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인간이 살고 있는 나라라면 제일 먼저 공연 정지 처분을 내려야 할 악마의 조작극이다.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서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일로서 무고한 양민을 폐인으로 만들기 쉬운 인간이하의 월권행위이다. 비록 손상된 육신은 회복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상처받은 영혼은 치유되지 않는다. 고문을 묵과하는 처사는 살인을 묵과하는 처사보다 몇 배나 더 비열하고 잔인하다.
비상구
이 세상의 모든 통로 또는 위급할 때의 모든 하나님.
술
마약이다 절제하면 쾌락을 가져다 주지만 과용하면 불행을 초래한다. 마실 때는 찬양하게 만들고 끊을 때는 저주하게 만든다. 유사 이래로 물에 빠져 죽은 사라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다는 설도 있다. 뼈저린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일시적인 쾌락을 담보로 영구적인 불행을 대부해 주는 악마의 독액이다. 그러나 술은 때로 사랑을 불붙게 만드는 묘약이 되기도 하며 메마른 정서를 적셔주는 감로주가 되기도 한다. 이태백과 같은 시선은 술 속에서 달빛과 시를 건져내기도 했으며 오마르하이얌과 같은 주성은 술 속에서 루비이야트라는 언어의 보석을 건져내기도 했다.
음주운전
자동차가 운전수 대신 술에 취한 승객을 탑승시킨 채 교통사고를 일으킬 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다니는 행위. 또는 교통수단을 이용한 취중 살인 예비음모.
불행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 나무 만한 크기의 그늘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그 그늘까지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
신이 매사를 완벽하게 선처해 놓았는데도 이에 불만을 품은 인간들이 처우개선을 구두로 상소하는 행위.
주정뱅이
술이 인간을 마셔버리고 동물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하려고 발악적으로 애쓰는 사람
엄숙
권위주의가 형식주의와 결합해서 만들어낸 비만형의 부랑아.
타인에 대한 존엄성보다는 자신에 대한 존엄성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용상표. 자신을 사실이상의 인격체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착용하는 무형의 가면. 행사장이나 회의실 같은 장소에 의례적으로 동참하는 고위층의 들러리. 무언으로 강요되는 도덕의 중량.
눈보라
겨울이 깊어지면 바람의 함성을 타고 수 천만 마리의 백색 나비 떼가 어지럽게 난무하며 마을에 출몰한다. 눈보라다. 때로는 길이 막히고 통신이 두절된다. 시간도 깊어지고 그리움도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