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33호 》 2022.8.18 (음 7.21)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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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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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자손들한테 빌린 것임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자연보호주의자다. ― 「오더븐」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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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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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살해
최신판 사전도 요동치는 말을 다 붙잡지 못한다. ‘살해’는 ‘사람’을 죽일 때 쓰는 말인데, 이제는 동물에게도 쓴다. ‘엽기적인 고양이 연쇄 살해’, ‘길 잃은 강아지 잔혹 살해’. 동물의 인간화다. 동물에 대한 태도 변화는 말에도 흔적을 남긴다. ‘개 주인, 고양이 주인’이란 말은 자리를 잃고 ‘엄마, 아빠’와 ‘아이’라는 직계존비속 관계로 바뀌었다. 나는 ‘개 아빠’이고 직업은 ‘집사’이다.
고양이 관련 말은 특히 다채롭다. 행동(‘하악질, 골골송, 꾹꾹이, 식빵, 냥모나이트’), 생김새(‘양말, 젤리, 짜장, 카레, 고등어, 젖소’), 배변(‘감자, 맛동산’), 성장과정(‘꼬물이, 아깽이, 캣초딩’) 등 그들과 밀착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단어들이 많다. 묘생(인생), 묘연(인연), 묘춘기(사춘기), 미묘(미모), 개묘차(개인차) 같은 말도 경쾌하다.
그사이 반려동물의 세계는 ‘펫코노미’라는 이름의 독립 시장으로 성장했다. 시장은 새로운 말의 자궁이다. 시장은 음식, 영양제, 장난감, 의류, 교육, 보험, 병원, 장례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식주, 생로병사의 모든 단계에 촘촘히 대응한다. 동물 유기와 함께 걸핏하면 살처분당하는 가축 등 차별과 배제의 영역이 엄존하는 것도 인간세계와 거울처럼 닮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자신들보다 애완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부르주아에게 반격을 가하려고 ‘고양이 대학살’ 사건을 일으킨 게 18세기였다. 이제 고양이는 장난감에서 인간의 친구로 바뀌었다. 고양이의 죽음을 ‘살해’라고 말하는 우리는 생명 존중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가?
최순실의 옥중수기
오백만 원. 후배는 성공한 사업가를 몇 번 인터뷰하고 나서 자서전 한 권을 ‘납품하는’ 대필 알바를 했다. 듬성듬성 빈 곳은 공허하고 상투적인 말들로 채웠다. 자기 일을 쓸 때도 미화와 과장을 일삼는데, 하물며 거액의 알바를 시켜 만든 자서전이니 어련했겠는가.
소설가 이청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를 보면, 거짓 자서전은 잊고 싶은 과거 위에 새로운 이력서를 만들어 도배를 해버림으로써 주인공을 영원한 자기기만 상태에 빠뜨린다고 한다. 이러면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마저도 기만하게 된다. 과거 시제로 썼지만 미래에 대한 자기 암시도 하게 되어 평생 허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회의가 없는 자서전은 더 무섭다. 굳건한 신념 하나가 온 생을 관통하여 어떠한 자기모순도 없는 사람의 자서전이야말로 ‘말로 세운 동상’일 뿐이다.
전두환은 회고록을, 최순실은 옥중수기를 썼다지만 모두 실패한 자서전이다. 자서전은 주장이 아니라 고백이다. 스스로를 해명하려는 노력이다. 변명 비슷한 뜻으로 읽혀서 그렇지, ‘해명’은 자기 삶의 수치스러움과 비논리성을 풀어서 밝히는 일이다.
삶을 미화할 위험이 있는데도 자서전을 쓰는 이유는 자기 삶의 진실을 증언해 줄 게 딱히 없어서이다. 글은 어두운 과거를 분칠할 수도 있지만, 과거에 진실의 빛을 던질 수도 있다. 글은 좌절과 번민, 부끄러움과 헛헛함으로 처진 등짝을 곧추세워 줄 지지대이다. 공허한 말로 나를 포장할지, 진솔한 말로 나를 고백할지는 당신 몫. 말의 기만성과 말의 진실성을 넘나들 수 있는 기회. 부끄러움을 마주할 용기. 우리 자서전을 쓰십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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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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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 김수영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눈을 깜짝거린다
世界는 그러한 無數한 間斷
오오 사랑이 追放을 당하는 時間이 바로 이때이다
내가 나의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山이 있거든 불러보라
나의 머리는 管樂器처럼
宇宙의 안개를 빨아올리다 만다
<1960.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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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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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지지(靑雲之志)
① 속세에 초연한 태도.
②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욕망. 《出典》張九齡 朝鏡見白髮 / '史記' 伯夷列傳
장구령은 현종(玄宗) 때의 어진 재상으로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모략으로 인해 벼슬길에서 파직되어 초야에서 여생(餘生)을 보냈다. 다음은 그가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의 감회를 읊은 시이다.
옛날 청운의 뜻을 품고 벼슬길에 나아갔는데
다 늙은 지금에 와서 차질을 빚게 되었다.
누가 알리요 밝은 거울 속의 그림자와
그것을 보고 있는 내가 서로 측은히 여기고 있는 것을.
宿昔靑雲志 蹉跌白髮年
誰知明鏡裏 形影自相潾
오늘날, 보통이 아닌 큰 뜻, 입신출세에 대한 야망을 '청운의 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원래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청운'이라는 말은 옛날《史記》'伯夷列傳'에도 나오며, 다음과 같이 쓰여지고 있다.
항간의 사람들은 행실을 닦아 이름 세우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靑雲의 선비라고 붙이는 것이 아니니, 어찌 능히 후세에 베풀 수 있으랴!
閭巷之人 欲砥行立名者 非附靑雲之士 惡能施于後世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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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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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괴테
당신이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시도하고, 당신이 꿈꿀 수 있는 무엇이든 시작하라. 대담함 속에는 천재성과 힘과 마법이 존재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인성 및 사회 심리학 저널'에 실린 토마스 모리어리티의 보고서
젊은 여성이 뉴욕의 한 카페에 들어가 다른 사람의 탁자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 음식을 가지러 갔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 청년이 다가와서 그녀의 가방을 슬쩍 들고 나갔다. 이 실험이 여덟 차례를 걸쳐 반복한 결과, 단 한 명의 주변 사람만 그 청년의 도둑질을 막으려고 했다. 다시 똑같은 여성이 카페에 들어가 다른 사람의 탁자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번에 그녀는 탁자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봐 달라고 부탁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자 부탁을 받은 사람은 청년의 도둑질은 매번 저지했다. 다른 날, 동일한 여성이 해변 모래사장에 자리를 펴고 그 위에 라디오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와 그녀의 물건을 봐 달라고 부탁했을 때의 결과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전날과 동일하게 나왔다. 카페와 해변가 두 곳 모두에서 그녀가 짐을 봐 달라고 부탁했던 사람들은 도둑질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거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카페에서는 여덟 명중에서 한 사람이, 해변가에서는 다섯 명 중에서 한 사람만 도둑질을 막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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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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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시백의 화평책
북행 땅 회가 끝나는 즉시로 제환공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수성(遂城)으로 향해 가서 단번에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 군사를 돌려 제수(濟水)가에 주둔시키고 노나라의 태도를 살피며 기다렸다. 한편 노나라에서는 정세가 이쯤되자 겁이 났다. 노장공은 모든 신하를 모아 계책을 물었다. 공자 경부가 아뢰었다.
"제나라 군사는 두 번이나 우리 나라에 왔지만 조금도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멀리 쫓아 버리겠습니다."
그 때였다. 한 사람이 일어나서 외쳤다.
"그건 안 될 말이오."
노장공이 보니 바로 시백이었다. 이에 노장공이 시백에게 물었다.
"그대에게 좋은 계책이 있다면 어서 말하시오."
시백이 거침없이 아뢰었다.
"신은 예전부터 말해 왔습니다. 제나라 정승 관중은 백 년에 하나 태어날까말까한 천하 기재(天下奇才)입니다. 그가 계산없이 우리를 위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복안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나라 군사와 싸워 이롭지 못하다는 첫째 이유입니다. 또한 제나라는 북행 땅에서 맹회를 열어 왕명을 높이 받들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노나라가 왕명을 어겨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을 꾸짖고 있습니다. 명분은 제나라에 있고 허물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렇듯 명백합니다. 그러니 제군이 곧 왕군입니다. 따라서 그들 군사와 싸워 이롭지 못하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가 됩니다. 또 우리는 제나라에 많은 공로를 남겼습니다. 공자 규를 죽인 것도 그렇고, 왕희를 제나라로 출가시킨 일도 주공의 공입니다. 그런데 지난날의 수고한 바 공(功)을 버리고 어찌하여 두 나라가 원수를 맺고자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 노나라에 이롭지 못하다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러하오니 우리가 장차 세워야 할 계책은 제나라와 강화를 맺고 동맹을 청하는 길입니다. 그리하면 싸우지 않고 제나라 군대를 물러가게 할 수 있습니다."
대부 신수가 찬성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신도 시백의 의견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이렇게 서로 의논하는데 시신(侍臣)이 들어와 아뢰었다.
"제후의 서신이 왔습니다."
노장공이 뜯어 보니 다음과 같았다.
- 과인과 군후가 함께 주왕실(周王室)을 섬겼으니 정으로 말하자면 형제나 다름없으며 게다가 우리 선군 시절부터 서로 통혼한, 이를테면 척당(戚黨)지간입니다. 이번 북행 땅 회에 군후가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과인은 감히 그 까닭을 묻소이다. 만일 군후가 두 가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이는 양국 사이는 물론이고 주왕실을 위해서도 불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때 노장공의 모친 문강은 이미 동생인 제환공의 서찰을 받아 본 뒤였다. 노장공을 불러 분부했다.
"제나라와 우리 노나라는 선대부터 서로 혼인한 사이다. 우리가 그들의 뜻을 어겼건만 오히려 저편에서 우호를 청해 왔다. 이러고야 어찌 도리를 다했다 하겠으며 장차 정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노장공은 노부인의 말에 말대꾸도 못하고 쩔쩔맸다. 서둘러 시백으로 하여금 제환공에게 보내는 답장을 쓰게 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 과인이 근자에 병이 있어 이번 북행 땅 회에 참석을 못했습 니다. 이제 군후께서 꾸짖으시니 과인이 어찌 허물을 모르리오. 군후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 경계까지 일단 물러가시면 과인은 감히 옥백(玉帛)을 바치지는 못하나 불행한 일을 막고 잘못을 비는 뜻에서라도 마땅히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답장을 읽은 제환공은 크게 기뻐했다.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 가(柯) 땅까지 물러갔다. 이에 노장공이 모든 신하에게 물었다.
"이제 두 나라가 화해를 하려면 과인이 직접 제후와 회합하러 가야 한다. 누가 과인을 수행하여 이 일을 제대로 수행 하겠는가?"
조말(曹沫)이 앞으로 나서며 청했다.
"신이 가겠습니다."
"그대는 제나라 군사에게 세 번이나 패한 사람이다. 제나라 사람들이 비웃으면 어쩔 텐가?"
조말이 대답했다.
"세 번 패한 것이 부끄러워서 가는 것입니다. 이번에 가서 설욕할 생각입니다."
"가서 어떻게 설욕하려느냐?"
"주공께서는 제후를 맡으십시오. 신은 제나라 신하를 담당하겠습니다."
노장공은 약간 걱정이 되었다.
"이번에 경계(境界) 밖으로 나가는 것은 싸움이 아니라 제나라에 동맹을 청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주장한 것이 아니니 벌써 패한 것이나 다름없도다. 그런데 그대는 무슨 방법으로 과거를 설욕할 수 있겠느냐."
조말은 거듭 다짐했다.
"목숨을 걸고 성사시킬 각오입니다."
노장공은 마지못해 응했다.
"내 그대를 데리고 가리라."
마침내 노장공은 조말과 함께 떠났다. 노장공과 조말이 제나라 가(柯) 땅에 이르러 보니 제환공은 이미 흙으로 단을 쌓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장공은 사람을 보내어 먼저 사죄하고 동맹을 청했다. 제환공이 회담할 날짜를 정해 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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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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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설의식편" 설의식(1900~1954)
평론가, 언론인. 호는 소오. 함남 출생. 일본 니혼 대학 사학과 졸업. 동아 일보 편집 국장, 부사장, 새한 민보 사장 역임. '일장기 말소 사건' 당시의 동아 일보 편집 국장이었던 설의식은 민족주의자였으며 그의 날카로운 비평문 속에는 민족주의적인 사관과 지사풍의 자세가 담겨 있다. 그의 필치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며 청신하게 각성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 사물을 관조하되 근원으로부터 꿰뚫는 눈이 있었으며 거기에 유머와 위트까지 곁들여 그를 뛰어난 에세이스트로 빛나게 하였다. 수필집으로 "해방 이전", "화동 시대" 등이 있으며 '유관순 추념문'이 유명하다.
헐려 짓는 광화문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은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총독부 청사 까닭으로 헐리고 정책 덕택으로 다시 짓게 된다. 원래 광화문은 물건이다.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며,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꾸물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거물이다.
의식 없는 물건이요, 말없는 건물이라 헐고 부수고 끌고 옮기고 하되, 반항도 회피도 기뻐도 설워도 아니 한다. 다만,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 잊어할 뿐이다. 오랜 동안 풍우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그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할 뿐이다. 석공의 망치가 네 가슴을 두드릴 때 너는 앎이 없으리라마는 뚜닥닥 소리를 듣는 사람이 가슴아파하며 역군의 연장이 네 허리를 들출 때에 너는 괴로움이 없으리라마는 우지끈 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허리 질려 할 것을 네가 과연 아느냐 모르느냐?
팔도 강산의 석재와 목재 인재의 정수를 뽑아 지은 광화문아! 돌덩이 한 개 옮기기에 억만 방울의 피가 흐르고 기왓장 한 개 덮기에 억만 줄기의 눈물이 흘렀던 광화문아! 청태 끼인 돌 틈에 이 흔적이 남아 있고 풍우 맞은 기둥에 그 자취가 어렸다 하면, 너는 옛 모양 그대로 있어야 네 생명이 있으며 너는 그 신세 그대로 무너져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풍우 몇백 년 동안에 충신도 드나들고 역적도 드나들며, 수구당도 드나들고 개화당도 드나들던 광화문아! 평화의 사자도 지나고 살벌의 총검도 지나며, 일로의 사절도 지나고 청국의 국빈도 지나던 광화문아! 그들을 맞고 그들을 보냄이 너의 타고난 천직이며 그 길을 인도하고 그 길을 가리킴이 너의 타고난 천명이었다 하면 너는 그 자리 그 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있으며 그 방향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너의 천명과 너의 천직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거니와 너의 생명과 너의 일생은 헐리는 그 순간에, 옮기는 그 찰나에 마지막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너의 마지막 운명을 우리는 알되 너는 모르니, 모르는 너는 모르고 지내려니와 아는 우리는 어떻게 지내랴?
총독부에서 헐기는 헐되 총독부에서 다시 지어 놓는다 한다. 그러나 다시 짓는 그 사람은 상투 짠 옛날 그 사람이 아니며 다시 짓는 그 솜씨는 웅건한 옛날의 그 솜씨가 아니다. 하물며 이때 이 사람의 감정과 기분과 이상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다시 옮기는 그 곳은 북악을 등진 옛날의 그 곳이 아니며 다시 옮기는 그 방향은 경복궁을 정면으로 한 옛날의 그 방향이 아니다. 서로 보지도 못한 지가 벌써 수년이나 된 경복궁 옛 대궐에는 장림에 남은 궂은비가 오락가락한다. 광화문 지붕에서 뚝딱 하는 망치 소리는 장안을 거쳐 북악에 부딪친다. 남산에도 부딪친다. 그리고 애달파하는 백의인의 가슴에 부딪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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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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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의 말은
6
편지나 대화에서 `사랑하는 XX에게`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듣기엔 아름답고 포근한 느낌을 주지만 실상 이 말엔 얼마나 큰 책임의 무게가 따르는가? 어머니의 내리사랑, 언니의 내리사랑이 지극함을 체험할 때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내리사랑을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수도원 안에서 내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 날로 많아지지만 난 내리사랑은커녕 동료들과의 마주사랑도 잘 못하고 있으니 언제 한 번 제대로 사랑의 명수가 되는 기쁨을 누려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되네.
7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해져야 한다. 바로 그러한 데서 공동체가 시작될 것이다` 라는 쟝 바니에의 말을 새겨들으며 이것이 곧 사랑의 아름다운 속성이라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어 이웃의 필요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더 민감하도록 길들여졌기에 이웃을 위한 사랑의 민감성을 잘 키워 가도록 더욱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8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마음을 넓혀 가는 사랑 안에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과 언짢은 일로 서먹한 사이가 되어도 누구도 선뜻 다가가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 때 먼저 용기를 내어 지난 일을 잊고 마주 웃을 수 있다면 그가 곧 승리자이고, 둘 사이에 막혔던 벽을 용서와 화해로 허물어뜨리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라. 이것이야말로 `여러분 안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시오`하는 복음을 실천하는 길이다. 누구에게도 꽁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관용의 소금을 늘 지니고 살아야겠다.
흰구름 단상
1
비온 뒤의 하늘. 하늘 위의 흰구름. 구름이 아름다운 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잠시 시선을 둔 사이 어느새 모양이 바뀌는 구름. 어린 시절 그리 했던 것처럼 잔디밭에 누워 흰구름을 실컷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구름에 대한 노래, 구름에 대한 시, 구름에 대한 그림을 모으며 나는 구름이 좋아 수녀 이름도 구름(Cloud)으로 하지 않았던가. 시인 헤세(Hesse)와 셸리(Shelley)의 `구름`. 성서에 자주 나오는 구름의 상징성을 논문으로 쓰고 싶던 나의 갈망도 이젠 구름 속에 숨고 말았다. 푸른 하늘 위에 점점이 떠있는 흰구름처럼 내 안에 떠다니는 구름 같은 생각들을 종종 종이 위에 적어 둔다. 그래서 `흰구름 단상`이라 부쳐 놓고 내 생각들을 그려 넣으면 이것이 후에는 시와 수필의 소재가 되고 편지도 된다.
2
나이 들수록 새로운 사귐, 새로운 만남이 혹시 사랑으로 오더라도 왠지 두렵다. 누가 이것을 케케묵은 생각이라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항아리 속의 오래된 장맛처럼, 낡은 일기장에 얹힌 세월의 향기처럼, 편안하고 담담하고 낯설지 않는 것이 나를 기쁘게 된다. 새 구두를 며칠 신다가도 이내 낡은 구두를 다시 찾아 신게 되고, 어쩌다 식탁에서 자리가 모자라서 두리번거리다가 새 얼굴인 수녀들이 오라고 해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벗들을 얼른 찾아가게 된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면서 살 수 있는 개방성과 선선함이 좋은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역시 옛 것이 좋고 오래된 것, 낯익은 것에 집착하는 나이기에 가끔은 답답하리만큼 보수적이고 고루하다는 평을 듣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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