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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발
신호등 앞에서 한 노인이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종아리 근육을 강화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며 하지정맥류를 예방하는 만병통치의 까치발 운동. 속으로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이고 있겠지.
새들은 모두 뒤꿈치를 들고 다닌다. 까치를 자주 봐서 까치발이려나, 한다. 제비발이나 까마귀발이라 해도 문제없다. 네발짐승들도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 힘만으로 걷는다. 네발이니 땅에 닿는 면적이 좁아도 괜찮다. 강아지만 봐도 발꿈치뼈는 땅에 닿지 않는다. 두발짐승인 사람만 넓적한 발바닥 전체로 땅을 디뎌야 ‘서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 까치발을 하나? 시선을 초과하는 현장이 궁금해서겠지. 마음은 이미 장벽 너머로 넘어가 있건만, 육신은 날 수도 튀어오를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까치발은 ‘너머’를 보겠다는 의지의 육체적 표명. 육신의 한계 때문에 일렁이는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분투. 도구도 필요 없다. 오직 내 몸뚱이를 최대한 늘려서 기어코 보고야 말리라.
‘너머’에 대한 갈망은 까치발을 딛음과 동시에 턱을 앞으로 쑥 내밀게 한다. 동물계에서 이탈한 인간이지만, 이때만큼은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드는 동물에 가까워진다. 손으로 시야를 가리고, 턱을 앞으로 내밀어 보라(눈은 뜨고!). 가린 손 너머로 풍경이 훤히 보일 게다. 목이 원의 중심이 되어 턱을 내미는 만큼 눈이 원의 꼭짓점을 향해 ‘올라간다’. 와, 턱을 내밀면 눈이 올라간다는 우주적 발견!
내 눈높이, 내 키 너머에 다른 풍경이 있을지 모른다. 풍경만 그렇겠는가. 내 한계 너머에 다른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 텅 빈 마음으로 맞이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죽음 너머의 진실이 보고 싶다. 끽해야 까치발 정도의 간절함이지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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