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3호 2023.2.10 금요일 (음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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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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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연인들에게 법을 줄 수 있는가?
사랑은 그 자체가 더 위대한 법이다.
- 보에티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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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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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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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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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니더면 - 한용운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럽고 매끄럽던 얼굴에
왜 주름살이 접혀요.
당신이 기룹지만 않다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여요.
맨 처름에 당신에게 안기던 그때대로 있을 테여요.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싫지 않아요.
나에게 생명을 주든지 죽음을 주든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셔요.
나는 곧 당신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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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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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6. 고목나무가 꽃을 피우다(춘신군 2/2)
춘신군의 전성시대
춘신군이 초나라의 재상이 되었을 무렵에 전국 4공자라 하여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었고, 조나라에는 평원군이 있었으며,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어서 바야흐로 앞을 다투어 선비들을 예우하여 식객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서로 남을 기울게 하고 자신의 나라를 돕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춘신군이 초나라의 재상이 된 지 4년 후에 진나라는 장평싸움에서 조나라 군사 40만을 격파했고, 이듬 해에는 조나라의 한단을 포위한 일이 일어났다. 이때 조나라가 초나라에 위급한 사정을 호소하였으므로 춘신군은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하게 되었는데 마침 진나라 군대가 물러났기 때문에 춘신군도 귀국하였다. 춘신군은 재상이 된 지 8년 만에 북벌을 감행하여 노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때에 초나라는 다시 강성해졌다. 어느 날 평원군이 춘신군에게 사신을 보냈는데 춘신군은 그를 임금의 객사에 머물게 하였다. 그런데 그 사신은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서 대모로 만든 비녀와 주옥으로 장식한 칼집을 가지고 춘신군의 식객들을 불러서 만났다. 그런데 춘신군의 식객은 3천 명으로 그 중의 많은 수가 모두 구슬로 장식한 신을 신고서 사신을 만났으므로 그 사신은 오히려 크게 부끄러워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14년이 되었을 때 진나라의 장양왕이 왕위에 오르고 여불위를 재상으로 삼았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22년 후에는 제후들이 진나라의 공격과 정벌이 그칠 날이 없음을 우려하고 서로 합종을 하여 서쪽으로 진나라를 정벌하기로 하였다. 이때 초나라의 왕이 책임자가 되고 춘신군이 그 실무를 담당하였다. 연합군이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진나라가 군대를 보내 공격을 하자 제후의 군대가 모두 패하여 달아났다. 고열왕은 그러한 일을 춘신군의 잘못으로 돌렸다. 이 일로 인하여 춘신군은 왕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때 춘신군의 빈객 중에 주영이라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춘신군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초나라는 강대한데 나으리께서 나약한 군대로 만들어 사용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왕 시절에 진나라와 친선을 한 기간이 20년이 되는데도 진나라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진나라가 요새를 넘어서 공격하는 것이 불편하며, 동주, 서주에게 길을 빌리고, 한, 위를 등지고 우리 나라를 공격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위나라는 아침, 저녁으로 망할 형편이므로 허땅을 할양하여 진나라에게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진나라 군대가 우리 나라의 수도인 진성과 160리 정도의 짧은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보는 바로는 앞으로는 진나라와 초나라가 날마다 전쟁을 하리라는 것입니다."
춘신군은 이 말을 옳다고 여겨 왕에게 말하니, 초나라는 드디어 수춘으로 수도를 옮겼다.
꽃을 나무에 접붙이다
초나라의 고열왕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원래 춘신군은 이를 걱정하여 아들을 나을 만한 부인을 구하여 왕에게 바쳤으나 끝내 아들을 낳는 데 실패하였다. 그때 조나라 사람인 이원이 누이동생을 데리고 와서 왕에게 바치려고 하였다. 그런데 왕이 아이들 낳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오래도록 사랑을 받지 못할까 우려를 하였다. 그리하여 이원은 우선 제도가였던 춘신군을 섬기어 그의 가신이 되었다. 얼마가 지나자 그는 귀국을 하였다가 고의로 돌아오는 기일을 늦추었다. 그리고는 되돌아오니 춘신군이 늦게 된 사정을 물었다. 그러자 이원은 답하였다.
"제나라 왕이 사자를 보내어 신의 누이동생에게 구혼하여 그 사자와 술을 마시느라고 좀 늦게 되었습니다."
이에 춘신군이 물었다.
"누이를 들여보내기로 하였는가?"
"아직 드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미인인가 궁금하여 춘신군이 물었다.
"그럼 내가 한번 누이를 볼 수 있겠는가?"
이에 이원이,
"물론 볼 수는 있지요."
하고 곧 그의 누이동생을 바쳤다. 그의 누이동생은 과연 절세의 미인이었고, 곧 춘신군의 사랑을 받았다. 이원은 누이동생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알고 누이동생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알고 누이동생과 계략을 짰다. 이원의 누이동생은 한가한 틈을 타서 춘신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왕이 나으리를 대우하고 사랑하는 정도는 형제라 하더라도 그렇게 깊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나으리께서 재상이 되신 지 20여 년이 흘렀습니다마는 왕께서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왕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다른 사람을 세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나으리께서 어떻게 오래도록 사랑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나으리께서는 이제까지 왕의 형제들에 대하여 실례를 범한 것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그 형제들이 만일 왕위에 오른다면 화가 장차 나으리에게 닥칠 것이니, 나으리께서는 무엇으로 재상의 자리와 강동의 땅을 지키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춘신군이 다가오며 물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도 실은 그것이 걱정이었네."
이에 그녀가 귀엣말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으리께 처음으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지금 첩은 나으리의 아이를 가졌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그러자 춘신군이 재촉했다.
"무슨 말이건 두려워 말고 말해 보라."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오해마시고 들어보십시오. 황송스런 말씀이오나 첩을 이제 왕에게 바치면 어떨까요? 나으리의 높은 지위로 첩을 왕에게 바친다면 왕은 반드시 첩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첩이 하늘의 도움으로 아들을 얻게 된다면 이는 나으리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이고, 나라를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헤아릴 수 없는 죄에 걸려 드는 것에 비하면 낫지 않겠습니까?"
춘신군은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이원의 누이동생을 자기 집에서 내보내 근신하게 하고 왕에게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왕은 그녀를 그 아들을 태자로 삼고, 이원의 누이동생을 왕후로 삼았다. 또한 왕은 이원을 가까이 하여 이원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당한다
이원은 그의 누이동생을 왕실에 들여보내어 왕후를 만들고, 그 아들을 태자로 세운 뒤 춘신군이 그러한 사실을 누설하고 더욱 교만해질까 두려워하여 은밀하게 암살자를 양성하여 춘신군을 죽임으로써 그의 입을 막고자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상당수 있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25년 후에 고열왕이 병이 들었다. 이에 주영이 춘신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에는 뜻밖에 찾아드는 복이 있고, 또 뜻밖에 찾아드는 화도 있습니다. 지금 나으리께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 처하여 뜻밖의 일을 당할 왕을 섬기고 계시니 어찌 뜻밖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춘신군이 물었다.
"뜻밖에 찾아드는 복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주영이 대답하였다.
"나으리께서 재상이 되신 지 20여 년 동안 나으리의 위치는 실은 초나라의 왕이셨습니다. 지금 왕이 병이 들어서 아침 저녁 나절에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러할 경우 나으리께서는 어린 군주를 모시게 되어 그의 대리로 왕의 자리에 서서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때 만일 이윤, 주공과 같이 하신다면 왕이 장성한 뒤에 국정을 되돌려 주시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나라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뜻밖에 찾아든 복입니다."
춘신군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뜻밖의 화란 무엇인가?"
"이원은 나라를 다스리지도 않은 사람으로서 나으리의 원수입니다. 그는 군대를 맡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암살자를 양성하고 있는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만약에 왕이 돌아가신다면 이원은 반드시 먼저 궁궐에 들어가 정권을 잡고 나으리를 죽임으로써 입을 막으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뜻밖의 화입니다."
이에 춘신군이 물었다.
"그렇다면 뜻밖의 사람이란 무엇인가?"
"나으리께서 신을 낭중의 자리에 임명하시면 왕이 돌아가신 뒤에 이원이 분명히 먼저 궁궐에 들 것인즉 신이 나으리를 위하여 이원을 죽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뜻밖의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듣고 춘신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은 이제 그만하시오. 이원은 나약한 사람이고, 또 내가 그를 잘 대우하였는데 어떻게 그가 이러한 일까지 하겠소?"
주영은 자신의 계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알고 화가 자기 자신에게까지 미칠까 두려워하여 도망하여 초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뒤 17일 만에 고열왕이 죽었다. 이원은 과연 먼저 궁궐에 들어가 자객을 잠복시켰다. 드디어 춘신군이 문상하기 위해 궁궐로 들어오자 이원의 자객이 춘신군을 곁에서 부여잡고 찌르고는 그의 머리를 베어 궁궐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관리를 시켜 춘신군의 집안을 완전히 멸족시켰다. 한편 이원의 누이동생이 왕궁에 들어가서 낳은 아들이 마침내 왕이 되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유왕이다. 그러나 초나라는 춘신군이 죽고 나서 국력이 급속히 기울었으며, 결국 15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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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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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입호혈 부득호자
(不入虎穴不得虎子)
不:아니 불. 入:들 입. 虎:범 호. 得:얻을 득. 子:아들 자.
[참조]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출전]《後漢書》〈班超傳〉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는 뜻으로, 모험을 하지 않고는 큰 일을 할 수 없음의 비유.
후한(後漢) 초기의 장군 반초(班超)는 중국 역사서의 하나인《한서(漢書)》를 쓴 아버지 반표(班彪), 형 반고(班固), 누이동생 반소(班昭)와는 달리 무인(武人)으로 이름을 떨쳤다. 반초는 후한 2대 황제인 명제(明帝) 때(74년) 서쪽 오랑캐 나라인 선선국[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떠났다. 선선국왕은 반초의 일행36명을 상객(上客)으로 후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대는 박대(薄待)로 돌변했다. 반호는 궁중에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즉시 부하 장수를 시켜 진상을 알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부하 장수는 놀라운 소식을 갖고 왔다.
“지금 신선국에는 흉노국(匈奴國)의 사신이 와 있습니다. 게다가 대동한 군사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흉노는 옛부터 한족(漢族)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침입을 막았을 정도로 영맹(獰猛)한 유목민족이다. 반초는 즉시 일행을 불러모은 다음 술을 나누며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흉노국의 사신이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 있다고 한다. 신선국왕은 우리를 다 죽이거나 흉노국의 사신에게 넘겨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싸워야 합니다!”
모두들 죽을 각오로 싸우자고 외쳤다.
“좋다. 그럼 오늘 밤에 흉노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쳐들어가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不入虎穴不得虎子]’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날 밤 반초 일행은 흉노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 일을 계기로 선선국이 굴복했음은 물론 인근 50여 오랑캐의 나라들도 한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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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엉덩이 힘 빼세요
이 시간에도 무역수지 적자 때문에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이곳 공단 산업역군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띄웁니다. 우선 이 사건은 본인의 경험이 절대로 아니고 친구의 사건임을 밝혀둡니다. 무지무지 황당하고 허망한 인간사 '세옹지마'임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 있는데 들어 보실라우!
얼마 전 사건의 주인공인 친구가 오후의 따스한 가을 햇살에 식사후의 나른함과 싸우며 핸들을 잡고 신호대기 중이었습니다. 무심코 룸미러를 보니까 뒤쪽에서 신모델 차 한 대가 조금 빠른 속도로 오더래요. 속으로 '야! 차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더래요.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룸미러를 주시하면서, '브레이크가 좋으니까 바싹 붙어서 정지하겠지.'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불안하게 차 후미를 향해 계속 돌진해 오더랍니다. 이때 이 친구 속마음이 어떨런지 상상이 되십니까? 살인무기가 무방비로 서 있는 자리를 처치하려고 돌진하는데, 자기는 차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운명의 순간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 상상이 되십니까? 이마엔 땀이 맺히고, 등골은 오싹해지고, 오금이 저려오면서 아랫도리는 축축해지고.... 그러나 인간은 대단하데요. '아! 이제 죽는구나. 그러나 결혼도 못해 보고 죽을 수는 없다. 살아야 되겠구나.' 그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어느새 오른손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면서 양발은 발판에 붙이고, 양손은 핸들을 휘어지도록 쥐고, 머리는 좌석 받침대에 밀착시키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는 순간, '끼-이-익 쾅!' 충격에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웬 사람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끌어내더래요. 앞은 캄캄하도 하늘은 누르스름한데 별은 둥둥 떠있고....
잠시후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천당은 아니더래요. 현장에서 사고를 대충 정리하고, 병원에서 진찰받고 X-ray찍고 검사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더니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턱에 차서 말문이 탁 막히더래요. 그 와중에 자기 앞에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간호사 한 분이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이더래요. 순간 갑자기 뇌리를 스치면서 뒷골을 때리는 전율을 느끼며 생각했대요. '아! 하늘이 이런 기회를 주시려고 사고가 나게 했구나.' 겨우 흥분을 진정시키고 입원하라는 것도 마다하고 통원치료 하기로 하고 집에 와서는 아픈 건 둘째 문제고 내일 병원 갈 생각에 잠도 오지 않더래요. 참고로 이 친구는 3주 진단이 나왔습니다. 다음날 부푼 가슴을 안고 병원에 도착해서 진찰하고 물리치료 받고 주사 맞고 약 타는 순간까지도 어제 그 천사의 모습은 볼 수가 없더랍니다. 병원 문을 나서서 도로를 걸어가면서도 미련이 남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다음날 다시 벌렁대는 가슴을 안고 병원을 찾았는데 역시 진찰이 끝나고 물리치료가 끝날 때까지 그녀의 모습은 보이질 않더래요. 이름도 모르니 물어볼 수도 없고, 혼자서 벙어리 냉가슴만 태우면서 주사실로 들어갔는데, 그 순간 천지간에 광명의 빛이 비치더니 동공이 확장되고 코가 벌렁벌렁거리는가 싶더니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폐활량이 '황영조' 선소의 몇 배가 되더랍니다. '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그녀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녀는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침대에 기대서 바지 내리세요." '이런 낭패가 있나?' 그녀 앞에서 어떻게 바지를 내리겠는가! 하지만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정신을 가다듬고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그녀 쪽으로 내밀었답니다. 그리고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두 손은 침대 시트를 꽉 쥐었구요. 양 다리는 감전된 것처럼 뻣뻣해지고, 그리고 다른 또한 곳은 야릇한 전율이 감돌면서 중추신경이 마비됨을 느꼈답니다. 그는 최대한 차분한 몸짓으로 바지를 내리니 그녀의 가냘픈 손이 한 쪽도 아니고 양쪽 엉덩이게 주사를 놓더랍니다. 그 기분을 이해하실런지요? 3주 진단이 3일만에 완쾌된 기분일 겁니다. 그날은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하루를 보냈지만, 병원이 쉬는 일요일은 하루 24시간이 240년 같고, 하루를 몽땅 굶어도 배고픔을 느낄 수 없었고, 하루라도 거르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던 술은 일주일을 안 먹어도 하늘에 뜬 기분이고, 시꺼면 매연도 한겨울 내리는 함박눈으로 보이고, 병원에 갈 때면 안하던 샤워를 하고.... 그러나 신이시여, 어찌 이런 잔인한 운명을 내리십니까? 열흘 가까이 물리치료를 받던 어느 날, 오전부터 속이 좀 이상하더래요. 하지만 천사와의 만남을 앞두고 불결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참고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씩 심해지더래요.
진찰이 끝나고 주사를 맞으러 주사실에 들어갔는데, 주사기를 들고 따라 들어온 사람은 꿈에도 그리던 그녀! 그녀 왈, "바지 내리시고 침대에 기대세요." 그러더니 손으로 엉덩이 탁탁 치면서 "힘 빼세요." 힘 빼라니.... 가스가 나오려는 걸 아랫배에 힘을 주어 간신히 참고 있는데.... 그러나 엉덩이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으니 주사 바늘이 두 번 세 번 찔러도 실패하고 피만 나는 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목소리를 더 높여서 말하더랍니다. "지금 저하고 장난하시는 거예요." 천사의 음성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저승사자의 울림으로 다가오는 순간 이젠 어쩔 수 없군,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하며 아랫배에 힘을 빼니 잔뜩 움추렸던 괄약근은 열리고, 주사바늘이 엉덩이를 뚫고 들어오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뽀오-옹."
천사의 외마디.
"엄마야."
그 이후로 이 병원에서 그 친구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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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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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혜린편"(1934~1965)
수필가. 평남 순천 출생. 독일 뮌헨대 독문과 수료.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 역임. 31세로 자살함.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 속에 불꽃처럼 살다가 간 지식인이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을 갖고 생을 긍정했고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과 일종의 필수적인 비애의 기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몽환적 시월
- 10월이 되면 레스토랑이나 다방에서 '데운 맥주'를 요구한다.
뮌헨의 10월이 그립다. 거기에 있을 때는 언제나 이렇게 추운 가을은 처음 보았느니 한국의 가을 하늘을 못 본 사람이 가엾느니 하면서 새파란 하늘,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석류, 추석 보름달,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 등의 이미지와 불가분인 한국의 가을을 그리워했었다. 끔찍한 김장 시즌조차가 못 견디는 향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지 2년째 되는 요즘 웬일인지 자꾸 뮌헨의 가을이 생각난다. 뮌헨의 10월은 벌써 본격적인 털외투가 필요해지는 계절이다. 한달 중 20일은 비가 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언제나 하늘을 뒤덮고 있는 짙은 회색 구름과 언제나 공기를 무겁게 적시고 있는 두꺼운 안개, 안개비, 보슬비 등과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 뮌헨의 10월이다.
벽이 두껍고 방 안에서 이중창에 세 겹 커튼을 두르고 난로를 때고 앉으면 독서의 계절이라는 슬로건이 없어도 누구나가 마치 회색 안개에 눌린 듯이 생각과 책읽기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던 슈바빙이라는 뮌헨의 한 구는 일부러 옛날 것을 그대로 놔 두는 파리식인 예술가 촌이었다. 거기서만은 형광등 대신 여전히 가스등이 가로등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저녁때의 짙은 안개 속에 가물가물 어렴풋이 보이는 가스등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가 긴 막대기로 유유히 한 등 한 등 켜 가는 박모의 광경은 이런 계절에는 더욱 몽환적으로 동요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10월이 되면 레스토랑이나 다방에서 손님들이 '데운 맥주'를 요구하는 수가 늘게 된다. 그러나 추위를 덜기 위해서 그보다 흔히들 마시는 것은 물과 설탕을 끓이고 럼주를 섞은 그로크라는 음료와 또 붉은 포도주에 계피, 사향, 레몬, 설탕 등을 넣고 끓인 '굴류와인'이라는 음료다. 둘 다 북극다운 침침하고 검소한, 음악도 없는 뮌헨의 학생 다방에서 마실 때 무척 맛있게, 또 추위에 대해서 유효하게 생각된 음료지만 한국에서 마시면 어떨는지? 아직 한 번도 시험해 보지 못했다. 아마 그 우울한 안개비의 포장과 뜨거운 사기 난로, 구운 소시지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날라다 주는 금발의 프로일라인의 친절한 미소 없이는 맛없는 음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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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과학/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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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운명 빅뱅과 그 이후 - 트린 후안 투안
제1장 세계관 (1/2)
신들이 우주를 다스리던 시절
태초부터 인간이란 존재는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좀더 친근한 곳으로 느껴지도록 나름대로 재구성함으로써 무한한 공간에서 오는 끔찍스러운 두려움을 떨쳐버리려 했다. 지금부터 수십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이전 사람들이 살던 세계는 신들의 세상이었다. 낮에는 태양신이 지배를 하고, 밤에는 달과 별의 신이 지배했으며, 나무의 신이 나무에 열매를 맺게하고, 돌의 신이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했다. 그들의 세계는 인간의 관점에 맞춘 안전하고도 친근한 곳이었다. 신화의 세계는 약 1만 년 전부터 등장한 신들의 지배를 받았다. 사람들은 남신과 여신들의 활동-신들의 장난과 결혼, 증오와 싸움-을 우주의 탄생을 포함한 온갖 자연현상의 원인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여성의 출산은 숱한 창조 신화에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5000년 전, 바빌로니아인들을 최초의 여자인 티아마트가 바다의 신인 압수와 결합해 하늘의 신 아누를 낳고, 다시 아누와 티아마트가 결합해 물의 신인 에아를 낳았다고 믿었다. 고대 이짐트 신화에서도 원시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었다. 바다는 최초의 존재인 아텀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아텀은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서 후에 태양신 라가 된다. 대지의 신인 게브는 산으로 둘러싸인 평평한 원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원시 바다 위를 떠다니는 존재였다. 대기(대기)의 신인 슈가 떠받치고 있는 아름다운 여신 누트의 몸은 하늘을 이루고, 그녀의 몸에 박힌 행성과 별이라는 보석은 영원히 반짝거렸다. 태양신 라는 배를 타고 누트의 드을 건너서 하늘을 가로질러 항해한 후, 밤에는 세상 밑에 있는 바다를 지나 동쪽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옴으로써 하루의 순환을 마무리했다.
중국의 우주관에는 의인화한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는 음(음)과 양(양)이라는 두 가지 상극의 힘이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양은 하늘을 의미하며, 힘이 강하고 창조적이며 남성적이다. 음은 땅을 의미하며, 모성적이고 여성적이다. 이러한 음과 양은 영원히 순회를 거듭한다. 태양(양)의 열과 광명이 달(음)의 어둡고 차가우며 음습한 빛에 밀려나는 것이다.
BC 6세기경, 소아시아 연해의 이오니아에서 이루어진 '그리스의 기적'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신들에게 맹목적으로 맡겨놓은 자연현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우주의 구성 요소들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법칙들을 통해 지배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도 신성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상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적인 방법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이 8세기에 걸쳐서 형성한 것이다. 우주의 조화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천체의 운동, 특히 행성의 운동을 관찰하고 측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 시기 동안에 널리 퍼져나갔다.
그리스인의 세계관:우주의 중심, 지구
그리스인들이 지구 중심의 우주관을 그토록 쉽게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매일 밤 우리는 천체가 하늘을 가로질러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다. 우주 중심에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있고, 태양, 달, 행성과 별들이 그 주의를 돈다고 생각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지 않은가? BC 4세기에 플라톤(BC 428경∼348)은 우주 중심에 고정된 지구가 있고, 그 둘레에 행성과 별들이 움직이는 거대한 구가 놓여 있어서 매일 한 번씩 회전하는 세계관을 가정했다. 그러나 두 개의 구로 된 플라톤의 우주관은 일부 행성의 운동에서 보이는 특이한 이탈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행성과 별들은 매일 밤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늘을 가르며 움직인다. 하지만 어떤 행성은 가끔 그 배경 별들과는 반대로 움직인다. 오늘날에는 그런 역행운동이 궤도 위를 움직이는 행성을 관찰할 때 생기는 착시현상임이 밝혀졌다. 플라톤과 동시대인인 크니두스의 에우독수스(BC 400경∼350경) 역시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는 지구라는 전제 위에서 행성의 역행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개의 구로 된 플라톤의 우주를 27개의 구로 이루어진 우주로 발전시켰다. 그는 지구와 별들의 천구 외에도 당시 알려진 모든 행성들에 대해 각각 새로운 구를 추가했다. 그리고 각 행성의 구에는 또 다른 작은 구를 올려놓았으며, 작은 구의 회전과 행성의 구의 회전을 연결함으로써 일부 행성이 거꾸로 움직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신은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에우족수스의 다구형 모델은 나중에 프톨레마이오스(AD 2세기)가 다듬기는 했지만, 16세기까지 변하지 않고 천구의 운동을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이 모델은 철학적 호응이 부족했다. 철학적 이론을 제시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와 그후 1600년이 지난 뒤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이다. BC 350년경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두 영역으로 나누고 중간에 달의 구를 놓았다. 지구와 달은 생로병사하는 불완전한 세계이다. 그러나 다른 행성이나 태양, 별이 있는 달 너머 세계는 모든 것이 변치 않고 영원하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사물이 완벽한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이것이 행성의 구가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 이유이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는 신의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 바꾼 것이 기독교 사상이다. 도미니크회 수사인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13세기 기독교의 계관을 결합해했다. 그는 달과 태양, 행성, 별의 구 바깥에 영원히 회전하는 근원적인 구(원동력)를 덧붙였다. 그리고 신을 근원적인 구 너머에 있는 가장 높은 구인, 최고 천에 머무는 의인화한 독립된 존재로 생각했다. 신은 천국의 주인으로 자신이 창조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본다. 천사들을 태양의 구와 행성의 구 사이에 살며, 천체의 구들이 각각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게 한다. 그들의 계급은 신의 영역에서 그들이 사는 곳까지의 거리와 반비례한다. 달의 구 아래에는 연옥이 있고, 지상에서는 인간과 같은 유한한 존재들이 산다. 땅속 깊숙한 곳에는 지옥이 있는데, 그곳에는 악마가 살며 지상에서 사악한 짓을 한 사람들의 영혼이 머문다.
태양 중심설:고페르니쿠스의 대혁명
우주는 움직이지 않는 지구 주의를 거의 2000년 동안 돌아야 했다. 1543년 폴란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천체의 회전운동에 대하여≫를 출판했다. 이 책은 지적 혁명에 불을 당겼으며, 그 여파는 오늘날에도 미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를 자랑스런 위치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태양을 앉혔다. 그리고 지구로 하여금 매년 주기적으로 태양 주위를 돌게 만들었다. 지구는 다른 행성과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태양 중심설은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인간은 우주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인간은 신에게 선택된 존재도 아니고, 우주는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도 아니었다. 지구는 그때부터 행성의 구가 있는 천계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지구는 불완전하고 변화하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달 너머의 천계와 그 너머의 세상 또한 변화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린 것일까? 우주가 어마어마하게 커진 대신에 지구는 그만큼 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는 우주의 규모가 태양계 밖으로 나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장 먼 별들의 천구라고 해야 토성의 구 바로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역시 별들의 구에 의해 그 크기가 제한되지만 가장 바깥의 별들의 구는 고정되어 있다. 밤마다 별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늘이 지구 주위를 돌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가 그 축을 중심으로 매일 자전하기 때문이다. 코페르티쿠스는 지구가 움직이고 별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별들이 있는 구의 위치를 처음보다 훨씬 더 먼 곳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데도 불구하고, 별들은 서로에 대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가 1년간 여행하는 동안 가까운 별을 두 차례 관찰해 보면, 그 별은 상대적으로 더 먼 곳의 별들과 비교해 그 위치가 변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코페르니쿠스는 별들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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