희정(三喜亭)은 대중음식점이었다. 불고기가 전문으로 꽤 번창 일로에 있던 음식점이었다. 늘 손님이 바글바글 끓었다. 사촌이 기와집을 지으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만 사촌은 커녕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도 지나가다가 손님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기라도 하는 날엔 배가 아플 정도가 아니라 쑤셨다. 그만큼 번창만을 거듭하고 있던 음식점이었다. 제30사단장 이상국이 삼희정 안으로 들어서자 그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이 담고 맞아 주었다. 동기생 사이인지라 늦은데 대해서 농담섞인 핀잔 한마디쯤 던질 법도 했으나 김판규는 오히려 이쪽이 미안해할 정도로 미소만으로 맞아 주었다. 이상국은 김판규에게 늦은 데 대해서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먼저 별을 달았다는 오만에서였는지도 모른다. 네 사람은 불고기 냄새와 연기가 범벅이 되어 코를 찌르는 홀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마주앉았다. 순간, 이상국은 김판규가 정보참모부에 근무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냈다. 그는 대령으로서 정보참모부장 김용배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김 대령!"
이상국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
"쿠데타 정보가 있던데, 이게 도시 무슨 놈의 소리인지 모르겠어?"
이상국은 그렇게 의문스러운 정보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지금 삼희정으로 오는 동안 박상훈, 이갑영한테서 들은 얘기를 앵무새 외듯 고스란히 털어놨다. 얘기를 듣고 나자 김판규는,
"실은 나도 그런 정보를 들었어." 하는 것이었다.
"김 대령도 들었어?"
이상국은 그만 바싹 긴장되었다.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의 김판규도 들었다면 이건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람, 이걸 어떡하면 좋지? 바로 우리 부대가 쿠데타 행동부대 제1진으로 정해져 있는 모양이야."
김판규는 무척이나 놀라는 것이었다. 그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휘둥그래진 눈으로 이상국을 응시했다. (이 친구가 쿠데타에 가담해 있으면서 나를 떠보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김판규의 두 눈은 그런 의심을 담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게 정말인가?"
김판규의 반문에 이상국은 약간 짜증이 일기도 했다.
"그럼, 이런 중대한 문제를 내가 허튼 소리 하겠는가?"
딴을 그렇다. 아무리 동기생 사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털어놓을 수 있는 얘기는 아니었다. 김판규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그는 건성으로 젓가락을 집었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일단 방첩대에 알리는 것이 상책일 거야. 괜히 신고조차 않고 있다가 쿠데타가 실패하는 날엔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이상국은 김판규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쿠데타가 실패하는 날에는 사단장한테 제일 먼저 책임을 물으려 할 것은 정한 이치였다. 그제야 이상국은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식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리 모두들 506방첩대로 가세."
이상국은 박상훈, 이갑영, 김판규를 거느리고 506방첩대로 차를 몰았다. 506방첩대는 서울지구 방첩대로 소공동 조선호텔 맞은편 길 건너에 있었다. 출신인 육군 대령 이희영(李熙永)이었다. 그는 아직도 퇴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방첩대의 업무가 그만큼 폭주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희영은 예고없이 찾아온 이 동기생들이 못내 의아스럽기만 한 모양이었다.
"어쩐 일들이오. 네 분이 같이?"
"실은......."
이상국이 입을 열었다.
"쿠데타 정보가 있기 때문......."
"쿠데타?"
"예."
"쿠데타 정보라니요?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이희영은 용지와 펜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또다시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상국은 쿠데타 주모자가 박정희라는 것만은 뺐다. 그로서는 확증을 내세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얘기를 듣고 난 이희영은 꽤나 미진하다는 표정이었다.
"30사단이 쿠데타 행동부대로 나서기로 돼 있다는 것만 알고 쿠데타 주동자들은 모르다니, 이거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이갑영이 가로막고 나섰다.
"실은 저희들이 이백일 중령한테 주동자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만, 이백일 중령이 차일피일 미루어 오는 통에 소개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동자가 누군지 모른단..."
"그렇습니다."
이희영은 가볍게 끄덕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박정희 장군이야! 주모자는 박정희 장군일 것이 틀림없어.) 그는 이렇게 속으로 단정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근거에서 이희영은 이런 단정을 내리고 있었던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희영은 서둘러 방첩대 본부대장인 육군 준장 이철희(李哲熙)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철희하고는 곧 연결되었다.
"쿠데타에 관한 중대한 정보가 신고되었습니다. D데이 H아워가 바로 오늘 밤 10시라고 합니다."
이희영의 보고를 받은 이철희도 꽤나 울려나오는 목소리가 옆의 사람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누가 그런 신고를 해왔어?"
"네, 제30사단장 이상국 준장이십니다."
"이상국 준장?"
"네."
"그 사람 지금 거기 있어?"
"네, 있습니다."
"그럼 내가 지금 그리로 가겠어."
이철희는 금방 달려왔다. 대장실로 들어서는 그는 여간 허둥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 때문일까? 금붕어의 눈처럼 툭 튀어나온 큰 두 눈이 겁에 질려 있기조차 한 것 같았다. 이철희가 들어서자 이상국 이하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특히 이희영을 포함해 맞았다.
"귀관들이오, 쿠데타에 대한 신고를 한 사람들이?"
이철희는 네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대꾸를 한 것은 이상국이었다.
"뭐가 어찌됐다는 것인지 좀 자세히 얘기해 보시오."
이상국은 다시 세번째로 되풀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D데이 H아워가 오늘 밤 10시라?"
"그렇습니다."
"참모총장 각하는 지금 어디 게시지?"
이철희는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혼자 중얼거리며 육군본부에 전화를 거는가 하면 참모총장 공관에 전화를 걸며 총장의 없었다. 전화기의 다이알을 돌리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기조차 했다. 마침내 이철희는 참모총장의 행방을 수소문해냈던 모양이었다. 그는 수화기를 놓기가 바쁘게 행선지도 밝히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는 그의 행동은 꼭 실성한 사람 같이만 느껴졌다. 이철희가 황망히 밖으로 달려나가자, 이상국은 두 부하에게 나직이 명령을 내렸다.
"박 대령하고 이 대령은 속히 부대로 돌아가서 부대를 장악하시오."
이름 석 자깨나 알려진 서울 장안의 출입해 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때는 신록의 호시절 5월이라고는 하지만 사대문 밖은 한 발만 벗어나면 하루 세 끼는 고사하고 한 끼의 끼니조차도 못하는 소외계층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 당시의 실정이었다. 그래서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무지렁이 같은 백성들은 5월을 <보릿고개>라 일컬어 왔었다. 이 보릿고개의 5월에 들어서면서 데모가 가라앉은 것은 다행이었으나, 대신 생활대책이 막연한 민생들이 도처에서 삶을 포기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뜻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더없이 아프게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요정 은성은 땅거미가 내릴 민생의 비극적인 얘기는 어느 먼 나라의 얘기인 듯 요정 은성의 출입자들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부류의 군상뿐이었다. 그들은 대개가 이름 석 자만 대면 알 만한 이 땅의 지도급 인사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요정 은성은 오늘 밤도 흥청거리고 있었다. 까르르...... 여인들의 교성이 장지문 밖에까지 울려퍼지고 있는가 하면, 하하...... 하고 기름진 호걸 웃음 또한 장지문 밖으로 새어나와 흩어지곤 했었다. 이 밤, 요정 은성의 별실. 요정 은성의 별실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육군 참모총장 장도영은 뭐가 그리 유쾌한지 마냥 싱글벙글이었다. 자다가도 낄낄댈 만한 일이기는 했을 것이다. 공자(孔子)는 30에 입지(立志)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사나이는 38살에 벌써 별을 3개씩이나 단 육군의 총수인 육군 참모총장인 것이다. 대장부가 이만하면 엄청난 출세를 했다고 할 수 있잖겠는가. 하기야 장도영뿐 아니라 지금까지 육군의 총수를 지낸 사람은 거의가 삼십대에 그 중책을 맡긴했지만....... 그랬다고 하더라도 장도영으로서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하마터면 벗어야 했던 군복이었다. 그것을 행운의 여신이 편들어 주었던지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육군 참모총장에까지 민충이 쑥대 오른 기분이 되어 한껏 취해져 있을 때 마담이 들어와 누가 밖에 와서 참모총장을 찾는다고 귀띔해 주었다. 장도영이 밖으로 나와보니 방첩부대장 이철희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장도영은 짜증섞인 말투로 물었다. 한창 주흥이 도도해져 가고 있는데 엉뚱한 훼방꾼이 주흥을 깨니 역정이 날 만도 했을 것이다.
"각하, 큰일났습니다. 쿠데타 모의가 신고되었습니다. D데이 H아워가 바로 오늘 밤 10시랍니다."
"뭐야?"
이철희로부터 보고를 받은 장도영은 기절초풍하듯이 놀랐다.
"박정희 소장이라고 합니다."
"뭐 박정희 소장?"
제30사단장 이상국은 이철희에게 쿠데타 주모자가 박정희라고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철희는 쿠데타 주모자가 박정희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는 정보를 벌써부터 입수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 정보를 입수하는 즉시 직속상관인 육군 참모총장에게 보고를 하고 어떤 조치를 강구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그 정보를 눌러놓고 있었던 것이다. 군부의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방첩부대 본부대장의 직책으로 볼 때, 그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눌러놓고 있음으로써 박정희의 쿠데타 계획을 간접적으로 방조해 주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왜? 어찌됐거나 제30사단장 이상국이 쿠데타 모의를 신고함으로써 이제 쿠데타 계획은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이철희는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모자는 박정희 소장이라고 서슴지 않고 털어놨던 것이다.
"틀림없나, 박정희 소장이라는 것이?"
"네, 각하!"
장도영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빌어먹을 새끼, 기어이 하고야 말겠다 그 수작이야?) 원색적인 욕설이 목구멍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것을 장도영은 간신히 눌렀다. 장도영은 발길을 돌려 다시 별실로 되돌아갔다.
"이거 미안하오. 급히 다녀올 데가 있어서 잠시 실례 좀 해야겠소. 그리 시간은 지체하지 않을 거요. 곧 돌아올 테니 두 분께서 천천히 들고 계십시오."
두 사람이 미처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휑하니 방을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세상에 이렇게 기가 막힌 얘기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쿠데타는 한 정권을 뒤집어 엎는 행위,여차하면 엄청난 인명피해를 내게 된다. 그런 대사건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고도 장도영은 어째서 두 사람한테는 이 사실을 터놓지 않고, 급히 다녀올 데가 있느니 어쩌고 저쩌고 말이다. 혹시 장도영은 처음부터 쿠데타에 가담돼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박정희 쿠데타 거사쯤 혼자서라도 얼마든지 꺾어버릴 수 있다고 자신한 때문이었을까? 세월이 흐른 뒤, 장도영은 <나는 역사의 죄인> 운운하며 5.16 군사 쿠데타 전의 박정희와 인간관계에서부터 쿠데타와 관련된 많은 얘기들을 털어놓은 일이 있지만, 그는 이날 은성에서 같이 회식을 하던 장창국, 김용배 두 사람에게 어째서 쿠데타 정보 보고를 알려주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한 일이 없다. 장도영은 사전에 박정희와 어떤 밀약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장도영은 이철희를 거느리고 서둘러 506방첩대로 달려왔다. 그때까지 제30사단 사단장 이상국과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의김판규는 이희영과 얘기를 나누며 이철희로부터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왈칵 열리면서 장도영이 506대장실로 들어서는 것을 본 세 사람은 마치 용수철에서 튕겨지듯이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고 거수경례를 붙이는 것이었다. 장도영은 그러한 세 사람의 몸가짐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이희영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박정희 소장은 어디에 있나?"
"지금 신당동 자택에 한웅진, 장경순 두 506방첩대장 이희영도..."
쿠데타의 주모자는 박정희라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철희가 뛰쳐나가자 곧 무전으로 박정희를 감시하고 있는 요원들을 불러 그의 소재를 그의 소재를 파악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506방첩대장 이희영이 박정희가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 어째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 하는 의문이 일게 될 줄로 안다. 그러나 이희영은 그 자신의 직책에 충실했었다. 그는 자신의 직책에 충실했으나 이것을 상부선에서 덮어버렸던 것이다.
"집에 있는 것이 분명한가?"
"예, 분명합니다."
다소 마음이 놓였던가? 그제야 새삼 이상국의 존재를 인식하듯,
"이봐, 이 준장."
이상국 쪽을 향하며 그를 불렀다.
"네, 각하."
이상국이 한층 더 꼿꼿하게 부동자세를 취했다.
"귀관은 명색이 장군이라면서 능력이 고작 그것밖에 못 되더란 말인가?" 하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명색이 장군이라니? 아무리 육군 참모총장이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육군의<장군>을 그 따위로 모욕할 수 있단 말인가? 이상국은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치솟았으나,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뜨거운 울화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이백일인가 하는 중령 하나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고 그러고도 장군이야?"
이상국은 계속 치밀어 오르는 모욕감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던지 좀 거칠게 대꾸했다.
"소관은 그 내용을 오늘 저녁에 듣고 알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잔소리 말어!"
장도영은 이상국의 변명을 끝까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잔소리 말라는 일갈로 그의 말을 육군 참모총장의 권위로 눌러 버렸다.
"당장 돌아가서 부대를 장악하라. 알겠나?"
"예. 각하."
이상국은 거수경례를 붙이고 그 자리에서 절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오자 이상국은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아내에게 지금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 있으라고 했다. 아내가 별안간 왜 그러느냐고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알 것 없어. 하라는 대로 하기나 해!"
그는 신경질을 부리며 전화를 끊었다.
|
|
독서실 → 철학
|
|
|
인간과 욕망 - 마르틴 콜랭
제1부
정념passion을 극복하라
2.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과 지혜
이론적 토대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은 플라톤적 이론에의 분명한 단절을 나타내고, 쾌락이란 개념에 주목하여 그들 나름대로의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구축하였다. 그렇다면 에피쿠로스 학파의 이론은 플라톤의 이론에 대한 단순한 반전인가? 육체가 영혼을 난폭하게 억압하고 타락시키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에피쿠로스 학파에게 이러한 반전을 정당화시킬 만한 논리나 그럴 만한 독특함이 있다고 인정해야 할 것인가? 영혼이 육체의 욕구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영혼의 특성을 제게 해야만 하겠는지? 철학사적인 입장에서, 에피쿠로스 학파는 그 이전의 철학을 경솔히 몰아세우면서 그들에 반대했던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은 너무 조숙하게 퍼져 나갔던 에피쿠로스 철학의 사이비 경향을 띤 해석이 이해의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다. 왜냐하면 호라스Horace가 자기 자신을 에페쿠로스 신봉자들의 돼지라고 불렀으며 더욱이 그의 향락에 대한 취향에 대해서도 언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피쿠로스 철학이 로마에 들여와졌을 즈음에 그에 대한 굉장한 호응에 못지 않게 비방의 소리 또한 높았으며, 사람들은 정치와 문화가 타락한 것은 바로 이 새로운 윤리의 영향 때문이라고 탓하였다. 시피옹 에밀리언Scipion Emilien은 에피쿠로스 철학은 도덕적 문란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 평하였고, 사람들은 이전의 희생정신이나 애국심이 행복을 추구하려는 사회적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만연시킨 윤리의 타락으로 위태롭게 되었다고들 하였다.
사람들이 이런 외고집의 주장을 계속 내세우는 것은 에페쿠로스나 다른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자들의 문헌을 왜곡되거나 편파 되게 읽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호화스러운 생활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호화란 오히려 행복을 방해한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해주는 것은 계속되는 주연이나 질탕한 잔치도, 젊은 남정네와 여인들의 향락도, 떡 벌어지게 차려진 식탁 위의 물고기 요리나 그 밖의 요리도 아니다. 행복은 선택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의 모티브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헛된 생각에 의해 영혼에 큰 혼란이 일지 않도록 해주는 번뜩이는 이성에 의해 얻어진다"
에피쿠로스, "메네세에게 보내는 편지"
이 문헌에서 에피쿠로스는 그가 "지상의 선"이라고 일컬었던 진정한 쾌락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욕망들에 대한 상세한 구분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에피쿠로스는 그리스 전통 철학에 과격하고 무례히 대적하기는 커녕 열정적 폭발을 비판하면서 무절제에 대한 그의 비난을 도출해 내고 있다. 영혼-육체, 이성-정념, 행복-쾌락과 같은 전통적인 개념상들은 원래의 윤리학을 묘사하기 위해서 다시 정의되고 새로이 쓰여질 것이다. 그러나 이 윤리학이 어떤 개념(예를 들어, 두려움이나 정념)을 희생시켜 어떤 다른 개념(예를 들면, 쾌락)에 특권을 부여하는 단순한 가치체계로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윤리관은 특히 "헤로도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타나 있고 에피쿠로스의 신봉자였던 로마인 루크레티우스의 "자연에 관하여"라는 시에서 명백히 보여진 자연철학 안에서 뿌리 내리고 기초를 세웠다.
생을 즐기기 위해 본성을 인식하라
"메네세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영혼의 건전을 획득하도록 연구하고 우리가 지극한 행복을 추구하도록 해주는 철학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학교의 헛된 훈련이 아닌 이 실천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선을 평가하고 훌륭히 살도록 노력하게 해주므로 필수적이다. 여러가지 악에 의하여 동요되고 흥분된 사람은 그이 자연과 우주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무시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무시는 두려움을 생기게 하고-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높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들 수 있겠다-, 영혼을 교란시켜 쾌락이 생기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자연을 알아야 한다. 현명해진다는 것은 행복하게 되는 것이며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생겨나게 하는 환상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철학이란 생의 자연스런 평정 상태를 보존시키는 하나의 실천이다. 진리에의 요구는 마음의 평정(또는 혼란의 부재)이라는 평온함으로 통한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과 세계질서에 대하여 잘못 묘사한 것을 비판하고 이를 해소시키는 실천적 효과를 증거한다.
"사람이 우주의 자연(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또한 신화 속에서 묘사된 이야기 속의 누군가를 두려워 한다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지 못한다" - 에페쿠로스, "제1 금언"
또한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숭고함과 거룩함이 합쳐진) 저 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미신과 분분한 신앙에 형이하학적 설명을 대체시키는 것이다. 천체에 대한 학문을 할 생각을 가지고 에피쿠로스는 천체의 경이로운 움직임들(이것이 경탄과 공포의 원천이 된다)이 오직 유일한 자연에 속하는 것이며, 그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인간에게 신호로써 나타내 주는 신의 의지를 전혀 위협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반대로 모든 일거리에서 자유로워지고 지극한 행복 전체의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은 신의 자연(본성)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주조된 에피쿠로스의 착상이 어떻게 그의 윤리학을 조건지어 주는지 보게 된다-평정상태를 배우는 것은 세상을 신성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자연계 현상을 앎으로써 얻어진다.
철학적 견해
그릇된 견해에서 기인하는 허황된 것들에 대항해 싸우면서 철학적 견해를 발전시키는 것이 정신을 감염시키는 병폐를 치료한다. 이것이 철학자의 실천적 과제이다. 포르피리오스Porphyre는 "마르셀라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고통은 어떠한 것이 결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 이상의 훨씬 많은 쓸데없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다. 진실한 철학을 사랑하는 자는 동요를 일으키는 고통스러운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인간적 정념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철학자의 이야기는 공허할 뿐이다. 의약이 육체의 병을 쫓아내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영혼으로부터 정념을 쫓아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현자는 철학의 견해와는 다른 종류인 헛된 견해를 생각하지 아니한다. 에피쿠로스에게 있어서 견해는, 그것이 감수성을 간접적으로 이용하여 받아들인 심상에서 시작하여 생산해 낸 판단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감각과 구별된다. 그러므로 어떤 견해는 그것이 판단과 심상에 부합하는 데에 따라 참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한다. 이때 증명이 견해를 인정하기도 하고 손상시키기도 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형이하학과 철학이 힘을 합하여 제 현상들이 암시하는 것에 주의하도록 그리고 참된 견해를 산출해 낼 수 있도록 한다면, 단 한 번의 같은 움직임으로, 그릇되고 허망한 묘사들을 깨뜨려 버리고 영혼으로부터 병원균의 싹, 즉 "동요를 일으키고 고통을 주는 욕망들"을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마음의 의약품이고 이 철학이 축출하는 정념은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할 가장 큰 악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철학하는 것:"정념을 쫓아 버리는 것"
이성과 정념(이 경우에서는 플라톤의 "파이돈"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념이란 공포, 욕망, 공상, 부질없는 것들과 결합한 것을 칭한다)의 전통적인 대립은 인식과 매우 상이한 개념 속에서도 다시 구성될 수 있는가? 철학의 본성이 달라져도 철학의 기능은 동일한 채로 남아 있는가? 즉, 육체의 좋지 못한 지배로부터 영혼을 떼어놓고, 욕망과 정념을 내쫓으면서 치료하는 기능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인식 원리의 진술에서 취한 에피쿠로스 학파의 독창적이고도 혁신적인 철학은, 욕망을 단계적으로 구분하고 그것이 연역해 내는 쾌락에 대한 가치부여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행복한 삶의 특별히 인간적인 실천을 구상하기 위해 어떠한 이상주의에도 빠지지 않도록 애쓰면서 감각의 확실함에 근거하여 현실을 설명하려고 한다.
|
|
첫쪽 → 배경화면
|
|
|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