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4호 2023.4.17 월요일 (음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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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참좋은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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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모든 잎이 꽃으로 변하는 제2의 봄. ―알베르 까뮤(1913 1960,프랑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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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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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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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연진아, 멋지다 루카셴코
“파이팅, 박연진. 브라보. 멋지다, 연진아.”
끔찍한 학교폭력의 피해자 동은(송혜교)은 ‘자랑스러운 동문상’을 받는 가해자에게 손뼉 치며 찬사를 보낸다. 그게 칭찬일 리 없지. 복수를 알리는 선언이다. 말을 포함해 모든 기호는 그 자체로는 아무 뜻도 갖지 못한다. 그걸 보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뭔가가 격발될 때 비로소 기호로서 의미를 갖는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열광과 환호,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도 조롱과 비꼼으로 읽힌다.
러시아 옆에 벨라루스라는 나라가 있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대통령 루카셴코는 소련 해체 뒤 1994년부터 집권해 지금까지 무려 30년을 철권통치 중이다. 2011년에도 당국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반정부 구호를 외칠 수도, 시위대를 조직할 수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기발한 생각을 한다. ‘박수치기’. 시민들은 광장을 서성거리다가 순식간에 모여 박수를 쳤다. ‘멋지다, 루카셴코!’ 그러곤 다시 침묵. 당국은 박수치는 걸 전면 금지했다. 사복경찰은 박수치는 사람이면 누구든 체포했다. 그중엔 팔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도 있었다. 독재자 루카셴코의 지지자들조차 그를 성원하기 위해 박수를 치려다가 움찔하며 못 치게 됐다는 소문도 들렸다.
모스크바 크렘린궁 부근에서 한 남성이 행인들에게 전단을 나눠줬다. 경찰이 그를 체포한 뒤 압수한 전단을 보니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였다. 뭐가 잘못됐는지 다 아는데 굳이 따로 뭘 적을 필요가 있겠냐는 거였다.
종잡을 수 없이 돋아나는 부지깽이를 봐서 그런지 저런 얘기들이 자꾸 떠오른다. 조롱하는 기호.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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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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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 한용운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視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聽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밖의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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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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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9. 여걸 천하(여후, 진평)
5)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두희는 문제의 황후로 조나라의 관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원래 명문 집안 출신이었으나, 집이 가난하여 일찍부터 궁중에 시녀로 뽑혀 들어가 여후를 섬기고 있었다. 얼마 후 여후는 궁중에 있는 여인들을 제후들에게 후궁으로 보냈는데, 두희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두희는 조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조나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저를 꼭 조나라에 보내 주시는 거죠?"
담당자는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담당자는 막상 그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녀를 대나라로 가는 일행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그 보고서가 그대로 여후에게 승인되었다. 그래서 두희는 할 수 없이 대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녀는 울며 불며 담당자를 원망했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대나라는 북쪽의 오지로서 흉노와 국경을 맞댄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그녀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대나라로 향했다. 대나라로 간 두희는 다행스럽게도 왕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런데 대나라 왕에게는 왕비가 있었고 그 사이에 4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왕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왕비가 난 아들들도 이상스럽게 차례로 병이 들어 모두 죽고 말았다. 그 후 여후가 죽고 여씨 일족이 몰락하자, 중신들은 여씨를 싫어해 박희의 아들이었던 대나라 왕을 천자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대나라 왕이 황제로 즉위하여 몇 달 뒤에 태자를 정하게 되자 아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두희의 장남(후의 경제)이 태자로 뽑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두희는 황후의 지위에 올랐다. 그렇게도 가기 싫어했던 곳으로 가서, 결국 황후가 된 것이었다.
이산가족 상봉
두희에게는 소군이라는 남동생이 있었다. 그러나 집안이 워낙 가난했었기 때문에 소군은 너댓 살 때 장사꾼에게 팔려 가야 했다. 소군은 그 뒤 10여 차례나 주인이 바뀌면 팔렸다. 그래서 나중에는 의양 땅에서 숯을 구으며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해가 져서 어두워지자, 그는 동려 백여 명과 함께 낭떠러지 밑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벼랑이 무너졌다. 그래서 모두 압사당했으나, 오직 소군만이 요행히도 목숨을 건졌다. 소군이 무사히 살아간 뒤, 점을 쳐 보니 며칠 후에 제후가 된다는 점괘를 얻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소군은 이튿날 장안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그곳을 떠돌다 소문을 들으니 이번에 새로 즉위한 왕의 황후가 관진 출신으로 두시라는 것이 아닌가. 그는 혹시 어릴 적 헤어졌던 누나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는 어려서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 이름과 자기 성씨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옛날 누나와 뽕잎을 따다가 나무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두희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황제는 곧 소군을 불러 들였다. 여러 가지 확인해 보니 그의 대답은 상소문과 똑같았다. 황제가 물었다.
"혹시 다른 증거는 없는가?"
그러자 소군이 대답했다.
"누나가 나를 두고 장안으로 올라갈 때 주막에서 헤어졌습니다. 그때 누나는 쌀뜨물을 얻어다 제 머리를 감겨 주고 밥을 얻어 먹여 주었습니다. 그러고나서 누나는 떠나갔습니다."
이 말을 듣자 두희는 자기 동생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는 바로 뛰어가 동생을 얼싸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다. 황제는 소군에게 집과 밭을 주고 또 후한 선물을 내려 주었다. 그리고 덕망있는 학자들을 그와 사귀게 하였다. 하지만 소군은 결코 자랑하지도 않고 뽐내는 일 없이 겸손한 자세로 살아갔다. 그 후 소군은 제후로 임명되었다. 또한 두희의 사촌 형제인 두영은 용기있는 사람이었으며, 오초 7국의 난 때 진압에 큰 공을 세워 벼슬을 받고 승상의 자리까지 올라 갔다. 한편 두희는 황제와 노자의 가르침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들인 경제를 비롯해 궁중의 모든 사람들이 황제나 노자의 글을 즐겨 읽게 되었다.
밀어 주려면 확실하게 밀어 주어라
두희는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두었다. 바로 경제와 양왕, 그리고 큰 딸이라는 의미의 장공주였다. 그런데 장공주는 출가한 후에도 자주 궁궐에 나타나 어머니 두희(두태후)와 함께 힘을 발휘하였다. 이때 경제는 할머니인 박희의 집안에서 박씨 여인을 맞아 황후로 삼고 있었지만, 사이가 좋지 않아 박희가 죽자 바로 폐위시켜 버렸다. 그러므로 황후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당시 경제에겐 모두 6명의 여자가 낳은 14명의 아들이 있었다. 나이로 보면 율희가 낳은 유영이 가장 큰 아들이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유영은 태자가 되었다. 한편 경제의 누나인 장공주는 자기 딸을 외조카인 태자와 결혼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태자의 어머니인 율희는 시누이인 장공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공주가 경제에게 많은 미녀들을 추천해 붙여 주었고 그 미녀들은 율희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율희는 장공주의 제의를 한 마디로 거절했다. 그 뒤부터 장공주는 올케인 율희에게 복수할 날만을 기다렸다. 그녀는 경제에게,
"율희는 후궁들을 만날 때마다 내시를 시켜 뒤에서 침을 뱉게 하고 괴상한 주문을 외우는 것 같소."
라고 율희를 비방하는 등 기회만 있으면 율희를 헐뜯었다. 이에 경제도 점점 율희를 멀리 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경제가 몸이 아파 앞날이 걱정되던 끝에 율희에게 상의했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식들을 잘 부탁하오."
그러나 율희는 차가운 목소리로,
"다른 여자가 낳은 자식들까지 돌볼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경제는 매우 속이 상했다. 이때 장공주는 자기 딸을 왕부인의 외아들(뒤의 한무제)에게 시집보냈으며, 그래서 그녀는 왕부인과 짜고 율희를 어떻게든 쫓아내려 했다. 그 무렵 율희는 자기가 황후가 되는 것이 어떠냐고 경제에게 자주 말해 봤지만, 경제는 계속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부인은 공작을 꾸몄다. 즉, 시종관을 시켜 황제에게 율희를 황후로 맞아야 한다고 진언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에 시종관이 경제를 찾아 뵙고 말했다.
"아들이 귀하면 어머니도 귀한 법입니다. 지금 태자의 어머니가 아무런 작위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마땅히 황후로 맞는 것이 옳을 줄 압니다."
이 말을 들은 경제는 완전히 격노했다. 그리고는 바로 시종관을 투옥시키고 처형시켜 버렸다. 또한 태자까지 폐위시켜 버렸다. 이렇게 되자 분을 참지 못한 율희는 마침내 자살해 버렸다. 그 뒤 왕부인이 황후가 되었고, 그 아들 철이 태자에 올랐다. 그리고 태자는 경제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니, 그가 바로 한나라를 전성시대로 이끈 무제였다.
여인의 치마폭에 둘러싸인 황제
한무제는 영걸스러운 황제였지만, 초기에는 주위의 여인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16세에 즉위한 무제에게는 우선 할머니인 두태후가 있었고 어머니 왕태후가 있었으며, 그리고 장모이면서 고모이기도 한 장공주도 있었다. 이들 모두 무제를 황제로 만든 일등 공신들이었다. 두태후는 노자에 심취해 유교를 선호하는 무제와 그를 둘러싼 신흥세력을 결사적으로 견제했다. 또한 두태후의 친족인 두영과 왕태후의 이복동생인 전분은 인척 관계를 이용해 마음대로 권세를 휘둘러 방자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무제의 부인은 진황후였는데 바로 장공주의 딸로서 사촌간이었다. 그런데 진황후는 자기 어머니인 장공주가 무제의 즉위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는 점을 항상 과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녀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이른바 석녀였다. 설상가상으로 무제의 형제는 1남 3녀로 모두 여자 형제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무제는 온통 여자들에게만 포위되어 있는 셈이었다. 나이도 어린데. 이러한 무제를 가엾게 여긴 사람이 다름아닌 누나, 평양공주였다. 그녀는 출가했으면서도 무제와 잘 통했고 그래서 무제는 자주 그녀의 집에 놀러갔다. 평양공주도 그러한 무제를 위해 성대한 잔치도 베풀고 미녀들로 하여금 시중까지 들게 하였다.
어느 날 무제가 평양공주의 집에 들러 잔치를 벌였다. 그때도 역시 미녀들이 왔는데, 무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윽고 노래를 부르는 기회가 나왔는데, 무제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했다. 당시에는 귀인이 용변을 본 후에는 옷을 모두 갈아입어야 했다. 그래서 하인 한 명이 언제나 수행하도록 했다. 그 날 무제가 가희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안 평양공주는 그녀에게 그 시중을 들게 한 것이다. 변소라 하지만 공주의 집인지라 옷 갈아 입는 곳도 매우 넓었다. 어쨌든 그녀는 평양공주의 하녀로 위청의 누나였다. 그 뒤 위자부는 궁중에 들어가 아들을 낳고 드디어 아기를 못 낳는 진황후 대신 황후가 되었다.
진황후는 그 후 미도를 했다는 죄로 유폐되었다. 미도란 나무로 만든 인형을 땅 속에 묻어 특정 인물을 저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은 엄격한 법 적용으로 혹리로서 유명한 장탕이 심리했는데, 무제는 처형하는 대신 그녀를 유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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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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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어외(先始於?)
先:먼저 선. 始:비로소 시. 於:어조사 어(…에,…에서,…보다). ?:높을 외.
[출전]《戰國策》〈燕策 昭王〉
‘먼저 외(?)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나(너)부터 또는 말한 사람(제안자)부터 시작하라는 말.
전국 시대, 연(燕)나라가 영토의 태반을 제(齊)나라에 빼앗기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즉위한 소왕(昭王)은 어느 날, 재상 곽외에게 실지(失地) 회복에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방법을 물었다. 곽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옛날에 어느 왕이 천금(千金)을 가지고 천리마를 구하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 얻지 못했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잡일을 맡아보는 신하가 천리마를 구해 오겠다고 자청하므로 왕은 그에게 천금을 주고 그 일을 맡겼나이다. 그는 석 달 뒤에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고 달려갔으나 애석하게도 그 말은 그가 도착하기 몇 일 전에 죽었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죽은 말의 뼈를 오백 금(五百金)이나 주고 사 오자[賈死馬骨]’ 왕은 진노하여 ‘과인이 원하는 것은 산 천리마야. 누가 죽은 말뼈에 오백 금을 버리라고 했느냐’며 크게 꾸짖었나이다. 그러자 그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천리마라면 그 뼈조차 거금으로 산다는 것을 안 만큼 머지 않아 반드시 천리마를 끌고 올 것’이라고 말했나이다. 과연 그 말대로 1년이 안 되어 천리마가 세 필이나 모였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전하께오서 진정으로 현재(賢才)를 구하신다면 ‘먼저 신 외부터[先始於?]’ 스승의 예를 받도록 하오소서. 그러면 외 같은 자도 저렇듯 후대를 받는다며 신보다 어진 이가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스스로 모여들 것이옵니다.”
소왕은 곽외의 말을 옳게 여겨 그를 위해 황금대(黃金臺)라는 궁전을 짓고 스승으로 예우했다. 이 일이 제국(諸國)에 알려지자 천하의 현재가 다투어 연나라로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는 조(趙)나라의 명장 악의(樂毅)를 비롯하여 음양설(陰陽說)의 비조(鼻祖)인 추연(鄒衍), 대정치가인 극신(劇辛)과 같은 큰 인물도 있었다. 이들의 보필을 받은 소왕은 드디어 제국(諸國)의 군사와 함께 제나라를 쳐부수고 숙원을 풀었다.
[주] 매사마골 : 쓸데없는 것을 사서 요긴한 것이 오기를 기다린다. 쓸데없는 것이라도 소중히 다루면 현인은 그에 끌려 자연히 모여든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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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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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원샷'에 울었다
저는 스물 다섯된 미혼인 직장여성입니다. 이종환 아저씨도 술 좋아하시죠? 저희 집안은 예로부터 술 때문에 되는 일이 없었던 집안입니다.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큰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 또 그 대를 이은 아들들, 그에 버금가는 사위들... 이렇게 남자들은 모두 술 하면 한 가닥씩 합니다. 집안의 남자들만이 술을 과하게 마시는데 그 사이에 몇 번째 유전자가 반항을 했는지 돌연변이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돌연변이가 바로 접니다. 딸 셋 중에 둘째 딸인 제가 그 대를 이어 열심히 마시고 있으니까요. 친구들도 역시 끼리끼리 모인다고 제 주변에서 술 못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었지요. 그 절친한 친구들의 혼삿길이 막힐까봐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몇 명의 친구들 얘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레몬소주는 약하다며 "아저씨, 여기 글라스 아나 주세요."하며 맥주컵으로 레몬소주를 마시는 서XX양. 유성에서 나이트, 단란주점을 거치며 한참을 놀다보니 너무 늦은것 같아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으려고 보니까 날이 훤한 것 같은데 버스가 불을 켜고 다니더라는 송XX양. 벌써 새벽이었던 거지요. "술을 마시면 술이 나고 그래서 내가 곧 술인기라."하는 임XX양. 이 친구들이 저와 술로는 쌍벽을 이룬답니다. 우리는 늘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합창했고, 남자보다 술을 좋아해서 회식때는 물론이고 가끔은 점심때도 반주로 소주 몇 병을 합니다. 당연히 저에게도 기회는 오지요. 어른들이 권하는 거라서 예의상 다 받아서 마십니다. 이렇게 음주근무를 해도 일 잘하고 은행 볼일 다봅니다. 두 분이 믿으실지 모르지만 이 모두가 실화입니다.
졸업후 몇 년을 술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해도 뭐 별로 문제가 없었습니다. 취해서 집 못 찾아온 적도 없구요. 술주정을 하거나 추태를 보인 적도 없습니다. 술은 역시 술맛을 아는 사람이 마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중에 한 명입니다. 그런데 어는 날 제가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우린 서로 한눈에 삐리릭 했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이 사람은 술을 거의 못하는 거예요. 거기다가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물었지요.
"어떤 여자가 싫으세요?" 그랬더니 청천벽력 같은 대답을 하는데...
"저는 술을 안 좋아해서 그런지 술을 마시는 여자가 제일 싫더라구요. 특히 남자보다 더 잘 마시는 여자 있지요. 그런 여자는 웬지 여가로 안 보여요. 선화씨는 제가 싫어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군요."
이를 어쩌면 좋담... 그 자리에서 '저는 소주 두 병이 기본이에요. 호호호.' 그 얘기는 차마 못하겠더라구요. 그때부터 저의 고난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람 친구들과 술자리가 생겨도 술은 생전 처음 대하는 양 고개를 돌려야 했고, "술 한 잔 하세요?"하고 친구들이 권해도 한 잔 받아만 놓고 아무리 군침이 고여도 마시지 못하고 잔을 들었다놨다 하기를 여러 번... 그러다가 운좋게도 "요즘에 술 못하는 여자가 어딨어요? 반잔만 해봐요."하고 권하면 못 이기는 척하며 일단 인상을 쓰고 반잔만을 홀짝 마시고 그렇게 달디단 술을 "아이 써!"하면서 술잔을 내려놓곤 합니다. 그런 모습을 애처로운 듯 쳐다보는 그 눈빛도 싫지는 않더군요. 한번은 저도 모르게 습관대로 '원샷'하다 놀라서 잔을 내려놓은 적도 있습니다. 개버릇 남 주겠습니까... 이러다 보니 절 술 한 잔도 못하는 여자로 알더라구요. 제 심정이 어땠겠어요? 안주 좋겠다, 술도 공짜로 마음껏 제공되겠다... 그 좋은 자리에서 안주만 집어먹어야 하는 이 술꾼의 심정은 그야말로 술 마시고 난 다음날보다도 더 속이 쓰렸습니다.
우린 매일 만나다시피 했어요. 그러면서도 알코올이 그리워지더군요. 어쩌다가 그 사람이 약속이 생겨 못 만나는 날에는 친구들을 불러내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지방으로 며칠 출장을 가시게 되었는데 이 철없는 딸이 이 좋은 기회를 어찌 그냥 넘기랴... 그 사람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습니다.
"저 오늘은 아파서 못 만나겠어요. 으실으실 추운 게 집에 가서 좀 쉬면 나으려나 어떡하지요?"
물론 그 사람은 당연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집에서 쉬라고 했고,전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아흐!!! 술이 나를 부른다.'그리고 집엔 전화를 해서 동생에게 당부를 했지요. "만약에 그 사람한테 전화 오면 나 아파서 잔다고 그래 알았지?" '이 정도면 뭐 완벽하지' 속으로 자만하면서 제 술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 "아 마셔,마셔.부어라 마셔라, 원샷! 원샷!"이러면서 알코올에 흠뻑 취해 집에 돌아와서는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 옷도 그냥 입고 쓰러져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는 저를 아주 섬뜩할 정도로 흘겨보시는 거예요.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서 화가 나셨나보다 했는데 동생이 그러더군요. 그 사람이 집에 전화를 했었다구요. 동생은 시키는 대로 아파서 잔다고 했는데, 늦은 밤에 도저히 걱정이 된다며 과일을 사가지고 집으로 찾아왔다는 거예요. 사색이 된 엄마는 아파서 자는데 그냥 과일이나 먹고 가라는 만류에도 "아니, 얼마나 아프기에 그럽니까.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하면서 방에 들어섰답니다. 그 방안에는 지우지도 않아 번져 있는 화장에 대자로 뻗어 있는 무방비상태의 몸,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숨을 헉헉거리며 자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는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 듯 다가와 냄새를 킁킁 맡더니 잠깐 긴장하는 듯 움찔 하더래요. 그러더니 늦었으니 간다면서 획 가버렸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 동안 그 좋은 술 다 마다하고 그렇게 공들여 탑을 쌓았건만 한번의 실수로 저는 이쯤 되니 이판 사판 공사판의 뻔뻔함으로 밀어 붙이기로 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어제 왔었다면서요?"
"선화씨, 이럴 수가 있습니까? 술은 입에도 못댄다고 하더니 술에 곯아떨어져요? 게다가 나를 속이고 술을 마셔요?"
어쩌구저쩌구 일장연설을 하더라구요. 하지만 다행히도 헤어지자는 말은 안했습니다. 그저 술 마시는 거 좀 자제하고 이제부터는 모든걸 솔직히 얘기하기로 약속을 했지요. 하지만 그 후부터는 친구들과 모임중에는 꼭 호출기가 몇번은 울려댑니다. 첫 번째 통화에는 "저 한잔도 안 마셨어요." 두 번째 통화에는 "딱 한 잔 마셨어요. 일찍 갈 거예요." 세 번째 통화에는 "딱 두 잔 마셨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네네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호출이 와도 전 전화를 못합니다. 너무 즐겁거든요. "야야 마셔 마셔, 내가 뭐 무서워서 못마시냐 마시자 마셔. 아줌마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이놈의 술 때문에 참 많이도 싸웠습니다. 정말 술과의 전쟁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을 사주며 걱정해 주고 조금씩 이해해 줍니다. 그리고 저 또한 술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구요. 소주 한 병만 마시기로요. 우리의 사랑은 술로도 깨어질 수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술만큼 친하게 엮어주는 게 또 어딨겠습니까? 그 대신에 가족과 주변에 결코 피해는 주지 말야야겠지요.
폭주가 여러분! 술은 마시되 다른 애주가가 욕먹지 않도록 조심해서 마십시다. 술과의 전쟁이란 얘기가 요즘 많이 들리는데 그 얘길 듣고 기세등등하게 웃고 있을 한 남자 얼굴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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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과학/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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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운명 빅뱅과 그 이후 - 트린 후안 투안
제 5장 행성의 탄생
외계인
지구에서 띄워보낸 메시지
칼 세이건은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에 실려 현재 우주 공간을 여행중인 금속판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를 회상하고 있다. 케이프 케네디 기지에서 파이어니어 10호가 발사되던 1972년 3월 3일, 외계의 문명과 교신해 보려는 인류 최초의 역사적인 시도가 있었다. 파이어니어 10호는 목성의 환경의 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우주선으로서 비행 도중에 화성 궤도와 목성 궤도 사이에 있는 소행성들도 조사하게 되어 있었다. 이 우주선은 소행성의 방새를 받지 않고 그 궤도를 유지했다-안전 확률은 20:1로 예측했다. 파이어니어 10호는 1973년 12월 말에 목성에 접근하고,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속도를 높여서 태양계를 벗어나는 최초의 인공물이 된다. 태양계 탈출 속도는 초속 약 11킬로미터이다. 파이어니어 10호는 지금까지 인간이 발사한 물체 중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이다. 하지만 우주는 너무 광대하고 별들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다. 따라서 은하계 내의 모든 별이 행성계를 이루고 있다고 가정해도, 파이어니어 10호는 100억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다른 별의 행성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 우주선이 4.3광년 떨어진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는 데만도 약 8만 년이 걸린다. 더구나 파이어니어 10호는 가장 가까운 별을 향해 나가도록 방향이 잡혀 있지 않다. 그 대신 천구상에서 황소자리와 오리온 자리의 경계에 있는 한 점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쪽으로는 가까운 천체가 없다. 이 우주선이 외계 문명과 만나더라도, 그 외계 문명이 성간 우주 비행을 할 정도로 고도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침묵의 우주에 떠 다니는 물체를 찾아내어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파이어니어 10호에 메시지를 넣은 것은 조난 선원이 구조 요청 쪽지가 든 병을 바다에 띄우는 것과 흡사하다. 단지 우주라는 바다는 지구상의 어떤 바다보다도 넓을 뿐이다. 내 생각에는 이 우주 시대의 메시지 병을 띄우는 것이 일리가 있었다. 나는 파이어니어 10호의 프로젝트 담당자와 NASA의 고위층을 만나 이 제안을 실행에 옮길 여지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놀랍고도 다행스럽게도, 대개는 우주선의 극히 미미한 것을 바꾸려 해도 관례적으로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이 제안을 NASA의 모든 층의 스태프들이 쾌히 승락했다.
[파이어니오 11호]
1971년 12월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열린 미국 천문학회 회의 기간 동안, 나는 같은 코넬 대학 교수인 프랭크 드레이크와 가능한 여러 가지 메시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사람의 모습은 화가인 내 아내 린다 샐즈먼 세이건이 추가한 것이다. 이것이 그 목적에 비해 최선을 다해 만든 메시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메시지를 구성하고 NASA의 승인을 얻어, 마지막으로 금속판에 새기는 데까지 전부 걸린 시간이 겨우 3주였다. 똑같은 금속판이 파이어니어 11호에 실려 1973년에 발사되었다. 파이어니어 11호는 10호와 비슷한 임무를 띠고 있다. 메시지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22㎝와 15㎝인 금도금 알루미늄판에 새겨져 파이어니어 10호의 안테나 지지대에 부착되었다. 우주 공간에서 부식되는 속도는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이 메시지는 수백만 년이 지나도, 또는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처음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덕분에 이 금속판은 지구에서 만든 것 중 수명이 가장 오랜 예술품이 될 것이다. 메시지는 우주선이 만들어진 장소와 시간, 제작자의 모습을 전달하고 있다. 메시지는 우리가 수신자와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인 과학을 이용하여 표현되어 있다. 금속판의 왼쪽 위 그림은 중성 수소 원자에서 양성자와 전자가 평행한 스핀을 가진 경우와 그 반대의 스핀을 가진 경우 사이에 일어나는 하이퍼핀 전환을 도식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2진수 1이 있다. 수소의 이와 같은 전환은 파장 21㎝, 진동수 1420NHz인 전파의 광자가 방출되면서 동시에 일어난다. 즉 이 전환으로 생긴 특이한 거리와 특이한 시간이다. 수소는 은하계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이며, 물리 법칙도 전은하계에서 똑같기 때문에, 발전된 문명이 메시지의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인을 위해서 오른쪽 여백에 두 개의 토트 표시 사이에 2진수 8(1---)이 있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그림 뒤에 대강 그려놓은 파이어니어 10호의 높이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금속판을 손에 넣은 외계 문명은 물론 우주선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암시된 길이가 8에 21㎝를 곱한 것과 거의 비슷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왼쪽 위에 있는 상징물이 수소의 하이퍼핀 전환을 나타낸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나아가 2진수는 왼쪽 중앙에 있는 방사형 그림 둘레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수들은 10진수로는 10개의 숫자로 표현되는 큰 수들이다. 이 수들은 거리와 시간을 나타낸다. 만일 거리를 알려면 이 가운데 일부 수에 1011㎝를 곱해야 하며, 10여 개에 대해서는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곱해야 한다.
도대체 이것을 이용해 외계 문명과 제대로 교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했다니, 왜냐하면 태양계 내의 천체들의 운동을 보면 그러한 거리가 계속해서 또 복잡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에 대해서는 10분의 1초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우주의 전파원인 펄서들의 독특한 전파 방출 주기이기 때문이다. 펄서는 별의 급격한 폭발로 만들어진 중성자별로, 매우 빠른 속도로 자전을 한다. 과학이 발전한 문명이라면 방사상으로 폭발하는 이 그림이 우주선의 발사 장소인 태양계 주위에 있는 14개 펄서들의 위치와 주기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펄서라는 이 우주의 시계는 시간이 점점 느려지는 시계이다. 따라서 메시지의 수신자는 상대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 14개의 펄서를 볼 수 있었던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이들 펄서를 관측했던 시간이 '언제'였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사 결과는 "은하계의 극히 작은 한 부분에서 은하계의 역사 중 한해에" 그런 일이 있었다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부분에는 약 1000개의 별이 들어 있지만, 금속판 맨 아래에 나타낸 상대적인 거리를 갖는 행성들을 보유한 별은 오직 한 개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에서는 행성들의 크기와 토성의 고리를 대충 볼 수 있다. 또한 지구에서 발사되어 목성을 지나는 우주선의 발사 초기의 개략적인 궤적도 나타나 있다. 메시지는 이런 식으로 2500만 개의 별 중 하나에 대하여, 그리고 100억 년이라는 시간 중에서 특정한 한 해(1970)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파이어니어 10호를 가져가 제대로 조사할 수 있는 고도의 외계 문명이라면 메시지의 내용은 분명히 전달된 것이다. 하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지구의 보통 사람에게도 어렵기 때문에 지구 정도의 문명이라면 불분명하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지구의 과학은 이 메시지를 만드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오른쪽에 있는 지구의 인간을 나타낸 그림은 그 반대의 경우이다. 45억 년 동안에 독립된 생물 환경에 있었던 외계인은 아마도 인간을 닮은 데라곤 없을 것이다. 또한 사물을 보는 방법과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여기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물을 보는 방법과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여기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 메시지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다. 칼 세이건, '우주에서의 만남: 외계인의 시각', 1973년
새로운 경관을 보여주는 허블
지난 여름과 가을(1990), 계획 입안자들은 HST의 두 가지 영상 장비-광시야 차동 카메라(Wide Field/Planetary Camera, WF/PC)와 박명체 카메라(Faint Object Camera)-의 능력을 시험해 보았다. 그 결과로 얻은 영상은 거울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HST가 지상에서는 대부분 하기 힘든 최전선의 천문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 몇몇 관측에대해서는 구면 수차에 의한 피해가 크지 않아서 거의 수정 없이 임무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계획들은 너무 심각한 타격을 입어서 HST를 수리할 때까지는 죽은 것이나 같다. 계획된 관측 임무의 대부분은 양극단 상태 사이에 끼이게 되었다. 이들 계획은 고장난 상태의 망원경을 이용해 여전히 진행될 것이지만, 노출 시간의 증대와 같은 몇 가지 보완을 거칠 것이다.
먼 거리의 이웃들
오랫동안 허블 망원경의 목표였던 것이 바로 명왕성과 그 위성 카론이다. 박명체카메라의 과학팀은 실망하지 않았다. 이 팀은 명왕성을 HST로 태양계 내에서 처음으로 관측한 물체로 만들었다. ...... 명왕성과 카론은 박명체카메라로 촬영하기 전까지는 사진에서 결코 분리된 상태로 보인 적이 없었다(115페이지 참조). 명왕성은 카론보다 2배 정도 크고, 메탄으로 된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어서 물로 된 얼음으로 덮인 카론보다 햇빛을 잘 반사하기 때문이다. ...... WF/PC팀은 보다 큰 목표인 토성을 향해 나아갔다. 토성을 찍은 첫 영상은 과거 지상에서 찍은 사진들보다 훨씬 선명했다. 비록 지상에서는 훈련된 관측자가 망원경에 직접 눈을 대고 그런 선명한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토성 북극 지역의 확대 사진은 득이한 육각 구조를 포함하여 대기의 구조를 잘 보여준다. HST가 촬영한 토성 사진의 선명함은 토성을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의 2배쯤 되는 곳에 가져다 놓고 맨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한 정도이다.(시지름 7도 정도의 엄청난 크기로 보일 것이다.) 토성은 또한 이 계획에서 '행운의 관측목표'를 갖게 된 최초의 대상이기도 하다. 비록 허블 망원경의 관측 일정은 대개 몇 주 단위로 정해지지만, 몇 개월이 아니면 거의 예고 없이 망원경의 목표를 특별히 흥미 있는 물체로 선정할 수 있는 것이다.
9월(1990) 하순에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토성 표면에 거대한 흰 점이 나타난 것이다. 토성에서 60년 만에 처음으로 일어난 대규모 대기 폭발이었다. 천문학자들은 이 사건을 허블 망원경의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려 했다. 천문학자들은 11월 초에 기회를 얻었다. HST 영상은 과학자들이 구름의 운동과 수직 성장에 대해 전례 없이 자세히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대기에서 이번 사건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안개의 제거 작업
영상 처리는 이제껏 진행돼 왔고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며, HST 카메라 영상 처리도 중요한 작업이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완벽한 망원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가까운 영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몇 가지 점에서 이 작업은 처음 생각한 것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HST로 별을 촬영하면 중심부의 밝은 부분에 커다랗고 뿌연 안개로 둘러싸인 습의 영상이 생길 것이다. 이것은 거울의 구면 수차 때문에 생기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만일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할 때 이렇게 왜곡되어 만들어진 영상의 모습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 과정을 거꾸로 뒤집을 수도 있을 것이고, 따라서 어떠해야 하는지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반회선(反回旋) 기술이라는 이 기술은 몇 가지 점에서 매우 훌륭하다.
장래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 가장 큰 피해는...... 우주의 팽창 비율을 알려주는 허블 상수의 측정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HST를 위해 준비한 3개의 핵심 계획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이졔 새로운 광시야 차동 카메라, 즉 WF/PC Ⅱ를 우주왕복선 조종사들이 설치할 1993년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허블 상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허블 망원경으로 먼 곳에 있는 외부 은하들 속에서 24등급 별들과 이보다 더 흐린 별을 관측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것은 별들의 밝기 측정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면 수차가 생기는 곳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 겨울 동안에는 사진 관측과 광전 관측을 위한 과학 사정 계획이 계속될 것이고, 과학 프로젝트도 진행될 것이다. 다른 천문학자들은 그들의 계획을 재평가하며 계획을 실행해야 할지, 한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생각할 것이다. 그 동안에 HST는 지구 주위를 돌며 지시받은 것을 수행하고, 천문학자들에게 우주의 비밀에 관한 각종 자료를 보내줄 것이다. 리처즈 탤컷, '천문학회지' 19권 2번, 1991년 2월
[허블 우주망원경]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 2021년 12월 25일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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