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5호 2023.2.14 화요일 (음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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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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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만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바라보아서
우리를 위해 열려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When one door closes, another opens,
but we often look so long and so regretfully upon the closed door
that we do not see the one which has opend for us.
< A. Graham B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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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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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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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과 남사친
말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을 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처음엔 얌전히 화를 내던 사람이 자기 말에 취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걸 본 적이 있을 거다. “보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이 더 보고 싶어지는 경우도 많다. 말은 감정을 격동시킨다. 들쑤신다.
안 믿기겠지만, ‘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우정’의 요소가 들어 있다. 사랑의 감정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고 그에게 더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애인은 친구이자 동지이다.
사랑 속에 우정이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남자친구, 여자친구’란 말이다. 맹랑하게도 이 말은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사랑 속에 우정의 가능성이 없다면, ‘친구’라 쓰고 ‘애인’이라 읽을 수는 없다. 사랑 속에 있는 우정의 요소를 실마리 삼아 사랑을 대신 뜻하게 된다(환유).
한국 사회는 우정과 사랑을 대립시키고, 친구와 애인을 엄격히 구분해왔다. 이성애적 시각에서 남녀 간에는 우정이 성립될 수 없다고 믿어왔다(‘그게 본능이야. ‘결국’ 사랑하게 돼!’).
‘남사친’, ‘여사친’이란 말은 관계의 입체성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에 바치는 젊은이들의 항복 선언이다. 사랑의 본원적 의미 속에 있는 우정을 분리 독립시켰다. ‘남친’이 사랑을 먼저 차지했으니, 사랑 없는 우정의 자리는 ‘남사친’이 채웠다. ‘남친’과 ‘남사친’이라는 두개의 말을 갖춤으로써 사랑과 우정은 합법적으로 갈라섰다. 하나 어쩌랴. 여전히 ‘남친’ 속엔 우정이, ‘남사친’ 속엔 사랑이 숨어 있는 것을.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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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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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 - 한용운
나의 노래가락의 고저 장단은 대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속의 노래 곡조와는 조금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노래가 세속 곡조에 맞지 않는 것을
조금도 애달파하지 않습니다.
나의 노래는 세속의 노래와
다르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까닭입니다.
곡조는 노래의 결함을 억지로 조절하려는 것입니다.
곡조는 부자연한 노래를
사람의 망상으로 토막쳐 놓은 것입니다.
참된 노래에 곡조를 붙이는 것은 노래의 자연에 치욕입니다.
님의 얼굴에 단장을 하는 것이
도리어 흠이 되는 것과 같이, 나의 노래에
곡조를 붙이면 도리어 결함이 됩니다.
나의 노래는 사랑의 신(神)을 울립니다.
나의 노래는 처녀의 청춘을 쥐어짜서,
보기도 어려운 맑은 물을 만듭니다.
나의 노래는 님의 귀에 들어가서 천국의 음악이 되고
님의 꿈에 들어가서 눈물이 됩니다.
나의 노래가 산과 들을 지나서
멀리 계신 님에게 들리는 줄을 나는 압니다.
나의 노래가락이 바르르 떨다가 소리를 이루지 못할 때에
나의 노래가 님의 눈물겨운 고요한 환상으로 들어가서
사라지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압니다.
나는 나의 노래가 님에게 들리는 것을 생각할 때에
광영에 넘치는 나의 작은 가슴은
발발발 떨면서 침묵의 음보를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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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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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7. 하늘이 내린 명의(편작, 창공)
2) 자연에 상응해야 병이 없다(창공) 1/2
창공은 태창 지방의 장관으로 원래 이름은 순우의였다. 젊었을 때부터 의술을 좋아했으며, 스승인 양경공이 알고 있던 모든 의술을 파기토록 하고 자기의 비방을 전수해 주었으며, 황제와 편작이 남긴 맥서도 전했다. 그리하여 창공은 얼굴에 나타나는 오장의 상태를 진단하여 환자의 병을 알아내고, 의심스러운 질병을 판단하여 그 치료법을 결정하는 방법에 통달했다. 또한 약물에도 정통하게 되었다. 그 후 천하를 돌아다니며 환자를 치료하고 질병의 원인을 구명하는 데 힘썼다. 그리하여 집안일은 돌볼 수도 없었으며 또 그를 부르는 환자가 너무 많아 못가보는 환자들에게 원망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래서 한나라 문제 4년에, 그는 고발되어 처형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 창공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창곡을 붙들고 울었다. 이때 창공이 크게 탄식했다.
"내가 자식을 낳았으되 아들을 낳지 못했더니 이런 일이 생겨도 어쩔 도리가 없구나!"
그러자 막내 딸 제영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소녀의 아버님은 청렴하고 공평하다고 평판이 높았는데, 이제 법에 위반되어 처벌받게 되셨습니다. 이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소녀를 관의 노비가 되게 해서 소녀의 아버님이 스스로 허물을 벗으시도록 해주옵소서."
이 글을 읽은 황제는 딸을 불쌍히 여기고 창공을 풀어주도록 했다.
정확한 진맥이 치료의 근본이다
그 후 창공은 풀려나 지비에서 휴식하며 의술을 연구하였다. 그 뒤 그의 명성을 듣게 된 황제가 하루는 그에게 이제까지 치료하고 다닌 경험을 글로 써올리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창공은 보고서를 올렸다.
방사로 인한 병
제나라의 관리였던 성이 저에게 두통을 호소했을 때 저는 진맥을 하고 "당신의 병은 이미 치료할 수 없을 만큼 악성입니다." 하며 바로 물러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동생에게, "이 병은 옹으로서 앞으로 8일 후 고름을 토하며 죽을 것입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과연 성은 예측한 대로 8일 후에 죽었는데, 그 병은 음주와 방사를 지나치게 한 결과 생긴 것입니다.
제나라 사공의 부인인 출어가 아팠을 때, 인근의 의원들은 모두 풍기가 내부에 들어갔고 주로 폐가 병들어 있다고 판단해 그녀의 다리의 소양맥에 침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맥을 짚어보니 그 병은 오줌을 참고 방사를 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곧 발의 궐음맥 좌우 한 군데씩 뜸을 떴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오줌 색깔이 맑아졌으며 아랫배의 아픔도 그쳤습니다. 다시 화제탕을 만들어 먹이니 사흘 만에 완쾌되었습니다.
두통
치천왕이 아파서 제가 불려가 맥을 짚어보고,
"이 병은 궐상으로 중병입니다. 머리가 아프고 몸에 열이 나며 환자를 괴롭게 만듭니다."라고 말하고 바로 머리에 냉수를 끼얹으며 어루만진 다음, 발의 양명맥의 좌우에 각각 세 군데씩 침을 놓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나았습니다. 그 병은 머리를 감고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로 잠을 잔 것이 원인입니다.
출산 장애
또 치천왕의 첩이 임신하여 만삭이 되었건만 아기를 낳지 못하자 저를 불렀습니다.저는 낭탕약 한 숟갈을 술에 타서 먹게 했더니 잠시 뒤에 출산을 했습니다. 다시 맥을 짚어보니 맥이 시끄러웠는데, 이는 아직 남은 다른 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곧 초석을 먹였더니 피가 나왔습니다. 그 피는 콩 같은 것으로서 대여섯 개나 되었습니다.
남자를 못만나 생긴 병
제북왕을 모시고 있던 한녀라는 비첩이 허리와 등이 아프고 열이 나며 오한을 느꼈습니다. 의원들은 모두 한열병이라고 진단했지만, 제가 맥을 짚어보고, "몸이 냉하여 월경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다음 좌약을 넣으니 곧 월경이 나오고 병이 나았습니다. 그 병은 그녀가 남자를 원하면서도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요통
제나라 왕의 형인 황장경의 집에 좋은 술이 있어 손님을 불렀을 때, 저도 가 보았습니다. 아직 음식을 먹기 전에 와 있던 한 사람을 보니 병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병이 있습니다. 4, 5일 전에 허리가 아파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소변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신장까지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원래 허리와 등이 좀 아팠었는데, 4, 5일 전에 비가 올 때 몇 사람들이 돌을 들어 올리며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저녁 때가 되어 허리와 등쪽이 아프기 시작하여 소변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것이 낫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병은 무거운 것을 들다가 생긴 병입니다. 즉시 유탕을 만들어 복용하게 하니 18일 만에 병이 나았습니다.
충치
제나라의 중대부는 충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서 그의 왼쪽 대양명맥에 뜸을 뜨고 즉시 고삼탕으로 하루에 석 되씩 양치질을 하게 했더니 5, 6일이 지나자 병이 나았습니다. 이 병은 풍이 들고 잠자리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자며, 식후에 양치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발광하다 죽을 병
제나라에 사는 조산부라는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제가 맥을 진찰 한 다음 '이것은 폐의 소단이며, 그 위에 한열병이 발병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안 사람에게는 '불치병으로 곧 죽을 것입니다.' 하며 일러 주었습니다. 의서에 의하면 "앞으로 3일이 지나 발광할 것이다. 함부로 일어나 달리려 하지만 5일이 지나면 곧 죽는다."고 했는데, 과연 그 말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의 병은 화를 크게 낸 후 곧바로 방사를 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제가 이 병을 안 것은 그의 맥을 짚었을 때 폐의 기운이 몹시 뜨거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맥법에 이르기를 "맥박이 정상이 아니고 약해서 막히게 되면 몸이 여위고 쇠약해진다"고 했습니다. 정상이 아니면 피는 있어야 할 곳에 없고, 막히게 되면 상하좌우에서 뒤엉켜 뛰며 별안간 시끄러워졌다가 커졌다 합니다. 이는 폐 사이의 두 낙맥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죽게 되고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3일이 지나 발광한다는 이유는 본래 간의 한 맥락이 젖 아래 양명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맥락이 끊어지면 양명의 맥이 열리고, 양명의 맥이 손상되면 곧 열이 올라 옷을 벗고 달리려는 것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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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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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四面楚歌)
四:넉 사. 面:낯/겉/대할 면. 楚:초나라 초. 歌:노래 가.
[준말] 초가(楚歌).[동의어] 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참조] 건곤일척(乾坤一擲), 권토중래(捲土重來), 걸해골(乞骸骨).
[출전]《史記》〈項羽本紀〉
사면에서 들려 오는 초나라 노래란 뜻. 곧
① 사방 빈틈없이 적에게 포위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
② 주위에 반대자 또는 적이 많아 고립되어 있는 처지.
③ 사방으로부터 비난받음의 비유.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홍구[鴻溝:하남성(河南省)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B.C.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섬서성(陝西省)의 한강(漢江) 북안의 땅]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진평(陳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 한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四面楚歌]’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심리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고?’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의 진중에는 우미인(虞美人)이라 불리는 애인 우희(虞姬)와 추라는 준마가 있었다. 항우는 우희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시를 읊고 또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누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고
우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嗚咽)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불과 800여 기(騎)를 이끌고 중포위망을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혼자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벤 뒤 강만 건너편 당초 군사를 일으켰던 땅, 강동(江東)으로 갈 수 있는 오강(烏江:안휘성 내)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항우는 800여 강동 자제(子弟)들을 다 잃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쳐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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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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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그래, 나는 초보다 - 이순연(여. 대전시 대덕구 법2동)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일입니다. 운전면허증이 뭔지... 일상생활의 필수라는 둥, 지금 안따면 어렵다는 둥, 온갖 이유를 대며 법석을 떨었다는 거 아닙니까. 다리도 짧고 뱃살이 많아 운전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비아냥거리는 남편에게 보란 듯이 낙동강 오리알을 거듭, 또한 여덟번 만에 눈물어린 면허증을 저의 패스포드에 끼워 넣었지요. 그 날의 감격은 팔일오 광복절을 압도하고도 남았습니다.
"흥, 주민등록증 한 개 더 만들고 뭘 그리 좋아하고 그래."
남편의 말이 김샜지만 어디 그게 주민등록증으로 보입니까? 자고로 지금도 낙방을 밥 먹듯이 해서 얼굴이 노랗게 돼버린 사람들이 그렇게 갖고 싶어하는 '자동차 운전면허증'이라는 거 아닙니까. 친구들하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당장 차 끌고 다닐 듯이 호들갑을 떨었지요. 그런데 현실은 저의 환상과 착각을 긴 한숨으로 내뿜어 버리더라구요.
"나 면회갈 일 없으니까 운전대 만질 생각도 말어."
면박주는 남편이 얄미웠습니다. 옆집에 나보다 더 뚱뚱한 송이엄마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냐, 당장 연수등록을 하고 운전을 배우겠다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휴일이었어요. 간밤에 남편을 살살 꼬여 운전 한번 해 보자고 했지요. 그래서 남편을 옆에 태우고 도로로 나섰습니다. 남편의 오른발이 브레이크 밟듯이 힘이 들어가며 들썩들썩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더니 이내 얼굴이 탈색이 돼가고 꼴깍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갑자기 앞차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스톱'소리를 지르기에 팍 서버렸지요. 유리에 박치기를 한 남편은 죽으려고 환장했다느니, 그렇게 둔해가지고 무슨 운전을 하냐느니 성질을 내면서 그렇잖아도 긴장하고 있는 절 주눅들게 하더라구요. 내 참 치사하고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꺼워서 당장 내려 차를 뻥 차고 싶었지만 '고진감래' 문자가 뇌리를 스치면서 '인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한 두어 시간 진땀을 빼고 구박만 잔뜩 먹고 돌아왔지요. 남편의 말투가 은근히 화가 나더라구요. 주방에서 요란스럽게 그릇을 씻으며 화풀이를 했습니다. 그런 저의 등을 향해 남편은 일장 연설을 하데요.
"이 사람아, 자동차 운전이 전자오락인 줄 알어? 사고를 내 본 사람이 운전을 잘하지만 그렇다고 사고를 낼 순 없잖아. 아까 같은 경우는 조금만 늦게 브레이크 밟았으면 범퍼 물어 줄 뻔했어. 운전은 경력이야. 경력은 곧 경험이고.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다 재산이 되니까 그런 상황이 되면 조심하란 말야. 차라는 것은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단 말야. 그리고 내가 초보운전 써 줄 테니까 차 뒤에 붙이고 다녀."
그러더니 도화지에 정성들여 글씨를 쓰더라구요.
'초보운전(출발시 말처럼 펄쩍펄쩍 뜀)'
"아니, 이런 걸 어떻게 붙이고 다녀요?"
"다 생각해서 써주는 거야. 초보의 결함을 구체적으로 써야 다른 차들이 협조를 해 주지. 잘 될 때까지 붙이고 다니고 그거 안 붙이려면 차 만지지 마."
"치사하고 더러워서 나도 차 한 대 장만할까 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아니 가정경제 차원에서 우리집 거덜날 것 같아 할 수 없이 좀 창피했지만 붙이고 다녔습니다.지나가는 차들이 웃느라 정신이 없고 교차로 신호대기 때는 다를 멀찌감치 서더라구요. 남편은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 또 하나를 써 주더군요.
'초보운전(앞 보기도 바빠! 백미러 있으나마나!)'
나 원 참! 갈수록 태산이네요.
"기가 막혀! 날 뭘로 아는 거야. 이거 너무 무시하는거 아냐. 자기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운전 잘했어? 그래 난 앞만 보기도 바빠서 백미러 없어도 된다 왜?"
'나 운전 안해'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또 다시 붙였습니다. 그걸 붙이고 다니는데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낄낄거리며 웃더라구요. 신호대기중이었어요. 택시가 다가오더니 그 기사는 우스워 죽겠다며 이러는 겁니다.
"백미러 필요없으면 저 줘요."
택시 안에 있던 손님들이 배꼽을 잡고 웃더라구요. 그리고 또 제가 다리가 짧다보니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아 있었습니다. 핸들을 꼭 껴안고 고개를 꼿꼿하게 앞만 주시하는 초보모양새 말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핸들이 배에 닿더라구요. 그 옷 부분이 보푸라기가 일어났겠지요. 그걸 보고 남편은 '구멍나기 전에 가죽을 대'라고 놀려 대지 않겠습니까. '그래 놀려라. 나는 오직 고진감래라는 신조 아래 인내로 버티고 산다.' 남편은 망신을 톡톡히 줄 작정이었는지 또 한 가지 써주었습니다.
'초보운전(옆에서 불러도 안 들림)'
정말 미치고 펄쩍 뛰겠더라구요. 내가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하며 운전을 배워야 되나 싶더라구요. 한 번은 급히 정지하느라 시동이 꺼졌는데 그것도 모르고 출발하려니 차가 움직여야지요. 뒤에서는 빵빵거리며 야단이지요, 정신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또 써 준 것이 있습니다.
'초보운전(시동이 켜졌는지 꺼졌는지 잘 모름)'
이래저래 갈 때까지 간 망신. 이젠 망신 불감증에 걸려 신경도 안쓰였습니다. 제 생각엔 어느 정도 운전 실력이 느는 것 같았고 제법 초보티를 벗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남편은 못 미더워서 신경을 엄청 쓰더군요.
"당신말야, 갈수록 겁없이 운전하는데 겁이 많은 사람이 조심하더라구. 당신 그런 식으로 했다간 큰 코 다쳐. 마지막으로 하나 더 붙이고 다녀."
'초보운전(뵈는 게 없음)'
짓궂은 남편 배려에 초보를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운전하고 다니며 욕 먹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나요. 여성 운전자를 눈꼴시럽게 보는 한심한 세태에 그렇게 보는 편견을 꼬집듯이 또 한 장이 굴러다니더군요.
'초보운전(밥 해놓고 나왔음)'
지금은 속도도 낼 줄 알고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지나가는 초보들을 비웃는 저를 발견한답니다. 친구들이 운전을 배운다고 하면 선생님인 양 떠들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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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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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 마루야마 겐지
타인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트집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체험 이나 행동의 범주를 넘어서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설령 소설가라 해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이 점을 분명히 해두고 내 소년 시절 얘 기를 쓰기로 하자.
되바라진 아이였다. 툭하면 어른들의 얘기에 끼어들었으며, 징글 맞도록 붙임성이 좋았고, 너스레도 잘 떨었다. 그런 주제에 성미가 급해 한 번 성질을 부렸다 하면 부모님도 속수무책일 정도로 난동을 피웠다. 또 노력하기는 싫어하면서 폼잡기는 좋아하였고, 무슨일이든 끝마무리가 엉성했다. 그리고 주특기는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이었다. 터무니없는 공상벽이 있어 나 스스로도 넌덜머리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넌덜머리가 날 때면 현실이 똑바로 보이고, 가슴속으로 허망한 바람이 휑하니 부는가 싶으면 금방 실망이란 회오리바람에 휘말리기가 일쑤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근무처인 학교에서 할당해준 밭-식량난 때문에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을 갈고 있었다. 여름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무렵의 생활상은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데.그날 그 순간의 일만은 기억에 생생하다. 아버지는 진짜 농부처럼 익숙한 손놀림으로 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잡초 더미에 뒹굴면서 그런 아버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파란 도깨비부채가 피어 있었다. 조건은 그것뿐이다. 아버지한테 신나게 혼이 난 다음도 아니고 감기에 걸렸던 것도 아니다. 하늘이 어둡게 구름져 있었던 것도 아니다. 부정적인 기분이 들 만한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묵묵히 괭이질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내 가슴에 돌연 구멍이 뻥 뚫리고 말았다. '뻥"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그러자 그 구멍으로 싸늘하고 허망한 바람이 휑하니 불어와,혹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닌가-구체적인 말을 아니었지만-하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현실 그 자체이며,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식으로밖에 살아가지 못하리란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성장함에 따라 현실의 비참함을 볼 기회가 점차 많아졌다. 인간이란 참으로 별볼일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굳어졌고 그럴 수록 내 가슴속의 구멍은 넓어졌다. 나는 점점 더 꿈속으로 도망가게 되었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는 생각만 해도 온몸의 피가 들끓는 행동적인 모험으로 돌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안정되고 일상적인 생활을 송두리째 배제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 힘도 없는 어린애인 나는 그런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해야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산에 올라가 막대기를 휘두르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핑핑 뛰어다니거나 비탈진 낭떠러지를 날쌔게 기어올라갔다. 머릿속으로는 타잔이나 로빈 훗의 용감한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밤이 되면 이불 속에 파고들어 가 영웅들의 터무니없는 활약상을 꿈속으로 반입하는 정도였다.
내가 바란 것은 자유와 변화였을 것이다. 넘쳐흐를 정도의 자유와 격렬한 변화. 이를테면 그림으로 그린 듯 반듯한 정의의 깃발 아래, 마음에 들지 않는 치들을-그게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는 짐작도 못 했지만-전부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증오의 대상인 가상의 적이 필요했는데,행동 범위가 극단적으로 좁은 아이였던 나로서는 아무리 찾아도 그 대상을 설정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오로지 일본은 패전국이며, 더구나 그 모든 책임이 일본에 있고, 나쁜 것도 일본이라는 반복뿐이었다. 폭력적인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쟁을 경험한 어른들은 평화라는 두 글자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평범하고 안정된 길을 향하여 쉬지 않고 일했다. 혹시 그들이 전쟁중에 태어난 우리 세대에 폭력적인 여운을 남긴 것은 아닐까. 일본이 미국에 내몰리는 순간.천황이 패배를 인정한 순간,당시 어른들과 청년들.그리고 철이 든 어린이들은 돌변이란 말로 표현해도 좋을 만큼 재빠르게 사상 전환에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모르는, 아니 산 너머 세계에 뭐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세대는 의식의 저변에 아주 폭력적인 피를 남기게 된 것 아닐까.
그 세대는 학생운동만 해도 아주 거칠고 피비린내 나고 전투적인 방식을 취했다. 하기야 대학생활과는 인연이 없었던 나한테는 그들이 일으킨 소동이 아주 사치스럽고 아주 흥미로운 혁명놀이에 불과해 보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평화와 번영의 방향으로 기세등등하게 흘러갔고, 끝내는 모든 사람들이 침묵과 무시정도의 반항밖에 하지 못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그런 반항조차 깨끗이 단념하고 세상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든 잘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부모와 시대로부터 폭력적인 피 를 이어받지 못했다. 포식의 시대와 행복한 가정을 당연시하는 환경에서 자란 탓에 애당초 거역을 모른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신나게 놀고 안이한 상냥함을 유일한 안식처로 삼는,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분 나쁜 인종이 되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수중에 넣을 수 있는, 현실적이라면 너무도 현실적인 꿈밖에 추구하지 않는 여자의 삶 그대로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러쿵저러쿵 할 권리가 없다는, 짐짓 도라도 닦은 듯한 말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진드기 같은 평론가는 아니므로, 최대공약수적인 의견은 토로하지 않는다. 거부를 당할지언정,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매도를 당할지언 정,나는 아무 상관 없이 말한다. 하고 싶은 말은 딱 부러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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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과학/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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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운명 빅뱅과 그 이후 - 트린 후안 투안
제2장 은하의 세계
빛은 인간과 우주를 연결해 주는 소중하고도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빛은 우주에서 낼 수 있는 최대 속도인 초당 30만㎞의 속도로 우리에게 정보를 보내주고 있다. 그러나 맨눈으로 빛을 감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눈은 빛을 모으는 힘이 아주 약하다. 게다가 한 영상을 오랫동안 응시할 수 없다. 인간의 뇌는 300분의 1초마다 새로운 영상을 시각적으로 전달받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맨눈으로는 우주에서 가장 밝거나 가장 가까운 물체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우주에서 아주 먼 곳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셈이다.
끊임없이 크기와 성능이 향상되는 망원경
망원경은 두 가지 면에서 매우 유용하다. 망원경의 커다란 렌즈와 거울은 인간의 눈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훨씬 많은 빛을 모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망원경은 목표물을 향해 원하는 시간만큼 시감(시감)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망원경은 지구에서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아주 희미한 물체를 판별해내 우주의 깊숙한 곳까지도 알려준다. 물론 영상을 확대하여 세부적인 부분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제 1세대 망원경은 안경처럼 렌즈를 통과하는 빛을 굴절시켜 모으는 것이었다. 초기 굴절망원경은 렌즈 지름이 1m를 넘지 못했다. 지름이 더 크면 렌즈가 너무 무거워서 실용화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천문학의 주도권은 큰 포물면 거울로 빛을 모아서 한 점으로 집중시키는 반사망원경으로 넘어갔다. 20세기 초 두 반사망원경-1908년과 1922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의 윌슨산에 세워진 지름 1.5m와 2m의 반사망원경-이 우주를 관찰하는 방법에 혁신을 일으켰다. 1948년에는 캘리포니아주 팔로마산에 지름 5m의 헤일 반사망원경이 설치되었다. 이 망원경은 1976년에 러시아의 카프카스에 있는 특수 천체물리 관측소에 지름 6m짜리 반사망원경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세게에서 가장 큰 망원경이었다. 헤일 망원경은 인간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희미한 별보다 4천만 배나 더 어두운 물체를 포착할 수 있다. 현재는 지름이 3m가 넘는 망원경이 15개 정도 되는데, 이것들은 세계 각처의 산꼭대기-미국의 애리조나주에서 하와이까지, 러시아의 카프카스에서 칠레까지-에서 맑은 날 밤이면하늘을 향해 반사경을 돌리고 우주에서 지구로 오는 빛의 메시지를 수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더 큰 망원경을 세우고 있거나 계획 중에 있다. 그 중 다중 거울로 만든 반사망원경은 빛을 모으는 능력이 지름 10∼15m에 이르는 단일 망원경의 능력에 버금갈 것이며, 헤일 망원경보다 10배나 큰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빛을 모아서 영상으로 기록하기
초기 천문학자들은 관철할 것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야 했다. 그러다가 1826년에 사진술이 발명되면서 수많은 별들의 상을 하나의 유리판에 영구적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을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몇 시간에 걸쳐서 커다란 사진판 위에 영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희미한 천체를 포착하는 망원경의 능력을 실질적으로 향상시켜 주었다. 즉 오랜 시간 동안 노출을 줌으로써 극히 희미한 상까지도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방법은 한 동안 거의 모든 천문관측소에서 이용하다가 1970년대에 고감도 전자탐지기(전하결합소자, 또는 CCD)가 개발되면서 대체되었다. 고감도 전자탐지기는 사진판으로는 밤을 새워야 모으던 빛을 단 30분이면 모을 수 있다. 19세기 초 독일 물리학자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는 또 다른 도약의 전기가 된 분광학을 개발해은하와 별의 화학적 구성 성분과 물리적 운동을 조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빗방울이 햇빛을 분해시켜 부지개 색깔의 스펙트럼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광기를 이용하면 천체로부터 오는 빛을 다양한 파장으로 분해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빛
지금까지는 망원경이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빛인 가시광선을 모으는 것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빛의 영역 중에는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가장 강력한 복사(고주파)인 엑스선과 감마선은 인체의 근육 조직을 그냥 통과할 수 있다. 자외선은 주파수가 조금 낮지만 인간의 피부를 태울 수 있을 정도로뜨거우며, 햇빛에 지나치게 노출될 경우 햇빛 속의 자외선에 의해 피부암에 걸릴 수 있다. 다음으로 주파수가 낮은 것은 우리 인간에게 친숙한 좁은 영역의 가시광선이다. 그 다음으로 적외선, 마이크로하(요리용 전자 레인지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가 이어지고, 스펙트럼 맨 끝에 에너지가 가장 낮은 전파가 있다. 전파는 송신소에서 가정의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프로그램을 전달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생물학적인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감각기관이 가시광선 영역에서 민감하게 발달한 것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일이다. 태양은 그 에너지의 대부분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는 빛의 팔레트에 있는 모든 빛을 이용하여 우리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관계없이 그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가시광선이라는 한정된 영역의 스펙트럼으로 우리를 묶어두는 것은 스스로를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가리개를 하고 우주를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우리 눈이 한가지 색깔, 예를 들면, 빨간색에만 민감해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보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단지 흩어진 조각으로만 보일 것이다.
전파천문학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이루어진 레이더의 발전과 더불어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주시대의 도래와 함께, 망원경은 기구와 로켓, 위성을 통해서 하늘 높이 올라가게 되었다. 마침내 천문학자들은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적외선 등을 가로막고 있던 대기권의 맨 꼭대기에 올라서서 우주를 관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은하수:지름 9만 광년의 은하계
케플러와 뉴턴의 후계자들이 망원경과 사진판, 분광기를 이용해 하늘을 연구했지만, 우주의 많은 부분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은하수의 수많은 별들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은하수는 어디에서 끝이 날까? 아니면 우주 공간 속으로 끝없이 뻗어 있는 것일까? 뉴턴의 가정대로 우주가 무한하다면 별들은 그 끝없는 공간 속에 고르게 분포해 있을까? 대답은 명확하지 않다. 우주는 마치 원근법을 모르는 사람이 대형 캔버스에 그려놓은 풍경화처럼 하늘이라는 반구에 2차원으로 펼쳐져 보인다. 과학자들의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적절한 원근볍으로 이 천체를 배치하여 우주의 크기에 관한 비밀을 푸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열심히 지구에서 별들까지의 거리를 쟀다. 우주에서 우리가 위치한 작은 귀퉁이의 크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태양계가 실제로 매우 작은 존재이며, 우주 공간이 거의 진공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태양은 지구에서 빛으로 8분이 걸린다. 태양계의 크기는 빛이 도달하는 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인 명왕성은 지구에서 빛으로 5.2시간 거리에 있다. 한편 별까지의 거리는 광년으로 특정할 수 있다. 태양 다음으로 가까운 별은 꼬박 4광년 거리에 있다. 하늘은 옛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우주 공간을 점점 더 깊이 조사하여 마침내 은하수, 즉 윌 은하의 끝에 이르렀다. 우리 은하는 뉴턴의 주장처럼 무한히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약 1000억 개의 별들이 중력으로 묶여 지름이 9만 광년이나 되는 원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윌 은하의 원반면을 향해 눈을 돌렸을 때, 그곳에 운집한 별들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진줏빛의 멋진 아치형 띠로 보였던 것이다.
태양계의 크기는 우리 은하의 수십 억 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은 행성에서 은하계의 크기를 측정했다는 것은 마치 아메바가 어찌어찌해서 태평양의 넓이를 잰 것에 필적하는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은하 원반에 있는 별들은 은하 중심부의 둘레를 회전하고 있는 것까지 밝혀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별들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은하계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태양계
태양이 은하수에 모여 있는 수천억 개의 별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우리의 별이 은하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미국의 천문학자 하로 섀플리(1885∼1972)는 그 믿음마저 깨버렸다. 섀플리는 구상성단-수십만 개의 별들이 중력으로 인해 공처럼 밀집된 천체-의 분포를 연구했는데, 이것들이 은하수를 따라서 구형으로 불거진 부분에 모여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태양의 위치는 구형 부분의 중심부와 일치하지 않았다.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서 궁수자리 방향을 약 3만 광년 떨어져 있었다. 섀플리는 태양이 우리 은하의 중심이 아닌, 은하의 끝에서 중심으로 3분의 1쯤 되는 외곽에 자리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안드로메다 은하]
그리고 정말 작은 은하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근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만일 은하수가 어딘가에서 끝이 난다면, 그 결계가 우주의 끝인가? 아니면 우주는 훨씬 더 먼 공간 속으로 QJedj 있는가? 은하수의 경계 너머에는 우리 은하와 비슷한 또 다른 은하들이 존재하고 있는가? 1775년 초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22)는 우리의 것과는 다른 별들의 체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이론화한 바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1738∼1822)이 당시에 발견한 빛의 얼룩(성운)이 바로 그 '섬 우주'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우리 은하와 우주는 같은 영역에 놓여 있으며, 성운은 당연히 그 영역 안에 자리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우주의 중심은 이미 지구에서 태양으로, 다시 태양에서 은하계로 옮아가 있었다. 천문학계의 '대논쟁'이 절정에 달했다. 1924년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1889∼1953)은 당시에 막 세워진 윌슨산 천문대의 2.5m 반사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자리에 있는 나선형 성운이 우리 은하의 끝지점보다 훨씬 먼 곳에 있음을 확인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현재 230만 광년 거리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안드로메다 성운의 빛은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 처음 출현했을 때 은하 사이의 공간을 항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드로메다 성운(안드로메다 은하로 이름이 바뀌었다)은 우리 은하와 모습이 흡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섬 우주'에 대한 칸트의 예견은 이제 과학적 사실이 되었다. 갑자기 우주에는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은하가 존재하게 되었다. 우주의 끝은 훨씬 먼 속으로 끝없이 밀려났다. 태양계가 광대한 은하 속의 한 점이 되어버린 것처럼, 우리 은하 또한 광활한 우주의 한 점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은하가 우주에 존재하는 수천억 개의 은하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은하의 분류 : 타원은하, 나선은하, 불규칙은하
은하들은 각기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은하 10개 중 3개 정도는 타원형의 빛을 내므로 타원은하라고 부른다. 또한 10개 중6개 정도는 우리 은하나 이웃 안드로메다 은하처럼 납작한 원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원반에서는 바깥쪽으로 멋진 팔이 나와 있다. 이러한 은하를 나선은하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선은하나 타원은하로 분류하기에는 모양이 불분명한 나머지 은하들을 불규칙은하라고 부른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은하의 대부분은 우주가 탄생한지 20∼30억 년이 될 무렵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발생기의 은하들은 우주가 태어난 직후의 처음 3분 동안 만들어진 화학 원소인 수소와 헬륨의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원시 구름들이 자체의 중력으로 수축하는 동안, 재부에서는 수천억 개의 가스 덩어리들이 공 모양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안으로 향하는 압력인 중력이 이것들을 더욱 뭉치게 했으며, 가스 덩어리들의 온도가 수천만 도에 이르자, 수소는 헬륨이 되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며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가스 덩어리들이 불이 붙어 별이 된 것이다. 발생기 은하의 궁극적인 모습은 내부의 가스로부터 얼마나 효율적으로 별이 생겨나는 가에 달려있다. 원시 은하들 중 일부는 내부의 가스를 전부 별로 만드는 데 단지 10억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은하들은 타원은하로 진화했다. 현재 이들 은하에는 새로운 별을 만드는 데 필료앟ㄴ 원효가 떨어져버렸기 때문에 거의 우주 자체만큼 오래된 별들만 모여 있다. 원시 은하들 중 다른 일부에서는 별이 비교적 서서히 만들어졌으며, 가지고 있던 가스의 10분의 9정도만 별로 바뀌었다. 남은 재료는 납작한 원반을 이루었으며, 그 속에서 계속 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속도는 비교적 느리고 대부분 나선팔에서 이루어졌다. 이 별들의 요람은 나선은하를 젊은 은하로 보이게 해준다.
또 다른 원시 은하들은 아주 느린 속도로 내부의 가스를 별로 바꾸어나갔다. 따라서 우주가 생긴지 150억 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 은하는 질량의 5분의 1 이상이 여전히 가스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불규칙은하는 나선은하보다 1000배나 가볍지만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별의 탄생지로 남아 있다.
[허블 우주 망원경]
충돌 사고가 일어나는 우주
은하들은 모두 선천적인 특징과 후천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형태나 질량 같은 선천적인 특징은 탄생할 때 결정된다. 하지만 다른 특징들은 은하를 러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은하 역시 고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은하는 중력 때문에 수십 개(은하군)에서 수천개(은하단)씩 보인다. 그런 은하단의 중심의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은하끼리 충돌이 일어나 선천적인 특징이 근본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은하 사이의 교통이 복잡할수록, 즉 은하의 밀도가 높을수록 우주의 '교통사고'는 더욱 빈발한다. 은하들은 대개 직접 부딪치며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중력이 접근중인 양쪽 은하의 가장자리에 있는 별들을 떼내어 우주 공간으로 날려버리고, 마치 은하들 사이의 별바다에서 파도에 씻긴 듯한 알갱이 은하만을 남겨놓는다. 그러나 이 정도는 보통 가벼운 상처에 불과하다. 직접적인 충돌의 여파는 더욱 극적이다. 만일 두 은하가 모두 나선은하라면, 부딪힐 때의 강력한 힘으로 두 은하의 가스 원반은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은하는 훨씬 밝고 무거운 하나의 은하로 합쳐지는데, 이때 가스로 된 재료가 부족하여 타원은하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은하계의 운명
우리 은하에게도 이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안드로메다 은하가 37억 년 후에는 우리 은하와 충돌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돌의 결과가 비관적일 것 같지는 않다. 태양이 안드로메다 은하를 구성하는 별과 정면으로 충돌할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은하들의 세계에서는 종종 냉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다. 크고 무거운 은하들이 발휘하는 중력은 주의의 작은 은하들의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큰 은하의 영향권 내에서 길을 잃은 작은 은하들은 '식인은하'를 향해 나선을 그리며 끌려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식인은하'들은 그들이 '잡아먹은' 작은 은하들만큼 크기와 질량이 증가한다.
퀘이사:예상 외로 밝은 천체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던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은 각종 소리와 열기로 사라져버렸다. 현대의 망원경은 전자기 복사의 전 영역에서 아주 활발하게 활약하며, 특정 은하의 핵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지도 못한 현상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그 중 가장 가공할 만한 것이 퀘이사이다. 퀘이사는 처음에는 별과 비슷한 물체(quasi-star)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름도 준성(준성)을 뜻하는 퀘이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은 유난히 밝은 광점인 이들 가운데 하나의 거리를 측정한 결과, 퀘이사가 우주의 거의 끝에 해당하는 약 130억 광년 거리에 있음을 알고 대단히 몰랐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 있는 물체가 가까이 있는 별처럼 많은 빛을 지속적으로 복사할 수 있는 것일까? 오직 한 가지 설명만 가능하다. 퀘이사의 실제 밝기는 매우 엄청난 것임에 틀림없다. 관측 결과, 퀘이사는 은하 한 개가 낼 수 있는 규모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으며, 1000억 개 정도의 태양을 합친 것만큼 밝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에너지를 내는 숨겨진 근원이 우리 태양계보다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퀘이사 중 두 번째로 멀리 있는 ULAS J1120+0641의 상상도. 이 퀘이사는 태양의 20억 배 질량의 블랙홀에 의해 그 에너지를 얻고 있다. ]
블랙홀
어떻게 그 작은 것이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까?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많은 천체물리학자들은 핵 속에 괴물(블랙홀)을 숨기고 있는 은하에서 퀘이사가 생겨났다고 추측한다. 블랙홀은 태양보다 10억 배 이상 무거운 초거구의 탐욕스러운 존재로 주위의 모든 별들을 삼켜버린다.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까지도 잡아 가둘 수 있는 강력한 중력을 가진 영역이다. 이런 블랙홀은 아무런 빛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검은 구멍'인 것이다.
블랙홀의 중력은 공 모양인 별들을 끌어당겨 긴 필라멘트 모양의 물질로 만들고, 깨진 별에서 나온 물질을 엄청난 속도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빨아들인다. 가스 소용돌이 속의 입자는 블랙홀로 끌려들어가면서 점점 뜨거워져, 복사 에너지의 방출이 감지되지 않는 분계점인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건너기 직전에 강력한 복사 에너지를 뿜어낸다. 퀘이사의 빛은 갈가리 찢긴 별의 잔해가 영원히 사라지기 직전에 부르는 최후의 노래인 셈이다. 그러나 퀘이사-은하 핵만이 이 괴물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밝기의 핵을 가진 다른 종류의 은하들, 이른바 활동 은하들 역시 내부에 별을 삼키는 블랙홀이 잠복해 있다. 이 블랙홀들은 규모가 퀘이사에 있는 것보다는 10분의 1에서 자신이 포함된 은하 속의 별들을 공격, 산산조각을 내어 국수 모양의 길고 가는 필라멘트로 만들 수 있다. 이때 블랙홀로 끌려들어가는 물질에서는 감마선과 X선에서부터 마이크로파와 전파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의 전자기파에 걸쳐 강력한 복사 에너지가 쏟아져 나온다.
우주의 구조:은하군, 은하단, 초은하단
은하도 집단을 이룬다. 우리 은하는 국부 은하군의 일원인데, 이 은하군에는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뿐만 아니라, 우리 은하의 위성 은하인 대마젤란 은하와 소마젤란 은하를 비롯한 크고 작은 15개의 난쟁이 은하들도 들어있다. 국부 은하군은 지름이 1300만 광년이나 되는 공간에 펼쳐져 있는데, 이는 보초은화의 130배에 이르는 것이다. 은하가 우주 속의 집에 해당한다면, 은하군은 우주 속의 마을인 셈이다. 다음으로 큰 집단은 우주의 도시에 해당하는 은하단이다. 이 집단은 수천 개의 은하로 구성되어 있고 지름이 약 6000만 광년에 이르며, 수백조 개에 달하는 별을 포함하고 있다. 우주의 구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은하단들은 더욱 큰 규모의 초은하단을 이루는데, 우주의 대도시격인 초은하단에는 수천조 개에 으르는 별들이 들어 있으며, 그 지름은 수억 광년에 이른다. 국부 은하군은 10여 개의 은하군과 은하단들로 이루어진 국부 초은하단에 속해 있다. 초은하단은 놀랍게도 공 모양이 아닌 얇은 '팬케이크' 구조나 기다란 필라멘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팬케이크' 구조는 두께가 대략 그 지름의 5분의 1(4000만 광년)정도이다. 그리고 필라멘트 구조는 수억 광년 거리까지 우주 공간으로 뻗어 있다.
보이드:우주의 빈 공간
오늘날에는 더욱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주에는 은하들이 전혀 없는 지름 수천만 광년의 광대한 공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은하들은 우주 전체의 단지 10분의 1정도를채우고 있는 '팬케이크' 구조와 필라멘트 구조 속에 분포해 있다. 나머지 10분의 9는 비어 있는 것이다. 두 가지 형태의 초은하단으로부터 거품 모양의 보이드(진공)들이 이리저리 연결된 거대한 그물망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형태를 볼 수 있다. 은하들은 환상적인 그림을 짜맞추어 만든, 우주적인 규모의 거대한 벽걸이 장식이며, 기막히게 아름다운 천상의 경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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