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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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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2교시 줄곧 달려가야 하는 골인지점 - 글 마무리 잘 돼야 잘 쓴 글 된다.
1. 먼저 골인지점을 설정해야
남편은 징용에 끌려가 목숨을 잃고, 아들은 월남전에서 가루가 되어 돌아오고, 기댈 데라곤 손자 하나밖에 없는 늙은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손자까지 여자 문제로 칼부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손자가 죽은 지 며칠 뒤, 그 늙은 여자는 가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억누르며 밭에 앉아 김을 매었다. 그 때, 누군가 우리민요 <아리랑>을 부르면서 재를 넘어갔다. 다 알다시피<아리랑>에는 아주 재미있는 가사가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사랑하는 임아, 나를 버리고 가려는 생각일랑 아예 버려라.' 이것은 임과 이별하기 싫은 우리 선인들의 마음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노래를 들은 그 늙은 여자는 슬프게 중얼거렸다.
"발병도 안나고 잘만 가더라"
이것은 내가 쓴 소설 <아리랑 별곡>에 나오는 대목이다. 결말 부분에 나오는 이 말은 이 소설의 주제를 한 마디로 함축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은 내곁을 잘만 떠나가더라는 한스러움,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살아 배기려는 인간의 생명력......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전에 이미 이 결말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말을 향해 모든 이야기를 몰고 갔던 것이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은 이렇듯 글을 쓰기 전에 먼저 골인 지점을 확실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줄거리가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또 아무리 좋은 인물이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결말 부분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글을 써 나가지 않는 게 바람직 하다. 만일 첫머리로서 그럴 듯 하다 싶은 문장이나 일화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해서, 무작정 써 나가게 되면 오래지 않아 쓸 말이 막혀 글쓰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써 나가는 도중에 결말을 정하게 되면, 이 때껏 써 온 것들과 방향이 달라져 그것들이 모두 쓸모 없어지기 십상이니까.
나는 소설을 삼십 년째 써 오고 있는데, 어떤 소설을 쓰든지 맨먼저 결말 부분을 미리 머릿속에 마련해 놓은 다음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말 부분이 떠오르지 않으면 절대로 펜을 들지 않는다. 글쓰기는 여행이나 마라톤과 똑같다. 출발점(출발선)이 있고 도착지점(골인 지점)이 있다. 부산에 가려고 작정했다면 자기가 살고있는 곳의 터미널이나 기차 역에서 출발하여 반드시 부산에 도착해야 한다. 순간순간의 느낌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대전이나 대구에서 내려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출발 역(출발선)은 종착 역(골인 지점)으로 달려가기 위하여 있는 것이고, 골인지점은 그 경기를 끝맺음 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대개의 마라톤 출발선은 곧 골인지점이라는 사실, 그것은 아주 재미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떤 글의 첫 문장은 곧 그 글의 결말이 갖고 있는 의미와 닿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특히 논술의 경우, 결말은 반드시 서두와 긴밀한 연관을 가져야 한다.)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이것은 황순원이 슨<소나기>의 결말 부분이다. 이것은 작가 황순원이 그 소설의 끝 부분에 설정해 놓은 골인 지점이다. 작가는 결국 이 한마디의 말을 하기 위하여 그 기나긴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 결말에는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 다시말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을 보여 주려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2. 골인지점에서 뒤집어엎는 콩트의 묘미
결말 부분(골인 지점)이 특히 중요한 것은 콩트에서이다. 대개의 작가들은 콩트를 쓸 때 마지막 부분에서 독자들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를 뒤집어 엎어 버린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도 될 만한 복선(독자들에게 주는 암시)을 깔아 두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모파상의 <목걸이>는 단편 소설이면서도 콩트의 묘미를 아주 잘 살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평범한 하급 공무원의 아내인 르와젤 부인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치장할 만한 옷이나 보석이 마땅찮은게 늘 불만스러웠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부자 친구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걸고 파티에 나가 즐겁게 놀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옷을 갈아입다 보니 목걸이가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다. 하릴없이 그녀는 그것과 똑같은 목걸이를 사기위해 많은 빚을 지게 되었고, 그 빚을 갚기위해 10년 동안이나 갖은 고생을 다 해야 했다. 그 때문에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라하게 변해버린 그녀는 산책길에 우연히 목걸이의 주인인 옛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 하자, 친구는 깜짝 놀라 말했다. "어머 내 목걸이는 가짜였는데......"
모파상은 "어머, 내 목걸이는 가짜였는데......"라는 말 한마디를 준비해 놓고 그 이야기를 써 나간 것이다. 결국 <목걸이>의 주제는 그 한마디 속에 다 들어 있는 셈이다. 가짜 목걸이 하나가 허영심 많은 한 여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는...... 하지만 가짜 목걸이 때문에 운명이 바뀐 사람이 어디 그 여인 한 사람뿐이겠는가?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여인처럼 뜻없는 무언가에 얽매여 헛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파상은 그 한 마디를 통해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우리 삶의 진실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이와 같이, 콩트 쓰기의 재미는 결말 부분에 가서 독자를 감쪽같이 속이는 데에 있다. 독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골인 지점(결말)을 설정해 놓고 독자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수필을 쓰거나 논술을 쓸 때도 골인지점을 미리 정해놓고 써 나가야 하는 것은 똑같다. 나룻배가 건너가야 할 강 저쪽에는 나루터가 있고, 기차가 달려가는 그 끝에는 종착역이 있는 것 처럼......
3. 결말은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과도 같다.
'응아!'하고 힘껏 소리를 지으며 태어난(삶의 출발선에 오른)우리 모두의 종착점은 죽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맞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이룩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무엇을 남겨야 하고, 또 마지막에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수없이 많은 가르침을 남긴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느니라"고 했고 (이 세상이 텅 비어 있음을 가리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며 "아버지, 왜 날 버리시나이까?"하고 절망(인간의 절대적인 외로움)했다. 또 어떤 사람은 "문을 열어라"고 했고, 어느 한국인 의사는 "내 몸을 제자들의 실험용으로 제공한다"고 했으며, 어느 스님은 "화장을 해서 날려 버리되, 절대로 나를 위하여 비석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들이 남긴 유언들은, 앞에서 이야기 한 것들은 한데 마무르는 글의 결말(골인지점)처럼 아주 깊고 높으며 보석처럼 값진 것(진리 혹은 우리 삶의 진실)이다. 결국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이처럼 결말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우리 삶의 진실을 들려 주려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서두와 결말을 아주 잘 처리하고 있는 독자의 글 한 편을 읽어 보도록 하자.
오늘은 아침부터 운이 없다.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으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나서 허둥지둥 바쁘게 집 안을 돌아다녔다. 이를 딱하게 보신 어머니께서, "무슨 애가 그렇게 게으르니?" 차를 타러 나오는데 차 안의 운전수 아저씨께서 "또 늦었군, 너만 타는건 아니니까 빨리 나와!" 오늘은 이것만...... 하지만 오늘의 꾸중의 여신이 나에게 마음이 있었나 보다. 조회 시간, 이를 어째! 분명히 넣어두었는데, 난 몰라.
"성적표 안 가지고 온 사람, 오늘 청소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한숨만 푹푹, 아이들은 만세 삼창.
1교시 시작, 안걸리겠지? 날짜를 보니, 오늘은 9번대만 걸리는 날이잖아? 결국 오늘 하루, 나만 걸리고 혼나고 또 걸리고 혼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 정말 오늘은 피곤한 하루였어. 열심히 수다를 떠는데,
"학생 회수권 제대로 넣은거야?" 이건 또 웬 날벼락이냐.
"넣었는데요"
아, 창피해 누명까지 쓰다니.
내일부터는 제발 꾸중의 여신이 운 나쁜 나에게 질려서 멀어져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것은 또 무슨 호통소리인가.
"수남아! 가방은 챙기고 자는 거니?"
이 글의 지은이는 매우 익살스런 진술을 하고 있다. 머리 글의 결말을 설정해 놓은 다음 글을 써 나갔기 때문에 서두나 결말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고, 또 조리있게 써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쓴이는 문장을 너무 과감하게 생략하는 버릇이 있어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가능하면 하나하나의 문장을 완결시켜 놓은 후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여유로운 습성을 들이는 것이 좋겠다. 물론 어떤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려는(형상화 하려는) 조력 또한 꾸준해야 한다. 특히 논술의 끝마무리에서는 반드시 글 전체의 논지를 요약하여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용의 핵심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서술하는게 좋다. 용 한 마리를 다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두 눈에 검은 점을 찍어 살아나게 하듯이.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글을 한 번 읽어 보자.
요즘 시중에는 많은 상품권이 유통되고 있다. 추석을 맞아 웬만한 소비업체에서는 선물용 상품권을 발행하는 등 상품권 유통 붐이 일고 있는데, 여기서 파생된 문제점 역시 적지 않다. 상품권을 보면 금액이 80%이상 구입했을 때에는 잔액을 현금으로 거슬러 주게 되어있다. 하지만 많은 업체에서는 이 금액으로 다른 물품으로 구입하도록 종용하거나 현금 영수증이라는 것을 끊어 주고 있다. 그리고 세일 품목에 대해서는 상품권을 가지고 쇼핑을 나가 보면, 현금 사용의 불편을 덜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권이 현금을 사용할 때 보다 훨씬 많은 애로 사항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지난 1월 구두 상품권을 발행한 모회사의 부도로 겪었던 많은 피해 사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19년만에 부활한 상품권 유통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서라도 이상의 문제는 시급히 고쳐져야 할 것이다. 상품권이 업계의 얄팍한 상술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어린 정성과 마음을 담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허정희 <상품권의 불편>중에서
4. 끝마무리를 방해하는 것들
글을 써 나가다 보면,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첫째, 자기가 쓰려고 하는 글의 주제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글의 끝마무리를 망치게 된다. 밀양에 있는 표층사에 가서, 땀을 흘리곤 한다는 비석을 구경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가다가 대전이나 대구에 내리지 말고 곧장 밀양으로 달려가야 한다. 구경할 거리가 많은 경주로 가는 차가 보이더라도 바꾸어 타서는 안된다.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아무리 예쁘더라도 따라가서는 안 되며, 가장 친한친구가 중간에 내리자고 손을 잡아 끌어도 과감히 물리치고 기어이 밀양 역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리하여 표층사의 바로 그 비석앞에 서야 한다. 둘째, 지나치게 잘 쓰려고 하는 욕심이 끝마무리를 망쳐 놓는다. 낙동강의 도도한 물너울과 들판을 살피다가 내려야 할 밀양 역을 놓쳐 버리고 허둥대는 수가 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가 멈추어 서야 할 역이 있게 마련이다. 마라톤 또한 반환점을 분명하게 돌고 나서 정해진 골인 지점으로 달려가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욕심이 넘치면 멈추어 서야 할 곳(끝마무리)을 지나쳐 버리는 수도 있고, 그 곳을 찾지 못해 다른데서 헤메는 수도 있다. 셋째, 끝마무리에 대한 생각이 너무 약하면 끝마무리를 망치기 쉽다. 용 한 마리를 그린 다음에는 그것의 눈 한가운데다 검은 눈동자를 분명하게 찍어야 한다.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희미하지도 않은, 그 그림에 알맞게 검을 점을 찍어야 용이 생명을 얻어 살아나게 된다. 줄곧 맨 앞에서 달리던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을 1미터쯤 남겨두고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봅시다.
1. 글쓰기는 여행이나 마라톤과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출발점이 있고 도착점이 있으며, 그것은 서로 길게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글쓰기에 있어서 글 마무리(결말)는 여행이나 마라톤에서의 도착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행이나 마라톤에서 반드시 다다르지 않으면 안되는 도착점, 즉 글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말해 보자.
2. 글 마무리를 아무리 잘 하려 해도 자꾸만 머리 끝을 따라다니며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이야기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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