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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2호 2022.9.23 (음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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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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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시도하지 않는 자들이다. - 데이비드 비스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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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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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표현
‘개인적으로 그 결정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게 멋져 보이지만, 항상 그럴 수 없다. 누구에게든 직설화법은 부담이 간다. 시원하게 ‘그 결정은 옳지 않소!’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말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좋아한다. 내 주장이 지나치게 직설적이지 않고 한계가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결보다는 공존과 협력적 말하기를 꾀한다. 그러한 장치를 ‘울타리 표현’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자기 발언에 확신 없음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고 상대에게 신뢰를 얻는 역설적 책략이다.
‘개인적으로는’, ‘제 생각에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더 살펴보긴 해야겠지만’, ‘잘은 모릅니다마는’ 같은 군더더기 말을 씀으로써 발언 내용이 자신에게 국한되거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강요할 의도가 없음을 내비친다. ‘듯싶다, ~일 수도 있다, ~일지도 모른다’ 같은 표현도 직접성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맛있다’를 ‘맛있는 거 같다’고 하는 것도 주장을 추측으로 강등시킴으로써 상대에게 다른 판단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른바 ‘원전마피아들’은”, “속된 말로 ‘삥뜯기’는”과 같이 특정 개념 앞에 ‘이른바, 속된 말로, 시쳇말로’를 씀으로써 해당 개념과 그 말을 쓰는 자신 사이에 빠져나갈 공간을 만든다.
자기 견해를 ‘별것 아닌 것’처럼 만들어 상대방에게는 생각의 여지를, 나에게는 안전을 보장하는 비책인데 적당히 써야 좋다. 지나치면 비굴해 보일 수 있고, 인색하면 소위 ‘완고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지나치면 비굴하고, 인색하면 완고하다!).
끝없는 말
‘생각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생각나는 것이 생각이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여행 때 숙소 벽에 적혀 있던 낙서였는데, 저렇게 긴 문장이 수십년 후에도 기억나는 걸 보면 퍽이나 감명을 받았었나 보다.
이론상 문장의 길이와 종류는 끝이 없다. 명사에 ‘~와’만 붙여도 계속 늘릴 수 있다(‘우리집엔 나무숟가락과 모자와 도끼와 우쿨렐레와 꽃과 나무가 있다’). 동사 끝에 ‘~고’만 붙여도 한 문장으로 날밤을 새울 수 있다(‘나는 눈을 떴고 씻었고 방청소를 했고 밥을 먹었고…’).
형광등 갈아끼우듯, 같은 틀에 단어만 바꾸면 새 문장을 무한히 만들 수 있다. 주어 자리에 100개, 목적어 자리에 100개, 서술어 자리에 100개의 단어가 있다면 만들 수 있는 문장은 100×100×100=100만개나 된다. 여기에 ‘나는 냉면과 국수를 먹었다’처럼 목적어 자리에 ‘~와’ 하나만 넣어도 1억개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더 정교하게는 문장 안에 작은 문장을 집어넣는 것이다. ‘목수일을 하는 형을 좋아하는 친구가 만든 연극을 본 우리들이 만난 배우들이 찍은 사진이 예뻤다.’처럼 명사를 꾸미는 말을 계속 덧댈 수 있다.
말은 무한하다. 무한히 바꾸고 이어붙이는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세계는 시시때때로 변하고, 세계를 마주한 개인의 감각도 속절없이 변한다. 말은 세계를 담고 이해하는 데 최적의 형식이다. 우리의 문장이 진부하고 식상한 이유는 몇개 되지 않는 기성의 문장을 반복하는 게 안전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용기 없고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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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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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기(轉向記) - 김수영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쏘련한테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얼마전까지는
흰 원고지 뒤에 낙서를 하면서
그것이 그럴듯하게 생각돼서
쏘련을 내심으로는 입밖으로도 두둔했었다
―당연한 일이다
쏘련을 생각하면서 나는 치질을 앓고 피를 쏟았다
일주일동안 단식까지 했다
단식을 하고 죽을 먹고
그 다음에 밥을 떡국을 먹었는데
새삼스럽게 소화불량증이 생겼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 일본 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자연스러운 轉向을 한 데 놀라면서
이 이유를 생각하려 하지만
그 이유는 詩가 안된다
아니 또 詩가 된다
―당연한 일이다
「히시야마 슈우조오」의 낙엽이 생활인 것처럼
五.一六 이후의 나의 생활도 생활이다
복종의 미덕!
思想까지도 복종하라!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필시 웃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지루한 轉向의 告白
되도록 지루할수록 좋다
지금 나는 자고 깨고 하면서 더 지루한
中共의 욕을 쓰고 있는데
치질도 낫기 전에 또 술을 마셨다
―당연한 일이다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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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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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敬遠)
敬:공경할 경. 遠:멀리할 원.
[원말]경이원지(敬而遠之). [참조]자불어(子不語).
[출전]《論語》〈雍也篇(옹야편)〉
존경하되 멀리함. 공경하되 가까이하지 않음.
춘추 시대의 성인 공자(孔子)에게 어느 날, 조금 어리석은 번지(樊遲)라는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지(知)란 무엇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하고 ‘혼령(魂靈)이나 신(神)에 대해서는 존경하되 멀리한다면[敬 神而遠之]’ 이것을 지(知)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논어(論語)》〈옹야편(雍也篇)〉에 실려 있는 글이다. 또 〈술이편(述而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공자는 괴(怪)난(亂)신(神)을 말하지 않았다.
[子不語 怪力亂神(자불어 괴력란신)]
즉, 공자가 괴이(怪異)폭력(暴力)문란(紊亂)귀신(鬼神)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괴’와 ‘신’ 이하는 초월자(超越者)에게는 따를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러한 태도야말로 지(知)인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주] ‘존경하되 멀리한다.’는 이 ‘경원’이란 말이 오늘날에는 ‘꺼리어 피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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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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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꼼꼼하게 요청하라 -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중에서
두명의 목사가 죽어서 천당에 갔다. 성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묵을 곳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소. 그러므로 준비를 끝낼 때까지 당신들은 원하는 형상으로 지상에 돌아갈 수 있소."
첫 번째 목사가 요청했다.
"저는 그랜드 캐년 위를 나르는 독수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목사가 말했다.
"그리고 저는 진짜 단단한 못이 되고 싶습니다."
팡!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그들의 거처가 마련되자, 성 베드로가 조수에게 두 목사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제가 그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은 그랜드 캐년을 날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찾기 힘들 게다. 그는 디트로이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스노우 타이어의 부품으로."
사전 조사를 하고 요청하라
우리는 종종 사람들에게 그들이 최근에 갖지 못한 것 중 원하는 것을 적으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이런 목록을 적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더 많은 돈을 원한다."
그러면 우리는 주머니에서 15센트 동전을 꺼내 그들에게 준다.
"이제 당신은 돈을 더 많이 가졌습니다. 만족하십니까?"
"아니오. 나는 이보다 더 많은 돈을 원합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이 세상 누가 그것을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당신의 뇌가 그것을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그것을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더 꼼꼼하게 자세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원하십니까?"
"아, 모르겠어요. 한 이만 달러 정도."
"지금, 그 '모르겠어요'라는 첫 문장을 삭제하세요. 진짜 문제는 당신이 모르겠다는 겁니다. 당신은 한 번도 자리에 앉아서 당신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삶에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얼마든지 산타 바바라 해안가의 집을 한채 갖고 싶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집값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셨습니까? 연간 종합 부동산 세금과 연간 보험료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것을 모두 조사하면, 당신은 당신의 꿈에 필요한 금액을 정확하게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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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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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1. 노나라의 내란
경부와 애강의 간통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다음 임금을 상의하겠다고 궁으로 들어간 공자 경부가 나올 줄 몰랐다. 그는 애강의 침실에서 그녀를 끼고 누워 있었던 것이다. 원래 애강이 서(庶) 시숙인 공자 경부를 유혹해서 서로 간통하고 지낸 것은 꽤 오래된 사실이었다. 다만 주위에 눈이 있고 하여 그 동안 빈번한 교류를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노장공이 죽자 이들은 공공연하게 서로를 찾았다. 마침 새 임금으로 세우려던 공자 반까지 죽으니 이들은 숨김없이 두 사람이 정부(情夫), 정부(情婦) 관계임을 드러낸 것이었다. 애강은 공자 경부를 보고 스스로 임금이 되라고 충동질 했다. 그리하면 자신이 부인이 되어 친정인 제나라 힘을 등에 업고 임금 자리를 든든히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공자 경부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사양했다.
"공자 신(申)이 있고, 공자 계(啓)가 있다. 이 두 녀석을 모조리 처치하기 전에는 내가 스스로 임금이 되겠다고 나서기가 매우 곤란하다."
애강이 팔베개하고 있던 공자 경부의 팔을 뿌리치고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독이 올라서 물었다.
"그럼 당신이 임금이 되기 전까지 공자 신(申)을 임금으로 모셔야 한단 맡이오?"
"신(申)은 나이가 많아 만만치가 않다. 우선 계(啓)를 세워 앞날을 도모하는 수밖에......."
마침내 경부는 공자 반의 죽음을 발상하고, 이를 보고해야 한다는 핑계로 친히 제나라로 가서 공자 반의 돌연한 죽음을 고했다. 그리고 수작과 역아에게 많은 뇌물을 바친 후, 제나라 출신 숙강이 낳은 공자 계를 군위에 세우겠다고 약조했다. 경부는 이런 조치를 해두고 돌아와서 공자 계를 군위에 앉히니 그 때 나이 8세로 노민공(魯閔公)이다. 그러니까 애강에게는 친정 동생의 아들, 즉 조카다. 그런데도 애강은 속이 상했다. 자신의 정부인 '경부가 임금이 되어야 할 텐데 어찌하여 나이도 어린 것이 군위에 올랐단 말인가' 하고 깊은 불만을 가졌다. 이런 분위기이고 보니 임금이 된 어린 노민공은 안으로 애강의 싸늘한 눈이 무서웠고, 밖으로는 공자 경부의 억센 힘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자신을 감싸 줄 주변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다 못해 사람을 보내 제나라의 힘을 얻고자 했다. 마침 관중이 이를 알게 되었다. 관중은 죽은 노장공의 부탁도 있은지라 곧 양국 군후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래서 제나라 땅 고락(姑落)에서 제환공과 노민공의 회견이 열렸다. 어린 노민공은 제환공의 옷깃을 잡고 흐느껴 울기만 할 뿐 회담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제환공은 어린 노민공이 불쌍했다. 그래서 관중에게 도와 줄 방도를 찾도록 했다. 관중이 노민공을 수행하고 온 대부 가운데서 한 사람을 불러내 물었다.
"오늘날 노나라 대부 가운데서 누가 가장 영향력이 있고 어질다고 생각하시오?"
"오직 공자 계우가 현명하지만 지금 그는 진(陳)나라에 가 있습니다."
"왜 그를 불러오지 않소?"
"공자 경부가 그를 해치려 하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 주공의 명령으로 그를 귀국케 한다면 천하에 누가 감히 어기겠는가."
관중은 사람을 진나라로 보내 공자 계우를 모시고 낭(郞)이란 곳으로 오도록 하고, 노민공에게도 낭에 가서 공자 계우를 만나 함께 귀국하도록 했다. 마침내 노민공은 공자 계우를 만나 노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즉시 공자 계우를 정승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이것이 모두 제환공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불평조차 할 수 없었다. 그 후 관중은 노나라 임금과 신하가 불안해 하지나 않는지 염려되어 대부 중손추(仲孫湫)를 보내는 동시에 공자 경부의 동정까지 자세히 알아오도록 했다. 노민공은 제나라에서 온 중손추를 영접하고 눈물만 질금 질금 흘릴 뿐, 능히 말도 할 줄 몰랐다. 그 못난 꼴이란 좌우에서 보는 사람이 불쾌할 정도였다. 그 다음에 중손추는 공자 신(申)과 만났다. 중손추가 공자 신과 함께 노나라 일을 말해 본즉 공자 신은 매우 조리있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중손추는 이 사람이야말로 노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중손추는 공자 계우와 만난 자리에서 유망한 공자 신을 잘 보호하도록 부탁하고, 왜 빨리 경부를 없애 버리지 않느냐고 충동했다. 이에 대해서 공자 계우는 다만 오른편 손바닥만 내보였다. 중손추는 곧 그 뜻을 알아차렸다. 한쪽 손만으론 소리가 안 난다는 뜻이었다. 중손추가 머리를 끄덕이며 웃고 말았다.
"내 마땅히 우리 임금께 가서 모든 상황을 말하겠소만, 만일 귀국에서 일단 일이 생기면, 우리 제나라는 그냥 앉아서 바라보진 않을 것이오."
다음날이었다. 공자 경부는 많은 뇌물을 가지고 가만히 중손추를 찾아갔다. 중손추는 자기 앞에다 바치는 뇌물을 보고 정중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진실로 공자가 사직에 충성을 다하면 우리 임금께서도 그대가 바치는 물건을 다 받으실 것이오. 어찌 추(湫)만이 이런 귀중한 물건을 받을 수 있으리오."
경부는 송구해서 돌아갔다. 그 뒤 중손추는 노나라 실정을 샅샅이 살핀 뒤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관중이 그의 보고를 받고 물었다.
"그럼 경부를 없애지 않고는 노나라가 안정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이오?"
중손추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다만 그 잘못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지라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관중이 지시했다.
"경부가 군위에 눈독을 들인다면 반드시 변을 일으키고야 말 것이오. 그러나 장차를 대비해서 노나라가 안정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보시오."
중손추는 이후부터 노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경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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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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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소운편"
김소운(1907~1981)
수필가, 시인. 일본 문학가. 호는 소운. 경남 부산 출생. 일본에서 중학 중퇴. 초기에는 시로 출발하여 관념시 계통의 시작품을 발표했으나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통감하고서 한국의 민요, 동요, 시 등을 일본에 소개하는 작업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문학의 사회자로 문화 수출의 상인으로 자처했던 그는 후기에는 인생에의 통찰이 담긴 격조 높은 수필을 많이 발표하여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연잎에 괸 이슬
아쉬움이라니 바로 며칠 전에 본 영화의 장면 하나가 생각난다. 극영화는 아니고, 어느 먼 나라의 생활의 실경을 찍은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지방이라 물이 몹시 귀하다. 흘러가는 시내도 없고, 우물을 판다고 해서 물이 솟아나지도 않는다. 여인들은 첫새벽에 먼 길을 떠나서 연 잎사귀에 괸 이슬을 찾아 다닌다. 하얀 구슬처럼 연잎 위를 구르는 이슬 방울-그것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그릇이 옮긴다. 생명에 바로 직결되는 의미로는 어떤 보석, 어떤 구슬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한 이슬 방울을-그것이 하나하나 모여서, 나중에는 제법 물 소리를 내면서 쏴 하고 커다란 물독에 부어진다. 아쉬움을 두고 또 하나 연상되는 것은, 30여 년 전 일본서 본 "아랑"이란 스웨덴 영화이다. 흙이라고는 한 줌이 없는-바윗돌뿐인 절해 고도-거기 젊은 어부 내외가 산다(십수 년 전에 두 번 가 본 독도가 꼭 이런 섬이었다.). 거기서도 씨를 뿌리고, 곡식이 자란다. 흙 없이 어떻게 씨가 뿌려지나? 사람의 팔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바위 틈-그 밑바닥에 풍화 작용으로 깎여진 바윗돌의 부스러기가 깔려 있다. 한쪽 손을 뻗을 대로 뻗어서 바위 틈에서 수백 년, 수천 년 쌓였던 그 돌 부스러기를 손으로 긁어 올린다-연 잎사귀에 괸 이슬 방울을 모으는-바로 그 정성, 그 노력이다.
해초를 평범한 바위 위에 깔고, 그 위에다 긁어 올린 돌 부스러기를 덮는다. 이것이 그들의 '밭'이다. 이 '밭'에 해가 쬐고 비가 내려서, 뿌린 씨에 싹이 트고 나중에는 곡식이 맺는다. 시간의 경과를 압축한 화면만으로는, 마치 무슨 마술의 무리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마술도 기적도 아닌, 이것은 인간 생활의 냉엄한 현실의 단면이다. 조상이 마련해 준 이 땅, 여기는 물도 흙도 풍성하다. '풍성'이란 말이 우스울 정도로 우리는 그런 구애를 모르고 살아 왔다. 풍화암 부스러기를 긁어 올릴 필요도 없고 연잎에 괸 아침 이슬을 모을 필요도 없다. 하물며 편편옥토, 하물며 옥수 같은 물맛, 문화, 예술의 메카라는 프랑스에도 이런 물은 없다. 그러나 '물'이니 '흙'이니를 예찬하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주림, 메마르고 거친 생활 감정으로 따진다면, 오늘날의 우리처럼 가난한 백성도 아마 드물리라. 연 잎사귀의 이슬을 모으는-바위 틈에서 돌 부스러기를 긁어 올리는 그런 생활을 내려다보고 동정할 주제가 과연 우리에게 있다고 할 것인가? 다만 그들과 다른 것은, 우리의 아쉬움이, '흙'이 아니요, '물'이 아니라는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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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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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선물의 집
어쩌다 외출을 하게 되면 책방이나 꽃집과 마찬가지로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규모가 별로 크지 않고 아담하게 꾸며진 `선물의 집`입니다.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마음에 드는 `선물의 집` 간판이 눈에 띄면 일단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가끔은 내 분수에 맞는 작은 선물을 사들고 나오기도 하는데. 하여튼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들이 많이 놓여 있는 방에서 선물을 고르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여기선 우울과 불안으로 찡그린 얼굴보다는 밝고 환하게 웃음 띤 얼굴. 어떤 희망과 기대에 찬 고운 표정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 있는 선물의 집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오래 전부터 나는 경우에 따라 공부방도 되고, 기도방도 되고, 침방도 되어 종종 `다목적 방`이라 부르는 내 자그만 방에 둥근 바구니 한개를 준비해 두고 이웃에게 주어도 좋을 만한 카드. 그림엽서, 조가비, 돌맹이, 연필, 색종이 상자,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좋은 글귀나 그림 등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선물 하곤 합니다. "수녀님, 친구에게 보낼 멋진 시 한 편 골라 주세요"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카드 있으면 한 장 주세요" 등등의 부탁을 받을 때 즉시 들어 줄 수 있을때마다 나는 힘 안 들이고 기쁨을 파는 행복한 선물의 집 주인이 된 것 같아 흐뭇합니다. 가끔은 스스로 멋에 겨워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어떤 보답을 바라는 허영심이 스며들까 걱정도 되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극히 하찮은 물건이라도 사랑의 마음이 담기면 빛이 나지만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사랑이 묻어 있지 않으면 이내 빛을 잃고 싸늘해집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도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주기 위해 받는 것일 때 더 부담 없고 기쁜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굳이 어떤 물건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존재 자체가 걸어 다니는 선물의 집. 움직이는 기쁨의 집. 나눔의 집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몸도 마음도 바빠지는 12월.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준비하여 우리는 서로 물질로 주고받는 선물은 더욱 간소화하되, 마음으로 주고받는 선물은 더욱 늘여가면 좋겠습니다. 용서와 이해의 눈길. 따뜻한 미소, 친절한 말. 상대의 마음을 정성껏 들어 주기. 주변의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시간 내어 챙겨 주기 등등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선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완벽한 사랑의 모델이신 예수께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당신 존재 자체로 다른 이의 필요를 채워 주는 `선물의 집`이셨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이웃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는 한 채의 아름답고 따스한 선물의 집이길 바라며 나는 다음과 같이 노래해 봅니다.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바닥이 나지 않는 선물의 집
무엇을 줄까
어렵게 궁리하지 않아도
서로를 기쁘게 할 묘안이
끝없이 떠오르네
다른 이의 눈엔 더러
어리석게 보여도 개의치 않고
언어로, 사물로 사랑을 표현하다
마침내는 존재 자체로
선물이 되네, 서로에게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괴로움도 달콤한 선물의 집
이 집을 잘 지키라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준 것이겠지?
- 나의 시 선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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