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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 문득
부사(副詞)는 이름부터 딸린 식구 같다. 뒷말을 꾸며주니 부차적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더부살이 신세. 같은 뜻인 ‘어찌씨’는 이 품사가 맡은 의미를 흐릿하게 담고 있다. 글을 쓸 때도 문제아 취급을 당한다. 모든(!) 글쓰기 책엔 부사를 쓰지 말라거나 남발하지 말라고 한다. 좋은 문장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동사)로만 되어 있다는 것. 부사는 글쓴이의 감정이 구질구질하게 묻어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지 못하면서도 마치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단다. (그러고 보니 이 칼럼의 분량을 맞출 때 가장 먼저 제거하는 것도 부사군.)
그래도 나는 부사가 좋다. 개중에 ‘문득’을 좋아한다. 비슷한 말로 ‘퍼뜩’이 있지만, 이 말은 ‘갑자기’보다는 ‘빨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퍼뜩 오그래이’). ‘문득’은 기억이 마음속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한다. 우리는 기억하는 걸 다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너무 깊이 있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수면 위로 불쑥 튀어 오른다. 그래서 ‘문득’은 ‘떠오른다’와 자주 쓰인다.
망각했던 걸 복원하는 것만으로도, ‘문득’은 성찰적인 단어다. 예측 가능한 일상과 달리, 우연히 갑자기 떠오른 것은 정신없이 사는 삶을 잠깐이나마 멈추게 한다. 기억나지 않게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떠오르면 자신이 겪어온 우여곡절이 생각난다. 작정하고 생각한 게 아니라, 이유도 모르게 솟아나는 게 있다니. 나에게 그런 일이, 그런 사람이 있었지. 돌이킬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우리를 두껍게 만들었다. 기대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 인생, 허덕거리면서도 잘 살아내고 있다.
당신은 이 가을에 어떤 부사가 떠오르는가.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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