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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4. 선한 것이 경쟁력이다 - 도덕 경영
도대체 신랑이 누굽니까
미래산업에는 소위 '빽'으로 들어온 사람이 없다. 사장이나 간부의 친인척 고용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다. 언젠가 아내는 내게 막내처남의 장래문제를 상의해왔다. 막내처남이 갓 대학을 마쳤는데 아직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새겨듣자면, 내가 좀 데리고 있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당연히 펄쩍 뛰었다. 그 다음날에는 큰처남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시 좀 생각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얘기였다. 민망했지만 나는 역시 거절했다. 처남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어려웠던 시절에 내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던 처남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직원들과 한 약속을 함부로 깨뜨릴 수는 없었다. 처남은 지금까지도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한다. 내 입장을 이해해줄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몇 달 전, 마지막 남은 막내녀석을 장가 보냈다. 마침 그날은 우리 회사 직원의 결혼식 날이기도 했다. 나야 당연히 아들 결혼식을 지켜야겠지만 직원들은 사실 난감한 눈치였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 불필요한 경조사에 불려 다니는 것을 나부터가 싫어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내가 장가가는 것도 아니니 제발 신경들 쓰지마. 와도 안 반가우니까."
이런 번다한 인사치레들을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웬만한 직원들이라면 모두 안다. 이번 막내의 결혼식에는 특히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랐다. 발 넓은 경영자랍시고 시끄럽게 위세 하는 꼴을 사돈집안에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쪽은 바깥사돈 혼자서 검소하게 꾸려온 집안이었다. 아무튼 아들의결혼식에 참석한 직원들은 얼마 안 되었다. 상사경조사에 빠져도 부하직원 경조사에는 안 빠지려는 회사 분위기 탓도 있었다. 그래도 창업 때부터 나를 도왔던 몇몇 간부들은 늦게나마 나타났다 끝까지 모른 척하기가 아무래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나를 잘 안다는 백정규 부사장은 직원 결혼식에 나를 대신해 참석하느라 안 왔지만, 정 과장과 신 상무가 피로연장으로 나를 찾아왔다. 아들내외는 이미 친구들과 어울려 자리를 뜨고 없었다.
"사장님, 축하드려요."
"어, 그래 고맙구먼."
"신랑이 참 잘났습니다."
뭔 소린가 싶어 바라보니, 멀끔하게 차려 입은 다른 녀석을 보고 그러는 것이다. 무안해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어이가 없었다. 신 상무야 경력으로 들어온 사람이지만 정 과장이라면 십 몇 년 세월을 내 곁에서 동고동락했던 창업멤버가 아닌가. 사실 우리 집에 들어와 가족들을 만나본 사람이라곤 백정규 부사장이 유일했다. 풍전기공에 합류하고 싶다고 처음 나를 찾아왔던 때였으니 가족들 얼굴을 제대로 봤을 리도 없다. 그들이 내 아들놈의 얼굴을 모르는 건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내 아내와 아이들이 회사를 찾아왔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연초에는 분당에 있는 미래연구센터 직원들이 우리 집에 인사를 오려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만류해도 부득불 오겠다고 우기길래 나는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청계산엘 올라갔다. 문을 잠그고 집을 비운 것이다. 성격이 별난 탓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장의 장성한 아들이 회사에 자주 들락거리면 직원들은 수군대게 마련이다. 우리의 기업풍토에서라면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다. 누구라도 열심히 일하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지원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다. 우리 직원 중 누군가는 틀림없이 나의 뒤를 이어 곧 대표이사가 될 것이고, 또 다른 이가 그의 뒤를 이을 것이다. 직원들을 공연히 헛갈리게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약간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내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능력과 개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이랍시고 무조건 회사를 물려주려는 기업가들이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불행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부모가 박탈하는 셈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유산은 독약이다'라고 말해주곤 한다. 사내자식이 오죽 못났으면 애비가 물려준 돈으로 살겠느냐는 얘기다. 스스로 겪어가며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많은 것이 준비된 상황에서 시작하는 인생은 지레 늙어버린 인생이다. 내 아이들이 일찍 늙어버리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내가 장가가는 것 아니니 제발 신경들 쓰지마. 와도 안 반가우니까" 우리 직원 중 누군가는 틀림없이 나의 뒤를 이어 곧 대표이사가 될 것이고, 또 다른 이가 그의 뒤를 이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유산은 독약이다'라고 말해주곤 한다. 사내자식이 오죽 못났으면 애비가 물려준 돈으로 살겠느냐는 얘기다.
이제 '본전생각' 좀 버립시다
요즘 증권가에서는 미래산업이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 증시 사상 최초로 주식 액면분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액면가 5,000원이던 주식이 액면분할을 통해서 100원으로 낮아졌다. 1/50이라는 과격이라는 파격적 분할비율이다. 이 액면 100원짜리 미래산업 주식 한 장의 가격은 1998년 3월 12일 현재 4,220원이다. 액면분할이란, 현재의 5,000원짜리 1장의 증권을 분할비율에 따라 여러 개의 소액증권으로 나누는 것이다. 해당기업의 자본금은 증감하지 않고 오로지 주식수를 늘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20만 원으로 미래산업 주식 1장을 사던 주식투자자가 같은 돈으로 50주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200, 300만 원을 쥔 소액투자자들도 이제는 미래산업의 주식을 여러 주 보유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의 액면분할은 구체적으로 국가경제에 도움이 도리 수도 있다. 주식유동성이 늘어나고 개인투자자의매수세가 유입되면 전체적인 시가 총액이 증가하기 때문에 그만큼 M&A 비용은 커진다 IMF를 맞아 국내기업들이 허약진 틈을 노려 최근에는 외국 펀드들의 적대적인 인수, 합병 노력이 거세졌다. 액면분할은 외국자본의 불순한 침략을 저지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미래산업이 액면분할을 시도한 것은 물론 주가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액면분할을 하면 주식거래량이 대폭 늘고 주가도 다시 올라가 기업가치를 더욱 높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 공개념의 확대에 있다. 주식의 집중을 막고 보다 민주적인 주식거래를 유도할 수 있다. 주식의 소수 집중을 막고 미래산업의 동업자를 더욱 늘릴 수 있게 된다.
주식이 어느 정도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좀더 미래지향적인 동업자들을 원한다. 미래산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가족들이 자꾸 늘어났으면 좋겠다. 우리는 주식배당률을 높이는 것으로 그들의 애정과 관심에 보답할 작정이다. 올해 미래산업은 국내 상장사 중 최고 수준인 액면 기준 65%의 배당을 단행했다. 직원복지 다음으로 내가 생각하는 자선사업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기업은 기업행위만을 통해서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사실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의 나라에서 절대적인 기업 공개념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기업가가 자기 회사를 키우기 위해 그 동안 쏟아 부었던 노력을 생각하면 사실 기업 공개념은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린다. 시셋말로 '본전생각'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 있어 사장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사장 하나의 노력보다는 직원전체의 노력이 훨씬 컸을 것이고, 직원 전체의 노력보다는 국가와 국민들의 보이지 않는 배려가 더욱 컸을 것이다. 기업이 성장하면 당연히 사장과 직원들에게 응분의 피드백이 생긴다 국가와 국민들도 그 피드백을 배당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회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장의 손아귀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기업이 직원 전체의 공동소유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기업 공개념은 시작된다. 또한 기업은 국민 전체의 공동소유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기업 공개념은 완성된다. 미래산업은 아직 기업 공개념의 완성 단계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IMF를 맞아 국내기업들이 허약진 틈을 노려 최근에는 외국 펀드들의 적대적인 인수, 합병 노력이 거세졌다. 액면분할은 외국자본의 불순한 침략을 저지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기업이 직원 전체의 공동소유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기업 공개념은 시작된다. 또한 기업은 국민 전체의 공동소유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기업 공개념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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