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05호
2022.7.12 (음 6.14)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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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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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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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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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은 아무도 몰래 수천 개의 알을 낳지만 암탉이 알을 낳을 때면 온 동네가 다 안다.
― 말레이지아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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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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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근로
우리는 일을 통해 삶을 유지하고, 여기서 생긴 여유와 축적을 바탕으로 문화를 일군다. 이렇게 삶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쏟아 활동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노동’이라고 한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 재화를 생산하며, 소비를 통해 휴식을 하면서 힘을 다시 채워 넣는다.
이 노동을, 주어진 일자리에서 일정한 조건과 계약에 따라 품을 팔아 일하면 보통 ‘근로’라고 일컫는다. 대개 ‘근로소득세’를 내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니 농민과 주부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도무지 ‘근로’의 범주에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근로라는 말은 일정한 고용 조건을 전제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5월1일은 국제적으로 ‘노동절’(혹은 메이데이)이다. 착취당하기 쉽고, 배움의 기회를 놓치기 쉬우며, 경제 위기에 쉽게 상처받고, 가족의 안정이 쉽게 흔들리는 노동자 집단이 국제적으로 서로 연대하며 함께 단결을 다지는 날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날을 굳이 ‘근로자의 날’이라 달리 부른다. 한때는 미국처럼 날짜도 달리했다. 노동자들의 유대를 못마땅해하던 지난날의 폐습이다.
우리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개념을 말할 때는 툭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을 내세운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노동절’이라는 단어야말로 가장 널리 알려진 국제 표준어에 가깝다. 고용계약서가 있건 없건, 근로소득세를 내건 말건, 소득의 높고 낮음을 떠나 우리가 매일매일 공들이는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되돌아보자. 세상의 온갖 가치와 의미는 누군가의 노동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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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와 신조어
상품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소비를 더 자극하고 또 나아가 초과 수요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아마도 ‘일회용 상품’의 개발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었을 것이다. 반창고에서 시작하여 주사기, 면도기, 기저귀, 칫솔 등 갖가지 상품을 한번만 쓰고 버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찍히기도 한다.
잘 쓰이던 어휘 중에도 점점 사람들 입에 잘 안 오르는 말들이 있다. 각종 신조어와 유행어들이다. 일부는 꽤 긴 수명을 누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추억의 여운만 남기고 서서히 사라져간다. 초창기 인터넷 사용자들이 사용했던 ‘아햏햏’이라는 표현은 지금은 무슨 외국어처럼 느껴진다. 또 반려견을 가리키던 ‘강쥐’라는 말은 요즘은 주로 애호가들 사이에서나 근근이 쓰인다.
비록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사회 분위기의 변화로 사용하기에 거북하게 느껴지는 말도 있다. 한때 자주 쓰이던 ‘얼짱, 몸짱’이나 ‘얼꽝’도 양성 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쓰기 머쓱해진 추억의 신조어들이다. 좀 ‘꿀꿀한’ 기분을 드러내던 ‘뷁’도 이젠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다.
우리는 이런 수명 짧은 말을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도 우리의 일상생활의 사소한 구석구석을 지켜주는 의미 있는 기능을 한다. 웅장한 영화에 등장하는 단역 배우도 그 나름 중요한 배역이 있듯이 신조어나 유행어도 언어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일회용 상품은 환경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일회용 어휘는 뻔하고 뻔한 언어 세계를 생동하는 생태계로 만드는 자원의 하나인 셈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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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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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冬麥) - 김수영
내 몸은 아파서
태양에 비틀거린다
내 몸은 아파서
태양에 비틀거린다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광선의 미립자와 분말이 너무도 시들하다
(압박해주고 싶다)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에서는
나는 비틀거리지도 않고 타락도 안했으리라
그러나 이 눈망울을 휘덮는 싯퍼런
작열의 의미가 밟허지기까지는
나는 여기에 있겠다
햇빛에는 겨울보리에 삭이 트고
강아지는 낑낑거리고
골짜기들은 평화롭지 않으냐-
평화의 의지를 말하고 있지 않으냐
울고 간 새와
울러 올 새의
적막 사이에서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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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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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대토(守株待兎)
/ 변통할 줄 모르고 어리석게 지키기만 함. 《出典》'韓非子'
송(宋)나라에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오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는 것을 보았다. 덕분에 토끼 한 마리를 공짜로 얻은 농부는 농사일보다 토끼를 잡으면 더 수지가 맞겠다고 생각하고는 농사일은 집어치우고 매일 밭두둑에 앉아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오기만 기다렸다.[守株待兎]그러나 토끼는 그곳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농부 자신은 송(宋)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밭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농사를 망친 것은 물론이다.
宋人 有耕田者 田中 有株 ?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 而守株 冀復得? ?不可不得 而身爲宋國笑.
한비자(韓非子)는 요순(堯舜)을 이상으로 하는 왕도(王道) 정치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들었다. 그는 시대의 변천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라고 보고 복고주의(復古主 義)는 진화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주장하면서 낡은 관습을 지키며 새로운 시대에 순응할 줄 모르는 사상 또는 사람에게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적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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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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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1장
인은 멀리 있는가? 우리가 원하면, 그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인을 좇을 것이다.
아무런 억지 없이 다스린 사람은 순임금이니, 그가 무엇을 했겠는가! 자신을 받드는 마음으로 남면(즉 통치자의 적절한 예)을 했을 뿐이로다. '즉 그 나라의 모든 일이 탈없이 순조로왔음'
그 자체 만져 볼 수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분명히 드러나지도 않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모든 일을 항상 무리 없이 훌륭하게 이루어 내는 것이 신묘한 부분이다.
올바로 처신하면, 다른 명령을 안해도, 일은 잘 되어 나간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굽히게 된다.
덕으로 다스림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자기 자리에 있으나 뭇 별이 그를 둘러싸고 도는 것과 같다.
이 인용문들에 대한 주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듀벤다크의 언급처럼, <위정>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신비적 의미>는 <잘못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거나, <위령공>의 순임금의 예식을 드리는 모습은 <신묘한 힘이 최고에 달한 상태>라고 간단히 지적할 수 있다. 요컨대, 이런 부분들이란 <논어>에 남아 있는 순수한 <미신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논어> 주석가들은 공자를 보다더 <좋게 이해하려는 쪽으로>, 말하자면 우리들 (현대인들)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개념을 통하여 공자의 철학적 주장의 타당성을 최대로 입증하려고 하였다. 이들 주석가들의 이런 노력의 결과 <논어>에 있는 신비주의적 언급들은 축소될대로 축소되어 더 이상 원상을 읽어 내기 어렵게 되었다. 주문을 외우거나 예식을 올리는 몸짓을 통하여 정말 올바른 행동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진지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우리 시대의 당연한 공리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공리의 일반적 수용에 중요한 예외가 현대의 <언어 분석> 철학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의 중요한 의미는 아직 전문적 철학의 세계 밖으로까지는 별로 진척되지 못하였다'
현대인의 기호에 전혀 맞지 않는 신묘함이나 경이의 뜻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희석될 수 있다. <논어>의 3-8장만이 가장 <논어다운> 부분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내가 인용한 공자의 말씀은, 때때로 공자 정신에 어긋나는, 전술된 텍스트에 삽입된 구절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묘한 요소는 아주 완벽한 군주에게만 적용되는 극히 제한적인 의미만을 가질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신묘함>에 대한 언급을 <불식하려는 해석>의 또 다른 가능성이란, 공자는 (시의 적절하게) 좋은 예를 제시하는 (주술식이 아닌) 다른 식의 친화력을 강조하고 극대화했다고 가정해 보는 일일 것이다. 요컨대, 이런 관점에 따른다면, <신묘한 힘>과 관련된 (<논어>의) 언급들을 우리는, (공자가 지리한) 산문적 진리를 운문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간주해야만 할 것이다. 끝으로, 공자는 이런 문제에 수미 일관된 논리를 갖지 못하였거나, 아마도 그의 주장의 핵심은 주로 신비 적대적(antimagic)이었지만, 그는 뿌리깊게 박힌 전통적인 (즉 주술적, 미신적) 믿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주석들은 인간의 덕에 대한 주술적 차원의 가르침을 20세기 문명인이 수용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보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신묘함(magic)을 아예 해석해서 지워 버리거나, 또는 (공자를 2,500여 년 전의 인물로 생각한다면 그가 말하는) 신묘함이라는 것도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양해될 수 있는 실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분명한 의미 (즉 신묘함이 갖는 의미)를 우리들이 수용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면 나는 차라리 이 문제에 관하여는 우리 (현대인)들이 오히려 공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여지가 아직도 있다고생각하고 싶다.
나와 입장을 달리하는 여러 주석들과의 논쟁에 말려들기 보다는, 차라리 나는 지금부터 내가 보기에 순수하고 건전한 공자의 신묘한 인간에 대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개진해 보고자 한다. 나의 해석이 모든 다른 해석을 배제할 만큼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와 같은 창조적 철학자가 자기가 말한 것의 모든 가능한 의미들을 정확하게 밝혔다거나 그의 여러 가능한 의미들 가운데 다른 의미들은 모두 사상하고 오직 하나의 의미만을 의식적으로 강조했으리라고 생각해야 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공자의 신묘한 가르침이 갖는 많은 의미 중에서, 아래의 우리의 논의에서 세련되게 다듬어질 하나의 의미가 신뢰할 만한 핵심적인 공자 사상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이 제대로 평가되고 이해되지 못해 왔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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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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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4장
2. 노환공의 죽음
노나라에 보내진 비밀 편지
노나라에서는 아직 노환공이 죽은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런 데 어느 날 밤, 한 낯선 사내가 대부 신수의 집에다 한통의 서찰을 전하고 사라졌다. 신수는 그 서찰을 본 후 파랗게 질려서 곧 모사 시백(施伯)의 부중으로 달려갔다.
"주공께 변고가 생겼소.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오."
신수는 제나라에서 온 서찰을 시백에게 보여 주며 한시가 급하다고 다급하게 재촉했다. 시백은 서찰을 읽고 나더니 신수를 달랬다.
"서두르시면 주변이 놀랍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 백성을 무장시켜서라도 제나라로 쳐들어가고 싶소만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제나라에서 공식으로 통보가 올 때까지 비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사람은 일단 몇 가지 대책을 상의한 후 동궁(東宮)으로 갔다. 마침 세자 동(同)이 있었다. 신수가 세자에게 아뢰었다.
"제나라에 가신 주공의 신상에 중대한 변고가 생겼습니다.그런 줄 아시고 대비해 두셔야겠습니다. 내일이라도 확실한 것이 드러나면 군위에 오르셔서 대책을 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자 동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무슨 말이냐고 따져 물었다. 신수와 시백이 간신히 진정시켰다.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을 만한 곳에서 알려 왔기에 이렇게 아뢰는 것입니다."
그 때 공자 경부(慶父)가 조당으로 들어오다가 이 말을 들었다. 그는 사실 노환공의 장자(長子)였다. 그러나 서출(庶出)이었다. 무용(武勇)도 뛰어났고 성품이 괄괄한 무장형(武將型)인 데다가 단순한 사내였다.
"뭐라구요? 제나라에서 주공이 변을 당하셨다구요?"
공자 경부는 펄쩍 뛰더니 기세등등하게 마구 소리쳤다.
"내게 병차 3백 속만 내주오. 내 달려가 제나라 겁쟁이놈들을 싹 쓸어 버릴 것이오."
시백이 날카롭게 제지했다.
"아직 확실치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모두가 사태를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우선 진정하십시오."
이어서 세자에게 조용히 아뢰었다.
"나라에 하루라도 군위가 비면 안 됩니다. 그러하오니 세자께서는 군위에 오른 입장으로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우선 확실한 사실은 지난 번 기나라 싸움 때 원수처럼 된 제나라 공자 팽생이란 자가 주공을 살해한 듯합니다. 물론 그 자의 뒤에는 제양공이 있겠지요. 그렇다고 지금 군대를 동원하시면 우리가 불리합니다. 우선 국서(國書)를 보내 제후의 태도를 지켜보고 팽생이란 자를 죽이도록 한 후 다시 계책을 세우십시오."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백의 말에 동의했다.
"좋도다."
다음날이 되었다. 그때서야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신하들 이 헐레벌떡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노환공의 죽음이 확실해졌다. 곧 대부들이 모여들어 회의를 열었다. 모두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신수가 나서서 대부들의 태도를 따끔하게 질책하며, 우선 국서로 제후의 책임을 묻겠다고 하니 모두 동의했다. "제나라 군후는 우리 주공의 죽음에 책임이 있소. 따라서 제후가 명확한 사인(死因)을 조사하여 밝혀야겠다는 것과 주공이 돌아가실 때 옆자리에 있었다는 팽생의 죄를 다스려달라는 요구를 할 것이오."
시백은 곧 국서의 초안을 잡아 세자에게 보이고, 대부들에게 서명하라고 일렀다.
"세자께서는 상주(喪主)의 몸이시라 제외하고 모든 대부는 이름을 적고 서명하시오. 그래서 우리 모든 노나라 대부들의 뜻을 결집시키십시다."
국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외신(外臣) 신수와 시백 등은 제후(齊侯) 전하에게 삼가 절하고 올리나이다. 우리 주공께서 천자의 명을 받들어 귀국의 혼사를 의논하시고자 떠나신 후 돌아오지 않으시니, 많은 이들이 제나라 우산 땅에서 전송 잔치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수레 안에서 변이 생긴 것이라 말합니다. 그날 수레 안에는 우리 노나라 수행원이 아니고 귀국의 공자 팽생이 함께 있었다 하는데, 이는 천하 모든 나라들에게서 자기 나라 임금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참으로 면목 없는 일입니다. 제후 전하께옵서는 그날 귀국의 공자 팽생이 수행원으로서 죄가 있는지 없는지 밝혀 주십시오. 죄가 있다면 다스려 주시고 죄가 없다면 그의 결백을 증명하기위해서라도 그를 저희 노나라로 잠시 보내 주십시오. 삼가 제후 전하의 해량이 있으시길 바라옵니다. 대부들이 서명을 끝내자 시백은 곧 사자를 시켜 제나라 제양공에게 전하도록 했다.
"서둘러 가거라. 그리고 확실히 전하거라. 사인 규명의 책임이 제나라에 있음을......."
분부를 받은 노나라 사자는 곧바로 출발하여 낮밤을 잊고 제나라로 향했다.
팽생의 폭로
한편 제양공은 사태를 대충 마무리 짓고, 팽생을 불러 상(賞)을 내린 후, 그에게 얼마 동안 변방의 장수로 나가서 요양하라고 분부할 속셈이었다. 그 때 노나라의 사신이 제궁에 당도했다. 그는 국서를 바치며 노나라 대부들의 뜻을 전했다.
"사인 규명을 해 주십시오. 제나라와 노나라 양국의 우호 친선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국서를 살펴 읽으시라고 넌지시 권했다. 제양공이 국서를 펼치고 읽어 내려갔다. 그는 속이 뜨끔했다. 특히 팽생이 죄 없으면 노나라로 보내달라니....... 자칫하면 은밀한 지시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원래 말주변이 없는 팽생이고 보면 노나라의 여러 대부들 가운데 날카로운 자가 없을 리 없고 그런 노련한 자의 심문을 받아 넘길 재주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제양공은 짐짓 팽생을 불러 꾸짖는 말 몇 마디를 하고 내쫓을 요량을 했다. 그런 걸 노나라 사신에게 보여 줄 속셈도 물론 있었다. 즉시 사람을 보내 팽생을 궁으로 불렀다. 그런데 일이 잘못 되느라 제양공이 사전에 귀뜸을 해 준 심부름꾼이 팽생의 부중으로 가고 있을 때 팽생은 궁으로 오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귀뜸을 받지 못한 채 팽생이 궁으로 들어온 것이다. 팽생은 스스로 큰 공로를 자부하며 거만스럽게 조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제양공이 듬뿍 상을 내릴 것으로 짐작하여 아예 수레를 한 대 궁 밖에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제양공 앞에 이르자 선물은 커녕 제양공이 언성을 높여 자신을 꾸짖는 것이 아닌가.
"이 바보같은 놈아. 노후께서 과도히 술에 취하셨기에 잘 모시라고 그렇듯 당부했거늘 어찌하여 제대로 시중을 들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시게 했느냐?"
팽생의 두뇌가 좀 모자란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잔뜩 칭찬과 상(賞)을 고대했는데 의외로 제양공이 꾸짖자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노나라 사자가 옆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헤아려 살필 요량이 없었다. 대개 이런 정도라면 눈치를 채고 적당히 변명하여 궁색한 자리를 모면하기 마련인데 팽생은 달랐던 것이다.
"아니, 시키는 대로 했는데 어찌 꾸짖습니까?"
팽생이 어이가 없다는 듯 오히려 제양공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제양공은 아차 싶었다. '이 어리석은 놈아. 눈치 좀 차리거라.' 그렇다고 노나라 사신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 는데 어찌 속뜻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 "어리석은 놈 같으니라구. 저 놈을 끌어내 크게 혼찌검을 내주거라."
제양공은 속에도 없는 생각을 좌우 사람에게 분부했다. 그러자 팽생이 정말로 화가 났다. 포상을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혼찌검을 내리라니......
"내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혼찌검이란 말이오. 큰 상(賞)을 내리겠다더니 혼찌검이 뭡니까? 시켜 써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 내치려 한단 말입니까!"
팽생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제양공은 화도 났고 팽생이 어떤 소리를 할까 겁도 났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무엇 하는 거냐! 저 놈을 끌어내 참(斬)하지 않고......."
이 소리에 팽생이 기겁했다. 아니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하여 마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 나쁜 놈! 누이동생과 붙어먹고 매부를 죽인 놈아! 날보고 노환공을 죽이면 큰 상을 내리겠다고 하고서는 이제 날죽여 입을 봉하겠다 이런 거지. 이 노옴! 내가 죽으면 그대로 곱게 죽을 것 같으냐. 귀신이 되어서라도 네 놈을 반드시 잡아 먹고 말리라. 이 더러운 색마야!."
팽생은 끌려 나가면서도 제양공과 문강의 관계를 계속 떠들었다. 제양공은 차마 듣고 있을 수가 없어 두 손바닥으로 양쪽 귀를 틀어 막았다. 보라! 모든 신하들이 웃고 있지 않은가? 팽생은 그대로 끌려가 참수를 당했고, 노나라 사자는 이를 본 후에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제양공은 곧 팽생의 목을 목갑에 담아 노나라로 보내고 장례용품을 수레에 실어 보냈다. 그러나 문강은 양심의 가책이 되었는지 남편의 상여를 따라가지 않고 제나라에 머물렀다. 한편 노나라 대부 신수는 세자를 모시고 교외에 나가 선군의 영구를 영접했다. 그리고 예법대로 세자가 상례를 주관하게 한 후 임금으로 모시니 그가 바로 노장공(魯莊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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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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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혼자만의 삶과 함께하는 삶
지난 여름 '앨리스'라는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집에서 조금 일찍 출발한 나는 그녀가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카페의 커다란 유리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고, 껑충하니 짧은 머리를 나풀대며 나타났다. 계단을 서너 개 내려오다가 나를 발견한 그녀가 먼저 손을 흔들며 조금 웃었다. 그녀가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만남이 이렇듯 쓸쓸하고 적막한 것인가 하고. 그녀는 창녕에 산다. 그녀는 내 대학시절 단짝 친구로, 졸업한 뒤에는 오랜 편지 친구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출석부에 '국노'라고 사인을 하는 국어 선생이 되어 서울과 창녕에서 거의 비슷한 일과 고민과 감상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고, 방학이 되어야 비로소 얼굴을 마주 대한다. 그러나 주고받는 편지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늘 가까이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잠시 후 그녀가 내 앞에 앉자마자 말했다.
"덥다. 어디 아픈 거니? 얼굴이 상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거의 반년만에 만나서 우리는 처음 대화를 이렇게 시작했다. 날씨가 무척 덥다고.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를 향해서 여위었다는 말을 건넸다. 순간 나는 나이가, 무심히 흐르는 세월이 우리를 여위게 하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녀 역시 말라깽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도 나도 한때는 볼이 빵빵하니 야무진 신세대였는데...
그녀는 살구주스, 나는 파인주스를 청했다. 그녀의 살구주스는 살구빛 유리컵에, 내 파인주스는 파인애플이 그려진 유리컵에 담겨져 나왔다. 주스를 마시고, 컵 속에서 얼음 알맹이가 녹는 것을 바라보며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카페를 나섰다. 남편이 동행하기 위해 카페 앞에 나와 있었다. 그녀와 나는 대학 동기이고 남편은 우리 둘의 과 선배이기도 하므로, 셋이 함께 어울려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셋이서 함께 야외로 나가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나와 남편은 커피를, 그녀는 홍차를 마셨다. 그녀 역시 나 못지 않은 커피광인데, 요즘은 삼가고 있단다. 속이 쓰려서 힘들다는 것이다. 신경성이라고 그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다면 인생의 즐거움이 절반은 줄어들게 되리라고 생각하며 나는 웃었다. 그녀에게 커피향을 선물하기 위하여 원두를 갈아 소포 보내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다. 그녀가 소포를 받았을 때 포장을 풀기도 전에 그 진한 향기 때문에 즐거우리라고 생각하며 나는 더욱 행복했었는데... 이제는 대신 홍차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차를 마시고, 숲 속 계단을 오르며 우리는 오랜만에 사진도 찍고 비디오 촬영도 했다. 가끔 만나니까 만난 김에 사진이라도 몇 장 찍어 두자는 남편의 말에 그녀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사진은 찍어서 뭐해요? 남겨 줄 자식도 없는데." 그녀는 웃고 있었고 나도 함께 웃어 넘겼지만, 그 말이 어찌나 쓸쓸하게 들리던지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녹음 짙은 숲의 무성함이, 그 숲에 가득한 여름 향이 진한만큼 내 쓸쓸함도 깊었다. 그녀는 아직 혼자이다. 혼자만의 방에서 혼자만의 자유와 여유로움을 한껏 누리고 있다. 방학이 오면 어디론가 떠날 궁리를 하면서,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산다. 혼자만의 삶과 함께 하는 삶. 어느 것에나 근본적인 쓸쓸함은 배어있겠지만, 어느 편이 더 외로운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함께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혼자만의 방에서 그녀가 느끼고 있을 절실한 외로움의 그 진정한 깊이를. 어쨌든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는 순간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의 심연에 빠져 든 것만 같았다. 그것은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삶의 외로움이었다. 사진을 물려줄 아이가 있는 나 역시 그 깊은 심연을 비켜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아당겼다. 우리 모두는 삶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는 순간 이미 외로움의 한복판에 내던져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겨 줄 사람도 남겨 줄 그 무엇도 없다며 그녀는 쓸쓸히 웃었다. 그래도 우리는 땡볕에 나가 웃으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그리고 서울을 벗어나기로 했다.
그녀는 천진암에 한번 가보자고 말했다. 그래서 떠난 천진암은 그녀도 나도 처음이었다. 도착하니 네 시였는데, 다섯 시까지만 개방을 하니까 서둘러 나오라고 안내하는 아주머니가 말했다. 해는 뜨겁고, 산중턱의 마리아상은 뜨거운 햇볕에도 아랑곳없이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대성당터에 우뚝 서 있는 하얀 십자가는 어찌 그리도 엄숙하던지... 맑은 숲길과 계곡의 오염되지 않은 물소리를 누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게다가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서둘러 내려왔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바로 소나기가 쏟아졌다. 소나기를 뚫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녀는 다음날 대만 여행을 떠나 돌아와서는 바로 학교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찍은 흑백사진이 현상하는 과정에서 약품에 문제가 있었던지 완전히 망가졌다. 사진을 망쳐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남편 곁에서 나는 그녀의 쓸쓸한 미소를 떠올렸다. 물려 줄 사람 하나 없는데 사진은 찍어서 무엇하느냐고 하던. 그렇게 여름이 갔다. 그녀와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출석부에 '국노'라고 사인을 하며 아이들과 마주 서 있다. 그리고 오늘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
"하늘이 한참 가을답다. 어제 저녁에 노을이 참 좋더니 하늘빛이 청명하다. 지난 토요일에는 가야산 앞에 있는 남산 제일봉에 갔었는데, 가을이 시작되고 있더라. 산색은 단풍들 준비를 끝내고 다시 봄빛같이 부드러운 녹색의 숲이 되어 있더라. 그런데 흑백사진이 망가졌다니 대체 무슨 일이니? 우리는 그 따가운 햇살 아래서 괜히 폼만 잡았구나. 그래도 재미있었다. 차라리 날아갔다는 게 다행이다."
마지막에 그녀는 또 이렇게 썼다.
"요즘은 밭두둑이나 산에 갈대꽃이 싱그럽단다." 그녀의 편지에서는 언제나 푸른 산꽃 냄새가 난다. 가을 하늘이 높아질수록 그리하여 우리들의 감상이 깊어질수록 우편함에 꽂히는 그녀의 편지에는 더욱 진한 산 향기가 묻어 있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그녀의 산 냄새 가득한 편지를 읽고 나는 또 서울의 뿌연 먼지로 얼룩진 답장을 쓸 것이다.
"정말 가을이구나. 가을이 이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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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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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효고 현 히메지 시에 있는 히메지 성. ]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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