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34호 》 2022.8.19 (음 7.22) 》 발송인:
nownforever.co.kr
|
|
|
|
글나눔 → 오늘의 어록
|
|
|
성공하는 사람이란 남들이 자기에게 던지는 벽돌로 든든한 기초를 쌓아가는 사람.
― D.B.
|
|
글나눔 → 말글
|
|
|
말을 고치려면
작은 말씨름이 붙었다. 언어순화 정책을 비판한 칼럼 ‘고쳐지지 않는다’(4월6일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언어는 퇴행하지 않고 달라질 뿐, 걱정도 개입도 말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한글문화연대에서 ‘공공언어 개선 전문가 토론회―언어에 대한 개입은 정당한가’라는 주제로 맞짱토론을 제안했다. 영화처럼 ‘17 대 1’의 상황이었다.
외래 요소로 요동치는 언어를 보는 두 관점. 쉽고 바른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개입주의, 처방주의, 순화주의’ 측과 기왕 들어온 거 잘 어울려 지내자는 ‘자유주의, 설명주의, 기술(記述)주의’ 측. 혁명가와 구경꾼의 거리만큼 둘 사이에는 장강 하나가 흐른다. 지금의 언어순화는 언어민족주의가 아닌, 언어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공공기관의 언어만큼은 이해하기 쉬운 말을 쓰자는 취지다. 환영. 성과도 있다. 인정.
하지만 주체를 바꾸자. 말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회적 개인’의 몫이다. 국가는 개인의 말에 대해 ‘맞고 틀림’을 판정할 권한이 없다. 우리의 비극은 이 권한을 아직도 국가가 틀어쥐고 있다는 점. 그 결과 언론출판계를 비롯한 시민영역에서 새로운 개념이나 다양한 번역어를 유통·경합시키고 어느 하나로 모아가는 ‘말의 발산과 수렴’의 장마당(언어시장)이 사라져버렸다.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개인은 더 소통력 있고 평등한 언어를 구사하려고 애써야 한다. ‘쉬운’ 한국어는 단어가 아닌 글쓰기나 말하기 역량의 문제이다. 이런 ‘언어 감수성’을 기르려면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이 필요하다. 언어에 대한 문제가 실은 언어 밖의 문제인 셈이다. 이를테면 자율성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
|
시나눔 → 우나라詩
|
|
|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失望의 가벼움을 財産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歷史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財産으로 삼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意志의 殘滓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落書를 잃고 期待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1960. 10. 30>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촌철살인(寸鐵殺人)
- 간단한 경구(警句)로 어떤 일의 급소를 찔러 사람을 감동시킴의 비유.
《出典》'學林玉露'
'학림옥로(學林玉露)'라는 책은 남송(南宋) 때의 나대경(羅大徑)이, 찾아오는 손님들과 주고받은 청담(淸談)을 시동(侍童)에게 기록하게 한 것으로 '天地人'의 세 부분 18권으로 구성된 책이다.그 중 '지부(地部)' 제7권 <살인수단(殺人手段)>에는 종고선사가 다음과 같이 선(禪)을 논하여 말했다.
비유하면 한 수레의 병기를 싣고서 하나를 희롱하여 마치면 또 다른 하나를 꺼
내 가지고 와서 희롱함과 같지만, 이것이 곧 사람을 죽이는 수단은 아니다.
나는 곧 단지 촌철(寸鐵)이 있으므로, 문득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선(禪)의 요체(要諦)를 갈파한 말이므로, 살인이라고 하지만 물론 칼날로 상처를 입히는 것을 뜻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 속의 속된 생각을 없애는 것'을 뜻한다.
아직 크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그 속된 생각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성급하게 이것 저것 대답을 해 오겠지만, 정신의 집중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두 날것들뿐이다. 그와 같은 칼로는 몇 천 몇 만 개나 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모든 일에 온 몸과 온 정성을 다 기울일 때, 충격적으로 번득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큰 깨달음인 것이다.
|
|
글나눔 → 추천글
|
|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나는 좋아, 그런데 왜 청하지 않니?
데이비드 A. 맥클란 박사 <설교사의 입담>의 저자
열쇠 제조기 판매 사원이 한 철물점 주인에게 그 기계로 열쇠를 만드는 시범을 보여줬다.
"정말 놀라운 기계가 아닙니까?"
판매 사원이 물었다.
"그렇구려."
"이 기계는 훌륭한 투자인 동시에 많은 시간을 단축해 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겠지요."
"그런데, 왜 사지 않습니까?
"그런 댁은 왜 나에게 사라고 청하지 않소?"
요청하지 않으면 손해
2년 전 시카고 대학은 마샬 필그 백화점 재단의 필드부인에게 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신문에서 그 기사를 읽은 노스웨스턴 대학의 행정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필드부인은 일리노이의 에반스톤에 거주했고, 노스웨스턴 대학 역시 일리노이의 에반스톤에 위치했다. 그런 그녀가 왜 노스웨스턴 대학 대신 시카고 대학에 돈을 줬을까? 노스웨스턴 대학의 사무관이 필드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유를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기부를 청해 왔으니까요. 댁들은 요청하지 않았잖수?"
시도하지 않으면 영영 잃을 거예요
패티 오버리
우리 엄마는 19살 때 우리 아빠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두 분은 내내 같은 학교를 다닌 사이였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19살 때 우리 엄마에게 청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엄마는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했다. 그리고 일년 후 그는 담낭 섬유증으로 죽었다. 우리 엄마는 갓 스물에 과부가 된 것이다. 우리 아빠는 그녀가 이제 자유로운 몸이라는 사실을 알고 데이트를 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 친할머니는 헛된 자존심이 아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음을 알았다. 두 번째 기회가 왔는데도 여전히 요청을 못 하다니! 친할머니는 마침내 우리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함께 계획을 짰다.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와 외출을 나갔고, 우리 아빠는 친할머니를 모시고 나갔다. 그리고 너무 우연찮게도 그들은 서로 마주쳤다. 그 몇 달 후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단 한번의 요청이 가져온 미래
데이브 오
내 평생 가장 중요했던 요청은 나에게 첫 번째 판매 일자리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15살 되던 해 여름에 한 건축 회사의 창고에서 일했다. 트럭에서 무거운 짐을 부려서 창고 구석구석으로 운반하는 일이었다. 한참 후에야 나는 창고 외에 또 다른 건물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바로 사무실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건물에 대한 아주 중요한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첫째는 그곳에 냉난방 시설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거기 사람들은 땀을 흘리거나 지저분하지 않았다. 둘째는 여자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곳이 일하기에 훨씬 좋은 곳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그 건물에 들어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길에 총지배인과 판매부장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 내용인즉,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전화 판매 권유 사원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부족한 일손을 메울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나는 복도에 멈춰 서서 벤 크래머에게 말했다. 오늘날 나는 그를 '벤 삼촌'이라고 애정을 담아 부르고 있다.
"벤,"
그가 나를 돌아보자, 내가 청했다.
"나에게 그 일을 시켜주실래요?"
그는 '안돼'하고 딱 자르고, 다른 사내와 계속 이야기를 했다. 난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나를 다시 돌아보자, 내가 다시 청했다.
"시켜주세요. 네?"
그 요청은 나에게 첫번째 판매 일자리를 가져다 줬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에 손가락으로 퉁기며 말했다.
"얘야, 이리 따라 오너라."
그리고 그는 나를 방으로 데려갔고, 잠재 고객을 알아보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내가 그날 그 시간에 그 청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쯤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
|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
|
|
관자요록
조말의 설욕
드디어 회담할 날이 왔다. 이날 제환공은 용맹한 장수와 씩씩한 군사를 단 아래 늘어 세우고 청기 . 홍기 . 흑기 . 백기를 동서남북 사방에 세우고 각기 대를 나누어 장관과 통령을 두고 중손추로 하여금 통괄하게 했다. 그리고 7층 단의 층계마다 황기를 들려 장사를 세워 파수 보게 하고 단의 맨 위에는 대황기(大黃旗)를 한쪽으로 세웠다. 그 대황기에 방백(方伯)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이 수 놓아져 있었다. 또 곁에는 큰 북을 걸었는데, 왕자 성부가 지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 중간에다 향탁(香卓)을 베풀었다. 그 위에 저수반과 옥우와 희생을 담을 그릇과 삽혈(揷血)하는 기구가 놓여 있었다. 이것은 습붕이 맡았다. 계하(階下)에는 동곽아가 빈이 되어 서고, 관중은 상(相)이 되어 계상에 섰는데 그 기상이 매우 정연하고 엄숙하여 모습만으로도 일대 장관이었다. 제환공의 전령에 의해서 노장공이 당도하자 제나라 장수가 말했다.
"노후와 귀국 신하 한 사람만 단에 오르시고 그 나머지 사람은 단 아래에서 쉬십시오."
이에 조말이 갑옷을 입고, 손에는 대검을 들고 노장공 곁에 바짝 붙어 서서 단 위로 올라갔다. 노장공은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를 때마다 제환공의 위의에 압도되어 몸을 떨었다. 그러나 조말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실로 장수다운 기상으로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중간에서 제나라 동곽아(東郭牙)가 앞으로 나서며 조말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양국 군후가 기분좋게 친선 우호로 회견하는 마당에 서로 예로써 대함이거늘 어찌 무기를 가지고 올라오시오. 청컨대 그 대검을 내려놓으시오."
이 말을 듣자 조말은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동곽아를 노려 보는데 양쪽 두 눈꼬리가 찢어져 올라갔다. 조말의 무서운 표정에 동곽아는 기가 질려 뒤로 물러섰다. 노장공과 조말은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양국 군후가 서로 대하자 각기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북소리가 세 번 울리니 제환공과 노장공은 향탁(香卓)을 향하여 절했다. 습붕(濕朋)이 검은 소와 백마의 피를 옥우(玉盂)하고 맹세하기를 청했다. 바로 이 때 조말은 오른손에 칼을 들고 왼손으로 제환공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참으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관중이 급히 제환공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물었다.
"대부(大夫)는 어찌 그러시오?"
조말이 씩씩대며 대답했다.
"우리 노나라는 다른 나라의 침범을 받아 위기를 겪었소. 들으니 귀국은 약한 자를 돕고 쓰러지는 자를 붙들어 일으키기로 왕명을 받고 주장이 되어 제후들을 모아 회를 했다는데 왜 우리 노나라를 위해선 관대하지 않으시오?"
관중이 물었다.
"그렇다면 대부는 무엇을 원하오?"
"제나라는 스스로 강한 것만 믿고 약한 자를 속이오. 지난 날 제나라는 우리 노나라 문양(汶陽) 땅을 빼앗았으니 귀국은 우리 주공에게 그 땅을 돌려주시오. 그러면 즉시 삽혈(揷血)하는 맹세를 하겠소이다."
관중이 곧 제환공을 돌아보며 아뢰었다.
"주공께서는 노나라의 요구를 허락하소서."
제환공이 선뜻 웃으며 말했다.
"대부는 안심하라. 과인은 회합이 끝나는 즉시 문양 땅을 노나라에 돌려주겠노라."
그제서야 조말은 대검을 내려놓고 습붕을 대신해서 희생의 피를 담은 옥우를 두 군후에게 올렸다. 두 군후는 함께 그 피를 입술에 바르고 맹세했다. 조말이 다시 말했다.
"관중은 제나라 정사를 맡은 정승이시니 청컨대 나와 함께 삽혈합시다."
제환공이 선뜻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하필 우리 중부와 맹세할 것이 있으리오. 과인이 그대와 맹세하리다."
그리고는 하늘의 해를 가리키며 맹세했다.
"문양 땅을 노나라에 돌려주지 않거든 하늘이여 이 사람을 벌하소서!"
조말은 곧 희생의 피를 입술에 바르고 제환공에게 두 번 절한 후 거듭 칭사했다. 이에 양국 군후는 술을 나누어 마시고 서로 환담하고서 동맹을 마쳤다. 회견이 끝나자 왕자 성부와 많은 대부들이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들이 제환공에게 투덜댔다.
"즉시 노후와 조말을 잡아와 크게 꾸짖고 그 따위 버르장머리를 대번에 고쳐 놓으십시오. 우리는 그런 모욕을 당하고선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제환공이 정색하며 그들을 말렸다.
"과인은 이미 조말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승낙했다. 필부도 한번 약속하면 신의를 지키거늘 항차 천하를 다스리려는 과인이야 더 말할 것 있겠느냐? 그대들은 더 이상 다른 말하지 말라."
이튿날 제환공은 다시 공관에서 주연을 베풀고 노장공과 잔을 나누며 서로 기뻐한 뒤 각기 작별했다. 제환공은 노장공을 전송하고 나서 즉시 문양 땅을 노나라에 돌려주도록 조치했다. 이 때 조말이 제환공과 대결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에게서 중국 협객(俠客)의 시조로 추앙된 것을 시로 읊은 것이 있다.
森森戈甲擁如潮
伏劍登壇意氣豪
三敗羞顔一日洗
千秋俠客首稱曹
숲처럼 무장한 군사들이 둘러 섰는데
칼 짚고 단 위에 올라선 그 의기 크도다.
세 번 패한 수치를 단 한 번에 설욕했으니
조말은 천추에 협객의 시초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일이고 진정 두려운 것은 천하를 바라보는 제환공과 관중의 커다란 야심과 기상이라는 시(詩)도 있다.
巍巍覇氣呑東魯
尺劍如何能用武
要將信義服群雄
不吝汶陽一片土
드높은 패업의 기상이 동쪽 노나라를 삼켰으니
한 자루 칼로 어찌 항거하여 막을 수 있으리오.
신과 의로써 모든 영웅 호걸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찌 문양 땅 한 줌의 그 토지를 아끼리오.
제환공과 노장공의 가(柯) 땅 동맹은 곧 여러 나라에 전해졌다. 그들은 신의를 지킨 제환공을 칭송했다. 이에 당황한 위 . 조 두 나라는 사자를 보내어 제나라에 사죄하고 동맹을 청했다. 그러나 제환공은 그들 사자들에게 장차 송나라를 친 후에 다시 기일을 정해 동맹하는 회를 하자고 약속한 후 각기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러고 나서 관중을 불러 물었다.
"중부의 말대로 모두 이루어졌소. 이번에는 송나라로 쳐 들어가 송환공의 죄를 물어야 할 텐데 좋은 계책을 준비하시었소?"
관중이 아뢰었다.
"우선 사자를 주왕실에 보내어 아뢰십시오. 송나라가 회(會) 도중에 돌아갔으니 왕명을 우습게 여긴 처사라 이를 쳐서 죄를 물어야겠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왕군(王軍)을 보내 주시면 함께 송나라를 치겠다고 하십시오."
제환공은 곧 사자를 보내어 왕에게 자초지종을 고하게 했다. 그리고 몇 가지 사항을 일러 보냈다. 한편 주왕실에서는 제나라 사자의 아뢰는 말에 크게 고무되어 이번 기회에 주왕실을 우습게 아는 열국 군후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주희왕은 이를 받아들여 곧 선멸에게 왕군을 거느리고 가서 제나라와 함께 송나라를 치라고 분부했다. 제나라 사자는 왕군과 함께 돌아오면서 이 내용을 널리 선전하고 소문을 냈다. 그러자 위 . 조 두 나라도 각기 군사를 보내어 제나라를 돕는데 저마다 선봉에 나서기를 자원하는 것이었다. 이에 제환공은 관중으로 하여금 먼저 일군을 거느리고 나아가게 했다.
|
|
글나눔 → 읽어둘문학
|
|
|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설의식편" 설의식(1900~1954)
평론가, 언론인. 호는 소오. 함남 출생. 일본 니혼 대학 사학과 졸업. 동아 일보 편집 국장, 부사장, 새한 민보 사장 역임. '일장기 말소 사건' 당시의 동아 일보 편집 국장이었던 설의식은 민족주의자였으며 그의 날카로운 비평문 속에는 민족주의적인 사관과 지사풍의 자세가 담겨 있다. 그의 필치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며 청신하게 각성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 사물을 관조하되 근원으로부터 꿰뚫는 눈이 있었으며 거기에 유머와 위트까지 곁들여 그를 뛰어난 에세이스트로 빛나게 하였다. 수필집으로 "해방 이전", "화동 시대" 등이 있으며 '유관순 추념문'이 유명하다.
돼지의 대덕
금년은 세차 간지로 정해니 풀어서 '돼지해'다. 부르기가 거북한 이름이다. 더럽고, 못나고, 먹기만 하고, 놀기만 하는 일체의 악명을 온통 돼지에게 돌리어 '돼지 같은 놈, 돼지 같은 놈' 하고 거세가 일치하야 나무라는 관계상, 어학만으로는 불쾌한 이름으로 정론이 되어 있다. 그렇게 불쾌하거든 애초에 쓰지 말 일이다 쓴다고 할진대, 자 갑자, 을축으로부터 임술, 계해에 이르는 육갑의 노선은 수미일관이니 하는 수 없다. 요즈음 세태처럼 방편대로 뜯어 고치는 '뒤범벅'일 수는 없다. 성립이 급하다고 기정된 수의 법문을 즉석에서 고치는 '입법의원'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정인'의 호랑이로 고칠 수는 도저히 없는 노릇이다.
작년은 병술이니 '개'요, 재작년은 을유니 '닭'이다. 닭이라 하면 새벽을 연상하야 서광을 의미하고, 각성을 우의하야 태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을유의 재작년에 해방의 서광을 보았고 대업의 태동을 보았다. 새 날이 밝는다고 닭은 울었지만 아직도 새벽이었던지라. 강산을 얼빤--한 어둠 속에서 갈피를 못 찾았고 민중은 늦잠이 풀리지 못한 채 허둥지둥하였다.'닭'으로 표현하기에 거의 알맞는 정도의 동태였음은 묘한 일이었다.
'개'는 영역감에 민첩한 동물이요 영지욕에 탐람한 동물이다. 그러므로 자령을 편수하기에 사력을 다하여 덮어놓고 배타를 일삼아 짖기를 잘 한다. 침경은 고사하고 접경도 못 할 정도로 날뛰고 싸움을 잘 한다. 냄새도 잘 맡지만 꼬리도 잘 흔든다. 한 술 밥에도 꼬리를 흔들고 한 덩이 고기에도 아양을 부린다... 이렇게 쓰다가 보니 '개' 이야기가 아니라 작년 1년간 걸어온 우리 자신의 자화상 같아서 붓이 저절로 멈추어진다. 자괴와 자책을 느끼는 까닭이다.
을유가 그렇고, 병술이 그런지라, 정해의 금년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혹은 무엇을 계시하는가? 엉터리없는 '해'자에다 연을 달아서 돼지의 대덕을 일컬어 보자.
돼지라고 더러운 것을 자진하여 즐겨할 이치는 천만에 없겠다. 집이거나 자리거나 사람들이 더럽게 하여 주니까 그저 순수할 뿐이겠다. 매사에 까다롭지 않은 태음적 기질이 유달리 드셀 뿐이다. 미추와 편부에 대한 둔감이라 하기보다도 그를 초월한 태연자약이니 말하자면 포용 중에도 대포용이다. '하해는 불관오독지수'라 하야 하해가 가진 관용의 지덕을 일컫거니와 이 같은 논법으로는 돼지의 그 점이 실상 돼지의 미덕인 것이다. 그런고로, 나무라기보다도 차라리 이 잡을 나위도 없이 광막한 돼지의 대덕을 우리도 본떠서 금년 1년은 태음적으로 나갈 수 없을까? 숙시라 할 것 없이, 숙비라 할 것 없이, 대포용, 대둔감으로 거세정조를 한입에 집어 삼키고 상하좌우를 한 팔에 끼어 품는, 그러되 태연자약하는 그러한 지도자가 과연 없을 것인가? 해년을 위하여 우리는 이것을 대망한다.
먹기만 하고 놀기만 하는 돼지의 살림을 '악'으로 지목하야 모두들 나무라기만 한다. '제 똥 구린 줄 모른다'는 속담도 있지마는 책기엔 불충이요 책인엔 충인 식으로 책돈에는 어찌도 그리 충실한가? 먹기만 하고 놀기만 하여서 그야말로 돼지같이 살진 사람이 인세에는 과연 없는가? 돼지는 놀고 먹을지언정 그래도 최후는 '살신성인'의 대희생을 천성으로 각오한 짐승이다. 사람에게 이 각오가 있는가? 중생의 번영을 위하여 자신의 1명을 버리는 희생, 그를 감수하는 대덕을 가진 자 과연 몇이나 되는가? 글 아는 돼지가 있어서 만일 이 수록을 읽는다면 독파 지차에 빙그레 웃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방성하야 대곡할 것이다.
돼지를 못났다고 하는 것은 아마 그 체국을 가라킴이리라. 특히 없는 듯한 짧은 목과 명목만의 그 꼬리를 가리킴이리라. 미상불 '볼품'으로는 낙제다. 거듭 말하거니와 오직 '볼품이 없을 뿐'이다. 이 볼품 때문에 못났다고 하는 것은 볼품만으로 발라 맞추려는 덜 익은 사람들의 덜 익은 말이다. 볼품 있는 꼬리로서는 금류에 공작이 있고 수족에 여우가 있다. 필자는 공작의 꼬리를 미워한다. 그 오만불손한 꼬리! 유한 마담의 부화와 같은 그 잡색의 어지러운 꼬리, 시대가 시대인만큼 형식의 장식에 흐르는 값싼 무지개적 환몽의 상징 같은 그 꼬리를 필자는 즐기지 않는다. 더구나 간사하고 요망한 여우적 꼬리, 하늘거리고 날름거리고, 이리로 알랑, 저리로 달랑거리는 그 환술적 꼬리는 애초에 불취다.
돼지에게 있어서는 볼품 있는 꼬리가 본질적으로 필요치 않았다. 볼품보다는 '속품'으로 살아가는 돼지의 처세관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청빈에 자안하고 누옥에 자적하는 그 심법상으로도 아도에 필요한 흔드는 꼬리의 소유가 필요치 않았다. 배추동물로서의 지체와 명분을 확보하기 위하여 꼬리의 명목만 세우면 그만이다. 이로써 못났다 할진대, 차라리 명분 있는 속품의 못난이가 될지언정 신기루 같은 볼품의 잘난 이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 돼지의 소신이요 또 본회인 것이다. 사람으로서 돼지의 이같은 심경에 공명하는 자 그 얼마나 될 것인고! 돼지는 목이 짧다. 사뭇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짧다. 없기론 생선이 1위여 포유족엔 아마 돼지가 상석일 것이다. 그러나 목이 짧으니까 반드시 못난 것이요, 길어서 잘났다는 논법은 어디에 있는가? 목이 길기론 기린이 수석이다. 그런 실상 길어서 결이다. 그 길다란 목을 늘이어 좌로 우로, 혹은 전후로 상하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그 줏대 없는 겁쟁이 태도는 보기에 어떠한가?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면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그 보조는 풍신 좋은 체구와는 전연 딴판이다. 이로써 기린 자신에 욕은 될지언정 자랑될 이치, 천만에 없겠다. 돼지는 다행으로 짧아서 곧은 목이다. 고집은 셀지 모르나 좌고우시의 추태는 있을 수 없다. 목표를 향하여 일직선으로 직진할 뿐이다. 그러기에 '저돌지용'이라 하야 부탕도화의 용과 검산 도수를 초개같이 보는 유진무퇴의 용은 오직 돼지에게 있는 것이다. 정해의 금년은 돼지의 대덕을 본뜨자. 대포용, 대희생, 대용맹으로 신지를 향하여 일로로 직진하자!
|
|
글나눔 → 삶속의글
|
|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흰구름 단상
3
미국 제네시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유진 수사님이 어디서 구했는지 내가 좋아하는 시인 조이스 킬머(Joyce Kilmer)의 사망 이후 그를 추모하는 글이 실린 1918년 8월 19일자 <뉴욕 타임스>의 추모 기사 원본을 오려서 보내 주어 얼마나 기뻤는지! 거의 80년 된 기사이니 빛깔이 바래고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졌지만 원본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느낌... 여러 시인들이 추모 시구를 모아 놓은 내용도 마음에 들어 몇 개 복사해서 피천득 선생님과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벗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야겠다.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뿐` 이라고 노래한 J. 킬머의 `나무들`이란 시가 어느 때보다도 생각나는 날이다. 사소한 일로 마음이 부대끼고 갈등 속에 있다가도 창 밖의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뭐 그걸 가지고 그래?`하며 빙그레 웃는 것도 같고... 나무의 모습을 닮은 성자들의 모습도 떠오르고.
4
간밤엔 웬 꿈을 그리도 많이 꾸었을까? 평소 생활을 반영해 주기도 하는 꿈의 세계. 그냥 무시해 버리기엔 너무 많은 의미가 있음을 나도 자주 체험하는 편이다. 피정중에도 지도자들이 가끔 꿈을 주제로 묵상시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 꿈이 더 많지만 수도원에 오래 살면서 나의 꿈의 세계도 이젠 좀 정화되고 아름답게 성숙되고 있음을 문득 느끼며 스스로 고마워할 때가 있다.
5
"수녀, 잘 있었나? 실은 간밤 내 꿈에 수녀 얼굴이 보여서 말이야. 혹시 무슨 근심거리가 있는가 하고 전화 걸었지." 아침에 걸려 온 구상 선생님의 전화. 몇 년 전. 내가 매스컴에 시달리며 괴로워할 때도 옆에 함께 안타까워하시며 힘과 위로가 되어 주셨던 선생님은 내가 당신의 조카딸쯤 되는 것 같다고 웃으신다. "시인 노릇보다도 수녀 노릇을 더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시던 선생님은 오늘도 사면이 시집으로 둘러 싸이고 새소리도 들리는 서재에서 시를 쓰고 계시겠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