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 있는 김영랑 시인 생가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자주색 모란꽃도 다 다 졌겠지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말았겠지요. 김영랑시인의 그 가없는 기다림은 또 시작되었을까요?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까요? 삼백 예순 닷새 중에 꽃 피어 있는 날은 채 닷새 남짓한 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왜 김영랑시인은 나머지 날들은 늘 섭섭해 하면서 살았을까요?
김영랑시인에게 모란은 그냥 모란이 아니었을 겁니다. 남도의 봄은 삼월이면 오기 시작하고 사월이면 온갖 꽃이 다투어 피는데 오월이 가까워져도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나의 봄"을 기다린다고 말한 데는 다른 뜻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기다리는 나만의 봄, 모란꽃으로 빗대어 상징적으로 말한 그런 특별한 봄, 그것 자체가 "뻗쳐오르던 내 보람"인 봄, 그런 봄이 나의 봄입니다. 그런 봄이 잠깐 내게 왔다가 가고 나머지 날들은 슬픔 속에서 보내지만 그 슬픔이 언젠가는 "찬란한 슬픔"으로 완성될 것임을 믿으며 어두운 역사의 시간을 견디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찬란한 슬픔"이란 말은 모순된 말입니다. 슬픔이 어떻게 찬란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런 시적역설 속에 역설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슬픈 날들을 견디는 것도 언젠가는 이 슬픔의 날들 끝에 찬란한 시간이 오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의 슬픔도 찬란한 슬픔이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