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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9호 2023.1.13 금요일 (음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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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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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결합이 있는 곳에
또한 기쁨이 있다.
( 괴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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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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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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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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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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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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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사영(杯中蛇影)
杯:술잔 배. 中:가운데 중. 蛇:뱀 사. 影:그림자 영.
[유사어] 의심암귀(疑心暗鬼), 반신반의(半信半疑).
[출전]《晉書》〈樂廣傳〉,《風俗通義》
술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란 뜻으로, 쓸데없는 의심을 품고 스스로 고민함의 비유.
진(晉:265~316) 나라에 악광(樂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독학을 했지만 영리하고 신중해서 늘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훗날 수재(秀才)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역시 매사에 신중했다. 악광이 하남 태수(河南太守)로 있을 때의 일이다. 자주 놀러 오던 친구가 웬일인지 발을 딱 끊고 찾아오지 않았다. 악광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찾아가 물어 보았다.
“아니, 자네 웬일인가? 요샌 통 얼굴도 안 비치니…….”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번에 우리가 술을 마실 때 얘길세. 그때 술을 막 마시려는데 잔 속에 뱀이 보이는 게 아니겠나.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마셨지. 그런데 그 후로 몸이 좋지 않다네.”
악광은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술자리는 관가(官家)의 자기 방이었고, 그 방 벽에는 활이 걸려 있었지? 그렇다. 그 활에는 옻칠로 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안광은 그 친구를 다시 초대해서 저번에 앉았던 그 자리에 앉히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
“어떤가? 뭐가 보이나?”
“응, 전번과 마찬가지네.”
“그건 저 활에 그려져 있는 뱀 그림자일세.”
그 친구는 그제서야 깨닫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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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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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새댁도 사람인데 - 이원백(남.충북 충주시 교현2동)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제가 정규교육이라고는 겨우 일정시대 일주일에 한 시간씩 겨우 2,3년을 배우다가 말았으니, 무슨 글을 쓸 용기가 나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서툰 글로 편지를 보내니 잘 읽어주십시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 6.25사변도 휴전조약이 성립되어 드디어 총성이 끊어지고 휴전이 되면서 지금껏 한국의 모든 남자들은 국방의 임무를 띠고 징병령을 받고 군복무를 하다가 휴전이 되면서 많은 군인들이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충북 어느 시골 농촌 동리의 한 집에도 아들이 군대 나가 죽을 것만 같아 항시 걱정을 하였는데, 다행이 아무 부상도 없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우선 나이가 30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갔으니 온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아들을 장가들여 며느리를 보게 되었지요. 사돈집 가문 좋고, 인물 잘생기고, 맘씨 착하고, 집안일 막히는 것 없이 잘하여 아무 불만이 없었으나, 시집온 지 얼마 안되어 뒷목에 큰 종기가 하나 생겨서 나을 만하면 또 옆에 생기고, 이제는 다 낫는가하면 또 옆에 생기고, 좀체 낫지 않아서 시어머니는 매우 걱정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장에 가서 페니실린 주사약을 한 병 사왔습니다. 그때만 하여도 전쟁직후라 병원이 없었고 또 있어서 비싸고 돈이 없어서 병원치료는 받기 힘든 때라 페니실린 주사약을 약방에서 사다가 주면서 “저 밑에 살고 있는 구장이 군대에서 의무대 근무를 하여서 주사도 잘 놓고 별도 잘 고친다고 하니 가서 주사 좀 놔달라고 하여라.”하고 시켰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주사약을 받아들고 구장님 집을 찾아가니, 구장 부인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길래, 찾아온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부인은 흔쾌히 승낙하여 방에 있는 남편에게 주사 좀 놔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새색시는 방에 들어와 앉았는데 구장이 주사 놓을 준비를 하고선 저쪽으로 돌아앉으며 하는 말이 “궁둥이를 까대고 앉으시오.”하는 겁니다. 새댁은 마지못하여 궁둥이를 까고 돌려댔습니다. 그냥 놓으면 아프더라도 참을 만하고 좋겠는데 젊은 새댁의 궁둥이를 구장이 툭툭 두드리니 이런 창피가 어디 있겠습니까. 너무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다 그만 나오지 말야야 할 그것이 주책없이 저도 모르게 ‘뽀옹-’하고 나오고 만 것입니다. 이래저래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차에 실례까지 하고 말았으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새댁이 하도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니 구장이 이런 난처한 입장을 좀 면해 주고자 분위기를 바꿔 새색시의 맘을 위로해 줘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구장은 종기가 언제부터 생긴 건지 물어보고, 몇달 되었다고 새댁이 대답을 하면 그것이 원래 잘 안 낫는 병인데 이제 주사를 맞았으니 곧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난처한 입장을 위로해 주려고 한 것이, 그만 방구에 정신이 팔려,‘그 종기가 언제부터 생긴 종기 입니까?’한다는 것이 “그 방구가 언제부터 생긴 방구입니까?”하고 묻고 말았습니다. 새댁은 그만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쏜살같이 도망을 치고 말았지요. 자신의 말에 깜짝 놀란 구장은 ‘아차...’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어었지요.
실수를 깨닫고 민망해서 얼굴이 벌게서 앉았는데, 부엌에서 구장부인이 달음질치는 새댁을 보고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주사를 맞았으면 부엌에 와서 자기한테도 인사하고 갈 것인데 주사맞고 저렇게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것을 보니 암만해도 남편이 젊은 새댁이니 단둘이 방에서 무슨 엉큼한 짓을 한 것이라 여겼지요. 남자들은 군대 갔다오면 무서운 늑대로 변한다더니 우리 남편이, 동리 구장이라는 책임있는 사람이 자기 동리에 부모형제 같은 사람이고 날만 새면이 얼굴을 마주대고 살아야 할 사람에게 그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화가 잔뜩 나서 “여보,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요?”하고 소리쳤습니다. 구장은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지며 "뭘? 아무짓도 안했어." "당신이 엉큼한 짓거리해서 저 새댁이 저렇게 얼굴을 감싸쥐고 도망"는 거 아니냔 말이에요? 바른대로 말해요." 저는 금시 덤벼들 것 같은 기세로 남편을 노려보았습니다. 남편은 하는 수 없이 여차여차해서 새댁이 부끄러운 생각을 좀 덜나게 하려고 했다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구장 부인도 그 말을 듣고 너무 우스워서 허리를 움켜쥐고 요절복통을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한동리 사는 새댁의 체면과 위신이 손상되는 이야기니 절대로 입밖에 내지 말고 비밀을 지키자고 두 내외가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세상의 비밀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혼자 알고 숨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이야기고, 숨기고 비밀을 지키자니 점점 더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부모님이나 동리 친구들이 "미친나? 왜 혼자 싱글벙글 웃고 있냐? 무슨 일인지 나도 좀 알자."며 묻고 대드는 바람에 "그럼 이것은 비밀이니 너 혼자만 알고 있어."하며 신신당부에 다짐까지 받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워낙 우스운 일이라 삽시간에 온 동리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소문은 어른들만 알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구쟁이 어린아이들까지도 알게 되어 이 새댁이 동리에만 나오면 어린 놈들이 뒤를 따라다니면서 "그 방구가 언제부터 생긴 방구입니까?""그 방구가 언제부터 생긴 방구입니까?"하고 줄줄이 따라다녀서 대문 밖엔 못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새댁도 백발이 성성하고 며느리도 보고 해서, 손자 손녀 업고 나와 다녀도 누구나 까마득하니 잊어버리고 말하는 사람없이 맘놓고 안심하고 나와 다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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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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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안병욱편" (1920~2013)
철학자. 수필가.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역임. 삶의 길잡이로 또는 사상의 안내자로 많은 젊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 사상" "사색인의 향연" "철학 노트" "알파와 오메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
고독에의 향수
인간은 세 개의 눈을 갖는다. 첫째는 밖으로 향하는 눈이요, 둘째는 위로 향하는 눈이요, 셋째는 안으로 향하는 눈이다. 밖으로 향하는 눈은 자연과 객관적 대상의 세계로 향한다. 위로 향하는 눈은 신과 종교적 신앙의 세계로 향한다. 안으로 향하는 눈은 자아와 내면적 세계로 향한다. 청년의 사색과 관심의 특색은 내향성과 내면성이 있다. 그는 눈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고 남에게서 자기에게로 돌린다. 청년은 주로 자아와 내면적 세계로 향한다. 그것은 자기 발견, 자기 탐구, 자기 성찰, 자기 응시의 눈이다. 내가 나의 내적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눈이다. 사색에는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색하기 위해서 주위의 접촉에서 격리되어 조용한 장소를 구한다. 더구나 자기 성찰에는 그러한 환경이 요구된다. 고독은 사색하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자기가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나를 응시하고 조용히 인생을 명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청년은 고독에의 향수를 느끼다. 그것은 마치 플라톤이 말한 바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에 대해서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것과 같다. 고독의 시간은 어떤 의미에서 구원의 시간이다. 젊은 혼은 고독 속에서 마음껏 꿈을 꿀 수 있고 감상에 젖을 수 있고 상상의 날개를 타고 낭만의 세계를 달릴 수 있다. 내가 나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젊은이는 술 없이도 취할 수 있다.'고 시인 괴테는 노래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젊은 생명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애지자의 정신만이 날개를 가진다'고 플라톤은 말하지 않았던가.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진리를 향해서, 미를 찾아서, 이상의 세계를 동경하여 한없이 위로 높이 날개를 펴며 날아갈 수 있다. 그러나 꿈은 어디까지나 꿈이요, 결코 현실은 아니다. 이데아에 대한 꿈과 이상에 대한 도취는 현실의 대지로 돌아와야 한다. 꿈은 깨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여러 사상가들이 고독을 사랑하고 고독한 애찬하였다. 고독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지한 사색을 위한 정신의 터전이었다. 니체는 '고독은 나의 고향이다'라고 하였으며, '진리는 호의에서 착상된다'라고 하였다. 니체는 고독한 산보 속에서 사상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칸트도 또한 그러했다. 그의 줄기찬 철학적 사색은 케니하스베르크의 고적한 숲 속을 조용히 산보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네덜란드의 철인 스피노자는 홀로 렌즈를 닦으면서 사색을 연마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사람의 인품은 타인과의 접촉에서 연마되고 원만해진다. 모가 진 돌멩이들이 서로 부딪쳐서 둥그런 자갈이 되듯이 규각을 가진 인간은 상호 접촉하는 가운데서 원만한 성격이 형성된다. 그러나 사색에는 고독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사물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것은 오직 고독 속에서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고독 속에서 벗어나 현실의 생활로 돌아와야 한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남과 교통하는 사회적 실존이다. 우리는 사색을 위해서 가끔 고독의 세계를 갖는 것은 좋으나 고독 속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나와 너와의 생명적 공감의 따뜻한 인간적 대화 속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고독은 정신의 산책처지 영원한 안식처는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갈파한 바와 같이 '완전한 고독 속에서 혼자 살 수 있는 것은 야수나 신뿐이다.' '네 영혼은 피로하거든 산으로 가라'라고 독일의 시인은 노래했다. 우리는 사색과 자기 성찰을 위해서 고독한 환경을 가끔 택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고독은 우리의 안식처는 아니다. 독일의 시인 뤼케르트는 '고독 속에서 살아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말 고독 속에 혼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거인이요, 정신력이 비상하게 강한 인간이다. 문호 입센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란 고독한 인간이다.' 산에 가면 거리가 그립고 거리에 있으면 산이 그리워진다. 자연 속에 있으면 문명이 그립고 문명 속에 있으면 자연이 그리워지는 것이 사람이다. 고독도 그와 비슷하다. 혼자 있으면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 속에 있으면 고독이 그리워진다. 청년들은 고독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의 고독은 흔히 감상주의로 미화된 고독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고독에 대한 향수를 좋아하는 것이다.
니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정신적 거인만이 진정한 고독에 견딜 수 있었다. 청년의 고독은 애상과 낭만이 짝짓는 세티멘털리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홀로 있을 때 고독할 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군중 속에 섞일 때 더 한층 고독을 느낀다. 서로 따뜻한 대화를 잃어버릴 때 인간은 고독한 것이다. 낯선 군중들 속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낄 때 우리는 고독의 비애를 느낀다.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고독이 더욱 심해진다. 홀로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많은 군중들 속에서 대화할 벗이 없기 때문에 고독한 것이다. 고독 속의 고독보다도 군중 속의 고독이 더욱 외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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