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17호
2022.7.27 (음 6.29)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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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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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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賞에 관해 누구나 알아둬야 할 한 가지 일은, 모차르트가 생전에 아무런 상도 타 본 적이 없다는 사실.
―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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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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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언어의 주인
개념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공정’이 뭔지, ‘가족’이 뭔지, ‘사랑’이 뭔지. 어디까지 공정하고 어디부터 공정하지 않은지 말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평소에는 뿌옇고 희미한 채로 놔둔다. 그러다가 때가 차면 개념을 문제 삼게 되고 다툼과 혼란이 생긴다. 새로운 길로 향하는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흔치 않다.
여하튼 공공언어에 대한 공식 정의는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 산하 공공기관 등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이다. 공무원들이 국민을 대상으로 생산하는 모든 언어란 뜻이다. 이에 따라 쉬운 공공언어를 쓰라면서 교육 홍보, 실태조사, 격려와 주의 조처가 잇따른다.
하지만 공무원 언어만을 공공언어의 반열에 올려놓으면 문제가 생긴다.
첫째, 공공언어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 공무원 언어가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쯤으로 이해하게 된다. 공공언어는 다층적이다. 공공언어는 마을 골목에서 도서관, 공원, 학교, 관공서, 군대, 신문·방송, 정치에 이르기까지 규모와 성격이 다른 공간에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실행된다.
둘째, 언어정책에 왜곡을 가져온다. 공무원 언어에만 집중하면 공공언어에 대한 입체감 있는 정책을 외면하거나 뒤로 미루게 된다. 평등한 언어 사용은 공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개인의 언어 역량과 사회적 감수성 문제다.
셋째, 공공 영역에 개인이 관여할 여지를 차단한다. 개인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언어 생산자다. 언어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한다. 공공언어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다. 관점을 바꾸면 할 일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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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는 빠져!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은 안 바뀐다.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 관료주의로 똘똘 뭉친 국가권력은 구습을 못 버린다. 여전히 국민은 계도의 대상, 어르고 달랠 민원인. 언어정책도 마찬가지다. 공공언어 정책은 개념부터 계몽적이다.
지난 칼럼에 썼듯이 국가는 공공언어를 ‘공무원들이 생산하는 언어’로 한정하여 공공성을 왜곡하고 언어정책을 쪼그라뜨렸다. 개념을 축소하니 할 일은 명쾌하다. 행정용어를 순화하고 누가 보도자료를 더 쉽게 썼는지 순위를 매기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행정언어 이외의 말은 관심 밖이다. 말하는 주체의 다양성, 말하는 공간의 복잡성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물론 공무원 언어의 ‘질’을 높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하긴 해도 충분하진 않다. 공공 영역은 개인 담화를 넘어선 뭔가 더 높은 차원의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는 곳이다. 공공언어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사회적 관계 자체에서 벌어지는 언어적 소란이다. 공공언어 정책은 말의 통제나 단속에 있지 않다. 도리어 공공 영역에서 벌어지는 언어적 소란이 적정한 합의에 이르도록 말문을 터주고 사회적 격차에 따른 말의 격차를 좁혀주는 역할을 찾는 일이다. 이를 위해 모든 개인이 공공 영역에서 자신을 잘 표현할 줄 알고 기존 언어를 비판하고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내는 ‘진짜 문해력’을 어떻게 기르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엄격한 감시자가 아니라 유연한 촉진자가 필요하다. 누가 좋을까? 나를 포함한 언어학자들은 지나치게 완고하고 말 자체에 매몰되어 있다. 한 5년 정도 언어학자들은 뒤로 빠져 있으면 안 될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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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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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야(凍夜) - 김수영
壁 뒤로 퍼진 遠近 속에
밤이
가벼웁게 개울을 갖고
개울은 달빛으로 얼음 위에
얼음을 놓았는데
너무 고요해서 잠에서 깨어나
내가 비는 것은
이 무한한 웃음의 가슴속에
그 얼음이 더 얼라는
來日의 呪符이었다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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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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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빙인(月下氷人)
- 월하노(月下老)와 빙상인(氷上人)이 합쳐진 말로, '결혼 중매인'을 일컬음.
《出典》'續幽怪錄' / '晉書' 索眈篇
⑴《續幽怪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당나라 2대 황제인 태종(太宗) 때, 위고(韋固)라는 젊은이가 여행 중에 송성(宋城 : 河南 省 所在)에 갔을 때, '달빛 아래 한 노인[月下老]'이 손에 빨간 끈[赤繩]을 든 채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위고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묻자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세상 혼사에 관한 책인데, 여기 적혀 있는 남녀를 이 빨간 끈으로 한 번 매어 놓으면 어떤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네."
"그럼, 지금 제 아내감은 어디에 있습니까?"
"음, 이 송성(宋城)에 있구먼, 성 북쪽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진(陳)이란 여인네의 어린 아이야."
위고는 약간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뒤 상주(尙州 : 하남성)에서 벼슬길에 나아간 위고는 그곳 태수(太守)의 딸과 결혼했다. 아내는 17세로 미인이었다. 어느날 밤 위고가 아내에게 신상(身上)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실은 태수님의 양녀입니다. 친아버지는 송성에서 벼슬을 사시다가 돌아가셨지요. 그 때 저는 젖먹이였는데 마음씨 착한 유모가 성 북쪽 거리에서 채소 장사를 하면서 저를 길러 주었답니다."
⑵《晉書》'索眈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晉)나라에 색탐(索眈)이라는 점쟁이가 있었다. 어느날 영고책(令孤策)이라는 사람이 몽 점(夢占)을 치러 왔다.
"꿈 속에서 나는 얼음 위에 서서 얼음 밑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색탐(索眈)은 이렇게 해몽(解夢)했다.
"얼음 위는 곧 양(陽)이요, 얼음 밑은 음(陰)인데 양과 음이 이야기 했다는 것은 '얼음 위에 선 사람[氷上人]'인 그대가 결혼 중매를 서게 될 조짐이오. 성사(成事) 시기는 얼음이 녹는 봄철이고…."
그 후 얼마 안되어 과연 영고책은 태수의 부탁을 받고 태수의 아들과 장(張)씨의 딸을 중매 서서 이듬해 봄에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동의어】월하노(月下老), 빙상인(氷上人), 빙인(氷人)
【유사어】적승(赤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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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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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우리는 다시 공자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적어도 일단 이런 복잡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군자는 <자기가 말한 것을 우선 실행한 뒤에 그 다음을 이어가는 것이다> 인 자체, 즉 그것이 적극적인 특성, 그 용어의 정의, 아니면 적어도 인한 사람의 몇몇 결정적인 특징에 관해서 우리가 공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까? 몇몇 단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 단서 중 가장 명확한 것들은 십중팔구 공자 자신의 언급 중에서 후기에 속하는 것이요, 어느 경우에는 정말 공자의 말씀으로 보기에는 불확실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나는 <논어> 중에 후대에 작성된 부분에서 인한 사람의 특성으로 묘사된 좀 상투적인 몇몇 덕목들에 대해서는 가볍게 넘어가려고 한다. <공손한>, <부지런한>, <충성스러운>, <용감한>, <너그러운>, <친절한> 등등의 표현들은 우리에게 어떤 통찰이나 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전통적인 덕목들이다. 더우기 이들 후대의 언명들, 특히의 경우에 대한 진위 문제를 접어 둔다 해도, 앞에서 우리가 이미 주목했던 것처럼, 공자가 여러 번 그러한 덕을 소유하는 것이 인한 사람이 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했기 때문에 (위에서 열거된) 그런 덕목들은 결정적인 것이 못된다.
일련의 언명들 중에는 인의 특성을 매우 뚜렷하게 드러내 주지못하고, 매우 의심스러운 언명이 있는데, 그런 부류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옹야>의 언명이라고 하겠다. 웨일리가 지적했듯이, <논어> 원문의 후반부는 도가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으며 아마도 혼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인한 사람은 인함에 만족하는 반면, 앎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인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또한 인한 사람은 조용하며 장수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인 자체의 특성을 가장 구체적으로 규정해 주고 또한 (그것의 이해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언명들에 주목해 보기로 보자.
자신이 입신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입신시키도록 하라. 나아가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나아가게 하라. 자기에게 가까운 것으로부터 유비를 얻는 것 (즉 이웃을 자신처럼 여기는 것) 여기에 인의 길이 있다.
자신을 극복하여 예에 귀의하는 사람은 인하다.
앞의 두 언명에서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밀접히 연결된다. 첫 번째 예문에서는 사람 사이의 일반적인 상호 신뢰에 구체적인 내용이 부여된다. 그것은 예에 의해 상세히 규정되는 구체적 사회 관계의 틀이다. 요컨대 예 속에 정의되어 있는 특정한 형식들을 통해서 상호간의 신뢰와 존중이 표현되는 곳에 인의 길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와 인은 같은 것의 양면인 것이다. 각각은 인간을 뚜렷하게 인간답게 만드는 역할에 이바지하는 인간 행위의 (각각) 한 측면을 지시하고 있다. 예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행위나 관계들에 대한 전통적인 사회적 패턴에 주의를 돌리게 한는 것이며, 인은 그런 행위의 패턴을 추구함으로써 그러한 관계들을 유지하고 있는 그런 사람에게 주목을 하게 한다. 예는 불변하는 규범을 예증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신분에 맞는 특정한 행위를 지시하며, 인은 인간됨의 방향성을 분명히 나타내는, 즉 예의 규정대로 행위하겠다는 그 사람의 심지를 명백하게 표현하는 행위와 연관된다. 예는 한 행위자의 단일하고 개별적인 몸짓, 즉 그런 몸짓을 하는 오직 그 한 개인과 그런 특수 행위가 늘어나는 오직 그 하나의 앞뒤 맥락과 연관하여 그 사람 자신이 특정적, 개별적으로 하고 있는 몸짓과 연관되는 것이다.
(이런 공자 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이) 우리 (서양인)들에게 좀더 친근한 서양의 용어로 표현될 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 (서양인)들은, 내가 앞서 설명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은 바로 마음의 태도, 감정, 소망, 의지와 연관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식의 (번역) 용어들은 오해를 야기시킬 수 있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용어를 (개개인의) 심리적 차원의 문제로 보는 일이다. (공자의 이런 핵심적 개념을 전혀 개인의 심리상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새로운 시각에서) 이런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첫번째 단계는 인 및 그와 관련된 다른 <덕목>들, 그리고 예라는 것 등은, <논어> 원문에서 <의지>, <감정>, <내심의 상태>라는 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일이다. 어느 한 사람과 연관된다는 <그런 이유 때문에> 인을 바로 그 사람의 내적 심리 또는 정신적 상태 또는 그 진행 과정을 지시하는 인으로 치환하는 것에 대비될 만한 것을 <논어>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확실히 그러한 연관 관계에 대하여 체계적으로나 또는 비체계적으로나 전혀 공들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위의 논지에 대해 유일하게 명백한 예외는 <자한>, 9:28과 그것이 반복된 <헌문>, 14:30에서 볼 수 있다. 두 구절에서 인한 사람은 우(불행한, 근심스러운, 걱정스러운)하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그 문장의 앞뒤 맥락은 이것이 (인에) 우연하게 부수되는 속성이 아니고 오히려 (인의) 특성을 본질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명백히 내적이고 주관적인 언급때문에, 그리고 여기에서 인에 대한 핵심적인 어떤 의미가 다루어지고 있다고 시사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중요한 문장들과 우라는 용어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 두 문장의 내부 구조는 평범한 음운상의 대구를 이루고 있다. 세가지 중심 미덕(지, 인, 용)이 언급되고 있고, 똑같은 문법적 구조 형식으로 가가의 덕목이 부정적인 단일 어구로 규정되어 있다. 지자는 당혹해 하지 않고, 용자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인자는 우하지 않는다, 거의 동어 반복적인 성격의 앞의 두 구절은 거의 같은 방법으로 <인한 사람은 우하지 않는다>를 받아들여야 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는 인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추정해 보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의 의미를 더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일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그것은 이 논의의 주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그리고 확증-을 제시해 줄 것이다.
우가 쓰여 있는 <논어>의 다른 문장을 보면 어떤 문장은 번역하는 사람마다 번역이 다르고 또 같은 번역자라도 문장마다 다르게 번역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레그는 <슬픔>으로 번역했는가 하면, 웨일리는 <걱정>으로, 레슬리는 불어의 <희한하다>와 <당혹함>으로 번역했다. 또 <술이>, 7:18에서는 <슬픔>으로, <비통>으로, <근심>으로, <고뇌>로 되었다. 그러한 유형은 게속 반복된다. 분명히 번역자들은 완전히 일치를 볼 수 없는 한문 용어에 대해 적절하고 특정한 유럽의 용어를 무엇으로 정할까 고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용례들 중에 공통 분모가 있는지를 보면, 모든 용례에서 우는 골치 아픈 상태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골치 아픔>이라는 말은 마음이 <불안정하고>, <평정하지 않으며>, <혼란스러운> 의미를 내포허며 따라서 <우선 먼저 불길하고 불쾌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함축된다. <슬픔>, <근심>, <비통>과 같은 번역들에는 사람 개개인의 주관적 심리 상태, 격정과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에 강조를 두는 것이다. 서양인에게는 이런 식으로 볼 때 의미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따라서 인한 사람이 대체로 우하지 않은 사람에 상응한다면 인은 우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인이란 하나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심리적인 용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우가 사용되는 문맥을 따라, <논어>의 원문을 검토해 보면 우리는 다른 그림을 얻게 된다. <위정>,2:6에는 부모가 자식의 병에 대해서 우한다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객관적이고 불길한 걱정거리, 즉 일정 상황에서의 객관적인 불안감과 연관되어 특정지어진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말하자면 부모들의 (객괸적인) 걱정거리에 대한 대응은 걱정스러운 (객관적 사실적인) 대응인 것이다. 서양인들은 이런 대응의 <걱정거리>를 아주 쉽고도 자연스럽게 <내적인> 심리 상태로 한정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억지로라도 이 <논어>의 원문을 직접 보고 나서, 적어도 이 구절에는 심리적으로 내적인 도는 주관적인 어떠한 뜻을 풍기는 말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아이의 병은 (객관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태요, 부모의 걱정이 담긴 대응 또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태라고, 우리는 진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문 텍스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무언으로 전제하고 있는 상념이 바로 부모의 걱정된 모습이야말로 걱정스런 '내심의' 상태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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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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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5장
4. 새 임금이 누구냐
무지, 옹름에게 죽다
한편 옹릉은 연칭과 관지부가 서둘러 고혜의 부중으로 달려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 비수 한 자루를 품에 감추고 궁중으로 갔다. 그가 무지 앞에 나아가 거짓으로 화급한 듯이 일을 꾸며 아뢰었다.
"지금 급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공자 규가 노나라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온다 합니다. 조만간에 임치성을 둘러 빼고 새 임금으로 오르겠다 큰소리 친다 합니다. 속히 계책을 세우고 싸울 준비를 하십시오."
이 말을 듣자 무지는 덜컥 겁이 났다. 황급히 일어나 좌우에 분부했다.
"어서 연칭을 불러라. 속히 찾아오너라."
옹름이 대답했다.
"연칭과 관지부 장군께서는 야외로 나갔습니다. 지금 조당(朝堂)에 대부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임금과 상의하고자 기다립니다."
무지는 이 말을 믿고 대부들이 기다리는 조당으로 향했다. 과연 조당에는 대부들이 모여 있었다. 무지는 임금이 앉는 상좌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 때 대부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무지는 의아해서 잠깐 멈춰 섰다. 그 때였다. 옹름이 품 속에서 비수를 꺼내더니 무지의 등을 찍었다. 무지는 외마디 비명도 크게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져 죽었다. 대부들은 재빨리 병풍처럼 둘러섰다. 조당을 경비하던 병사들은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무지 옆을 따르던 내시 하나가 기절할 듯이 놀라서 내궁 쪽으로 달아났다. 그는 즉시 연부인에게 달려가 사실을 고했다. 연부인은 일이 잘못 됐음을 알았다. 연비는 기구한 운명을 탄식하며 대들보에다 목을 매고 자살했다. 옹름은 무지가 죽은 것을 재삼 확인한 후 궁중 뜰에 장작을 쌓게 하고 불을 피웠다. 검은 연기가 공중으로 마구 퍼져나갔다. 이 때 고혜는 계속해서 연칭과 관지부에게 술을 권하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문득 바깥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지키던 자가 들어와 고혜의 귀에다 대고 조그만 목소리로 무엇을 알리고는 사라졌다. 고혜가 말했다.
"두 분 영웅께서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집안일이 생겨서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고혜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연칭과 관지부가 무슨 일인지 물어볼 겨를조차 없었다. 때맞춰 이제까지 벽장속에 숨어 있던 자객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그들을 덮쳤다. 방 안에서 으악! 하는 비명 소리가 두 번 들렸다. 이어 연칭과 관지부를 따라왔던 시종들도 모조리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옹름과 대부들은 속속 고혜의 부중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연칭과 관지부의 목을 잘라서 선군의 신위 앞에 놓고 제사를 지냈다. 동시에 사람을 고분 땅으로 보내어 제양공의 시신을 찾아 오게 했다. 그들은 파온 시신을 제대로 염하고 빈소에 모셨다. 그 후에 새로 군위에 누구를 앉힐 것이냐는 회의를 열었다.
"공자 규가 연장자이니 마땅히 그를 세워야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부 옹름과 여러 대부들이 지지했다.
"아닙니다. 이렇듯 임금이 번갈아 살해당하는 등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소백 공자처럼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위엄이 있는 임금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의견이 또 있었다. 대부 습붕과 동곽아 등이 이를 지지했다.
노나라의 모사, 시백
두 의견은 팽팽하게 맞섰다. 그런데 대부 옹름은 이미 심복 부하를 시켜 노나라에 심부름을 보내놓고 있었다. 그는 궁궐에서 불이 오르는 걸 보거든 즉시 노나라로 가서 공자 규에게 이 사실을 전하라는 지시를 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부 습붕도 회의에 들어가기 앞서 심복을 불러 곧 거나라로 가서 공자 소백에게 빨리 귀국하라는 전갈을 전하도록 지시를 했다. 이렇듯 양쪽에서 각각 은밀히 일을 꾸미고 있었다. 한편 노장공은 공자 규를 군위에 모시려고 제나라에서 사람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크게 기뻐했다. 곧 생두 땅으로 사람을 보내 이 소식을 전하게 했다.이야기는 몇 달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공자 규가 노나라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그 때 노장공은 군사를 일으킬 것인지를 시백(施伯)에게 물었다.
"지금 제나라를 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시백이 그 불가(不可)함을 적극 진언했다.
"제는 아직도 강하고 우리는 약합니다. 제나라 군위가 흔들리면 우리에게는 다행입니다. 또 기회가 와서 우리가 제나라 임금을 세워 주게 되면 생색이 납니다. 우리 노나라에는 손해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공께서는 어이하시어 군사를 일으키려 하십니까. 일단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나라의 돌아가는 모습을 관망하십시오."
노장공은 시백의 말을 듣고, 일단 군사를 일으키는 일은 뒤로 미룬 후 공자 규에게 좋은 말로 위로하고 생두 땅에다 거처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한편 문강은 제양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에 축구 땅에서 노나라에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밤낮없이 아들인 노장공을 들볶았다.
"어서 군대를 일으켜 제나라로 쳐들어가지 않고 무얼 하느냐. 나는 무지란 놈을 잡아다 주리를 틀고 죽을 때까지 매질이라도 해야 이 분이 풀리겠다. 어서 원수를 갚지 않고 무얼 하느냐."
이럴 때에 공자 규의 일행이 노나라로 오자 문강은 공자 규를 부둥켜 안고 한바탕 통곡했다.
"어찌하여 동생은 그 무지란 놈을 그냥 두고 왔는가. 그 도적 불한당 같은 원수놈을....... 흐흐흑."
공자 규가 달랬다.
"고정하십시오. 곧 힘을 모아서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그래서 누님에게 온 게 아닙니까."
문강은 다시 노장공을 힐책하고 흐느껴 울었다.
"어서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무얼 하느냐. 규를 앞장 세우고 제나라로 가면 제나라 백성, 백에 구십 명이 무지를 버리고 호응할 텐데 어찌 가만 있단 말이냐. 내 어찌 지하에 계신 오라버니에게 낯을 들 면목이 있단 말이냐. 흐흐흑......."
그래서 참다 못한 노장공이 시백에게 군사를 일으킬 것인가를 물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무지가 죽고, 대부들이 모여 새로 공자 규를 군위에 모시기 위하여 사람을 보냈다는 것을 알자 문강은 더욱 노장공을 들볶았다.
"규를 그냥 보내면 위험하다. 혹 무슨 변괴라도 있으면 그 때 어찌할 거냐. 군사를 일으켜 그를 호위하고 제나라까지 가서 군위에 오르는 걸 확인하고 오너라."
노장공은 어머니 문강의 성화를 도저히 견디다 못해, 드디어 예전부터 절대로 안 된다던 시백의 말을 무시하고, 친히 병차 3백 승을 징발하여 조말을 대장, 진자와 양자를 좌우 부장으로 삼고 공자 규를 호위하여 제나라로 향해 떠날 만반의 채비를 갖추었다. 관중이 급히 달려와 노장공에게 청했다.
"지금 제나라 조당에서는 새로 군위를 세우는데 공자 규로 할 것이냐, 공자 소백으로 할 것이냐로 나뉘어져 의논중에 있다 합니다. 그런데 공자 소백은 지금 거나라에 있습니다. 따라서 귀국하려 한다면 우리 규 공자보다 이틀이나 빠를 수 있습니다. 만일에 소백이 먼저 입국하여 대부들의 호응을 얻는다면 고약한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신에게 좋은 말과 약간의 병사를 내주십시오. 제가 먼저 임치성에 가서 뒤탈이 없도록 일을 성사시켜 놓고 군후와 공자 규를 영접하겠습니다."
노장공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되물었다.
"무장한 군사 몇 명이면 되겠는가?"
"병차 10승만 있으면 되겠습니다."
노장공은 두말 않고 병차 10승을 관중에게 내줬다. 관중은 사은하고 궁에서 물러나오자 곧 제나라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서둘러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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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액자 높이 정하기
액자의 높이를 어느 정도로 해서 걸어야 할 것인가를 두고 남편과 나는 잠시 다투었다. 남편은 한 뼘쯤 위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고, 나는 그렇게 하면 너무 높다고 종알거리며 팽팽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팽팽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결혼의 숨겨진 의미가 아닐까. 나는 지금 남편이 경쾌하게 두드려대는 망치 소리를 들으며, 식탁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액자를 거는 높이에 대하여 한동안 옥신각신하다가 간신히 타협을 끝낸 직후이다. 사실, 이처럼 한가하게 글을 쓸 여유가 요즘 내게는 없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팔 년 만에 다락에서 잠자고 있던 짐 보따리까지 모두 끄집어 내 풀어 해치고, 집 수리를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황당하기까지 했으나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이므로 한숨 돌릴 여유는 있다. 하지만 결혼 예찬을 읊조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짐 정리하느라 상처 투성이가 된 손, 팔 년 동안 쌓인 삶의 먼지를 털어내느라 부스스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 어떤 가락으로 결혼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것인가. 짐보따리 속에서 간신히 원고지를 꺼내놓고 앉아, 나는 잠시 이 글을 쓰기로 한 것을 후회하였다. 글을 쓰기보다는 책정리, 옷정리, 자질구레한 삶의 자락들을 정리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아들 녀석의 몽당연필 을 들고 앉아 이 글을 쓴다. 삶이 고통스러우나 아름다운 것이듯 결혼의 의미도 바라보는 순간과 방향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잠깐이고 고뇌는 비록 힘겨울지라도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이 분명하므로. 팔 년만에 다락에서 꺼낸 짐 보따리 속에서 그 뿌연 먼지 투성이 속에도 숨어있는 자잘한 행복의 순간들을 발견하고 나는 혼자 웃었다. 우리 재문이가 꼬맹이때 이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무렵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아예 풀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다락에 던져 두었다. 그 짐 보따리들을 풀어헤치는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시간속으로 날아간 것 같았다. 그 속에는 나의 어설픈 신혼일기도 있었고, 재문이가 쓰던 유아용 이유식 그릇들도 있었다. 빛깔이 퇴색한 결혼 축하카드도 있었고, 재문이의 백일을 축하한다는 이모들의 예쁜 카드도 몇 장 들어 있었다. 그것들을 풀어헤치며 나는 웃었다. 아, 삶이란 바로 이론 것이구나. 묶어두면 추억이 되고, 풀어헤치면 바로 그 순간 생생하게 되살아나 새로운 의미를 주는 것이로구나. 아아, 결혼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어설픈 신혼일기와 우리 꼬맹이의 예쁜 어린 시절을 어느 날 문득 되살릴 수 있도록 귀찮더라도 가끔은 집수리를 해야 하는 것이로구나. 그대로 주저앉으면 편안하지만 힘들고 어렵더라도 바삐 움직이면 움직인 만큼 그 속에서 행복의 포도송이들이 알알이 영그는 것이로구나. 액자를 걸어놓고 이제 됐느냐며 남편이 묻는다. 아주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미소 짓는다. 집수리를 하느라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상처투성이가 된 그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런 조그만 느낌들이 모여 결혼의 행복을 이루는 게 아닐는지... 커튼의 빛깔을 정하기 위하여 잠시 후 또다시 아옹다옹 팽팽한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보게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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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6
바쁨 속에도 기쁨과 평화가 있다. 유순한 마음, 좋은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할 때는 정신없이 바빠도 짜증이 나지 않고 즐겁다. 나의 삶이 노래가 된다는 것은 그럭저럭 시간을 메우는 데 있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정성껏 살아가는 데 있는 것이다.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리는 젊음이지만 비록 나이가 들더라도 가슴엔 노래가 흐르게 하라. 혼자 있어도 즐거울 수 있는 노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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