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스크, 고딕 양식 등은 유럽의 경관을 대표하는 양식들이다. 이들은 금박, 은박 등의 화려한 재료를 소재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촛불과 빛을 이용한 효과로 미술사에서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한다. 이러한 중세 미술의 기반이 되는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감각론으로서의 미학의 간략한 역사를 통해 살펴보자.
어떤 대상의 속성을 알려면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감각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감각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게서 본격적으로 얘기가 된다. 그는 감각을 ‘영혼의 기관’이라 불렀다. 영혼을 위한 수단이란 것이다. 그리고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의 네 가지 요소가 감각을 구성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는 시각을 매우 중요한 특권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촉각은 다른 기관과 다르게 그것에 해당하는 기관이 없다는 이유로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네 가지 요소에 촉각을 더해서 다섯 개의 감각론을 주장하고 이들을 위계적으로 분류했다. 또 기존에 능동적인 지각으로 생각되던 감각을 수용기관으로 규정하고, 감각을 느끼는 것은 직접 접촉을 통하는 것이 아니고, 매질을 통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론은 중세로 넘어가면서 변화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보면 중세 감각론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다섯 가지 감각을 은유와 비유, 상징의 수단을 갖고 변주하며 신을 찬양한다. 영원 불변하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은 신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은총, 신의 섭리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에 와서 변화된 중세 감각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세 감각론은 이중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현재는 한편 아름다운 곳이지만, 단지 스쳐지나가는 곳일 뿐이다. 때문에 신이 창조한 현실 이면에 있는 신의 섭리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지각된 세상에 대해서 경계하는 한편, 다섯 가지 감각을 육체를 떠난 정신화 된 형태로 신에게 바치는, 초월적인 세계에 주목하게 됐다.
또한 초월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재료에 있어서 매우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재료 취향을 보여주었다. 즉, 초월적 세계라는 형이상학을 현실에서 표현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진 미술가들이 결국 물질이라는 재료를 갖고 작업을 해야 했고, 여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금박, 은박 등 광채가 나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가장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면서, 초월적인 해석이 붙는다는 것. 이것이 중세 감각론을 보는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배경에서 나타난 중세 예술은 결국 색채가 화려한 예술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이나 회화가 형(形)을 중요시 했던데 반해, 굉장히 감각적인 색 표현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신학적 의미, 종교적 의미, 초월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예컨대 어두운 로마네스크에서 촛불의 빛이 뻗어 나오는 효과라던가, 스테인드 글라스를 설치하여 자연 채광을 활용한 빛의 향연은 대단히 감각적인 효과를 내면서 어떤 초월적 세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