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46호 》 2022.9.4 (음 8.9)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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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용감한 것이 아니고 다만 5분 동안만 더 용감할 뿐이다. ― 랠프 월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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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강사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인강)에서 제일 잘나가는 ‘1등 스타강사’. ‘1번 타자’가 갖는 공격성을 부여한다. 학원 홈페이지, 버스나 전철 광고 맨 앞자리에 사진과 함께 이름을 올린다. 이 반열에 오르면 아이돌급의 수입과 인기를 누린다. 일타강사는 가르칠 내용을 찰지게 요리하는 건 기본이고, 판서, 외모, 입담(말발)도 빼어난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승자독식의 법칙이 철저히 작동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진정한 배움은 선생을 흉내 내는 데에서 시작한다. 말을 배울 때에도 그랬고, 헤엄치기, 젓가락질을 배울 때에도 그랬다. ‘배움’이란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배울지 이해할 수 없는 시점에, 무엇을 가르쳐 줄지 알 수 없는 사람 밑에서, 무언지 알 수 없는 것을 배우는 이상한 구조를 갖는다(우치다 다쓰루). 그래서 배움은 기능을 미리 알고 사는 상품 구매와 다르다. 깨달음을 향한 기다림이자 투신이다. 스스로 물에 뜨는 순간이 올 때까지 잠자코 선생의 자세를 흉내 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은 노예에 가깝다. 의존적이고 무기력하다. 같은 걸 가르쳐도 배우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동시성과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말(줄탁동시, 교학상장)이 있지만, 아무래도 교육은 학생이 주인이다. ‘배움’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가르침’은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일타강사를 찾는 열정만큼이나 ‘누가’ ‘무엇 때문에’ 배우는지도 물어야 한다. 하물며 지금의 교육이 배움을 배반하고 있다면, 선생이 아니라 학생한테 눈을 돌려야 한다.
‘일’의 의미
단어는 고립되어 쓰이지 않는다. 단어는 한 사회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배적 신화에 기대어 산다. 이를테면 다음 두 목록에 함께 쓰인 ‘일’과 ‘돈’이 각각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생각해보자.
1) ㄱ. 집, 먼지, 창고, 냄비, 일
ㄴ. 임금, 출퇴근, 노조, 노무관리, 일
2) ㄱ. 음식, 옷, 차, 집, 돈
ㄴ. 이율, 은행, 주식, 투자, 돈
(1ㄱ)의 ‘일’은 몸과 직접 관계가 있다. 쓸고 닦고 고쳐야 하는 몸의 구체적인 움직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에 (1ㄴ)의 ‘일’은 매매되는 노동이다. 돈으로 환산되고, 정해진 규약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2ㄱ)의 ‘돈’은 사는 데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지만, (2ㄴ)의 ‘돈’은 그 자체를 축적하거나 스스로 이윤을 창출하는 추상적인 존재다. 수치의 등락 자체가 전부다.
‘일’과 ‘돈’에 대한 지배적 신화는 (1ㄴ, 2ㄴ)의 맥락에서 일어난다. 몸놀림이나 사람과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탈피해 있다. ‘일’은 수량화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이 돈을 번다’. 그러니 가만히 놔두지 말고 굴리고 투자해야 한다.
‘다행히(!)’ 지구적 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일’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평소라면 임금, 초과이윤율, 사회적 평판을 기준으로 구분했을 거다. 지금은 어떤 노동이 사회의 유지와 존속에 필수적인지를 묻는다. 보건의료와 돌봄노동 종사자, 배달업 노동자, 청소·경비 노동자, 그리고 농민. 이러한 ‘필수노동’에 대한 논의와 함께 ‘도대체 내 손과 발로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뭔가’도 묻게 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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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중(伏中) - 김수영
三伏의 더위에 질려서인가 했더니
아냐
아이를 뱄어
계수가 아이를 배서 조용하고
食母아이는 사랑을 하는 중이라네
나는 어찌나 좋았던지 목욕을 하러 갔지
개구리란 놈이 추락하는 폭격기처럼
사람을 놀랜다
내가 피우고 있는 파이프이건 二년이나 대학에서 떨어진 아우놈 거야
너무 조용한 것도 병이다
너무 생각하는 것도 병이다
그것이 실개울의 물소리든
꿩이 푸다닥거리고 날아가는 소리든
하도 심심해서 偵察을 나온 꿀벌의 소리든
무슨 소리는 있어야겠다
女子는 魔物야
저렇게 조용해지다니
周圍까지도 저렇게 조용하게 만드는
魔法을 가졌다니
나는 더위에 속은 조용함이 억울해서
미친놈처럼 라디오를 튼다
地球와 宇宙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어서어서 진행시키기 위해서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미치고 말 것같아서
아아 벌
소리야!
<1961.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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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점정(畵龍點睛)
- 가장 긴요한 부분을 끝내어 완성시킴.《出典》'水衡記'
남북조(南北朝)시대, 남조(南朝)인 양(梁)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군장군(右軍將軍)과 오흥태수(吳興太守)를 지냈다고 하니 벼슬길에서도 입신(立身)한 편이지만, 그는 붓 하나로 모든 사물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화가로도 유명했다. 어느날, 장승요는 금릉(金陵: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의 주지로부터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절의 벽에다 검은 구름을 헤치고 이제라도 곧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네 마리의 용을 그렸다. 물결처럼 꿈틀대는 몸통, 갑옷의 비늘처럼 단단해 보이는 비늘, 날카롭게 뻗은 발톱에도 생동감이 넘치는 용을 보고 찬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용의 눈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은 점이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장승요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은 당장 벽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당장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는 성화독촉(星火督促)에 견디다 못한 장승요는 한 마리의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기로 했다. 그는 붓을 들어 용의 눈에 '획'하니 점을 찍었다. 그러자 돌연 벽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펴지더니 한 마리의 용이 튀어나와 비늘을 번뜩이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은 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張僧繇於金陵安樂寺 畵四龍於壁 不點睛 每曰 點之則飛去 人以爲誕因點其一 須臾雷電破壁
一龍乘雲上天 不點睛者見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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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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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인생에서웃기는 점은 최고가 아닌 것을 거절하면 결국 최고를 손에 넣게 된다는 사실이다. - 서머셋 모음
101가지 소원 목록을 만들어라 - 바바라 드 안젤리스
원하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을 요청할 수 없다. 세상의 많은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혹은, 자신의 가치보다 훨씬 못한 것을 원한다. 무엇보다, 당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스스로 그것을 청할 가치가 자신에게 있음을 결정해야 한다. 셋째, 그것을 얻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 배짱을 지녀야 한다. - 잭 캔필드와 마크빅터 한센
존 고다드는 15살 때 소원 목록을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로 매주 금요일마다 저녁식사에 친구를 초대했다. 어린 존 고다드는 그 식사 시간에 엿들었던 대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와 손님들은 미처 시작도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존은 아버지와 그 친구들과 같은 나이에 그들과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존은 방으로 가서 127가지의 소원 목록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이제 나이 60에 접어든 존은 그 127가지의 소원 중에서 무려 115가지나 성취했다. 그 목록은 그의 전 생애의 기초가 되었고, 그에게 수백여 나라를 방문하고 교황을 포함한 여로 세계 지도자를 만나고 수많은 꿈을 달성하도록 채찍질했다. 그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나일강을 탐험하고, 로즈 볼 퍼레이드에서 말을 타고 행진하고, 48가지 기종의 비행기 조정법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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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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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1. 위나라 정벌
과거를 잊지 말라
한편 정나라에서 부고가 왔다. 정여공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주왕실에서 선물을 받고 돌아오던 중에 병을 얻었다. 그리고 겨우 본국에 도착하자 손 써 볼 사이도 없이 바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이에 모든 신하들은 세자 첩(捷)을 받들어 군위에 모셨다. 그가 바로 정문공이다. 정문공은 임금이 되자 즉시 사자를 보내어 제환공에게 동맹을 청했다. 혹시 자기 나라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겁이 나서였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벌써 동맹을 청해 온 나라가 여럿입니다. 시기를 늦추면 의심이 생기고 자칫 정나라가 초나라에 조공을 보내는 일이 또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주공께서는 송 . 노 . 진 . 정 네 나라와 회견하시고 동맹하십시오."
이에 제환공은 네 나라에 사자를 보내 통지하고 기일에 맞추어 유(幽) 땅으로 갔다. 네 나라 군후도 당도하여 함께 회견한 후 동맹을 맺었다. 모든 군후들이 제환공을 맹주로 받들어 섬기는 모습이 예전과 달리 정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맹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오는 제환공의 기분은 몹시 좋았다.
"도착하는 즉시 잔치를 열고 축하할 수 있게끔 준비해 두게 하거라. 그리고 모든 신하들을 입궁하게 하라."
사자는 서둘러 돌아오자 제환공의 명을 전갈하여 곧 준비를 시켰다. 제환공이 궁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모든 신하들이 도열하여 제환공을 환영했다. 제환공은 곧 잔치 자리로 갔다.
"즐겁도다! 오늘날이여!"
제환공은 술잔을 높이 들고 즐거워했다.
"천수(千壽)하소서!"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포숙아가 앞으로 나서더니 큰 잔을 잡고 제환공에게 술을 따라 바쳤다.
"패업을 경하합니다."
제환공이 흔연히 술잔을 받아 마셨다.
"모두 경들의 덕분이오. 그대와 중부(仲父)가 있으니 이렇듯 좋은 일이 있는 게 아니겠소."
제환공이 반쯤 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포숙아가 다시 아뢰었다.
"총명한 군주와 어진 신하는 비록 즐거울지라도 지난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라건대 주공께서는 지난날 망명하시던 때를 잊지 말지며, 관중은 지난날 함거 속에 잡혀오던 어려운 때를 잊지 말지며, 영척은 소치던 목자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오늘 같은 즐거움을 언제까지나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제환공이 먹던 술까지 확 깨고 정신이 번쩍드는지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과인과 모든 대부들은 포숙아의 말을 잊지 말지니 이는 제나라 사직의 무궁무진한 복이로다."
모두들 기쁘게 술잔을 들고 함께 즐겼다.
한편, 주혜왕은 제환공이 유 땅에서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자 사자를 보냈다. 제환공은 사자를 공관으로 영접하고 왕명(王命)을 전해 받았다.
"이제 제후(齊侯)를 방백(方伯)으로 삼고 태공(太公)의 직위와 불의를 정벌하는 대임을 맡기니, 위후(衛侯) 삭(朔)이 퇴를 도와 왕위에 앉게 한 사실이 있은즉 짐은 그 때의 분함을 오늘까지 잊지 못하니 수고스럽지만 백구(伯舅)는 위를 쳐 이 분한을 풀어 주기 바라노라."
제환공은 왕명을 받자 곧, 친히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로 쳐들어갔다. 그 때는 위혜공 삭이 죽고 위의공(衛懿公)이 임금이 된 지 3년이 된 때였다. 위의공은 제군이 자기 나라로 쳐들어오는 이유도 묻지 않고 즉시 군사를 거느려 나가 싸웠다. 두 나라 군사가 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위군은 대패하여 도망쳤다. 제환공은 바로 위성(衛城) 아래로 쳐들어가 왕명을 선양하고 위의 죄를 일일이 들추니, 그 때야 제군이 쳐들어온 이유를 위의공은 알았다.
"그것은 선군의 잘못이지 과인과 관계없는 일입니다."
위의공은 큰아들 개방(開方)에게 금과 비단 다섯 수레를 바치고 강화하도록 분부했다. 개방은 제환공에게 뇌물을 바쳐 올리고 강화를 청하여 죄를 면코자 하니 제환공은 말했다.
"자고로 아비가 지은 죄는 자식에게까지 미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왕명을 받고 온 데 불과한 과인이 어찌 위나라에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으리오."
제환공은 위나라의 뇌물을 모두 낙양의 사자에게 주고 위나라를 용서해 주는 것이었다. 이 때 세자 개방은 위나라를 떠나 제나라에 가서 벼슬을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제환공을 찾아가 자신의 뜻을 아뢰었다.
"제나라에 가서 군후를 모시고 싶습니다."
"그대는 위후의 장자다. 다음날 군후에 오를 몸이 어찌 군후를 버리고 신하로서 과인을 섬기려 하는가?"
제환공의 말에 개방이 아뢰었다.
"명공(明公)은 천하의 맹주이시며 어진 군후이십니다. 말고삐를 잡고 모실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어찌 위나라의 임금 자리만 못하다 하리이까."
이에 제환공은 개방에게 대부 벼슬을 주고 위의공과 화친한 후 수레에 태워 함께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를 몹시 사랑하여 아꼈다. 이후 제나라 사람들은 제환공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세 사람을 삼귀(三貴)라 불렀는데 바로 수작, 역아, 개방이었다. 한편, 진(晋)나라에서 사람이 왔다. 정식 사자가 아니라 진나라 세자의 부중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관중의 부중으로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지금 세자 신생의 처지가 매우 외롭습니다. 외가(外家)이신 제나라에서 도움을 주십시오."
관중은 머지않아 북쪽 오랑캐를 정벌하고 나서 진(晋)과 진(秦), 두 나라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으로 있었다. 그래서 흔쾌히 응낙했다. 과연 진나라와 세자 신생의 처지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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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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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양주동편" 양주동(1903~1977)
시인, 국어 국문 학자. 호는 무애. 경기도 개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문학 박사. 일찍이 향가의 해독에 큰 공격을 세운 바 있으며, '국보'라는 별명과 함께 변설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지적이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수필이 많으며 문장은 건축감이 있어 선명한 인상을 준다.
벌판 다 한 곳이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네.
나는 이 글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종시 역설하여 왔거니와, 그 즐거움의 흐름은 왕양한 심충의 바다에 도달하기 전에, 우선 기구, 간난, 칠전팔도의 괴로움의 협곡을 수없이 경과함을 요함이 무론이다. 깊디 깊은 진리의 탐구나 구도적인 독서는 말할 것도 없겠으나, 심상한 학습에서도 서늘한 즐거움은 항시 '애씀의 땀'을 씻은 뒤에 배가된다. 비근한 일례로, 요새는 그래도 스승도 많고 서적도 흔하여 면학의 초보적인 애로는 적으니, 학생 제군은 나의 소년 시절보다는 덜 애쓴다고 본다. 나는 어렸을 때에 그야말로 한적 수백 권을 모조리 남에게 빌려다가 철야, 종일 베껴서 읽었고, 한문은 워낙 무사 독학, 수학조차도 혼자 애써서 깨쳤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하였을까마는, 독서 연진의 취미와 즐거움은 그 속에서 터득, 양성되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끝으로 소화 일편-내가 12, 3세 때이니, 거금 50년 전 일이다. 영어를 독학하는데, 그 즐거움이야말로 한문만 일과로 삼던 나에게는 칼라일의 이른바 '새로운 하늘과 땅'이었다. 그런데, 그 독학서 문법 설명의 '삼인칭 단수'란 말의 뜻을 나는 몰라, '독서 백편 의자현'이란 고언만 믿고 밤낮 며칠을 그 항목만 자꾸 염독하였으나, 종시 '의자현'이 안 되어, 마침내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에 들어가 보통 학교 교장을 찾아 물어 보았으나, 그 분 역시 모르겠노라 한다. 다행히 젊은 신임 교원에게 그 말뜻을 설명받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그 날, 왕복 60리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도 기뻐서 저녁도 안 먹고 밤새도록 책상에 마주 앉아, 적어 가지고 온 그 말뜻의 메모를 독서하였다. 가로되, "내가 일인칭, 너는 이인칭,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이다 삼인칭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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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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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해질녘의 단상
1
어려서부터
나는 늘
해질녘이 좋았다.
분꽃과 달맞이꽃이
오므렸던 꿈들을
바람 속에 펼쳐내는
쓸쓸하고도 황홀한 저녁
나의 꿈도
바람에 흔들리며
꽃피기를 기다렸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도는 슬픔을
아이는 처음으로 배웠다
2
헤어질 때면
"잘 있어. 응"하던 그대의 말을
오늘은 둥근 해가 떠나며
내게 전하네
새들도 쉬러 가고
사람들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겸허한 시간
욕심을 버리고 지는 해를 바라보면
문득 아름다운 오늘의 삶
눈물나도록 힘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견디고 싶은 마음이
고마움이 앞서네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래야 내일의 밝은 해를 밝게 볼 수 있다고
지는 해는 넌즈시 일러주며 작별인사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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