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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3호 2022.12.6 화요일 (음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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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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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감정의 속기법(速記法) ―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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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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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말에는 시간의 흐름이 담긴다. 일이 벌어지기 전의 징조가 있고 일이 시작돼 진행되다가 이내 마무리되는 흐름. ‘의자에 앉으려고 한다’라는 말이 앉는 동작의 의도나 조짐이라면, ‘앉고 있다’는 앉는 동작을 계속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앉아 있다’는 앉고 나서 그대로 있을 때 쓰겠지. 보다시피, ‘~고 있다’는 어떤 사건이 계속 이어지는 걸 표시한다. ‘울고 있다’, ‘걷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파악한 시간의 조각 위에 감정을 싣는 장치가 있다. 사건 위에 분노의 감정이나 빈정거림의 정서를 보탤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 자빠졌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꼴사납다는 시선으로 지켜본다. 아무래도 앞으로 엎어지는 것보다 뒤로 자빠지는 게 더 아프겠지. 어느 시인은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다’는 비아냥에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다’고 받아쳤다지(송경동). ‘놀고 엎드렸네, 놀고 누웠네’라 하면 말맛이 안 산다. ‘자빠졌네’야말로 분노의 질감을 온전히 담는다. ‘있다’와 ‘자빠졌다’ 사이에 ‘~고 앉았다’가 있지만 ‘자빠졌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무미건조하게 살던 나의 평생소원은 사람들을 제대로 웃기는 일이었다. 박장대소. 너무 웃겨 사람들이 웃다가 뒤로 자빠지는 걸 보는 거였다. 하지만 웃기려는 시도는 쉽게 비웃음을 산다. ‘걔, 웃긴 애야’라 하면 실없고 한심한 사람이 된다. ‘웃기고 자빠졌네’에 비하면, ‘웃기고 있네’는 예의 바르다고 해야 하나. 권력집단이 참사 앞에서 하는 짓을 보면 ‘웃기고 자빠졌다’는 말도 아깝다.
‘-도’와 나머지
사람은 꽉 짜인 논리보다는 상황에 따라 끝없이 바뀌는 경험으로 세상을 익힌다. 경험은 수많은 사례를 만난다는 뜻. ‘어머니’라는 말도 ‘여성’, ‘성인’, ‘부모’, ‘자식’과 같은 논리적 속성을 합산한 필요충분조건을 통해 익히는 게 아니다.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그분과 옆집에서 본 비슷한 분,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어른, 어떤 것의 시초 등을 보면서 눈덩이 굴리듯 ‘어머니’의 뜻을 넓혀 나간다. 낳고 길러준 어머니, 낳기만 하고 기르지는 않은 어머니, 낳지는 않았지만 길러준 어머니, 친밀감의 표시로 타인에게 던지는 어머니, 음악의 어머니,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등등. 전형적인 어머니에서 주변적인 어머니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간다. 이렇듯 우리 머릿속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어지는 원들로 가득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언어적 장치가 조사 ‘-도’이다. ‘너도 같이 가자!’처럼 ‘-도’는 어떤 것을 이미 있는 것에 포함시키는 포용의 장치이다. 그런데 이 포용의 장치는 무엇이 포함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세계가 중심과 주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어 있음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여성도 할 수 있다’, ‘노인도 일하고 싶다’, ‘장애인에게도 이동권이 있다’ 같은 말은 우리가 특정 범주의 가장자리에 누구를 배치해 왔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도’가 그어놓은 선 안쪽으로 대상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경계선 밖으로 빠져나가는 나머지들이 반드시 있다. ‘나머지’(주변과 잉여)를 줄여나가는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불가능성으로서의 정치 아니겠는가.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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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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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모 - 김수영
그녀는 도벽(盜癖)이 발견되었을 때 완성된다
그녀뿐이 아니라
나뿐이 아니라 적역(賊役)에 찌들린
나뿐만이 아니라
여편네뿐이 아니라 안달을 부리는
여편네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새끼들까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의 새끼들까지도
그녀가 온 지 두달만에 우리들은 처음으로 완성되었다
처음으로 처음으로
<1966.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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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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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道聽塗說)
道:길 도. 聽:들을 청. 塗:길 도. 說:말씀 설.
[유사어] 구이지학(口耳之學), 가담항설(街談巷說), 유언비어(流言蜚語).
[출전]《論語》〈陽貨篇〉,《漢書》〈藝文志〉,《荀子》〈勸學篇〉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한다는 뜻. 곧
① 설들은 말을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옮김.
②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뜬소문.
①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논어(論語)》〈양화편(陽貨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道聽塗說]’은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德之棄也].”
길거리에서 들은 좋은 말[道聽]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길거리에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리는 것[塗說]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좋은 말은 마음에 간직하고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면 덕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고, 천도(天道)를 지상(地上)에서 행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던 공자는,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억제하고 인덕(仁德)을 쌓으며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덕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논어》에서 이르고 있다.
② 후한시대, 반고(班固)가 엮은《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대체로 소설이란 것의 기원은 임금이 하층민의 풍속을 알기 위해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서술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세상 이야기라든가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道聽塗說]’ 무리가 지어낸 것이다.”
소설이란 말은 이런 의미에서 원래는 ‘패관(稗官:하급 관리) 소설’이라고 일컬었으나 나중에 그냥 ‘소설’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③《순자(荀子)》〈권학편(權學篇)〉에는 다언(多言)을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곧바로 입으로 흘러나오고[口耳之學]’ 마음 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口耳四寸].’ 이처럼 짧은 거리를 지날 뿐이라면 어찌 일곱 자[七尺] 몸을 훌륭하게 닦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학문을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닦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배운 것을 금방 다른 사람에게 고하고 자기를 위해 마음 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지만 소인배의 학문은 인간을 못쓰게 망쳐 버린다. 그래서 묻지 않은 말도 입밖에 낸다. 이것을 ‘잔소리’라 하며, 하나를 묻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수다[饒舌]’라고 한다. 둘 다 잘못되어 있다. 참된 군자(君子)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어느 세상에도 오른쪽 귀로 들은 것을 왼쪽 사람에게 털어놓는 수다쟁이 정보통이 많다. 더구나 그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사이에 점점 꼬리를 끌게 마련이다. ‘이런 무리는 해가 있을 뿐’이라며 공자, 순자는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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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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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5. 백리해, 언제 때를 만나랴
도망치는 백리해
그러나 그는 우공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마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즉 주지교의 농간으로 말미암아 진헌공은 백리해에게 우공과 헤어져 남자 종으로서 신부를 모시고 진(秦)나라로 가게 된 것이다. 백리해는 기가 막혔다.
"내 천하를 건질 수 있는 재주를 품었건만 세월을 잃고 훌륭한 주인을 만나지 못해 큰 뜻을 한번도 펴지 못했고 입신의 자리도 만들지 못한 채 늙고 말았도다. 이제는 늙은 몸으로 진나라로 시집가는 여자의 종이 되다니 이보다 더한 창피가 어디 있으리오."
백리해는 마침내 신부의 행차를 따라 종으로서 진나라로 끌려가다가 도중에서 기회를 살펴 슬며시 빠져나와 남쪽으로 도망쳤다. 그는 송(宋)나라로 달아날 작정이었다. 그러나 길이 막혀 다시 초나라를 향해 걸었다. 그가 완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 완성 사람들은 사냥을 하다가 때마침 지나가는 백리해를 보고서 혹 다른 나라에서 온 간첩이 아닌가 의심했다. 완성 사람들은 곧 그를 붙들어 결박했다. 백리해가 자기 신분을 말했다.
"나는 우나라 사람이오. 나라가 진나라에 망했기 때문에 도망쳐 이 곳까지 왔을 뿐이오."
완성 사람들이 물었다.
"그대는 뭘 잘하는가?"
백리해가 대답했다.
"소를 기를 줄 아오."
완성 사람들은 그의 결박을 풀어 주고 그 곳에서 소를 기르게 했다. 백리해가 돌보는 소들은 나날이 살이 찌고 윤기가 돌았다. 완성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 뒤 백리해가 소를 잘 기른다는 소문이 초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초왕은 궁으로 백리해를 불러 물었다.
"소를 잘 기르려면 무슨 방법이라도 있느냐?"
백리해가 아뢰었다.
"때를 어기지 않고 넉넉히 먹이며, 힘을 낭비하지 않도록 잘 아껴 주면 됩니다. 그러기에 기르는 사람의 마음과 소가 서로 어긋나지 말고 늘 한결같아야 합니다."
초왕이 이 말을 듣고 감탄했다.
"착하도다. 그대의 마음이여! 그대의 말은 비단 소를 기르는 데만 합당한 것이 아니라, 또한 말을 기르는 데도 매우 적합하겠다."
이렇게 해서 초왕은 백리해를 말을 돌보는 어인으로 삼고 동해에 가서 말을 기르게 했다. 백리해는 하는 수 없이 동해로 갔다. 한편 진목공(秦穆公)은 진(晋)나라 백희(伯姬)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아내가 진나라에서 보내온 여자 종과 남자 종의 명단과 실물을 대조해 보니 백리해가 명단에는 있건만 당사자를 볼 수 없었다. 진목공이 공자 칩을 불러 물었다.
"명단엔 백리해라고 적혀 있는데 실물은 볼 수 없으니 어찌 된 것인가?"
"그는 우나라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로 오다가 도중에 도망쳤다고 합니다."
진목공이 곁에 있는 공손지에게 물었다.
"그대는 진(晋)나라에 있었으니 백리해란 사람을 알겠군. 그는 어떤 사람인가?"
공손지가 아뢰었다.
"그는 비범하고 어진 사람입니다. 지난날 그는 우공을 간해도 소용없을 걸 알고 간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그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우공을 따라 진(晋)나라에까지 왔으면서도 진나라의 신하되길 거부했으니 이것만으로도 그의 의리와 충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원래 천하를 경영할 만한 재주를 가졌으나 다만 지금까지 불우했을 따름입니다."
진목공이 머리를 끄덕였다.
"과인이 어떻게 하면 백리해를 우리 진나라 사람으로 쓸 수 있겠느냐?"
그날로 진(秦)나라 사자는 초나라로 떠나갔다. 그 후, 그 사자가 돌아와서 진목공에게 보고했다.
"백리해는 동쪽 바닷가에서 초나라 임금을 위해 말을 기른다고 합니다."
진목공이 말했다.
"과인이 많은 폐백을 초에게 주고 그를 보내달라면 초왕이 승낙하겠는가?"
공손지가 대답했다.
"그러면 그는 영영 우리 나라로 오지 못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초왕이 백리해에게 말을 기르게 한 것을 보면 아직 초왕은 백리해의 인품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주공께서 많은 폐백을 주고 그를 달라면 그들은 백리해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초왕이 그를 기용해서 중히 쓰면 썼지 우리에게 넘겨 줄 리 있겠습니까?"
"그럼 어찌하면 좋겠는가?"
"주공께선 도망간 종놈을 처벌하기 위해서 그를 잡아가야겠다고 초왕에게 말하십시오. 지난날 포숙아도 관중을 데려올 때 이와 같은 계책을 써서 노나라 울타리를 무사히 벗어났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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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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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성탄 편지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
사랑하는 그대에게
제가 드릴 성탄 선물은
오래 전부터
가슴에 별이 되어 박힌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 안에 꽃피고 열매 맺은
우정의 기쁨과 평화인 것을.
슬픈 이를 위로하고
미운 이를 용서하며
우리 모두 누군가의 집이 되어
등불을 밝히고 싶은 성탄절
잊었던 이름들을 기억하고
먼데 있는 이들을
가까이 불러들이며 문을 엽니다.
죄가 많아 숨고 싶은
우리의 가난한 부끄러움도
기도로 봉헌하며
하얀 성탄을 맞이해야겠지요?
자연의 파괴로 앓고 있는 지구와
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에게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오늘 다시 그대에게 드립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주님의 뜻을
우리도 성모님처럼
겸손히 받아 안기로 해요.
그동안 못다 부른 감사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로 해요.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
아기예수의 탄생과 함께
갓 태어난 기쁨과 희망이
제가 그대에게 드리는
아름다운 새해 선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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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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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임옥인편"
임옥인(1913~1995)
여류 소설가. 함북 길주 출생. 일본 나라 여고 사범 졸업. 건국대 가정대학장 역임. 해방 직후에 농촌 여성의 계몽 운동에 몰두했으며 그 이후 계속 교편을 잡아 왔다. 일상적인 체험과 시대적인 충격을 여성 특유의 서정적 세계를 형상화하여 주목을 받았다. "월남 전후"는 민족의 수난을 르포 형식으로 그려 많은 감동을 준 장편 소실이었다. 유리한 문장을 추구하였으며 여류 문단의 지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감사
오늘은 우리가 새 집을 짓기 시작하는 날이다. 평생 '임시'와'방랑'을 면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주하고 싶은 것이다. 기쁘다.
"얼마나 더 살려고 그래?"
"누구에게 물려주려고?"
내가 집을 짓겠다고 할 때, 이렇게 말하는 벗들도 있었다. 내가 늙은 탓이고 나에게 아들딸이 없는 까닭일 것이다. 이 말들 속에는 물론 내가 고생할 것을 염려하는 따뜻한 우정도 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집이 누구에게 돌아간들 어떠랴. 누구라도 들어와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로써 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말할 수 없이 신선한 오전이었다. 아름답게 흐르는 오월의 맑은 햇빛, 뜰 안에 가득한 새 소리, 풀 향기, 나무 냄새..., 모든 것이 거룩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벗들이 올 것 같아 약간의 음식을 마련하기로 했다. 손이 없어서 나 혼자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산 색시가 왔다. 갑산 색시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가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에는 젊었지만, 지금은 손자와 손녀들이 국민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다. 그는 젊었을 때 나와 함께 살면서, 때로는 쑥을 뜯어다 쑥떡도 만들어 주고 때로는 우리 고향식으로 된장을 담가 나의 향수를 달래 주기도 했었다. 갑산 색시, 아니 갑산 할머닌 곧 시장으로 달려가 도라지, 오이, 호박, 생선 등을 사 오고, 단골집에서 빈대떡도 부쳐 왔다. 그리고 열심히 도마질도 했다. 내가 어려울 때면 언제나 달려오는 갑산 할머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도마질에 여념이 없는 갑산 할머니의 주름살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조금 뒤에 서 목사님이 오셨다. 그리고 벗들도 몰려 왔다. 목사님은 곧 기도를 드리셨다. 완공까지도 무사를 비시고 우리 내외에게 감사로 충만한 영혼의 안거를 허락해 주십사고 간구 하셨다. 신앙의 길에 들지 않은 벗들도, 신앙의 길이 다른 벗들도 모두 머리를 숙였다. 나를 위하여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분들, 얼마나 고마운가. 세상은 차다지만 나는 찬 줄을 모른다. 세상은 거칠다지만 나는 거친 줄을 모른다. 나의 이웃이 고맙다. 내가 사는 사회와 나라, 그리고 하나님이 고맙다. 아무것도 이룩한 게 없는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은총인 것 같아 죄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한 사람의 가냘픈 여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성에겐 그 특유의 모성애가 있는 법이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개인적인 보호 본능으로 끝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웃을 향해, 사회를 향해, 겨레를 향해, 할 수 있으면 전 인류를 향해 확산, 심화시키고 싶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느끼는 경건한 태도를 가지고, 나의 사랑을 확산, 심화하는 데 나의 남은 삶을 바쳐야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에게 과분하게 내려진 은총을, 그 억만분지 일도 보답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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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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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정지용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애송되는 시에 향수 란 것이 있다. 물론 이 제목도 한문으로 써 놓은 것인데, 고향 생각 이라면 어린애들이 부르는 동요의 제목처럼 느끼거나 무식한 촌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알고, 향수 라고 해야 그럴듯한 시의 제목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더구나 요즘은 많을 줄 안다. 이렇게 우리말을 죽여 놓고 우리 겨레의 마음을 비뚤어지게 해 좋은 책임은 이런 유명시인들이 마땅히 지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향수 란 작품을 보기로 하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일제시대, 그리고 60년대까지 우리 모두의 고향이었던 농촌을 이만큼 아름다운 말로 나타낸 시도 썩 드물 것이다. 여기에는 농사일의 고달픔이라든가, 굶주림에 따르는 정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괴로운 추억이 도리어 아름다운 것으로 변용되었다.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되어 있으니까 괴로운 기억은 묻혀 버렸을 것 같기도 하지만, 시인의 추억과 상상은 그저 아름다운 고향을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기 씌어 있는 말들 가운데는 어떤 정경이나 사실을 재미있고 알맞은 말로 나타내어서 우리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많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다 나간다든가,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든가,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라든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이라든가, 이런 말들은 모두 우리 겨레의 삶에서 우러난 말로 느껴진다. 더러 놀랍도록 재주를 부려 놓은 말들조차 자연스럽게 가슴에 와닿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시에 씌어 있는 모든 말이 싱싱한 우리말로 되어 있는 사실은 매김자리토씨(관형격조사) -의 가 한 군데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를 이렇게 깨끗한 말로 쓸 수 있었던 것은 이 신인이 고향 생각을 하면서 고향 이야기를 한 때문이다. 고향 이야기를 하자니 고향 말, 곧 우리말로 쓰지 않을 수 없다. 고향의 말은 바로 일하는 삶에서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이 시인이 고향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어릴 때 이야기를 쓰지 않고, 도시에서 시만 쓰면서 살아가는 현재 의 이야기를 써 놓은 시는 거의 모두 앞에서 말한 제목뿐 아니고 본문에서조차 어려운 한문글자를 마구 써서보통사람은 읽을 수도 없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시가 일하는 사람들의 정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팔자 좋은 사람들의 취미생활에서 얻은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시의 산줄기에서 한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고 모두가 알고 있는 시인의 시가 이 모양이란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이 시인의 대표작이라고 해서 널리 알려져 있는, 위에 들어 놓은 향수 만 해도 앞에서 좋은 시라고만 말했지만 사실은 아주 커다란 흠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얼룩배기 황소 라고 한 것인데, 얼룩배기 소 란 우리 소가 아니다. 요즘은 외국 소를 많이 들여와서 얼룩소를 흔히 볼 수 있지만, 일제시대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런 서양의 얼룩소가 짚벼개를 베고 주무시는 아버지며 사철 맨발인 아내가 일하면서 살아가는 고향 마음에서 울고 있다니! 이것은 고향 생각을 하고 고향 이야기를 쓰면서 그만 어느덧 고향을 떠나 생각 속에 취하고 말에 취해 재주를 부린 것이다. 이 시인의 시에는 이렇게 말재주가 나타나는 작품이 많은데, 여기서는 이 조그만 흠이 시 전체를 한 폭의 만화로 떨어지게 했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삶을 떠난 시인, 삶이 없이 시만을 쓴 시인의 비극이다.
우리 시인들의 시에서 내가 언제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왜 시인들이 일하는 삶을 시로 쓰지 못하는가, 왜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그 땀 냄새를, 무거운 짐에 짓눌려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시로 쓰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일하는 삶이 가장 높고 귀한 가치가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밀레가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듯이, 시도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새로운 시를 쓰게 되었다는 지난 100년 가까운 역사에서 일하는 삶을 그린 시가 보이지 않는다. 단 한 편도! 내가 시인들의 시를 알뜰히 살펴보지 않아서 놓쳤는지 모르지만 아직 그런 시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라와 세상을 걱정하는 시, 슬퍼하고 원통해하는 시, 무엇을 외치는 시는 많다. 무엇을 그리워하거나 꿈을 구는 시, 저 혼자 그 무엇에 취해서 수다를 늘어 놓는 시도 많다. 무엇을 썼는지도 알 수 없는 시는 더욱 많고, 세상을 관광거리로 삼고 있는 듯한 시는 더더욱 흔해빠졌다. 그런데 일하는 삶을 보여 주는 시는 없다. 우리 겨레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었다고 하는 김소월의 시에도 일하는 삶의 정서를 쓴 것이 단 한 편도 없다. 문학에서 가장 앞장서 간다는 시가 이래도 괜찮은가? 뭔가 밑뿌리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소월의 시에 꼭 한 편, 농사꾼이 일하는 것을 글감으로 한 것처럼 되어 있는 시가 있는데 밭고랑 우에서 다. 여기 전문을들어 놓겠다. 이 시를 또 특별히 들어서 생각해 보는 까닭은, 어느 유명 시인이 일제시대 시인들의 대표작으로 실려 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널리 애송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두 사람은
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 우에 앉아서라.
일을 필하고 쉬는 동안의 기쁨이여.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오오 빛나는 태양을 나려 쪼이며
새 무리들도 즐거운 노래, 노래 불러라.
오오 은혜여, 살아 있는 몸에는 넘치는 은혜여,
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속을 차지하여라.
세계의 끝은 어디? 자애의 하늘은 넓게도 덮혔는데,
우리 두 사람은 일하며, 살아 있어서,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아라, 날마다 날마다도,
새라새롭은 탄희를 지어내며, 늘 같은 땅 우에서.
다시 한번 활기 있게 웃고나서, 우리 두 사람은
바람에 일리우는 보리밭 속으로
호미 들고 들어갔어라, 가즈런히, 가즈런히,
걸어 나아가는 기쁨이어, 오오 생명의 향상이어.
보다시피 이 시는 보리가 키 높이로 자라난 밭고랑에서 젊은 부부가 일하다가 쉬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순간의 즐거움을 그려 놓았다. 하늘에는 눈부시게 해가 내리쬐고, 새들이 울고, 그래서 하늘과 땅은 건강한 몸으로 일하는 이 젊은 부부를 축복하는 듯 끝없이 펼쳐져 있다. 자연 속에서 일하는 즐거움, 하늘과 해를 쳐다보며,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땀 흘리고 일하는 기쁨!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정지용의 향수 는 지난날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아름답게 그려 놓았지만, 이 시는 바로 지금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제목도 바로 밭고랑 우에서 이고, 우리 두사람은 하고 시작하여 이 시인이 스스로 한 것을 쓴 것처럼 해 놓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시인이 그려 놓은 이 아름다운 자연과 일하다가 쉬고 있는 농민 부부의 모습에 덮어놓고 감동하고만 있을 수 없다. 일제시대 실제로 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민들이 이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격하고 하늘의 사랑을 느끼면서 살아 있는 은혜를 고마워 할 만큼 여유가 있었던가? 더구나 보리가 다 자라난 그 굶주림의 보리고개에서 말이다. 정지용의 시에는 그래도 사철 발벗고 이삭 줍는 누이와 아내가 나오지만, 여기서는 바로 지금 자신이 들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털끝만치도 보리고개의 현실과 정서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는 일제시대 우리 농민이며 농촌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사실대로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고, 우리 농민과 농촌은 보지도 않았다. 다만 방안에서 제멋대로 상상해서 쓴 것으로 되었다. 시는 상상으로 쓴다고 하지만, 우리 겨레의 정서를 우리 겨레의 말로 쓰려고 애썼다는 시인이 우리 겨레의 90%를 차지하는 농민의 삶을 - 바로 농민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을 이렇게 엉뚱한 그림으로 그려 놓았으니, 신인으로서 너무나 불성실하고 책임감이 없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가 농민의 삶을 조금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시에 나온 부부가 대관절 보리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씌어 있는 것만으로도 잘 알게 된다. 이 농민 부부는 무슨 일을 했는가? 보리가 키로 자라났으니 이런 밭에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이제는 보리가 익어서 베기만을 기다릴 뿐이고, 그 동안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보리밭 고랑에 앉아 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고만 했으니 괴상한 시요, 괴상한 글이다. 마지막 연에 가서, 이제 쉬기를 끝내고 다시 일을 했다고 했는데, 거기서도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호미를 들고 보리밭 고랑에 들어갔다고 했다. 호미를 들고 키 높이 자란 보리밭 고랑에 앉아 할 일거리가 뭐 있겠는가? 잡풀이 있을 수도 없고, 어쩌다가 보리와 같은 키로 명아주가 솟아날 수가 있지만, 그것은 호미를 슬 것이 아니라 손으로 뽑아야 한다. 보리밭 고랑에 콩을 심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가을에 뿌리는 가을 보리가 아니고 이른 봄에 뿌리는 다시 괭이로 묻는다. 그러니 키로 자란 보리밭에는 아무도 들어갈 일이 없다.
더욱 우스운 것은 마지막 연에서 호미를 들고 들어갔다고 해 놓고는 걸아 나아가는 기쁨이어 했다. 세상에 호미를 쥐었으면 앉아서 엎으려 무엇을 하든지 해야지, 보리밭 고랑에서 호미를 쥐고 서서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무슨 일을 하다니! 만화치고 이렇게 우스운 만화가 있겠나 싶다.
시가 왜 이런 꼴로 되었는가? 그 까닭은 뻔하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한 것처럼 쓰자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일을 하지 않았으니 일을 모르고 (내가 알고 믿기로는, 아무리 놀랍고 뛰어난 상상을 하는 재주꾼이라 하더라도 자지가 몸으로 해 보지 않은 일과 그런 일에서 우러난 정서를 제대로 올바르게 상상해 써 낼수는 절대로 없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했는지를 쓰지 못하고 기껏해야 일을 마치고 밭고랑에 쉬면서 하늘 쳐다보고 이야기한 것이나 쓰고, 그래도 밭고랑 우에서 라 제목을 붙였으니 무엇을 한 것처럼 쓰기는 해야겠기에 일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호미를 쥐고는 그만 우스운 연극을 연출한 것이다. 소월같이 뛰어난 시인이 이렇거늘, 하물며 오늘날 아주 어려서부터 삶이 없이 자라난 숱한 시인들이 써 놓은 시가 어떤 꼴로 되어 있겠는가 미루어 짐작할 것이다. 이 밭고랑 우에서 가 일하는 삶의 바탕이 없이 제멋대로 꾸며 놓은 지식인의 정서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시에 씌어진 말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 - 일을 필(畢)하고 쉬는 동안의 기쁨이어
농민이고 노동자고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일을 필하고 하지는 않는다. 일을 마치고 하든지 일을 끝내고 하지. 그리고 이 시에서는 일을 필하고 도 일을 마치고 도 아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데 어째서 일을 필하고 인가? 이래서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 지식인이,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한 것처럼 꾸며서 거짓말을 쓰자니 내용과 말이 어긋나서 이 꼴이 된 것이다.
- 오오 빛나는 태양은 나려 쪼이며
농민은 태양 이란 말도 안 쓴다. 농민의 이야기를, 더구나 농민 자신이 하는 말로 쓰는 글에서 농민이 하지 않는 말을 써도 되는가? 이글은 진짜 농사꾼이 쓴 것이 아니고 시인이 어쩌다가 밭에 가서 일한 것을 쓴 것이다 이런 변명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더 웃기는 거짓말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 자애의 하늘은 넓게도 덮혔는데,
새라새롭은 탄희를 지어내며,
내 느낌으로는 우리말 그대로 사랑의 하늘은 이라든지 새라새롭은 기쁨을 이라고 쓰는 것이 훨씬 더 좋다. 농사꾼이고 일반 서민들이 쓰지도 않는 자애니 환희 니 하는 말을 써야 그럴듯한 시가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 나라 시인들의 잘못된 글쓰기 병폐는 김소월과 같은 민요시인까지도 어릿광대 노릇을 하게 만들어 문학이라는 글쓰기 상품을 만들어 내는 모든 시인과 작가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말았다. 이것이 모두 삶이 없는 탓이요, 일을 하지 않고 방안에 앉아 만 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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