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2호 2023.2.8 수요일 (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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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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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인생을 살아라.
사랑을 애써 이해하려고 들지 말라. 사랑속으로 들어가라.
- 오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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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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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동료를 구한 사람은
동기가 의무감 때문이었든
자신의 수고에 대해 보상을
받으려는 기대 때문이었든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한 겁니다.
자신을 믿는 친구를 배신한 사람은
자신이 더 큰 도움을 받은 또 다른
친구를 도와주기 위함이어도
죄를 지은 겁니다.
- 존 스튜어트 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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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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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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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 한용운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이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똘귀똘' 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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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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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6. 고목나무가 꽃을 피우다(춘신군 1/2)
춘신군은 초나라 사람으로서 이름은 헐이요, 성은 황 씨이다. 그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으며, 초나라의 경양왕을 모시고 있었다. 경양왕은 황헐이 변론을 잘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 무렵에 진나라는 이미 백기로 하여금 초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무와 검중 지방 등을 탈취하였고, 언, 영 지방을 함락시켰으며, 동으로는 경릉까지 제압하여 초나라의 경양왕은 동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황헐(춘신군)은 진나라가 초나라를 없애버릴까 두려워 하였다. 이에 그는 편지를 진나라 소왕에게 보냈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우면
"지금 천하에서 진나라와 초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 초나라를 정벌하려 하신다는 소문이 들리니 이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울 때에는 힘없는 개가 그 해를 입게 되오니 초나라와 친교를 맺는 거이 가장 나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 까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일은 극단의 상태에 이르면 다시 처음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겨울이 다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다하면 겨울이 옵니다. 위로 쌓은 것이 극단에 이르면 위태롭게 되니 바둑알을 쌓아놓는 경우가 바로 그 일례입니다. 지금 대왕의 영토는 천하에 두루 퍼져 있어서 동서의 변경에까지 걸쳐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생긴 이래로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편 대왕께서는 성교를 한나라에 보내셨는데, 성교는 그 땅을 가지고 진나라로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대왕께서 군대를 사용하거나, 위세를 과시하지 아니하고도 백 리의 땅을 얻은 것이니 왕께서는 유능한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또 군사를 일으켜서 위나라를 공격하니 드디어 위나라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대왕께서는 또 제나라와 진나라의 허리 부분을 끊고, 초나라와 조나라의 등뼈 부분을 자르니 천하의 나라가 모였으나 감히 이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대왕의 위세 또한 극도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 대왕께서 만약에 공적을 보유하시고, 위세를 지키신 채로 남을 공격하여 탈취하려는 욕심을 버리시고, 그 대신 인의 의 땅을 비옥하게 갈아 놓으셔서 후환이 없도록 하신다면 3왕에 다시 대왕을 첨가할 필요가 없을 만큼 대왕께서는 위대하신 것이며, 오패에 다시 대왕의 이름을 첨가할 필요가 없을 만큼 대왕은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만약에 자기를 따르는 백성의 많음을 믿고, 병력의 당대함에 의지하여, 위나라에 승리한 위세를 타서 힘으로 천하의 군주를 신하로 삼으려 하신다면 그 후환이 생기리라고 신은 걱정이 됩니다. "시경"은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시작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끝맺음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도다.
그리고 "역경"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우가 물을 건너려 할 때는
그 꼬리를 물 속에 담가 본다.
이러한 글들은 모두 일이란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맺기는 어려움을 뜻하고 있습니다. 옛날 지백은 조나라를 정벌하는 것의 이익되는 것만을 알았고, 유차에서 자신이 당할 화는 몰랐으며, 오나라는 제나라를 정벌하는 것의 편리함만 알았고, 월나라에게 패배하리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이 두 나라는 큰 공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눈앞에 있는 이익에 빠져서 그 뒤에 있을 환난을 가볍게 여겼던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초나라를 무너뜨릴 것만을 생각하시느라 초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 한, 위를 강성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고 계십니다. "시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큰 세력을 가진 자는
먼 곳은 안정시키고 간섭하지 않는다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초나라는 우방이요, 이웃나라는 적국입니다. 또한 이런 말도 "시경"에는 있습니다.
펄펄 뛰는 교활한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 사로잡히고,
다른 사람이 먹은 마음을 나는 헤아려 안다네.
지금 대왕께서는 한, 위가 대왕을 잘 대우한다고 믿고 계시니 이는 바로 오나라가 월나라를 믿은 것과 똑같습니다. 신이 듣건대, '적은 틈을 주어서는 안되고, 때는 놓쳐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한, 위에 대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 베푼 덕은 없고,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은 원망만 있습니다. 한나라와 위나라의 부자와 형제들이 진나라 때문에 연이어서 죽음을 당한 것이 이미 10대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조국은 피폐하게 되고, 사직은 기울었고, 종묘는 허물어졌습니다. 그들은 배를 칼에 찔려 창자가 끊어졌고, 목은 잘리고 턱은 꺾어졌으며, 머리와 몸은 분리된 채 풀밭과 진펄에 해골이 나뒹굴고, 두개골은 거꾸로 처박혀 국경선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와 노약자가 목과 손목을 묶인 채 포로가 되어서 길에 연이어 있습니다. 귀신들은 외로이 상처받고, 그들을 제사하는 유족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가족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진 채 남의 종이 된 사람이 천하에 가득 차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한, 위가 망하지 않는 것은 진나라의 우환거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그들의 힘을 빌어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니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대왕께서 초나라를 공격하는 동안 네 나라에서는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서 대왕에게 대응할 것입니다. 진, 초의 군대가 전쟁을 쉬지 않고 하는 동안 위나라는 군대를 출격시켜 공격할 것이니 그러면 옛 송나라의 땅을 모두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제나라 사람들은 남쪽을 향하여 초나라를 공격할 것이니 그러면 사방은 반드시 정복당할 것입니다. 이들 땅은 모두 사방에 통할 수 있는 평원이며, 기름진 땅인데 그들로 하여금 단독으로 공격하여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대왕께서 초나라를 공격함으로써 중원지방에 한, 위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고,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주게 됩니다. 그리하여 한, 위의 강대함이 진나라와 대적할 만한 것입니다. 한편 제나라는 남으로는 사수로 경계선을 삼고, 동으로는 바다를 등지고 있으며, 북으로는 황하를 끼고 있으므로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천하의 나라 중에 제, 위보다 강한 나라는 없게 될 것입니다. 제, 위가 땅을 얻고 이익을 챙겨서 진나라의 하급관리를 거짓으로 받든다면 1년 뒤에는 비록 자기들이 황제가 되지는 못한다 할 지라도 대왕께서 황제가 되는 것을 막기에는 풍부한 힘을 가질 것입니다. 생각컨대, 대왕과 같이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고, 많은 백성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처지에 전쟁을 하는 것은 대왕의 실책이라 하겠습니다. 신이 대왕을 위하여 깊이 생각하여 보건대, 초나라와 선린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진나라와 초나라가 화합하여 하나가 되어서 한나라에 대처한다면 한나라는 반드시 진나라에 복종을 하게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이때에 험준한 산동의 지리로써 옷깃을 삼고, 굽이치는 황하의 이로움으로써 띠를 삼는다면 한나라는 반드시 대왕의 관문을 지키는 제후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된다면 위나라도 또한 진나라를 위하여 제후를 감시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왕께서 일단 초나라와 선린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진나라의 영향력 안에 들에 되는 두 대국 군주들이 제나라와 국경선을 같이하고 견제를 할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제나라의 오른편에 있는 땅은 팔짱을 낀 채 그대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영토가 동해와 서해를 가로질러 형성이 된다면 제, 초는 연, 조와 연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연, 조를 위협하고, 바로 제, 초를 뒤흔들어 놓는다면 이 네 나라는 가혹히 공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복종할 것입니다.
황헐의 글을 다 검토한 소왕은
"참으로 좋은 글이로고."
하며 칭찬하고 백기의 공격을 멈추게 한 다음 한나라와 위나라에 사과하였다. 그리고 사신으로 하여금 초나라에 예물을 바치고, 동맹국이 될 것을 약속하였다.
죽고자 하는 이는 산다
황헐이 진나라왕의 약속을 바도 초나라로 돌아왔다. 이에 초나라는 황헐과 태자 완을 진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진나라는 이들을 여러 해 동안 억류하였다. 그 뒤 초나라의 경양왕이 병이 들었는데도 태자가 귀국을 할 수가 없었다. 원래 태자는 승상인 응후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황헐이 응후를 찾아가 설득하였다.
"승상께서는 정말 태자와 친하십니까?"
응후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황헐은 말을 이었다.
"지금 초나라 왕은 병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으니 태자를 귀국시키는 것이 가장 나을 것입니다. 이 태자가 초나라 왕위에 오르게 된다면 그는 분명히 진나라를 정성스럽게 섬길 것이며, 승상께 대해서도 무궁한 은혜를 베풀 것입니다. 이것은 동맹국과 친교를 두텁게 하는 거이며 신임을 얻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이 태자가 귀국하지 못한다면 그는 다만 함양에 사는 평범한 선비에 불과할 뿐이니, 초나라는 다른 태자를 세우고는 이 진나라를 섬기지 아니할 것이 분명합니다. 동맹국을 잃어버리고 대국과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잘못된 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승상께서는 이를 깊이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응후는 이러한 뜻을 진나라 왕에게 말했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말했다.
"태자의 스승으로 하여금 먼저 포나라에 가서 왕의 병이 어떤 상태인가를 알아보고, 그가 돌아온 뒤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합시다."
이에 황헐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진나라가 태자를 붙잡아 두는 까닭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태자께서는 그들을 이롭게 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몹시 걱정하는 일입니다. 지금 국내에는 양문군의 두 아들이 있는데 대왕께서 만일에 돌아가신다면 태자께서 초나라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양문군의 아들이 반드시 왕의 자리를 물려받고 태자께서는 종묘에 제사를 받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조속히 서두르시어 사신으로 온 사람과 함께 진나라에서 도망하여 국경을 벗어나십시오. 신은 여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뒷일을 맡겠습니다."
그리하여 태자는 의복을 바꾸어 입고 사자의 마부로 변장하여 진나라의 관문을 벗어났다. 이때 황헐은 집을 지키고 병을 핑계로 손님을 거절한 채 며칠을 보냈다. 태자가 이미 멀리 도망하여 진나라가 추격할 수가 없다고 판단되자 그는 스스로 진나라 소왕에게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나라의 태자는 이미 귀국을 하여 국경선을 멀리 벗어났습니다. 제가 그 책임을 지고 죽어 마땅하오니 죽음을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소왕은 크게 노하여 그를 죽게 하려고 하였다. 이때 응후가 이렇게 말했다.
"황헐이 신하된 의리로써 자신을 내던져 군주를 위하여 죽고자 하였으니 태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반드시 황헐을 기용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죄를 주지 마시고 그대로 귀국을 시키시어 초나라와 친교를 맺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황헐을 귀국시켰다. 황헐이 귀국한 지 3개월 뒤에 경양왕이 죽고 태자 완이 왕위에 오르니 이 사람이 바로 고열왕이다. 고열왕 원년에 황헐을 재상으로 삼고, 그를 춘신군에 봉하여 회북의 12현을 하사하였다. 그 뒤 15년이 지나서 황헐은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회북의 땅은 제나라와 국경을 접한 곳이므로 정치적으로 긴요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군으로 만드는 것이 편리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회북의 12현을 헌납하고 강동에 임명해 주기를 청하였다. 고열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춘신군은 그 후 오나라의 옛 폐허에 성을 쌓고 자신의 도읍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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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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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진(拂鬚塵)
拂:떨칠 불. 鬚:수염 수. 塵:티끌/먼지 진.
[준말] 불수(拂鬚). [출전]《宋史》〈寇準傳〉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준다는 뜻. 곧
① 윗사람이나 권력자에게 아부(아첨)함의 비유.
② 상사(上司)에 대한 비굴한 태도의 비유.
송(宋:北宋, 960~1127)나라의 4대 황제인 인종(仁宗:1022~1063) 때 강직하기로 유명한 구준(寇準)이라는 정의파 재상이 있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여러 유능한 인재를 발탁, 천거했는데 참정(參政:從二品) 정위(丁謂)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구준이 정위를 포함한 중신들과 회식(會食)을 하는데 음식찌꺼기가 수염에 붙었다. 이것을 본 정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소맷자락으로 공손히 털어냈다. 그러자 구준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허, 참. 참정이라면 나라의 중신인데, 어찌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주는[拂鬚塵]’ 그런 하찮은 일을 하오?”
정위는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물러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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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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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가스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순하고 내성적이어서 라디오 방송들을 듣기만 할 뿐 이렇게 편지를 쓴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직업상 국민 여러분들, 특히 가, 나, 다로 시작되는 아파트에 살고 계신 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제가 직업상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L.P.G 가스를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다 아시죠? 떡 벌어진 어깨, 약간 낡은 청바지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뒤에는 가스를 가득 실은 채 1톤 트럭을 운전하는 가스배달부. 무전기 옆에 차고 도심을 가르는 거친 사나이만의 직업. 저는 정말 이 직업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직업에는 애로사항이 있기 마련.... 멋지게만 보이는 이 가스배달에도 몇 가지 애로사항이 있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으시고 특히 가, 나, 다동에 사시는 아파트 주민 여러분 앞으로 적극 협조 바랍니다. 며칠 전, 가스를 가득 싣고 시내를 질주하는 저에게 본부로부터 무전기로 긴급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XX아파트 가동 506호에 지금 밥짓다 가스가 떨어졌으니 밥이 죽되기 전에 빨리 가스를 갖다 주라는 거였습니다. 긴급명령을 하달받은 저는 고객의 밥이 죽이 되선 안된다는 프로정신과 가스배달부의 자존심을 걸고 문제의 XX아파트로 출동. 제가 1분이라도 늦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생각에 출동 4분 만에 XX아파트 가동 앞에 도착한 저는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음, 제시간에 도착했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스 1통(약44Kg)을 어깨에 멘 저는 과감히 아파트 현관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막상 5층까지 이걸 메고 올라가려니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L.P.G를 사용하는 건물은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음) 그러나 제가 누굽니까? 프로정신이 투철한 대한민국 가스배달의 자존심이 아닙니까?
1층? 가볍게 올라갔습니다.
2층? 약간 힘들데요.
3층? 힘을 냈습니다.
4층? 오기로 올라갔죠.
그리고 마지막 5층!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라는 승리의 미소가 저의 입술을 스쳤습니다.
"딩- 동."
"누구세요?"
맑은 아가씨의 음성. 아-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가스 왔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 주어야 할 아가씨는 문을 꼭 걸어잠그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희 가스 안 시켰는데요."
이 무슨 마른 하늘에 장작빠개지는 소린가? 어떻게 올라온 5층인데.... 오직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올라온 5층을 그렇게 쉽게 안 시켰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제가 잘못 왔나 하고 옆집 대문을 봤습니다. 가동 505호. 그렇다면 여긴 분명 가동 506호가 맞을텐데.... 다시 한번 벨을 눌렀지만 아가씬지 아줌만지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고, 저는 비틀비틀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허리의 무전기를 꺼내 본부에 확인을 했습니다.
"본부 나와라 오바."
"말하라 오바."
"XX아파트 가동 506호 맞나?"
"잠기 기다리기 바란다. 오바."
"알았다."
"가동이 아니라 다동인 것 같다 오바."
"다시 한번 말해봐라."
"미안하다. 가동이 아니고 다동이다. 오바."
미안하다? 아니 이 일이 미안하다고 해결될 일입니까? 가와 다의 발음이 비슷한 건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합니까?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을 다동 506호야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아직 후들거리는 다리로 엑셀을 밟고 다동에 도착하니 이미 10여 분의 시간이 지나 있었고, 다동 5층의 하늘은 멀기만 하더군요.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제가 누굽니까? 프로정신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의 가스배달부 아닙니까? 올라갔죠. 올라가야죠. 다시 어깨에 멧습니다. 벌써 통증이 오더군요.
1층? 힘을 냈습니다.
2층? 정신력을 버텼죠.
3층? 오기로 올라섰습니다.
4층? 깡으로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5층? 그대로 주저앉아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주 많이 늙으신 할머니가 나오시더군요.
"가스 불렸죠?"
할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있는 저와 그 옆에 세워진 가스통을 번갈아 보시더니 이러시는 거예요.
"가스 불르긴 불렀는디, 우리는 아저씨들 힘들께비 가스통을 현관 옆 화단에 놨는디, 그 무거운 것을 뭣헌다고 예까지 떼미고 온데요?"
그리고 결정적인 할머니의 한마디!
"그나저나 아자씨가 늦게 오는 바람에 밥이 다 죽됐는디 어터켜-어?"
저의 투철한 프로정신과 가스배달의 자존심은 이 한마디에 완전히 날아가 버렸고, 저는 그걸 메고 다시 내려와 제가 차를 세워 놓았던 바로 옆 나무 뒤에 설치된 가스통을 교체해 주었답니다. 국민 여러분! 가, 나, 다동으로 시작되는 아파트 주민여러분! 가스 주문하실 때에 발음을 정확히 해 주십시오. 저, 집에서 가끔 쌍코피가 터집니다. 하루에 한두 개도 아니고 몇십 개씩 날라야 하는데, 제발 발음 좀 정확히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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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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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혜린편"(1934~1965)
수필가. 평남 순천 출생. 독일 뮌헨대 독문과 수료.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 역임. 31세로 자살함.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 속에 불꽃처럼 살다가 간 지식인이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을 갖고 생을 긍정했고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과 일종의 필수적인 비애의 기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독일로 가는 길
- 그 당시 언제나 내 입에는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시 구절이 떠나질 않았다.
왜 하필 독일에 가게 되고 또 독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는가? 라고 간혹 질문받을 때마다 나는 한 마디로 대답을 못 한다. 그리고 '우연이지요'라고 대답할 때가 대부분의 경우였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나의 유학의 동기는 막연했고 또 우연의 별의 지배 밑에 놓여 있었던 것 같기만 하다. 나는 국민 학교 때부터 대학까지를 관립 학교만을 나오았었고 다녔었다. 또 점수따기와 책상버러지와 독서광의 부류에 속해 왔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로를 밟은 사람이면 알 수 있는 온갖 관료적, 점수주의적 암기식 교육에 대해서 맹렬한 반발과 자유로운 학문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품고 있었다. 부산 영도의 피난 가교사에서 졸업식을 마치고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와 또 커트라인 높은 학교에 대한 우등생다운 유치한 무의식의 흥미로 법대에 입학하고 난 후부터 나는 몹시도 혼란한 정신상태 속에 살고 있었다. 배우는 학과마다 'du sollst'였고 로마 제국의 법언과 양피지 냄새가 났었다. 조금도 리얼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가장 리얼한 시스템인 정치 체계 위에 세워진 학문이 가장 공소하게 나에게는 느껴졌었다.
그것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유일의 것, 궁극적인 것이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유일의 것은 그 때의 나에게는 정신 또는 철학이라고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때부터인지 철학을 공부하려 마음먹게 되었고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에 간다는 것은 언젠가의 꿈으로 돌려져 있었다. 대학 3학년, 내가 스물한 살 때였다. 나의 둘도 없는, 그 때 미국에 가 있던 주혜라는 친구가 독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느냐고 편지를 했었다. 주혜는 그의 아버지의 친구인 독일인을 서신을 통해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 다음은 수없는 서류 작성과 독일어 공부, 유학생 시험... 그리고는 한국이 세계에서도 그 복잡성과 번거로움에 첫째 간다는 출국 수속으로 바삐 돌아다녔다. 언제나 내 입에는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 시인의 시 구절이 떠나지 않았고 갑자기 지평선이 무한대로까지 넓어진 느낌이 났었다. 그 때의 그 신선한 흥미와 이유 없는 마음의 약동을 아마 나는 일생 다시는 가져 보지 못할 것이다. 다시 어디고 가게 되더라도. 맏딸로서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늘 양친에만 매달려 온, 말하자면 어리광둥이인 나에게 출발의 날은 어제까지의 분주와 약동과 흥미와는 딴판으로 암담했다.
갑자기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고 절대로 내 집을 떠날 수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이 없었다. 그보다도 무서웠다. 그 때까지 국내에서도 피난 때의 왕복 이외에는 여행이라고는 해 본 일이 없는 나였고 내 집 이외에는 친척집에서도 자 본 일이 없는 나였다. 미칠 듯이 울었던 생각이 아직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비행기가 뮌헨에 닿았을 때도 그 암담은 또 한 번 내 마음을 덮었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었고, 그 때만 해도 독일에 유학가는 한국인이 거의 없을 때였다. 더구나 여자로는 아무도 마중나올 사람이 있을 리 없었고 독일어도 자신이 전연 없었다. 무슨 차를 타도 그것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1955년 가을이었다.
덧붙여 한 마디-내가 살았던 슈바빙 구의 분위기가 가르쳐 준 거. 언제나 아무도 안 사는 그림을 그리고 아무도 안 읽을 시를 쓰면서 굶다시피 살면서도 오만과 긍지를 안 버리는, 이 구역에 사는 모두가 가난했고 대개가 외국이나 타 지방에서 모여든 화가나 학생이었던 그들한테서 나는 자유로운 생활이 무엇인지를 배운 것 같다. 목적을 가진 생활, 그 일 때문이라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생활, 따라서 온갖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타인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는 생활이 그것인 것이다. 또 나는 편견 없이 산다는 것인 무엇인가를 본 것 같다. 정신만이 결국 문제되는 유일의 것이라는 것도. 국적도 피부색도 아무것도 거기에는 문제가 되고 있지 않았다. 영혼의 교통이 가능하여 정신이 일치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벗이냐 그렇지 않느냐만이 문제였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문제되지 않았다. 슈바빙 구역은 가장 정신이 자유로운 곳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 곳에서의 몇 가지 일들이 생각난다. 내가 가장 깊이 연구했고 전 작품과 생애를 공부해야 했던 그릴파르처의 세미나에서 "사포와 탓소의 비교 연구"라는 테마를 받고 도서관에서 그릴파르처와 사포에 관한 책은 모조리 빌려서 겨우 타이프지 열 장의 레포트를 써 낸 생가, 늘 파우스트를 강의하는 보르헤르트 교수가 너무 노령이고 너무 사투리가 심하고 목소리가 작아서 언제나 속상했던 일, 또 라이스트 교수나 데쿠 교수나, 가장 많은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던 기독교적 실존에 관한 강의를 하는 구아르디니 교수, 강의 때 라틴어와 희랍어를 너무 많이 써서 나는 받아쓰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독일 학생들이 모두 원어로 척척 받아쓰는 것을 보고 통분했던 일. 추억은 괴로웠던 일로만 달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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