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14. 나의 넋이 너에게 묻어(3/4)
어차피 매안의 언저리에 버섯처럼 피어나 그곳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거멍굴이지만, 그 중에서도 원뜸의 대갓집이라면 어서 서둘러서 허드렛일을 하러 올라가야 한다. 원망은 원망대로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또 그 댁의 부스러기도 은덕을 입은 것은 입은 것이었고, 말로는 무엇이라고 한건, 누구라도, 부인의 초상이 허퉁하고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웬일인지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 같았다.
“대실서방님은 임종도 못 보고, 시방 어디 가 지시능고.”
평순네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대실은 효원의 친정이니, 강모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부모 임종을 못허먼 천천지 불효라든지, 아무리 손자라고는 허지만, 그거이 어뜬 손자여? 아들보다 더헌 손잔디. 그 손자가 없는 디서 어뜨케 눈을 감으겠능고, 원퉁허고 그리워서 어뜨케 더나실랑고잉.”
매안의 아랫몰로 넘어가는 개울의 나무 다리 위에 서서 평순네는 허옇게 언 물을 굽어본다. 이 개울은 별로 크지도 깊지도 않은 도랑물이나 한가지이지만, 평순네에게는 실로 깊고 넓은 강물보다 건너기 어려운 경계선이었다. 그것은 거멍굴 사람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이 물건너 매안은 늘 두려웠다. 그곳은, 이쪽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기상의 날이 서 있어서, 고개 한 번 바로 들고 가 본 일이 없었다. 자칫 그날에 베일까, 스스로 움츠러들곤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 개울이 마치, 저승으로 가려면 건너야 한다는 황천인가 싶어진다. 이 개울물이 갈라 놓은 거멍굴과 매안이 서로 다른 세상이듯이, 이승과 저승은 죽음의 강물을 가로 놓고 사로 다르리라.
“거그는 어뜨케 생겠으꼬.”
물을 들여다보던 평순네는 저만치 어둠 속에서 작은 자루 보퉁이를 들고 오는 공배네가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이 수긋한 공배네는
“팥 한 되 담었는디.”
하고는 자루 보퉁이를 들어 보인다. 무명 목도리를 목에다 감고, 한 손으로는 입을 막은 채 잰 걸음으로 다가온 공배네는 눈을 들어 멀리 원뜸 쪽을 바라본다. 두 아낙은 서로 심성이 비슷하여 나이가 많이 층이 나는데도 무던하게 어울리는 사이였다. 무엇보다, 이런 길에 웅구네가 동행이 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입심이 찰지고, 매사에 성깔이 갈고리 같은 옹구네가 끼었다면 이 조심스러운 마음도 다 써렛발처럼 벌어져 엇선하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옹구네는 평순네와 달라서, 거멍굴에 자기들끼리 모여 앉을 대면, 매안의 이씨 문중과 원뜸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향하여 이빨 박는 소리를 곧잘 내뱉었다. 뿐만 아니라 눈이 돌아가게 그쪽으로 흘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평순네는 심덕이 온순하기도 했지만, 그 원뜸의 대갓집에 대하여 아무 원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공연히 송구스럽고, 그 드높은 기상이 서릿발 같아서 두려울 따름이었다.
“깨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디, 암만 세도허는 양반이라도 죽을것을 안 죽든 못허능갑다. 원뜸에 노마님이 오늘 내일 허시능갑대? 우리맹이로 이렇게 개똥밭에 어푸러져 살어도, 우리는 살었응게, 그 냥반 고대광실 부럴 거 없겄제?
엊그저께만 해도, 옹구네는 그렇게 한 마디 박았던 것이다. 그러니 오늘 동행이 되었더라면 또 무슨 말을 뱉었을 것인가. 그때, 저녁밥이라고, 콩나물을 몇 가닥 넣고 멀겋게 쓴 죽사발을 비우고 난 공배네 집으로 평순네가 마실을 잠깐 갔는데, 옹구네가 마침 들어섰었다.
“양반도 죽으먼 썩겄제잉?”
갈자리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던 공배네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옹구네를 치켜보고, 부수수한 머리를 이고 앉아 있던 공배는 쩟, 혀를 차며 곰방대를 당겼다.
“깨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디, 암만 세도허는 양반이라도 죽을것을 안 죽든 못허능갑다. 원뜸에 노마님이 오늘 내일 허시능갑대? 우리맹이로 이렇게 개똥밭에 어푸러져 살어도, 우리는 살었응게, 그 냥반 고대광실 부럴 거 없겄제?"
엊그저께만 해도, 옹구네는 그렇게 한 마디 박았던 것이다. 그러니 오늘 동행이 되었더라면 또 무슨 말을 뱉었을 것인가. 그때, 저녁밥이라고, 콩나물을 몇 가닥 넣고 멀겋게 쓴 죽사발을 비우고 난 공배네 집으로 평순네가 마실을 잠깐 갔는데, 옹구네가 마침 들어섰었다.
“양반도 죽으먼 썩겄제잉?”
갈자리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던 공배네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옹구네를 치켜보고, 부수수한 머리를 이고 앉아 있던 공배는 쩟, 혀를 차며 곰방대를 당겼다.
“사램이 죽으먼 아조 죽간디? 혼백은 남능 거이고, 또 멩당을 쓰먼 그 음덕이 다 자손 만대 내리가는 거이제.”
회색이 다 되게 바랜 머리하며, 꺼멓게 졸아 붙어 움푹 패인 양쪽 볼따구니 때문에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공배가 담배를 빨며 말했다.
“멩당? 허기는 멩당이 있기는 있답디다.”
말꽁지를 새침하게 자르는 옹구네를 보고
“있다뿐이여?”
공배는 당연한 말이라는 시늉으로 목에 힘을 주며 턱을 안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리고 지금부터 한 백오십 년 전쯤인가, 이 마을 거멍굴에 살다가 어리론가 떠났다는 갖바치, 갖신 짓던 영쇠라는 사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영쇠가 멩사였드리야. 그렁게 아조 영검이 있는 지관 말이제. 손바닥만헌 쇠만 하나 달랑 들고 댕기먼 다 지관인지 아는디, 그게 그렁 거이 아니여. 그것도 다 사람마둥 재주가 달러서, 넘 못 보는 자리도 한눈에 척 알어보고, 한번 알어본 자리가 참말로 과연멩당이여서 모신 조상도 그 유택이 편안허시고, 후손들도 모다 발복이 되야야지. 그런디 어디 그거이 아무나 헐 수 있는 일이간디? 아무나 못허는 그 일을 귀신맹이로 집어 내서 잘허는 사램이 멩사여. 무단히 아는 시늉 허니라고, 넘으 조상 뫼를 잘못 써 놓으멈 그런 재앙이 없잖응게비? 멩당은 다릉 거이 멩당이 아니라 우선 땅이 좋아얄 거 아니여? 땅이 무르먼 못써, 단단히야지. 첫째, 봉분 속으로 물이 들으가서 관이 침수가 되먼 큰일 아닝가? 전에 누구 대에 누가 그랬다등만, 어뜬 조상 산소를 멘리를 해 디릴라고 파묘를 헝게, 관이 기양 물 속으 둥둥 떴드라네. 조상이 그러고 지신디야 후손이 머 잘될 일이 있겄능가. 두째, 사방으로 바람이 술술 들으가먼 큰일이여. 땅이 퍼실퍼실허먼 바람이 들으가는디, 나중으는 시신이 기양 새까맣게 끄슬러 버러. 바람에, 그것도 안되는 일이고. 셋째로는, 나무 뿌랭이 뻗어 들으가능 거, 이게 아조 못 쓰능 거이제. 아 그런 이얘기 들은 일 있능가? 거 왜 어뜬 사램이, 일 잘허고 밥잘 먹든 사램이 말여, 하룻나잘, 허리가 아푸다고, 매급시 기운을 못챙기고 시르르 드러눕드니만,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낫들 안허고 무장더헌단 말이여. 벵신 한가지로 일어나도 못허고, 나 죽는다고 울어댕게. 옆으 사램이 하도 폭폭해서 당골네한티 점을 치로 갔드라네. 그런디 대박으 당신 여그 오지 말고 얼릉 아무 아무 산소로 가시오, 그런단 말이여. 거그는 왜요? 묻지도 말고 얼릉 가씨요. 가서 멋을 어뜨케 허끄라우? 어릉 가서 제사지내고 허리 풀어 디리시오. 허리를 풀어요? 가 보면 앙게 얼릉 가시오. 점 치로 갔든 삶애 무신 일잉가 싶어서 대체나 당골네 말대로 얼릉 그 산소로 갔드라네. 그런디 산소 옆으 전으는 못 보든 낭구 하나가 지둥맹이로 섰드란 말이여. 아하, 그렇구나. 짐작되는 거이 있어서 묏동을 파 봤드니, 그 낭구서 뻗은 뿌랭이가 무신 구렝이맹이로 백골 허리를 감고 있드라네.“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신 그래서? 두말 더 헐 거 없이 도치로 뿌랭이를 찍어냈는디, 그 도치를 어깨에다 메고, 저엉(저녁)때가 다 되야사 집으로 돌아옹게, 그 아푸다고, 나 죽는다고, 몇 삼 년씩 누워 있든 그 사램이, 뒷짐을 지고 마당을 왔다갔다 험서, 아이고오, 꽃도 참 좋다, 그런디 어디 갔다 오냐고 묻드라네.”
“시상에, 아푼 사램이 다 낫어 갖꼬 꽃귀경허고 있었구만이요?”
“하먼. 그러고 또 있어. 그게 끝이 아니여, 네째로는 벌거지나 짐승들이 산소에 침범을 허먼 못써.”
“왜 거 여시들이 달밤이먼 묏동 속으로 들으갔다 나왔다 험서 뼉다구를 허옇게 물어 낸다고 허는, 그런 이얘기지요?”
“잘 아네?”
“그러고 또 머이 못씨까요?”
“그런 일도 있기는 있능갑대. 하관을 헐 때는 분멩히 반듯허게 모셌는디, 요상허게 나중으 가서 이장을 해 디딜라고 보먼 시신이 엎어졌거나 우아래 상하가 바뀌는 수도 있다대.”
“에이, 그것은 잘못 아셌능갑소. 어뜨케 시신이 땅 속으서 재주를 넘는다요? 묻는 사램이 몰르고 깜빡 뒤집든지 엎었든지 헌 일이겄지.”
옹구네가 공배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공배는
“그렁가?”
했다. 처음에는 옹구네 말뽄이 얄미워서 눈을 흘기던 공배네도, 먼저 와 있던 평순네도, 공배의 이야기에 섞여들었다.
“그런디, 영회가 어쩐다고요?”
평순네가 묻는다. 그네는 자신의 남편이 곰배팔이인 것이 혹시 누구 산소를 잘못 쓴 탓인가, 해서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 영쇠가, 본디 여그 살든 백장이였는디, 그 아배 때도, 소도잡고, 돼야지도 잡고, 개도 잡고, 다 잡었는디, 이 영쇠는 에레서부텀도 아배 일은 안 배울라고 그러고, 밥만 먹으면 휘잉허니 기양 나가 부러, 산으로만 댕겠드라네.”
“멩사 될라고요?”
“머 에레서야 꼭 그럴라고 그리ㅆ겄능가잉? 하이간이 머엇이 씨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겄지만 그랬드래. 아, 자고 새서 눈만 뜨면 뵈이능 거이 산 아닝가? 어디를 가드래도. 그렁게 날이 날마둥 그렇게 댕게도 안가 본 디가 있었겄제. 첨으는 그 아배가, 자가 약초를 캐로 댕긴다냐아, 꿩을 잡으로 댕기다냐, 그랬등갑서. 그런디 맨날 해 넘어가먼 빈손으로 털레털레 기양 오그덩.”
그래서 그 아버지도 물었다.
“야, 너 멋 허로 댕기냐?”
그때 영쇠는 겨우 여나믄 살이었다.
“아배. 산이 자꼬 나를 불르요. 나를 불릉게 가지요.”
“야가 머이 헛것이 씌였능게비? 무단헌 산이 너를 왜 불러? 소 잡고, 돼야지 자고 살 놈이 왜 집구석으가 안 있고 산속으로만 헤매고 댕게?”
“아배, 나는 그렁 거 안허고 살라요.”
“안허면 너는 멋 처먹고 살라고?”
“갖신이나 갈쳐 주시요.”
“갖까ㅈ신?”
“소 잡고, 돼야지 잡는 일은 나는 헤기 싫고, 아무 일도 안허먼 먹고 살 수가 없을 거잉게, 까죽으로 짓는 이뿐 갖신이나 맹금서 살라요.”
저것이 어린 속에도 짐승 잡는 백정의 신세가 서러워 저러는가 싶은 그 아버지는
“이놈아, 니가 팔짜가 기박해서 이런 집구석으가 났는디, 서러워도 어쩌겄냐. 바꿀 수도 없는 거이고.”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배. 사람은 산에 지대서 살어야고, 산에서 얻어먹고, 산으 품으로 돌아가는 거인디요. 산이 우리 어머이 뱃속이그던요. 산은, 하늘으 별자리가 땅에 떨어져서된 거이라데요. 그렁게 산으 탯자리는 하늘 아닝교? 우리 사람은 산이 탯자리고요. 거그서 떨어져 나와 갖꼬 이 세상으서 살다가, 인자 죽으먼 다시 지가 나온 구녁으로 들으가는 거이 무덤이요. 나는 그 자리를 보로 댕기는 거이요. 가만히 산을 보고 있으먼 그거이 자꼬 내 눈에 뵈이요. 그렁게 무단히 머에 홀린 것맹이로 자꼬 산속으로 가게 되야요.”
그 아버지는 어린 영쇠의 말에 입이 벌어져 다물지를 못하고는
“멩사 나겄다.”
하더니 더는 영쇠를 채근하지 않았다.
“인자 나 죽그덩 니가 존 디다 써 도라.”하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었다.
“그 영쇠가, 하도 쇠를 영검허게 잘 바서 영쇤지 본래 이름이 영쇤지는 몰르겄는디. 세월이 마않이 가고는, 지 말대로 까ㅈ신쟁이가 되야 갖꼬 이 마을 저 마으로 떠돌아 댕김서, 부잣집으 까ㅈ신도 지어 주고, 신이 이뿌다고 대접을 자허먼 그 집 행랑으로 잠도 자고 그럼서 사는디. 가다가 혹 어뜬 집이 초상이 나먼, 지니고 댕기는 쇠로 묏자리를 바 주었드란 말이여. 그런디, 참 잘 본단 말이여. 자연히 소문이 나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이름이 났지.”
그러면서도 그는 거멍굴에서 아주 어디로 가지는 않았다. 그저 얼마를 떠돌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한 철이고 얼마고 머물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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