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2호 2023.1.16 월요일 (음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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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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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건 당신을 강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5~10퍼센트는 있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이룰 수 없는 경지임을 기억하라.
- 하리 홀츠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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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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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최대의 불행은
농사가 잘 안되었다거나
화재를 만났다거나 또는
나쁜 사람으로부터 받은
타격에서 온다기보다는
우리 개인 개인이 서로 화목
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자기의 이웃과 전인류를
적대시하고 나서 그 누가
행복될 수 있을 것인가?
자기 주위 사람, 아내와 남편과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그리고
친구와 이웃과 화목한 것이
행복의 출발점이다.
- 힐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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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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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반대말
‘낮’의 반대는 ‘밤’, ‘살다’의 반대는 ‘죽다’. 반대말은 어떤 상태의 양쪽 끄트머리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그 사이에 있는 우여곡절은 놓치게 하지. ‘깨끗하다-더럽다’ ‘따뜻하다-차갑다’ ‘다정하다-무정하다’처럼 사회문화적인 평가가 담긴 말은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하지.
'통일’의 반대말은 뭘까? ‘분단’이나 ‘분열’쯤 될 듯. 분단, 분열은 ‘쪼개지고 갈라졌다’는 부정적 감정을, 통일은 ‘하나되고 일치한다’는 긍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의 소원’이기도 하니,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다. 통일만 된다면, 긴장과 대립은 사라지고 상처는 치유되며 온 세상에 일치와 단결의 함성이 드높아질 거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분단, 분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일사불란한 통일을 좋아한다. 식당에서 ‘짜장면으로 통일!’을 외칠 때 뿌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통일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이를 가려야 성립한다. 그런 점에서 획일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분단’, ‘분열’을 보자. 요즘 말로 바꾸면 ‘자유’나 ‘자치’라 하겠다. 각각의 자유가, 서로의 다름이 당당히 추구되고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래도 함께할 구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떠올라야 ‘같은 말과 피’라는 민족적·유전자적 차원보다 진일보한 통일이 가능하리라. 우리에게 더 많은 권력 분산, 더 많은 지방색, 더 많은 자치가 필요하다. 통일과 자유, 자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게 시대적 과제다. 반대말의 사이를 헤엄치며, 반대말을 뒤섞음으로써.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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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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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엣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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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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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百:일백 백. 聞:들을 문. 不:아니 불. 如:같을 여. 一:한 일. 見:볼 견.
[출전]《漢書》〈趙充國傳〉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무엇이든지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
전한(前漢) 9대 황제인 선제(宣帝:B.C. 74~49)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계(系) 유목 민족인 강족(羌族)이 쳐들어왔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응전했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검찰총장)인 병길(丙吉)에게 후장군(後將軍) 조충국(趙充國)을 찾아가 토벌군의 장수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어 보라고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나이 70이 넘은 노장(老將)이었다. 그는 일찍이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휘하 장수로 흉노 토벌에 출전했다가 포위되자 불과 100여 명의 군사로써 혈전(血戰) 끝에 포위망을 뚫고 전군을 구출했다. 그 공으로 거기 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된 그는 이때부터 오랑캐 토벌전의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조충국을 찾아온 병길은 이렇게 말했다.
“강족을 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장군에게 물어 보랍시는 어명을 받고 왔소이다.”
그러자 조충국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어디 노신(老臣)을 능가할 사람이 있겠소?”
선제는 조충국을 불러 강족 토벌에 대해 물었다.
“강족을 토벌하는데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또 병력은 얼마나 필요하오?”
조충국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옵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軍事)란 실지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오니 원컨대 신을 금성군[金城郡:감숙성 난주(甘肅省蘭州) 부근]으로 보내 주시 오소서. 계책은 현지를 살펴 본 다음에 아뢰겠나이다.”
선제는 기꺼이 윤허했다. 현지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조충국은 기병(騎兵)보다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상주했다. 그 후 이 계책이 채택됨으로써 강족의 반란도 수그러졌다고 한다.
[주] 둔전병 : 변경(邊境)에 주둔(駐屯)/토착(土着)시켜 평상시에는 농사도 짓게 하던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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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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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누가 우리 오빠 좀 말려줘요
저는 저희집이 '코스비 가족'보다 더 재미있는 가족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가 유머와 재치(?)가 있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도 저희 오빠 얘기를 할까 합니다.
먼저 오빠의 소개를 잠깐 하고 넘어갈게요.
이름 : 이정권
나이 : 28세
애인 : 있음(올 겨울에 드디어 결혼 결정)
키 : 173cm(누가 물어보면 175cm가 좀 넘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몸무게 : 70kg
특징 : 하늘을 찌르는 줄도 모르고 자신을 과대 평가함
예를 들어 남들은 썰렁하다고 하는데 자신은 유머러스하다고 한다든지, 또 남들은 성격이 너무 여자같다라고 하는데 자신은 터프하다라고 한다든지 등등.... 마지막으로 연예인들 중에서 그럭저럭 닮은 사람을 꼽으라면 최재성-구준엽(쿵따리 샤바라로 유명한 클론의 한 멤버) 그러면 이제 오빠의 소개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오빠의 그 엉뚱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원래 공부 못하는 애들이 전화번호라든지, 유행가 가사, 연예인들 이름, 뭐 이런 것들을 잘 외우잖아요? 그런데 저희 오빠는 머리가 너무 좋은(?) 탓인지 연예인들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한 글자가 매번 틀리는 겁니다. 예를 들면 최유라씨를 이유라라고 한다든지 이종환씨를 최종환이라 한다든지 등등... 옛날부터 저는 그런 오빠의 심각한 증상을 알았기에 이름의 한 글자가 틀리더라도 요즘은 감안을 해서 듣는데 처음엔 그런 증상에 굉장한 심각성과 놀라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그날을 회상하며 지금부터 저의 머리의 필름을 돌리겠습니다. 최명길씨의 열렬한 팬인 오빠가 어느 날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제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러고는 천장을 뚫어져라 한 번 쳐다보고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아주 세상 다 산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결혼한단다, 그 여자."
여기서 그 여자란 최명길씨를 말합니다.
"누가? 누가 결혼을 하는데?"
역시 세상에 무거운 짐은 모조리 혼자 다 지고 있는 사람처럼 한숨을 쉬며 말을 했습니다.
"김명길."
잠깐! 여기서 우리 모두는 오빠의 그 심각한 증상이 발동했음을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전 겉으로는 오빠의 심각한 마음을 공감함과 동시에 속으로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누구하고?"
"최한길."
저희 오빠 너무 엉뚱하죠? 이 얘기는 예사구요. 제가 친구들에게 생몰매까지 맞아야 했던 한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때 신애라, 차인표 주연의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는 프로그램을 두 분 기억하실 겁니다. 한 3, 4회 정도의 방송이 나갔을 때 그때의 일입니다. 오빤 여자들에게 화제가 될 만큼 인기가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하도 주위에서 여자들이 오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줄곧 차인표, 차인표 하니까(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는 프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오빠는 당연히 차인표를 알리가 없죠) 오빠의 너무나도 짧은 생각에 '차인표, 차인표? 과연 차인표가 누구지'하고 혼자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짜고 한 결과 글쎄,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주인공인 차인표를 옛날에 '장학퀴즈'사회를 보던 차인태씨로 착각을 한 겁니다. 그날 저녁 전 변함없이 오빠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다음은 차인표를 차인태로 착각한 오빠와의 대화입니다. 오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더랍니다.
"야! 요즘 차인표가 왜 그렇게 인기고? 기분 나쁘게. 정말 짜증난다. 우리 회사 여직원들도 차인표 이야기만 하면 고마 껌뻑 넘어간다 아이가. 어휴! 요즘 아무리 개성이 강한 사람이 인기라고 하지만 정말 그 사람만큼은 이해가 안 간다. 그 사람은 별로 텔레비전 출현도 안하고 결혼한 유부남이고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한 게 뭐꼬? 더더군다나 머리 스타일도 희한하고 또...."
전 오빠보다 더 흥분을 하며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고만해라, 고만. 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욕하노. 오빠가 뭔데. 그리고 그 사람이 무슨 결혼을 해. 총각이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영원한 나의 오빠'한테 무슨 소리고. 그리고 뭐 머리스타일 마리 나와서 말인데 오빠보다 더 낫다. 더벅머리보다 더 낫다 말이다."
"참으로 우리 회사 여직원들을 욕했드마는 니도 그 사람 팬이란 말이가? 아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라고 이라노. 주여! 왜 이 중생들이 이 지경까지 가야 합니꺼? 대답 좀 해보이소.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보고 뭐 더벅머리 뭐 내보다 더 낫다고? 내가 정말 이런 말은 안할려고 했는데, 그 사람 머리 가발이다 가발."
"뭐? 가발? 누가 그라드노. 주간지에 났어? 월간지에 났어? 어디에 났어?"
"사람들도 그라고 눈썰미가 그리도 없나? 참, 나도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딱 알겠드만, 니는 모르겠드나?"
저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친구들에게 일제히 전화를 걸어서 그 엄청난 사실을 모조리 알렸습니다. 순진한 제 친구들은 그 사실에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들도 있었고, 제가 너무 흥분을 하며 이야기를 한 탓인지 나의 친구 중 한 명은 '상옥아! 니가 너무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은 내가 전화 연락할 테니까 니는 좀 쉬어라.' 하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오빠와의 대화는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오빠야! 정말이제. 헛소리하는 거 아이제. 내가 알아보고 만약에 사실이 아이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나오는 주인공 차인표, 차인표 맞제? 정말이제?"
"정말이다. 내가 왜 니한테 거짓말을 하노? 거짓말이면 내가 니 동생이다. 그런데 상옥아! '사랑을 그대 품안에'가 뭐꼬? 그리고 드라마? 그 사람이 드라마에 나온다 말이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사람은 원래 MC인데 이상하네."
"그 사람이 MC를 봤다고? 어디서? 어느 방송에서?"
"와 있다 아이가, 옛날에 '장학퀴즈' 맞다 '장학퀴즈' 저기 일요일 아침에 니도 그 프로 봤다 아이가, 맞잖아 차인표, 나는 틀린말은 안해."
"...."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큰 목소리로 자기 주장을 말하는 오빠에게 무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오빠의 증상의 해결책은 없을까요. 누가 우리 오빠 좀 말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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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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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류주현편" (1921~1980)
소설가, 경기도 여주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전문부 수학. 한때 국방부 편수관 역임. 인간, 역사, 현실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입체적인 구성력으로 다채로운 소재를 소화해 낸 작가이다. 초기에는 단편 소설을 주로 썼으며 1964년 장편 소설 "조선 총독부"를 발표하면서부터는 대하적 기록 문학을 통하여 독특한 역사관을 보여 주었다. 100여 편의 단편과 20여 편의 장편을 발표한 다작 경향의 작가였다.
탈고 안 될 전설
벌써 여러 해 전의 이야기다. 도회 생활에 심신이 피로하여 여름 한 달을 향리에 가서 지낸 일이 있다. 나는 그 때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 나의 생애를 두고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며, 필시 그들은 내 메말라 가는 서정에다 활력의 물을 주는 역할을 내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해 줄 줄로 안다. 향리 노원에는 내 형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물이 맑고 산이 높아, 여름 한철에는 찾아오는 대처 사람들이 선경에 비길 만큼, 그 풍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그 여름 한 달을 형의 원두막에서 살았다. 마침 형이 참외와 수박을 많이 심고, 밭둑에는 높직한 원두막을 지어 놓았던 것이다. 그 원두막에서 낮이나 밤이나 외로이 뒹굴며 시장하면 참외를 따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무료하면 공상을 하고, 그것도 시들해지면 원고지에 가벼운 낙서를 하고, 그래도 권태를 느끼면 풀 베는 마을 아이들을 불러 익은 참외 고르기 내기를 해서, 잘 익은 놈을 고른 녀석에게는 잘 익은 놈을, 안 익은 놈을 고른 녀석에게는 씨도 안 여문 참외를 한두 개씩 상으로 안겨 주며 희희낙락,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을 흘렸다.
어느 날인가, 장대비가 몹시 쏟아지는데 뽀얀 우연이 하늘 땅 사이에 꽉 찼다. 줄기차게 퍼붓는 빗발은 열 발자국 앞의 시야를 흐리게 하며 땅을 두드리는 소리는 태초의 음향처럼 사뭇 장엄한 어느 오후였었다. 나는 원두막에 누워서 비몽사몽간을 소요하다가, 빗소리가 너무도 장엄하여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늘과 땅과 공간이 혼연 일체가 된 들판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흐릿한 시야에 들어오는 어떤 물체를 발견하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원두막에서 멀지 않은 밭 언저리로 사람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아 가며, 서두르지 않고 유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여자 한 사람 등에는 분명 바랑을 지고 있었다. 회색 승복이 비에 젖고 있는 작달막한 키의 여승이었다. 나는 흥미에 앞서 경이의 눈으로, 장엄한 자연 앞에 외로이 서 있는 하나의 점을 봤다.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었다. 한 발 두 발 옮기는 걸음이 그대로 태산 같은 안정이고 초연이었다. 잠시 후, 여승은 발길을 돌려 내가 있는 원두막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잘 생긴 코끝에서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유난히 흰 얼굴과 원만한 턱을 가졌다. 여승은 분명코 원두막 위에서 사람이, 그것도 안경을 쓴 도회풍의 젊은 녀석이 내려다보고 있는 줄을 눈치챘으련만, 전연 도외시한 채 서서히 다가와 낙숫물 듣는 처마밑으로 들어서서 비를 긋는 것이다. 관음보살처럼 보였다. 다소곳하게 머리를 숙인 채,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그의 그윽한 눈매와 표정은, 인간세의 백팔번뇌가 한두 방울 빗물로 용해되고 있는, 해탈의 경지 그대로였다. 그렇게 느꼈다.
"좀 올라와 쉬시죠. 비가 몹시 쏟아집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래를 보고 말을 걸었다. 여승은 대답도 없이, 고개도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정한 듯, 빗물 떨어지는 웃옷을 후르르 떨고 사다리에 한 발을 걸쳤다. 나는 원두막 위에서 몸을 구부리고는 한 손을 내려 보냈다. 여승은 주저하지 않았다. 내려온 손을 잡고 몸을 원두막 위로 올린, 손과 손끝의 접촉은 비정적일 만큼 싸늘한 촉감을 여운처럼 남겼다. 초면의 남녀가 말없이 앉았기란 지극히 부자연스러워 말을 걸어 보았다.
"어느 절에 계신가요?"
"불암사에 있습니다."
불암사란, 원두막에서 10리 쯤 떨어진 산 속에 위치한 조그만 절이지만, 내력은 오래 됐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비가 몹시 쏟아집니다. 이런 비를 맞으시고 어딜..."
"그저 거닐었습니다. 하도 장하게 오시는 비이기에..."
스물 몇쯤이나 될까, 갸름한 얼굴에는 교양미가 깃들여 있고, 흠뻑 젖은 승복은 세련된 여체를 감싸고 있었다.
"불암사에 오신 지는 오래 되셨나요?"
"1년 가량 됩니다."
"서울서 오셨군요?"
"...참외가 많이 열렸습니다."
극성스럽게 쏟아지는 빗발이 무성한 덩굴을 마구 헤쳐 놓는 바람에 희끗희끗 조랑참외가 유난히 드러나 보였다. 나는 이승이 시장기를 느끼고 있음을 눈치채고, 참외를 한 아름 따다가 깎아 주었다. 여승은 담백하고 솔직한 여자였다.
"좀 시장했어요, 아주 달군요."
첫입을 베어 불며 배시시 웃는데, 이가 고르게 희었다. 잠시 후에 여승은 가 보아야겠다고 일어나더니, 원두막을 내려가 표연히 쏟아지는 빗발 속으로 나섰다.
"절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구경 오시지요."
이 대화가 그 여승과 나와의 다시는 기약할 수 없는 작별 인사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우연히도 역시 소낙비가 퍼붓는 저녁 나절, 내가 있는 그 원두막을 찾아든 젊은 나그네 하나가 있었다. 서울서 왔다는, 삼십 전후의, 얼굴이 해사한 청년인데, 아깝게도 외쪽 팔이 하나 없었다.
"이 근처에 혹 절이 없습니까?"
"어느 절을 찾으시는데요?"
"글쎄요, 어느 절이라기보다 여승이 있을 만한 절이 혹 없을는지요?"
나는 문득, 며칠 전에 만난 그 여승의 영상이 머리에 떠올라, 그 젊은이를 유심히 살펴봤다.
"전장에 갔다 오셨군요?"
조심스런 내 물음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4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딴전을 보는 그의 표정이 퍽은 쓸쓸했다.
"절을 찾으시나요, 아니면 여승을 찾으시나요?"
"둘 다 찾습니다. 여승이 있는 절이 있으면, 필요한 자료나 하나 얻으려고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더 자세히 물어 보았자 생면 부지인 나에게 그가 어떤 간절한 이야기를 해 줄 리도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며칠 동안 그 여승의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환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 사나이가 그 환상을 깨뜨려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따라서, 막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여인에 대한 나의 존경의 염과 연연한 마음이 여지 없이 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더할 수 없이 신비스럽고 깨끗하며, 꿈을 먹고 믿음 속에서 사는 여인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요망한 여자가 악의 구렁에서 헤매던 끝에 문득 깨달은 체하는 가면으로 승복을 빌려 입어, 구렁이 같은 육신을 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까닭이다.
청년은 참외를 하나 달래서 달게 먹더니, 대가를 치르려고 했다. 그 얼굴을 보니 괴로움을 질겅질겅 씹는 표정이었다. 나는 돈 받기를 가볍게 거절하면서, 그 사나이에게 불암사를 가르쳐 주어야 옳을 것인가 아닌가를 곰곰 생각했다. 나는 그의 괴로움을 보며 적의를 느끼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요 뒷산에 불암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거기 젊은 여승 한 분이 계시더군요."
젊은이의 얼굴은 꽃구름처럼 밝아지며 생기가 넘쳐 흘렸다. 그는 더 이상 묻는 말 없이 가 버렸다. 잠시 후에 비는 개고 햇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벌써 서녘 하늘에는 저녁놀이 타고 있었다. 이튿날, 황금빛 아침 햇살이 부챗살처럼 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참외밭머리에 사람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제 본 젊은이가, 며칠 전에 만난 여승과 참외밭머리에서 헤어지고 있었다. 승복 차림의 여인은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석상이 되어 있었다. 별리, 나는 그들의 별리가 어떤 쓰라림을 지닌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진실과 사랑과 참회의 성스러운 자태로 보였다. 나는 그네들이 앞으로 다시 만날는지 안 만날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날까지 그들 남녀의 서글픈 전설을 뇌리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구상되지 않을 이 전설을 영원히 탈고하지 않을 작정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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