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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식장이 헷갈려」(시인 이대의) 2009년 8월 3일 |
무슨 일이 있어도 개업식엔 가봐야 한다.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 다른 친구들까지 동원해 축하해 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자신의 일같이 도와 준 친구의 개업식이니 말이다. 몇 년간의 준비 끝에 마침내 개업한다고 하니 기쁘기도 하고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내 일정이 문제다. 개업식이 토요일 오후 4시이긴 하지만 하필 중요한 일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문학 행사는 내가 빠져도 크게 지장이 없기 때문에 부담이 덜한데, 문제는 일요일 산악회 행사가 문제다. 모처럼 만에 준비물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산악회 모임에는 참석해야 한다. 개업식 장소가 안중이기에 거기까지 다녀오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기왕 마음먹은 거 속 시원하게 다녀오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에 산악회 준비를 대강 마치고, 시간이 되어 황급히 평택 가는 전철을 타고 갔다. 평택에서 다시 안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간 개업식. 예측한 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해 서둘러 갔다. 전화로 일러준 대로 초등학교 정문 앞이라 했으니 찾기는 쉬웠다. 큰 건물 앞에 개업을 알리는 풍선 아치가 있고 앰프에서는 개업을 알리는 흥겨운 음악이 크게 흘러 나왔다.
개업식장엔 친구들이 많이 있을 거로 알고 설레면서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들어서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개업식 참석자로 알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는 친구의 이름을 대며 어딨냐고 물었다. 그런데 친구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가서 물어 보고 머뭇거리며 오더니 잠시 일보러 나갔다는 거였다. 나는 잠시 실내를 둘러보았다. 헬스 기구들이 꽤 많이 놓여 있었다. 건강 기구와 관련된 사업이라더니 웬 헬스장 같은 분위기인가 하고 잠시 의아해했다. 실내 중앙에는 돼지머리와 고사떡이 놓여 있었다. 벌써 몇몇 사람이 다녀갔는지 돼지 입에 봉투가 물려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친구에게 핸드폰 전화를 걸려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개업식으로 바쁠 텐데 사무실을 비워 두고 나갔을 정도면 무척 바쁜 일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그냥 개업 축원을 위해 돼지 입에 축의금을 꽂고 친구가 부탁한 책을 두고 절을 했다. 일보는 사람들은 준비된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화장실 가는 척하고 밖으로 나왔다.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권해야 하는데 서울까지 가는 것이 부담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죽치고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내일 산악회 준비도 있고 해서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개업식에 참석하고 와서 아무래도 친구를 보지 못하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날 산행을 하며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내가 다녀간 걸 까마득히 모르는 모양이었다. 더구나 친구는 개업식장을 비우지 않고 계속 있었다고 했다.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갔었던 곳을 이야기했더니 거기가 아니라는 거였다. 거기는 헬스장 개업이고 친구는 옆 건물 초등학교 바로 앞이라 했다. 그걸 모르고 엄한 곳에 가서 돼지머리에 절하고 축의금 내고 책까지 주고 왔으니! 그러나 그걸 다시 가서 찾기도 뭐하고 어쩔 수 없잖은가? 무엇보다도 바쁜 시간을 내어 찾아간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으니 차라리 안 가느니만 못했다.
산행 내내 엉뚱한 개업식에 참석하고 온 자신을 책망했다. 아무리 바빠도 확인해 보고 행동으로 옮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축의금과 책이 아까워 눈에 아른거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리려 했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개업식 인사를 못한 꼴이 되어 버렸으니 그게 오히려 미안했다.
다음날, 월요일 결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 개업식 장소 하나 딱딱 못 찾아 오냐고 운을 뗐다. 그러고는 네 이야기 들어 보니 헷갈릴 만도 하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제 거기 가서 네 축의금하고 책 찾았어. 거기 가보니 방명록에 네 사인도 있더라. 멋있던데?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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