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51호 》 2022.9.10 (음 8.15) - 추석 》 발송인:
nownforev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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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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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샴페인과 같다. 거품이 꺼지지 않았을 때 갖다 바쳐야 된다. ― 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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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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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을 없애자 (3)
가짜 소설 <쭈꾸미>의 한 대목. “오랫동안 투정을 부려 ‘짜장면’이 표준어가 되었다. 우리 ‘쭈꾸미’도 표준어로 인정받기 위해 상소문을 올리자!”(‘쭈꾸미’는 비표준어).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해진 원칙을 유지하고 적용하려고 한다. 만 18살에서 하루라도 모자라면 투표를 할 수 없다. 이게 국가 행정의 특징이다. 일관성! 이 원칙을 말에도 적용해왔다. 하지만 원칙의 뒷배가 든든하지 않다. ‘예컨대’가 맞나, ‘예컨데’가 맞나? ‘예컨대’가 맞다. 이유는? 옛날부터 그렇게 썼으니까.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서도’에 쓰인 ‘-지만서도’도 비표준어다. 이유는? 자주 안 쓰여서. ‘널판자, 널판때기, 널빤지’는? 모두 표준어. 다 자주 쓰여서. ‘겨땀’은 비표준어다. ‘곁땀’이 표준어다. 이게 표준어니까!
맞춤법을 없애자는 주장은 결국 ‘표준어’를 없애자는 것이다. 표준어를 정하는 주체를 국가에서 시민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표준어에 대해 말들이 많으니 국가는 ‘복수 표준어’라는 묘안을 제시했다. 그 결과, 해방 이후 최고 희소식인 ‘짜장면’의 표준어 등극. 2011년 일이다. 10년 동안 5회에 걸쳐 74개가 표준어로 바뀌었다. 말은 날아다니는데 국가는 느리다. 심의회 횟수를 늘리고, 복수 표준어를 확대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게 답이다.
말에는 저절로 질서가 생기고 관습이 만들어지고 하나로 정착하는 기질이 있다. 사람처럼 각각의 여정과 우여곡절이 있다. 말이 모이는 곳은 한 사회의 꽃인 사전이다. 언제까지 ‘쭈꾸미’들처럼 왕의 교지를 기다릴 텐가.
나만 빼고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논리학의 오랜 주제다.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발언.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출신인 내가 ‘강원도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래요’라 한다면, 이 말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참말이라면 강원도 출신인 나도 거짓말쟁이이므로 이 말도 거짓말이 된다. 거짓말이라면 나는 참말만 하는 강원도 사람이 되므로 이 말은 참말이 된다. 헷갈린다고? 해맑도다, 그대의 두뇌.
자기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의 머리만 깎아 주는 이발사가 있다. 그는 자기 머리를 깎을까, 못 깎을까? 자기 머리를 깎는다면,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만 깎아야 하는데 스스로 머리를 깎았으므로 깎으면 안 된다. 머리를 깎지 않는다면, 자기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에 속하므로 머리를 깎아 주어야 한다. 장군이 ‘내 명령에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면, 따를까, 말까? 모르겠다고? 복되도다. 그대의 투명한 두뇌.
말장난으로 보이겠지만, 많이들 쓴다. 어른은 아이에게 ‘딴 사람 말 듣지 마!’ 남자친구는 애인에게 ‘남자는 다 늑대니 조심해.’ 운전자는 화를 내며 ‘오늘 왜 이리 차가 밀려!’
‘나만 빼고’ 생각하면 가능하다. 말하는 이는 말에서 분리된다. 듣는 이도 말하는 이를 빼고 이해하므로 꼬투리를 잡지 않는다. ‘당신도 딴 사람이고, 당신도 남자고, 당신도 차를 몰고 나왔다’며 정색하지 않는다. 안전한 이율배반.
우리는 ‘나만 빼고’ 식 말하기에 익숙해서 분열증에 걸리지 않는다. 부조리에 분노하되 공범인 우리도 함께 생각하면 좋겠다, 나만 빼고.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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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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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이 - 김수영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골목을 돌아서
베레帽는 썼지만
또 골목을 돌아서
신이 찢어지고
온 몸에서 피는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흐르는데
또 골목을 돌아서
추위에 온 몸이
돌같이 감각을 잃어도
또 골목을 돌아서
아픔이
아프지 않을 때는
그 무수한 골목이 없어질 때
(이제부터는
즐거운 골목
그 골목이
나를 돌리라
―아니 돌다 말리라)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나의 발은 絶望의 소리
저 말(馬)도 絶望의 소리
病院냄새에 休息을 얻는
소년의 흰 볼처럼
敎會여
이제는 나의 이 늙지도 젊지도 않은 몸에
해묵은
1961개의
곰팡내를 풍겨 넣라
오 썩어가는 塔
나의 年齡
혹은
4294알의
구슬이라도 된다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敵들과 함께
敵들의 敵들과 함께
무한한 연습과 함께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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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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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불과이인지(一人不過二人智)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제 아무리 잘난 사람도 여럿이 힘을 합하는 것만은 못하니 협동하고 협력하라는 가르침이다. 위의 글을 직역하면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서는 두 사람의 지혜를 넘지[過] 못한다' 이다. 不過는 어느 정도에 이를지 못했을 때 쓴다. '不過五百名'은 5백명이 안되다는 뜻이다.(겨우 5백명이라는 뉘앙스도 있다). 不過의 반대는 過多이다. 大入試처럼 경쟁이 치열한 것을 過多競爭이라고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及] 않는 것은 不過不及이다. '一人之能過千人之能'(한 사람의 능력이 천 사람의 능력을 넘는다)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一當千의 사람을 過人이라고 한다. 自古로 胎敎를 잘 해서 나은 아이는 過人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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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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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 - 익명을 요청한 성공 판매원
어느날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 당시 나는 만나자고 하는 사람의 사무실 밖에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비서는 지금 상사가 바쁘므로 나에게 시간을 낼 수 없노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그녀는 비서로서 상사를 시간 도둑으로부터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내 제의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서비스가 그의 시간과 돈을 절약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무작정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그에게 쫓겨나 복도로 돌아오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이미 복도에 서 있으므로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이 상상이 가는가? 나는 고객을 확보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문을 따려고 결심한 사람은 고객의 요구를 이행하려고 할거요."
요청한들 잃을 것이 없다 - 마르시아 마틴
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까봐 요청하지 않은 것은 바보스럽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이미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잖은가? 그러면, 그들은 내 말이 사실임을 깨닫고 박장대소를 한다. 요청하지 않은 지금, 당신은 아미 아무 것도 갖지 못했고 이미 실패했다. 그런데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또 가질까봐 두려워하다니! 정말 바보스러운 짓이 아닌가? 설령 원하는 것을 요청했다가 얻지 못한다고 한들, 누가 상관하겠는가? 어차피 요청하기 전에도 그것을 가지지 못했는데,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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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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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3. 남방에 이는 바람
자원의 속셈
한편 정나라 숙첨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밤새 성내를 순시하며 혹시 있을 줄 모르는 야습을 경계했다. 이튿날 새벽이 되었다. 멀리 초군의 영채가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그 때 숙첨이 크게 웃더니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초군이 모두 달아났으니 안심하여라!"
병사들은 숙첨의 말을 믿지 않고 서로 쳐다보다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물었다.
"모두 도망쳤다니, 뭘로 그걸 아십니까?"
숙첨이 설명했다.
"저 초나라 군막을 보아라. 군막이란 장수가 거처하는 곳이다. 군막에는 공격할 때 북소리가 울리고 군사들의 함성 소리가 진동하는 법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은 어떠하냐?"
숙첨이 하늘과 군막을 한 번씩 가리키면서 말했다.
"공중에서는 뭇 새들이 나르고, 군막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으니 군막이 비었다는 걸 알 수 있도다. 그리고 지금쯤 제나라 구원군이 오고 있다는 걸 초군이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도망쳐 달아나지 않았겠느냐?"
그런 뒤 얼마후 첩자가 와서 제후의 구원병이 곧 정나라에 당도할 것이라는 것과 초군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보고하니 모두들 숙첨의 선견지명에 탄복을 했다. 정나라에선 즉시 신하를 구원하러 오는 제환공을 영접함과 동시에 멀리서 같이 온 송후(宋侯)와 노후(魯侯)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하니 이로부터 정나라는 제나라에 충성을 바치는데 두 번 다시 다른 마음을 먹지 않았다.
한편 초나라의 자원은 정나라를 공격했으나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해 불안했기 때문에 그는 아예 자신이 왕위를 빼앗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원은 먼저 문 부인을 자기 것으로 정복한 연후에 일을 꾀하기로 작정했다. 이 때 문부인은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자원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문병을 한다는 구실로 내궁에 들어가 아예 그 곳에서 기거를 하며 자신의 부하 수백 명을 무장시켜 궁 밖을 엄히 경계했다. 이 사실을 안 대부 투렴(鬪廉)은 궁내로 들어가 자원의 침소로 갔다. 그 때 자원은 마침 거울을 앞에 놓고 수염을 다듬고 있었다. 투렴이 거울을 밀쳐 놓으며 크게 꾸짖었다.
"이 곳이 어찌 신하된 자가 머리에 빗질하고 목욕할 곳이오. 영윤은 속히 궁 밖으로 나가시오!"
자원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 곳은 내 집이며 나의 궁실인데 사사(射師)에게 무슨 상관이 있소?"
"왕후의 귀함은 아무리 형제 사이라도 터놓고 지내지 못하는 법이오. 영윤이 비록 선왕의 동생이라 하지만 신하이니, 신하는 궁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며 종묘를 지날 때는 급히 달리는 법이오. 그 곳에서 기침이나 침만 뱉어도 불경죄라 하거늘 침소야 더 할 말 있겠소. 그리고 이 곳은 과부인(寡夫人)이 계신 곳과 가까우니, 자고로 남녀는 유별하거늘 형수를 위해서라도 영윤은 이런 법도조차 모르고 계시었는가?"
"초나라 정사가 내 손 안에 있는데 어찌 말이 많은가?"
자원이 부르짖더니, 좌우 사람들을 불러 투렴을 포박하게 했다. 그러고는 투렴을 궁중의 행랑채에다 감금하는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문 부인은 사람을 시켜 투곡어도에게 전지를 내렸다.
"곧 궁으로 들어와 어려운 사태를 수습하라."
투곡어도는 즉시 초성왕에게 사실을 아뢰고 투오, 투반 등과 상의하였다. 그날 밤 투씨네 무사들이 왕궁을 에워싸고 있는 자원의 부하들을 잡아 죽이러 갔다. 이 때, 자원은 바깥 형세가 어떻게 된 줄도 모르고 한 궁녀를 끌어안고서 취한 채 자고 있었다. 그러다 소란한 바깥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성큼 칼을 잡고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누가 문을 향하여 마루를 걸어오고 있었다. 살펴보니 투반이 칼을 들고 자기를 노려보면서 오지 않는가. 자원이 크게 꾸짖었다.
"네 놈이 난을 일으켰느냐?"
투반이 가까이 오면서 대답했다.
"나는 난을 일으킨 자가 아니다. 오히려 난을 일으킨 자를 잡아 죽이러 왔다."
이에 자원과 투반은 서로 어우러져 싸웠다. 그들이 불과 수합을 싸웠을 때, 투어강과 투오가 일제히 달려왔다. 자원은 이들 세 사람을 한꺼번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획 돌아서서 문을 박차고 달아나려 했다. 순간 투반의 날카로운 칼이 자원의 목덜미를 향해 야릇한 곡선을 그었다. 동시에 자원의 목이 떨어져 굴렀다. 한편 투곡어도는 갇혀 있는 투렴을 풀어 주고 함께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들은 문 부인 침실 밖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리고 자원의 처리를 아뢰고 문안한 뒤 물러나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초성왕은 조례가 끝나자 엄한 분부를 내렸다.
"자원의 식솔들을 모두 도륙하고 그 죄상을 써서 방으로 널리 알리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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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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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광섭편"
김광섭(1905~1977)
시인. 호는 이산.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대통령 공보 비서관, 세계 일보 사장, 경희대 교수 역임. 초기에는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성으로 민족 의식을 노래한 것이 많았으나 그 후로는 여유 있는 인생의 정취를 담았다. 말기의 시에는 사회 비평적 의식과 근원에서 향수가 짓들어 있다.
일관성에 대하여
내 나이 이제 일흔이니, 이른바 기성 세대다. 아니, 기성 세대에서 구세대라 할 것이다. 그러나 구세대는 구세대임으로 겪어야 했던 과거가 있으니, 이는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삶을 영위하는 데 혹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 70을 살고도 한 시간의 생각거리가 못 되는 인생이나마 여기 적는 것은 다만 '참고하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다. 나는 1905년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집안에는 자녀가 드물었기 때문에, 나의 조부모께서는 나를 백 날 동안 사람에게도 해에도 달에도 보이지 않으시고, 당신들의 방 안에서 무릎에다 놓고 키우셨다 한다. 나는 이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나쁜 일이나 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생각한다. 이것이 평범한 한 아기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신 그분들께 최소한으로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또 하나의 까닭을 생각할 수도 있다. 내(우리 세대)가 다른 사람의 가해를 너무 많이 받았다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 이웃에 서당이 있었다. 나는 거시 놀러 갔다가, 칼을 찬 누런 복색의 일본 헌병을 보았다. 그는 서당 아이들을 내쫓고 그 방을 썼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길에 버티고 서서 그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한 어린이의 감시자가 되었다. 나는 그를 통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이미지를 본 것이다. 내 사상의 씨도 그 때 뿌려진 것이다. 그 다음에 나는 독립군, 의병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간밤에 다녀갔다는 귓속 이야기가 들렸다. 소년은 무슨 장한 것을 남몰래 속에 품은 듯이 자랑스러웠다. 그 후, 삼일 운동을 보았다. 이것을 본 것이 나의 인생길의 방향을 고정시켰다. 소년은 이 때부터 이순신이니 김옥균이니 하는 분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얼마 후, 나는 서울에 가서 중등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영문학을 공부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것이 나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망국민이기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 그 수모는 형언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당시 도쿄는 공산주의의 아성이었다. 나는 우리의 독립에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여 한동안 그들을 넘겨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차라리 조용한 한 인간으로 살자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힘이 없어 일제에 항거할 수도 없고, 이 땅의 아들이라 순종할 수도 없는 그 가운데, 미칠 듯이 달려드는 고민과 몸부림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항일 운동에 가담하고 만 것이다. 참으로 뼈저린, 일본의 8년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나는 '극예술 연구회'에 들어갔다. 나는 물론 연극인이 아니다. 그러나 민족극을 수립해 보고 싶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참절비절한 현실이었으므로, 이 소극적인 저항마저 쉬운 일은 물론 아니었다.
나는 또 한편으로 교편을 잡았다. 영어 교과서는 나의 큰 위안이 되었다. 바이런, 셸리, 키츠, 워즈워즈 등의 시가 있었다. 나는 이 시들을 풀이하면서 민족을 이야기하고 자유를 말하고, 그리하여 간접적으로나마 학생들에게 '한국인임'을 깨우쳐 줄 수가 있었다. 끊임없이 일경에게 불려다니면서도 나는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궁성 요배라는 것도 할 수 없었고, 창씨 개명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그들의 형무소에 갇힌 바 되었다. 그 때 나를 담당했던 일인 검사가, 너 같은 자를 내놓는다면 대일본 제국이 성립되지 못할 것이라고 극언하던 것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거기서 괴롭고 고독한 3년 8개월의 독방 신세를 졌다. 그 동안에 외국인이 될 수 없다는 나의 신념은 점점 굳어만 갔다. 감옥에서 나오자 나는 곧 광복을 맞이했다. 비록 병상의 몸으로나마, 제국주의의 시체를 보면서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내가 부른 만세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려서 본 삼일 만세의 이미지 그대로 부른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 이미지를 눈앞에 그리며, 사회 활동도 하고 반공 운동도 벌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공무원 노릇도 했다.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어린 나를 감시하던 그 일본 헌병, 소곤소곤 들리던 독립군 이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본 삼일 운동, 이 일들은 모두 나의 어린 가슴 속에 민족사의 한 목표, 내가 향해서 걸어가야 할 목표를 설정해 준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무것도 이룩한 것이 없지만, 그런대로 이 한 목표를 향하여 일관하게 가는 길이라 별다른 후회가 없다. 오늘날, 세계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방황하는 사람들이 적잖은 것 같다. 그들은 이 시대를 매우 어려운 때로 보고, 심각한 전환기니 상실의 시대니 하면서 고독해하고, 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난무를 즐긴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풍조는 어느덧 우리나라에도 상륙하여, 일부 청소년들이 이에 쏠리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은 자기 방치다. 시대를 핑계삼지 말아야 한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들, 목적지가 있어도 사명감이 없는 사람들, 오직 그들만이 시대를 핑계삼아 불순하고 나약한 자기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족속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들은 모세의 인도로 애급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가나안 복지를 향했다. 그러나, 그리로 가는 도중에 그들은 어찌했는가? 좀더 참지 못하고 추악한 난무 속에 휩쓸리고 말았다. 4백 년의 노예 생활에서 구제되는 날에도 자기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전철을 되밟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명백한 목표가 있다. 안으로는 통일을 이룩하며, 밖으로는 세계에 웅비해야 할 우리들이다. 그것이 또한 제군의 자기 실현이기도 하다. 이렇듯 명명백백한 목표가 있는데도 방황해야 할 것인가? 작은 생활 하나하나에도 경건한 태도로 임하여 한 발씩 한 발씩 우리들의 목표에 접근해 가야 할 것이다.
인생, 나는 이것을 잘 모른다. 그러나 무엇인가 일관된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방황하는 것이 아니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남에게 괴롭힘을 많이 받은 우리의 인생은 이것이 첫째 자기 구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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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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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손님맞이
아침에 까치가 울면 "오늘은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보지?"하며 빙긋 웃던 가족들의 모습은 늘 따뜻한 정과 그리움의 추억으로 떠오른다. 집에 손님이 온다는 날이면 어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공연히 마음이 들뜨고 즐거웠던 어린 시절. 가족들이 집 안을 평소보다 더 깨끗이 하고, 고운 옷을 입으며, 바른 인사법과 공손한 예절을 익히며 준비하는 그날이 내겐 늘 설레임 가득한 축제로 느껴진곤 했다. 그러나 우리집에 다니러 온 친척, 이웃 손님들이 잠시 머물다 작별의 인사를 하고 떠날 때쯤이면 나는 너무 아쉽고 허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씁쓸히 서성이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유난히 까치가 많고 소나무가 많은 이곳 부산 광안리 산기슭의 성 베네딕도수녀원으로 `시집`와서 산 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다. 워낙 식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수녀원엔 거의 하루도 손님이 없는 날이 없다. 손님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귀한 선물임을 늘 강조하는 베네딕도 성인은 그의 규칙서에서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대하고` `손님이 오면 사랑의 봉사로써 마중 나가, 함께 기도하며 평화의 인사를 하라`고 강조한다. 우리 동산의 꽃과 나무들만큼이나 우리 손님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수녀가 되고 싶어 찾아오는 아가씨들, 수녀가 된 딸들을 만나러 오는 가족과 친지들. 여행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다 가거나 강의를 해주러 오는 선생님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갖고 싶어 며칠 묵어 가는 성직자와 수도자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서 달려오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지친 사람들 등등. 특히 여러 날 묵어 가는 경우엔 시설이 불편하다고 불평할 수 있는 자그만 객실인데도 손님들은 대체로 고마워하며, 식탁에 올리는 반찬도 극히 단순 소박한 것이지만 밭에서 직접 가꾼 것이기에 더 귀하다며 맛있게 드는 모습을 보면 고맙고 기쁘다. 처음엔 서로 낯설고 서먹한 사이였던 손님들끼리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서로 좋은 친구가 되어 연락을 주고받는 걸 보면 흐뭇한 마음이다.
손님은 우리의 창문이 되어 준다. 생활이 비교적 단순한 우리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잠시 잊고 있던 세상의 일들을 더 구체적으로 보고 느끼게 된다. 손님은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우리의 좋은 점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지지자나 힘든 때의 위로자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실수하는 부분이나 그 밖에 개선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선 예리한 지적도 서슴지 않는 고마운 충고자이다. 그러므로 손님은 우리가 게으르거나 방심하며 살지 않고 조금은 긴장하며 깨어 살도록 도와 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손님맞이야말로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치르어야 할 아름다운 사람의 임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를 갖추어 손님을 맞는 일이 때론 힘들고 번거롭게 여겨질 때도 있겠지만, 손님의 발걸음이 뜸한 집 안은 얼마나 쓸쓸하고 삭막할 것인가. 우정과 사랑이 피어나는 만남의 관계, 인정이 오가는 이웃과 이웃 사이엔 항상 손님이 있게 마련이다. 손님들의 평범한 인사말과 웃음, 유머, 재치, 그리고 그들의 기쁨, 슬픔, 괴로움, 갈등, 때로는 본의 아니게 우리를 성가시고 힘들게 하는 어떤 부담까지도 깊이 끌어안고 사랑하려는 자세로 우리는 오늘도 손님을 맞는다. 수녀원의 종소리를 따라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나누는 좋은 친구, 진실한 이웃이 되려고 한다.
나도 매일매일을 반가운 손님 대하듯이 환히 열린 마음과 시선으로 맞아들여야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귀한 손님을 맞듯이 단정하고도 다정하게 예를 갖추고 맞아들여야겠다. 그리하면 나의 삶은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이 아니라 늘상 싱싱한 기쁨과 활력이 넘쳐나는 초록빛 축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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