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20호
2022.7.31 (음 7.3)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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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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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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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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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평생을 두고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데 교육의 목적이 있다.
― 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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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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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
인간은 게을러서 짧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말을 줄이는 일이 과도하여 요상한 상황을 연출한다.
재수 없거나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밥맛’이다. 밥맛이 떨어질 정도로 기분 나쁘다. 애초에 ‘밥맛이 있다/없다’는 음식 맛을 평가하거나 식욕의 유무를 나타낸다. ‘밥맛이다’가 불쾌한 감정일 이유가 없다. 그러다가 아니꼬운 사람이 나타나면 ‘밥맛없다’ ‘밥맛 떨어지다’라는 말 뒤에 붙은 ‘없다’나 ‘떨어지다’를 싹둑 잘라내고 ‘밥맛’만으로 불쾌한 마음을 표현한다. ‘밥맛’ 입장에서는 뒤에 붙은 서술어의 부정적인 의미마저 모두 넘겨받은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 낱말에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동침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잘났다’가 상황에 기대어 반대로 쓰이는 것과는 다르다. 부정의 의미를 늘 갖고 있는 느낌이다. ‘엉터리’도 비슷하다. ‘엉터리없다’는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라면 ‘엉터리’는 ‘이치에 맞는 행동’이어야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도 ‘엉터리’와 ‘엉터리없다’는 뜻이 같다. ‘안절부절못하다-안절부절’ ‘주책없다-주책(이다)’ ‘싸가지 없다-(왕)싸가지’도 마찬가지다.
‘바가지를 긁다’ 같은 숙어도 한 요소가 전체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어디서 바가지야!’ ‘그만 긁어!’ 전체 의미를 한 낱말이 넘겨받은 것이다. ‘밥맛이다’는 이게 과도하게 작동한 예이다. 뭔가가 ‘없다’는 것은 앞말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매우 중요하다. ‘없다’를 지우고 부정의 의미를 앞말에 모두 넘겨주는 건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말은 선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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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천국
한국어는 최고로 배우기 어려운 말이다. 동사에 ‘반드시’ 어미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는 기본형에 과거형, 과거분사형, 진행형만 알면 된다. ‘play, plays, played, playing’ 말고 다른 형태가 없다. 그러니 앉은자리에서 ‘I play a game.’이라고 한마디 할 수 있다. 한국어는 동사에 붙는 꼬리가 무시무시하게 많다. 어미 천국이자 어미계 사회(!)라 어미 없이는 말을 끝맺을 수 없다. ‘하다’라는 동사를 제대로 쓰려면 ‘한다, 해(요), 합니다, 했다, 했어(요), 했습니다, 하겠다, 하겠어(요), 하겠습니다’처럼 시제와 상대 높임 여부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여기에 의문, 명령, 감탄, 청유형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형태가 늘어난다.
문장을 연결하는 어미도 많다. ‘하고, 하며, 하면, 해서, 하니까, 하는데, 해도, 하자마자, 하지만, 하나, 하더라도, 할지언정, 할지라도, 할까, 하느라, 할뿐더러, 하러, 하려고, 하게….’ 예만으로도 이 지면이 모자란다.
앞뒤 말을 이어 붙이는 접착제가 이리 많은데도 성에 안 찼는지 명사를 끌어들인다. 예컨대, 이유를 말하는 데 ‘하느라, 해서, 하니까’ 정도의 어미면 충분한데, 굳이 ‘했기 때문에’ ‘하는 바람에’ ‘한 덕분에’ ‘한 탓에’ ‘하는 통에’ 따위를 만들어 쓴다. 동사 하나를 배우고 이를 활용하여 말 한마디 하려면 이렇게 많은 어미 중에 하나를 골라 조합해야 한다. 이를 익히는 일은 현기증에 구토를 수반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한국어 학습자에게 박수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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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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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배(謀利輩) - 김수영
언어는 나의 가슴에 있다
나는 모리배들한테서
언어의 단련을 받는다
그들은 나의 팔을 지배하고 나의
밥을 지배하고 나의 욕심을 지배한다
그래서 나는 우둔한 그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하이덱거를
읽고 또 그들을 사랑한다
생활과 언어가 이렇게까지 나에게
밀접해진 일은 없다
언어는 원래가 유치한 것이다
나도 그렇게 유치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아 모리배여 모리배여
나의 화신이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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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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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참마속(泣斬馬謖)
-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법의 공정을 지키기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림'을 비유.
《出典》'三國志' 蜀志 諸葛亮篇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山野)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陣)'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軍糧輸送路)의 요충지인 '가정(街亭 :韓中의 東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街亭)을 잃으면 촉나라의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책(重責)을 맡길 만한 장수가 마땅치 않아서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 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街亭)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 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 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협로(峽路)를 사수만 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욕심을 내 어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다 진을 쳤다. 그러나 마속의 생각과 달리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로 산 위를 공격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산 위에 서는 식수가 끊겼다. 다급해진 마속은 전병력을 동원해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위나라 용장 장합(張稷)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마속의 실패로 전군(全軍)을 한중(韓中)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5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成都)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張?)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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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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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술이>, 7:3에서 공자는 사람으로서 미덕, 배움, 도의의 추구를 못하는 것, 그점이 사람을 우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문장에서 다시 우리는 인간의 대응 행위는 바로 객관적으로 무질서하고 혼돈된 상태에서 일어남을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무질서와 혼돈은 공자가 지적한 자기의 도와 반대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틀린 행위(비행)인 것이다. <술이>, 7:18에서 공자는 자신은 배움을 추구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바라기 때문에 우를 잊고 노년이 오고 있는 것도 잊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다시 노년이라는 좋지 않은, 그러나 아주 객관적인 불안이 우와 나란히 있는 것이다. 공자는 그의 여러 언명들에서 내적 심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했다는 식의 주장이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요 논지는 결코 아니다. 만약 공자가 (내적 심리와 관련된) 그러한 기본적인 비유를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반성을 통하여 그것을 거부하기로 작정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가 내심에 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이 자리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주장의 요점은 전혀 그러한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서양인)들에게는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까지 매우 친근한, 그런 내면적, 심리적인 삶의 비유가 <논어>에는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내적, 심리적 삶이 부정당하다는 가는성마저도 <논어>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가 언급된 위의 구절들에는 (내심의 주관적인 상태와 연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말했을 때, 그 구절들이 내면의 심리적인 문제)를 잘 다듬는 일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배제했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의미하려는 것은 그 구절들이 전혀 그런 뜻을 잘 다듬지도 않았으며 또 이해나 타당성을 돕는 면에서도 그럴 필요응 전혀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안연>, 12:4에서 우리는 <논어>가운데 가장 <심리적>으로 쓰인 우의 용레를 보게 된다. 군자는 우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 그런가? 그가 <내심을 들여다 볼> 때, 그는 어떠한 <병>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심>을 본다는 이미지는-우리(서양인)들에게-<내적인 삶>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보려는 것이 결코 <주관적 (심리)상태>로가 아니라, <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우리는 반드시 주목해야만 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공자는 이것은 <도덕적인 병> 또는 <정신적인 병>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공자의 주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공자가 중국에서 자기 이전의 누구도 했던 적이 없는 방법으로, 인간 존재의 정신적, 도덕적 영역이 존재함을 알았고 그것을 가르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요점은 그가 이 정신적 영역을 조직적으로 개개인의 <내심>에 위치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서구인들은 (서양의 사유 구조에 본질적인) <내심>이라는 말과 이미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거의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공자가 이 주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를 배우는 첫번째 중요한 행보는, 비록 그 말이 쓰이는 경우가 <논어>안에 혹 있다 하더라도, (서양적 의미의) 내심이란 부재하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에 주목하는 일이다. 논의의 전개를 앞질러 말하자면, 나는 여기에서 단지 정신적인 것이란 공자에게는 공적인 것, 즉 <외면적인 것>-그러나 그 정신적인 것이 신이나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나 비인간적인 괴력들에서 구현되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이라는 점을 언급해 두려고 한다.
<논어>원문을 보면 공자가 적어도 세 경우에 <내적인 것>에 대해서 모호하게 언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잘 다듬어진 용어들로 행위나 처신 그리고 행위의 규칙들에 대해 줄기차게 애기하고 있다. 좀더 말하자면, <내적인>, <사적인> 것에 대한 그의 언급들은 언제나 그곳을 병통의 근원, 즉 도덕 발전의 결여의 장소로 지적하는 경우이다. 도덕 발전을 적극적으로 규정짓는 성공이란 객괸적으로 처신하는, 말하자면 상호 신뢰와 존중을 예 안에서 특수하고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일이다.
우를 나타낸 일련의 구절들에서, 형제(즉 가족)없는 사람은 우하고, 앞 일을 헤아리는 사람은 우하다고 한다. 객관적인 불안감(형제 없음)과 잠재적 위험(미래의 일)이라는 주요한 두 가지 조건이 다 이 구절들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우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또 군자는 도에 대해서는 우하지만 가난 때문에 우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객관적 불안감과 불확실성의 관념이 이 구절들에 다시 적절하게 나타나 있다. 군자는 부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부에 대한 불확실성은 그의 처신에 있어서 아무런 곤란한 불안감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르다. 거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기 때문에 도의 길은 쉽지 않다. 오직 성인만이 온전히 안정되고 자연스럽게 그 도를 걸어 갈 수 있다. 명백히 훨씬 뒤에 편집된 문장인 <계씨>,16:1에서는 우라는 말이 명백히객관적으로 문제 많은 나라, 즉 군사적, 정치적인 면에서 골치 아픈 나라와 연관되는 문맥으로 쓰여졌다. 요약하면 우한 상태가 없는 것이 인한 사람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우의 상태란 객관적으로 미해결된 골치 아픈 상황, 즉 그로부터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고 명백하게 예견되는 그런 상황에 연루되어 그 속에서 대처하고 있는 그 사람의 (객관적인) 상황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가 없는 것은 객관적으로 해결을 보아 체게화된 상황과 잘 융합되는 그런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사람의 상태이다. 무엇이 이런 상태인가? 공자의 경우, 그것은 <예에 귀의한>(복례) 사람의 상태라고 우리는 분명히 기술해 왔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란 마땅히 예에 의해 순수하게 정말로 다스려지는 사회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예란 모든 사람의 행동을 조화시키고 그들의 복지를 인간답게 확립시키는 그러한 인간적인 행위의 구조물이기 때문에, 예 속에 확고하게 서 있는 사람은 완벽하게 짜여져서 인간 존재의 잠재성을 꽃피우는 데 전적으로 기여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만약에 인이, 한 특정인이 행위자로서 걸어가야 할 방향성에 주목하도록 하는 그런 행위의 측면이라면, 예를 따르지 못하는 방향성이나 준비 태세가 그 행위자의 자세에 결여되어서 객관적으로 불안을 야기시키는 요소로 느껴 질 것은 자명한 일이며 이로 인해서 분열과 불안과 걱정이 있게 될 것이다. 요컨대 우는 참으로 인의 부재이고 인은 우의 부재이다. 우리는 이제 인이란 어렵지만 이 자리에서 소망되는 것이라는 역설을 논의해야 할 위치에 와 있으며, 그 역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앞으로 인이 어ㄷ게 <내심의>자아와 연관된 심리적인 개념이 아닌지를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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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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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5장
4. 새 임금이 누구냐
6. 관중의 구사일생
노군 철수
관중이 이를 보면서 깊이 탄식했다.
"군사들은 이미 사기를 잃었으니 여기까지 온 일이 모두 허사가 되었구나."
마침내 노나라 병사들은 영채를 뽑고 회군했다. 그들이 사흘 동안 행군했을 때였다. 문득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일대의 병차가 나타났다.이는 왕자 성부와 동곽아가 이끄는 제나라 병사들이었다. 조말이 창을 비껴들고 외쳤다.
"주공은 속히 피하소서. 신은 이 곳에서 죽겠습니다."
그는 관중을 돌아보며 부탁했다.
"그대는 나를 도우라!"
이에 관중은 왕자 성부에게 달려들고 조말은 동곽아와 대결했다. 이 사이에 노장공과 공자 규는 서둘러 도망쳤다. 관중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다가 달아나고, 또 싸웠다. 그러다가 큰소리로 지시했다.
"모든 군사는 보급품과 갑옷을 길에 버려라. 그리고 몸을 가볍게 하여 도망쳐라."
제나라 군사들은 기세 등등하여 뒤쫓아오다가 길에 즐비하게 떨어진 노나라 병사들이 버린 갑옷이나 무기를 줍는 일에 바빴다. 이 틈에 노장공과 노나라 주력군은 겨우 제나라 군대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장공 일행이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겨우 한숨을 돌리고 살펴보니 이미 노나라 경내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제나라 군사들은 노장공을 계속 쫓아와서는 노나라 문양(汶陽) 땅 일대까지 점령하고 나서야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공자 규를 죽여라
제환공은 성으로 돌아와서 크게 잔치를 열었다. 모든 대부들이 개선을 축하하고 술잔을 들어 축원했다.
"천수 무강하소서!"
모두들 즐거워하며 웃고 마셨다. 포숙아가 제환공 앞으로 나서서 아뢰었다.
"지금 공자 규가 노나라에 있고, 관중과 소홀이 전심 전력을 다해 그를 돕고 있으며, 또한 노나라가 우리에게 복수하고자 그를 후원하고 있으니 이는 제나라에 더할 나위 없는 근심거리입니다. 그러니 신(臣)은 조금도 축하할 것이 없습니다."
제환공이 물었다.
"경의 말이 옳소. 그럼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포숙아가 대답했다.
"이번 싸움에서 노장공은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노나라 경계에까지 가서 그들을 위압해 보이겠습니다. 즉 노나라가 규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우리가 노나라를 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후가 두려워하고 우리 말을 따르겠다고 할 것입니다."
제환공이 말했다.
"과인은 모든 백성과 함께 그대의 말을 따를 것이오."
이미 포숙아는 병차와 군마를 정돈해 놓고 노나라로 떠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튿날 그는 문양 땅으로 가서 우선 습붕을 시켜 서찰을 지참케 하고 노나라로 보냈다. 습붕이 지참한 서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외신(外臣) 포숙아는 노현후(魯賢侯) 전하께 절하며 아뢰나이다. 집안에는 가장이 둘일 수 없으며 나라에 임금이 둘일 수 없습니다. 이는 하늘에 태양이 하나 있는 것처럼 명백한 법입니다. 지금 우리 임금께서 종묘를 받들고 계시건만 공자 규가 이를 다투려는 것은 서로가 갖춰야 할 예(禮)도 법(法)도 아닙니다. 우리 임금께서는 형제간 우애로서 차마 그를 죽이고자 않으시니 원컨대 귀국은 공자 규를 처치하여 이웃 나라 사이에 우호를 더욱 단단히 다지십시오.
그리고 관중과 소홀은 우리 임금의 원수인지라 우리에게 돌려 주어 우리 제나라 태묘 앞에서 그들의 목숨을 처치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깊은 양찰을 바랍니다. 포숙아가 습붕을 배웅하며 단단히 일렀다.
"관중은 개인적으로 내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장차 우리 제나라를 위해 유용한 인재다. 반드시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데리고 와라. 큰 상을 내리겠노라."
습붕이 물었다.
"만일에 노장공이 꼭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우겨대면 어떻게 하지요?"
포숙아가 대답했다.
"그럴 때면 관중이 독화살로 우리 주공을 쏘았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하라. 그래서 우리 주공이 손수 관중을 참하려 하신다고 하여라."
습붕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노나라로 갔다.
한편 노장공은 제나라에서 돌아와 겨우 한숨을 돌릴까 하는데 이번에는 습붕이 포숙아의 서찰을 가지고 왔다. 노장공은 서찰을 읽어 보고 즉시 시백을 불러 앞날을 상의했다. 시백이 대답했다.
"소백이 군위에 오르자 능히 사람을 모으고 적재 적소에 쓸 줄 알았기에 우리가 곤욕을 치른 것입니다. 옹름만 보아도 소백의 사람 쓰는 법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제나라 군위는 단단하게 안정되었습니다. 공자 규에게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이럴 때는 제나라의 요구대로 공자 규를 죽여 제나라와 강화하고 소백을 안심시켜 다시 예전의 우호를 되찾는 것이 우리 노나라를 위해서 상책입니다."
노장공은 공자 언을 불러, 생두 땅에 가서 제나라 공자 규를 죽이고 관중과 소홀은 잡아오라고 분부했다. 노장공은 일단 관중과 소홀을 죄수용 함거에 넣어 제나라로 압송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옥에서 사고가 생겼다. 소홀이 크게 통곡하고는 탄식하며 관중에게 말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해 죽으면 효도라 하고 신하가 임금을 위해 죽으면 충신이라 한다. 이는 모두 그 사람의 분수인 것이다. 나는 죽어서 공자 규를 따라 저승에 가겠네. 그대는 살아서 이 원한을 갚아 주게나."
그리고는 감옥 벽에다 머리를 짓찧고 두개골이 깨어져 쓰러지니 그대로 죽고 말았다. 관중이 이 모습을 보고서 두 눈을 내리뜨고 처연히 앉아 있는데 부양이 곁에서 위로했다.
"자고로 임금을 위해 죽는 신하도 있고, 살아야 할 신하도 있다 하지 않습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관중이 대꾸했다.
"어쩌다 이렇듯 궁한 신세가 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도 참으로 딱해서 그러네."
관중은 옥에서 나와 함거 속으로 들어가 갇혔다. 그때 시백이 관중의 기색을 살펴보고 조그만 목소리로 노장공에게 귀뜸하듯 아뢰었다.
"신이 알기로 관중은 대단한 인물입니다. 관상을 보면 그야말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범접키 어려운 상입니다. 아마 그의 재주가 저보다 열 배는 더 많으리라 봅니다. 그러니 제나라에 이야기하여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노나라에서 큰 벼슬을 내리어 이 곳에 살게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공(功)을 잊지 않고 노나라에 충성할 것입니다. 장차 관중의 공로로 우리 노나라가 크게 빛날 것입니다. 신이 확신합니다."
노장공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후는 관중을 죽이고자 했다. 그런데 우리가 벼슬을 주고 살린다면 그의 화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공자 규도 죽였는데...... 관중을 살려 둘 필요가 있을까."
시백이 다시 말했다.
"주공께서 관중을 우리 노나라 신하로 만들 의향이 없으시다면 아예 그를 죽이십시오. 그리고 그의 시체를 제나라로 보내면 될 것 아닙니까."
노장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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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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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지난 여름의 봉숭아꽃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였다. 봉숭아가 피기 시작할 떄부터 망설였다. 손톱에 꽃물을 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하고. 사실은 귀찮아서 생략하려고 생각했는데 냉동실을 열고 무엇인가를 찾다가 그 작은 봉지를 찾아낸 것이다. 조그만 비닐 봉지 속에 몇 개의 은박지 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바로 지난 여름의 봉숭아꽃이었다. 지난 여름의 봉숭아꽃. 그건 내가 언젠가 쓴 단편 소설의 제목이다. 늘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로 거기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제는 게으름까지 더해서 글쓰기를 잠시 멈추어 버린 내게 그건 참 쓰디쓴 추억의 제목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봉숭아 꽃물을 들이면서 생각하곤 한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꽃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데... 새삼스럽게 첫사랑 타령을 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첫사랑은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기 시작한 책, 내가 쓰기 시작한 책. 지금도 어김없이 매달려 읽고 있는 책과 글쓰기에서 나는 아마 평생을 달아나지 못할 테니까. 여름이 오면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면서 생각하곤 한다. 첫눈이 올 때 까지 손톱에 꽃물이 남아 있으면 정말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지난 여름에는 열 손가락 모두에 꽃물을 들였다. 그리고는 그 열 손가락이 손톱마다 붉게 물든 봉숭아 꽃물이 한동안 부담스러웠다. 결국은 한 줄의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말았다.
냉동실에서 찾은 봉숭아꽃은 지난 여름에 넣어 둔 것이었다. 친정 어머니가 봉숭아꽃을 따다 조그만 백반 덩어리를 얹어 주면서 말씀하셨다. "잘 찧어 은박지에 싸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겨울에 다시 꽃물을 들여라. 손톱에 물이 다 빠지고 겨울이 와 더 이상 봉숭아꽃을 구할 수 없을 때 말이야." 어머니 말씀대로 봉숭아꽃과 백반을 함꼐 찧어서 은박지에 잘싸고 비닐 봉지에 담아 냉동실 한쪽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지난 겨울 문득 생각났지만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글쓰기에 지치듯 꽃물 들이는 일에도 그만 지쳤던 것인지도 모른다. 올 여름에도 나는 손톱에 꽃물 들이기를 망설였다. 아직도 봉숭아 꽃물에 연연해 한다는 것이 철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봉숭아꽃을 따는 것도 귀찮고 그것을 찧어 손톱에 얹고 불편하게 밤잠을 자야 한다는 것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동실 한쪽에서 찾아낸 지난 여름의 봉숭아꽃이 내게 건네는 속삭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았다.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꽃물이 손톱에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질거라는 다정한 목소리...그건 희망의 소리였다.그래서 나는 또 손톱에 희망을 물들였다. 어릴 적에 호박잎으로 감싸 굵은 실로 칭칭 동여매던 생각을 하며 봉송아 꽃물을 들였다. 이제는 랩으로 싸서 비닐테이프를 붙이면 간단하다. 하지만 옛날처럼 숯이나 백반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빛깔을 진하게 내기 어려워 서너 번 되풀이한다. 딸이 있다면 함께 봉숭아 꽃물을 들일 텐데, 아쉽게도 내게는 딸이 없다. 재문이가 어렸을 때는 장난 삼아 함께 들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절대 손톱을 내밀지 않는다. 내가 만일 엄마랑 봉숭아꽃물 들일까 하고 묻는다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손톱을 들여다보니 꽃물이 제법 곱게 들었다. 손톱을 들여다보며 혼자 웃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친정 어머니가 두손 가득히 봉숭아꽃을 들고 서 계셨다. 친정 어머니와 나는 아주 가까이 살고 있다. 걸어서 일분이 채 안되는 거리에 살기 때문에 아무때나 물을 열고 들어오시는데, 오늘은 두손 가득 담긴 봉숭아꽃 때문에 열쇠를 열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꽃물이 든손을 내밀며 벌써 꽃물을 들였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물으셨다. "어떻게? 봉숭아꽃이 어디 있어서?" 지난 여름의 봉숭아꽃을 냉동실에서 찾았다는 내 대답에 어머니가 잔잔하게 웃으셨다. 어머니 손에서 봉숭아 꽃을 받아들며 나는 생각했다. 이것도 냉동실에 잘 넣어야지. 올 겨울에는 잊지말고 꽃물을 들여야지. 손톱의 봉숭아 꽃물은 희망이니까. 꽃물처럼 곱디고운 희망이니까. 그렇다. 내게 있어 손톱의 봉숭아 꽃물은 희망이다. 예순이 훨씬 넘은 어머니가 마흔이 조금 넘은 딸에게 건네는 곱디고운 희망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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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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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이 주는 고즈넉한 평화와 기쁨. 주일만큼이라도 평일에 숨차게 뛰었던 자신을 쉬게 해주고, 필요한 영적 활력을 채워 주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나를 위해서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야 남을 위한 배려나 봉사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탁 트인 바다와 수평선을 바라보는 내 마음엔 그래로 푸른 시와 기도가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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