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3 - 최명희
15. 가슴애피(7/7-2)
강태와 강모는 서로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며 골목 어귀에서 헤어졌다. 너풀 너풀 내리던 눈송이들은 점점 바람을 타고 흩날리면서 길바닥에 쌓인다. 첫눈치고는 소담스럽게 내리는 것이다. ...봉천으로? 곧 떠난다...? 강모는 아까 강태가 하던 말들을 처음부터 되뇌어 본다. 눈은 어두운 하늘에서 적막하게 춤을 춘다. 활 흥 훨 후어리. 눈발은 내리다가 날아오르고 아득한 곳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어느 날의 꿈 속에서처럼, 매안의 넓은 들픈 끝없는 매화낙지에 살구꽃이 지듯 그렇게 눈꽃은 지고 있다. 눈꽃 속에 한 얼굴이 떴다가 진다. 강모의 가슴으로 날아 떨어지는 그 얼굴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녹아 버린다. 행여 그 이름이 새겨질세라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지른다. 그 손자욱에 눈이 내린다. 강모는, 그 얼굴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돌아서 버린다. 그러나 돌아서도 등뒤에 그림자 지고, 바라보면 살구꽃잎처럼 흩어져 버리는 사람. 강모는 차라리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눈을 맞는다. 눈발은 점점 굵어진다. 어느덧 길바닥에는 발자국이 날 만큼 눈이 쌓였다. 꽃잎을 밟듯 눈을 밟는 강모의 발밑에는 검은 발자국이 웅덩이처럼 패인다. 그 발자국의 어둠 위에 다시 흰 눈이 날아내려 어둠을 어루 만지며 녹는다.
강모가 다가정의 골목 어귀까지 왔을 때는 이미 골목이나 지붕이나 동네까지도 소복한 흰 눈을 머리 위에 덮고 있었다. 천지가 조용하다. 처마 밑의 네모진 창문들에서 주홍의 불빛이 아슴하게 비쳐나와 골목에 내리는 눈발을 물들이고 있다. 강모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건너편 관사의 개가 귀를 세우며 짖는 소리가 커겅, 컹, 컹, 컹, 터져나온다. 뒤따라 몇 집에서 개가 짖는다. 강모는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외투와 머리에 덮인 눈을 털어 낸다. 어느새 그의 어깨에는 눈이 무겁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대문을 막 두드리려는데 정거장 쪽에서 상행 열찰의 기적이 들려온다.
상행 열차.
이 시간에 지나가는 것은 북쪽으로 가는 기차다. 그 열차의 기적이 강모의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우렁 우렁, 흔들리게 한다.
“오유끼.”
강모는 자기 자신이 급류에 휩쓸린 듯 갑자기 출렁거리는것을 억제 하지 못하고,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린다. 그는 마치 자기 몸이 연처럼 둥실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하늘 아득한 곳에서 아득한 곳으로 날고 있는, 흰 점점의 눈발들은 형형색색의 연으로 보인다. 웃죽지, 아랫죽지, 치마연,수박등, 홍꼭지...청꼭지에 먹꼭지...세눈백이 네귀발톱...채반연...나찰귀...장군연. 그 연들은 천공을 주름잡을 독수리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 거칠 것이 무엇인가. 맹렬함의 아름다움이라니. 칠을 먹여 윤태를 내고 매끄럽게 손질한 오동나무 연자새에서 실이 풀려 나간다. 사금파리 유리가루로 갬치를 먹인, 손을 베일 것 같은 기세의 명주실이 날카롭게 빛을 반짝인다. 마침 적중하게 웃바람마저 불어 준다. 연은 천공에 요요하게 떠다니는 한 송이 꽃이었다. 그 꽃송이는 아스라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간다.
연.
고려 말엽 최영 장군이 휘하 군사들에게 군령으로 연을 만들에 하여 그것에 기름을 먹인 다음, 일제히 불을 붙여 적진인 지자성에 날려 보냈다는 것이 바로 연 아닌가. 불을 단긴 연은 지자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강모는 설움에 가까운 희열로 뜨겁게 떨고 있었다.
“오유끼.”
그는 오유끼의 이름을 불렀다. 눈 내리는 빈 골목에 목소리가 울린다. 이윽고 마당에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린다. 평소와는 다르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선 강모는, 두려움에 미리 질려 있는 듯한 그네에게 짤막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봉천으로 간다.”
오유끼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보랏빛이다.
“나는 떠난다.”
강모는 그런 오유끼를 비스듬히 피하며 젖은 겉저고리의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오유끼의 손에 쥐어 주었다.
“?”
오유끼는 받은 것을 펴 보려고 하지도 않고 벌써 눈에 눈물이 돌아 고개를 떨어뜨린다.
“너는...”
그녀는 강모의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앞으로 고꾸라지며 울으을 터뜨린다.
마치 예감이라도 했던 것처럼.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알 리가 없어을 것이다만, 가지고 가거라.”
강모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끊어서 말하였다. 그는 자기의 품 속에 지니고 있던 할머니의 명주 수건을 오유끼에게 건네준 것이다.
“어디로든지...가거라.”
그것은 오유끼한테 한 말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과도 같았다. 그리고 명주 수건이 들어 있던 가슴이 헐렁하게 비어 버리는 그공허에다가 대신 채워 넣는 말이기도 하였다. 빈 자리에 찬 바람이 일었다. 그것은 허전한 공간으로 변하였다. 가슴속에 겨울의 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스미었다. 강모는 그곳에 연을 띄워 올린다. 하늘로 치솟는 연은 그의 가슴에 끝없는 동경과 서글픈 연민을 느끼게 해 주었다. 솟구쳐 오르며 나는 그것은 비극적인 방랑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방랑. 이 서글픈 유혹, 강모는 가슴의 복판에서 아득한 곳으로 날아오르는 연을 팽팽하게 당기는 실의 날카로운 긴장에 아픔을 느낀다. 마치 살을 베어내 버릴 것 같은 서슬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이 아니라 이름들이었다. 아마도 이 겨울의 문턱을 못 넘기고 말 것만 같은 할머니 청암부인의 얼굴, 그리고...차마 입 밖에 내어 말도 할 수 없으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사람, 강실이의 이름이었다. 내 어쩌다 너를 만났을꼬...그러고 너는 무엇 하러 나 같은 것을 만났단 말이냐. 원수를 지어도 헤어질 수 없는 지극한 인연으로, 친동기 못지않게 태어났건만, 내가 어리석어서 인연 건사를 잘못하였다.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것도 잃지 않았을 것을. 내가 너를 애착하여 평생에 다시 못 볼 원을 너한테 남기고 말다니. 내, 일이 이리 되리글 원치 않았건만, 어찌하랴...아아, 어찌하랴. 강모는 무너지듯이 주저앉아 버린다.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아득하다. 그의 발치에서 울고 있는 오유끼의 구부린 어깨를 그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울지 마라.”
내가 울게 한 사람이 너 하나만이 아니로다. 너는 차라리 내 보는 앞에서 마음 놓고 울고나 있다마는, 돌아앉아 눈물로 세월을 메우는 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 각기 손톱 티끌만치도 그릇되지 않았는데도 까닭없이 서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리. 오로지 못난 이 몸뚱이 하나로 인하여 부챗살 모양으로 뻗친 설움이리라. 너와 관련된 사람이면 누구라도 한 많다. 그것은 어인 연고일까. 서슬이 퍼런 할머니도, 대쪽 같은 아버지도, 그늘에 가려 사는 어머니도, 태산 같은 안사람도...나를 아비라 부르는 어린 자식도...이제 너는 또 다른 주인을 만나 떠나가겠지만, 울고 있는 너 우유끼도...그리고...그리고...강실아. 내 어쩌다 이승의 길목에서 너를 만났던고. 어찌하여 너를 바라보기만 하지 않았던고. 진실의 허망함이 연기만도 못한 것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던고.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며, 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길 없는데, 하물며 나를 에워싼 사람들이야 말하여 무엇하리. 안개를 잡으려고 허공을 움켜쥐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나를 살지 못하였으므로, 그 어느 누구에게 그 무엇도 되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차라리 이름 없는 가문에 산지기 아들로 났더라면, 나뭇짐이나 등에 지고 새소리 벗하면서 다정하게 살았으련만. 그는 자신의 탄생부터가 하나의 망집이었던 것만 같아진다. 나는, 한 아낙의 자식이 아니라 할머니의 응어리가 낳은 헛된 이름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뼈 있고 살 있는 육신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으니.
허명.
그 헛되고 실속 없는 찬란한 명예를 등짐으로 지고, 살아 보기도 전에 허옇게 늙어 버린 자신의 모습이 사위어 떠오른다. 어쩌면, 내가 살아 있다고 하는 것도 한낱 저잣거리의 소문에 불과한것이지도 모른다.허물 하나가 그림자처럼 떠도는, 나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 역시 어찌 어리석은 미신이 아니리요. 그러 내가 한 여인을 취하여 작배하였으니, 유령을 지아비로 맞은 그네의 나머지 생애가 어떻게 산 사람의 것이겠는가. 종잇장에 화상을 그려 붙여 놓으니만도 못한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한 생애를 경영하려 하는 것이 어이 부질없는 일이 아니랴. 내 그 기상에 짓눌리어 감히 맞서 볼 굳건함을 지니지 못한 것이 두려웠으나, 이제 생각해 보니 당신이 만일 일세지웅을 만나 그의 배필이 되었더라면 여한없이 한세상을 풍미하고도 남았을 것을. 앉은 자리에서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삭아드는 청춘은 당신의 업인가, 나의 죄인가. 강모는 처음으로 효원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이제 여기서 떠나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속으로 다짐하며 바라보는 마지막 모습이라 그렇게 여겨지는 것일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은 효원에 대한 연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육신은 떠나가 버렸는데도 지울 수 없는 지문처럼 효원에게 남아 있을 강모의 허명에 대한 부채를 무겁게 느낀 탓인 것도 같았다. 허나, 허명도 이름이라면 당신에게는 그나마 그것이라도 주어졌지만... 강모는 눈을 내리감은 채 떠오르는 한 얼굴을 지우려 애쓴다. 밝은 등물 아래서는 흐미하던 그 불이 눈을 감으니 선연하게 드러난다. 무성한 얼굴들 저 뒤쪽에 웅크린 듯 돌아설 듯 금방이라도 지워질 듯 보이는 얼굴이었다. 강실아... 차라리 네가 죽어라. 네가 죽어서 나를 놓아다오. 네가 바람과 더불어 흐레하였으니, 네가 낳는 세월 또한 한 자락의 부질없는 바람 아니겠느냐. 마음은 아무리 깊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살로 이루어진 몸은 한 번만 지나가도 자국이 패인다. 그 하찮은 자국 위에 서러운 빗물이 고이고, 고인 빗물이 둠벙을 이룬다. 제 한 몸을 다 헐어서 메워도 메워지지 않는 둠벙은 늪이 되어, 한 사람의 한세상을 능히 삼키고 마는 수도 있거늘.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처럼 흔적 없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니었는데. 네가 눈 뜨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나 또한 언제까지나 진흙 바닥에 빠져 헤어 나오지는 못하리라. 생각해 보면 그가 오유끼를 들어앉혀 함께 살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든지 패어져 나간 자국을 메우련느 몸짓이 아니었던가 싶었다. 밤이면 밤마다 강실이를 무너뜨려 패인 자리에 흙을 들이붓득이, 그는 오유끼를 향하여 무너졌던 것이다. 오유끼는 강실이를 대신하고 있었다고나 해야 할는지. 죽어라. 강실아...제발. 언제였던가.
“오라버니 등 좀 잡어 줘라.”하던 오류골댁의 말끝에 소리도 없이 등롱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서던 강실이. 그때 강실이가 비추는등롱의 불빛 때문에 강모의 그림자가 먼저 사립문을 나섰었다.
“가시지요.”
강실이는 강모 곁으로 다가서서 한참 만에야 거의 들리지도 않는 잦아드는 소리로 그렇게 말했었다. 그네가 들고 서 있는 둥롱의 창호지 안쪽에서 붉은 불빛이 은은하게 비쳐 나왔었다. 이상하게 그것은 불빛인데도 젖어 보였었다.
“...길이 어두워서...밤길이라...발밑을 잘 보고 가시어요.”
그때 그 강실이의 목소리가 지금도 이렇게 귀에 젖는다. 그네의 어깨가 금방이라도 손안에 잡힐 듯하였었지. 초승달이 하늘 한 귀퉁이에 걸려 있었으련만 어둠을 비추기에는 너무나 가냘펐던가. 찬 별빛만 몇 개 보였었다. 사립문간에 서서 올려다 본 겨울밤 하늘의 별빛들은 영롱하게 부서지며 찬바람에 씻기고 있었건만. 그때의 삭막한 밤하늘과, 쓰라리게 영롱하던 별빛은 꿈에 본 것이었던가 싶다. 아아, 강실아, 둥글고 이쁜 사람아, 네가 없다면...네가 없다면, 나의 심정이 연두로 물들은들 어디에 쓰겠느냐. 어쩌면 강실이는 없는 것인지도 몰라. 목소리만 나를 젖게 하고, 옷자락 빛깔만 나부끼면서, 강실이는 정말로는 없는 것인지도 몰라. 야기처럼 서늘하게 스며들어 고개를 흔들케 하던 그 생각은, 그후로도 오래 지워지지 않았었다.
“나 갈라네.”
한 걸음을 떼며 목에서 밀어내듯 강모는 말했었다.
“조심해서...”
“응”
대답 소리가 목에 잠긴 채 갈라졌지. 사립문간에 강실이를 남겨 두고 집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에 , 뒤에서 비춰 주는 등롱의 불빛이 걸려 긴그림자를 만들어 주었었다. 마치 그림자가 자기를 이끌고 가는것 같았었다. 그렇게 몇 걸음을 가다가 뒤돌아 보며
“들어가아.”
하고 강모가 손을 들어 보였을 때, 그의 눈에는 등롱의 불빛만 어둠 속에서 주황으로 번지고 있을 뿐, 강실이의 모습은 어둠에 먹히어 보이지 않았었다. 컴컴하게 솟아 있는 솟을대문에까지 와서 돌아보았을 때도 등롱은 그렇게 아슴하게 비치고 있었다. 강모는, 보이지도 않겠지만, 강실이를 향하여 다시 한번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속으로...지금 강실이도 나한테 이렇게 손짓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하고 생각하였었다. 자박 자박 자박. 오류골 숙부와 마주앉아 있을 때, 정지에서 헛간 쪽으로 가는 발짝 소리가 들리었었다. 문풍지가 더르르 울리더니 등잔불이 흔들렸지, 바깥에 잔바람이 지나갔던가. 그러나 그 바짝 소리가 불꼬리를 밟는 것을, 강실이가 지나간 자리에서 일어난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어 그렇게 불꽃이 흔들리는 것을, 역력히 나는 느끼었다. 그때 검은 그을음을 뱉으며 잦아들던 작은 불이파리가 지금인 듯 강모의 가슴을 핥는다. 속살을 덴 강모는 가슴을 오그리며 아아, 강실아, 내 너를 어지하랴. 그만 바라벽에 등을 부려 버리고 만다. 이제 강실이가 들고 있는 것은, 젖은 불빛이 아슴하던 등롱이 아니었다. 컴컴한 어둠의 음습한 한기를 강모의 등뒤에 비춰 주고 있는 것이다. 그네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추운 어둠이었다. 나는 비겁하여 도망이라도 가지만, 너는 어찌할 것이냐. 그는 어깻죽지를 장작으로 후려치는 아픔에 소스라치던, 첫날밤의 꿈이 생생하게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소름을 털어냈다. 한 번만이 아니라 정신 없이 내리치던 그 매는,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뭇사람이 한꺼번에 때리는 몰매였다. 강모는 꿈 속에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덕석에 말어라.”
쉬어 갈라진 그 목소리리는 오류골 숙부의 것이 분명하였다.
“이놈, 이 인륜 도덕이 무언지도 모르는 천하에 못된 놈, 이노옴.”
“짐승 같은 놈, 네 이노옴.”
“가문에 먹칠을 하고 상피붙은 네 놈이 그래 사람이란 말이냐.”
몰매가 쏟아지고 강모는 비명도 없이 매를 맞았다. 돌팔매가 정수리를 때렸다. 찢어지고 깨진 강모의 피투성이가 된 몸을 누가 뒤에서 순식간에 덕석으로 덮으며 두르르 말아 버렸다.
허억.
강모는 숨이 막혀 두 손으로 덕석을 밀어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그것이 꿈인 것을 알고는 비로소 긴 숨을 내뿜었었다. 그때 그의 등에 축축하게 배어나던 식은땀이 지금 새로 돋아, 그를 써늘하게 한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 생시로 돌아왔다만, 강실아, 너는 내가 꾼 꿈을 이제부터 살아야 할 것이니, 무슨 사람의 한평생이 남의 악몽을 대신 살아야 한단 말이냐. 멍에로다. 희롱이로다.
하늘 아래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란 없는 법. 이윽고 드러나게 될 상피의 죄가, 덕석말이, 몰매로만 끝나지 않고 파문에 이르리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강모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파문이라든지 그다음의 모욕과 형벌, 또는 쫓겨난 처지의 유리표박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렇게 되는 지경은 처참할 것이 분명하되, 그가 바라는 자유와도 흡사한 쾌감이 있을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아직 닥쳐오지 않은 일인지라 막연히 떠오르는 공상의 두려움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나는 사실에 부딪치는 그 순간이 무섭다. 그보다는 맨 처음으로 누군가와 맞닥뜨려 토설해야 하는, 이 얼굴을 무엇으로도 가리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얼굴 앞에 정면으로 맞서서, 붉은 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낱낱이 밝혀야 하는 그 참담한 순간을 생각하면, 그는 자지러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 강모는 강태를 따라 낯선 곳으로 떠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강태가 무슨 목적으로, 무슨 사상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러 가는지는, 물을 것도 없고 알 바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강태가 가는 길목만 따라가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경을 넘으면 거기서는 어떻게든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어쨌든 떠나기만 하면 된다. 매안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좋은 것이다. 어디든지 더 먼 곳으로, 세상의 막바지까지라도. 그렇게 달아나 버리면 그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으로부터도 멀어질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나, 너를 어쩌랴. 내가 비겁하여 샛길로 피해 버린 자리에 오두마니 앉아서 혼자 뒤집어쓸 처참한 좌목과 혹독한 매를 너 혼자 어찌 당하리. 아아, 강실아, 차라리 죽어 버려라. 차라리 죽어서 놓여 나거라. 강모의 가슴에서 비늘처럼 푸른 빛을 번뜩이며 살의가 일었다. 그것은 날카롭게 강모를 사로잡아 저도 모르게 몸을 떨게 하였다. 어저면 그 생각은 지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맨 처음 강실이의 둥근 어깨를 보고 사무치던 순간부터 그의 가슴 밑바닥에 숨어 돋은 비밀의 대가리였는지도 모른다.
비단 그것은 강실이에 대한 살의만은 아니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뻗쳐 오르는 증오로 종가의 용마루와 서까래, 대들보까지도 무너뜨려 버리고 싶었다. 검은 기운이 서려 있는 것 같은 솟을대문도, 칼로 자른 것처럼 네 귀퉁이 반듯한 중마당, 안마당도, 거기 각 방마다 뿌리를 서리 틀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중허리도, 그는 마구 뒤흔들어 무너뜨려 버리고 싶었다. 귀밑을 스치고 날아가 차탁자를 후려치던 퇴침과, 퇴침에 맞아 쏟아지던 다기들의 굉음이 귀를 때린다. 의침도 불끈 들어 내던진다. 쏟아지는 그 소리는 기왓장 무너지는 소리로 들린다. 강모는 진저리를 친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그의 몸뚱이조차 그속에 파묻혀, 산채로 매장되는 것을 절감한다. 그는 짓눌린 숨통을 터뜨리듯 몸을 솟구친다. 비명을 지르고 싶다.
덕석에 말린 것처럼 숨이 막힌다. 그것을 대신하듯 오유끼가 울부짖으며 대들었다.
“당신 마음은 허공에 있어요, 아무곳에도 붙들어 두지를 못해요. 처음부터 당신은 내게 마음이 없없던 거예요. 그런데 왜 나를 데리고 자는 건가요? 내가. 하잘것없는 가랑잎 같은 여자라서 그러시나요?”
오유끼는 울음에 체하여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당신은 나므이 생각을 하나도 안해요. 모든 것에서 떠나려고만 하ㅈ요. 처음에 나는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고마워했어요. 속으로...은혜를 입은 만큼 갚아야 한다고 다짐을 했지요. 그렇지만 사람한테서 은혜를 입는 것은 그 사람의 노예가 되는 일인 것을...
결국 모찌즈끼의 주인은 나를 돈으로 사서 돈벌이에 이용했고, 당신은 나를 돈으로 사서 노리개로 이용했어요. 나는 조금도 나아진 게 없어요. 나는 당신한테 팔려온 물건에 불과했던 거예요. 강아지 한 마리나 다름없어요. 아니, 그만도 못해. 정도 없이 데리고 살다니.“
그녀는 슬프게 울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반짇고리를 번쩍 쳐들어 장롱에 내다붙이는 것이었다. 강모는 놀란 얼굴로 패어나간 장롱 귀퉁이를 바라보았다. 반짇고리의 가위가 튀어 나와 찍은 자리이다. 허공에 떠 있는 강모의 마음을 붙들어매 두는 것이 겨우 장롱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어느 날부터인가 오유끼는 정신 없이 가구를 사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유끼는 여염집 안방의 가구 집기를, 텅 빈 방의 한쪽에서부터 채워 넣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살람의 손때가 묻은 집안의 흉내를 내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늘 반짇고리를 가까이 두었다. 강모는 그녀가 사 달라고 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사 주었다. 돈을 구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강모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 그의 뒤에는 청암부인이 있었고, 이기채가 있었고, 들판 같은 논이 있었다. 이자는 이자대로 복리로 쌓여갔다. 오유끼는 점점 살림과 가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방안의 세간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강모의 마음은 점점 죄어들었다. 그리고 발목을 잡힌 자신의 모습에서 자기가 쳐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든 짐승을 보고, 그 어리석은 후회에 진저리가 났다. 방안은 날이 갈수록 효원의 건넌방을 닮아갔고, 청암부인의 큰방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는 탄식하며 한숨지었다. 그가 추구하던 것은 쾌락이 아니요 해방이었다. 그리고 욕망이 아니라 탈피였었다. 어찌하여 그것은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강모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일 때, 오유끼는 돌아누워 훌쩌이며 울었다. 강모의 한숨은 골짜기의 어둠처럼 음습하였다. 그리고 오유끼는 조금씩 여위어갔다. 오유끼. 나를 붙잡으려 하지 마라. 나는 그저 허공에 불과하다. 내처음부터 그러지 않더냐. 너는 희롱의 죄를 묻지 않는 여자. 너를 위한 계산은 족할 만큼 해 주었건만, 너는 아직도 무엇이 모자라느냐.
“당신은 나 때문에 빚을 지고, 나 때문에 파면되었어요. 내가 무엇이라고, 그렇게도 진정으로 당신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시는가 싶어서, 나는...머리털을 베어서 짚신을 삼어 드리리라고...나는.”
오유끼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흐느낀다. 이미 지나간 일. 내 지은 빚은 할머니가 이렇게, 몇 곱 이자 붙여서 평생에 갚을 길도 없이 나한테 무겁게 짐지우셨다. 그런 명주 수건에 싸인 삼백 원은 지금 오유끼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런데 오유끼는 그것마저 내팽개치며 울고 있는 것이다.
“따라가겠어요. 나는 노리개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사람끼리 만나서 정들고 헤어지는 것이 냇물에 발 씨는 것마냥 쉬운 줄 아셨단 말인가요? 천한 년 마음속에 고인 정은, 구정물 한가지로 더러운 것인 줄 아시는가요...?”
강모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물끄러미 방안을 둘러본다. 아랫목에는 솜과 짐승의 털, 그리고 보드랍게 자란 짚을 섞어 만든 탄탄한 보료가 깔려 있고, 보료 위에는 ‘희’자를 수놓은 안석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다. 문갑, 사방탁자 들도 모두 제자리에 서 있고 놓여 있었으며, 화각 삼층장, 피농, 의걸이장, 반닫이, 자장궤, 갑게수리 들도 제각기 태깔을 내고 있다. 그것들은 붉은 바탕에 노랑과 파랑으로 아로새겨져 현란한 모란과 구름, 학을 무늬 놓고 있기도 하였으며, 가지가 우거진 노송에 백로가 한 쌍 앉아 있기도 하고, 매화나무와 대나무 그늘에도, 물결이 일고 있는 수초 사이에도 이름 노를 새들이 한 쌍씩 노닐고 있었다. 흑칠 바탕에 번쩍이는 자개의 모란당초문이 꽃봉오리와 더불어 활짝 핀 꽃송이를 희롱하기도 한다. 그 색상은 영롱하기까지 하다. 이 가구와 집기들로만 보면 어느 한다 하는 대갓집의 안방과 견주어 조금도 뒤질 바가 없다. 오히려 턱없이 으리으리한 편이었다. 그것들은 등잔불 아닌 전등의 주황빛을 받아 더욱 휘황하게 어우러져 있다. 다만 눈여겨 살펴본다면 사방탁자 아래칸에 놓여 있어야 할 함이 빠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함이란, 혼인 때 신랑 집에서 예물을 넣어 보내는 것으로, 새각시가 신행 올 때 그대로 가지고 오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 함 속에는 반드시 혼서지가 곱게 들어 있어 일생 동안 소중하게 간직되다가, 훗날, 부인 된 여인이 죽어 명부로 떠날때, 저승의 강물을 건너서 낯선 길 아득히 홀로 가는 발에, 종이 신발로 만들어 신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안방의 세간살이에 이것이 빠져 버리면, 가구 집기가 아무리 호화로워도 첩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강모는 냉수 한 대접을 청한다. 오유끼는 울다 말고 얼른 일어나 미닫이를 소리 없이 열고 나간다. 갑자기 그의 전신에 끈적이는 피로와 컴컴한 공허가 엄습해 온다. 방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장롱과 문갑, 탁자 들이 거기에 뿌리라도 질기게 박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강모의 이뿌리가 저르르 저린다. 그것들은 마분지로 만들어 세워 놓은 울긋불긋한 각종이와도 같다. 그것은 숨만 크게 쉬면 우르르 무너져 그를 덮어 버리고 말 것 같다. 마치 거미처럼 발닿는 곳마다 끈끈한 실을 뽑아 내리며 집을 짓는, 사람들의 애착이 그는 두려웠다. 나는 떠나리라. 비록 연이 하늘 높이 날더라도, 실 달린 연자새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날아가리라. 이 줄을 어찌하든 끊어 버리고 말리라. 광활하고 외로운 저 불안한 하늘로, 나는 다만 벗어나니라. 그러나 강모의 머리 속에는 까마득한 하늘의 구름 너머로 날아오르던 연이, 툭, 줄이 끊어진 채 점으로 떠도는 모습이 떠오르며 어지러이 맴을 돈다. 그 끊어진 실은, 바로 자신의 넋을 잡아 맨 핏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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