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맨, 승리만은 제발!」(소설가 함정임) 2009년 6월 16일_서른다섯번째 |
자고로 축구 경기란 승리를 목적으로 공을 가지고 벌이는 아름다운 족투(足鬪). 동네축구든 프리미어리그든 승리를 향한 욕망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해괴하게도 도무지 승리를 저어하는 세계 유일의 축구팀이 있으니, 이름하여 ‘헤이맨’.
골방 샌님들인 문예창작학과 남학생들은 바깥 운동에는 젬병이다. 그나마 문인들이 즐겨 하는 운동은 배드민턴과 탁구, 그 두 가지를 접목한 배탁 정도다. 길이 120m 폭 90m의 드넓은 운동장을 둘레 70cm의 조그마한 공을 쫓아 종횡무진 달려야 하는 축구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헤이맨’은 이런 문창과 특유의 건방과 농담이 깃든 명명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 시작 전 헤이맨은 둥그렇게 어깨동무를 하고 외친다, "승리는 사양, 절대 문창과다운 축구를 하자, 헤이맨 화이팅!" 이러한 외침에 부응하여, 헤이맨의 축구 전적은 5년 동안 전패. 그래도 헤이맨은 전혀 슬퍼하거나 기죽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강팀을 꿈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전백패의 찬란한 전통을 지켜 오던 헤이맨에게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졌다.
햇빛 찬란하고 바람 시원한 오월의 어느 오후. 낙동강과 을숙도가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는 부산 D대학 승학캠퍼스. 시인과 소설가를 꿈꾸는 문청들로 구성된 문창과 헤이맨과 미래의 교육자를 꿈꾸는 교육학과 붕가맨(가칭)이 인문대 첫 번째 경기를 가졌다. 치어리더를 방불케 하는 열띤 응원전을 벌이는 붕가맨 진영에 비해 헤이맨 진영에는 가뭄에 콩나듯 여학생 몇몇이 서성거릴 뿐이었다. 헤이맨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땀 흘리는 선수들을 바라보고, 햇살의 감촉을 느끼며, 잔디의 숨소리를 들었다. 달려오는 공이 마치 헤어진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당황스러워했고, 공을 소유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에 따라 골키퍼는 골프공처럼 흘러 들어오는 축구공을 그대로 바라보아야 했다. 무소유! 경기는 헤이맨의 축구철학을 반증하는 시험대였다. 경기는 0:1, 빛나는 패전의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 종료 직전 헤이맨의 개념 없는 신입생이 복학생에게 얼떨결에 멋진 패스를 해버렸다. 순간, 신입생이건 복학생이건, 문학에 대해, 삶에 대해 알 게 뭐람, 골을 넣어 버렸다. 무승부! 헤이맨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뛴 결과가 무승부라니! 승부차기로 들어갔다. 첫 번째 키커는 부족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학과에서 꾸어 온 남자 오조교. 백전백패로 얼룩진 헤이맨 역사의 산 증인인 오조교는 후배들에게 '문창과 축구란 바로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공을 하늘 높이 날려 버렸다. 헤이맨은 환호했고, 붕가맨은 더 환호했다. 헤이맨은 지기 위해 또 한 발 내딛었다. 그런데, 골키퍼로 나선 제주 출신 신입생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축구공은 소유할 때, 골키퍼로서 존재 이유가 있다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그는 갈팡질팡하면서도 상대방의 공을 다 막아 버림으로써 아무도 원치 않는 기적을 이뤄냈다. 붕가맨을 열렬하게 응원하던 교육학과 여학생들의 휘둥그레진 눈에서 눈물이 콸콸 쏟아졌고, 헤이맨은 어이없게도 역사적인 첫 승리를 기록했다. 그냥 졌으면 끝날 경기를 다음 날 또 뛰어야 했다. 헤이맨은 모두 골키퍼에게 달려갔다. 주어진 운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승리에 집착하다니! 헤이맨은 승리의 헹가래 대신 골키퍼의 등짝을 흠씬 두들겨 주었다. 그러나 눈물 속에 번지는 웃음은 막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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