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3 - 최명희
5. 아름드리 흰 뿌리(2/4)
낳아 주신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던 친정을 떠나, 이제 지아비의 집안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을 누구라서 잊을 수 있으리오만, 원뜸의 솟을 대문과 구름 같은 골기와 지붕이 장엄하게 눈앞에 들어오던 정경은 어린 새각시의, 이제 막 유충의 고치를 벗고 나비로 날아오르는 수줍은 눈에는, 아찔하게 아득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금이 오그라붙는 긴장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이다. 새각시를 보려고 대종가에 모인 사람들이 방안에 가득한데, 숨을 못쉬고 눈을 내리깐 새각시는 발이 마당을 짚는지 공중을 짚는지 모르게, 오직 온몸의 힘을 다하여 얌전하고 조심스럽게만 걸음을 떼었다.
“아마, 내 평생에 그렇게 조심스럽고 어려운 절은 다시 할 일이 없을거요. 아이구. 절이 그게 그냥 허는 게 아닌 줄은 알었지만.”
이것은 이씨 집안 며느리라면 어느 누구 한 사람 빼놓지 않고 꼭 같이 하는 말이었다. 칼날에 베일 것 같은 아슬아슬한 조심으로 문지방을 넘은 새각시가 방안으로 들어설 때는 “숨을 명주 오라기만큼밖에 못 쉬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도록 숨을 죽였다. 그때는 온 방안의 사람들도 다 숨을 죽이고 새각시를 지켜 보았다. 이미 문지방을 넘어올 대 청암부인의 일별은 새각시의 됨됨이와 친정의 가르침, 범절 등을 알아보고도 남았을 것이지만, 아직은 다본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새각시는 청암부인 앞에 다소곳이 눈을 내리뜨고 서서 지극한 공경이 예를 다하여 공손히 평절을 한다. 두 손을 이마 위에 마주 대고 앉아서 하는 큰절보다, 오히려 평절이 더 어렵다. 전을 하기 전에, 구름 위에 뜬 것처럼 날아갈 듯 가볍게 서 있는 모습은 전아하고 맵시가 있어야 하며, 모으고 선 두 발도 안순음전해야 한다. 그리고 사르르 앉을 때는, 마치 꽃잎이 곱게 날아앉는 듯 소리 없이, 꺾이거나 기우뚱거리지 않도록, 언제 앉는 줄 모르게 앉아야 하며, 두손을, 다소곳이 모아 눕힌 양 무릎 바깥쪽 방바닥에 내려놓을 때, 역시 살포시 어여쁘게 놓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고개를 수그릴 때는, 공경하는 심정이 가슴에서 우러나와 그 마음을 공손히 조아려 바치는 아름다움이 진정으로 무르익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 팔굽을 굽히면 안된다. 그렇다고 뻗장다리처럼 버티고 앉아서 고개만 툭, 떨구었다 쳐드는 것은 상놈의 절이라고 호된 꾸중을 듣는다. 곧고도 부드럽게 펴서 잘생긴 나뭇가지처럼 어깨를 받쳐야 고개가 납작 앞으로 어푸러지지 않고, 절 하는 이의 모습에 품격이 있으며 모양이 아름답다. 절은 예와 미의 꽃이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향기로와야 한다. 연꽃송이, 매화송이, 모란을 받치듯이 조아린 고개를 따라 사푼히 기울이는 등허리의 안존함, 위에, 절 받는 눈길이 다사로운 미소를 내린다. 그러면, 고개를 들고 공손히 조용하게 일어섰다가, 다시 처음같이 앉는다.
“절 한 자리 허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은 물론이고 친정, 외가, 진외가까지 다보인다.”고 청암부인은 말했다.
“양반의 절이란 우아하고 격이 있어 점잖어야 한다. 무슨 절을 그렇게 교색으로 간드러지게 허느냐. 기생이라면 모를까, 여자 교색이란 남의 눈에 드러나면 천격인 법이다.”
간신히 절을 다 하고 부인 앞에 앉은 새각시를 향하여 이렇게 한 말씀 내리면, 새각시는 콧등에 땀방울이 돋아나며 어쩔 줄을 모르고, 그말은 곧 지엄한 꾸중이어서 큰 흉이 된다. 이 첫번째 대면에서 무슨 말씀을 들었는가는 문중 부인들의 관심거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까지 두고 두고 그 새각시를 재는 기준이 되었다. 첫자리의 첫절이 그렇게 무서웠다. 절하는 자리에서 새각시는, 시댁의 범절 앞에 자신의 친정 가문의 범절을 여실히 보여 주게 되는 셈이어서, 단순히,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는 의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개는 별 말씀 없이 절을 받지만, 그 면전에서 크게 꾸중을 듣고 불호령을 들은 새각시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너 그 절 어디서 배웠느냐?” 이 한 마디만으로도 이미 백 마디 만 마디를 들은 것과 같았다. 눈만 빗득 잘못 떠도, 앉고 서는 것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걸음 떼는 발이 자칫 덤성 조심성이 없어도 바로 흉이 되었다. 방정맞고 수선스럽게 절을 하면 상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너 신행 너무 일찍 왔다. 가서 다시 처음부터 새로 배워 오너라.” 방바닥에 눈물 떨어지는 소리가 툼벙 툼벙 들리던 그 새각시들은, 그러나 해가 바뀌고 또 이듬해가 되고, 삼 년이 지나고 하면서 점점 절하는 모양이 고와지고, 드디어는 남의 절을 흉보게 되곤 하였다. 아무리 매운 꾸중을 들었어도, 다시 원뜸으로 절 하러 갈 일은 얼마걸러 곧 생기기 마련이고, 같은 말씀 또 듣지 않으려면 잠을 안 자고라도 다리가 붓게 연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니 자연 다른 버릇도 스스로 깨우쳐 고칠 만큼도 되었다. 하여, 이 집안 범절의 엄중함이 어느 누구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어여쁘다.”
“양반이 분명허구나.”
칭찬을 받는 새각시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 말씀이 없거나 고개만 끄덕이어도 새각시는 황감하여 안도의 한숨이 남모르게 새어 나왔다. 절을 하고 나서도 다 끝난 것이 아니어서, 나갈 때, 만일 무망간에라도 어른에게 엉덩이를 보이고 돌아서는 날이면, 뒤꼭지에 떨어지는 불호령에 소스라쳐 혼이 다 흩어지고 만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알던것도 잊어 버리고, 않던 짓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치며 사뿐히 문지방을 넘어가야 비로소 절차가 끝난 것인데 절을 하고 막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흉이 퍼져 마을로 날아갔다. 청암부인은 절을 받을 때만 그리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동거지 하나라도 잘못된 것이 눈에 뜨이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번은, 무슨 일로 동촌댁 질항의 집에 잠시 들렀는데 꾸중을 한 일이 있었다. 본시 사람은 착한데 성품이 맺힌 데가 없고 게으른 이 사람이, 남편의 저고리 동정이 오래 되도록 갈아 달지 않아, 가무름하게 때가 오른것을 천연스럽게 횃대에 걸어 놓은 모양이 본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로고, 저 저고리 동정 좀 보소. 사람이 신, 언, 서, 판이라고, 우선 의관을 단정히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거늘, 제 서방 옷 형상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낯으로 고개를 들고, 나요, 허는고.”
동촌댁은 기어 들어가는 자라목으로 황급히 저고리를 끌어내려 우물쭈물 구석지에 치웠다. 그래서 또 내처 꾸중을 들었다.
“옷이란 그 사람의 몸이나 한가지인데, 남편 옷을 그렇게 아무런 정성도 없이 함부로 구겨서 아무 데나 박아 넣으면, 그게 제 남편을 구겨 박는 것하고 무엇이 다른가. 세상에는 공것이 없느니, 내가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내 앞으로 쌓이는 법인 걸, 정성 한 톨 쌓지 않고 무슨 염치로 해뜰 날을 바라는고.”
부인은 진심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제 대접은 제가 받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네가 한번은 꼼꼼하면서도 오종종한 삼종질의 집에 들렀다가, 마침 그날 밤 제사에 쓰려고 남원 장에서 사 온 제수들을 마루에 내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 중에는 집 터안에서 마련한 것도 있었지만, 젓가락 같은 초 여러 잘와 배득배득 마른 조기, 그리고 그만그만한 과일 몇 가지며 바가지에 담아 놓은 대추만씩이나 한 반이 그네의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무엇이냐?”
묻는 청암부인에게 그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왜 묻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짐작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수인 줄 번연히 알고 묻는 것이어서 공연히 당황이 되었다.
“제사 음식이란, 자손이 제 부모 선영한테 드리는 정성인데, 네 정성이 이렇게 잘잘해서야 어디 감응인들 크게 하시겠느냐. 이렇게 못난 것 여러 개 올리지 말고, 차라리, 비용이 안되면, 단 한 가지를 올리더라도 제일 크고 좋은 것으로 쓰는 것이 좋으니라. 그래야 신명도 흡족하실 것이다. 네가, 큰 것을 놔 두고 그 옆에 차등한 것을 고르는 마음의 몰골을 들여다보아라. 장부가 그래서야 되겠느냐. 큰 것을 올리는 것은 바로 너를 크게 만드는 것이니라.”
청암부인의 궁목은 참으로 남이 들여다볼 수 없었다. 서릿발의 시선이 닿는 극한까지, 자신의 안력을 다하여 쏘아보는 끝머리 마지막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으리오. 그 서슬로, 모질고도 무거워서 막막하기 그지없는 한세상을 온몸으로 떠맡은 채, 황량참담한 돌짝밭에 자신의 살로 거름을 주고, 자신의 뼈로 길을 깎아 오늘에 이른 부인에게, 세상 사람들은 ‘청암대신’이라는 별호를 드려 칭송하고 우러르니, ‘여중군자’, ‘여중호걸’, 드리우신 그 산악은 거대한 지붕인가, 가없는 울타리인가. 그런데 이제, 이승에서의 무거운 살의 짐을 다 덜어 버리고, 오직 가볍게 마른 뼈로 조그맣게 남겨진 부인의 몸은 애처롭고도 홀가분해 보인다. 홈실댁은, 이제는 잡아 보아 아무 소용이 없는 부인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마른 잎사귀처럼 아무 기운 없이 부스러질 것만 같은 손이다. 얼마를 그러고 있던 홈실댁은 양손의 열 손톱과 양쪽 발의 발톱을 모두 가지런히 깎는다. 마지막 무거움을 잘라 내는 것이다. 깎은 손톱 발톱이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추려 모아 넉 장의 백지에 차례차례 싸고, 낙발을 싼 백지를 여미어 접는데, 옆에서는 오낭을 챙긴다. 붉은 명주로 만든 이 작은 주머니 다섯 개는, 얼핏 보면 앙징스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그렇게 앙징스러워서 가슴 밑이 북받치는 설움은 더욱 크다. 자신의 몸에서 떨어진 머리카락, 부질없는 손톱 발톱까지도 이렇게 어여쁜 주머니에 담아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거두어 망인은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홈실댁은 작은 붓을 들어 주머니마다 꼼꼼히,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구분하여 적는다. 붓이 닿는 헝겊은 마치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헐렁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홈실댁은 문득 세필을 멈추고, 주머니를 가만히 눌러 보았다. 육신의 끄트머리 손톱 발톱마저 이미 잡히지 않는 곳으로 기화해 버린 듯한 빈 주머니는, 허물같이 벗어 놓은 허전한 휘장인가 싶어진다. 무엇으로 그 속을 채울 수 있으리. 이윽고 그네는, 청암부인의 얼굴을 검은 비단 멱건으로 가리우고, 홑이불을 조용히 덮었다. 이제 목욕을 마친 것이다. 옆에서 거들던 사람은 목욕물 대야를 들고 바끙로 나갔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 미리 파놓은 구덩이 앞에 이르러, 잠시 숨을 죽이더니, 마치 하직 인사를 하듯 허리를 굽혀 대야의 물을 그곳에 부었다. 얼어붙은 땅의 구덩이 속으로, 청암부인의 몸을 머금은 자단향 물은 소리없이 스며들어 지하로 가는데, 그 자리에 젖은 수건과 빗을 놓는다. 가는 빗살에 찬 바람이 스미고, 수건의 물기가 얼어든다. 이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영영 가시는 부모의 몸을 손수 씻기어 드리고, 그 몸에 마지막 옷을 정성껏 눈물로 입혀 드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마땅한 자식의 도리이겠지만, 슬픔을 참지 못하여 가슴을 두드리며 부르짖어 우는 애자 상제들이 어떻게 이 애통한 절차를 추스릴 수 있겠는가. 옛말에 일러오는 사람들은, 일찍이 그 부모를 여의고는 지원 극통을 가누지 못하여, 주먹을 쥐고 뛰고, 발을 구르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우니, 입은 옷은 갈가리 찢어지고, 동곳은 빠져 상투가 풀어지며 머리가 흩어져 산발이 되었다 한다. 그러한 정황이야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부모 형제 상당한 지친이나, 팔촌 이내 근친들은 슬픔만으로도 이미 벅차서 차마 손수 습과 염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대개는 그 외앳사람으로, 복을 입는 그들 못지않게 서로 가까운 집안간 사람들이 대신 이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그러니 살아 생전 나누던 정리가 남다르게 두텁고 따뜻했던 손이 아니라면, 어찌 그 가는 길을 평화롭게 해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문중의 그 누구라서 부인의 손길과 숨결을 받지 않은 이 있어, 이 마지막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크게 꾸중 들은 부인이 먼저 너무나 허망하여 슬피 울었다.
호상은 물론 사이 돈독한 친지가 맡았지만, 실제로 뒤에서 일을 본 것은 상주 이기채의 본생가 아우 기표였다. 기표는, 아미 초상이 나기 며칠 전부터 큰사랑으로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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