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45호 》 2022.9.3 (음 8.8)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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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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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웃에서 자행되는 탄압과 차별을 외면하면서 세계의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에 더 분노하기 쉬운 것이 인간. ― 칼 T.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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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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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일반명사
유일하다. 하나밖에 없다. 무한한 우주를 뒤지고 억만 겁의 시간을 오르내려 보아도 언제나 하나밖에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하나밖에 없을 때 우리는 거기에 고유명사를 붙인다. 사람 이름을 비롯하여 산 이름, 강 이름, 별 이름, 동네 이름, 상호가 그렇다. 관심과 애정이 가는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 애정이 있어 이름을 붙이지만 이름은 더 깊은 애정을 다시 부른다(집착과 함께).
잘 알려진 고유명사는 다른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재활용되기도 한다. 이강인은 한국의 ‘메시’이고 독재자는 ‘히틀러’이며 과학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는 꼬마 ‘아인슈타인’이다. 예쁜 산을 두고 한국의 ‘알프스’라 소개하는 안내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유명사의 확장이다.
반대편에 일반명사가 있다. 여러 사물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다. 태백산이든 수유리 화단이든 앞집 계단이든 피어나면 모두 ‘꽃’이다. 절집이든 고물상 앞마당이든 산 너머든 멍멍 짖는 녀석은 ‘개’다. 낱낱이 가진 차이는 사라지고 그저 하나의 공통성으로 묶인다.
그런데 일반명사라 하더라도 각 사람에게 고유명사인 게 있다. 아무리 이 세상에 같은 이름의 대상이 널려 있어도 그 사람에게는 하나밖에 없다. ‘엄마’라는 말을 떠올려 보라. 세상 ‘모든 엄마들’이 아니라 ‘우리 엄마’만 떠오른다. 물건도 곁에 오래 두고 지내면 나에게 유일무이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관계의 그물로 맺어진 인연과 체험에 따라 일반명사가 점점 고유화되는 걸지도 모른다. ‘고유한 일반명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그 이름은 그리움으로 바뀐다.
국가 사전 폐기론
‘국가 사전’: 민간이 아닌 정부가 펴낸 사전.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말함(비슷한말: 관변 사전, 관제 사전).
사전 뒤에는 사전 만든 사람이 몰래 숨어 있다. 중립적 사전은 없다. 사전 편찬자의 권한은 막강하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배제할지, 그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지를 결정한다. 그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하다.
국가 사전을 없애자고 하면, 사전 출판 현실을 모른다고 타박하거나 말글살이에 대혼란이 올 거라고 겁을 낸다. 기왕 만들어 놓은 걸 왜 없애냐고 한다.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교체할 만큼 사회적 역량을 갖춘 한국 사회는 유독 사전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국가란 본질적으로 명령의 집합체이자 일방적 힘을 행사하는 장치이다. 국가 사전은 그 자체로 명령과 통제의 언어이다. ‘다른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양성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이제 <표준사전>만 검색한다.
사전은 언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철학과 기준들로 서로 경합해야 한다. ‘복수’의 사전이 계속 나와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 예술 정책의 기조는 사전 영역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야 한다. 사전을 낼 만한 역량을 갖춘 출판사나 대학, 전문가 집단 몇 곳에 10년짜리 예산 지원을 해보라. 창고에 묵혀 두었던 사전 원고를 다시 꺼내고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들을 찾아나서 각자의 색깔과 향기에 맞는 사전을 만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일본어 사전 못지않은 사전들을 보게 될 것이다. 국가 사전을 폐기하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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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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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지? - 김수영
李太白이가 술을 마시고야 詩作을 한 理由,
모르지?
구차한 문밖 선비가 벽장문 옆에다
카잘스, 그름, 쉬바이쩌, 에프스타인의 사진을 붙이고 있는 理由,
모르지?
우리집 食母가 여편네가 외출만 하면
나한테 자꾸 웃고만 있는 理由,
모르지?
함경도친구와 경상도친구가 外國人처럼 생각돼서
술집에서 반드시 標準語만 쓰는 理由,
모르지?
五月革命 이전에는 백양을 피우다
그후부터는
아리랑을 피우고
와이샤쓰 윗호주머니에는 한사코 색수건을 꽂아뵈는 理由,
모르지?
아무리 더워도 베와이샤쓰의 에리를
안쪽으로 접어넣지 않는 理由,
모르지?
아무리 혼자 있어도 베와이샤쓰의 에리를
안쪽으로 접어넣지 않는 理由,
모르지?
술이 거나해서 아무리 졸려도
의젓한 포오즈는
의젓한 포오즈는 취하고 있는 理由,
모르지?
모르지?
<196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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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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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胡蝶之夢)
- 나비가 된 꿈이란 뜻.
① 물아(物我)의 구별을 잊음의 비유.
② 만물 일체(萬物一體)의 심정
③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出典》'莊子' 齊物論篇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는 맹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물(物)의 시비(是非) 선악(善惡) 진위(眞僞) 미추(美醜) 빈부(貧富) 귀천(貴賤)을 초월하여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한 사람이다. 장자가 어느날 꿈을 꾸었다. 자신은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莊周)가 아닌가. 이는 대체 장주(莊周)인 자기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나비이고 나비인 자기가 꿈 속에서 장주(莊周)가 된 것일까.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莊子》의 이런 우화(寓話)는 독자를 유현(幽玄)의 세계로 끌어들여 생각게 한다.
옛날에 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어, 나비가 된 것을 기뻐하였다. 스스로 즐겨서 뜻하는 대로 가고 있어, 자신임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깨달으니 곧 莊周가 되어 있었다. 알지 못하겠다. 莊周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莊周가 된 것인지를. 莊周와 나비와는 곧 반드시 구별이 있다. 이것을 자연(自然)이 된다고 말한다.
昔者莊周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 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유사어】장주지몽(莊周之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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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끈질기게 세상에 요청한 남자 - 안토니 로빈스
여러 해 전, 나는 새 아내와 함께 추수 감사절 중에 뉴욕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내는 가족과 함께 추수 감사절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시무룩했다. 예년 같으면 집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있으련만, 올해는 여기 뉴욕의 호텔 방에 처박힌 꼴이 되다니.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은 죽은 나무 대신 살아 있는 이들에게 장식하면 어떨까? 먹을 것을 사서 추수 감사절을 축하할 수 없는 이들에게 나눠줍시다. 자, 우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우리가 진정으로 베풀 수 있는 것을 환영하는 곳으로 갑시다. 할렘에 가서 굶주린 이의 배를 채워주는 거요, 어서 가자니까. 예닐곱 가구가 한 달 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삽시다. 우리는 돈을 충분히 가졌잖소. 어서 시작합시다."
나는 우선 라디오 인터뷰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내 동업자들에게 소형 트럭을 수배해 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돌아왔을 때 그들이 말했다.
"소형 트럭이 없어요. 뉴욕 전체에 소형 트럭이라고는 한 대도 없더라구요. 렌트카 회사의 소형 트럭이 전부 임대중이라는 거예요. 도무지 차를 구할 수 없어요."
나는 말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행동을 위하는 거요. 뉴욕시에는 소형 트럭이 수천대도 넘게 있소. 그저 우리가 구하지 못했을 뿐이지. 나가서 한 대 구합시다."
그들은 반대했다.
"이미 샅샅이 다 뒤져서 전화를 해봤지만, 소형 트럭은 한 대도 없다니까요."
내가 말했다.
"거리를 내다 봐요. 저 소형 트럭이 뵈오?"
그들은 보인다고 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나가서 한 대 구합시다."
처음에 나는 도로로 뛰어들어 소형 트럭을 세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뉴욕 운전자들에 대해 한수 배웠다. 그들은 사람이 뛰어들면 차를 세우는 대신 오히려 속력을 높였다! 이제 우리는 전술을 바꿔, 보도에 서서 기다렸다가 신호등에 막혀 정지한 차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공손하게 유리창을 두드렸고,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의심쩍은 시선으로 내다보면 이렇게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이 추수 감사절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려고 하는데, 우리를 할렘까지 태워다 주시겠습니까?"
매번 운전자는 얼른 시선을 피하고 재빨리 창문을 올린 후 꽁지가 빠져라 가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다 효과적으로 요청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오늘은 추수 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일부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당신이 뉴욕의 빈민가라고 생각하는 곳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실 수 없을까요?"
그 방법은 좀 먹혀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백 달러를 주겠노라고 제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훨씬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할렘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한결같이 아무 말도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우리는 그렇게 스무 명의 운전자에게 시도했지만 전부 거절당했다. 내 동업자들은 거의 포기할 기색이었다. 내가 말했다.
"확률의 법칙상, 승낙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리고 완벽한 소형 트럭이 달려왔다. 그 차는 큼지막해서 우리 네사람이 타고도 공간이 남을 정도였다. 우리는 그 트럭으로 다가가서 창문을 두드리고 운전자에게 말했다.
"우리를 빈민가로 데려다 주시겠습니까? 그 대가로 백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운전자가 말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내가 기꺼이 여러분을 태워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곳으로 모시지요."
그리고 그는 뒷좌석에서 모자를 집어 우리에게 공간을 비워 줬다. 그가 모자를 쓰는 순간, 우리는 거기에 '구세군'이라고 쓰여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사우스 브롱크스의 구세군 대장 죤 론돌이었다. 우리는 환호하며 차에 탔다. 그가 말했다.
"나는 여러분이 갈 생각조차 못했던 곳으로 데려가 드릴 겁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 같은 분들이 이런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겁니까?"
나는 그에게 내가 다른 이에게 받았던 호의를 갚고 싶다고 말해줬다. 론돌 대장은 우리를 사우스 브롱크스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비하면 할렘은 비버리힐스처럼 보였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상점에 가서 식료품과 바구니를 넉넉하게 샀다. 그리고 일곱 가구가 한달 동안 먹기에 충분한 음식 바구니를 만든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한 건물에서는 한 방에 여섯 명이 살았다. 그들은 추운 한 겨울에 전기도, 난방 시설도 없이 시궁창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 쥐와 바퀴벌레와 어울려 살았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 이를 위해 약소하게나마 베푸는 경험은 가슴 뿌듯하기에 충분했다. 여러분도 마음을 굳게 먹고 지속적으로 행동에 나서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 그런 기적은 매일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 소형 트럭이 없는 도시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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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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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1. 위나라 정벌
문강의 유언
주혜왕이 정여공과 서괵공의 도움을 받아 퇴의 일당을 물리치고 왕성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중은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주왕실의 난도 평정이 되었고, 정백이 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 남방의 초나라를 멀리하고 주왕실의 측근으로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주공께서는 천하 맹주로서 북방으로 눈을 돌려 오랑캐를 평정하여 중원의 안정을 도모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주왕실의 일에 염려가 있었으나 중부의 예측대로 되었소. 참으로 다행한 일이오."
제환공은 말을 마치고 무엇인가 분부를 내리려고 하는데, 내시가 급히 달려와 노나라에서 전해 온 급보를 알렸다.
"노부인(魯夫人) 문강께서 병환으로 세상을 뜨셨나이다."
원래 문강은 친정 오빠이며 동시에 정부(情夫)였던 제양공이 참살당한 후로 날마다 애통해 하며 울던 나머지 해소병에 걸려 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에 내시가 용하다는 거의( 醫)를 모셔다가 문강을 돌보게 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남자에 굶주린 문강은 끓어오르는 음욕을 참지 못하여 거의를 유혹했다. 환자라고는 하지만 중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그 미색은 아직도 어지간한 처녀를 뺨칠 만큼 교태가 남아 있었으니 문강의 유혹에 거의가 어찌 견딜 것인가. 마침내 유혹에 넘어가 두 사람은 통정했다. 이후 거의는 아예 별궁에서 침식을 같이 하며 문강과 정을 통했다. 얼마 동안은 마치 신혼 부부처럼 둘 사이에 훈기가 돌았다. 그런데 거의가 문강의 음욕을 만족시키느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방사를 해대려니 나날이 수척해졌다. 마침내 견디지 못한 거의는 자기 나라로 도망치고 말았다. 이후 여러 의사들이 왔지만 문강의 음욕을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강은 모든 남자들이 제양공만큼 자기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데 대해서 항상 불만스러워했다. 이러니 해소병이 낫기는 커녕 더욱 심해졌다. 그 해 7월이었다. 마침내 문강은 세상을 떠나게 됐다. 문강이 노장공에게 유언했다.
"나는 제나라에서 너의 아버지에게 시집왔다. 내 듣건대 제나라 선군(先君) 제양공의 여식이 이미 장성해서 나이 18세라고 하는구나. 너는 지난날 언약한 바와 같이 속히 그 애와 혼인하여 육궁(六宮)의 위(位)를 바로 세우도록 하거라. 그리고 상중(喪中)에 혼인을 하지 못하느니 어쩌니 하는 허튼소리에 구애당하지 말아라. 그래야만 구천에서라도 내가 걱정을 놓을 것이다."
문강이 유언을 계속했다.
"또 나의 친정인 제나라가 바야흐로 패업을 도모하는 중이다. 제양공과 마찬가지로 제환공도 너에게는 외삼촌이다. 삼가 그를 어른으로 섬기고 대대로 내려오는 두 나라의 전통적인 우호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여라."
문강은 말을 마치고서 세상을 떠났다. 노장공은 예법에 의해서 모친을 장사지냈다. 그리고 문강의 유언대로 그 해에 혼인하려고 서둘러, 모든 신하들과 함께 이 문제를 놓고 상의했다. 대부 조궤가 아뢰었다.
"주공은 지금 모친상을 당하시어 빈소를 모시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혼인할 수 없습니다. 삼년상이 끝난 후에 그 일을 실행하십시오."
노장공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과인이 혼인을 서두르는 것은 돌아가신 모친의 유언에 따르기 위함이니라. 상중에 혼례하는 것이 너무 빠르다면 삼년상을 마치고 나서는 너무 늦게 된다. 그러니 그 중간쯤 혼례식을 올리면 어떠하겠는가?"
이에 모든 신하들이 상의하여 소상을 마치고 나서 청혼하기로 정했다. 그리하여 노장공이 소상을 마치고 제나라의 여자와 혼인을 하니 이 때 시집온 여인이 바로 제양공의 딸 애강(哀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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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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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양주동편" 양주동(1903~1977)
시인, 국어 국문 학자. 호는 무애. 경기도 개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문학 박사. 일찍이 향가의 해독에 큰 공격을 세운 바 있으며, '국보'라는 별명과 함께 변설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지적이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수필이 많으며 문장은 건축감이 있어 선명한 인상을 준다.
면학의 서
독서의 즐거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 전비들의 무수한 언급이 있으니, 다시 무엇을 덧붙이랴. 좀 과장하여 말한다면, 그야말로 맹자의 인생 삼락에 모름지기 '독서, 면학'의 제 4일락을 추가할 것이다. 진부한 인문이나 만인 주지의 평범한 일화 따위는 일체 그만두고, 단적으로 나의 실감 하나를 피력하기로 하자. 열 살 전후 때에 논어를 처음 보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운운이 대성현의 글의 모두로 너무나 평범한 데 놀랐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런 말씀이면 공자 아닌 소, 중학생도 넉넉히 말함직하였다. 첫 줄에서의 나의 실망은 그 밑의 정자인가의 약간 현학적인 주석에 의하여 다소 그 도를 완화하였으나 논의의 허두가 너무나 평범하다는 인상은 오래 가시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후 배우고, 익히고, 또 무엇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생활이 어느덧 2, 30년, 그 동안에 비록 대수로운 성취는 없었으나, 몸에 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다시금 평범한 그 말의 진리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정씨의 주는 워낙 군소리요, 공자의 당초 소박한 표현이 그대로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현세와 같은 명리와 허화의 와중을 될 수 있는 한 초탈하여, 하루에 단 몇 시, 몇 분이라도 오로지 진리와 구도에 고요히 침잠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음이, 부생 백년, 더구나 현대인에게 얼마나 행복된 일인가! 하물며, 난후 수복의 구차한 생활 속에서 그래도 나에게 삼척안두가 마련되어 있고, 일수의 청등이 희미한 채로 빛을 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일전 어느 문생이 내 저서에 제자를 청하기로, 나는 공자의 이 평범하고도 고마운 말을 실감으로 서증하였다.
독서란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지설이다. 세상에는 실제적 목적을 가진, 실리 실득을 위한 독서를 주장 할 이가 많겠지마는 아무리 그것을 위한 독서라도, 기쁨 없이는 애초에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독서의 효과를 가지는 방법은 요컨대 그 즐거움을 양성함이다. 선천적으로 그 즐거움에 민감한 이야기야말로 다생의 숙인으로 다복한 사람이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독서에 재미를 붙여 그 습관을 잘 길러 놓은 이도, 그만 못지않은 행복한 족속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현실파에게나 이상가에게나, 다 공통히 발견의 기쁨에 있다. 콜럼버스적인 새로운 사실과 지식의 영역의 발견도 좋고,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나.'식의 워즈워스적인 영감, 경건의 발견도 좋고, 더구나 나와 같이, 에머슨의 말에 따라, '천재의 작품에서 내버렸던 자아를 발견함.'은 더 좋은 일이다. 요컨대, 부단의 즐거움은 맨 처음 '경이감'에서 발원되어 진리의 바다에 흘러가는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보았을 때'에서 키츠는 이미 우리의 느끼는 바를 대변하였다.
그때 나는 마치 어떤 천체의 감시자가 시계 안에 한 새 유성의 헤엄침을 본 듯, 또는 장대한 코르테스가 독수리 같은 눈으로 태평양을 응시하고-모든 그의 부하들은 미친 듯 놀라 피차에 바라보는 듯-말없이 다리엔의 한 봉우리를.
혹은 이미 정평 있는 고전을 읽으라, 혹은 가장 새로운 세대를 호흡한 신서를 더 읽으라, 각인에게는 각양의 견해와 각자의 권설이 있다. 전자는 가로되,
"온고이지신."
후자는 말한다.
"생동하는 세대를 호흡하라."
그러나 아무래도 한편으로만 기울어질 수 없는 일이요,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인으로서 동서의 대표적인 고전은 필경 섭렵하여야 할 터이요, 문화인으로서 초현대적인 교양에 일보라도 낙오될 수는 없다. 문제는 각자의 취미와 성격과 목적과 교양에 의한 비율뿐인데, 그것 역시 강요하거나 일률로 규정할 것은 못 된다. 누구는 '고칠 현삼제'를 취하는 버릇이 있으나, 그것도 오히려 치우친 생각이요, 중용의 좋다고나 할까? 다독이냐 정독이냐가 또한 물음의 대상이 된다. '남아수독오거서'는 전자의 주장이나, '박이부정'이 그 통폐요, '안광이 지배를 철함'이 후자의 지론이로되,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함'이 또한 그 약점이다. 아무튼, 독서의 목적이 '모래를 헤쳐 금을 캐어 냄'에 있다면, 필경 '다'와 '정'을 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 역시 평범하나마 '박이정' 석 자를 표어로 삼아야 하겠다. '박'과 '정은 차라리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아니, 우리는 양자의 기념을 궁극적으로 초극하여야 할 것이다. 소인의 다음 시구는 면학에 대해서도 그대로 알맞은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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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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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새가 있는 언덕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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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들은 잘 보이는데 참새는 전보다 흔치 않아서인가 워낙 작아서인가 마음먹고 보아야 눈에 뜨인다. 참새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으로 오규원님의 도시 `참새`를 큰소리로 읽고 싶어진다.
그 맑고 쨍한 소리를
짹짹짹 그 소리를 동그랗게 찍어내는 노오란 주둥이
참새가 귀여운건
그 노오란 주둥이 때문이다.
간지럽게 귓바퀴를 맴돌다 가는
포르르 날아가고 오는 그 소리
참새가 귀여운 건
간지러운 그 소리 때문이다.
나뭇가지에 기우뚱하며
간신히 앉고도 시침을 딱 떼고
점잖게 앉은 모습
참새가 귀여운 건
그 아찔하고
장난스런 얼굴 때문이다.
8
나는 늘 새가 있는 언덕길을 지나 아랫집 일터로 간다. 꽃도 있고, 나무도 있지만 새들이 자주 오르내려 더욱 아름답고 정겹게 느껴지는 수녀원 언덕길을 벌써 30년이나 오르내리며 나는 참으로 고운 새들을 많이 만났다. 가슴을 볼록 나오고 다리는 아주 가느다란 조그만 새들. 앙증맞고 어여쁘다 못해 그 작은 모습이 가끔은 안쓰러워 보이던 새들에게서 나는 삶에 힘이 되는 꿈과 노래와 기도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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