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3 - 최명희
3 젖은 옷소매(1/3)
청암부인은 혼곤한 잠에서 깨어난 듯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네의 발치에 허연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인월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불쌍헌...사람...”
입 속으로 숨소리처럼 남긴 한 마디는 그대로 인월댁의 가슴에 얹혀, 인월댁은 그만 어깨를 꺽으면서 거꾸러져 체읍을 참지 못하였다. 청암부인은 쓰다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 말게...나만 허면 한세상...자알 살다가 가는 것이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허시는가요. 오래 살으셔야지요...오래...오래...살으...”
“오래 살었네.”
“인제부터 좋은 세상도 보고 복록도 누리셔야지요. 아짐...아짐이 이렇게 허망하게 가셔 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으라고요...”
“좋은 세상은 지금까지 다 살어 버렸어...더 산대도 덧없는 일이지. 나는 다 살었네...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그저 한 세월 손님같이 살다 가는 과객인가 싶으데...그런 것을 모르고...이날까지 질기게도 살었어...인제는 목숨도 나를 풀어 주겄지...”
그날따라 집안도 조용하고, 청암부인도 쉬엄 쉬엄 숨이 차서 몹시 힘들어 하며 말하는 것만이 다를 뿐, 정시이 맑은 것 같았다. 그네의 목에서는 쉰 바람 소리가 적막하게 새어 나왔다.
한번 눈에 나거드면
독수공방 찬 자리에
뉘를 위지하잔 말고
죽은 사람 생각하면
꿈속에나 반기련만
생사람 불화하면
백년이 원수로다
일월댁은 속으로 ‘괴똥에미전’의 일절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쓴웃음을 머금는다.
“아짐, 책함에다가 이고 지고 온, 내칙 수수십권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큰애기 시절부터 글씨 공부 삼아서 베끼고, 읽고, 이렇게 속절없이 쓸 곳 없는 것을 귀한 보물인 양 간직을 했지요. 아녀자한테는 보패 배단보다, 아름답고 올바른 행실이 더 귀한 것이라고 부모님은 가르치시고, 필사한 책마다 씌워 있지만, 여고, 명감, 여사서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괴똥에미 탄식 할 줄만도 못한 것을.”
“그것도 업일세...자네가 무슨 허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기서 그사람 역마살이, 자네 한평생을 그르치게 한 셈이지.”
“모진 세상은 이제 다 지나갔어요. 저도 인제는 나이 많이 먹어서 지나간 세월이 꿈만 같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 인월댁은 신혼의 첫날밤에 자기를 버리고 가 버린 남편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네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기다리기 위하여 사는 사람처럼, 그네는 자고 새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속의 갈피 한쪽에 숨겨져 있던 그 기다림이, 마치 씨앗이 어둠 속에서 저절로 눈을 뜨듯 나와 자라기 시작하는 것을 그네는 느끼었다. 조금씩 조금씩 눈치를 보며 자리를 넓혀 가던 그것은, 이윽고 어느 날인가 도저히 그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성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미 그 무성한 줄기와 가지는 자신을, 우로와 햇빛으로부터 차단시켜 그늘이 지도록 가리웠던 것이다. 그네는 그늘 속에서 말라갔다. 햇살이 닿지 않는 그늘 밑은 음습하고 추웠다. 그것뿐이랴. 천지를 둘러보아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는 적막함은 또 어지할 것인가. 인월댁은 밤이고 낮이고 깨어 있었다. 어찌 잠든 날이 없었으리오마는 그네는 잠든 꿈속에서도, 오지 않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월이 몇 해나 지나갔을까. 그네는 자신이 헛된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핏속에 어느새 기다림은 질긴 병이 되어 걷잡을 수 없는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알고 말았다.
“아짐, 저는 이제 내생이 있다고 해도 사람으로는 안 날랍니다.”
“그럼...무엇으로 날라는가...?”
“...아무것으로도 나지 않을랍니다. 그냥 이생에서 갚을 것 있으면 이 몸으로 다 갚어 버리고, 아무 인연도 짓지 말고, 원망도 남겨 두지 말고, 그저 소멸하여 없어지는 것이 소원입니다.”
“...소멸...이라...”
“이 멸렬한 목숨에 그나마 꿈이 있다면 소멸하는 것이지요.”
“나는 한평생 동안, 오직 이루어 보려는 욕심으로 살어왔었네.”
“그러셨길래, 이만큼 큰일을 혼자 다 해놓으신 게 아닌가요...?”
청암부인은 인월댁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처음 시집와서의 정경이야, 청암아짐께서 저보다 더 나으셨을 리가 있겄습니까. 사주에 천고를 타고난 것은 서로 같지마는, 아짐께서는 백대천손의 기틀을 잡으셨고, 저는 제 한 몸에 서린 업고에 시달리노라고 한세상의 세월을 보낸 것이지요. 그게 참 이상하데요. 누워서도 그렇고, 깨어 앉어서도 그랬지요. 숨을 쉬면, 담 결리는 것마냥으로 힘줄이 땡기면서 걸렸어요. 숨을 쉬다가도 뜨끔 놀라서 통증을 가라앉히느라고 한참씩 그대로 있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잠을 잘 못자서 힘줄이 어긋났거나, 차게 자서 담이 결린 줄만 알었지요. 그런데 이것이 여러 해가 지나가도 풀리지도 않었어요...풀리기는커녕, 점점 더 사지 끝머리까지 뻗어 나가면서 결리더구만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한숨을 제대로 못 쉰답니다.“
인월댁은 씁쓸하게 웃었다.
“몸에 근이 뻗은 게로군.”
“그러게나 말씀입니다. 사람의 사대육신이란 지수화풍, 곧 땅.물.불.바람의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 하였으니, 살이란 땅이 아니겄습니까. 자연, 근이 살 속에 심지를 박고 모질게 뻗어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다림의 근이었다. 실 같은 잔뿌리가 조금씩 굵어지고, 허리끈만 해지고, 동아줄같이 억세지고, 갈쿠리처럼 그네의 뼈를 움켜쥐는 증오와 원과 한의 근이었다. 기다림과 원한은 한 나무의 가지요 뿌리였던 것이다. 한 사람의 얼굴을 소망하여 우러르며 발돋움하고 내다보는 기다림의 가지가, 어두운 땅 속으로 뻗어 내리면 원한의 뿌리가 되었다. 습기찬 땅 속의 무참한 어둠 속으로 발을 내리는 그 증오의 시린 이빨, 그것은 제 뼛속에 제 이빨을 박았다. 굼벵이나 와서 집을 짓고 웅크리고 잠드는 어둠, 햇빛이라고는 한 줌도 받아 보지 못한 젖은 자리, 아무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그 땅속에. 힘줄같이 뻗친 근은 결국 날카로운 이빨로 인월댁의 마디마디를 물어뜯었다. 그네는 그것이 결리어 숨을 쉴 쉬가 없었던 것이다.
“아짐, 마음이 업인 모양입니다. 생각이 스치면 바로 그 순간에 업은 시작된다더니, 내 마음이 지어낸 못된 집착이 저절로 뻗쳐서 제몸에다가 그물 같은 뿌리를 친 것이지요.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고요. 하룻밤에는 이런 꿈을 꾸었답니다.”
그 꿈속에서도 인월댁은, 북향 뒷방의 베틀 아래 누워 있었다. 밤이었던가. 아니면 대낮이었는데도 그렇게 어둑어둑하였던가. 꿈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분명 칠흑 같은 어둠이 주위를 무겁게 두르고 있었는데 베틀은 희끄무레한 회색으로 비쳐 보였다. 베를 짜다가 고다하여 그랬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누워 있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네는 축축한 기운을 느끼며 그림자처럼 누워 있었다. 이곳은 굴 속인가...? 습기는 그네의 등에서 흙냄새를 눅눅하게 풍기며 젖어 올라왔다. ...땅 속인가? 순간 그네는, 와락 무서운 생각이 들고, 갑자기 천지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만 이곳에 묻혀 있구나, 싶어서 벌떡 일어나려고 하였다. 내가 죽지 않았는데 왜 나를 묻었을까...누가 나를 묻었단 말인가. 나는 왜 이곳에 묻혀 있는가. 그네는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리며 고함을 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몸은 누운 채로 옴짝도 할 수가 없었다. 공포에 질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명부의 적막이 흙더미처럼 무너졌다. 누가 좀 와 주시오...누가 좀...누가. 숨이 지질리어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네의 눈앞에는 저만큼 웃목에 희미한 베틀이 보였다. 내가 일어나서 저기까지만 좀 가면 되겠는데...베틀에 앉기만 하면. 그러면 살 수가 있겠는데.일어나기만...하면. 그네는 베틀이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속으로 그것한테 도움을 청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네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 버렸는가, 몸이 땅에 붙은 채 손가락 하나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지의 어느 부분도 살아 있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죽었단 말인가? 그네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땀에 몸이 흥건하게 젖었다. 그리고 꿈속이어서 그랬겠지만, 그 순간 자기의 온몸에서 허연 뿌리가 땅속으로 뻗어내리고 있는 것을 역력히 보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누워있는 그대로, 등뒤 쪽에서 허옇게 잔가지를 늘이운 뿌리들은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질기게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소스라쳐 놀라 깼다. 그리고, 땀이 배어난 가슴을 쓸어 내렸다.
“무슨 그런 몹쓸 꿈이 있었겠습니까...? 몸서리가 쳐지고, 그 다음에는 생시에도 방바닥에 눕는 것이 두려웠지요.”
그 뒤로 인월댁은 더욱더 베틀에만 매달려 살았다. 그렇다고 억세게 일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이 그네의 할 일이었던 것처럼, 베틀에 앉아 베틀짜는 것이 또한 그네의 할 일이었을 뿐이라는 듯.
“꿈속에서도, 내가 저 베틀에만 앉으면 살겠는데...하고 간절히 빌었던 생각이 나서요.그래서 더 그렇게 베를 짰지요. 북이 올 사이로 번개처럼 지나갈 때마다, 제 몸 속에 뻗어 나가던 뿌리를 잘라 내는 것 같았습니다...그것은 칼질이나 한가지였어요. 어쩌든지 일구월심 그렇게만 빌었습니다. 잘라 내자. 잘라 내자. 원도 한도 다 잘라 내자. 내 마음의 업의 근원이라, 이 마음속에서 뻗어 나가는 업의 뿌리가 나를 사로잡고 있어서는 안된다. 산 채로 죽은 듯이 누워 있던 꿈속 생각이 한시도 저를 떠나지 않았지요...소멸...모든 마음의 뿌리를 잘라내고, 없애고, 없애면서, 드디어는 몸을 이루고 있던 사대까지도, 공중의 티끌마냥 흩어져 버리게 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렇게만 되다면, 저는 제 모진 목숨의 업을 다 갚고, 이 미망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 같었지요.”
“자네...성불할 꿈을 꾸었네그려.”
청암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제 몸은 죽고 없는데, 마음이 지은 집착이 남어서, 원이 남고, 한이 남어서, 몸도 없는 이승의 천지를 배회하고 다닌다면, 그것이 무슨 좋은 일이겄습니까...그저 제가 이승에 난 목숨의 섭리라면, 모든 것을 삭여 버리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렇게 소멸해 버려야 내생에 다시 태어날 인연을 남기지 않게 되겄지요.”
“똑같은 꿈을 내가 꾸었더라면, 나는 달리 생각했을 것이네. 나는...자네와는 정반대였는지도 모른지...자네는,잘라 내고 없어지려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는 뿌리를 내리려고 살아온 사람일세...무서운 집념으로, 더 질기게...더 깊이...자네는, 자네를 비우려고 베틀에 앉았지만...나는...나를 채우려고 땅을 샀네. 열아홉에 소복을 입고, 홀로 텅 빈 집에 신행을 오면서, 나는 많이 울었지...그때 청암양반은 열여섯 살이었어...곱고 애띤 신랑이었다네...강모애비가 사모관대를 쓰던 날도...강모가 사모관대를 쓰던 날도...나는 그 모습에서...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간 청암양반을 보았지...참 이상하리만큼 가운이 비색하였던 모양이라. 시부께서 그렇게 어이없이 상처를 여러 번 하시고, 당신 자신 아드님을 성혼시키시고는, 자부 폐백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돌아가시지 않었는가...그랬는데, 청암양반도 우리 친가에서 사흘을 묵고는 매안으로 돌아간 다음 세상을 버렸어...무슨 그런 운수가 있었던고...내가 고과살이 끼었던 게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되었겄는가...내 평생 내 마음에 사무치는 것은, 청암양반이 매안으로 돌아갈 때의 뒷모습이었다네...자신이 그렇게 일찍 죽을 것을 미리 예감이라도 했었던가...내일이 떠날 날이라면 오늘 밤, 나를 붙들고 그리 울었다네...마치 내가 누이라도 되는 것같이 안타깝게 울면서, 매안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야...반가의 도리로 그리할 수가 있는 일인가...여러 말로 타이르고 어르고...그러다가 밤이 샜지. 이튿날 길을 떠나야 하는데...다시 나를 붙들고 울었어...하룻밤만 더 있다 가리다. 하룻밤만 더 재워 주소. 내 많이 있다 가지 않을게...하룻밤만 재워 주소...나는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쓰렀지마는, 위로 층층이 어른 계시고 남의 이목이 번다한지라...채 이별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었지...가서 좋이 계시다가, 한 달만 지나거든 바로 오시라고 내가 말했다네...이담에 그때 여러 날 같이 지내십시다...청암양반은 할수 없이 풀이 죽어서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타박타박 걸어갔지...그런데 그 뒷모습이 그렇게도 측은하고, 어째서인지 영 다시는 못 볼것만 같더란 말이네...왜 그랬는지 나도 모를 일이야...그 뒷모습이 산 사람 같지가 않었어. 무슨 꿈 속에 비친 사람 같었네. 그래 나는 와락 울고 싶어지데. 그런데 그 양반도 심정이 그랬던가...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힘없이 돌아보았어...한 번...물끄러미 그렇게 함참을 바라보더니, 웃는 시늉을 하면서 손을 흔들어 보이데...그러고는 길모퉁이를 돌아서 버렸다네. 그것이 마지막이라...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되었지. 그, 타박타박 걸어가던 뒷모습이며,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을 흔들던 모습이 그렇게...이날까지도 사무친다네...순리대로라면야 지금쯤이나 서로 나누어야 할 작별 인사를...참 일찍도 서둘러서 했던 셈이지. 나중에 들었네만 청암양반은 매안으로 돌아가던 그날...열병을 얻었다네...그날 하루만 피했어도 모를 일 아니었던가...? 그럴 줄 미리 알고 ...그렇게 안 가려고 안 가려고 하였던것을...결국은 내가 몰아내서 아주 먼저 가시게 한 셈이었네...내가 그 명을 재촉함 셈이었어...그렇게 먼저 가나...이렇게 늦게 가나...허망한 것은 다 한가지겄지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