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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5호 2022.9.16 (음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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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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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있다. 독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 ― 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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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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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택배!
‘하나를 알면 백을 안다.’ 사람은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넘겨짚는 습성이 있다. 애당초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란 글렀다.
사람을 만나면 주로 얼굴을 본다. 다 보지 않고 눈을 본다. 관자놀이나 뒤통수, 귓바퀴는 잘 안 본다. 큰 점이 하나 있으면 그걸 곁눈으로 본다(점박이). 머리 모양이 특이하면 그걸 기억한다(노랑머리). 옷이나 장신구가 색다르면 그걸로 기억한다(‘저 반바지가 막말을 했어’). 행동 하나만 보고 인품을 평가한다. 젓가락질이 서투르면 ‘저런 것도 못하다니 볼 장 다 봤다’며 내친다. 예절이라는 게 타인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발달된 건지도 모른다.
말에도 부분이 전체를 대신하는 일이 흔하다. ‘밥’이 모든 음식을 대신한다거나(‘밥 먹자!’), 가수명이 노래를 대신한다거나(‘요즘 방탄소년단만 들어’), 물건이 사람을 대신하기도 한다(‘버스 파업’).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일 때가 많다. ‘여기요, 저기요, 아저씨, 아줌마, 언니, 이봐요, 사장님, 선생님, 어르신’. 며칠 전 택배노동자들이 택배 차량의 아파트 지상도로 출입금지를 풀어달라며 기자회견을 했다. 아파트 주민이 이들을 향해 시끄럽다며 ‘어이, 택배!’라고 불렀다. 전에도 ‘때밀이, 배달, 노가다’처럼 일이 사람을 대신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나 쓴다. 사람이 있다면 ‘○○ 아저씨, ○○ 아줌마’처럼 호칭을 붙인다.
호명은 누군가를 불러 세운다는 점에서 소통의 출발점이자 상대에 대한 규정이다. 그 짧은 호명 안에 당신의 품격이 담긴다.
그림과 말
하와이 마노아계곡에 낮게 깔린 무지개. 이 형태의 무지개는 ‘우아코코’라고 불린다. 무지개를 뜻하는 하와이 말은 ‘아누에누에’이지만 낮게 깔린 무지개, 쌍 무지개, 곧추선 무지개, 원형 무지개 등 다양한 형태의 무지개를 가리키는 단어와 문구가 20여가지나 된다. - 미 기상학회지
말을 배우기 전 아이는 세계를 그림 비슷하게 받아들인다. 이름 없는 세계를 그림(이미지)으로 받아들인다. 쪼개고 베어내어 이름 붙이지 않는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먹여주고 씻겨주다니 이 세계는 믿을 만하다. ‘빨주노초파남보’를 모른 채 보는 무지개는 얼마나 온전하고 아름다운가. 희로애락의 감정은 추상적이지 않고 몸으로 체험되고 기억 속에 각인된다. 머릿속 그림은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린다. 구체의 세계, 육감의 세계이다.
말은 세계를 베어내는 칼이다. 세계를 그림처럼 아로새기고 있던 아이를 습격한다. 말은 개체가 갖는 단독성과 관계성을 없애고 공통점을 찾아 추상화한다. ‘나무, 괴롭다, 동물’이란 말은 추상적이다.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껴보기도 전에 꽃이 아름답다는 말을 먼저 배운’ 사람에게, 그 말은 ‘꽃의 아름다움을 꺾는다’(<최초의 습격>, 고은강). 사람들이 글보다 이미지나 동영상에 환호하는 것도 달리 보면 어릴 적 본능을 회복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미지는 세계를 인식하는 가장 원초적인 도구이니까.
그런데 그림이든 말이든 이 세계를 무심히 그려내지는 못한다. 차별한다. 이 세계를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 먼 곳보다는 가까운 곳에 더 눈길을 준다. ‘나’와 ‘나 아닌 자’, ‘지금’과 ‘지금 아닌 때’, ‘여기’와 ‘여기 아닌 곳’을 기준으로 구별한다. 물리적 거리는 마음속 거리감으로 바뀌어 친한 사람은 가깝고 모르는 사람은 멀다. 도덕, 즉 옳고 그름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가까움’은 옳고, ‘멂’은 그르다. 이 구별 본능을 피할 수 없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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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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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敵) - 김수영
더운 날
敵이란 海綿같다
나의 良心과 毒氣를 빨아먹는
문어발같다
吸盤같은 나의 大門의 명패보다도
正體없는 놈
더운 날
눈이 꺼지듯 敵이 꺼진다
金海東―그놈은 항상 약삭빠른 놈이지만 언제나
部下를 사랑했다
鄭炳一―그놈은 內心과 正反對되는 행동만을
해왔고, 그것은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였다
더운 날
敵을 運算하고 있으면
아무데에도 敵은 없고
시금치밭에 앉은 흑나비와 주홍나비 모양으로
나의 過去와 未來가 숨바꼭질만 한다
「敵이 어디에 있느냐?」
「敵이 꼭 있어야 하느냐?」
순사와 땅주인에서부터 過速을 범하는 運轉手에까지
나의 敵은 아직도 늘비하지만
어제의 敵은 없고
더운날처럼 어제의 敵은 없고
더워진 날처럼 어제의 敵은 없고
<1962.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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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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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침견혈(一針見血)
東西洋의 醫術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발목 같은 곳을 삐었을 때는 針을 맞는 것이 제일이다. 경험자는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針으로 병소(病巢;균이 모여 있는 곳)의 정곡(正鵠;핵심)을 찔러 '죽은 피'를 빼내면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針 한 방에 피를 본다'는 '一針見血'은 '간단한 요령으로 본질을 잡아낸다'는 비유이다. 우리네 인생살이에서도 名醫가 一針見血하는 式이 아니면 변죽만 울리다가 끝내 흐지부지 되고 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針은 침(鍼)과 같다. 針은 치(治;다스리다)의 뜻으로도 쓴다. 예를들면
'逍遙以針勞 談笑以藥倦'
(산책은 피로를 풀어주고 담소는 고달픔을 낫게하는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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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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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거절에 감사하라 - 래리 윌슨, <게임을 바꿔라:새로운 판매술> 중에서
첫 번째 판매 일에 뛰어들었을 당시, 나는 내 믿음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의 잘못된 점은 '모든 사람'과 '항상'이었다. 그리고 판매 실전에 돌입하자마자, 내 믿음은 그에 반대되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반응을 얻었다. 대다수가 보험 판매원을 기피했던 것이다. 복도에서 나를 보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나는 상처를 받았고 자존심이 무너졌다. 나의 판매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죤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한다. 그는 거절한다...... 나는 미련없이 엘렌에게 간다. 그녀는 거절한다. 그럼 나는 자존심을 짓밝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빌에게 간다. 빌 역시 거절하낟. 계속 그런식이었다. 나는 그 굴레에 갇혀서 옴짝달짝 못했다. 그래서 나는 결단을 내렸다. 집어치우기로 한 것이다. 그 정도에서 실패를 인정하는 편이 보험업계와 나 자신을 위해서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충고를 원했던 시점에서 우연찮게 한 친구가 빅터 프랭크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을 주었다. 그 책은 나에게 믿음의 힘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줬고, 내 자신과 내 일에 대한 믿음을 점검하게 했다. 그것은 진정으로 축복받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믿음의 변화를 실행했다. 나는 판매를 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의 가치와 무관하다고 믿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에 나는 한 걸음 더 진전했다. 그 당시 내 실적은 평균 스무명의 고객을 만나야 생명 보험 하나를 파는 꼴이었고, 판매 수수료는 약 500달러였다. 그러니 500달러를 스무 번의 방문으로 나누면 고객 한 명을 만나는데 25달러가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믿음 게임을 변화시킨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메리를 만나 보험을 권유하고, 그녀는 거절한다. 나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그녀에게 유감을 품는 대신 속으로 말했다.
"25달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다음 18명의 잠재 고객에게도 그런 식으로 했다. 그들이 거절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네, 25달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스무 번째 잠재 고객이 보험에 가입했을 때, 나는 다시 말했다.
"25달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지 눈 깜짝할 사이에 스무 명의 잠재 고객이 열 명으로 줄고, 500달러의 수수료는 천달러로 올라갔다. 그 즈음, 나는 빨리 밖으로 나가서 '25달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내 판매술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단지 내 믿음을 변화시켰을 뿐이다. 나는 잠재 고객의 거절을 실패의 징조로 보는 생각을 버리고, 이성의 힘을 발휘하여 나의 가치가 판매 실적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나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켰다. 그것은 하나의 일상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나는 내 자신에게 줄기차게 말했다.
"나는 절대로 실패할 수 없어, 내 가치는 판매 실적과 관계없어."
나는 혼잣말을 반복해서 자아의 목소리를 변화시켰고 더욱 긍정적인 믿음을 선택했다. 그것이 큰 차이를 만들었다.
거절의 의미를 재조명하라
W. 클레망 스톤은 콤바인드 재단의 창설자이자 동기 부여의 천재이다. 그는 판매 사원들에게 요청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분야의 대가이다. 그는 판매 사원이 '예스'라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그들을 지탱해 줄 방법을 갖지 못한다면, 딱 열번째 고객 방문을 끝으로 일을 그만두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판매 사원들에게 25개의 콩을 전부 오른쪽 주머니로 옮길 때까지 일을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판매 사원들은 25개의 강낭콩을 한쪽에서 다른 쪽 주머니로 모두 옮겨 넣을 때까지 판매를 계속하라는 말을 들었으므로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 시간 즈음, 그들은 일정하게 하나씩 판매 실적을 올렸다. 그것은 판매 사원들에게 일을 계속할 동기를 부여했다. 그들은 결국 '예스'라는 대답을 얻게되리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거절을 견딜 수 있었다. 이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은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판매 사원들까지 거절의 공포를 극복하고 판매업계에서 유리한 경력을 쌓도록 도왔다. 당신도 이와 똑같은 원칙을 당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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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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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4. 북방 원정에 나서다
속매의 계교
한편 대패한 오랑캐 진영에서는 작전 회의가 열렸는데 속매가 밀로에게 계책을 말했다.
"제군이 전진하려면 반드시 황대산(黃臺山) 골로 들어올 것입니다. 우린 즉시 나무와 돌로 길을 막고 함정을 파서 병사들이 지키게 하면 비록 백만 명일지라도 살아서 넘진 못할 것 입니다. 더구나 복룡산 20여 리엔 물이 없어 적은 유수(濡水)를 마셔야만 하니 그 유수를 막아 버리면 적은 물도 없어 큰 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틈을 타서 그들을 무찌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죽국(孤竹國)에 구원을 청하여 그들에게 싸움을 하게 하면 이는 만전지책(萬全之策)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속매의 말을 들은 밀로는 그제서야 크게 기뻐하고 즉각 그 계책대로 행동으로 옮겼다. 한편 관중은 산융군이 물러간 후 3일 동안 아무 기척이 없어서 의심한 나머지 세작(細作)을 보내 적의 동정을 살피게 하였다. 그 이튿날 세작이 돌아와 황대산의 큰길이 막혔음을 전하니 관중은 호아반을 불렀다.
"적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는가?"
"이 길로 가면 불과 사오 리 밖에 황대산이 있어 그 곳을 지나면 적국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길로는 서남쪽으로 돌아 지마령(芝痲嶺)을 경유하여 청산(靑山) 입구로 빠져 몇 리를 돌아가야 영지 소굴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그 쪽은 산이 높고 길이 험해 군마와 병차가 통행하긴 매우 불편합니다."
이 때 아장(牙將) 연지름이 황급히 들어와 아뢰었다.
"융주가 물줄기를 막아 군중에 물이 부족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지마령 일대는 하루이틀엔 갈 수 없는 산길이니 물을 싣고 가야합니다."
호아반이 연지름 말을 듣고 이같이 전하니 제환공이 군중에 선포하였다.
"산을 파서 물을 먼저 얻는 자에겐 후한 상을 주리라."
공손 습붕이 앞에 나서며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개미 구멍이 있는 곳을 파면 반드시 물이 있다 하옵니다."
그래서 군사들은 개미 구멍을 찾아헤맸지만 허탕이었다. 습붕이 다시 군사에게 명했다.
"원래 개미는 겨울이면 따뜻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볕 잘 드는 곳에 살고, 여름이면 시원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산 그늘에서 산다. 이런 겨울엔 반드시 양지 쪽에 있을 것인즉, 함부로 땅을 파지 말고 주의해서 살펴보아라."
군사들은 다시 양지 쪽만 더듬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일어났다. 과연 그들이 양지 바른 땅을 파자 샘물은 솟았다. 더구나 그 물맛은 시원하고 달았다. 제환공이 찬탄했다.
"습붕은 성인이로다."
그래서 그 샘을 성천(聖泉)이라고 명명했다. 또한 복룡산을 용천산(龍泉山)이라고 개명했다. 군사들은 물을 마시며 서로 경축했다. 한편 밀로는 제군이 조금도 식수에 곤란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탄식하였다.
"천지 신명이 중원 사람을 돕는가?"
곁에서 속매가 아뢰었다.
"제군에게 비록 물은 있을지라도 멀리 오느라고 군량만은 넉넉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굳게 지키며 세월을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들은 군량이 떨어지면 버티지 못하고, 물러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밀로는 머리를 끄덕였다. 한편 관중은 빈수무에게 비밀히 한 계책을 일러 주고나서 큰소리로 명령했다.
"장군은 규자(葵玆)로 돌아가서 군량을 운반해 오라."
빈수무는 군량을 가지러 규자로 가는 척하면서 호아반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어디론지 떠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군량을 가지러 규자로 간 것이 아니었다. 호아반은 길을 안내하고 빈수무와 군사는 그 뒤를 따라 지마령(芝痲嶺)으로 향했다. 빈수무가 말했다.
"중부(仲父)께서 오늘부터 6일째 되는 날에 적을 공격한다고 하셨소. 우리는 이 길로 돌아가서 우군과 호응하도록 기일 안에 영지국 근처까지 가야 하오."
호아반이 대답했다.
"비록 지마령을 지나고 청산 입구를 빠져나가 빙 돌아서 가지만 기일 안에 영지에 당도할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한편 관중은 밀로의 군사에게 이런 계책을 쓰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않기 위해 아장(牙將) 연지름으로 하여금 날마나 황대산에 가서 싸움을 걸게 했다. 아장 연지름은 날마다 황대산에 가서 밀로를 욕하고 자극하여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6일이 되도록 산융은 꿈쩍도 않고 싸움에 응하질 않았다. 관중이 말했다.
"이제 6일이 지났으니 빈수무는 서로(西路)로 돌아서 적국 가까이까지 갔을 것이다. 이젠 적이 싸움에 응하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가만히 있을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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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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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효석편"
이효석(1907__1942)
소설가. 호는 가산.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숭실 전문 학교 교수 역임.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단편 소설을 썼던 이효석은 수필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 간결체 문장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소설
B씨에게서 나는 여러 차례나 만찬의 대접을 받고 어간유의 선물을 받고 했으나 그가 거리의 내 집을 찾아오기 전에는 똑같은 형식으로 갚아 줄 도리는 없다. 찻집에서 마시는 차가 아니라 집에서 손수 만든 차를 낼 수 있으며 손수 요리한 도미와 굴과 아이스크림을 대접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자가용 차는 없어도 구경만은 부자유스럽지 않게 동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가 직접 나를 찾기 전에는 어쩌는 수 없는 것이며 옷가지나 과자 상자쯤을 소포로 보낸댔자 별로 신통한 것이 아닐 것이요, 차라리 그렇다면 소설책을 보냄이 더 뜻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B씨는 소설을 유난히 좋아한다. 난로 전을 싸고 앉아 늦도록 이야기한 것도 말하자면 대부분이 소설 이야기와 문학 이야기였다. 광범한 그의 소설 지식에는 놀랄 만한 것이 있으며 신문 소설을 등한히 보는 나로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 대신 나는 고전으로 그를 이기며 그의 지식에 그 무엇을 첨가하여 줌을 기뻐한다.
소설책이라고 하여도 자신의 것은 초라하니 훌륭한 책, 가령 해외의 것이라면 맨스필드의 단편집쯤이 적당할 듯하다. 이와나미판쯤으로는 체재가 너무도 빈약하니 좀더 고가의 호화판이나 나오면 한 부 보내리라. 그의 단편집은 확실히 B씨의 시골 살림에는 윤택과 위안을 줄 것이며 특히 "행복" 같은 걸작은 기어이 추천하고 싶은 일편이다. 물론 그 내용보다도 예술적 향기를 그에게 띄워 주고 싶은 것이다. 남편 해리와 미스 팰튼, 아내 영과 에디워렌의 두 쌍의 미묘한 관계를 나는 즐겨하지 않는다. 다만 해리와 영 부처의 행복스러운 가정적 윤곽, 집뜰 앞에 선 한 포기의 만발한 배꽃으로 상징되는 아내의 행복감, 그것이 그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주제이다. 배꽃이라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임을 사실 나는 이 작품에서 처음 알았고 그것의 행복감의 상징이 이 작품에서같이 여실하게 울려 온 적은 없다.
'...저 쪽편 담으로 향해 한 포기의 밋밋한 배나무가 가지가지에 그득 꽃을 달고 있었다. 마치 구슬같이 푸른 하늘에 고요하고 화려하게 뻗치고 있다.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가 한 개나 있을까. 시들어 버린 송이가 한 송이나 있을까 - 한창 깨끗하고 흐뭇하게 활짝 피어 있는 것이 멀리 서 있는 피어사에세 완연히 보여 왔다-'
'...그 나무는 고요하게 그러나 타는 촛불의 불꽃과도 같이 하늘에 뻗치고는 아름답게 떨리고 있다. 볼 동안에 자꾸만 높아져서 금시에 하늘 위 둥근 달에 채일 듯하다...'
봉실한 꽃송이가 바로 행복감 그것이다. 능금꽃과는 달라서 배꽃은 일률로 희다는 점에 작자가 특별히 배꽃을 든 비유와 암시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만발했을 때의 능금꽃이라는 것도 물론 아름다운 것도 물론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나 지금까지에 능금꽃의 아름다움만이 눈에 뜨이고 배꽃의 미를 등한시했음은 무슨 까닭이었던가 의심한다. 어떻든, 나는 배꽃을 맨스필드의 단편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셈이다. 하기는 맨스필드만이 아니라 이 곳의 젊은 시인 중에도 배꽃을 노래한 사람은 이미 있으니 그의 시구가 나의 배꽃의 인상을 도와 주었을 것도 사실이다.
돌배꽃 필 때면 뻐꾸기 울고
뻐꾸기 울면 하늘이 파아랗나니
배나무 그늘이 가슴에 푸르고
연두색 잎새 햇볕에 손뼉치고
우거진 가지마다 쫙 펴진 가지마다 웃음 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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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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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사람 사이의 틈
아파트 사이사이
빈틈으로
꽃샘 분다
아파트 속마다
사람 몸 속에
꽃눈 튼다
갇힌 삶에도
봄 오는 것은
빈틈 때문
사람은
틈
새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
김지하 시인의 <중심의 괴로움>이란 시집을 읽다가 만나게 된 `틈`이라는 이 시가 요즘 내내 마음 안에서 떠나질 않는다. 창 틈으로 스며들어 오는 햇빛, 달빛, 바람, 높은 산에서 바위틈을 비집고 돋아나는 아름다운 들꽃. 우리집 장독대 옆,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좁은 돌틈을 비집고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들. 그리고 바쁘게 일을 하다 잠시 쉬어 보는 시간과 시간 사이의 틈, 하루에도 수없이 어떤 틈들과 만난다. 자연과 일상의 시간 사이에 어떤 틈이 있듯이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틈이 있다. 상대방을 넉넉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여백으로서의 밝고 긍정적인 틈이 있는가 하면, 서로를 오해하거나 완강히 거부해서 벌어지는 어둡고 부정적인 틈도 있다. 그래서 어떤 관계가 안 좋을 땐 `그들에게 틈이 생겼다` 또는 `틈이 벌어졌다`는 표현을 하는가 보다. 희망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랑의 틈이야 많을수록 좋고 살아가는 데 힘이 되지만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아 빚어지는 불신, 오해, 미움의 틈은 항상 슬픔과 우울함을 안겨 준다.
내가 30년이 넘는 세월을 수녀원에 살면서 가장 괴롭고 힘들었던 일을 돌이켜보면 함께 사는 이들과의 관계에 어떤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을 때였다. 어느 땐 정말 큰 이유도 없이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이와 사이가 벌어져 한없이 어색해지면서도 서로 표현을 못할 때가 있는데 이런 종류의 틈은 큰소리로 싸우는 것보다 더욱 깊은 괴로움을 안겨 준다. 어떻게 이 틈을 메워 가야 할지 방법조차 알지 못해 애를 태우다 보면 `연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들고 `이래서 공동생활이 어렵구나`하고 탄식하며 잠시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사실은 좀더 잘해 주고 싶어 좋은 뜻으로 한 행동까지도 곡해되어 어색한 틈을 만들어 버렸을 땐 울고 싶도록 답답하다. 일반 가정에서 같으면 금방 툭 터놓고 한마디해서 그 틈을 메울 수도 있을텐데 수도원에서는 서로서로가 너무 조심스럽게 대하다 보니 이 틈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벌어져 있는 적도 많은 듯하다. 마냥 내버려두어도 안되고 너무 성급히 메우려고 해도 안되고 기회를 보아 자연스럽고 슬기롭게 메워 가야 할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 무엇보다고 용서와 화해로 서서히 메워 가야 할 틈과 틈. 새해를 맞으며 나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동안 나의 탓으로 썰렁하게 벌어졌던 친지들과의 틈을 따스한 사랑으로 메워 가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가깝다고 너무 만만하게 여겨 예의 없이 굴었던 나의 말과 행동, 장담해 놓고 지키지 못한 작은 약속들,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주지못한 무분별과 무관심, 그의 기대를 저버린 나의 이기적이고 교만한 태도, 너그러운 이해심과는 거리가 먼 선입견, 고정관념, 편협한 태도 등등. 이 모두는 평소에 잘 지내던 이들과도 조금씩 틈이 벌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아마 어떤 틈은 내가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금세 메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내 탓으로 한번 벌어진 틈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누가 나를 거부하고 나에게 심한 말로 모욕을 주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용기와 참을성을 지녀야겠다. 실은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 일은 새해 결심으로뿐 아니라 평소에도 가장 최선을 다해야 할 과제임을 알고 있다. 가장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이 틈을 메워 가지 않는 한 나에겐 결코 참된 평화와 행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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