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31호 》 2022.8.16 (음 7.19)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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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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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몰래 하는 선행은 땅 속을 흐르며 대지를 푸르게 가꾸어 주는
지하수 줄기와 같은 것. ― 토머스 칼라일요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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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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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법칙
궁금했다. 희생자들은 왜 항상 보복이 아닌 ‘사과’를 요구할까? 힘없는 ‘사과’가 뭐가 대수라고. 사과를 해도 비판이 잇따르기 일쑤다. ‘오빤 그게 문제야. 뭘 잘못한지도 모르고 미안하다고 하면 그게 사과야?’라는 노랫말처럼 ‘제대로 사과하기’란 더 어렵다.
사과를 하면 사람들은 그 말의 ‘진정성’을 따지지만 그걸 확인할 방법은 마땅찮다. 속을 들여다볼 수도 없거니와 말하는 사람 스스로도 천 갈래의 마음일 테니 뭐가 진짜인지 모른다. 게다가 이 무도하고 염치없는 세상에서 계산 없는 사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일이다.
차라리 사과의 적절성을 따지자. 그걸 알려면 사과의 성립 조건을 따지는 게 좋다. 약속과 다짐은 미래와 관련되지만 사과는 ‘과거’와 관련된다. 사과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스스로 문제 삼을 때 성립한다. 과거를 집중 사과한 모범 사례 하나. 오스트레일리아 전직 총리 케빈 러드는 원주민 아동 강제분리 정책에 대해 공식 사과하면서 ‘반성한다’를 5회, ‘미안하다’를 9회, ‘사과한다’를 18회나 했다. 그가 세 번 연속 ‘아이 앰 소리’(미안합니다)를 외치자 그 나라 전체가 울었다. 사과가 성립하려면 자신의 행위가 듣는 이에게 좋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듣는 이에게 미안함이나 책임감을 표현해야 한다. 피해자의 체면을 세워주고, 자신의 체면을 깎아내려야 한다.
아이 때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빌면 화를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은 두 말 사이에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기입해야 사과가 된다. 그럴 때라야 힘없는 사과가 새로운 관계맺기의 출발점이 된다.
‘5·18’이라는 말
겉보기에 언어는 불합리하다. ‘버스 파업’이란 말만 봐도, 사람이 아닌 ‘버스’가 어떻게 파업을 하겠나. 밥 말고 ‘도시락’을 먹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따라 했다가는 응급실행이다.
말은 유연하여 딱 들어맞지 않는 것을 새롭게 배치하는 데 능숙하다. 일종의 ‘빌려 쓰기’이다. 망치가 없으면 벽돌이 망치가 된다. 절실하면 주먹으로도 못이 박힌다! 가까이 있는 거로 원래의 것을 대신하는 것을 환유라고 하는데, 부분이 전체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국수 먹고도 밥 먹었다고 하는데 이때 ‘밥’은 모든 요리를 대표한다.
시간이 특정 사건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기도 한다. 사건이 집단적 기억이 되면 그렇게 된다. 5·18을 비롯해 4·3, 4·19, 6·10, 6·25, 8·15가 그렇다. ‘광주’처럼 장소명을 쓸 수도 있는데, 장소는 그곳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어서 헐겁다. 시간은 모두에게 주어지므로 피할 재간이 없다.
그런 사건은 하루에 끝나지도 않는다. 5·18도 5월27일까지 열흘 동안의 ‘사태’였다. 6·10도 보름을 넘겼고, 4·19는 달포 이상 계속됐으며, 4·3은 장장 7년7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작일을 사건 전체의 대표자로 삼는다. 첫날은 사건의 촉발점, 민심의 변곡점, 각성, 솟구침, 뒤엉키고 뒤집히는 충격의 시간.
이렇게 글이 주변을 뱅뱅 도는 건 여전히 5·18 앞에 말문이 막히고 죄의식에 휩싸이고, ‘취미처럼’ 분노가 솟구치기 때문일 게다. 눈앞의 부조리함 하나 막아서지 못하니, ‘5·18’을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그렇게 40년.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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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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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에 대하여 - 김수영
그러나 나는 오늘아침의 때묻은 革命을 위해서
어차피 한마디 할 말이 있다
이것을 나는 나의 日記帖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中庸은 여기에는 없다
(나는 여기에서 다시한번 熟考한다
鷄舍건너 新築家屋에서 마치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쏘비에트에는 있다
(鷄舍 안에서 우는 알 겯는
닭소리를 듣다가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담배를 피워물지 않으면 아니된다)
여기에 있는 것은 中庸이 아니라
踏步다 죽은 平和다 懶惰다 無爲다
(但 「中庸이 아니라」의 다음에 「反動이다」라는
말은 지워져있다
끝으로 「모두 適當히 假面을 쓰고 있다」라는
한 줄도 빼어놓기로 한다)
담배를 피워물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하였지만
나는 사실은 담배를 피울 겨를이 없이
여기까지 내리썼고
日記의 原文은 日本語로 쓰여져있다
글씨가 가다가다 몹시 떨린 漢字가 있는데
그것은 물론 現政府가 그만큼 惡毒하고 反動的이고
假面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196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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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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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무봉(天衣無縫)
- 하늘의 직녀가 짜 입은 옷은 솔기가 없다는 뜻으로,
① 詩文 등이 매우 자연스러워 조금도 꾸민 데가 없음을 이름.
② 완전 무결함.
《出典》'太平廣記' 鬼怪神寄
곽한(郭翰)이 뜰에 누웠는데 절세미인이 나타나서, "저는 천상(天上)의 직녀(織女)이온데, 남편과 오래 떨어져 있어 울화병이 생겨서, 상제(上帝)의 허락을 받고 요양차 내려왔습니다."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기를 요구하더니 매일 밤 찾아왔다. 칠월 칠석이 되자 며칠 안오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래서, "남편[牽牛]과의 재미는 좋았소?" 하자, "천상의 사랑은 지상의 사랑과 다릅니다.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니 질투는 마십시오." 했다. 곽한이 조용히 그녀의 옷을 살펴보니, 바느질한 곳이 전혀 없었다. 이상해서 물으니, "하늘의 옷은 원래 바늘이나 실로 꿰매는 것이 아닙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가 벗은 옷은 그녀가 돌아갈 때면 저절로 가서 그녀의 몸에 입히는 것이었다.
徐視其衣竝無縫 翰問之 謂翰曰 天衣本非針線爲也 每去 輒以衣服自隨.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날, 직녀(織女)의 시녀가 소식을 한 번 전한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곽한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미인을 보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집안의 혈통을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 싫어도 아내를 맞이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고 부부의 사이도 좋지 않아 아들도 얻지 못한 채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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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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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5장
공자의 비유:에식에 쓰이는 신성스러운 그릇
제사 그릇을 생각해 보자. <논어> 원문에서 공자는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의식과 관련하여 곡식을 담는 데 쓰이는 옥으로 만든 특정 유형의 제사 그릇의 이름(호련)을 언급했다. 그와 같은 그릇은 거룩하며 신성스럽다. 그 그릇의 외형-청동 재료나 조각이나 옥 색깔-은 우아하다. 그것의 내용물인 풍성한 곡식은 풍요를 표현한다. 그러나 그 그릇의 신성함은 청동이라는 귀중한 재료에도, 장식의 아름다움에도, 옥의 희귀성에도, 곡식의 먹음직스러움에도 있지 않다. 어디에서 그 그릇의 신성함은 오는 것일까? 그것은 그 그릇이 예식을 올리는 데에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신성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예라는 거룩한 의식에 참여하는 덕분에 신성한 것이다. 그 그릇을 우리가 예식에서 갖는 역할과 분리하여 생각해 본다면, 그 그릇은 그 안에 곡식만 가득 채워 있는 값만 비싼 항아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점이 바로 (제사 그릇이) 그릇으로서 가지는 자기 모순이다. 왜냐하면 이 그릇은 일반적인 그릇들과는 달이 예식 자체와 무관하게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쓰여질 수 없으며, 오로지 예식과 연관되는 기능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예식용 항아리는 실용적 가치보다는 차라리 예식적인 가치를 강조하기 위하여 항아리에 실상 여러 개의 구멍들이 뚫려 있는 것도 있다) 유비 추리를 해본다면, 개개의 인간 존재 역시 예식이나 의례 즉 예 속에서 그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에 의해 궁극적인 존엄성 즉 신성한 존엄성을 갖게 된다는 의미 함축을 공자가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종교적 의식에만 관련된 예라는 단어의 의미를 공자가 사회 자체를 예의 모델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그려 보는 방식에까지 확장시켰음을 우리는 이제 상기해야만 한다. 예에 관한 가르침이 이런 식으로 일반화된다면, 자공과 에식용 그릇 사이의 유비를 철저하게 따져 나가 그것을 일반화하는 일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앞서의 이런 비유적 표현이 인간이나 인간관계에 관한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 리해를 얼마나 심화시켜 주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사회적 예의 범절 일반이나, 부자 관계, 형제 관계, 군신 관계, 친구 관계와 부부 관계 등 말하자면 개개 인간들과 그들의 관계들은 궁그그적으로 예 안에서 그것들 각각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사회라는 것이 사람들의 관습이나 도덕적 의무감들에 의해서 규제되고 유지되는 한 공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는 (각종의 에식들이 집행되는) 하나의 거대한 예식 수행의 현장이며 또한 사회는 정교하고 치밀한 종교적 의례들이 지니는 온갖 신성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예식, 말하자면 영감적인 의례의 집행을 우아하게 해주는 장엄성과 동시에 경쾌한 마음이 함께 어울어져 진행되는 예식으로 되어간다. 인간의 궁극적 존엄성을 마련해 주고 그것을 떠받치는 충분한 조건은 단지 개별적 인간 그 자체도 아니며, 또한 라나의 집단 그 자체도 아니다. 그 조건은 바로 에식 집행에서 한 몫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나 행위들이나 대상물들을 신성스러운 것으로 보게끔 해주는 인간 삶의 예식적인 측면인 것이다.
공자는 개인을 (자기 완결적으로 고립된) 궁극적인 원자로 보지 않았고 또한 (자기 밖의 권위에 의해서 다만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나 기계 조작의 유비를 통하여 인간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 사회를 (기독교적 관념에서처럼) 영생을 누릴 영혼을 가려낼 시험장이나 또는 개별적 인간들의 쾌락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사회 계약적 또는 공리주의적 산물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논어>에서 사회와 개인을 (대립적인 두 개의 독립적인 범주로) 논의하지 않았다. 그가 논의한 것은 사람됨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였다. 공자는 사람이란 예에서 연원하며 그 바탕에 뿌리를 둔 (오직 인간에게만) 독특한 존엄성과 (스스로를 자율적, 능동적으로 규율하는) 힘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고 보고 있다. 단지 태어나서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촉감적 만족을 즐기고 물리적 고통이나 불쾌감을 피한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동물들도 이런 짓은 다 한다. 문명됨이란 단순히 물리적, 생물적 또는 본능적이 아닌 (즉 자연 상태 이상의 고상한) 관계를 확보함을 말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제반 관계, 즉 본질적으로 상징적인, 전통과 인습에 의해 규정을 받으면서도 경외심과 의무감에 뿌리를 박고 있는 그런 제반 관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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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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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5. 천하 절색 식부인
초문왕, 아내를 얻다
다음날 초문왕은 답례했다는 명목으로 친히 관사에서 잔치를 베풀고 식후를 청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무장한 군사를 매복시켰다. 식후가 술이 얼큰히 취했을 때였다. 초문왕이 취한 체하면서 식후에게 주정했다.
"짐은 군후의 부인께 큰 공이 있으니 다시 한 번 군후의 부인이 짐을 위해 한 잔 술을 권하도록 하시오."
식후가 미안한 듯이 사양했다.
"원래 식국은 조그만 나라이므로 모든 상국(上國)의 분부를 일일이 받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대왕께서는 이점 널리 양해하십시오."
초문왕이 주먹으로 술상을 치며 꾸짖었다.
"그대는 동서의 의리를 배반하고 감히 그런 말로 짐에게까지 거역하는가. 게 아무도 없느냐! 짐을 위해 이 필부를 끌어내어라."
식후가 변명할 여유도 없이 매복하고 있던 군사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초나라 장수 원장과 투단(鬪丹)이 대뜸 식후를 결박했다. 이렇게 한 후에 초문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으로 들어가서 식부인 규씨를 찾았다. 규씨는 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듣고서 탄식했다.
"범을 방으로 끌어들였으니 누구를 원망하리오. 모두가 나의 불찰이구나."
규씨가 우물에 몸을 던지려는데 마침 달려온 초나라 장수 투단이 규씨의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부부가 다 함께 죽으려 하십니까?"
식부인 규씨는 이 말을 듣자 죽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투단은 규씨를 데리고 초문왕에게 갔다. 초문왕은 좋은 말로 규씨를 위로하고 식후를 결코 죽이지 않겠다는 것과 식나라 종묘(宗廟)의 신위(神位)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것을 왕명으로 다짐했다. 식부인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는 수 없이 초문왕을 따라 초나라로 가야했다. 미인 박명이라 했던가. 초문왕은 기분좋게 군중(軍中)에서 식부인 규씨를 자기 부인으로 삼고 수레에 싣고서 초나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규씨의 볼이 도화 같다 해서 그 후로 그녀를 도화 부인이라고 했다. 초문왕은 식후를 여수(汝水) 땅에다 안치(安置)시키고 겨우 십가지읍(十家之邑)을 봉해 주고 식나라 종묘와 신위를 지키게 했다. 그러니 식후가 어찌 견딜 것인가? 마침내 한 달도 채 안 되어 식후는 울화를 참지 못해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규씨 부인의 미모 탓이라고도 하고, 식후가 제 죽을 꾀만 내었다고 한탄하기도 했지만 결국 초나라 왕이 식나라 땅과 절세 미인을 독차지하게 되어 버린 사건이었다. 관중은 이런 사실을 상인들에게서 듣고 알았다. 관중이 식부인을 위해 한 편의 시를 지었다. 그걸 보고 상인들은 관정승을 호색가라 부르기도 했다. 아무튼 관중은 상인들에게서 그 이외에도 많은 해외 정보를 듣고 있었다. (한편 오늘날도 한양부 성외에 가면 도화동이라는 곳이 있고 그 곳에 도화 부인의 묘가 있다. 바로 식부인 규씨를 모신 사당인 것이다. 그 사당을 세운 이들은 문사들이었다고 전한다. 절세의 미모를 타고 난 그녀이기에 더욱 정절을 지키기를 바랐던 것일까. 아니면 후세에 많은 남자들조차 그녀의 미모를 그리워한 것일까.)
제7장 춘추 제일의 패자
1. 맹주, 제환공의 첫걸음
북행 땅 첫 회합
주희왕(周僖王) 원년 봄 정월, 제환공은 조회(朝會)에서 모든 신하들로부터 신년 하례를 받고 나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가 관중에게 물었다.
"중부(仲父)의 가르침을 받아 산동(山東)의 우리 제나라가 바야흐로 국정을 쇄신하고 군사와 군량도 충족해서 백성들이 다 예의를 알게 되었는바 이제 드높아진 기세를 몰아 천하를 위해 나서고자 하오.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과인을 깨우쳐 주시오."
관중이 대답했다.
"아직도 천하의 모든 제후 중에 우리 제(齊)보다 강한 나라가 많습니다. 남방에 초(楚)나라가 날로 강성해지고 있고, 서방(西方)에는 진(秦)나라와 진(晋)나라가 있어 각기 영웅으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자(天子)이신 주왕(周王)을 받들고 모시지 않기 때문에 아직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왕실이 비록 제후를 호령할 힘은 없으나 아직은 천하의 주인임을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동쪽 낙읍(洛邑)으로 천도한 이래 모든 제후는 주왕실에 가서 조례하지 않고, 방물(方物)을 바치지 않고, 더구나 정백(鄭伯)은 활로 주환왕의 어깨를 쏘았으며, 위나라를 친 다섯 나라 제후들은 왕의 명령을 듣지 않음은 물론 왕군(王軍)을 격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신하의 도리조차 알아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는 초나라 웅통이 자신을 천자라 하고 스스로 왕이라 참칭하기까지 이르렀고 송, 정 나라는 임금을 죽이는 일을 밥먹듯 하건만 누구도 이를 토벌하여 그 죄를 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장왕께서 붕어하신 지 오래지 않고, 신왕이 즉위하시니 그 원년(元年)의 첫날이 오늘입니다. 마침 송나라는 최근에 남궁장만의 난을 겨우 수습하고 공자 어설을 군위에 세웠으나 아직 주왕실에 이 사실을 고하고 허락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주공께서 속히 사자를 주왕실에 보내어 조례하시고 천자의 뜻을 받들어 제후를 모으소서. 그리고 송나라 군후를 정해 주소서. 이후 안으로는 주왕실을 높이고 밖으론 사방(四方) 오랑캐를 물리치고, 모든 나라 중에서 약한 나라부터 도와 무법 횡포한 자를 누르고, 복종 않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모든 제후를 모아 징계하십시오. 그럴 때마다 주왕실의 뜻을 높인다면 모든 열국의 제후들은 우리 제나라가 사심이 없음을 알고, 반드시 우리를 지지하고 주공의 행동 하나하나를 칭송할 것입니다. 이것이 병차를 움직이는 수고를 하지 않고서도 천하의 마음을 얻고, 세상을 다스리는 길입니다."
이 말을 듣고서 제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신년 하례를 마쳤다. 그리고 즉시 사자를 낙양으로 보내어 주희왕에게 조례토록 분부했다. 사자가 낙양의 조정에 가서 주희왕께 조례했다.
"우리 제나라 군후께서 이번에 왕명을 받들어 모든 제후와 회합(會合)하고 송나라 군위부터 정해 줄 생각입니다. 왕께서 이를 허락해 주십시오."
주희왕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제나라 백구(伯舅)가 왕실(王室)을 잊지 않고 이렇듯 사자를 보내어 예를 갖추니 짐은 진실로 크게 기쁘도다. 오직 제나라 백구만이 사방의 모든 제후를 다스릴 수 있은즉 이것이 어찌 짐에게 걱정이 될 것이겠느냐."
사자는 조례를 마치자 곧 제나라로 돌아가서 제환공에게 주희왕의 분부를 전했다. 이에 제환공은 주희왕의 명으로써 송 . 노 . 진 . 채 . 위. 정. 조(曹) . 주나라 등 각국에 사자를 보내어 3월 초하룻날 북행 땅에서 맹회를 열어 주왕실에 충성하고 각국 사이에 우호 친선을 맺자는 내용을 전하게 했다. 이렇게 하고 나서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이번 북행 땅 회합에는 우리 제나라가 얼마의 병차를 거느리고 가는 것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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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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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희승편" 이희승(1896~1989)
국어 국문 학자, 시인. 호는 일석. 경기도 개풍 출생. 경성 제대와 일본 도쿄 대학원 졸업. 문학 박사. 서울대 교수, 동아 일보 사장 역임. 시집에 "박꽃", 수필집에 "벙어리 냉가슴"이 있고 "국어학 개설" "국어 대사전" 등의 저서가 있다. 정확한 문장과 전형적인 우유체의 문체로 교과서에 흔히 실리는 글들이다.
청추 수제
벌레
낮에는 아직도 90 몇 도의 더위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는다. 그런데, 어느 틈엔지 제일선에 나선 가을의 전령사가 전등 빛을 따라와서, 그 서늘한 목소리로 노염에 지친 심신을 식혀주고 있다. 그들은 여치요, 베짱이요, 그리고 귀뚜라미들이다. 물론, 이 전령사들이 전초역을 맡아 가지고 훨씬 먼저 온 것으로 매미, 쓰르라미가 있지마는 그들은 소란한 대낮에, 우거진 녹음 속에서 폭양에 항거하면서 부르는 외침이라, 듣는 사람에게 '가을이다'하는 기분을 부어주기에는 아직 부족한 무엇이 있었다. 그렇더니, 이 저녁에 들리는, 정밀 속에 전진하여 오는 소리야말로, '인젠 확실한 가을이로구나!' 하는 영추송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게 한다.
달
전등을 끄고 자리에 누우니 영창이 유난히 환하다. 가느다란 벌레 소리들이 창 밖에 가득 차 흐른다. '아!' 하는 사이에, 나는 내 그림자의 발목을 디디고, 퇴 아래 마당 가운데 섰다. 쳐다보아도 쳐다보아도 눈도 부시지 않은 수정덩이가, 도시의 무수한 전등과 네온사인에 나 보아란 듯이 달려 있다. 저 달이 생긴 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를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꼬집고 하였을까? 원망인들 오죽 쌓였을라고. 그의 얼굴은 따뜻한 듯 서늘한 듯, 쌀쌀하면서도 다정도 하다. 성결한, 숭고한, 존엄한 그의 위력에 나는 다시 내 자리로 쫓겨 들어왔다.
이슬
이슬은 가을 예술의 주옥편이다. 하기야 여름엔들 이슬이 없으랴? 그러나 청랑 그대로의 가을이라야 더욱 청랑하다. 삽상한 가을 아침에 풀잎마다 꿰어진 이슬 방울들의 영롱도 표현할 말이 막히거니와, 달빛에 젖고 벌레 노래에 엮어진, 그 청신한 진주 떨기야말로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할 뿐이다.
창공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가을 하늘에는 얼 하나 없구나! 뉘 솜씨로 물들인 깁일러냐? 남이랄까, 코발트랄까, 푸른 물이 뚝뚝 듣는 듯하구나! 내 언제부터 호수를 사랑하고, 바다를 그리워하고, 대양을 동경하였던가? 내 심장은 저 창공에 조그마한 조각배가 되어, 한없는 항해를 계속하여 마지않는, 알뜰한 향연을 이 철마다 누리곤 한다.
독서
'서중 자유 천종록'이란, 실리주의에 밝은 중국 사람에게 있을 법한 설법이렷다. 그러나, '속대 발광 욕대규'란 형용이 한 푼의 에누리도 없는 삼복 더위에, 만종록이 당장 무릎 위에 떨어진다기로서니, 독서 삼매에 들어갈 그런 목석연한 사람이 있을라고. 지나친 자아류의 변설인지는 모르나, 그러기에 나는 60일 휴가 동안 제법 독서 줄이나 하였다고 장담할 뱃심을 가지지 못하였다. 먼 산이 불러나온 듯이 다가서더니, 아침 저녁으로 제법 산들산들한 맛이 베적삼 소매 속으로 기어든다. 벌레가, 달이, 이슬이, 창공이 유난스럽게 바빠할 때, 이 무딘 마음에도 먼지 앉은 책상 사이로 기어가는 부지런이 부풀어오름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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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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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봄꽃들의 축제
21
주님, 오늘 하루도 감사했다고 당신께 아룁니다. 오늘 했던 일, 만났던 모든 사람, 마음속에 자리했던 기쁨, 슬픔, 근심, 불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어 두려웠던 어둠의 순간들도 당신께 봉헌합니다. 기도를 바치기엔 늘 복잡하고 정성이 부족했던 저의 준비성 없는 잘못도 봉헌합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이 끝기도의 은혜로운 시간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
사랑의 말은
1
시냇물에 잠긴 하얀 조약돌처럼 깨끗하고 단단하게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던 그 귀한 말. 사랑의 말을 막상 입으로 뱉고나면 왠지 쓸쓸하다. 처음의 고운 빛깔이 조금은 바랜 것 같은 아쉬움을 어쩌지 못해 공연히 후회도 해본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더 듣고 싶어 모든 이가 기다리고 애태우는 사랑의 말. 이 말은 가장 흔하고 귀하면서도 강한 힘을 지녔다.
2
어려서는 내게 꽃향기로 기억되던 사랑의 말들이 중년의 나이가 된 이제사 더욱 튼튼한 열매로 익어 평범하지만 눈부신 느낌이다. 비록 달콤한 향기는 사라졌어도 눈에 안 보이게 소리없이 익어 가는 나이 든 사랑의 말은 편안하구나. 어느 한 사람을 향해서 기울이고 싶던 말이 더 많은 이를 향해 열려 있는 여유로움을 고마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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