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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르다, 들리다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들려.” “그래, 여섯 시쯤 들릴게.” 이 대화에서 ‘들려’와 ‘들릴게’는 잘못 쓰인 말이다. ‘들러’와 ‘들를게’로 적어야 한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어가 머무르다’는 뜻을 지닌 말은 ‘들르다’인데 ‘들리다’로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많다. 기본형이 ‘들르다’이므로 ‘들러서, 들르니’ 등으로 활용한다. ‘그는 서점에 자주 들르는 편이다’ ‘집에 오다가 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 왔다’처럼 쓰면 된다.
그런데도 이 말을 ‘들려, 들리니’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기본형을 ‘들리다’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형을 ‘들르다’로 제대로 알고 있다면 잘못 쓸 이유가 없다. ‘소리를 지르지 마시오’, ‘점심을 걸렀더니 힘을 못 쓰겠다’ 같은 말에서 ‘지르다’ ‘거르다’ 등을 잘 활용해서 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들르다’와 마찬가지로 ‘-르다’로 끝나는 ‘지르다’와 ‘거르다’를 활용할 때 ‘(소리를) 질렀다’나 ‘(점심을) 걸렀다’ 대신 ‘질렸다’나 ‘걸렸다’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본형이 ‘지르다, 거르다’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들르다, 들리다’처럼 기본형을 곧잘 혼동하는 말 중에 ‘구르다’가 있다. 매우 안타까워하거나 다급해하는 상황을 나타낼 때 쓰는 표현인 ‘발을 구르다’를 ‘발을 굴리다’로 잘못 쓰는 것이다. 지난달 제주도 비행기 결항 사태를 보도한 기사 중에 ‘회항하지 않았을까 우려된다며 발을 동동 굴렸다’는 표현이 있었다. 기본형이 발을 ‘굴리다’가 아니라 ‘구르다’이므로 ‘발을 동동 굴렀다’로 써야 맞다. ‘굴리다’는 바퀴처럼 둥근 물건을 굴러가게 하다는 뜻이므로 ‘발을 굴리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발을 들었다가 힘주어 내려놓는 동작을 나타내는 ‘구르다’를 써서 ‘발을 굴러, 발을 구르니’ 등으로 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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