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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1073호
2022.5.26. (음 4.26)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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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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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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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누구나 가르칠 아이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른도 배우게 된다. ―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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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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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호칭
한 사회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서로 말을 거는 방식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뒤집어 말해서 서로 말을 거는 합의된 방식이 없다면 그 사회는 작동 불능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말을 걸기에 불편한 장치가 언어 안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편리하게 개조를 하거나 수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어를 사용할 때 몹시 불편한 것이 ‘호칭’ 문제다. 특히 누구한테든지 두루두루 쓸 수 있는 ‘보편적 호칭’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고위직이나 하위직이나, 남자나 여자나, 누구한테 붙여도 실례가 되지 않을 호칭이 우리에게는 딱히 없다. 이는 남에게 말을 걸 때마다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까닭은 우리가 현대에 들어서면서 불완전한 ‘언어 현대화’를 한 탓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호칭은 주로 가족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가족 관계를 넘어서는 ‘사회적 관계’ 혹은 ‘시민적 관계’에서는 적절한 호칭을 못 찾아 ‘저기요’ 같은 말 혹은 그럴듯한 직위를 가리키는 말로 우회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가까스로 문제를 피해 간다. 만일 우리가 누구한테나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호칭을 만들거나 발견해내면 어떠한 이점이 생길까?
우리에게 보편적 호칭이 생긴다면 남에게 말을 걸 때마다 나이를 포함한 서로의 사회적 위상을 비교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직위나 직종을 미리 알아둘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스트레스 없이 용건을 말하거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효율성 높으면서 마음 편한 사회가 될 것이다. 아마 직책이나 부서가 바뀔 때마다 굳이 새 명함을 만드는 수고도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편하면서도 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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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정본
번역본을 읽은 사람은 원본을 읽은 사람보다 무언가 실력이 달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글의 정통성은 번역본보다 원본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모든 문서를 원본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 또 모든 문서는 불가피하게 ‘번역’되어야 한다. 그래야 광범위한 독자가 생긴다.
어떤 경우에는 원전 못지않은 번역본이 나올 수도 있다. 혹시 원본이 어떤 사고로 사라져버렸을 경우에는 원본 못지않은 가치를 번역본이 가지기도 한다. 5세기 초에 인도계의 혈통으로 태어나 중국에서 불경을 번역한 ‘구마라습’이라는 불경 전문가는 다량의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서유기에 등장해 유명해진 ‘현장 법사’와 더불어 중국어 불경 번역 사업에 가장 큰 공로를 세웠다. 그 이후 불교가 발생지인 인도에서 사그라지며 힌두교가 발전했고, 불경의 권위는 오히려 중국어본에서 더 빛나게 되었다.
기독교 성서도 그 원전은 고대 히브리어와 고대 그리스어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17세기 초에 나온 영어 성경, 일명 <흠정번역성서> 혹은 <킹 제임스 성서>는 전문적인 성서학자들이 아니라면 굳이 원전을 읽을 필요가 없는, 영어로 된 ‘원전 못지않은 번역본’이다. 그런 것들이 바로 ‘번역 정본’이다. 우리가 수많은 고전 문헌을 번역 없이 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회를 지혜롭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신뢰할 수 있는 고전 번역의 정본화가 절실하다.
남과 북이 대화의 창을 열고 스포츠와 평화를 위한 만남의 계기를 만든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이참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전 문헌의 공동 번역 작업도 같이 할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다. 특히 서로 따로 번역해놓은 <조선왕조실록>을 함께 새로 번역하여 공동 번역 정본을 삼을 수 있으면 더욱 값진 일이 될 것이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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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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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一) - 김수영
오래간만에 거리에 나와보니
나의 눈을 흡수하는 모든 물건
그 중에도
빈 사무실에 놓인 무심한
집물 이것저것
누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망설이면서
앉아있는 마음
여기는 도회의 중심지
고개를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태연하다
- 일은 나를 부르는 듯이
내가 일 우에 앉아있는 듯이
그러나 필경 내가 일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일을 끌고 가는 것은 나다
헌 옷과 낡은 구두가 그리 모양수통하지 않다 느끼면서
나는 옛날에 죽은 친구를
잠시 생각한다
벽 우에 걸어놓은 지도가
한없이 푸르다
이 푸른 바다와 산과 들 우에
화려한 태양이 날개를 펴고 걸어가는 것이다
구름도 필요없고
항구가 없어도 아쉽지 않은
내가 바로 바라다보는
저 허연 석회천장 -
저것도
꿈이 아닌 꿈을 가리키는
내일의 지도다
스으라여
너는 이 세상을 점으로 가리켰지만
나는
나의 눈을 찌르는 이 따가운 가옥과
집물과 사람들의 음성과 거리의 소리들을
커다란 해양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조고마한 물방울로
그려보려 하는데
차리리 어떠할까
- 이것은 구차한 선비의 보잘것없는 일일 것인가.
<195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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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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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역지우(莫逆之友)
// 아주 허물없는 사이.
《出典》'莊子' 大宗師篇
<莊子>에 똑같은 형식으로 이야기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자사(子祀)와 자여(子輿)와 자리(子犁)와 자래(子來) 이렇게 네 사람은 서로 함께 말하기를, "누가 능히 無로써 머리를 삼으며, 삶으로써 등을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을까? 누가 사생존망(死生存亡)이 한 몸인 것을 알랴! 우리는 더불어 벗이 되자." 네 사람은 서로 보고 웃었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벗이 되었다.
子祀 子輿 子犁 子來 四人相與語曰 孰能以無爲者 以生爲背 以死爲尻 孰知死生存亡之一
體者 吾與之友矣 四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자상호(子桑戶)와 맹자반(孟子反)과 자금장(子琴張) 이렇게 세 사람은 서로 더불어 말하기를, "누가 능히 서로 더불어 함이 없는데 서로 더불어 하며, 서로 도움이 없는데 서로 도우랴. 능히 하늘에 올라가 안개와 놀며, 끝이 없음에 날아 올라가며, 서로 잊음을 삶으로써 하고, 마침내 다하는 바가 없으랴"하고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 보고 웃으며, 서로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더불어 벗이 되었다.
子桑戶 孟子反 子琴張 三人相與語曰 孰能相與於無相與 相爲於無相爲. 孰能登天遊霧 撓撓
無極 相忘以生 無所終窮 三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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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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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지게꾼 아저씨 - 한계숙
바로 어제였다. 짐을 운반할 일이 있어서 용달차를 부르려니까 다 나가서 없단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빈 용달차라도 잡으려고 큰 길가로 나가니까 그곳에서 늘 짐을 지곤 하는 지게꾼 아저씨가 앉아 게셨다. 그와는 별로 얘기를 해본 적도 없이 오가며 그저 얼굴이나 익힌 사이였다.
"아저씨 용달차를 못 구해서 그러는데요. 제법 큰 짐인데 청계천 2가까지 가주실래요?"
아저씨는 선뜻 응했다. 가을 햇살이라고 해도 한낮의 햇살은 따가웠다. 빈 몸으로 걷는 나도 등에 땀이 배는데 저 아저씨는 얼마나 더우실까 싶어 나는 마음속으로 수고비를 후하게 작정하고 있었다. 한 시간은 족히 걸려 목적지에 닿아서 수고비를 드리려고 손지갑을 열려니까 그 아저씨는 황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돈은 무슨 돈이요. 서로 얼굴 아는 처지에, 처음으로 짐 한 번 져 드렸는데 그냥 두슈."
아저씨는 한사코 돈을 마다하시고는 일거리를 찾아 훌훌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가셨다.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거주)
정직한 이들의 달 - 김승옥
응급치료실의 문이 활짝 열린다. 땀과 피로 걸레처럼 젖은 가운을 입은 의과 대학생이 들것을 무겁게 들고 비틀거리며 달리다시피 들어온다. 들것 위에는 대학 교복을 입은 한 젊은이가 입으로 피거품을 가쁘게 뿜어내며 꿈틀거리고 있다.
"중상입니다. 치료대는 어디 있어요?"
"치료대가 모자라요. 우선 중환자실로, 이쪽으로 오세요."
땀투성이의 간호사가 쉰 음성으로 말하며 벌써 앞장서 달린다. 사실, 그다지 좁지도 않은 치료실 안은 먼저 실려 온 총상자들로 꽉차 있다. 거의 모두가 스무 살 안팎의 대학생들이다. 그들의 옷에 묻어 온 화약 냄새와, 그들의 상처에서 솟아나는 피와, 그들의 고통스런 비명과 신음 그리고 긴장할 대로 긴장해 있는 간호사들과 의사들의 바쁜 손길로 치료실은 꽉차 있는 것이다. 데모 군중들의 함성과 합창소리 그리고 그 우렁찬 소리들을 침묵시키고야 말겠다는 듯 쉬지 않고 쏘아대는 경찰들의 총소리가 이 수도육군병원 복도에서도 만져질 듯 가까이 들린다.
"야단났어요. 부상자는 자꾸 들어오는데 손이 모자라는 건 손만이 아녜요. 피가, 피가 모자라서 큰일났어요. 더 이상 부상자가 늘어나면 수혈도 못 시켜 보고 죽일 것 같아요. 부상자가 많겠죠?"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음성으로 간호사가 말한다. 수술실에서는 수술 도중에 죽은 부상자가 흰 시트에 덮여 실려 나오고 다른 부상자가 실려 들어간다.
"벌써 열한 명이 수술 도중에 죽었어요. 수술 받은 부상자 중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은 명 명밖에 안 될 거예요. 수술받아 보지도 못하고 죽은 학생들도 있어요. 미쳤어요. 모두 미쳤어요. 왜 데모를 하구 또 왜 총을 쏘아 아까운 젊은이들을 죽이는지. 모두, 모두 미쳤어요."
"학생들은 미치지 않았어요."
들것에 실려 가고 있는 절은이가 피거품과 함께 띄엄띄엄 말을 토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어요. 부정한 짓을 하면 안된다구. 그래서 선거를 부정으로 한 사람들에게 선거를 공정하게 다시 하라고 말했어요. 그것뿐이에요. 미친 게 아니죠."
"말하지 말아요. 말하면 피가 더 나와요."
들것을 들고 가던 의과 대학생들 중 하나가 부상자의 말을 중단시킨다.
"이 학생, 데모 주동자인가요?"
간호사가 의과 대학생에게 묻는다. 들것 위의 젊은이는 고개를 젖는다. 그리고 말한다.
"학교 교과서가 주동자예요. 부정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도 부정이라고 가르치는 교과서가."
"말하지 말라니까요. 피가."
중환자실 역시 부상자들의 비명과 신음으로 꽉차 있었다. 거기에 새로운 부상자들이 잇달아 들어오고 있다. 뜨거운 피는 쉼없이 흘러 상처를 틀어 막은 가제 뭉치를 적시고 베드의 비닐커버를 적시고 마룻바닥을 적신다. 간호사가 다시 달려나가서 혈액병을 들고 돌아왔을 때 그 젊은이는 거의 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수혈하기 위한 차비를 하고 있을 때 그 젊은이가 눈을 뜬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옆 병상의 고등학생 부상자를 가리키며 간호사에게 말한다.
"피가 모자란다면서요? 저 학생한테 먼저 수혈해 주세요. 난 나중에."
"체혈 지원자들이 많이 몰려왔어요. 피는 부족하지 않을 거예요."
"고맙군요. 어쨌든 저 학생부터 먼저."
"그렇게 하라고 교과서에 씌어 있던가요?"
"예, 그렇게 배웠어요."
젊은이는 미소지으며 말한다. 간호사는 젊은이가 시키는 대로 고등학생의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돌아와서 병상에 붙은 카드를 들여다본다. '김치호. 22세. 서울대학교 문리대 수학과 3학년'이라고 씌어 있다.
"김치호 씨는 이담에 정확한 수학 교수님이 되겠어요."
그러나 김치호는 수학 교수가 되지 못한다. 그날, 1960년 4월 19일 밤 열 시에 영원히 뜨지 못할 눈을 감은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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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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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짚신장수가 된 왕손 옥진
어른들 사회에서는 뽐낸다고 하고 아이들은 잰다는 말이 있다. 이 뻐긴다고 하는 부류의 사람을 보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저건 모두 겉치레고 허식이다. 그 겉을 싸고 있는 헛것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본연의 실체가 나타나겠는데, 저렇게 큰 체 하는 정작 알맹이는 과연 얼마만이나 할꼬?`
세종대왕은 아드님이 많아서 정실인 왕비에게서 낳은 대군이 팔형제고, 후궁들 몸에서 10형제를 두었다. 맞이인 세자 몸에서 첫 손자를 보았으니 이 분이 뒷날 비극의 주인공인 단종이다. 의당 유모를 들여야겠는데 가뜩이나 복잡한 궁중에 새 사람을 들였다가 그 떨거지들마저 뛰어들어 설치는 날이면 더욱 골치아프겠어서 대왕은 다른 방책을 세웠다. 당신 후궁들중에서 젖 흔한 이로 봉보부인을 삼자. 그리하여 뽑힌 분이 혜빈 양씨다. 한남, 수춘, 영풍의 세 왕자를 낳아 바쳤는데, 영풍군이 아직 강보에 있고 유도도 흔해서 이 분께 맡긴 것이다. 그러니까 단종대왕은 영풍군과 같은 무릎에 앉아 양쪽 젖을 갈라 자시며 자라는 기연을 맺어, 위의 두 왕자와도 자연 친형제처럼 섞여 자라시게 된 것이다. 세종이 승하하시고 문종까지 빈천하시자, 둘째 왕자 수양대군의 야심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 공사가 혜빈 양씨의 세력을 꺾는 일이라, 맏아들인 한남군은 죄를 씌워 경상도 함양으로 귀양을 보내고, 막내인 영풍군이 하필이면 박팽년의 사위라, 선위하던 날 어머니와 함께 현장에서 박살을 당해 묘소마저 없다. 그 가운데 수춘군은 시세를 비관하고 식음을 전폐하여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소란통에 한남군의 아들 홍안군은 폐족이 되어, 가산을 몰수당하고 거리로 쫓겨났다. 당당한 장손이건만 때를 잘못 만나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이다.
옛날엔 가장 손쉽고 그래서 또 가장 비참한 직업이 짚신장수였다. 겨울에도 불을 안 때는 움퍼리에 모여 앉아, 힘들어 다른 일은 못하고 짚신을 삼아 팔아서 연명하는데, 대개는 의지할 데 없는 홀아비 늙은이나 불구자들이 이 직업에 종사하였다. 그렇게 만들어낸 짚신을 열 켤레씩 모아 거래 했는데, 만든 솜씨에 따라 값에 차등이 날 것은 물론이다. 홍안군도 밥은 먹어야 살겠어서 이 틈에 끼어들었는데 홍안군의 아들 옥진이라는 분이 짚신을 볼품있게 공들여 삼아서 장안에 이름이 났다. 그래 건달들이 기생에게 선물을 해도 `옥진이 솜씨`의 짚신이라야 환심을 샀다. 그러니 그의 영업(?)도 번영했을 것이다. 그런 중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바뀌었다. 중종조에 이르러, 일직이 세조손에 희생된 모든 분의 명예를 회복할 제, 한남군과 아버지 홍안군의 지위도 복구되고, 이미 중년의 솜씨좋은 짚신장수 옥진도 회천정을 봉해 정3품 창선대부로 발바닥에 흙을 묻히지 않는 신분이 되었다. 사모품대로 위의를 갖추어 구종 별배를 앞뒤에 느리고, 사인교를 타고라야 출입하는 어엿한 지위로 되돌아간 것이다.
엊그제까지 받던 천대를 생각할 때 얼마나 뽐내어 자랑하고 싶으랴만 그게 아니다. 그 천한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공력을 들여 남 다 못해내는 솜씨를 발휘하던 그 성실한 사람됨은 바탕부터가 다르다. 한가지를 보면 열가지를 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말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더니 하인에 견마 잡히고 거리에 나왔다가라도, 옛 동업자를 만나면 반드시 내려서 손을 잡고 반기었다. 굳은 살도 안 빠진 예전의 그 손이언만 옛 동료들은 손을 잡히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높이 되신 처지에 우리같은 것들을...”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지었다. 그뿐이 아니라 존장 어른을 뵈면 길에서도 절을 했다. 상대방이 미안해서 눈에 띄면 미리 숨어버릴 형편이다. 관대차림으로 지나다가도 시간만 허락하면 주막에도 함께 들렀다.
“아이구! 이게 누구셔? 우리같은 거 집엘 다 오시다니...”
“무슨 말씀을? 옛날의 옥진이가 그 옥진이지, 어디 간답디까?”
“아이구, 사위스러워라. 그러나 저러나 앉으실 데두 만만치 않구 무어 차려 놓은 게 있어야지...”
“옛날 그대루가 좋아서 온 사람이니 수선 너무 떨지 말구, 자! 어서1”
그 인정미 넘치는 이야기는 광해군 때 문장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전한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덧붙이고 있다. 그분 자손 중에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난 의성군이라는 분이 있었다. 마침 손님과 장기판을 가운데 놓고 앉았는데 장기 만든 솜씨가 일품이라 곁의 친구가 집어보고 감탄하며 무심코 한다는 말이
“거 참 잘 만들었다. 마치 옥진이 솜씨 같아이.”
지위 높고 재산이 많아 인정미가 가신다면, 그까짓 지위나 재산, 조금도 부럽지 않다. 된장찌개 한 가지라도 인정이 담겼어야 제 맛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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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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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일흔아홉번째 이야기 - 여우와 싸운 효자
진나라 해서공 때 한 가난한 효자가 있었다. 그는 모친상을 당했으나 돈이 없어 다른 사람들을 불러 장례식을 치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모친의 관을 메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상복을 입고 무덤을 판 다음 관을 묻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한 부인네가 어린아이를 안고 지나가다가 하룻밤 묵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정이 지나도록 효자는 어머니 무덤곁에서 꼼짝하지 않고 졸지도 않은 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 부인네는 정말 피곤했던지 불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 바람에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그 부인은 다름아닌 여우였고 안고 있는 아이는 까마귀였다. 효자는 즉시 그들을 때려죽인 후 고랑에 내다버렸다. 다음날 웬 사내 하나가 효자에게 와서 한 모자가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어제 저녁 분명히 이 길로 갔는데 아직도 돌아오지않아 찾아 나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효자가 대답했다.
"봤소. 그 모자는 사람이 아니었소. 바로 여우와 까마귀가 둔갑한 것이었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때려죽였소."
"미친 소리! 네가 내 아내와 자식을 죽여놓고 도리어 허황된 말만 늘어놓는구나. 네 말대로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면 어디 그 시체를 한번 보러가자."
효자는 그 사내를 데리고 어제 저녁 그 시체를 버린 고랑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우는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죽어 있었다. 순간 효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내는 효자를 포박해서 관아로 끌고가 처형해줄 것을 요구했다. 효자는 그 사내의 눈을 피해 현령에게 말했다.
"이 사내는 여우가 둔갑한 것입니다. 사냥개를 풀어 물어뜯게 하면 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며칠 후 그 사내는 현령을 다시 찾아와 빨리 처형하라고 졸랐다. 이에 현령은 슬그머니 그 사내에게 사냥개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개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사냥개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현령은 매우 좋아하면서 당장 사냥개를 풀었다. 그 사내는 개를 보자 즉시 늙은 여우로 변해 사방으로 날뛰었다. 현령은 활을 꺼내 그 여우를 쏘아죽였다. 그리고 효자와 함께 그 고랑으로 가 보았더니 죽인 부인 역시 여우로 변해 있었다.
<법원주림>
여든번째 이야기 - 고깃덩어리로 태어난 아이들
옛날 바라나국의 국왕은 수많은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 한 부인이 자기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당장 국왕에게 달려가 알렸다. 국왕도 몹시 기뻐하며 그 부인을 극진히 모시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윽고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부인은 산기를 느끼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그녀가 낳은 것은 응애응애 하고 울어대는 갓난아이가 아니라 한덩이의 고깃덩어리였다. 마치 빨간 꽃처럼 생긴 그것을 보고 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부인들이 낳은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고 잘생겼는데, 내가 낳은 것은 사지마저 없는 고깃덩어리이니 국왕이 보면 실망하실 게 분명하다.' 그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무로 된 상자 하나를 가져다가 그 고깃덩어리를 집어넣고는 겉에 '바라나 국왕 부인의 소생'이라고 쓴 다음 봉인했다. 그러고는 사람을 시켜 그 상자를 강에 내다버리게 했다. 상자는 강을 따라 하류로 흘러갔다. 여러 귀신들의 도움을 받은 탓인지 그 상자는 풍랑을 만나도 가라앉지 않은 채 계속 흘러가 한 도사와 여러 목동들이 사는 마을 강변에 도착했다. 그때 강변에 세수하러 왔던 도사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가져갔다. 도사가 그 상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상당히 고급스러운 것으로 조금도 부숴진 곳이 없었다. 게다가 그 위에는 '바라나 국왕 부인의 소생'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봉인이 그대로인 것을 보면 아무도 그 상자를 열어본 적이 없는 게 확실했다. 도사는 이 상자가 왕가의 물건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신선한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지 않은가? 이에 도사는 생각했다. '만약 죽은 고깃덩어리라면 강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동안 썩고 말았으리라. 그런데 이 고깃덩어리는 아직도 신선하니 분명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나자 고깃덩어리는 여전히 신선했지만 어느새 두덩이로 나뉘어 있었다. 또 한 달이 지나자 두덩이의 고기는 각각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로 변했다. 남자아이는 피부가 황금빛을 띠고 있었고 귀가 커다란 게 틀림없는 복상이었다. 여자아이도 백옥 같은 피부에 달덩이같이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사는 그 아이들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마치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그는 남자아이에게 이차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도사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탁발을 해서 어린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기를 쉬지 않고 계속했다. 도사가 아이들을 기르느라고 고생하는 모습을 본 이웃 목동이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오. 그런데 출가자가 당연히 해야 할 것은 수도인데, 두 아이를 기르자면 방해가 되지 않겠소? 그 아이들을 내게 맡기면 잘 길러볼 참이오. 그러면 서로 좋은 것 아니오?"
"그게 좋겠소"
다음날 목동은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도사는 매우 서운해하며 목동에게 당부했다.
"이 아이들은 복덕이 대단하오. 부디 좋은 우유와 신선한 과일 등을 먹이며 부족함 없이 길러주시오. 그리고 두 아이가 크면 서로 부부가 되게 하시오. 그후 넓고 평탄한 곳을 찾아 집을 지어주어 같이 살게 하시오. 그렇게 하면 남자아이는 대왕이 되고 여자아이는 왕비가 될 것이오."
말을 마친 도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동이 아이들을 데려가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 목동의 보호 아래 두 아이는 날로 커서 여자아이는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고, 남자아이는 영준한 청년이 되었다. 그들이 십육 세가 되자 목동은 넓고 평탄한 곳을 골라 그 한가운데 집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결혼시켜 그곳에 살게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남녀 쌍둥이를 낳았다. 그 쌍둥이가 십육 세가 되자 역시 결혼을 시켰다. 이러기를 몇 차례 하자 왕족의 수는 끊임없이 증가했다. 그래서 목동은 집을 확장해서 삼십이명은 족히 살수 있게 했다. 나중에 그들이 자리잡고 살던 곳은 번화해져 비사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선견률비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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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국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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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3 - 최명희
3 젖은 옷소매(3/3)
망제님 극락 세계루 가시라구 시왕질로 가시라구
질을 닦어 가옵소사 질을 닦어 가옵소사
원퉁허구 설운 마음 다 불배허시구
시왕질로 밝혀 가오 극락질이 꽃밭 소리 사수계루 가옵소사
시왕질을 밝혀 가오 염불 받도 예정 받고 인정 받고 노수 받고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법화 소리루 가옵소사 나무아미타불이오
원퉁이 생각 설우니 생각 마옵시고 다아 잊어 버리고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법화 소리루 가옵소사 나무아미타불이오
원퉁이 생각 설우니 생각 마옵시고 다아 잊어 버리고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가다 가다가 저물거든 질에도 앉지마오 질신이 아니 놓소
또 가시다 저물거든 산에도 앉지 마오 산신이 아니 놓소
또 가시다 저물거든 못가에도 앉지 마오 용신이 아니 놓소
또 가시다 저물거든 독에도 앉지 마오 독신이 아니 놓네
또 가시다 저물거든 모래서도 자고 가소
나무 나무 저물거든 모래서도 자고 가소
극락 세계로 가옵소사 시왕질로 가옵소사
예정 받고 인정 받고 노수 받어 갖꼬 극락 세계로 가실 적
걸린 고도 풀으시고 맺힌 고도 풀으시고
극락 세계 법화 소리에 상소리로 편안히 가옵소사
당골네의 잠든 꿈길을 지나 청암부인의 푸른 혼불은 하늘의 아득한 저 너머 들녘 쪽으로 날아간다. 한번 가면 다시는 올 수 없는 멀고 먼 길을 이렇게 홀연히 떠나는 그 불덩어리를 올려다보는 또 한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으니. 그네는 효원이었다. 무심코 마당으로 내려서던 그네에게 가슴속이 시릴 만큼 투명한 빛으로 쏟아지는 마지막 넋에, 효원에 아찔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할머님. 그네는 무망간에 큰방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부인이 누워 있는 큰방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순간 효원은, 이미 넋이 빠져 나가 버린 저 방안에서 아직도 저렇게 불빛이 번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도 사무쳐 왔다. 저기 저 방안에 남아 있는 불빛은, 다만 등잔의 불빛이 아니라, 이제 막 육신을 벗고 허공으로 떠오른 부인의 혼불 그림자가, 저다지도 눈물겹게 어려 있는 것이려니 싶어지는 것이었다.
“나 아직 여기 있다. 아가, 이 방은 빈 방이 아니다. 나는 오래오래 여기 있을 것이니라.”
창호지의 불빛은 그렇게 나직이 말하고 있었다. 청암부인의 목소리는 효원의 살 속으로 배어든다. 목소리는 불빛을 머금은 채 그네의 살을 푸르게 물들인다. 그네의 몸에서 인광이 돋는다. 저절로 투명하게 비늘을 일으키는 불꽃이 그네의 전신을 휩싸며 타오른다. 그것은 물결처럼 굽이를 치는 눈물이었다. (할머님 가신 한 생애를, 내 또 그대로 살게 될 것이다. 정처없이 떠나가 버린 그 사람은 언제나 돌아올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 하시던 할머님. 그 뼈를 다 태우시고 이렇게 한 점 푸른 불꽃으로 떠올라 이승을 하직하시면서...나한테 점화하고 가시는 것을.) 효원은 언제까지나 마당에 선 채로 빈 하늘을 우러른다. 저 총총한 별들의 그 어떤 별빛이, 금방이라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보며 “아가.”하고 그네를 불러 줄 것인가. 효원은 사라지는 불꼬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몸을 조이면서 숨을 죽인다. 마치 흡월정을 하던 때와도 같은 무서운 정성으로 그네는 청암부인의 혼불을 빨아들인다. 한번 들이마신그 기운이 행여 세어나갈까 하여 그네는 죽은 듯이 고요히 숨을 참는다. 드디어 그네의 온몸에, 실핏줄의 끄트머리에서까지 청암부인의 넋이 파도 물마루보다 아찔하고 아득한 기운으로 차 오르며, 그네는 숨이 가빠져, 그만 둥실 허공으로 떠오르고만다. 이제 그네는 청암부인을 낳을 것이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날이 채 새기도 전에 온 마을과 문중, 그리고 거멍굴에도 이 소문은 번질 것이었다. 소문이 은밀하게 차 오르고 있는 한밤중의 허리가 검푸르게 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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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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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르치아 모네로' 거리. '키토의 기원'(The Virgin of Quito)이 뒤에 보인다.] 위키백과 20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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