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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4호 2022.12.25 일요일 (음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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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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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어떤 논쟁을 매듭짓고 싶으면
당신 말이 옳은 것 같군요 라고 말하도록 노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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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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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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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一) - 김수영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은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만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에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1967.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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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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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수지탄(麥秀之歎)
麥:보리 맥. 秀:빼어날/팰 수. 之:갈 지. 歎:탄식할/감탄할 탄.
[원말] 서리맥수지탄(黍離麥秀之歎).
[동의어] 맥수서유(麥秀黍油). 맥수지시(麥秀之詩).
[참조] 은감불원(殷鑑不遠). 주지육림(酒池肉林).
[출전]《史記》〈宋微子世家〉.《詩經》〈王風篇〉
보리 이삭이 무성함을 탄식한다는 뜻. 곧 고국이 멸망한 탄식.
중국 고대 3왕조의 하나인 은(殷)나라 주왕이 음락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이를 지성으로 간한 신하 중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다. 미자는 주왕의 형으로서 누차 간했으나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했다. 기자도 망명했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미치광이가 되고 또 노예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 비간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주왕은 삼공(三公:왕을 보좌하던 세 제후)의 한 사람이었던 서백[西伯:훗날의 주문왕(周文王)]의 아들 발(發)에게 주살(誅殺)당하고 천하는 주왕조(周王朝)로 바뀌었다. 주나라의 시조가 된 무왕(武王) 발은 은왕조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해 미자를 송왕(宋王)으로 봉했다. 그리고 기자도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되었다. 이에 앞서 기자가 망명지에서 무왕의 부름을 받고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데 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치 못한 기자는 시 한 수를 읊었다.
보리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麥秀漸漸兮(맥수점점혜)]
벼와 기장도 윤기가 흐르는구나 [禾黍油油兮(화서유유혜)]
교활한 저 철부지(주왕)가 [彼狡童兮(피교동해)]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不與我好兮(불여아호혜)]
[주] 기자 동래설(箕子東來說):기자는 주왕의 횡포를 피하여, 혹은 주나라 무왕이 조선왕으로 책봉함에 따라 조선에 들어와 예의/밭갈이/누에치기/베짜기와 사회 교화(敎化)를 위한 팔조지교(八條之敎)를 가르쳤다고 하나 이는 후세 사람들에 의한 조작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라고 함. 왜냐하면 진(晉)나라의 무장(武將)/정치가/학자인 두예(杜預:222~284)가 그의 저서《춘추석례(春秋釋例)》의 주(註)에서 “기자의 무덤이 양(梁)나라의 몽현(夢縣)에 있다”고 적고 있는 만큼 ‘기자 동래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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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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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3. 신생, 메마른 나무처럼 꺾이고
신생의 자살
신생이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억울한 걸 변명하려다가 이 사실을 밝히지 못하면 죄만 더 짓게 되오. 다행히 내 입장을 변명한다 할지라도 아버지는 여희를 벌하지 않을 것이며 그저 마음만 상하실 것이니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식된 도리로 내가 죽는 것만 같지 못하오."
두원관이 충고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음날을 기다려 대사를 도모하십시오."
신생이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임금께서 죄없음을 알아 주지 않고 나를 치러 사람을 보내는데, 내가 누명을 쓰고 다른 나라로 달아난다면 세상 사람들은 나를 참으로 불효한 놈이라고 할 것이오. 설령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모든 잘못은 아버지에게 있다고 변명한대도 결국은 임금을 미워하는 것이 되오. 임금인 아버지의 잘못을 세상에 퍼뜨리면 모든 나라 제후가 다 우리 진나라를 비웃을 것이오. 안으로 부모를 괴롭히고 밖으론 모든 나라 제후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건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이오. 더구나 죄를 벗기 위해서 임금을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더 큰 죄를 짓는 결과가 아니겠소. 내 듣건대 어진 사람은 임금을 미워하지 않으며, 지혜 있는 자는 안팎으로 곤란을 받지 않으며, 용기있는 자는 죽음에서 달아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말을 마친 신생은 붓을 들어 호돌에게 보내는 한 통의 서신을 썼다.
신생은 죄가 많아 이제 죽나이다. 그러나 임금께선 늙으신지라, 앞으로 국가에 어려운 고비가 많을 줄 아니 대부는 힘써 나라를 도우시라. 신생은 비록 죽지만 살아 생전에 받은 대부의 사랑을 잊지 않으리이다.
신생은 편지를 다 쓰고 두원관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아버지인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재배하고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신생이 죽은 이튿날 동관오가 군사를 거느리고 곡옥 땅에 당도했다. 동관오는 신생이 이미 죽은 걸 보자, 두원관을 잡아가지고 도성으로 돌아갔다. 동관오는 돌아가는 길로 진헌공에게 아뢰었다.
"세자는 자기의 죄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 알고 미리 자결하였습니다."
진헌공은 두원관에게 세자의 죄를 모든 사람에게 증명하라고 했다. 두원관이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여! 하늘도 원망스럽구나! 이 두원관이 죽지 않고 붙들려 온 것은 바로 억울하게 죽은 세자의 심정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제사 지내고 보낸 고기포가 궁중에 온 지 엿새나 지났다 하니 그 동안에 무슨 수작을 부려 독약을 발랐는지 알게 뭐냐!"
이 때 병풍 뒤에서 엿듣고 있던 여희가 질겁하게 놀라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저 놈이 증거 없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데 왜 속히 죽이지 않나이까!"
진헌공이 대로하여 분부했다.
"저 놈을 단번에 쳐 죽여라!"
좌우에 시립한 역사가 달려들어 쇳덩이로 두원관의 머리를 내리쳤다. 두원관은 두골이 깨어지고 면모조차 못 알아볼 정도가 되어 그 자리에서 죽었다. 모든 신하는 이 참혹한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 눈물조차 맘 놓고 흘리지 못했다. 이날 동관오와 양오가 우시에게 속삭였다.
"공자 중이와 공자 이오는 모두 세자의 일당들이다. 세자는 이미 죽었으나 두 공자가 아직 살아 남았으니 그것이 실로 걱정이오."
우시는 곧 이 말을 여희에게 알렸다. 그날 밤에 여희가 진헌공에게 울며 호소했다.
"첩이 들으니 중이와 이오도 신생과 함께 이번 일을 모의했다고 하더이다. 중이, 이오 두 공자는 첩이 신생을 죽인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밤낮없이 군사를 조련하여 장차 이 곳으로 쳐들어와서는 세자 신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첩을 죽이고 대사를 도모하려고 서둔답니다. 상감께선 자세히 살피소서."
진헌공은 별로 여희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한 신하가 들어와서 은밀하게 아뢰었다.
"포 땅에 있는 공자 중이와 굴 땅에 있는 공자 이오가 주공께 문안하려고 이미 관에까지 왔다가 세자가 죽었다는 변을 듣자 즉시 수레를 돌려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자, 진헌공은 어젯밤 여희가 한 말이 생각나서 눈을 크게 부릅떴다.
"음! 그래. 과인을 보러 왔다가 하직 인사도 않고 돌아갔다면 그 놈들도 신생과 역적질하기로 공모한 것이 분명하구나! 시인 발제는 군사를 거느리고 포 땅에 가서 공자 중이를 사로잡아 오고, 가화는 군사를 거느리고 굴 땅에 가서 공자 이오를 잡아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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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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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주유소 총잡이들과 방범
안녕하세요. 이종환, 최유라씨!
이것이 두 번째 보내는 편지인데 꼭 채택이 됐으면 하고 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9년 전 88올림픽이 서울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을때 일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방 하나를 들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먼저 서울에 온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한강주유소에 있는 영규, 용산주유소에 있는 태정이, 그리고 대방동 팔각정주유소에 있는 수동이에게 전화를 해서 밤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우리들은 돈도 없고, 해서 두꺼비(소주)와 닭똥집을 사가지고 한강 고수부지로 나가 술을 먹기로 했습니다. 우리들은 술을 먹으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태정이가 갑자기 게임을 제의했습니다.
"우리 게임 한번 하자."
"그래 좋다. 무슨 게임을 할까?"
태정이가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 한강물에 뛰어들어가 누가 제일 먼저 돌을 하나 들고 나오는지 시합을 하자."
친구들도 좋다고 제의가 나왔고, 우리들은 팬티 하나만 남기고 한강물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네명이 나란히 팬티만 있고 서 있느니, 얼마나 가관이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나, 둘, 셋과 동시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셋과 동시에 저쪽 끝에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방범 아저씨였습니다. 아니 젊은 사람들이 지금 무슨 짓들이냐고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우리들은 하는 수 없이 옷을 입고 있는데 옷이 하나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겟습니까. 아니 이것이 웬일입니까. 태정이가 한강물에 뛰어든 것입니다. 우리들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방범 아저씨들과 술을 같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술자리를 같이 하면서 방범 아저씨게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한때는 물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단다."
"애이, 그걸 어떻게 믿어요?"
우리들이 우기자 방범 아저씨들께서는 그럼 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네 명과 방범 아저씨 둘, 합이 여섯 명이서 팬티만 입고 또 나란히 섰습니다. 참 기가 찰 노릇이지요. 비록 밤이지만 한강 고수부지에 나온 사람들이 한마디식 거들었습니다.
"저것들이 미친 것 아냐?"
너도 나도 할 것도 없이 떠들었습니다. 우리 여섯 명은 셋과 동시에 한강물에 뛰어들었습니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것이 웬 조화입니까. 둑위에서 백차(경찰차) 한 대가 와서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거기 한강물을 오염시킨 인간들 0.5초내로 튀어나오지 않으면 모두다 한강물에 몸을 불려 버리겠어 (한강물에 밤새 가두겠다는 이야기)."
우리들은 잽싸게 둑 위로 올라왔습니다. 팬티 하나만입고 여섯 명이 나란히 섰습니다."
"당신네들 죽을려고 작정을 했어? 술먹고 어딜 들어가. 지금 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는데..."
경찰 아저씨는 우리 여섯명을 '주욱' 훑어보며 언성을 높여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데 경찰 아저씨의 시선이 방범 아저씨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겁니다.
"당신네 둘. 어디서 많이 본것 같은데... 나 혹시 몰라."
이 말에 방범 아저시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경찰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한참을 생각하더군요. 그러더니 백차로 다가가서 가려고 하다 다시 우리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당신 둘 팬티 입은 채 차에 타."
그 경찰 아저씨가 결국 방범 아저씨들을 생각해낸 것 같았습니다. 우리들은 아직까지 방범 아저씨들의 소식이 궁금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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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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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숙희편"
전숙희(1919~2010)
여류 수필가. 함남 협곡 출생. 이화 여전 문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 대학 수학. 문화 사절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 준 전숙희는 동서 문화의 교류에 남다른 공적을 남겼으며 월간지 "동서 문화"를 창간해 내기도 하였다. 한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탕자의 변" "이국의 정서" "밀실의 문을 열고" 등 수필집을 통하여 넓은 안목과 교양을 보였다.
삶의 슬기
밤새 훈훈히 김 오른 방문을 열고 청마루로 나서면 코끝이 짜릿하도록 부딪쳐 오는 싸늘한 아침의 감촉. 불기 없는 목욕탕에 받아 놓은 물 위엔 살얼음이 지고 뜰 앞에 서 있는 나무에 매달렸던 마지막 잎마저 떨어져 버리고 가지만이 생명 없는 표본인양 처량해 보이는 초겨울의 아침, 마치 새초롬하게 청초한 여인의 모습 같은, 그러한 초겨울 아침을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부엌에서 보글보글 밥 끓는 소리와 뽀오얗게 서린 김의 훈훈함이 더욱 정다움 아침, 또 어쩌면 온갖 풍상을 다 겪고 나, 그 마음 속에 너그러움과 따뜻함이 이끼처럼 깔려 있는 초로의 모습, 그러나 어딘지 범치 못할 단정함과 의연한 여인의 얼굴과도 같은 그 모습을 나는 사랑하고 싶다. 쌀 뒤주에는 햇곡이 가득하고 곳간에는 차곡차곡 담은 김장독과 겨우내 방들을 덥혀 줄 연탄이 쌓이고 담가 놓은 포도주는 향기롭게 익어, 어쨌든 한 시름을 놓고 이제 휴식의 아침을 맞을 만하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가까워 오는 설날의 꿈을 익히고, 젊은이들은 성탄절에 주고받을 선물과 카드로 마음이 설레이는 아침, 나는 폭신한 털옷으로 몸을 싸고 싸늘한 고요 속에 그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일만이 즐겁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뭇가지에 흰 눈송이가 쏟아진다. 마치 어려서 내가 좋아하던 어떤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 풍경처럼. 얼마 후, 흰눈은 걷히고 나뭇가지에는 새파란 움이 트이더니 푸른 나뭇잎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오래잖아 나무에는 눈부신 붉은 꽃송이들이 탐스럽게 만발한다. 태양은 밝고 우주는 온통 밝은 풍경이다. 그러나, 바라다보고 있는 동안 어느샌가 그 꽃들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잎이 피고 또 떨어진다고 하자. 그리고 열 번 다시 그 붉은 꽃이 만발하고 또 흰 눈송이가 덮일 때, 내 머리는 이미 희어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리라. 초조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으리라.
나는 어려서 곧잘 책상 앞 벽에다 그 시절의 어린 여학생들의 버릇대로 '시간은 황금이다'라고 문구를 써 붙이고 날마다 쳐다보기를 좋아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던 나는 내 시간이 너무나 모자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이렇게 나 자신을 채찍질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도 결국은 나에게 별다른 성과를 주지는 못했다. 즉 지나간 그 많은 시간들도 나에게 기적을 낳아 주진 않았다. 나 자신의 의욕과 협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나에게 넉넉히 주어졌던 노다지 황금과도 같은 그 시간에 노다지 덩어리를 마구 함부로 낭비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 비록 오늘날 그 시간을 통해 별것이 되지는 못했을망정 나는 쓰고 단 생활을 맛보고 또 배웠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사랑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었고 망각의 슬기로움과 평화로움을 가르쳐 주었다. 시간은 나를 황금처럼 빛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지는 못했으나, 그 시간은 나에게 사람을 사랑하고 남을 이해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르쳐 주었다.
푸른 꿈을 가득 지녔던 20대에 나는 지망했던 문학에서 철학으로 옮기려고 했다. 문학조차 시시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회의에 가득 찼던 20대의 나는 모든 것을 동경하면서 또 동시에 경멸하려 드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30대 40대의 나는 변해 있었다. 정열을 다해 생활을 사랑하는 여인이 되었던 것이다. 열심으로 이성을 사랑하고 친구를 따르고, 아이들에게 정을 쏟고 사회 생활에 참여하고... 그러나, 나는 이제 다시금 때때로 철인이 되려는 나 자신을 보며 혼자 미소 짓는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부귀 영화도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도다.' 나는 성경의 이 굴절을 즐겨 되씹어 본다. 그러노라면 뭔가 가슴 속이 허전해 온다. 인생 전체가 연기처럼 모호한 느낌이다. 그러면 왜 나는, 또 많은 사람들은 그처럼 헛되고 헛된 생을 영위하기 위해 그처럼 악착스럽도록 열심으로 살아가야만 하는가?
생각하는 나는 외롭지 않다. 철학 서적을 뒤질 필요는 없다. 인생의 해답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뜰 앞에 서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김 서린 부엌에도, 골목 밖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의 음성에도, 내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나는 때때로 실망이란 아픔을 맛보았고 움직이지 않는 차바퀴를 억지로 밀고 나가려는 어리석은 욕심조차 부려 보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조그마한 내 생활의 창을 통해 생명의 존엄과 삶의 보람을 배워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인생과 더불어 밝아 오는 이 초겨울 아침에도 나는 가슴 속에 훈훈한 애정을 품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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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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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써야 하나? (2/2)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편안하게 살아가고)
발명 등으로 (따위로, 같은 것으로)
윤택하게 (넉넉하게)
발휘되고 (드러나고)
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더 낫게 살아가도록)
더욱 가속화되고 (빨라지고)
편리함의 이기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이 (편리한 기구로)
적지 않은 것 같다. (적지 않다)
그로 인해 나태해지며 (그 때문에 게을러지며)
나쁜 범죄에 사용하여 (범죄에 써서)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세상 사람들이 정신차리게도)
고도로 (높이,크게)
습득하여 (배우고 얻어)
악용한다면 (나쁘게 쓴다면)
기술혁신을 통한 신제품 개발이나 (기술을 혁신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기여한다면 (이바지한다면)
활용하면 (살려 쓰면)
큰 기여를 하지만 (크게 이바지 하지만)
그 기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나약한 (약한)
그것의 이기를 누릴 자유가 있으나 (그 기구를 쓸)
사고방식은 (생각)
과하면 (지나치면)
옛말을 간과해서는 (잊어서는)
인간소외의 위기의식 때문이리라. (사람을 잃어버리는 위태함. 사람이 따돌려지는 위태함. 사람이 사람 노릇을 못 하는 위태함)
쉬운 우리말, 삶에서 익힌 말을 쓰면 틀린 글이 되지 않는다. 책으로 읽은 글말을 쓰니까 이와같이 어려운 한자말이 나오고, 일본말법이 되고,,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을 예사로 쓰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보기글2인데, 여기서는 글에서만 쓰는 잘못된 말이 하나도 없다. 자기 자신의 의견을 자기 말로 쓴 것이다. 다만 널리 입말로 되어 버린 한자말이나 일본말이 두세 군데 보일 뿐이다. 현실적인 문제점을 (현실의, 현실에서 부딪힌) 학생 개개인을 (하나하나를) 점수화한다면 열성적인 어머니들이 (점수로 매긴다면 열성이 있는) 그리고 우리 나라에 학생들이 맘놓고 봉사할 때가.. 란 대문에서 말이 좀 덜 되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우리 나라 학교에서 라고 쓸 것을 학교에 라고 잘못 쓴 것이 아니라면, 신문에 옮겨 실을 때 잘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만큼 깨끗하게 쓴 고등학생의 글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다음 보기글3도 글이 아주 깨끗한 편이다. 유일신 유일하다고 란 말은 전도사란 사람과 주고받는 말 가운데서 나왔던 것 같고, 그래서 썼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몇가지, 안 써도 될 글말이나 잘못 쓴 말을 들어 본다.
그 종교들은 각기 (저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다. 흔히 고유한 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대개는 안 써도 될 자리에 쓰는 것이다.
종교는 우위(우열)를 가릴 수 없다.
행위를 (짓을)
네 명이 (네사람, 넷)
유일무이한 (유일한,오직 하나만)
사이비 (엉터리) 종교들도
그러므로 (그래서, 그러기에) 그러므로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입으로 하는 말을 쓰는 것이 낫다. 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기 종교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제목에서도 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자 로 되어 있는데, 글의 내용이 다른 종교를 헐뜯는다기보다는 자기 종교를 억지로 남에게 전해 주려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니까 말을 고치는 것이 옳겠다. 이 글을 쓴 학생이 왜 강요당한 것을 헐뜯는다고 했을까? 이것은 아마도 이 학생이 그 전도사란 사람에게 어느 정도 좋지 못한 감정 같은 것을 가지게 되어 정확한 말을 간결하게 써서 아주 살아 있는 글이 되었는데도 다른 부분에서는 몇 가지 글말을 쓴 까닭조차, 역시 그 정도로 조금은 생각이 감정으로 떠 있었기 때문이겠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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