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언어예절
잘못을 너그러이 봐 줄 것을 빌었을 때 기대하는 반응이 용서다. 받아들이고 씻어주는 일이다. 이는 마음 문제여서 고갱이 말은 극히 소박하다. 벌을 받아 마땅한 잘못도 연유를 먼저 밝혀 무겁게 사과하면 책임을 덜거나 마음이 풀릴 수 있다. 말로써 천냥 빚을 갚는다는 얘기는 과장이되 그럴싸하다.
사과가 그렇듯 용서는 힘센 쪽의 덕목만은 아니다. 이해하며 너그러이 삭이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가 곧 윗길이 된다. 뉘우치도록 짚고 헤아리지 않는 용서는 포기와 같은데, 헤아림과 챙기기가 보통 수고로운 일은 아니다.
그 갈래로 묵은 용서, 제때 용서, 말뿐인 관용, 감싸고 두둔하기, 종교적 용서 …들에다 개인·집단·종족·나라 등 주체도 갖가지다. 개인은 수양의 폭과 깊이, 집단은 역사·문화·품성에서 정도차가 난다.
용서는 사과를 전제로 한다. 예컨대 군위안부로 끌려갔다 참담한 삶을 사는 팔구십 노인들에게 묵은 잘못을 빌지 못하는 일본 정부는, 그쪽의 낱낱 사람 됨됨이와 상관없이 애꿎은 후손까지 용서받지 못할 족속으로 남긴다. 사과가 먼저다.
사람 사이에서 어른 곧 어버이 쪽, 신과 인간 사이에서는 신의 덕목이자 영역에 든다. 허투루 용서하면 후레자식을 만들고, 관대함이 지나치면 나라 기강이 흔들린다.
“죽여 주시옵소서!,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는 낡은 말이지만 몹시 다급할 때 쓴다. 법에도 관용과 감형, 사면·복권 등 용서하는 절차가 있다. 정치를 잘못하면 백성들이 해를 보지만 마지막 심판과 용서도 그들의 몫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