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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무더기 모여 저희끼리 서로 의지하고 끌어안은 채 추위를 견디는 애기 들국화가 곱다. 그런 애기 들국화나 고갯길에 피어 있는 보랏빛 작은 구절초 그들이 보여주는 애틋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싸아해져 온다.
천상병 시인은
"산등성이 넘는 길 / 애기 들국화 // 가을은 다시 올까 / 다시 올테지 /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 지금처럼 / 순하게 겹친 / 이 순간이"
이렇게 애기 들국화를 보고 노래했다. 가을이야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면 다시 오는 거지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애기 들국화 잎들처럼 그렇게 순하게 겹쳐져 있던 그런 가을은 정말 다시 오는 것일까를 시인은 묻고 있는 것이다. 매년 들국화를 대하면서 사실 한 번도 들국화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남다르게 애틋한 심정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제는 건널목 옆 빈터에 차를 세우고 전봇대 너머 들판 끝으로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았다. 가끔씩 느리게 지나가는 화물차 사이사이로 하늘은 주홍색 장작불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타오르다 구름이 먼저 조금씩 어두워지고 나중에는 불에 타던 것들이 사위는 불꽃과 함께 검게 변하며 재가 되는 것처럼 하늘도 그렇게 거대하게 타다가 재가 되는 풍경을 지켜보았다. 그 속에서 사리처럼 반짝이며 나타나는 별을 보며 죽어버린 하늘에서 다시 솟아나는 목숨의 의미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느낌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차가운 길가에 옹송거리며 저희끼리 모여 있는 나뭇잎들, 늦가을 저녁 서늘한 밤공기의 느낌, 저무는 저녁 햇살을 받고 서 있는 억새풀의 굽은 어깨, 멀리서 보이는 동네입구 느티나무의 넉넉한 자태, 눈에 갇힌 산골마을의 외딴 집에서 솟아오르는 굴뚝 연기,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좋아하던 사람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손안에 쏙 들어오는 살의 감촉, 세상에는 글로 다 표현이 되지 않는 느낌들이 많다. 글 쓰는 사람이지만 정말 그것만은 아직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씨크릿 가든'의 어느 부분 또는 그리그의 '솔베이지 노래' 첫 두 소절을 듣다가 여기서 그만 생을 멈추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앞으로 더 잘 살 것 같지 않아서, 남은 날들 그저 때 묻고 부끄럽고 욕되게 살다가 갈 것만 같아서 차라리 이쯤에서 제 살을 깎아 먹고 사는 삶을 멈추어 버리는 게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그러나 더 선명하게 그 느낌 그 이유를 글로 표현하려고 해도 잘 표현되지 않는다. 가슴을 후려치던 피아노 소리의 느낌, 그 낱낱의 소리들을 따라가다 초겨울의 낙엽처럼 길가에 마구 뒹굴고 말던 내 마음이 글로는 하나도 표현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 어쩌면 좋은가.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 되어 있는데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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