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26호
2022.8.7 (음 7.10)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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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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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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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란 낡은 사회가 새 사회를 잉태한 결과. ― H.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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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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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우연히 일어났을 때 쓰는 말. 하지만 어근인 ‘공교’(工巧)는 반대로 ‘솜씨 있고 실력 있다’는 뜻이다. 뛰어난 장인은 작은 실수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으로 공교한 기술을 연마한다. ‘공교한 작품’은 요행이 아니라 성실한 노력과 몰입의 열매다. 홀로 보낸 시간의 두께에 비례한다. 그래서 ‘공교롭다’는 말에는 우연한 일의 뒷면에 인연의 그물이 촘촘히 쳐져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연찮게’(우연하지 않게)가 ‘우연히’란 뜻과 같아진 것처럼, ‘공교롭다’는 한 낱말 안에 ‘우연과 필연(운명)’이 하나라고 새겨놓았다.
공교롭게도 코로나는 우리 사회의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는 사회경제적 약자, 배제되고 뒤처지고 깨어진 자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와 가장 노골적으로 괴롭히다가 가장 나중까지 머무를 것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는 신천지 교단의 폐쇄성을 숙주 삼아 우리 사회를 들쑤시고 있다. 배타성, 선민의식, 물신숭배, 성장제일주의는 신천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는 독특한 도자기 수리 기법이 있다. ‘금 꿰매기’, ‘금 수선’ 정도로 읽히는 긴쓰쿠로이(金繕い)는 깨어진 도자기를 버리는 대신 옻 성분의 접착제로 조각을 이어 붙이고 금가루로 칠을 하여 깨어진 도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새로 창조하는 기술이다. 흉터를 금빛으로 탈바꿈함으로써 부서짐을 감추지 않고 그 또한 역사로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자세다. 우리가 신의 피조물이라면 이 깨어진 세상에서 더욱 연대할 의무밖에 없다. 깨지고 찢어진 사회를 이어 붙이는 공교한 실력을 추구할 뿐이다. 우연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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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다른[異] 끝[端]. 끝이 다르다. 시작과 중간은 같았다. 다른 옳음. 무엇이 옳은지 다르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갈라짐. ‘옳지 않다’고 하려면 ‘옳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옳지 않음은 진리에 미달했다기보다는 거짓의 편에 섰다는 뜻에 가깝다. 어떤 이야기 구조 속에 있느냐에 따라 이단은 서로를 향하는 총알.
이단에 속한 사람은 전통과 권위에 도전한다. ‘이단아’라는 말에는 ‘권위에 맞섬, 엉뚱함, 아웃사이더, 혁신’의 이미지가 풍긴다. 유독 기독교에 이단·사이비가 많은데, 신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왔다는 데에 이 종교의 심오함과 딜레마가 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아니 상상으로밖에 가늠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믿음의 체계이다. ‘신이면서 인간’인 예수. ‘A이면서 B’라는 등식은 동시에 ‘A도 아니고 B도 아니’라는 말도 된다. 신이면서 인간인 존재는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존재다. 그게 기독교의 시작점이다. 그래서 쉽게 끝이 달라진다.
‘알 수 없는’ 존재가 우리 곁에 온 사건 때문에 이단에 잘 빠지는 걸까? 아니다. 그 역사적 사건이 ‘반드시’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한 번 더 벌어져야 한다는 욕망이 근본 문제다. 자신이 끝이자 시작이려고 하는 욕망. 우리는 끝도 시작도 아닐지 모른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예수는 신이면서 인간이었다.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었다. 우리도 나이면서 남이다. 나도 아니고 남도 아니다. 이 둘 사이의 줄타기는 삶 속에 뒤엉켜 거듭 드러날 뿐. 그 외에는 모른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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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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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飛翔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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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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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긍긍(戰戰兢兢)
- 매우 두려워 벌벌 떨며 두려워함.《出典》'詩經' 小雅篇
'전전(戰戰)'이란 몹시 두려워서 벌벌 떠는 모양이고, '긍긍(兢兢)'이란 몸을 움추리고 조심하는 모양을 뜻한다. 이 말은 중국 최고(最古)의 시집(詩集)인《시경(詩經)》'소아편(小雅篇)'의 '소민(小旻)'이라는 시(詩)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데 그 시의 내용은 모신(謀臣)이 군주의 측근에 있으면서 옛 법을 무시한 정치를 하고 있음을 개탄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감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不敢暴虎]
감히 걸어서 강을 건너지 못한다 [不敢憑河]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고 있지만 [人知其一]
그밖의 것은 전혀 알지 못하네 [莫知其他]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戰戰兢兢]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하듯 하고 [如臨深淵]
살얼음을 밟고 가듯 해야 하네 [如履薄氷]
또《논어(論語)》'태백편(太伯篇)'에 보면, 曾子가 병이 重해지자 제자들을 불러서 말
"내 발을 펴고, 내 손을 펴라.《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매우 두려운 듯이 조심하고, 깊은 연못에 임한 것 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라.'고 했다. 지금 이후로는 나는 그것을 면(免)함을 알겠구나, 제자들아."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동의어】전전긍긍(戰戰兢兢)
【유사어】소심익익(小心翼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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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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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4장
보수적 전통주의자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사람인가?
이처럼 공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이상은 성스러운 의식과 예식이라는 이미지에 의해 명백히 나타난다. 의식과 예식들이야말로 그 나름대로 다른 그 어느 것보다 더 오랜 옛날 전통에 뿌리를 둔 행위의 형식들이다. 어떤 형태의 행위나 제스처가 도무지 생경하고, 인위적 조작 또는 실리 타산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한 그런 행위나 제스처의 형태에는, 말하자면 예식을 올릴 때 가질 수 있는 궁국적 엄숙성, 또는 예식을 통해서만 인간의 영혼 속에 촉발될 수 있는 그런 깊고 고풍적인 (심리적, 감동적)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궁국적으로 심리학이나 도 다른 어떤 학문을 통해서도 모두 설명 가능한 것이다. 비록 복잡한 예식을 (간소하게) 수정하는 일이 가끔씩 일어난다 해도, 적어도 예식의 재료나 그 구성 요소들은 전통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공자의 사상에 영향을 기쳤을 많은 생각들 중에서, 공자는 인간의 독특한 본성을 예에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데 그의 본질적인 세속관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당대에 새롭게 형성되는) 거대한 문명의 통합은 구성원들의 합의나 명령보다는 우선적으로 전통에 근거하는 것으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물론 (백성들의) 사회적인 합의 또는 군주나 하늘의 명령이라는 관념들은 문화를 규정하는 전통들을 합리화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공자의 사상 속에서 무시 못할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공자에게 있어서 사회적 합의나 천명의 역할은 결국(전통이 갖는 절대적인 중요성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며 별로 다듬어져 논의되고 있지 않다. 예식에 관심을 가진 다른 사상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에 대한 핵심적 강조는 이데올로기적, 철학적 또는 종교적인 면에서 아무리 상이한 그 어떤 틀이 가미된다 할지라도 예를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도덕적, 정감적인 권위, 즉 전통에로 곧바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위대한 통찰력이 공자의 사상 속에는 혼합되어 있다. 정치가로서의 공자는 당시 사회적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문명화된 정치적, 사회적 통일의 근본적 토대로서 문화적 통합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철학적 인간학자로서의 공자는 진정한 에식 행위의 이미지 속에 구현된 삶이 진정한 인간서의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라고 확신하였다. 상호 연관되어 있는 이들 주제의 의미 함축은 곧 정치적, 사회적 통일이 바로 예식적인 것이 될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전통 지향적 문화를 바로 예식이 자양분을 공급받는 핵심적인 터전으로서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역설에 직면하게 되었다. 전통을 그들 자신의 고유하고도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이상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런 전통들이란 (한 개인의 흥미나) 필요에 따라 임의로 선택되거나 새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선대에는 합당했었지만 이제 소홀하게 된 전통을 단지 다시 확정짓고 그것에 호소함으로써 새로운 이상을 나타낼 방도는 분명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공자와 같은 시대와 환경 속에 살았던 어떤 사상가는 공자와 전혀 다르게, 즉 전통 지향적이 아닌 다른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이런 (비전통주의적) 대안은 이른바 법가 및 다른-이미 공자 시대에 그들의 철학적 이념들이 정립되어 틀림없이 공자 그 자신에게도 알려졌을-사상가인 제자백가들에 의하여 분명하고도 강력하게 피력되었다. 예를 들면 법가는 상과 벌이라는 두 계기에 의해 강압적으로 통제되는 사회를 제창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공자의 관심이, 단순히 사회 공동체의 질서 확립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간 존엄, 즉 인간 존재의 분명한 차원을 아름답고 고상하고 거룩한 존재로 보려는 의미에 바탕을 둔 문화의 창달에 있었음을 아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문화의 통합은 인간성 실현의 극치이어야 했지, 결코 사람의 모습을 지닌 (온순한) 양떼를 (공권력을 통해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질서 유지일 수 없었다. 공자의 새로운 이상 구현에 있어서 두번째의 기본적인 요소 (즉 만백성의 합의의 문제), 말하자면 만인이 공유하는 관례들에 기반을 둔 보편적 공동체라는 이상 실현의 문제를 고찰해 보기로 하자. 공자가 제안한 내용은 전통에 바탕을 둔 새로운 공동체를 건립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이념을 보급 확산시킬 수 있는 매우 적합하고 강력한 논의 형식을 이미 치지 냈다고 생각했다. 실로 그는 인류 문화에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림 논의 형식, 즉 이야기 특히 고대의 신화나 일화 이야기를 이용하였다.
모든 사회는 추상적인, 특히 정신적인 문제들을 명료하게 규정짓는 그들 나름의 특징적인 방식에 있어서 서로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 중 하나의 방법, 즉 이야기의 사용은 모든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며 또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들에 <역사>, <신화>, <전설>등 여러 가지 명칭을 붙인다. 이들 이야기 형식들에서, 예를 들면 (한 위대한 인물의) 탄생이 갖는 도덕적, 법적, 정신적, 심리적 측면은 추상적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탄생신화-즉 사건이나 인물을 묘사하는 이야기-의 맥락에서 제시된다. 이야기는 말로도, 몸짓으로도, 또는 문자로도 나타날 수 있다. 사망, 혼례, 치적, 인간 관계,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 등의 문제들은 모든 사회에서 이야기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몇몇 문화권 즉 유럽, 인도, 중국 문명에서 우리는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적용된 추상적, 이론적 교설이나 분석을 찾아볼 수 있다.
삶의 외형적 실상보다는 그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삶에 대한 추상적 개념의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삶과 대비(대칭)되는 사건들의 이야기 형식을 통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칭의 세계는-우리의 현세와 경쟁 대립되지만-다른 영역(하늘이나 올림푸스 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어질 수 있다. 또는 이런 대비적 세계는 지상에 있는 바로 우리집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이야기에 나오는 시대는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보다 훨씬 옛날의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옛날 다른 곳에서 발생한 사건의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다른 시기나 장소로 옮겨서 말하거나, 인물들이 가진 능력들이나 품행을 이상적(또는 극단적)으로 규정해서 이야기를 꾸며내는 방식은, 최근의 진짜 인물이나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기억과 꼭 합치하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의 단점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 (이야기라는) <다른>세게와 우리 자신의 (현실) 세계 사이의 이런 작용은 우리 인생의 의미가 매일매일의 일상적 삶의 사건들을 초월하기도 하고 동시에 정말 그 속에 구현되기도 하는 (삶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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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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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3. 관중의 경제 정책
관중에 대한 신임
한편 제환공은 나라의 대소사를 모두 정승인 관중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간혹 나랏일을 아뢰는 자가 있으면 제환공이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왜, 중부(仲父)께 고하지 않고 과인에게 왔는가?"
이렇듯이 일체를 관중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관중을 굳게 신임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제나라 궁중에 수작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수작은 임금의 시중을 드는 미동(美童)이었다. 수작은 붙임성이 있어 제환공을 잘 따랐고 제환공도 소년을 매우 총애하여 항시 자기 옆에 있게 했다. 이 수작에게 요리 잘하는 사내가 매우 아첨하였다. 그 사내의 이름은 역아(易牙)라고 했다. 수작은 제환공에게 요리 잘하는 역아를 소개했다. 제환공이 역아에게 물었다.
"네 능히 맛나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느냐?"
"물론입니다."
제환공이 역아에게 농조로 말했다.
"과인은 일찍이 하늘을 나는 날짐승과 네 발 가진 뭍짐승과 모든 생선의 맛을 다 보았느니라. 그런데 사람 맛은 모르겠다. 너는 그 맛을 아느냐?"
"......."
역아는 아무 대답없이 물러났다. 그 날 점심때였다. 역아는 점심상에 찐 고기 한 쟁반을 바쳤다. 그 고기는 매우 연하고 맛이 좋았다. 제환공은 어찌나 맛있던지 먹고 난 후에 역아를 불렀다.
"무슨 고기인데 이렇게 맛있느냐?"
역아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그것은 사람 고기입니다."
그제야 제환공은 크게 놀랐다.
"사람 고기라면 도대체 그걸 어디서 구했느냐?"
역아가 태연히 답했다.
"신의 자식이 세 살입니다. 듣건대 임금께 충성하는 자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공께서 아직 사람 고기를 맛보지 못하셨다기에 신은 즉시 자식을 죽여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제환공은 한참 있다가 분부했다.
"물러 가거라."
그런 뒤에 제환공은 역아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하여 갸륵하게 여기게 되었다. 또 수작 역시 기회만 있으면 제환공에게 극구 역아를 칭찬했다. 마침내 제환공과 역아, 수작, 이들 세 사람은 함께 즐기며 노는, 마치 놀이패 같은 사이가 되었다. 이들은 때로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기도 했다. 역아는 원래 음식 솜씨도 뛰어났지만 권모술수 또한 비상하게 남다른 자였다. 어느 날 그가 수작과 함께 제환공을 부추겼다.
"대저 나라의 일이란 임금이 명령을 내리면 모든 신하는 그 명령을 받들어 행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제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중부가 다 합니다. 마치 임금은 없고 정승만 자리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제환공이 답변을 못하고 쩔쩔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환공은 의외로 명쾌하게 두 사람을 힐책하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중부는 과인의 수족(手足)과 같다. 팔다리가 있어야 몸이 완전하게 되듯이 중부가 있어야만 과인이 온전히 임금 노릇을 할 수 있도다. 그러하거늘 어찌 너희 같은 소인들이 중부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느냐."
수작과 역아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
철 . 소금 . 황금
관중은 제환공의 이런 신임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정책을 착실히 시행해 나갔다.
1. 농업은 국가의 기본 산업이다. 적극 보호 장려하여 식량을 생산하고 백성을 굶지 않게 하라.
2. 소금 . 철 . 금 이밖의 중요 산업에 있어서는 생산과 저장을 틀림없도록 하라.
3. 국고의 지출과 세금의 수입을 맞추어라. 세수(稅收)보다 많은 지출은 용납이 안 된다.
4. 물자의 유통을 위해 창고를 많이 지어라.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장려하라.
5. 백성들에게서 걷는 세금을 원성없게 하여라. 병역의 부담도 균등하게 하여라.
관중은 철저한 경제 우선주의자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저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먼저 백성을 부(富)하게 하는 데에 있다. 백성이 가난해지면 다스리기 어렵다."
"우선 물자가 풍부해야 한다. 먹고 살기가 힘든 사람에게 예의를 말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도덕 의식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대부들부터 경제를 중요시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형벌 같은 것은 나중의 일이다. 계절에 따른 생산과 유통을 원활히 전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관중이 정승의 위에 오른 후 첫 번째로 바닷가 지방 순시를 나섰던 이유는 소금 생산을 확대시켜 중계 무역을 하고자 하는 그의 계산된 의도에서였다.
소금과 철과 황금.
관중은 이 세 가지를 전략 물자로서 중요시 여겼다. 그런데 철이나 황금 등은 광산을 개발해야 하는 난점이 있었던 반면에 소금은 바닷물을 원료로 하여 만들 수 있었기에 제나라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유리했다.
"바닷가 백성들은 모두 소금을 생산하라. 생산된 소금은 전량 나라에서 사들이겠다."
이것이 공식적인 소금 전매 사업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관중은 저장과 유통, 그리고 정 . 조 . 위 . 송 . 노나라 등 내륙 국가에 수출할 것까지 미리 예측하여 운송하기가 편리한 제수(濟水)에 거대한 창고와 선착장을 만들어 하운(河運)을 개설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처음 3년간 소금을 팔아 모은 황금이 1만 근이 넘었고, 이후 제나라에서는 기근이니 아사니 하는 말이 없어졌다고 한다. 사기의 기록을 살펴보겠다.
'원래가 바닷가에 면한 제나라는 땅덩이에 비해서 국력이 보잘것 없었다. 쓸모없는 땅이 많았고 그 주민은 적었다. 그래서 태공망 이래 부녀자의 일을 장려하고 공예의 기술을 다 하게 하고 또 각지에 생선과 소금을 옮겨내어, 있고 없는 것을 서로 유통케 했다. 그 뒤 제나라는 쇠해졌으나 관중이 나라의 정치를 맡으면서 경중 . 구부를 설치하여 크게 번영하게 되었다. 특히 바닷가에 생산과 수출에 따른 부(富)의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서민의 의향을 정책에 반영하는 시작이었다. 관중은 정책을 실시할 경우 서민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스스로 서민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에 역점을 두어 살폈다. 일찍이 생산자로서 서민 대중이 갖는 의무는 많았으나 특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관중이라고 하는 서민 출신의 정치가는 그들에게 생산자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었다. 서민의 집 곳간에도 양식이 쌓이고 그들도 예의 범절, 염치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철의 생산에도 진력하여 광산을 개발하고 양질의 철광을 외국에서 사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장간 등에 상당한 혜택을 주어 농기구나 무기의 생산을 적극 장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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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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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최남선편"
최남선(1890~1957)
문인, 국학자, 사학가. 호는 육당. 서울 출생. 국학 수학, 일본 와세다 대학 중퇴.
독립 선언문을 기초한 사람으로 유명한 최남선은 한국 최초의 신체시와 시조 등 많은 문학 작품을 발표하였다. 언문 일치의 문장, 자유시의 제창, 시조의 현대화, 수필체 문장의 도입 등 분멸의 공적이 많다.
국토 예찬
우리의 국토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시이며, 정신입니다. 문학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림자와 생활의 자취는 고스란히 똑똑히 이 국토 위에 박혀서 어떠한 풍우라도 마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나는 우리 역사의 한 작은 학도요, 우리 정신의 한 어설픈 탐구자로서, 진실로 남다른 애모와 탄미와 함께 무한한 궁금스러움을 이 산하대지에 가지는 것입니다. 자갯돌 하나와 마른 나무 한 밑동도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흥미와 또 연상을 자아냅니다. 이것을 조금씩 색독이나마 하게 된 뒤부터 우리 나라가 위대한 시의 나라, 철학의 나라임을 알게 되고 또 완전, 상세한 실물적 오랜 역사의 소유자임을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쳐다볼수록 거룩한 우리 정신의 불기둥에 약한 시막이 퍽 많이 아득해졌습니다. 곰팡내나는 서적만이 이미 내 지견의 웅덩이가 아니며 한 조각 책상만이 내 마음의 밭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서적과 책상에서 불구가 된 내 소견을 진여한 상태로 있는 활문자, 대궤안에서 교정받고 보양을 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통절히 느꼈습니다. 묵은 심신을 시원히 벗어 던지고, 자유로운 공기를 국토 여래의 상적토에서 호흡하리라 하는 열망은 시시각각으로 나의 가슴을 태웠습니다. 힘 자라는 대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국토 예찬을 근수하기는, 나로서는 진실로 숭고한 종교적 충동에 끌린 바로서, 부득불연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재미와 힘을 여기서 얻었고, 얻고, 얻을 것이니, 생활의 긴장미로만 해도 나의 이 수행은 오래도록 계속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토에 대한 나의 신앙은 일종의 애니미즘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보는 그것은 분명히 감정이 있으며 웃음으로 나를 대합니다. 이르는 곳마다 꿀 같은 속삭임과 은근한 이야기와 느꺼운 하소연을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심장은 최고조의 출렁거림을 일으키고 실신할 지경까지 들어가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때의 나는 분명한 한 예지자의 몸이요, 일대 시인의 마음을 가지지만, 입으로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운율 있는 문자로 그대로 재연하지 못할 때, 나는 의연한 일 범부며, 일 박눌한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섭섭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내 하면, 나의 작은 재주는 저 큰 운의를 뒤슬러 놓기에는 너무도 현격스러운 것이니까, 워낙 애닯고 서운해할 염치가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혹은 유적, 혹은 전설에 내일을 기다리기 어려운 것도 있고, 혹은 자연의 신광, 혹은 역사의 밀의에 모르는 체할 수 없어서, 변변하지 않은 대로, 간 곳마다 견문 고검의 일반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진실로 문장으로 보거나 논고로 볼 것이 아니요, 또 천 년의 숨은 자취를 헤쳤거나 만인의 심금을 울릴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대로 우리 국토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넘쳐 나온 것이니, 내게는 휴지로 버리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아니합니다. 이러므로, 다만 한 가지 또 어슴푸레하게라도, 우리 정신의 숨었던 일면이 나타난다면 물론 분회의 다행입니다. 그렇진 못할지라도, 우리 청전구물에 대한 나의 애처롭고 안타까운 정리를 담은 것이 혹시나 강호의 동정을 산다면, 이 또한 큰 소득입니다. 아무튼 우리 국토의 큰 정신을 노래해 내는 이의 어릿광대로 작은 끄적거림을 차차 책으로 모아 갈까 합니다. 이제 그 첫권로 내는 "심춘 순례"는, 작년 삼월 하순부터 수미 50여 일간,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순례기의 전반을 이루는 것이니, 마한 내지 백제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신악의 여훈을 더듬는 것이요, 장차 해변을 끼고 내려가는 부분을 합하여 서한의 기록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진인의 고신앙은 천의 표상이라 하여 산악으로써 그 대상을 삼았으며, 또 그들의 영장은 뒤에 대개 불교에 전승되니, 이 글이 산악 예찬, 불도량 역참의 관을 주는 것은 이 까닭입니다. 적을 것도 많고 적을 방법도 있겠지만, 매일 적잖은 산정을 발섭하고 가쁜 몸이 침침한 촛불과 대하여 적는 데도 이것도 큰 노력이었습니다. 선재와 행문이 다 거침을 극한 것은 부재 이외에도 까닭이 없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고치자니 새로 짓는 편이 도리어 손쉽고, 새로 짓자니 그만 여가가 없으므로 숙소에서 주필하여 날마다 신문사로 우송하였던 원고를 그대로 배열하게 되었습니다. 후안의 꾸지람은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행중에 여러 가지 편의를 주신 연로의 여러 대방가, 특히 각 산의 법승들에게 이 기회에 심대한 사의를 드립니다. 또, 남순 소편에 다소라도 보람 있는 구절이 있다면, 이는 시종 일관하게 구책 유액의 노를 취해 주신 여러분의 현교와 암시에서 나온 것임을 아울러 표백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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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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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봄꽃들의 축제
6
단순히 재미로 숨은 그림을 찾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듯 삶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데는 더욱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겨울에 숨어 있는 봄. 여름에 숨어 있는 가을. 슬픔 속에 숨어 있는 기쁨. 농담 속에 숨어 있는 진담 그리고 또... 숨은 것을 볼 줄 알면 삶이 지루하지 않다.
7
사랑하는 이가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운하게 할 때는 말을 접어 두고 하늘의 별을 보라. 별들도 가끔은 서로 어긋나겠지. 서운하다고 즉시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별들도 안다.
8
배추잎 속에 숨은 배추벌레처럼 우린 저마다 보호색을 만들기에 능한지도 몰라. 이웃을 위해 만들어 가는 사랑의 보호색은 아름답고 때뜻해 보이지만 자신의 유익만을 위한 이기적인 보호색은 차디차고 섬칫하다. 가끔 그럴듯한 모습으로 교묘하게 보호색을 만들어 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내가 보기 싫고 흉해서 얼굴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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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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