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함께라면 어느 때 어떤 상황이라도 그대의 눈을 뜨게 하는 데 소용된다. 자신을 방어하지 말라. 불안한 대로, 여린 대로, 있으라. 스승한테 완전히 맡기고, 믿으라.>
대단히 엄한 선사가 있어서 제자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 하였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종을 치고 있던 제자가 순간적으로 헛치고 말았는데, 막 절문 앞을 지나가는 어여쁜 처녀를 보고 정신이 아뜩하였던 것이다. 제자는 그 자리에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속안에서 잠자고 있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꿈꾸듯 처녀의 뒤를 쫓으려 하였다. 바로 그 순간,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스승이 지팡이로 제자의 머리통을 냅다 후려 갈겼다. 어찌나 셌는지 제자는 그 자리에서 꼬꾸라져 죽고 말았다.
선가에는 오랜 전통이 하나 있는데, 어떤 스승한테 제자로 들어 갈 때는 약조를 해야 한다. "이 목숨이 살고 죽음은 오직 스승님께 달려 있습니다" 제자는 이를 서약한다. 이런 전통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 엄한 선사를 비난하였다. 자신이 후려 갈겨 제자가 죽었는데도 스승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하였다. 누군가 그 죽은 제자에 대해 물으면 도리어 털털거리며 웃는 것이었다 스승은 뭐가 잘못되었노라 얘기 한 마디 한 일이 없었다. 스승에게 있어 제자의 죽음은 하나의 우연한 "일"이었다. 스승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왜? 속 안의 내용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제자는 뭔가를 얻었다. 그의 육신은 꼬꾸라졌지만 안으로 그는 눈을 번쩍 떴던 것이다. 욕망이 뿌리채 뽑히고, 꿈도 순식간에 걷혔으며, 모든 것이 육신과 함께 박살난 것이다. 그는 안으로 눈 뜨는 그 순간에 죽은 것이다. 만약에 눈 뜨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선사는 죽음의 찰나를 너무나 멋지게 이용한 셈이다. 그랬으므로 제자는 눈 뜰 수 있었다. 이 선사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예술가요 스승이 아니냐.
이 얘기를 읽고 그대는 분명 스승이 제자를 죽인 사건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 얘기의 핵심이 아니다. 사실 제자는 어떻게든 죽게 되어 있었다. 스스은 그걸 알고 있었다. 얘기 속에는 이런 암시가 들어 있지 않은데, 그렇지 않았다면 스승이 마침 그때 제자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제자가 종을 치는 일은 아주 일상적이고 날마다 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제자의 죽음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건 내적 신비여서, 만약에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걸 막을 도리는 없었을 것이다. 스승은 그대의 속 안을 꿰뚫어 본다. 스승은 그대의 죽음의 때를 안다. 그러나 그대가 완전히 맡겨야만이 죽음은 아주 뜻깊게 이용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