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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1083호
2022.6.14 (음 5.16)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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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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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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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가장 끔찍한 자리는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 중립을 취했던 사람들의 차지. ― 빌리 그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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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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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생각
사람이 살면서 가장 오래 정을 나누는 사람이 누굴까? 아마 살아온 역정에 따라 누구는 배우자, 누구는 형제자매, 또 더 나아가 친구를 꼽을 수도 있겠다. 배우자와 형제자매는 일단 관계가 맺어지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반면에 친구는 얼마든지 관계가 끊어질 수가 있다. 그럼에도 오래가는 친구가 있다면 그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이다.
친구에 해당하는 말로는 또 ‘벗’, ‘동무’가 있다. 보통 ‘친구’라고 하면 엇비슷한 연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주 정 깊은 관계부터 시작하여 대충 이름 석 자 알고 지내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어서 가장 두루두루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벗’이라 하면 비슷한 연배가 아니어도 함께 즐기는 대상이 있거나, 관심사가 같을 때 사용하기 좋은 말이다. 또 난초나 예술품 등 특정한 사물을 벗삼아 지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말벗, 술벗, 일벗, 마음의 벗’처럼 심리적으로 가깝고 편안한 관계를 나타낸다.
‘동무’라고 하면 또 다른 면을 가리킨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놀았던 길동무, 글동무, 말동무, 소꿉동무, 어깨동무처럼 오랜 동안의 공동 활동을 통해 형성된 친근한 관계에 사용한다. 그래서 같이 놀아야 동무가 된다. 친구나 벗, 동무의 공통점은 ‘이해관계’를 넘어선 관계라는 것이고, 차이점은 광범위한 의미, 심리적인 가까움, 공동의 활동과의 연계 등의 요인에 따라 말을 달리한다.
친구도, 벗도, 동무도 우리의 삶을 매우 푸근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오래된 관계일수록 하루하루를 마치 묵은지처럼, 시래기처럼 종종 맵짜게, 종종 걸쭉하게 만들어주며 세상의 제도와 법도를 넘어서는 편안함을 가져온다. 그가 나에게 친구이면 당연히 나도 그에게 친구이다. 벗이며 동무가 또한 그러하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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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외교
한때 남과 북의 외교는 유엔에서 지지 국가 수를 늘리는 경쟁에 매몰되기도 했다. 또 강대국 치맛자락 뒤에 숨어서 동족끼리 손가락질하는 유치한 입씨름을 벌인 경우도 많았다. 올해 들어 벌어진 남과 북의 외교 활동은 시대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손발 맞춰 처리해 나간 적이 언제였던가?
미국 방문 1박4일, 순식간의 판문점 나들이, 이런 식으로 시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숨 가쁜 활동을 언론에서는 ‘셔틀외교’라고 했다. 왕복외교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마치 별생각 없이 왔다 갔다만 하는 심부름꾼이라는 느낌을 준다. 또 청소년 사이에서 사용되는 좋지 않은 통속어 가운데도 ‘셔틀’이란 말이 있어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통속어 ‘셔틀’은 힘이 약한 아이한테 궂은 심부름을 뒤집어씌우는 짓을 말한다. ‘담배 셔틀, 빵 셔틀, 가방 셔틀’ 등 약자를 괴롭히는 못된 짓들을 가리킨다. 이런 ‘셔틀’이란 말보다는 다른 좋은 말을 찾아보는 것이 낫겠다.
오래된 마을에서는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사교 활동’을 하는 것을 ‘마실 다닌다’고 한다. 그러면서 먹을 것을 나누기도 하고 집집이 돌아가는 여러 가지 사연과 곡절을 귀동냥하며 ‘공동체’적인 소통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이웃집 숟가락이 몇개인지도 뻔히 알게 되며, 이런 소통과 정보를 바탕으로 마을의 협업과 보살핌이 이루어진다. 따지고 보면 국가 간의 외교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외교를 하면서 아슬아슬한 ‘벼랑 끝 외교’나 불안한 ‘말폭탄 외교’를 일삼는 것도 소모적인 짓이다. 그런가 하면 그저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거창한 국빈 외교도 얼마나 허망했던가? 이제는 더욱 실속 있는 마실 외교를 통해 국가 간의 소통을 유지하며 서로 이익을 나누는 품격 있는 국제 관계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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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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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뜰 - 김수영
무엇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뜰이여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이 있다 굴곡이 있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
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잃어버리고
젖먹는 아이와같이 이즈러진 얼굴로
여름뜰이여
너의 광대한 손을 본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어라!」하는
억만의 소리가 비오듯 내리는 여름뜰을 보면서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있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이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있다
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일 것이다
무엇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뜰이여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을 꺾기 위하여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그마한 동물이라도 있다면
여름뜰이여
나는 너에게 희생할 것을 준비하고 있노라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
여름뜰을 밟아서도 아니될 것이다
묵연히 묵연히
그러나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다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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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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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지신(尾生之信) / ① 신의가 굳음. 《出典》史記 蘇秦列傳
②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음. 《出典》莊子 盜甁篇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 : 尾生高)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사나이였다. 어느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定時)에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익사(溺死)하고 말았다. "尾生은 믿음으로써 여자와 더불어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기약하고,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밀려와도 떠나지 않아, 기둥을 끌어안고서 죽었다."
信如尾生 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
① 전국시대, 종횡가로 유명한 소진(蘇秦)은 연(燕)나라 소왕(昭王)을 설파(說破)할 때, <신의있는 사람의 본보기>로 앞에 소개한 미생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
② 그러나 같은 전국시대를 살다간 莊子의 견해는 그와 반대로 부정적이었다. 莊子는 그의 우언(寓言)이 실려 있는《莊子》'盜甁篇'에서 근엄 그 자체인 孔子와 대화를 나누는 유명한 도둑 도척(盜甁)의 입을 통해서 미생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이런 인간은 책형(?刑)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간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명목(名目)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
【동의어】포주지신(抱柱之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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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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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바가지 도시락 - 이은구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으니까 벌써 40여 년이 지난 일이다. 입학한 지 얼마 안되는 저학년 학생들은 마을의 공회당을 빌려 교실로 이용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공부를 해야만 했다. 점심은 주로 찐 고구마나 보리 누룽지를 가져와 뒷동산에서 먹곤 했다. 점심을 양은 도시락에 싸오는 학생은 가정이 매우 부유한 편에 속하는 몇몇에 불과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엄하기로 소문난 분이셨는데, 하루는 점심 시간에 둥그런 보따리 한 개를 들고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점심을 나와 함께 교실에서 먹어야 한다. 가정방문을 하니 도시락이 없어 점심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이 많더구나. 오늘부터 나도 이 바가지 도시락에 점심을 싸 오기로 했으니 너희들도 바가지에 밥을 싸오도록 해라. 이 바가지 도시락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너희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선생님은 교탁에 그 바가지 도시락을 풀어 놓고 식사를 하셨다. 그후부터 우리 반 학생들은 둥그런 바가지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오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덕분에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뽀송뽀송한 점심밥에 생마늘 몇 조각과 풋고추를 곁들여 맛있는 점심을 나눠 먹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 반에는 예상치 못했던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울퉁불퉁한 교실 바닥에 놓여 있던 바가지 도시락은 살짝만 건드려도 곧잘 대굴대굴 굴러 흙이 묻곤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점심 거르는 것을 염려해 스스로 바가지 도시락을 들고 다니셨던 그 인정 많으신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거주)
총장에서 걸인들의 친구로 - 안치열
꼭 10년 전이었다. 친구가 사는 청주로 가는 길에 꽃동네라는 표지판을 보게 되었는데 순간 나는 운명의 손에 이끌리듯 발을 멈추게 되었다.
"뒤를 닦을 신문지조차 없어 화장실을 사용하기 힘듭니다."
한 수녀의 그 말 한 마디는 주는 것보다 받기에 더 길들여졌던 나의 이기적인 삶을 뒤돌아보게 했다. 그후 시간을 내어 꽃동네를 찾게 되었고, 서울로 돌아올 때면 부족한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대학 총장으로 장년을 앞두고 주위에서 함께 일하자는 권유가 적지 않았지만 미련과 유혹을 벗어나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40년 넘게 총장이니 박사니 하는 직함을 달고 다녔으면 충분하다 싶었다. 퇴임 직후 곧바로 짐을 꾸려 꽃동네로 내려갔다. 단 한 명도 성한 사람이 없는 꽃동네, 우선 급한 것은 그들이 와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었다. 병실은 고사하고 변변한 의료 시설 하나 없었다. 폐업하는 병원에서 내다 버린 의료장비를 모으고 못 쓰게 된 커튼과 내의 공장에서 내다 버린 면조각으로 기저귀를 만들면서 병원 꼴을 갖춰 갔다. 절대 속을 내보일 것 같지 않던 사람들도 차차 말을 걸어 오기 시작했다. 그건 나를 꽃동네에 받아들인다는 신호였다.
어느 해 가을이었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휘황찬란하게 차려 입은 중년 여자가 다니러 왔다. 그이는 요양소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나서는 이마에 잔뜩 주름을 모으며 말했다.
"왜 기저귀를 안 쓰는지 모르겠군요. 기저귀를 쓰면 훨씬 편하고 좋을 텐데..."
분명 오물로 뒤범벅이 된 세탁실을 보고 왔을 터였다. 내가 말했다.
"그럼 부인께서 매일 두 트럭씩 실어다 주시지요."
그러자 단번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천오백 명이 넘는 식구들이 먹고 입으려면 많은 식량과 물품이 필요하다. 종이 기저귀를 하루 세 번만 갈아 준다고 해도 두 트럭은 족히 든다. 꽃동네는 열 트럭의 선심보다는 한 수레의 신문지가 더 필요한 곳이다. 음성 꽃동네에서 지내던 이태 전이었다. 하루는 오웅진 신부가 나를 찾았다. 신부님을 보는 순간 다른 말은 들을 요량도 없이 불쑥 말했다.
"가평 꽃동네에 제 방 하나 내주십시오."
그 말이 끝나게 무섭게 신부님이 말했다.
"총장님이 함께 가주신다면 저희들로서야 고마운 일이지요."
나의 가평 꽃동네 편입은 그런 식으로 싱겁게 끝이 났다.
드디어 올 3월 15일, 가평에 노체 안드리아 자애병원이 생겼다. 자그마치 5년 동안의 긴 공사와 300억 원의 거금이 드는 대공사였다. 그 공사를 단 한 포대의 시멘트 값도 받지 않고 맡아 해준 회사는 진로그룹이었다. 무너진 백화점을 짓고, 끊어진 다리로 아까운 목숨을 잃게 했던 기업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요즘도 매일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그들은 힘들다는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진종일 묵묵히 일만 하다가 저녁이면 소리 없이 떠난다. 그들은 자원봉사 나왔네 하고 생색내는 법도 없다. 그저 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흥미도 관심도 없는 환자들에게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다. 속옷 한 번 제대로 빨지 않았을 손으로 환자의 욕창 부위를 닦아 내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감탄하게 된다.
무보수로 일하는 열 명의 의사들 역시 대단하다. 그들은 떼쓰기에 신경질, 가끔은 우악스럽게 덤벼드는 노인네들을 어린애 달래듯 한다. 이들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나라는 건강하고 미래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이에는 버려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루에도 사오십 명이 병자라는 이유로, 무능하다는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다니 말이다. 이곳에서도 큰 행사가 있을 때면 번번이 버려진 노인네 한두 명쯤은 발견된다. 깨끗하게 옷을 차려 입은 이도 있고 고급 휠체어에 실려 있는 이도 있다. 누군가 - 설마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 일부러 먼길까지 데려와 버리고 간 것이다. 마치 더 이상 못쓰게 된 물건을 쓰레기통에 버리듯이 말이다. 벌건 대낮에 공공연히 벌어지는 '현대판 고려장'.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겠지 하고 자신을 달래 보지만 그래도 뒷끝이 씁쓸하다.
한 번쯤 죽음 앞에 불려 나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쉽게 받아들일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곳에서는 1년이면 삼백 명에 가까운 이들이 죽음을 맞는다. 이제 죽음에 초연할 나이인데도 매번 당혹스럽다. 누구처럼 부귀영화를 누려 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도, 제 밥그릇을 위해 칼을 들이댄 적도 없는 선량한 사람들, 단지 약삭빠르지 못해 사는 일에 무능하고 서툴렀던 그들의 죽음이기에 더욱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장' 달린 직위에서 벗어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가평으로 옮겨 앉으면서 덜컥 '의무원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더 큰 짐을 통해 더욱 낮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몸이 부자연스럽고 제 밥그릇 챙기는 데 조금 무능하다고 해서 그들이 나와 다를 게 뭐 있는가? 한 번쯤 손을 잡았던 이, 아니면 복도에서 어깨라도 한 번 부딪친 어떤 이가 나의 마지막 길에 따뜻한 동행이 되어 준다면 그것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경희대 총장 역임, 가평 꽃동네에서 무료봉사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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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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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여백 - 박이문
2. 망상의 변
나의 길
어려서부터 나는 새를 무척 좋아했다. 여름이면 보리밭을 누비고 다니며 밭고랑 둥우리에 있는 종달새 새끼를, 눈 쌓인 겨울이면 싸라기를 찾아 뜰 앞 짚가리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방울새를 잡아 새장 속에 키우며 즐거워했다. 가슴이 희고 엷은 잿빛 종달새와 노랗고 검은 방울새는 흔히 보는 참새와는 달리 각기 고귀하고 우아해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개도 무척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개와 더불어 뒷동산이나 들을 뛰어 다니는 기쁨이 컸다. 가식 없는 개의 두터운 정에 나의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그 개가 동네 사람들에게 끌려가 보신탕이 되던 날 나는 막 울었다. 서울에 와서 나는 문학에 눈을 떴다. 별로 읽은 책도 없고 읽었다 해도 이해한 것도 아니지만 작가는 특수한 인간처럼 우러러보였다. 무슨 소린지도 모르면서 하나하나의 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석처럼 생각됐다.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시인이 된다면 당장 죽어도 한이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보들레르나 말라르메가 쓴 것 같은 시를 쓸 수만 있다면 횔덜린같이 방황하다 미쳐 죽어도 상관없다고 믿었다. 어떤 직업에도 구애받음 없이 작품을 내서 인세로 살 수 있는 삶이 가장 부러웠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화려했던 사르트르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사회와 거의 단절된 채로 사는 괴벽스러운 샐린저 같은 작가의 생활이 더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차츰 무엇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음을 의식하게 됐다. 나는 알고 싶었다. 모든 것에 대해서 투명해지고 싶었다. 정서적 표현에 대한 충동에 앞서 지적 갈증에 몰리게 됐다. 만족할 수 있는 시원한 지적 오아시스를 찾아 나는 사막 같은 길을 나서기로 결심했다.
시골 논두렁길을 따라 삭막한 서울의 뒷거리를 방황하던 나는 어느덧 소르본 대학의 낯선 거리를 5년 동안이나 외롭게 서성거린다. 파리의 좁은 길이 로스앤젤레스의 황량한 길로 연결되고 그 길은 다시 보스턴의 각박한 꼬부랑길로 통했다. 이처럼 나는 앎의 길을 찾아 30세가 넘어 40세가 가깝도록 다시 학생 생활을 했고, 이제 6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학교의 테두리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50년의 긴 배움의 도상에서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고 적지 않은 것들과 접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꿈에도 가볼 수 없는 지적 깊이를 보여준 철학자들, 사상가들, 과학자들, 예술가들이다. 그것들은 거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성취한 에베레스트보다 높고 눈에 덮인 들보다도 고귀한 도덕적 가치이다. 나는 이런 만남이 있을 때마다 찬미와 존경을 퍼붓지 않을 수 없었고, 경건하고 겸허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원래 감탄을 잘한다.
이런 경험만으로도 나는 내가 택한 배움의 길에 아쉬움 없는 보람을 느낀다. 내 환경이 만족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내 운명에 대한 불만 의식이 적었던 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뜻대로 앎을 찾아 배움의 길만을 택할 수 있었던 데 대해서 내 환경이 고마웠고 내 운명에 감사한다. 겉으로 보기에 나의 삶은 사치스러웠다고도 할 만큼. 배움만을 위해 살아왔고 앎의 길만을 따라다녔지만 나는 아직도 잘 배우지 못했고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배운 것이 있다면 잘 알 수 없다는 사실뿐이며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단편적인 파편과 같은 것뿐이다.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아직도 나에게는 아물아물하다. 그러기에 나는 사물 현상을 더욱 관찰하고 남들로부터 더욱 배우고 더욱 생각하고 더욱 알고 싶은 의욕에 벅차 있을 뿐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찾는 것은 '이게 다 뭔가?' '어떻게 살아야 참다운가?'에 대한 대답이다. 이처럼 근본적이고 총괄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내가 찾아낼 수 없음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다. 아마도 확실한 대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현재도 없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생각한 끝에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극히 단편적이며 극히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나마 더 배우고 생각해보고 더 알고 싶다. 나는 눈을 감는 날까지 더 배우고 더 알고자 노력할 것이다. 내가 새로운 것을 알았다고 믿게 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투명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철학적 저서를 통해서 혹은 문학 작품을 통해서 혹은 잡문의 형식으로라도 표현하고 남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만일 내 자신을 위한 지적 정신적 추구의 결과가 혹시 남의 사고에 다소나마 자극이 되고 사회에 티끌만큼이라도 공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기막히게 기적적 요행의 한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논두렁길에서 시작된 나의 길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길고도 짧았다. 어느덧 내 삶의 오후가 왔음을 의식한다. 약간은 아쉽고 초조해진다. 갈 길은 더욱 아득해 보이는데 근본적 문제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어렸을 때 초연했던 종달새, 우아했던 방울새, 정이 두터웠던 개가 생각난다. 엄격한 승원이나 깊은 절간의 고요 속에 이런 짐승들을 생각하면서 더 자유롭게 더 조용히 또 생각하고 또 쓰고 싶다.
앎에의 갈망
막연하나마 누구나 배움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앎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알려면 배워야 한다. 남들로부터 배울 수도 있고 혼자서 배울 수도 있다. 어쨌든 배우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앎의 가치가 뭐길래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앎은 힘이다"라는 한 철학자의 유명한 구호가 있다. 앎의 가치를 규정하는 말이다. 이 구호는 앎의 중요성과 왜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가의 이유를 설명코자 한다. 힘으로서의 앎이 중요한 까닭은 모든 사람이 '힘'을 갖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힘'이며, 앎의 가치는 힘을 가져오는 도구적 기능만 있다. 잘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누구에게나 힘이 필요하고 그런 힘을 얻으려면 알아야 한다. 자연 현상의 원리를 알아야 농사도 짓고, 자연을 개발하고 조작해서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모르면 한 기업은 다른 기업들에게 밀려난다. 적의 정세를 잘 파악하지 않고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각별히 고도의 과학 기술을 갖추지 않는 한 한국은 국제 시장에서 승리할 수 없다. 경제적 풍요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오늘의 사회에서, 무역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은 첨단 과학 기술을 갖추는 작업이다. 이처럼 앎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적 기능을 갖고 있으며 그만큼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도구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라도 보다 많은 앎, 보다 정확한 앎이 필요하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앎의 가치가 도구적 기능으로만 끝나는가. 오직 전술적 또는 상업적 전략으로만 앎을 추구해야 하는가. 다만 무엇인가의 수단으로만 앎이 갈망되어야 하는가. 앎의 가치는 그것의 도구성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자신의 체험을 조금이라도 반성하고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공자가 이천여 년 전 이미 말했듯이 앎은 그 자체가 기쁨이다. 역설적이지만 알기 위해 치러야 할 노력과 고통은 곧 기쁨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글자와 숫자를 배웠을 때의 놀라운 기쁨을 회상해보자. 처음으로 물리학, 화학 또는 식물학을 배웠을 때의 신기한 즐거움을 기억해보자. 처음으로 역사를 배우고 사상사를 배웠을 때의 흥분된 쾌감을 되새겨보자. 시시한 앎이 그렇게도 기쁨을 가져올 수 있다면, 우리들의 생존과 번영에 깊이 관계되고, 모든 사물 현상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앎이 가져오는 충족감은 그만큼 더 크고 깊은 것임에 틀림없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발견했을 때, 뉴턴이 '만유 인력'을 알았을 때,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처음 투시할 수 있었을 때, 각기 그들이 체험했었음에 틀림없을 기쁨의 환희 소리를 상상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위대한 철학자의 한 사람인 칸트는 그의 저서 "실천 이성 비판"의 마지막에 대충 다음과 같이 썼을 때 그는 앎의 순수한 기쁨을 웅변적이며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밤하늘에 뿌려져 있는 아름다운 별들의 질서를 마련하는 물리적 법칙과 가슴속에서 발견하는 도덕적 법칙에서 생기는 경이와 경건심을 금할 수 없다."
앎이 가져오는 어떤 결과를 떠나 앎 자체만으로도 기쁨일 수 있는 이유는 앎이란 빛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빛, 즉 밝음은 그 자체가 더 바랄 수 없는 환희가 된다. 빛, 밝음, 투명한 것 이상으로 더 깊고, 짙고 순수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빛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어둠에서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하신 신이나 해탈한 부처님을 제외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짙은 어둠에 갇혀 있다. 모든 생명이 지향하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는 이 어둠에서부터의 해방이다. 이성을 부여받고 태어난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성의 빛을 찾는다. 왜냐하면 이성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모든 동물로부터 구별하고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이승과 저승으로 잠정적으로 일단 구별한다. 이승은 현세를 말하고 저승은 죽은 다음의 삶을 뜻한다. 그리고 이승의 우리의 상황을 '무명'이라고 서술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해탈'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탈된 세상, 보다 정확히 말해서 그 상황은 '열반'이라고 불린다. 언뜻 보아 신비스럽기도 하고 알 수 없을 것 같은 불교적 세계관은 따지고 보면 뻔하다 할 만큼 자명하고 단순하다. '무명'이란 어둠을 의미하며 어둠은 인간의 무지한 의식 상태를 가리키며, '해탈'은 어둠으로부터의 해방, 즉 사물 현상을 올바로, 즉 있는 그대로 알았을 때의 상황을 뜻한다. 삶의 궁극적 기쁨의 상태를 뜻하는 '열반'이란 다름아니라 어둠으로부터 해방됐을 때, 우리가 사물 현상의 본질을 빛에 비친 대로 보았을 때에 체험할 수 있는 의식 상황을 지칭함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놓여 있는 자연 상태 속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인간은 '무명' 즉 어둠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불교가 가르쳐주듯이 인간의 근본적이고 자연적인 욕망은 어둠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따라서 앎에의 소망은 가장 근원적이다. 인간의 조건과 욕망에 의해 설명되는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가치는 앎 자체이다. 그러므로 앎은 무한히 넓고 무한히 깊은 세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고 끝없는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준다. 그래서 앎에의 갈망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그 갈망은 앎의 도구적, 즉 수단적 가치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앎의 본질적, 즉 형이상학적 가치를 전제했을 때에만 설명된다.
나날이 그리고 급속도로 모든 것이 상업주의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그 어떤 것도 상품화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상품주의 세계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본질적이며 순수한 가치를 가질 수 없다. 모든 것은 교환가치로 귀착된다. 모든 것이 도구가 되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에서 따지고 보면 무엇을 위한 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앎의 가치, 배움의 가치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물론 나는 앎의 도구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앎이 힘이라는 주장은 진리이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라도 우리는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앎이 도구적 가치를 떠나서 더 근본적인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앎 자체가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하고 어떤 학문에 종사한다면 깊고 참신한 앎을 얻기 힘들다. 자연과학에 있어서나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 과학에 있어서나 위대한 진리는, 깊은 앎은 앎의 순수한 가치, 앎 자체의 가치에 도취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발견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앎이 도구적 가치가 있다면 보다 중요한 도구적 가치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깊은 앎을 찾아야 한다. 즉 앎의 도구적 가치가 앎 자체의 가치를 추구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면 도구적 가치보다 내재적 가치를 더 알고, 탐구하고, 배우는 태도를 갖춰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앎을 갈망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모든 사람이 앎의 순수한 가치를 깨닫거나 경험하고 있지도 않고 꼭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정말 학문을 위해 일생을 바쳐 학문적 공헌을 갖겠다는 사람이라면 그는 누구보다도 사물 현상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앎 자체의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갈망과 정열을 우선 가져야 한다. 그는 우선 앎 자체가 주는 기쁨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태도는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말 대학다운 대학에서는 눈앞의 실용성과는 상관없이 앎의 순수한 가치가 존중되고 그런 가치를 위한 노력이 격려되어야 한다. 앎의 수단적, 즉 부차적 가치를 기대한다는 입장에서만도 그래야 한다. 학문에 대한 우리의 태도, 가치에 관한 우리의 안목 때문에 교육의 의미와 제도에 대해 어쩌면 지나치게 근시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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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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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아흔아홉번째 이야기 - 새들이 왕을 뽑다
눈 덮인 산의 양지바른 곳에 수많은 새들이 모여 살고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새들이 모여 그들을 대표하는 왕을 뽑기로 했다.
"선거를 해서 왕을 뽑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왕을 중심으로 뭉치면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누구를 왕으로 뽑아야 할까?"
"나는 학을 추천하고 싶다."
"학은 안 돼! 왜냐하면 학은 다리도 길고 목도 길다. 만일 다른 새들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학은 그 새의 머리를 쪼아버리고 말 거야."
"맞아, 맞아!"
"나는 거위를 추천한다. 거위는 순백의 깃털을 가지고 있으니 뭇 새들이 존경할 만하다."
"거위도 안 돼! 거위의 깃털이 희고 깨끗하기는 하지만 그 목은 휘어지고 또 길다. 자기의 목도 곧지 못한데, 어떻게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겠어?"
"공작새가 좋겠다. 공작새의 날개는 오색찬란해서 보는 이들을 기쁘게 한다. 그가 왕이 된다면 모두들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공작새의 날개가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매번 춤출 때마다 온갖 추태를 다 보인단 말이다. 또 잘난 척하기도 좋아한다. 그가 왕이 되면 우리들도 나쁘게 물들고 말 것이다."
"나는 부엉이를 추천한다. 그는 낮에 쉬고 밤에 활동하니 우리들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니 왕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자 여러 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소! 옳소!"
그때 총명한 앵무새 한 마리가 남들이 하는 말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듣다가 부엉이를 추천한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 아냐. 새의 습성은 밤에 잠을 자고 낮에는 이리저리 먹이를 찾아 돌아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부엉이는 밤에는 깨어있고 낮에는 잠을 잔다. 그가 왕이 되면 주위의 신하들은 모두 밤낮으로 깨어 있어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내 생각을 말하면 부엉이가 화를 낼 뿐만 아니라 그 보복으로 내 깃털을 모두 뽑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여러 새들이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아, 어떻게 한다? 자기 생각만 하면 큰 일에 해를 끼칠 수 있어. 모두를 위하고 또 정의를 위해서라면 깃털이 뽑히는 아픔을 참아야겠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앵무새는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그 말을 들은 여러 새들이 잠시 생각해본 후 말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슬기로운 것은 아니구나. 너는 어리지만 제법 슬기롭구나."
다시 앵무새가 덧붙였다.
"내 말이 이해가 가면 부엉이를 왕으로 뽑아서는 안 돼. 부엉이가 웃을 때 뭇 새들은 공포감을 느끼는데, 그가 화라도 내면 어떨지 생각해 봐."
"앵무새 말이 옳소!"
이에 뭇 새들은 이렇게 결정했다.
"이 앵무새는 총명하고 슬기로우니 우리들의 왕이 되기에 적합하다. 그를 왕으로 뽑자."
이렇게 해서 앵무새는 새들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법원주림>
백번째 이야기 - 나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오
축차시라국의 박라우라 마을에 칭가발타라는 가난한 사람이 살았다. 칭가바타의 집은 원래 아주 큰 부자였지만 서서히 가세가 기울어 나중엔 거지꼴이 되고말았다. 친척들은 거지꼴이 된 칭가발타를 보지않으려 했고 혹 만나는 일이 있으면 교만을 떨며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칭가발타는 너무나 괴로워 고향을 등지고 대상들을 따라 먼 나라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이윽고 고향이 그리워진 칭가발타는 대상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때 고향에 있던 친척들은 칭가발타가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산해진미와 여러 기녀들을 데리고 마중나갔다. 칭가발타는 수수한 옷을 입고 대상의 선두 부분에 있었다. 칭가발타는 고향을 떠날 때 어린 나이였으므로,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를 금방 알아보는 친척은 없었다. 도리어 친척들은 앞쪽에 서있는 칭가발타에게 이렇게 물었다.
"칭가발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칭가발타가 대답했다.
"저쪽 뒷부분에 있습니다." 친척들은 대열의 뒷부분에 가서 물었다.
"칭가발타는 어디에 있습니까?" 대상 중의 한 사람이 대답했다.
"저 앞쪽에 가고있는 사람이 바로 칭가발타요."
친척들은 다시 앞쪽으로 달려와 칭가발타에게 물었다.
"자네가 바로 칭가발타이면서 왜 뒤쪽에 가서 찾으라고 한 것인가?"
칭가발타는 씁쓸해하면서 얘기했다.
"내가 가난했을 때 친척 여러분들은 날 보려 하지도 않고 말조차 걸지도 않았소. 그런데 내가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니까 이제 이렇게 마중을 나온 것이군요."
"아니, 자네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는가?"
"옛날에는 상대도 하지않다가 내가 부자가 된 걸 알고 이렇게 산해진미와 기녀들을 데리고 와서 환영하다니... 결국당신들이 환영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저 재물이지 뭐겠소?"
이렇게 얘기하자 친척들은 낯을 들지 못했다.
<대장엄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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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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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나만의 글쓰기 비법
제3교시 읽는이가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라야 한다.
숫자를 셈하느 수학과 감정을 드러내는 문학의 차이.
1. 나만 아는 이야기
어느 여름날 한밤중이었다. 누군가 초인종을 다급히 누르면서 문을 부서져라 두들겨 댔다. 막 잠자리에 들려던 시인 ㄱ씨는 깜짝놀라 맨발로 달려 나갔다. 찾아온 사람은 그의 친구 ㄴ씨였는데, 술에 얼근하게 취해 있었다. 친구 ㄴ씨는 ㄱ시인과 함게 문학공부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직 시인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ㄴ씨는 자기의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기성 문인들에게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 ㄴ씨는 자기가 써온 시를 주머니에서 써냈다.
"야, 이사람 꾼, 내가 오늘 내 일생 일대 최고의 아름다운 시를 써 가지고 왔네, 한번 읽어보고 자네가 관여하고 있는 잡지에 추천좀 해주게." 하고 말했다.
"머리에 털이 돋은 이래 지금까지 이렇게 진한 감격과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없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 감격과 감동을 손톱만큼도 놓치지 않고 모두 다 이 시 속에다 담았다네, 아마, 모나마나 자네도 깜짝 놀랄 거야."
친구 ㄴ씨는 그 시를 쓸 수 있게 한 그 감격과 감동을 새삼 되새기면서 "아아, 하아" 하고 탄성을 지르며 울먹이기까지 하였다. 시인 ㄱ씨는 잔뜩 기대를 하면서 ㄴ씨가 건네줌 시를 읽어 보았다.
오오, 나의 사랑, 나의 기쁨
오 나의 이 감격 이 감동을 누구에게 다 말할까
하늘이 알까 땅이 알까, 오호 나의 사랑이여
나에게 이 감격과 아름다운 감동을 준 그대여
그 시에는 정말로 감격과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던 듯 감탄사가 줄줄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시인 ㄱ씨는 친구의 가슴속에 넘쳐 흘렀다는 그 감격과 감동을 눈곱만큼도 느낄 수가 없었다. ㄱ씨는 정말로 난감했다. 솔직하게 말을 하면 ㄴ씨가 크게 실망할 테니까. 그렇지만,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시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가 없네" 하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ㄴ씨가 자신이 직접 느낀 감격과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감탄사들을 연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는 왜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엇을까? 그것은 그 감격과 감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느낌이 어떠한 것이었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쓴이가 말하려고 하는 생각의 덩어리(주제)가 읽는 사람의 가슴에 와 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런 경울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누가 들어도 배꼽을 잡고 까르르 넘어갈 만한 우스운 이야기 하나를 내가 알고 있다고 치자. 그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는, "아이고, 나 이렇게 웃기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야아, 아이고, 내 배꼽 달아난다. 아하하하하......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이래 이렇게 웃어 본 일은 정말로 처음이다. 아하하하하하...... 야 너희들 우습지 않냐 우습지 우습지 하하하하하......" 하고 깔깔 거리고 웃었다. 친구들은 과연 나를 따라 웃을까? 친구들은 "야, 참, 별 이상한 애 다 보겠네"하고 투덜거릴 것이 뻔하다. 이런 실수는 글쓰기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2. 읽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글
4월 봄이다. 학교에 가서 수업하기에는 마치 전쟁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제 곧 떠날 소풍만 생각하면 힘이 부쩍 솟는다. 선생님 말씀이 귀에 절로 들어온다. 이와 같이 나에게는 소풍을 기다리는 것이 인생의 한가지 낙이다. 내 인생 15년 지금까지 소풍을 수없이 갔다가 왔다. 또 이러는 과정에서 소풍가느 ㄴ장소에 대하여 많은 감정이 생겼다. 놀이공원, 고궁, 산성...... 많은 장소 가운데서 가고 싶은 장소가 있고, 그럭저럭 놀다 오는 장소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소풍가는장소 가운데서 어디가 제일 좋은가 라고 물어보면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간 경복궁과 중학교 2학년때 간 드림랜드에 갔다온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경복궁은, 그냥 도착해 가지고 고궁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다음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다가 온게 전부이다.
ㄱ) 드림랜드에 갔을때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같이 노는 것이라도 느낌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경복궁은 재미없고 드림랜드만 재미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고궁은 나에게 있어서 공부가 되므로 거의
ㄴ) 90퍼센트 이상 재미 있다. 드림랜드에서 노는 것과 경복궁에서 노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렇듯 소풍도 각 장소마다 재미가 다르다. 소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옛날 누군가가 말했다. 소풍은 학생을 위한 거라고.
이 글에는 글을 쓴 사람 혼자서만 알 수 있을 뿐, 읽는 사람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석이 밑줄친 ㄱ)'드림랜드에 갔을 때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같이 노는 것 이라도 느낌이 달랐다' 와 같은 말이다. 경복궁에 소풍갔을때와 드림랜드에 갔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글 쓴 사람 혼자만이 아는 일이다.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가 하느 ㄴ내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령, 이런식으로 말이다.
드림랜드에 갔을때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꿈이 깃들어 있었다.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러 가기 위해 금세라도 말을 탄 왕자님이 달려나올 것 같은 궁전, 거대한 강물 같은 하늘의 은하수 위를 달리는 공중 철도, 그뿐만 아니었다. 나무꾼과 선녀가 살던 초가집, 도깨비 불이 번쩍거리는 무시무시한 동굴, 간이 오그라붙을 듯 아찔하게 공중을 오르내리는 바이킹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신비로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드림랜드에서 노는 동안, 나는 내내 어릴적 읽은 동화 게계속을 헤엄쳐 다니는 기분이었다.
3. 수학적인 표현과 문학적인 표현
글을 쓸 때, 또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수학적인 표현과 문학적인 표현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밑줄친 ㄴ)에서 처럼 '90퍼센트 이상 재미있었다' 든지 '100퍼센트 훌륭했다.' 든지 하는 표현은 쓰지 않는게 좋다. 그런 표현에 유의하면서 다음이야기를 읽어 보도록 하자.
어느 학교에 말주변이 무척 없는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 화창한 봄날을 맞아, 그 학교에서는 운동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그날 아침에는 으레 운동회를 즐겁고 안전하게 치르기 위한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아, 아' 하고 마이크 시험을 마친 뒤, 이야기의 서두를 꺼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서......"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말을 하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앞산 잔등 위로 구름 한 장이 떠올랐다. 당황한 교장 선생님은 자기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고, 즉시 그 구름장을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고쳐 말했다.
"저기, 저 구름 한 장이 떠 있기는 합니다만, ......참으로 맑고 프르른 하늘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이렇게 막 말하고 났을 때.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서 있던 학생들이 서쪽 하늘을 손가락질 하면서 수근거렸다. 교장 선생님은 눈잎이 아찔했다. 이번에는 서쪽 하늘에 구름이 석장이나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당황한 교장 선생님은 다시 그 구름장을 가리키며 자기의 말을 수정하였다.
"저 서쪽 하늘에 또 구름 석장이 떠오고 있기는 합니다만, ......어떻습니까 그래도 참으로 맑고 프른 하늘이기는 합니다." 운동장에 서 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관중석에 모여 있는 학부모 들은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얼굴이 새빨개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웃었을까 하늘에 구름이 한두장 또는 너댓장 떠 있다고 해서 맑고 푸른 하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것을 기어이 수학적으로 따지려 하다 보니 그런 우스꽝 스런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다음 글을 한번 보도록 하자.
우리학교 운동장 가에는 느티나무가 열다섯 그루 서 있는데, 그 수천개나 되는 가지들에서 바야흐로 새싹 수만개가 트고 있다. 또 그 옆에 서 있는 다섯 그루의 눍운 벚나무들과 스물아홉 그루의 진달래 나무들은 꽃이 떨어진 뒤 녹색의 잎사귀들 수십만개를 피워 내고 있다.
이런 표현은 어떨까 만일 이런 식으로 남산의 숲을 표현해야 한다면 어떡할까? 그 산에 서 있는 수없이 많은 나무들의 수를 모두 다 헤아려 보아야 할까 우리 느낌이나 생각은 이렇게 수학적으로 계산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 그러면 앞에 인용했던 글을, 앞에서 이야기한 부분에 주의하면서 함께 고쳐보도록 하자.
4월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긴 하지만, 교정에 피어난 붉고 노란 꽃들을 보면 봄이 왔음을 절로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새 학년 새 학기 공부가 시작된 지도어느덧 두 달 째 이다. 하지만 아직 새 학년의 공부에 적응이 잘 되질 않아서 일까 후업이 마치 전쟁을 치르기 위한 준비인 듯 무섭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예습도 해야 하고, 복습도 해야 하고, 거기다 영어.수학 과외 수업까지...... 그렇지만 이제 머지않아 있을 소풍을 생각하면 힘이 부쩍 솟는다. 답답한 학교 교정안에서 하는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야외로 나가 한바탕 뛰어 놀 수 있다니 생각만해도 신이 안다. 그럴 때만은 선생님의 말씀이 절로 귀에 들어오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해마다 두 번 씩 가는 소풍은 학교 공부에 찌든 나에게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활력소인 셈이다. 소풍 날짜를 헤아리며 기다리는 동안, 내 삶은 알 수 없는 기대로 한없이 설레고 들뜨게 된다. 내가 살아온 15년의 세월동안,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시작해서 꽤 여러번 소풍을 다녀온 셈이다. 그런만큼 소풍 장소도 여러 곳이다. 각기 특색이 있는 그 여러 장소들에 대해 많은 추억과 느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놀이공원, 고궁, 산성...... 그 많은 장소들 가운데는 , 우리들이 반드시 가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될 장소가 있고, 그럭저럭 즐겁게 뛰어 놀다가 오면 되는 장소 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곳이 소풍 장소로서 가장 적당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다녀온 경복궁과 중학교 2학년때 다녀온 드림랜드를 권하겠다.
경복궁은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서 속속들이 둘러보아야 할 고궁이다.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한 바퀴 휘둘러본 다음, 잔디 밭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즐겁게 뛰어놀다가 온 게 전부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조선 시대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의 예스러운 분위기가 아직도 내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 곳은 나의 마음 속에 우리 민족의 오랜 뿌리를 소리 없이 심어 주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드림랜드에 갔을 때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꿈이 깃들어 있었다.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러 가기 위해 금세라도 말을 탄 왕자님이 달려나올 것 같은 궁전, 거대한 강줄기처럼 하늘의 은하수 위를 내닫는 공중 철도,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무꾼과 선녀가 살던 초가집 도깨비불이 번쩍거리는 무시무시한 동굴, 간이 오그라 붙을 듯 아찔아찔하게 공중을 오르내리는 바이킹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신비로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드림랜드에서 노는 동안, 나는 내내 어릴적 읽은 동화 세계속을 헤엄쳐 다니는 기분이었다.
경복궁에서 노는 것과 드림랜드에서 노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렇듯 소풍은 가는 장소에 따라서 얻고 느끼는 맛과 재미가 각기 다르다. 학교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바람을 쐬러가되, 그 특이한 소풍장소가 말없이 가르쳐 주는 것을 가슴에 빨아들이고 온다면 꿩먹고 알먹기가 아닐까. 소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답답한 학교 공부에 찌들어 있는 우리에게 풋풋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이 고마운 소풍을 이번 기회에는 더욱 잘 이용하도록 해야겠다.
생각해 봅시다.
1.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가슴속으로 밀려든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어 감탄사를 연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감동도 와 닿지 않는게 사실이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설명해 보자.
2. 숫자를 정확하게 세고 셈해야 하는 수학과 자신의 감정을 글로써 솔직하게 그려 내 보이는 문학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그것을 혼동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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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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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장
작은 행복
2. 초막에 불 밝히고
영웅신 '예'에 얽힌 비극
좌붕 노인이 어린 손자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밭일에 함께 다녀온 며칠 후부터였다. '가르칠 바에야 빠를수록 좋다.' 그날 밤,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데 일노일소(一老一少)는 마당에 자리를 깔고 앉아 하늘을 바라다 보았다. "오랜 옛날 예라고 하는 아주 뛰어난 인물이 하늘나라에 살고 있었다......." ㅡ예는 신화에서 요나라 때 활의 명수로 나오고, 하나라 때는 임금인 대강(大康)을 추방했다는 기록이 사기에 나오는데, 아무튼, 예라고 하면 활의 명수인 영웅이었으나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지상으로 쫓겨나 아내에게 배신당하고, 끝내는 제자에게 살해당하는 비운의 인물로 전해진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천제(天帝)에게 아들이 열 명 있었다. 그들은 모두 태양이었다. 그 어머니 희화(羲和)는 여섯 마리의 용(龍)이 끄는 마차에 매일 아들을 한 명씩 태우고 하늘을 달리게 했다. 마차에 타는 순서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열 개의 태양은 열흘 만에 한 번씩 인간들이 사는 세상의 하늘을 비추다가 하늘나라 집으로 돌아갔다. 인간들 쪽에서 보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언제나 하나지만 사실은 열 개의 태양이 열흘 만에 한 번씩 교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이들 태양의 형제들은 열 명이 모두 함께 놀아 보고 싶어졌다.
"내일은 우리 모두 함께 나가 놀자. 엄마에게는 말하지 말고....... 괜히 말했다가는 잔소리밖에 더 듣겠니?"
이렇게 해서 그 다음날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하늘에서 빛나게 되었다.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났다! 이러니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온통 불지옥처럼 뜨거워져 야단법석이 되었다. 강물과 호수는 물 한 방울없이 모조리 말라 붙었고 들과 산은 불타올랐다. 세상은 그야말로 아비 규환의 생지옥, 뜨거운 불덩어리 천지로 변하고 말았다. 그 때 지상(地上)의 요황제는 하늘에 있는 임금 천제(天帝)에게 빌어 구원을 청했다. 하늘나라 임금은 요황제가 구원을 애타게 갈망하는 호소를 들었다. 그래서 하늘나라 영웅인 예를 불러 곧 지상으로 내려가 인간을 도와 주도록 분부했다.
"지금 인간들은 열 개의 태양때문에 타 죽고, 뜨겁다고 야단이다. 그러니 지상으로 내려가 녀석들을 흔내서 인간들을 구원해 주도록 하여라."
예는 활의 명수에다가 용맹스런 영웅이었다. 그리고 고지식했다. 그는 열 개의 화살을 전통에 넣고 아내 항아(嫦娥)와 함께 지상으로 갔다. '약한 인간을 괴롭히는 녀석들에게 정말로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겠다.' 예는 지상에 내려오자 자신있는 활솜씨로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쏘기 시작했다. 태양은 화살에 맞아 차례차례 떨어졌다. 요황제는 놀랐다. 열 개의 태양도 곤란하지만 태양이 한 개도 없다면 이것 역시 인간이 살 수가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요황제는 부하를 시켜 예에게서 화살 하나를 몰래 훔쳐 오도록 시켰다. 결국 예가 아홉 개의 화살로 태양을 쏘아 떨어트렸기 때문에 하늘에는 하나의 태양만 남게 되었다. 예가 인간을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또 다른 야단이 벌어졌다. 하늘나라 임금의 아들 아홉 명이 죽은 것이다. 하늘나라 임금은 매우 화가 났다.
"얘 이놈! 그래도 내 아들들인데 적당히 혼을 내서 쫓아버릴 일이지....... 그렇게 죽일 까닭은 없지 않았느냐! 이노-옴!"
진노한 하늘나라 임금은 예의 신적(神籍)을 박탈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게 하였다. 예와 항아는 지상의 인간처럼 살게 되었다. 이제는 불사(不死)의 권리도 잃게 되었다.
"당신은 바보 천치예요. 적당히 해서 임금의 아들을 쫓아 버릴 일이지....... 이젠 어떻게 할 거예요?"
항아는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리면서 고지식한 남편을 들볶아댔다. 예는 자신의 잘못으로 이렇게 되었으니 할말을 잃고 그저 죽은 듯이 지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소식을 구했다. 얼마 후 예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곤륜산(崑崙山)에 서왕모(西王母)라는 신(神)이 있는데 그가 불사약(不死藥)을 갖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곤륜산은 신비의 산으로 그 곳까지 가는 길은 험하기도 하려니와 깊은 계곡과 활화산(活火山) 등이 있어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가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실수없이 잘할 테다.' 예는 곤륜산으로 떠났다. 신적(神籍)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보통 인간과는 다르다. 한때는 하늘나라에서도 용맹으로 손꼽히는 영웅신이 아니었던가. 그는 험한 산과 뜨거운 화산을 지나 힘들이지 않고 곤륜산으로 찾아가 서왕모를 만났다. 서왕모는 사연을 듣고 두말 하지 않고 예에게 불사(不死)의 영약을 꺼내 놓았다. 그런데 서왕모가 갖고 있는 것은 마지막 두 알뿐이었다.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마지막 두 알이오. 길일(吉日)을 택하여 부부가 한 알씩 먹도록 하세요. 한 알만 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요. 두 알을 먹으면 천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약이 없으니."
예는 서왕모에게 거듭 사례하고 신바람이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서왕모가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아내에게 전해 주었다.
"이제 하늘나라로 다시 올라가는 건 포기해야겠지만 우리도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소. 인간이 사는 이 지상에서지만 말이오."
예는 이제야 아내에게 진 빚을 갚게 되었다는 반가운 심정으로 영약을 꺼내 아내에게 주었다. 항아는 불사약을 잘 챙겨 두었다. 그날 밤, 항아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불쌍한 처지가 된 것은 모두 고지식한 남편 때문이다. 난 정말로 그를 따라 지상으로 내려온 잘못 뿐이다. 나만큼은 절대로 억울하다. 그런데.......'
한 알을 먹으면 불노불사(不老不死)이지만 두 알을 모두 먹으면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부부 중 다른 한 명은 지상에 남아야겠지.......' 항아는 영약 두 알을 꺼내 들고 잠든 남편의 얼굴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남편은 남편이고, 난 원래 천상에 살았으니까 그 곳으로 돌아가야지.' 결심이 서자 항아는 혹 마음이 변할까 두려워 두 알을 한꺼번에 입 속에 넣어 버렸다. 과연 그녀의 몸은 점점 가벼워져 깃털처럼 떠오르더니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도중에 항아는 생각했다. '혹시 남편을 혼자 두고 나만 올라왔다고 손가락질 받을지도 몰라. 잠시 피해 있다가 가야지.' 그녀는 달에서 잠시 동안 피해 있기로 했다. 그래서 월궁(月宮)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때 그녀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키가 점차 작아지고, 목은 어깨 속으로 점점 기어들어가고, 배와 허리가 부풀어오르고, 눈이 튀어나오고, 팔 다리가 옆구리에 괴상하게 붙어 버리는 것이었다. ㅡ으악! 항아는 마침내 달나라에서 한 마리 두꺼비 형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영약을 먹는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예의 아내인 항아의 이름이 달의 별명처럼 되었다. 어찌되었든 불쌍한 것은 예였다. 그는 천상에 올라가는 것은 고사하고, 영원히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소망마저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아내에게서 철저히 배신까지 당하고 말았다. 더구나 그의 죽음은 더욱 비극적이었다. <예를 살해한 자는 봉몽(逢蒙)>이라는 말이 있다. 봉몽이란 자는 예의 부하이고 제자이기도 했다. 예는 그에게 활쏘는 비결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아내에게서 배신당하고 불사(不死)의 희망마저 잃고 낙담해 있던 예에게 접근하여 위로해 주는 척하고 신임을 얻은 후 제자가 되어 활쏘기를 배웠다. 그런데 활쏘기의 비결을 배우고 나자 봉몽의 생각은 싹 달라졌다. '예만 없어진다면...... 나는 천하 제일이 된다.' 여기서 봉몽은 예를 죽일 결심을 했다. 활로 쏘아 죽이려다 실패한 그는 끝내 복숭아 나무로 만든 곤봉으로 예를 때려 죽였다.
이 신화에서 우리는 인간 세상에 널려 있는 많은 것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주어진 임무의 수행 방식, 남녀의 사랑과 갈등, 욕망과 선의, 죽음에 대한 공포, 경쟁 관계의 삭막함, 그리고 신의와 배신이라는 것. 좌붕 노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오 소년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예라고 하는 분이 너무 불쌍해요." ㅡ불쌍한 영웅 예. 어린 소년의 가슴 깊이 박힌 영웅신 '예'는 평생 동안 그의 행동 양식과 상황 적응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불안한 손님
좌붕 노인은 집안에서는 손자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서당의 훈장님이었지만, 들판에 나서면 여전히 철저한 자연의 개척자요, 농사꾼으로 돌아갔다. '내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욱 쉴 틈이 없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벌써 8월도 그믐이 가까워지는데도 날씨가 무더웠다. 농사꾼에게는 이것이 고마운 일이다. 덕택으로 온갖 작물의 수확이 좋아진다. 내리쬐는 태양은 등을 태우고, 땅에서 되솟아오르는 무더운 열기는 온 몸을 땀으로 젖게 했다. 좌붕 노인의 얼굴은 벌겋게 익었고, 땀방울은 수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할아버지, 좀 쉬었다 하세요."
나무 그늘에서 놀던 소년이 큰소리로 외쳤다.
"오냐, 오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노인의 밭갈이는 계속되었다. 일기가 좋은 여름일수록 작물만 잘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잡초도 잘 자라서 그것을 알뜰히 뽑아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작물의 성장이 크게 달라진다. 좌붕 노인은 한참이나 잡초를 뽑은 후에야 손자 녀석이 기다리는 그늘로 가서 앉았다. 소년은 어느새 만들었는지 작은 활을 당겨 목표로 하는 나뭇가지를 쏘아 맞추고 있었다. 열 가운데 다섯이나 여섯은 명중했다. '대단한 솜씨인걸.......' 노인은 내색하지 않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좌붕 노인의 눈빛 속에는 대견함과 감탄이 담겨져 있었다. 좌붕 노인과 소년이 귀가길에 오른 것은 뜨거운 태양이 넓게 트인 지평선 쪽으로 저물어가는 무렵이었다. 주변 들판에는 이미 사람의 그림자가 없었다. 노인은 오늘도 이 부락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일한 것이다.
마음은 더 일하고 싶었지만 몸은 고달팠다. 밭을 일군다는 일이 일흔 살 노인으로서는 중노동인 것이다. 하지만 손자 녀석과 손을 잡고 들판을 걸어오는 좌붕 노인의 표정에는 피곤한 빛이 보이지 않았다. 옷은 더러워지고 얼굴은 땀에 젖어 있으나 즐겁게 일한 후에 나타나는 뿌듯함과 함께 온화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집 앞에 거의 이르렀을 때 노인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졌다. 자기 집에 평상시와 다른 변화가 왔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집 옆쪽 공터에 처음 보는 낯선 말 한 필이 매어져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웬 말이 있지?'
좌붕 노인은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노인이 말을 못 본 지도 벌써 몇십 년이 넘었다. 말이 이 곳에 매어져 있다는 것은 말 타는 신분의 사람이 이 곳에 왔다는 것인데 좌붕 노인으로서는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무슨 일일까?' 노인은 의아해 했다. 병졸들을 모으는 징병관일까? 그럴 리가 없다. 병졸을 데려 가려고 왔다면 부락의 일을 보고 있는 촌장에게로 갈 일이다. 더욱이 올해는 전쟁의 소문조차 들리지 않고 있다. 좌붕 노인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자기 집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손자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침 석양이 물들고 주위의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으나 집이 가까워짐에 따라 말의 몰골이 확실히 보였다. '형편없는 말이로군.'좌붕 노인은 그 말의 몰골을 보자 다소 기분이 풀어졌다. 말갈기는 반쯤 빠져 있고 털도 매끄럽지 못했다. 상당히 늙은 말로 괴로운 듯이 목을 늘어뜨리고 있으며 안장을 비롯한 장구(裝具)도 낡아빠져 병정이나 벼슬아치가 탈 것이 결코 못 되었다. '떠돌이 장사꾼인가?' 간혹 약초를 캐러 오는 약장수들이 근처를 지나는 일이 있었다. 강 건너편 신로봉(神露峰)에 오르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이 마을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을 타고 왔다면 애초부터 산길을 타고 올 리도 없고 잘못 길을 든 것이 아니잖은가. 좌붕 노인이 늙고 초라한 말을 곁눈질하면서 자기집 문 앞에 당도했다. 때마침 집 안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좌붕 노인은 천천히 문 안으로 들어섰다. 도대체 이 방자하게 웃고 떠드는 자가 누구인가.
"아버님이 돌아오셨어요." 부엌에서 일하던 며느리가 뛰어나오면서 외치자, 방 안에서 웃음소리가 멈추고 방문이 열리면서 여러 명이 우르르 마당으로 내려섰다.
"사돈 어른,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어라!' 좌붕 노인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생면부지의 사내로부터 사돈 어른이란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전에 보았을 때는 젖먹이었는데......." 사내는 노인 옆에 서 있는 이오 소년을 보고 큰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두 손을 벌려 보였다. 이 사내가 전에 보았던 소년의 크기를 가리키는 것이겠지. "아- 하." 그제서야 좌붕 노인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렇습니다. 접니다. 의형(義兄)과 함께 떠났던 그 사람입니다." 사내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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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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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ide of Baltimore II: seen a few seamiles southeast of Lunenburg ] 위키백과 2011. 10. 그림을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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