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3 - 최명희
15. 가슴애피(5/7)
청암부인은 더 말이 없었으나, 그때 평순네의 눈에 비친 부인은 예전의 부인이 아니었다. 허옇게 백발이 되어 버린 그네의 머리와 흰옷이 유난히 그렇게 비쳤던가. 청암부인은허깨비처럼 앉아 있었다. 바람만 불면 그대로 펄럭, 누워 버릴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평순네의 가슴을 쩌르르하게 울리었다.
“저...벨 것은 아닌디요. 마님, 진지를 못 잡숫는다고 허길래요. 이애호박 너물 조께 해 잡수시먼 입맛이 나실랑가 허고요...”
자기도 모르게, 민망한 김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평순네는 두루치 자락을 치켜 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고맙구나...내 그렇잖어도 애호박죽이나 좀 먹었으면 했더니라...네가 내 맘을 잘 보았다...어디 이리 가지고 와 보아...”
청암부인은 쉬엄쉬엄 말하였다. 그리고 그네를 힘없이 손짓으로 불렀다. 평순네는 자꾸만 눈앞에, 그때의 그 허연 허깨비처럼 앉아 있던 마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주 맛있겠구나...올 농사난...가물어서...고생이 많었지?”
평순네가 두 손으로 올린 애호박 한 덩이를 받아 어루만지던 청암부인의 누렇게 마른손이 떠오른다. 그때 부인은 애써 미소를 지었었다. (아이고...어쩌끄나...) 평순네는 내리찍힌 대청마루의 쇠스랑 자국에 몸을 떤다. 그때 기표를 데릴러 갔던 붙들이가 털레털레 그냥 올라와서
“전주 가싯다는디요.”
하고 말한 다음에도, 쇠여울네는 죽어 나갈 만큼 몰매를 맞았다. 그네는, 자기 가슴을 쥐어 뜯으면 쏟아지는 몰매를 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사정없이, 내리치는 대로 다 맞았다. 해가 설핏할 무렵에야 그네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찢어진 옷자락에 살점을 너풀거리며 맨발로 좇겨났다. 쇠여울네는 몹시 서럽게 울었다. 이미 다 울어 버려서 목청만 남았을 뿐, 눈물도 흐르지 않는데, 그네는 하염없이 울었다. 죽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는 절룩절룩 고샅길을 지나갔다. 사람들은 웅긋중긋내다보다가 고샅으로 몰려나왔다. 그네는, 자갈이 비죽비죽한 고샅에 핏자국을 찍으며 맨발로 허청허청 걷는 중에, 연신 코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닦아냈다. 해가 저물어 밤이 되어서도 동네는 조용해지지 않았다. 조용하기는커녕, 더욱더 술렁거렸다. 어흐으으으. 어흐으응. 쇠여울네가 목을 놓아 우는 소리가 온 마을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흡사 여우가 우는 소리도 같았다. 아니면 늑대가. 아마 날이 새기 전에 쇠여울네는 어디론가 떠나가야 할 것이었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울음 소리를 채간다. 곡성은 칼로 자른 듯 끊겼다가 다시 바닥에서 솟구친다. 춘복이는 농막 귀퉁이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그 소리를 새긴다. 무섭게 내리치던 몽둥이와 장작이 새파랗게 불꽃을 일으켰지. 개 한 마리 잡는 것보다 더 처참하게 튀어 오르던 피. 이 피를 갚으리라. 그날, 쇠여울에 피 젖은 뒤꼭지, 헝클어진 머릿단이 생생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되살아나, 춘복이를 격렬하게 뒤흔든다. 그는 소름으로 온몸을 훑는 찬바람 속에서 움쩍도 하지 않고 원뜸의 지붕들을 노려본다. 이미 어둠이 깊어 지척조차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눈에는 불을 밝힌 것보다 더 훤히 보인다. 그 중에서도 조갑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은 오류골댁의 다소곳한 초가지붕은 더 잘 보인다. 내, 이 피를 갚으리라. 온몸의 힘줄이 땡기면서 주먹으로 모인다. 저절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주먹이 힘줄을 땡기고 있는 것이다. 주먹은 돌멩이보다 더 단단해진다.
(쇠여울네. 나를 야속타 말으시오. 내 이날 이때끄장 안 죽고 살어 남은 죄로, 그 집이서 밥 얻어먹은 죄로 쇠여울네 등짝을 내리치고 말었지마는, 인자 그 몽둥이, 그 장작으로, 때리라고 헌 놈 쥑여 부릴 거잉게. 오늘 니얄 안되먼 모레가 있고 곱페가 있소. 내 것 뺏기고 몰매맞고, 벵신 되고 동낭치로 쬐껴나는 심정은 죽어서도 섹히지 말고, 살어서도 잊어 부리지 마시오. 시방은 혼자 당헌 것 같고, 혼자 쥐어뜯음서 울지마는, 두고 보시오. 두고 보먼 알 거이요. 밤이 짚어지먼 새복이 오고 마는 거잉게. 쇠여울네. 더 울으시오. 더 울으시오. 울다가 숨이 끊어져서 죽어도 좋응게 울으시오. 나도 따러 울고, 공배아재도 따러울고, 그 옆집이도 울고, 이 거멍굴이 떠내리가게 우읍시다. 언제 한 번도 한 소리로 소리 내 보도 못헌 놈의 벌거지 같은 인생살이, 인제라도 한 소리로 뫼야서 창사가 터지게 울읍시다. 호령 소리가 아무리 크다고 헌들, 우리들이 죽기로 한을 허고 어는 소리보다 클랍디여.)
그때, 춘복이는 쇠여울네의 통곡이 이기채의 고함을 잡아먹을 만큼 커지기를 간절하게바라며 어금니를 맞문다. 그리고 지금. 이기채를 잡아먹은 통곡 소리가 성난 물결처럼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올라온 마을을 뒤덮고, 강실이네 오류골댁 초가집을 한입에 삼켜 버리는 환각에 등을 부르르 떤다. (쇠여울네. 인자 두고 보시오. 죽지 말고 살어서 두 눈 딱 뜨고, 꼭보시오. 강실이가, 이놈 춘복이란 놈 자식 새끼를 낳고 마는 것을 뵈야디릴 거잉게. 그날끄장은 죽지 마시오. 그거이 머 몇 천 년이나 남은것도 아닝게, 쇠여울네, 어디로 가서 살든지 소식 끊지말고 그날을 지달리고 있으시오. 쇠여울네가 울고 내가 울고, 거멍굴에 엎어진 인생들이 울고 울던 설움을 내가 모질게 갚어 줄 거잉게, 오늘 내가 내리친 장작에 어깨 찢어진 거, 너무 야속타 말으시오, 쇠여울네, 미안허요.)
춘복이의 번쩍이는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새파랗게 빛났다. 얼핏 보면 승냥이 한 마리가 거기 서 있는가 싶기도 했다.
2 떠나는 사람들
“만약에 이 지상에 오직 군소 국가들만 존재한다고 하면, 아마 지금보다 인류는 훨씬 더 평화롭고 자유스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허나, 한 뱃속의 새끼도 아롱이 다롱이라고 하는데, 생성 존재의 근원이 다르고 역사와 문화가 다른 국가, 엄청난 이권 조직인 국가가 너나없이 어슷비슷 올망졸망 그만그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각기 그 나라의 힘대로 세력이 달라져서 종국에는 힘센 놈.약한 놈이 생겨나기 마련인즉. 강대 국가의 존재란 불가피하지. 그런데 강대 국가가 있으면 반드시 상대적으로 약소 국가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고 강대 국가와 약소 국가의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평화.평등이 아닌 약육강식이 이루어진단 말이야. 약육강식. 천지만물 삼라만상의 본능적 현상이 바로 약육강식이 아니냐. 말없는 우주의 원칙이 그러할진대 국가와 국가, 가문과 가문,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 관계가 명확하게 집행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것이 없다. 물론 조선의 처지도 강에 먹힌 약의 대표적인 것이지만...군소 국가는 나라가 작어서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말할 수 없이 비참해지는 거야. 반대로 강대 제국은 나라가 커서가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번성하는 것이고. 결국 그 나라의 선.악이 아니라 정치적인 힘이 국가 번영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는셈이지. 비단 국가에만 그런 것이 작용되는 게 아니야. 무릇 만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오직 힘이 필요해. 힘. 물리적인 힘만이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존속의 첫째 조건이 되는 거야.”
강태는 더부룩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앞에 놓인 청주잔을 든다. 손톱 주변에 허연 꺼슬이 일어나 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이마를 덮으며 흘러내린 머리칼에 가리어진 눈썹이 새까맣다.그래서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하관이 좀 빠른 듯한 모습은 아버지 기표를 그대로 닮았다. 그러나 차갑게 다물고 있을 때의 입술 선은 어찌 보면 기표보다 더 이지적이고 냉정한 성격으로 느껴지게 한다. 강모의 얼굴도 초훼하다. 지난 여름 오유끼의 사건으로 집안이 뒤집히고 난 뒤, 이기채는 강모를작은사랑에 가두어 두다시피 하였다. 심지어는 안채의 어머니 율촌댁에게 가는 것조차도 급하였으며, 그러지 않아도 소원한 효원의 건넌방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몇 십 년 만이라는 가뭄은 유난하여 누런 먼지가 황토빛으로 지붕을 뒤덮었는데, 큰사랑에서는 놋재떨이 두드리는 소리가 잠시도 멎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부자가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또는 특별히 꾸중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강모를 방안에 가두어 둔 채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하게 하였다.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스물한 살씩이나 먹은 장정, 애기 애비가 된 자식을어린애들처럼 방안에다 가두고 그러시요?”
율천댁은 보다 못하여 이기채의 사랑에까지 나와 탄원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기채는 이기채대로 바늘끝같이 과민하여 신경이 벌겋게 청혈되어 있어서, 옆에 누가서기도 두려워했다. 그가 지나가기만 하여도 살을 베는 바람이 일어설 정도였다. 이기채는 강모를 증오하였다. 강모는 아버지 옆방에 갇히어 녹아 내리는 더위와 허적함, 그리고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 때문에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강모의 얼굴빛은 누렇다 못하여 검은색을 띠었다.
“너도 마셔라.”
“예.”
강모는 술잔을 든다. 깍정이만한 도자 술잔의 푸르스름한 광택이 얼굴의 검은 빛을 더욱 검게 보이게 한다. 그들은 오랜만에 이렇게 서로 마주앉아 있는 것이다.
“결국 군소 국가의 매 앞에 병아리같이 그 존망이 위태로워, 우여곡절을 겪고 싸우고버티어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강대 제국에 완력으로 연합되어 버리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불쌍한 것은 그러한 군소 국가에 태어난 국민이지. 자체를 방어할 만한 힘도 없고,궁핍을 면하게 해줄 방도가 없는 국가에 태어난 국민으로서는, 남의 나라 종노릇을 하는 것이야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의 운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한 개인의 운명도 마찬가지인 거야."
강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말을 하고 있을 때보다도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 훨씬 차갑다. 사기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운 얼굴은 강태가 강모보다 팔구 세는 연상으로 보였으나, 쇠잔한 표정에 시달리느라고 탈진한 듯 보이는 강모는 얼른 보면 강태보다 더 겉늙어 보인다. 실제로 두 사람은 두 살 차이밖에 안되었다. 조금만 의기가 통한다면 호형호제 할것도 없이 막 터 놓고 지낼 수 있는 처지인 것이다. 거기다가 종항이 아닌가. 그런데도 강모는 강태에게 깍듯이 형님에 대한 예우를 다하였다. 그만큼 강태를 어려워한 점도 있었고, 또 성격상의 차이로 그다지 친숙하게 지내지 않는 탓도 있었다.
“강자와 약자. 과연 무엇이 강자이고 무엇이 약자인가? 간단해. 힘을 가진 자는 강하고, 힘이 없는 자는 약하다. 힘? 그렇다면 힘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인품도, 체력도,학문도, 가문도, 힘이 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구체적으로 사회적인 힘을 발휘할수 있는 것은 결국 자본이야. 그것은 분명하고 강력해. 자본이 있는 자는 강하다.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자는 약하지. 있는 자와 없는 자, 이 적대적인 위치의 두 계급은 필연적으로 반목하고 갈등한다. 이 갈등은, 있으면서 좀더 착취하려는 자의 폭력과, 없으면서 어떻게든 생존해 남으려는 자의 몸부림이 서로 부딪치는 데서 온단 말이야. 그것은 한 마디로 압제자와 피압제자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 그런 관계는 다른 형태로도 나타나, 자유인과 노예, 귀족과 평민, 봉건 영주와 농노, 장인과 직인, 이들은 역사 이래 서로 적대 관계에 있어서. 헌데 이들은 적대 속에서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외형적으로 꾸준히 그 관계를 유지해 왔거든. 그만큼 투쟁과 갈등의 역사도 긴 셈이지. 이들은 때로는 은밀히 암투로, 때로는 치열하게 끊임없이 싸워 왔으니까. 이 싸움이야말로 한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한 계급이 무참히 짓밟히거나 또는 두 계급 모두가 비참하게 멸망하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다.“
강태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의 다문 입귀가 칼끝 같다. 강모는 강태의 모습에 이상하게 기가 질리는 기분이 되었다.
“너는 궁도령으로, 하층민 계급이 아니니까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쪽 이야기가 한낱 피상적인 이야깃거리 정도로 들리겠지. 그렇지만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고 누리기 위한 조건들, 또는 기본적인 아무 권리도 가지지 못한 채 오직 제 몽뚱이 사지를 움직이는 것만이 유일한 재산인 노동자, 농민, 그 빈곤한 하층민 계급이, 사실은 인류의 대부분이야. 즉 약육당하는 계급이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집안만 보더라도 문중의 종가인 큰집 하나를 빼고 나면 나머지는 거의가 곤궁해. 다 떨어진 문서 쪽지에 양반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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