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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와 ‘간지’
최근 베테랑 형사와 안하무인이며 후안무치인 재벌 3세의 대결을 그린 액션 영화를 봤다. 그런데 영화 한 장면에서 형사가 ‘가오’란 말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써서 많은 관객을 웃겼다. ‘가오’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여와 쓰이기 시작한 말로, 일본어 ‘가오(かおㆍ顔)’에서 유래한다. 광복 이후 이 말을 ‘얼굴’ 또는 ‘체면’으로 순화해 쓰도록 했고, 그 결과 공적인 언어 상황에서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사적인 언어 상황에서는 여전히 ‘가오’가 널리 쓰이고 있다. 주로 ‘가오(가) 서다’, ‘가오(를) 잡다’ 등의 형식으로 쓰인다. 이때의 ‘가오’는 ‘얼굴’ 또는 ‘체면’과 그 의미가 약간 다르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 말을 ‘허세’, ‘개폼’ 등의 의미에 더 가까운 비속어로 인식한다.
‘가오’처럼 사적인 언어 상황에서 널리 쓰이는 일본어로 ‘간지’를 하나 더 들 수 있다. ‘간지(かんじㆍ感じ)’ 또한 일제 강점기 때부터 쓰이기 시작한 일본어로, 광복 이후 ‘느낌’으로 순화해 쓰도록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방송이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간지 스타일’, ‘간지 아이템’ 등이나 ‘간지(가) 나다’의 형식으로 ‘간지’가 부활(?)하여 등으로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 ‘간지’가 ‘느낌’보다 더 그럴듯한 의미를 갖는 말로 인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때부터 쓰이기 시작한 일본어 잔재의 대부분은 현재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일본어는 사적인 언어 상황에서 우리말로 둔갑하여 여전히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널리 쓰이다 보니 우리말보다 더 친숙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광복절을 맞아 일상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일본어 잔재가 남아 있는 건 아닌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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